실수, 망연자실


아마 저녁 8시쯤이었을거다. 딱 퇴근시간 맞춰 나오면 도저히 사람이 더 탈수 없는 만원버스를 두어대 이상 그냥 보내야하니, 일부러 한 시간 이상 일을 더 하다가 나왔었다. 그날 따라 저녁 회의나 일정이 없었고, 딱히 약속도 없는 날이었다. 평소였으면 밀린 일을 하며 더 늦게까지 있었을텐데, 좀 피곤했고,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서 평소보다 일찍(?) 나온게 그 시간이었다.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켜고 버스 정류장에서 내가 타야할 버스 도착 시간을 보니 아직 한참 남았다. 차라리 걸어갈까 생각했는데, 그러기엔 그날의 피로감이 너무 컸다. 그냥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때 한 사람이 높이 달려있는 버스 도착정보 전광판을 보려고 뒷걸음치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나대로 음악을 들으며 안 읽은 글 숫자가 몇 십개씩 표시된 메신저 앱을 열어보느라 그가 다가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는 내게 부딪쳤고 둘 다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서로 사과를 했다. 한 눈에 보아도 옷차림이 세련된 여성이었다. 아마 30대 중반이 아닐까 싶은 얼굴.


그는 내가 옆으로 물러난 자리 옆에 서서 버스 도착정보를 한참 보더니, 다시 폰을 들여다보더니 도로가에 서서 초초한 듯 버스를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 빨간색 광역버스 한 대가 곧 도착할 예정이라는 알림이 뜨고, 그 버스가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아마 그 버스를 타려는 듯, 한 발을 더 도로쪽으로 내딛고 목을 빼고 기다렸다. 


그런데 버스가 정류장까지 오지 않고 조금 위쪽에서 도로가로 접근해 속도를 줄이더니 정작 정류장은 그대로 통과해 지나쳐버렸다. 그는 버스가 정류장에 오기도 전에 멈추는 것 같은 모습을 보더니 아마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그 버스가 도로 안쪽으로 차선을 바꾸며 속력을 내자 도로로 내려서서 손을 흔들었다. 그럼에도 버스는 그를 보지 못했는지 그대로 휙 자나쳤다.


명백한 버스 기사의 실수였다. 다음 버스는 20분을 더 넘게 기다려야 할 상황이었다. 그 순간 차도에서 다시 인도로 올라서는 그의 표정을 보았다. 망연자실한 모습. 나였더라도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났을 것 같다. 그는 아예 택시를 타려는 듯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며 택시가 오는지 살폈다. 퇴근 시간은 지났지만, 여전히 차량은 많았고, 택시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경험으로 안다. 그 길에서 그 시간대에 빈 택시를 잡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는 버스 도착 알림에 나온 다음 버스가 올 20여분 뒤까지도 빈 택시를 만나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그가 그렇게 초조하게 버스를 기다린 것은 아마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때 그렇게 초조함을 느꼈다. 


내가 타아햘 버스가 오기까지 한참을 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내가 예상한대로 그는 아직 택시를 타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버스에 올랐기에 그 다음 그의 행보를 알 수 없었다. 그는 과연 자신을 태우지 않고 그냥 가버린 버스 기사를 원망했을까?


양수(두물머리), 양평, 용문 그리고 막국수


재작년에는 유독 강의 요청이 많았는데, 작년에는 강의 요청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들어오는 요청이 있어도 내가 직접 하지 않고, 주위에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넘겼다. 올해 다시 강의요청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특히 올해 요청은 내 경험을 보고, 나를 지명해서 들어오는 요청이 대부분이라 다른 사람에게 넘길수가 없었다.


그 중 양평에서 온 요청이 있었다. 서울에 산 지 15년이 훌쩍 넘었지만, 나는 아직도 우리 동네를 벗어난 서울 지리를 잘 모른다. 경기도 지리는 더 모른다. 양평에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양평이 어딘지도 몰랐다. 강의는 총 2회였는데, 하루에 몰아주면 좋았으련만, 주 1회씩 총 이틀을 양평까지 가야했다. 구체적인 위치가 어딘지는 몰랐지만, 서울의 서북쪽 끝에 살고 있는 내게 엄청 먼 거리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아침 10시 강의였는데, 강의 장소까지 대중교통으로 3시간 가까이 걸리는 걸로 길찾기 앱이 알려줬다. 7시 전에 나와야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차를 빌려 운전해서 가능 방법도 생각해봤으나, 아침 출근길에 얼마나 차가 막힐 지 생각이 미치자,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생각을 폐기했다. 여러번 갈아타더라도 어쩔수 없이 대중교통으로 가야지 생각했다. 전날 일찍 자고 컨디션 조절을 잘 해야 강의시간에 맞출 수 있고, 강의도 잘 할 수 있으리라 머리로는 생각했다. 하지만 술 한 잔 하자는 후배의 연락에 내 손가락은 내 머리와는 관계없이 약속을 수락하는 답장을 보내고 있었다. 어! 이러면 곤란한데. 어쩔 수 없이 나는 술을 한 잔 마시고 자정을 넘겨 집으로 들어갔고, 알람을 10개 넘게 맞추고도 혹시 못 일어나서 강의를 펑크내고 이 바닥에서 신용을 완전히 잃게 될까봐 걱정하느라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잠에 들긴 했는데, 계속 악몽을 꿨다. 꿈에서 나는 매번 늦게 일어나 급하게 경의중앙선을 타러 가는데, 꼭 버스가 사고가 나거나, 내가 뛰다가 다치거나, 경의중앙선 열차가 고장이 나거나 해서 강의 장소에 늦게 도착하는 꿈을 반복해서 꾸고 있었다. 그러다 알람 소리에 눈을 떴고, 이게 악몽의 반복인지 현실인지 깨닫기도 전에 후다닥 준비해서 길을 나섰다.


경의중앙선 열차에서 나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정말 먼 곳이었다. 문득 자세를 바꾸며 어디쯤 왔는지 살펴도 아직 한참을 더 가야했다. 그러다 문득 밖을 보았는데, 운길산 역을 지나고 있었다. 그게 몇 년 전이었더라? 두물머리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 지금처럼 경의중앙선을 타고 가다가 동행이었던 녹색당 당원에게 운길산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리고 내 머리는 당연하게 그때의 두물머리 투쟁에 대한 기억을 재생했다. 천막촌에서 지냈던 시간들. 그때 오랜만에 만났던 환경단체 선배들. 아름다웠던 두물머리의 모습들.


갑자기 양수 역에서 내려 두물머리를 다시 한 번 찾아가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강의를 안 갈 수는 없었다. 얼마나 더 가야하나 노선도를 살피다가 내가 내려야 할 양평역에서 조금 더 가면 용문 역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올해 여름 휴가를 준비할 때 큰 아이는 다시 한 번 레일바이크를 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과 레일바이크를 두 번 타봤는데, 한 번은 용문에서 한 번은 삼척에서였다. 그 유명한 강촌 김유정역 레일바이크도 타보고 싶었는데,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어디를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당연한 듯 삼척이란 답이 돌아왔다. 길이(시간)과 재미 면에서 단연 삼척이 훨씬 낫다. 그래서 2년 전에 이어 올해 또 삼척을 휴가 일정에 포함시켜 준비했었다.


2년 전에 탔을 때는 작은 아이가 아직 어려 페달에 발이 닿지 않았었다. 그리고 큰 아이도 지금 보다는 어렸기에 힘을 충분히 내지 못했다. 올해는 두 딸들이 열심히 페달을 돌리니, 나는 거의 힘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올해는 유독 앞쪽에서 속력을 내지 못했다. 속력을 좀 내고 달려야 재미가 있는데, 마치 연휴때 고속도로에 차들이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레일바이크 들이 멈춰선 채 한 참을 기다려 조금 움직이고, 또 조금 가다가 멈춰 한참을 기다리는 것을 반복해야 했다.


암튼 그날 큰 아이가 몇 년전에 갔던 용문 여행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아직도 그때 용문 역 근처에서 먹었던 막국수 맛을 못 잊고 있었다. 또 먹고 싶다고 다시 가보자고 했다. 비록 레일바이크 노선은 삼척이 더 재밌지만, 레일바이크를 타러 놀러갔던 여행지로서의 기억은 용문이 더 강하게 남아있는 것 처럼 느꼈다. 과연 그 식당이 아직도 장사를 하고 있을까? 아직도 그때 그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까?


어쩌면 아이는 스스로 그 맛에 대한 환상을 심어버린 것은 아닐까? 나중에 다시 가서 먹어보면 기억하는 그 맛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어느 주말 아침 느닷없이 아빠가 짧은 여행을 가자며 짐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집을 나서, 지하철을 타고 갔던 그 여행이 인상 깊었기에, 긴 시간 경의중앙선을 타고 가서 처음 먹었던 음식인 그 막국수를 인상깊게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말을 듣고 또 하나 궁금했던 건, 과연 언제까지 아이가 그 막국수 맛을 기억할 것인가였다. 언젠가 아이가 어른이 되고, 삶에 지친 일상을 보내던 어느날 문득 아빠랑 함께 여행가서 먹었던 그 막국수 맛을 떠올릴까? 어쩌면 내 나이쯤 되어서 아빠에 대한 그림움과 함께 그 막국수를 떠올릴까?


사진을 뒤져보니 그 여행에서, 그 식당에서 찍어놓은 막국수 사진은 그렇게 맛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식당 주인이 아이들이 먹기에는 매울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길래, 아예 매운 양념은 다 빼고 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우리는 긴 시간 이동 끝에 꽤나 배가 고픈 상태로 막국수를 먹었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서울로 돌아오기 전에는 같은 식당에서 아이들은 한 번 더 막국수를, 나는 수육에 막거리를 마셨다. 그날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은 수육을 먹고 신난 작은 아이가 장난치고 웃는 모습이었다. 내 기억에는 작은 아이가 막국수도 맛있어했고, 수육도 맛있게 먹었던 것 같다. 정작 큰 아이가 맛있게 먹었던 기억은 내게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작은 아이는 지금은 그 여행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듯 했다. 그래. 그땐 어렸지. 그 후로 몇 번을 그렇게 갑자기 아빠가 즉석으로 결정한 여행을 다녀온 것은 기억하던데, 그런 여행의 거의 처음이었던 그 여행은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이 대목에서 또 하나 궁금해지는 건, 나중에 작은 아이는 어떤 시간의 어떤 사건과 연결해서 아빠를 기억할까?


어쩌면 이번 여름 삼척에서 지낸 시간으로 아빠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무엇으로 우리 부모님을 기억하는지도 떠올려본다. 수많은 사건들, 시간들이 스쳐 지났다. 즐거웠던, 어쩌면 행복했던 시간들도 있었고, 서운하고 슬펐고 힘들었던 시간들도 있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겠지. 어느 한 사건만으로 아빠를 기억하지는 않겠지. 복잡다양한 많은 시간과 사건과 감정들이 얽혀있을 것이다.


거제 출장 다녀온 일과 주말마다 이리저리 불려다닌 일과 기후위기 집회에서 있었던 일 등을 적고 싶으나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아서 일단 다음으로 미룬다. 내일도 지역 축제에 나가 일을 해야 한다. 주말마다 일. 주말에는 좀 쉬고 싶다는 몸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는 구나. 아, 그리고 해마다 돌아오는 애들 엄마의 독일 장기 출장도 곧 다가온다. 아이들과 원없이 붙어서 지낼 수 있겠구나.


※ 오늘 밤엔 부모님과도 아이들과도 전화 통화를 해야겠다.

※ 오랜만에 감상을 남기고 싶은 책이 생겼는데, 통 시간을 못 내고 있다.

※ 3달 넘게 운동도 못 하고 있다. 운동하고 싶다. 운동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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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10-04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의 글은 언제나 찌이이이인한 맛이 있어서 좋고 부럽고 훈훈하고 막 그래요. 오래 글이 안올라오시면 눈코뜰 새 없이 바쁘시겠지 하면서도 어쩐지 기다려집니다.
저는 운동하고 싶지 않지만 운동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그 말씀에는 크게 공감합니다!! 응원합니다^-^

감은빛 2019-10-17 18:39   좋아요 0 | URL
답이 많이 늦었네요! 정신없이 살다보니.
syo님 말씀에 많이 힘이 납니다. 고맙습니다! ^^
 


기후위기 비상행동 주간 아침 캠페인


언제 안 바쁜 시기가 있었냐고 물으면 늘 바쁘다고 답할 수 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이번 주는 그야말로 대박 바쁜 날들이었다. 아니 거슬러 올라가면 8월 초 휴가를 다녀온 후 추석 연휴 전까지 1달간도 완전 바쁜 날들이었고, 그 전에 휴가 가기 전 7월 한 달도 엄청 바빴다.


일단 밥벌이를 하는 일터의 업무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올해 봄 1명의 활동가와 1명의 반상근 활동가를 채용해 조금 내 일이 줄어드는 것 처럼 느껴졌지만, 이후 일이 더 많이 늘어났고, 두 분의 신입 활동가는 업무를 익히고, 자신의 몫을 완전히 가져가는데 시간이 걸려 그만큼 내게 업무 부하가 걸렸다. 나는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조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 여겼지만, 그 사이 사람이 늘어난만큼 업무량도 엄청난 속도로 늘어났다. 게다가 자꾸 일이 꼬여서 완결지었어야 할 일들은 자꾸 뒤로 밀리고, 새로 들어오는 일들은 그대로 들어와 그야말로 재앙 수준으로 일이 늘었다. 그리고 그만큼 내 건강은 나빠졌고, 그만큼 내 머리칼은 빠졌고, 스트레스는 늘었다.


게다가 나는 다양한 지역 활동에서 이런 저런 역할을 맡아 참여중이고, 여기에 더해 녹색당에서는 지역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여름에 접어들면서 우리 지역 녹색당은 기후 위기를 본격적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캠페인과 정당연설회 등을 기획하고 추진했다. 그 준비와 실행으로 주말까지 바쳐가며 활동했다.


이번 주는 지역 녹색당에서 기후위기 비상행동 주간으로 설정하고, 매일 아침 지하철역 캠페인을 펼치기로 결의했다. 명색이 공동운영위원장인 나는 하루도 안 빠지고 나가기로 결의를 했다. 결과적으로는 수요일 아침에 너무 몸이 안 좋아서 하루 빠지긴 했지만, 오늘 아침까지 4일을 캠페인을 했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출근해서 일을 해야하는 입장에서 따로 짬을 내서 다른 일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아침 출근길 캠페인은 그것 자체로 스트레스다. 그나마 피켓을 들고 가만히 서있는 건 그래도 괜찮은데, 전단지늘 나눠주는 일을 맡으면 힘들다.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쁜 출근길에 다른 일에 시선을 줄 여유가 없다. 그런데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전단지를 나눠준다? 내 입장이었더라도 싫을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급하게 이동하는 분들은 제외하고, 가능하면 다른 분들의 동선을 막지 않으면서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를 드리며, 그 분의 손 위치 가까이 전단지를 내밀어야 한다.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로. 그 분이 손을 내밀어 전단지를 받아주시면 감사한 일이고, 그냥 지나치더라도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아침에 몇 백장의 전단지를 돌렸다. 한 편으로 뿌듯한 일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 피곤한 일이다. 아침에 출근도 하기 전에 벌써 퇴근하고 싶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지친다.


동네에서 캠페인이나 정당연설회를 하다보면 거의 매번 아는 사람들을 마주친다. 대다수의 지인들은 응원과 격려의 말과 행동을 보인다. 내가 고생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가끔 느껴진다. 그런 태도들은 참 고맙다! 지인이 아닌 모르는 분들이 가끔 응원하고 가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정말 고마움을 느낀다. 반대로 거의 어김없이 다가와 딴지를 걸거나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정당연설회를 하다보면 반드시 그런 분들과 마주친다.


나는 저녁형 인간이라 밤에 혼자 있을 때 업무 효율이 가장 높고, 집중도 잘 되는 편이다. 그래서 야근이 많다. 낮에 여기저기 회의가 많아 저녁이 되어서야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일부러 아침 출근 시간을 늦게 잡았고, 남들보다는 늦게 일어나고, 늦게 출근한다. 그런데 아침 캠페인을 하기 위해서는 일찍 일어나서 남들 출근할 때 나와 있어야 한다. 이게 또 엄청난 스트레서였다.


새벽 알람이 울리기 전부터 내 꿈에서는 늦게 일어나 캠페인에 늦어서 함께 하기로 한 동료들이 나를 기다리며 원망하는 상황, 내 일터 상급자가 늦게 나온 내게 한 마디하는 상황 등이 무한 반복된다. 편히 자야 몸과 마음도 피로를 회복할텐데, 일찍 일어나 나가야 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자꾸 꿈에서조차 시달리니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았다. 특히 오늘 아침에는 녹색당 차원의 캠페인과 동시에 일터에서도 임원들이 캠페인에 동참하기로 해서 실무자인 내가 피켓을 만들어서 챙겨 나와야했다. 내가 늦으면 그들은 피켓 없이 아무것도 못하고 소중한 아침 시간을 낭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계속 늦게 일어나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택시가 안와서 뛰고 어쩌고 하는 등의 꿈을 수십번 반복해서 꾸었다. 결국 알람이 울려 잠을 깼는데, 잠을 하나도 못 잔것처럼 피곤했고, 오늘따라 발목과 무릎이 아팠다. 하필 오늘. 비틀비틀 절뚝절뚝 내리막길을 어렵게 내려와 택시를 탔다. 딱 맞춰 도착할 줄 알았는데, 다 와서 신호에 걸리는 바람에 3분을 늦어 버렸다.


아! 정말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 아침 캠페인, 아침 회의, 아침 면담, 조찬모임 등등 아침에 해야하는 일이 제일 싫다. 내일은 토요일이니 늦잠을 잘 수 있겠지.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깨우기 전까지 안 일어날테다.


기후 위기를 막으려면 당신의 행동이 필요해!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억지로 억지로 움직였던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아이들을 키우며 밥벌이를 위한 일터 업무 외에 추가로 녹색당 활동을 비롯해 지역 내 다양한 일들을 떠맡아왔던 바로 그 이유다.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이며, 다른 모든 사람들 역시 자신, 자신이 사람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이기적인 이유로 움직인다면 세상이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둘째는 그레타 툰베리 덕분이다. 작년부터 등교를 거부하고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의회가 기후 비상 선언을 하도록 움직였으며, 최근에는 온실가스를 내뿜는 비행기 대신 최소한의 편의시설도 없는 작은 요트로 2주간 대서양을 건너 뉴욕의 기후위기 국제 회의에 참여할 예정인 청소년 환경운동가 덕분이다. 그의 연설을 몇 번 찾아보았는데, 그 놀랍도록 간결한 논리와 설득력에 매료되었다. 그의 활동을 보고 있자면, 아무리 몸이 아프고 힘들어도 나 역시 분발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몸이 지치고 마음이 힘들때마다 습관처럼 그의 연설 영상을 틀어놓고 다시 마음을 다 잡았다.




셋째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활동의 관성 혹은 사회적 위치와 명예에 대한 최소한의 자존심이라고 해야 할까? 대학 시절부터 환경운동을 비롯한 사회활동을 시작했으니, 활동가로서의 삶은 벌써 20년을 넘었다. 그 기간 중 한때 밥벌이을 위한 직업이 학원 강사, 건설현장 노동자, 출판사 노동자 등으로 직업활동가가 아니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 시기에도 업무 외 시간에는 끊임없이 다양한 활동에 참여해왔다. 아이를 키우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돈 벌이에 집중해야 했던 짧은 시간들을 제외하면 실제로 대부분의 시간은 환경운동단체, 사회운동을 위한 법인 등에서 일했다.


그 긴 시간 활동을 이어오며 일정 부분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평가할 만한 지점도 분명 있겠지만, 또 일정하게는 과학에서 관성의 법칙이라고 부를 만한, 그냥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어떤 생각이 자꾸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그 생각의 밑바탕에는 사회적 위치와 인정에 대한 욕구가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내 동기를 분석해보고 나니, 다른 사람들의 동기나 이유도 궁금해졌다. 지금 내 주위에 있는 동료들, 선배나 후배들의 동기는 무엇일까? 언제 터놓고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동기는 무엇인가요?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위해 내일 오후 3시 대학로에 나와주세요! 지역에 계시다면 그 지역 행동에 함께해주세요.


그레타 툰베리의 말처럼 이제는 희망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한 때입니다. 바로 지금 당신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서울 9.21 13:00 서울 혜화역 1~2번출구
경남 9. 21 17:00 창원 상남동 분수광장
대구 9.21 13:30 대구 동성로 한일극장 앞
충북 9.21 10:00 청주 무심천
전북 9.21 14:00 전주 남천교
부산 9.21 11:00 부산 서면 하트조형물
전남 9.21 14:00 전남 순천 조례호수공원
수원 9.21 17:00 수원역
홍성 9.21 10:20 홍성역
제주 9.21 14:00 제주시청 주차장 제주 그대로가 아름다워 필요어수다 양 행사
제주 9.21 14:30 제주컨벤션센터 로비 UN 세계 평화의 날 행사
















요즘 이 책을 읽으며, 아주 오랜만에 진지하게 책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쁜 시기를 넘기면 내 서재에 몇 년만에 서평 하나를 등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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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림


학창시절에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모두 책받침을 갖고 다녔다. 하나가 아니라 몇 개씩. 아름다운 여성 연예인들의 사진 때문이었다. 흔히 책받침 4대 여신이라고 불리는 소피 마르소, 피비 케이츠, 왕조현, 브룩 쉴즈 뿐 아니라, 최진실, 이상아, 김혜수 등 한국 언니들도 있었다. 나는 정작 필기할 때 책받침을 받치면 필기감이 썩 좋지 않아서, 실제로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책받침은 늘 갖고 다녔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아름다운 언니들의 사진을 보고도 누군지 잘 구분하지 못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사람 얼굴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어느날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친구들이 마구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같은 연예인의 다른 사진들을 들이밀며, "이 사람과 이 사람이 같은 사람이야? 다른 사람이야?" 묻고 내가 틀린 대답을 하면 다같이 책상을 쾅쾅 내리치며 크게 웃는 것이다. 나는 그게 부끄럽기보다는 오히려 이상했다. "어떻게 이 사람과 이 사람이 같은 사람이야? 분명 다른 사람이잖아!" 그러면 친구들은 다시 크게 웃으며 놀려댔다. "안경은 뭐하러 끼고 다니냐? 눈 갖다 버려라!"


그 시절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친구들은 저 사진들을 보며 죄다 구분한단 말인가?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확인


학창시절에는 인간관계 폭이 좁고, 하루종일 같은 공간에 강제로 묶여 있을 수 밖에 없으니, 내가 사람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깨닫지 못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수많은 선배들과 동기들을 만나며 누가 누구인지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잘 구분하지 못하는 증상을 본격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나는 대다수가 나와 비슷하게 어려움을 겪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간혹 유난히 사람을 잘 기억하고 알아보는 친구들이 눈에 띄긴 했다. 그들이 독특한 것이고 대부분은 나와 비슷하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여러번 만나도 쉽게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여러차례 만나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을 다시 만났을 때 나는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물론 그들이 말을 걸거나 아는 체를 하면 그제서야 떠오르긴 했지만, 아주 가끔 오랜만에 만나는 어떤 사람들의 경우, 말을 걸어와도 그가 누구인지 쉽게 떠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아주 곤란한 상황을 몇 차례 겪으면서 내가 남들과 달리 유난히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그리고 쉽게 기억해내지 못하는구나 하고 깨닫기 시작했다.


화장


내가 잘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주로 여성이었다. 간혹 남성들의 경우도 그랬지만, 대부분 여성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화장법과 머리 스타일의 변화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추정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가족도 못 알아본 경험 때문이다.


언젠가 우연히 티비에서 전유성 씨의 딸이 아빠가 길에서 만나면 자신을 못 알아본다는 얘길 하는 걸 봤다. 그게 마치 한 두번이 아닌 것처럼 말했던 것 같다. 그 순간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긴 하구나 생각했다. 나는 지금까지 엄마를 한 번, 동생을 두세번 못 알아본 적이 있다. 그 모든 경우 길에서 마주쳤는데, 내게 익숙한 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바로 화장의 유무, 미용실, 화장법의 변화 등이 이유였다.


어느날 동생은 버스에 앉아 있다가 들어오는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손을 들었는데, 내가 자신을 똑바로 보고도 지나쳐서 뒤쪽 어딘가에 서서 가더라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어떻게 동생을 못 알아볼 수 있냐고 따졌다. 나는 동생이 나를 붙잡고 말을 거는 순간까지, 즉 동생의 목소리를 듣기 직전까지 이 여성이 왜 나를 붙잡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낯선 여성이 내게 무슨 볼일인가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익숙지 않은 얼굴이 입을 열자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서야 나는 이 사람이 나랑 20년 넘게 같이 살아온 동생이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


어느날 엄마도 길에서 자신을 못 알아보고 지나치는 나를 보고 내 팔을 덥석 잡았다. 그냥 스쳐 지날때는 얼굴을 보고도 못 알아봤지만, 나를 붙잡고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즉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나는 엄마를 알아볼 수 있었다. 다행히 엄마는 내가 생각에 잠겨 걷느라 자신을 못 본거라 여기는 듯 했다.


이때 나는 속으로 큰 충격을 받았는데, 내가 사람을 못 알아보는 증상이 생각보다 심각하구나 느낀 것이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흘러 저 위에 언급했던 전유성 씨와 딸의 경우를 나도 겪는게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뻔 했다.(다행히 '뻔'에 그쳤다!)


큰아이는 중학생이 되어서부터 화장을 하기 시작했고, 요즘은 화장을 하지 않으면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이가 자신만의 화장법을 찾고,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화장법이 자주 바뀌기도 했다. 어쨌든 지금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어떤 화장법을 주로 사용하는 것 같고, 볼 때마다 일정한 즉 익숙한 얼굴이 되었다.


그렇게 되기 전 어느 단계의 어느 날, 나는 아이와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아이가 가까이 올때까지 나는 아이를 알아보지 못할 뻔 했다. 다행히 가까운 거리에서 나는 아이를 알아보았고 전유성 씨와 같은 경우를 겪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은 모를 일이다. 아이는 아직 중학생일 뿐이고, 점점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된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알수 없는 것이니까. 게다가 나는 아직은 어린 작은 아이도 있지 않은가. 그 아이가 자라서 또 어떤 화장을 하고 나타날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초성게임


그런데 최근 조합원 캠프를 다녀와서 내가 단지 사람 얼굴만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나에 대한 어떤 본질적인 사실 하나를 깨달은 것 같다. 정말 사람은 자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살아가는 걸까? 과연 내가 아는 내가 정말 내가 맞는 걸까? 어쩌면 남들 눈에 보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는 정말 완전히 다른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1박2일 캠프를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무척 힘들고 피곤했는데, 뭐 그런 일이 한 두번도 아니어서 익숙하긴 했다. 익숙한 것과 힘들고 어려운 건 분명 다른 문제다. 익숙하다고 해서 그 일이 힘들지 않다거나 어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들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면서 겹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다행히 마지막 조합원 교류 프로그램은 따로 준비하고 진행하실 분들이 있어서 나는 하루종일 긴장하고 있던 몸과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여러 행사에서 자주 초성게임을 접했다. 아마 매년 두세번은 이 게임이 포함된 행사에 참여한 것 같다. 보통 팀을 나눠서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느 단위에서 하더라도 보통 나와 같은 팀이 된 사람들은 안심하는데, 내가 아는 게 많아서 이 게임을 잘 할거라고 여기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이 게임을 못하는 편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분명히 잘 아는 단어여도 초성만으로 제시된 시각 정보를 나는 그 단어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나중에 게임에 직접 개입하지 않은 진행자나 문제 출제자가 내게 와서 넌지시 묻기도 했다. "일부러 안 맞춘거야? 금방 맞출줄 알았는데.", "아니, 나는 전혀 몰랐어. 그 단어를 모른 것이 아니라 그 초성이 그 단어라는 걸 몰랐어."


여러차례 초성 게임을 겪으며, 문제나 힌트를 읽어주는 류의 게임과 달리 유난히 맞추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번 캠프에서는 혹 이게 내가 늘 '불치병'이라 여기고 있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추리


단서1. 나는 텍스트를 읽고 푸는 문제나 듣고 푸는 문제에서는 크게 어려움 없이 아는 내용을 떠올릴 수 있다.

단서2. 같은 답이어도 초성만으로 단서가 주어지면 전혀 연결시키지 못한다.

단서3. 초성만으로 답을 맞추지 못해 힌트가 제시되면 단서1의 경우에 해당하므로 문제를 맞출 수 있다.

단서4. 어려서부터 유난히 숨은 그림 찾기나 틀린 그림 찾기 등의 게임도 잘 하지 못했다.

단서5. 내가 누군가를 잘 알아보지 못한 몇몇 경우들을 떠올려보면 그들의 얼굴, 머리 스타일, 키나 체격 같은 정보들을 내 기억 속의 어떤 누군가와 매치 시키지 못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단서6. 이 경우 그들의 목소리를 들은 후에야 그들이 누구인지 바로 떠올린 경험이 있다.

단서7. 인터넷 보안을 위해 이상하게 왜곡된 숫자나 문자 인증을 자주 틀린다. 난 분명히 내 눈에 보이는대로 정확하게 입력했는데, 자꾸 시스템은 틀렸다고 한다.

단서8. 내 기억으로 이런 현상은 적어도 중학교 때부터였고, 잘 떠올려보면 이전에도 사소하지만 비슷한 경험으로 엮을 수 있는 기억이 있는 걸 보면, 나는 이런 현상을 태생적으로 갖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거나 경험을 쌓아서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단서9. 앞으로도 시각 정보만으로 무언가를 판단하거나 해결해야 할 상황이 오면 과연 이 판단이 맞는 것인지 아닌지 쉽게 확신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서10. 어쩌면 이 증상은 내 시력이 난시와 근시로 매우 나쁜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덧붙임1. 마흔이 넘어서부터 노안이 왔다고, 내게 아직 노안이 안 왔냐고 묻던 선배들 이야기를 흘려 들었는데, 요즘 가끔 책을 읽다가 촛점이 잘 안 맞는 것 같은 증상을 겪는다. 이게 그 노안인건가? 이제 곧 다촛점렌즈 안경을 맞추거나 돋보기 안경을 하나 더 맞춰야 하는 건가? 아니 왜 난시에 근시에 겹쳐 노안까지 찾아오는거냐구!


불치병


언젠가부터 나는 이 증상 혹은 현상을 불치병이라 여겼다. 하나의 글에는 다 언급도 할 수 없을만큼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내가 자신을 못 알아본 사실에 크게 화를 냈고, 어떤 이들은 당황한 후 별일 아닌 것처럼 대하기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이후에 나를 무시하는 방식의 복수(?) 택하기도 했다. 누군가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해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진 적도 수없이 많았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지금도 누구였는지 궁금한 한 사람이 있다. 내 기억에 분명 한 때 그와 친하게 대화를 나눴던 시간이 있었는데, 어느날 우연히 그를 마주쳤을 때 그가 누구인지, 이름은 뭔지, 어떻게 만났고, 함께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떠올리지 못했다. 그저 그와 함께 있었던 기억의 조각이 스치듯 떠올랐다 사라질 뿐이었다. 그가 다가와 아주 반갑게 인사를 걸어왔을때, 나는 그가 선배인지, 친구인지, 아니면 후배인지를 얼른 떠올릴 수 없어서 무척 당황했다. 아! 정말 우리말과 문화는 왜 이렇게 사람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그에 따른 대응을 다르게 만들었던 말인가! 만약 영어였다면 그저 태연하게 "Hi" 한마디 했을면 괜찮았을텐데. 너무 당황했던 나는 그에게 아무 대꾸도 못하고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고, 반갑게 웃던 그의 얼굴에서 갑자기 웃음기가 싹 가시더니 이내 황당해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내게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할 기회를 주지 않고 돌아서버렸고, 이후 그를 아주 가끔 마주쳐도 그는 나를 무시하고 못 본 척 했다. 그리고 나는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가 과연 누구였는지 알지 못한다. 여러번 곱씹어 떠올려본 기억으로, 그는 아마 우연한 기회에 친해진 친구였던 것 같다. 짧은 기간에 빨리 친해졌고, 그러다 꽤 오래 서로 마주치지 못했고, 그날 정말 오랜만에 다시 만났는데, 내가 그를 못 알아본 것이다.


만약 그를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기면,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그날 내가 널 무시하거나 일부러 그렇게 대한 것이 아니라고. 널 금방 떠올리지 못한 건 분명 잘못일 수 있지만, 내가 늘 그럴 수 밖에 없는 증상을 가졌다는 걸 설명해주고 싶다. 이외에도 길에서 마주쳤다가 내가 금방 알아보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글을 보여주고 싶다.


어떤 특정한 훈련을 통해 나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앞으로 길에서 내 소중한 가족들을 못 알아보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아침 지하철역 캠페인에서도 잘 아는 선배의 익숙한 얼굴을 보았는데, 한순간 그 얼굴이 너무 낯설어보여 혹시 아닌가? 잘 못 본가 싶어서 인사를 망설였는데, 문득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으며 "아침부터 고생이 많네!" 하는 익숙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약 한 달 전부터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오늘 아침 일을 계기로 적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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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게 매달리기 / 케틀벨 스윙


어제 밤 이젠 키가 많이 커서 내 눈높이 정도까지 자란 큰 아이가 갑자기 물었다. "왜 나는 쎄게 매달리기 안 해줘요?" 오랜만에 들은 단어라 뜻과 연결시키는데 잠시 시간이 걸렸다. '쎄게 매달리기'라는 단어는 작은 아이가 지은 이름으로 실은 아이들을 케틀벨처럼 안고 스윙 동작을 하는 것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그네를 타는 기분을 느껴 재밌고, 나는 아이 몸무게 만큼의 강도로 운동하는 효과를 얻는다. "너 어릴때 많이 해줬어.", "기억 안 나.", "너 크고 나서도 많이 해줬어.", "지금 해줘.", "지금은 못 해. 너 키가 아빠랑 비슷한데 어떻게 해."


아마 아이는 문득 내가 작은 아이에게 그 쎄게 매달리기를 해주는 장면이 떠올라서 왜 자기는 안 해줬냐고 물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오래전부터 아이들을 좋아했던 나는 농활가서도 동네 아이들을 죄 맡아 돌보고 같이 놀았고, 운동 단체 선배들의 아이들도 늘 데리고 놀았다. 아직 어린 아이들과 놀 때는 몸을 움직이며 노는게 가장 좋은데, 그 중 최고는 아무래도 아이의 팔이나 겨드랑이를 잡고 빙글빙글 도는 동작이다. 아이가 순간적으로 공중에 뜨면서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면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기분이 든다. 그때부터 다양한 동작으로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아이들을 마치 바벨이나 케틀벨처럼 여기고 운동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아이는 기분 좋게 놀고, 나는 운동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그런 동작들 중에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건 큰 아이가 언급한 스윙이다. 작은 아이 말로는 쎄게 매달리기. 자기 입장에선 나한테 매달려 있는 동작인데, 뒤로 갔다가 앞으로 높이 올라갔다가 다시 뒤로 떨어지는 동작이 자신에게 '쎄다'라는 단어로 연결되었으리라.


아이들이 자라면서 계속 몸무게가 늘었으니 나로서는 따로 더 무거운 케틀벨을 사지 않아도 운동강도를 높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초등학교 4~5학년 즈음까지 할 수 있다. 대략 10kg 에서 30kg 가까운 무게로 운동할 수 있다.


이 스윙 동작의 핵심은 케틀벨을 뒤로 당길 때 허리를 펴고 무릎을 살짝 구부리며 엉덩이를 최대한 접어서 힙힌지(Hip Hinge) 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Hinge 는 경첩이란 뜻으로 접었다 펴졌다 하는 동작을 말한다. 케틀벨 스윙은 힙힌지를 통한 전신운동으로 빠른 속도 많은 횟수를 반복하면 유산소 운동의 효과도 거둘 수 있는 아주 좋은 운동이다.


케틀벨은 크기가 작고 내 손 안에서 컨트롤이 가능하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아이를 안은 채 힙힌지를 잘 만드는 것이 이 동작의 핵심이며, 아이의 재미와 나의 운동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아이들이 이 동작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집에서 뿐 아니라 밖에서도 종종 해주곤 했는데, 그럼 어른들도 신기한 듯 쳐다보곤 했다. 그리고 만약 그 장면을 다른 아이들이 본다면, 우루루 몰려와서 서로 나도 해달라고 난리가 난다. 그럴 때는 줄을 세워놓고 차례대로 서너번씩 해줘야 한다.


하루는 그렇게 몰려든 동네 아이들에게 스윙을 해주고 있는데, 트레이너이자 운동처방사로 일하는 분이 보더니 몸무게와 체형이 다른 다양한 아이들을 해주는데도 자세가 완벽하다고 칭찬했다. 그 당시 내가 스윙이란 운동을 워낙 좋아하기도 했고, 나이 차가 있는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꾸준히 해주다보니 키가 크거나 작거나 덩치가 크거나 작은 아이들을 안고 힙힌지를 만드는 과정을 다양하게 해봐서 그랬을 것이다.


목마 타고 앉았다 일어나기 / 백 스쿼트


아이를 바벨 대신 안고 다양한 동작을 할 수 있다. 아이가 좋아했던 또 다른 동작은 아이를 어깨 위에 목마 태우고 내가 스쿼트 동작을 하는 것이다. 이는 내 뒷목과 어깨 위에 바벨을 얹고 앉았다 일어나는 백 스쿼트 동작과 정확히 일치한다. 나는 바벨 운동 중에 백 스쿼트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내 관심사는 거의 언제나 스내치에 있었고, 스내치를 잘 하기 위한 동작으로 오버헤드 스쿼트가 있었다. 그래서 스쿼트 운동은 거의 언제나 오버헤드 스쿼트나 맨몸 운동인 에어 스쿼트로 했었다.


그런데 바벨이 아닌 아이를 태우고 하면 아이도 재미를 느끼고 딱딱하고 차가운 바를 목에 얹어 피부가 쓸리는 일도 없다. 아이는 부드럽고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니까. 작은 아이의 경우 어렸을 때는 재밌어하다가 조금 자란 후에는 오히려 무섭다고 겁을 먹곤 했다. 내가 운동 효과를 얻으려면 앉을 때는 천천히 앉고 완전히 쪼그려 앉은 풀 스쿼트 자세에서 잠시 멈췄다가 힙드라이브 힘으로 빠르게 일어나야 하는데, 그 동작이 너무 빨라 무섭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태우고 스쿼트를 할 때는 속도 조절이 필요했다.


백스쿼트는 비교적 무게를 올리기 쉬운 온동이다. 아이가 자라도 꾸준히 해줄 수 있다. 다만 나는 어깨 부상과 무릎 부상 이후로 무게를 드는 운동을 거의 하지 못해 한동안 해줄 수 없었다. 지금이라면 큰 아이는 어려울테고, 아직 작은 아이는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가슴 위에 앉히고 윗몸 일으키기


지금은 주로 철봉에 매달려 레그레이즈나 토우 투 바 동작으로 복근 운동을 하는데, 예전에 실내 철봉을 사기 전에는 늘 윗몸 일으키기를 했다. 아, 사실 윗몸 일으키기는 순수 복근 운동을 아니다. 상반신 전체가 아닌 복근 위쪽만 들어올리는 크런치 동작이 오히려 복근 단련에는 더 필요한 운동이다.


여기에 무게를 더하려면 주로 바벨 원판을 가슴에 얹고 하거나 덤벨을 얹고 해야 한다. 이는 차갑고 자꾸 미끄러져서 불편하다. 대신 누운 상태에서 아이를 내 가슴 위에 앉히고 양 팔로 잘 안은 후에 윗몸 일으키기 동작을 하면 효과적이다. 이때 아이가 내 얼굴을 자기 다리 사이에 두게 되는데 그래서 큰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인지 안 하겠다고 했다. 아마 부끄럼을 느끼는 것이리라. 그래서 이 동작은 주로 작은 아이를 올리고 했다.


처음엔 계속 윗몸일으키기 동작을 최대한 정자세로 하려고 노력하고, 힘을 떨어진 후에는 클런치 동작으로 전환해 몇 개라도 더 했다. 완전히 지쳐 도저히 더 할 수 없을 때까지 조금이라도 몸을 들어올려야 한다. 이따 가장 주의할 점은 다리를 반동으로 움직이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코어 근육 단련이 필수이고, 이를 위해 벽에 발을 붙인다던가, 의자 다리를 활용한다던가 다양한 방식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 아이를 배 위에 앉게 하고 아이가 앉은 방향을 달리하면서 다양한 변형 동작을 해 볼수 있다. 작은 아이는 어려서부터 내 몸 위에서 노는 걸 좋아했고, 나는 그 점을 활용해 아이의 무게로 다양한 코어 단련 동작을 해 볼 수 있었다. 


등 위에 앉히고 팔굽혀펴기


영화에도 종종 나오는 아이를 활용한 가장 대중적인 운동 동작은 등 위에 아이를 앉히고 하는 팔굽혀펴기 동작일 것이다. 그런데 이는 무게 푸쉬업에 익숙한 숙련된 사람들에게 가능한 동작이다. 맨몸 푸쉬업을 주로 했고, 무게 푸쉬업을 거의 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무척 어렵더라. 작은 아이를 앉혀 놓고 간신히 자세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로 억지로 두 세개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정자세로 10회 이상 꾸준히 할 수 있을만큼 힘이 있다면 아이가 재미를 느낄 수도 있을 텐데, 펌핑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나는 그만큼의 팔힘을 갖지 않았다. 아이도 이 동작만큼은 재미가 없다며 별로 호응하지 않았다.


이 외에도 예전에 고민해보고 함께 놀면서 다양한 동작을 생각해보곤 했던 것 같은데, 그러지 않은 지도 어느새 몇 해가 지나 이젠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요즘은 사춘기 큰 아이의 눈치를 봐야 할 일이 많아지면서, 아직 어린 작은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고 느낀다. 이제 몇 해만 더 지나면 작은 아이도 더이상 나랑 놀아주지 않겠구나 싶다. 아직 놀아줄 때 최대한 열심히 재밌게 잘 놀아야지. 더불어 큰 아이와 잘 놀 수 있는 방법이 뭔지도 고민이 필요하다. 그러다 나중에 이 녀석들이 성인이 되면 아빠랑 같이 술 마셔주려나? 내게 최고의 선물은 아이들이 사주는 술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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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8-04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아이들고 함께하는 운동이네요.운동도하고 아이들과의 친밀감도 높이고 일석이조인것 같아요^^
 

어떤 주말


하필 마감일이 일요일이었다. 보통은 금요일 저녁 6시가 마감일인데, 왜 일요일을 마감일로 정했을까? 시간을 거꾸로 돌려 금요일 저녁 7시 50분 무렵 나는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머리 속으로는 어딘가 허름한 술집에 구겨진 듯 앉아 소주 잔을 들어 입에 털어넣고, 바짝 구운 고기 조각을 씹거나 매끈한 하얀 생선 횟를 입에 집어넣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마감 시간이 되기 전에 서류를 완성해서 제출해야 했고, 주말에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무조건 금요일 밤에 일을 해야 했다.


머리 속의 내가 자꾸 허름한 술집에서 소주를 들이부어서 그런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도 마치 취한 것처럼 일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자꾸만 손가락이 엉뚱한 자판을 두드리고, 자꾸만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 튀어나오고 그러다 문득 잔뜩 두드려놓은 A4 절반 분량을 그냥 통째로 지워버렸다. 속으로 욕을 한 마디 하고 담배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웃 사무실들은 대부분 퇴근한 후로 이 건물에 불이 켜진 사무실은 서너개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며 도박을 하나 걸었다. 평소 자주 술 마시는 후배에게 연락해 만약 시간이 된다고 하면 그냥 확 술을 마셔버리고, 일은 일요일 저녁으로 미뤄버리자. 만약 시간이 안 된다고 하면 그냥 억지로 머리를 짜내어 일을 마치고 밤 늦게 혼자 집에 돌아가 뭔가 폭력적인 영화를 틀어놓고 술을 마셔야겠지. 어느 쪽이 될지 장담할 수는 없었다. 확률은 반반이니까.


후배는 아직 퇴근전이고 다른 일정은 없다고 했다. 즉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얘기. 녀석은 약 1시간 반 후에 내가 앉아 있는 동네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1시간 반 안에 일을 다 마칠 확률은 거의 없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놓고 술을 마신 후 남은 건 주말에 해야했다. 시간은 총알처럼 흘러가 어느새 후배가 도착했고 우린 가끔 가는 양꼬치 집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그날 어쩌면 나는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가 어떻게 되었던 건지 모르겠다. 1차에서 후배와 평소보다 술을 더 마셨고, 충분히 마셨다며 후배가 돌아간 후에도 나는 술을 더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전화기를 뒤져 이 늦은 시간에 연락이 가능한 사람이 누구일지 살폈다. 누군가의 이름에서 손가락이 멈췄고 나도 모르게 내 손가락은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담배 한 개비를 채 다 피우기도 전에 답이 왔다. 나는 2차로 그와 술을 또 마셨다. 평소라면 아마 1차에서 이미 허용치를 넘겨 술을 마신 상태였을텐데, 그날은 스트레스와 비례해 주량도 올라가버린 것 같았다.


떠들고 웃고 잔을 비우고 소주를 또 시키고 맛도 못 느끼며 안주를 입에 집어넣고 다시 떠들었다. 해가 뜰 무렵에야 술집을 나왔다. 술동무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 기절하듯 잠이 들었고, 눈을 뜨니 토요일 저녁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마감이 일요일인 서류 생각이 났는데, 그 생각을 애써 떨쳤다. 마감은 토요일이 아닌 일요일이었다. 나는 냉장고를 뒤져 간단한 술 안주를 만들었다. 왠지 운동을 하고 먹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을 잠시 했지만, 오늘은 그냥 스킵했다. 밤새 그렇게 술을 마셔놓고 또 술이 땡겼다. 며칠전 사놓은 보드카와 토닉워터와 얼음과 냉장고를 뒤져 만든 간단한 안주 2개를 놓고 다시 술을 마셨다. 술은 술술 잘도 들어갔고, 절반쯤 남아있던 보드카는 금방 바닥났다.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냈고, 라면을 끓였다. 라면과 소주는 언제나 환상의 궁합이다. 먹고 마시고 먹고 마시고 반복하다가 소주병과 라면을 모두 해치우고 자리에 누웠다. 휴대폰 화면은 어느새 일요일이 되었음을 알렸다. 일요일이 마감인 서류를 잠시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일요일 오후 다시 눈을 떴다. 빨래를 세탁기에 집어넣고 기름때가 묻어서 따로 빼놓은 빨래 두어개를 빨래비누로 문질러 세탁기에 넣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음악을 틀어놓고 설겆이를 했다. 설겆이를 마친고 빗소리를 들으며 오늘 마감인 서류를 생각했다. 담배가 땡겨 우산을 쓰고 나가 담배를 피우고 돌아왔다. 폰을 열고 밀린 대화들을 확인했다. 중국 여성들, 인도네시아 여성, 브라질 여성, 미국 여성 몇 마디 대화를 주고 받았다. "너의 주말은 어때?", "금요일 밤부터 술만 마셨는데, 벌써 주말이 다 지나버렸네." 이런 저런 말들을 주고 받은 후 빨랫대에 지난 일요일 널어놓은 빨래들을 걷었다. 매일 아침 기분에 따라 입고 나갔던 옷들과 양말들을 빼고 남은 것들이었다.


마침내 세탁기가 다 돌아가고 빨래를 널었다. 그제서야 배가 고팠다. 새벽에 먹은 라면과 소주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였다. 냉동실에서 만두를 꺼내 찌면서 다시 이제 마감이 몇 시간 남지 않은 서류를 떠올렸다. 금요일 밤 사무실에서 두드리다 만 상태에서 단 한 글자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누군가 나 대신 그 일을 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두를 집어먹으며 노트북을 켰다. 문서를 열었는데, 너무나도 일을 하기가 싫었다. 느려터진 노트북을 보다가 사무실을 나갈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비도 오고 오가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에라 모르겠다. 생각하고 누웠다가, 아니 마감이 코앞이지 생각에 일어났다가, 몇 글자 두드리지도 않고 다시 눕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자정이 얼마 남지 않아서야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1시간 30분 동안 나는 믿을 수 없는 집중력으로 서류를 완성했다. 만약 금요일 밤에 이 정도 집중력이 생겼다면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았을텐데, 그렇게 서류에 집착하면서도 애써 외면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홀가분하게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적당히 취했다가 깨서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평소와 같은 주말을 보내지 않았을까?


암튼 완성한 서류를 제출하려고 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첨부파일을 넣었는데, 자꾸만 전송 오류가 떴다. 이제 마감 시간이 코 앞으로 다가왔는데, 왜 이 놈의 메일은 파일을 자꾸만 뱉어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비가와서 인터넷이 문제 안 되나? 낡아 빠진 노트북이 문젠가? 그렇다고 지금 사무실을 나갈 수도 없는데. 다른 방법이 없어 자꾸만 전송 오류가 나는 메일 재전송을 누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마감 시간이 지나버렸다. 자정을 넘겨 어느새 월요일이 되어버렸다.


다시 파일을 열어서 검토하다보니 서류에 첨부한 몇몇 이미지 용량이 너무 커서 전송이 제대로 안 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첨부한 이미지들 십여개를 모조리 따로 저장해 용량을 줄이고 다시 첨부했다. 그 과정에서 몇몇 문장을 다듬고, 몇몇 표현을 고치고, 몇몇 표의 여백과 정렬을 바로잡았다. 다시 서류를 첨부해 메일을 보내니 이번에는 제대로 전송이 되었다. 마감 시한이었던 일요일 밤 자정에서 2시간이 넘게 지나있었다. 자꾸만 술이 땡겼지만 어제 밤 다 마시고 없었다. 억지로 잠을 청했다.


어떤 월요일


그리고 월요일 아침 접수처에 전화를 걸어 내 서류가 무사히 접수되었는지 확인했다. 담당자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확인했다고 답했다. 마감 시한을 2시간 넘게 넘겼지만 받아줘서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일을 했다. 회의를 하고, 전화를 걸고 받고 또 전화를 걸고 또 회의를 참석했다. 오후가 되어 문자가 한 통 왔다.


일요일이 마감이던 서류 접수를 일주일 더 연장해 다음주 일요일까지 받겠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지만 간신히 욕을 내뱉는 건 참았다. 그저 조용히 옥상으로 올라가 담배를 피웠다. 서류 첨부가 되지 않아 조바심을 내면서 재전송을 무한 반복했던 지난 밤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첨부한 이미지 전부를 용량 조절해 다시 작성했던 기억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월요일이라 회의가 많았다. 낮에 회의를 두 개나 했고, 여러 기관과 여러 단체와 조율해야 할 일도 많았다. 저녁 7시 반에 시작 예정이었던 회의는 10분 늦게 시작해 1시간을 조금 넘겨 끝났다. 회의가 끝났지만 몇몇 이슈를 갖고 약 30분 넘게 의견을 나눴다.


그리고 이 건물 사람들이 모두 퇴근한 이후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 몇몇 밀린 일을 처리하고, 화요일 아침 강의 자료를 훑어보며 강의할 내용을 머리 속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알라딘에 접속해 몇 개의 글을 읽고 다다다 이 글을 두드렸다. 시간은 또 금방 흘러 다시 12시가 지났다. 화요일이다. 아침에 강의하러 가려면 이제 빨리 집에 가서 자야할텐데. 집 앞까지 가는 버스 막차는 아마 좀 전에 끊겼을 것이다. 중간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도중에 내려 걸을지, 처음부터 집까지 걸을지 고민해 본다. 


왠지 오늘도 술을 한 잔 마셔야 잠이 들것 같다. 과연 나는 집 근처 편의점을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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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2019-07-30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술을 정말 너무 좋아하시는군요. 달달한 술맛에 한번 빠지면 기가 막히게 기분이 좋아지지요. 윗글도 보아하니 술기운의 에너지가 써낸 느낌입니다. 구라 솜씨 좋은 소설가의 소설처럼 읽는 맛이 당깁니다. 재밌게 잘 읽었네요. ^^

감은빛 2019-08-04 14:12   좋아요 0 | URL
˝구라 솜씨 좋은 소설가의 소설 처럼˝이란 말씀 칭찬으로 들리네요.

이 글은 술기운으로 쓴 글은 아닙니다.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고 야근 마치고 집에 가기 전에 쓴 글이에요.
고맙습니다!

cyrus 2019-07-30 1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덜 사게 되니까 편의점에 가서 지출되는 돈이 늘어나는 부작용이 생겼어요. 다음 달 휴가를 집에서 보낼 생각인데, ‘휴가 기간에 읽을 책’을 사고 싶다기보다는 ‘휴가 기간에 먹을 것’을 뭘 살지 고민 중이에요.. ㅎㅎㅎㅎ 당연히 ‘먹을 것’에 술도 포함되어 있어요.. ^^;;

감은빛 2019-08-04 14:13   좋아요 1 | URL
책을 덜 사서 지출이 늘었다니!
그렇다고 책을 더 사시라고 말씀도 못 드리겠네요.
휴가 기간엔 뭐니뭐니해도 맛있는 것 잔뜩 먹고 푹 쉬는게 제일 중요하죠!
편안하고 재미있는 휴가 되시기 바랍니다! 시루스님.

카스피 2019-07-30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술을 먹으면 만사가 귀찮아져서 하던 일도 떄려지는 것이 보통 사람의 심리인데 감은빛님은 참 대단하신것 같아요^^

감은빛 2019-08-04 14:15   좋아요 0 | URL
저는 술을 적당히 마셔도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뭐든 다 합니다.
오히려 어떨 때에는 평소보다 더 집중력을 발휘하게 될 때도 있어요.
가끔 일이 남아있는데 술자리를 꼭 가야 할 때도 있는데,
이런 날엔 2차 정도까지만 술을 마시고 사무실로 돌아와서
다시 일을 하기도 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