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되고 싶었던 직업 중 하나는 서점 주인이었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수많은 책들이 쌓여있어 사람들 지나가기도 어려운 그런 서점. 온종일 책 읽고, 책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 참 좋겠다 싶었다. 물론 지금은 안다. 서점 주인은 서점 경영과 각종 잡무 때문에 맘 편히 책 읽을 시간 따위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작은 서점은 아무리 운이 좋아도 살아남기 어렵다. 왜곡된 유통구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 때문에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다. 지난 논란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다른 온라인 서점들의 대응이 없는 상황에서 알라딘이 갑자기 반대 서명을 띄우면서 알라딘 서재에서 더욱 논란이 되고 있는 듯하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알라딘은 반대 서명이 아닌 찬반을 묻는 게시판으로 전환했고, 몇몇 출판사들이 알라딘에 출고 정지를 선언했다. 이 복잡한 국면을 바라보는 것이 참 씁쓸하다.

 

 

 

가만히 있으려고 하다가 나도 모르게 몇몇 게시글에 댓글을 남기게 되었다. 대부분 추측으로 이루어진 정보에 대한 보완 설명 개념으로 댓글을 남겼는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어 나도 따로 글을 하나 남긴다.

 

 

 

 

 

내가 보기에 이번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 발의에 대한 독자들 논란의 핵심은 책값이다. 그래서 책값이 싸다, 비싸다 하는 말들이 자꾸 오가는 듯하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도서정가제(즉 출판문화산업진흥법)는 엄밀히 말해서 정가제가 아니다. 일부 출판인들은 이를 '할인촉진법'이라고 부른다. 이 법은 이름과는 달리 정가판매가 아닌 할인판매를 부추기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 이상한 법 덕분에 온라인 서점은 맘껏 책값을 할인하고, 마일리지를 제공하면서 독자를 모아왔다. 그리고 출판사도 조금 더 많은 책을 팔기 위해 여기에 편승했다. 그리고 할인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반 서점들은 점점 더 설 곳을 잃어갔다. 책이 팔리지 않으니 서점에서 출판사로 대금결제를 해주기가 어렵고, 출판사 입장에서도 책이 팔리지 않는 서점들보다는 책이 더 잘 팔리는 온라인서점으로 집중했다. 시간이 갈수록 온라인서점은 시장 점유율을 높여갔고, 이제 매우 큰 힘을 갖게 되었다.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이 법이 정말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서시장에서 유독 온라인서점에만 매우 유리하게 만들어진 이 법 덕분에 출판사와 독자들은 알면서도 계속 온라인서점의 힘을 키워줬다. 아니 도서의 정가가 뻔히 정해져 있는데, 책을 반값에 파는 것이 정상인가? 그럴 거라면 왜 애초에 정가를 반으로 책정하고, 할인 없이 팔아야 하는 거 아닌가? 앞서 현행 제도를 '할인촉진법'이라 부른다고 했다. 이 법 덕분에 출판사도 독자도 마치 할인을 안 하면 안될 듯한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인 판매를 하지 않는 출판사들도 많다. 아마 시장 점유율로 따지면 상대도 안 되겠지만, 숫자로만 따지면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우리가 책 할인 판매에 익숙해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온라인서점이 처음 생기고 자리를 잡은 것 자체가 오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할인 판매라는 관행이 강하게 굳어져 간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름과는 달리 할인을 권하는 이상한 법 때문에 불공정하고 기형적인 유통구조가 자리 잡았고, 점차 굳어져 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를 바로 잡는 것이 정상으로 보인다.

 

 

 

내가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가장 강하게 깨달은 것은 작년 여름 [안철수의 생각]이 출간되었을 때였다. 당시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큰 주목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온라인 서점이나 오프라인 서점이나 독자들이 책을 많이 찾았다. 온라인 서점들은 아마 예약 판매를 했을 테고, 출판사로부터 차질없이 물량을 제공받아 팔았지만, 오프라인 서점들은 책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단골들이 책 나오기 전부터 예약해두고, 드나드는 독자들이 책을 찾아도 책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니! 그에 반해 대형서점들과 온라인서점들은 책을 쌓아놓고 팔았다.

 

 

 

당시 SNS를 통해서 황당한 글을 읽었다. 7월 25일 오전에 교보문고 광화문 매장 앞에서는 '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낙하산 인사 규탄 및 출판문화살리기 실천대회'가 열렸다. 여기에 전국 각지의 중소형 서점을 경영하는 사장님들도 올라오셨는데, 집회가 끝나고 교보문고 매장에 들린 사장님들께서 저마다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쌓여있는 [안철수의 생각]을 바라보았다. 출간된 지 10일째인데, 예약을 받아놓은 책들이 벌써 여러 권인데, 도매상에 아무리 연락을 해도 계속 물량이 없다는 답변밖에 돌아오지 않는데, 여기 교보문고에는 책으로 탑을 쌓아놓았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단골들을 실망하게 만들고, 예약 받아놓은 책들을 취소할 것인가? 서점경영인의 자존심을 버리고, 동료 서점인들의 눈치를 보면서 교보문고에서 책을 사가서, 최소한 예약된 부수만이라도 팔 것인가? 솔직히 매우 황당하면서도 눈물겨운 소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바로 불공정한 거래를 규정해놓은 현행 도서정가제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는 출판사와 서점 간의 거래에 대한 문제이다. 절대 책 가격 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개정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책값이 더 올라가거나 내려가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책값 산정에서 마케팅 비용의 문제는 엄밀히 말하면 부차적인 부분이다. 독자들은 더는 지금처럼 과도하게 할인된 가격에 책을 사보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일 텐데,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지금이 비정상이다. 게다가 일부 출판사들은 지금도 할인 판매를 하지 않고 있으니, 모든 책들을 다 할인받았던 것도 아니지 않은가. 소비자로서의 독자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나,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책값이 아닌 서점과 출판사 간의 유통 구조를 바로 잡는 것에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 '그럼 이번 개정안으로 동네서점들이 살아날 수 있나?'라는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번 개정안이 동네서점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힘겹게 꾸려가고 있는 서점들이 적어도 온라인서점과 같은 조건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불합리한 제도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네서점이 살 수 있느냐 없느냐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출발 선상이 달랐던 것을 뒤늦게라도 같은 위치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처음 알라딘이 내걸었던 '도서정가제 강화'라는 표현이 무척 유감이고, 그 안에 담겨있던 사실 왜곡에도 유감을 표한다. 마치 독자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출판사들의 이기주의 때문에 빼앗기는 상황인 것처럼 몰아갔다. 알라딘의 이러한 왜곡은 무척 치사한 행위이지만 큰 효과를 발휘하여 짧은 시간에 엄청난 서명을 받았다. 이번 개정안의 본질을 흐려 놓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다음으로 알라딘에 출고를 정지한 출판사들에 대해 짧게 생각해보자. 오늘 아침 존경하는 선배 출판인의 페이스북에서 관련 글을 읽었다. 출판사는 거래처와의 관계에서 가끔 출고정지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주로 어떤 문제가 계속 반복되고, 더는 말로는 설득이 어렵다고 판단할 때 이루어지는 조치다. 알라딘은 벌써 두 번째로 도서정가제 반대 서명을 조직했다. 나와 그 선배의 기억으론 두 번째인데, 한기호 소장님은 세 번째라고 하신다. 어쨌거나 반복되는 문제에 대해 이제는 말로는 설득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출고정지를 한 거라고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다른 온라인서점들이 모두 가만히 있는데 혼자 나섰다는 것도 출고 정지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알라딘 서재에서 몇몇 분들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았다. 동의하진 않지만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내가 주로 구매하는 서점이고, 내가 서재를 만들어 이용하는 서점인데, 여기에 책을 안 준다고 하다니, 독자를 무시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다만 출판사의 입장에서도 분명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출고 정지라면 당장 그만큼의 매출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대부분 규모가 있는 출판사들이었기 때문에 알라딘 정도의 거래처라면 제법 큰 액수의 매출이 나올 것이다. 대의 때문에 실리를 포기하는 일을 웬만한 출판사 사장이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어려운 결정을 출판사에서 내린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출고정지까지 내린 방식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알라딘은 한차례 태도를 바꿔 찬반 공론의 장으로 전환(물론 출판사 내부적으로 출고정지를 발의한 시점에서는 아니었겠지만)했다. 한 번 더 대화를 시도하고, 조금 더 지켜봐 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그리고 지금 알라디너들이 분개하듯 독자를 무시한 처사로 보인다는 것을 간과한 것(간과한 것이 아니라 고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추진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도 아쉽다. 혹시 이런 조치를 출판사들이 단체로 압력을 행사하는 방법으로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어제 그런 우려 때문인지 인문사회과학 출판인협의회와 한국어린이 출판협의회 그리고 청소년 출판협의회 등의 출판 단체들이 모두 조직적인 출고 조치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내용으로 입장을 발표했다.

 

 

 

늘 그렇지만 대립하는 입장에서 논쟁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상대방 주장을 잘 이해하기 어렵고 또 내 주장을 쉽게 전달하기 어려울 때 더욱 그렇다. 이번 일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논쟁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나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논쟁을 하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 다른 분들의 의견을 막겠다는 의도는 아니다. 논쟁이 아닌 토론을 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여기에 관련된 다른 의견이나 질문은 언제든지 환영하니 남겨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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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13-01-25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의 훌륭한 글 덕분에 많이 알고 갑니다. 지금이 비정상이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에 알라딘의 입장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동의할 순 없습니다. 그럼에도 좋은 책, 안목있는 MD, 따듯한 알라디너들이 있기에 이곳이 여전히 좋은 것도 사실입니다. 상생하는 길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감은빛 2013-01-25 16:53   좋아요 0 | URL
저도 알라딘이란 인터넷 공간이 좋습니다.
그리고 알라딘 MD님들도 대부분 좋은 편이라 생각합니다.
서로 상생하는 길을 찾는 것에 100%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이번 개정안이 회사로서 알라딘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유독 알라딘만 이렇게 나선 이유가 궁금합니다.
나중에 밝혀질 때가 있겠지요.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수적 2013-01-25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찌어찌 타고 넘어 와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른 알라디너 분들과 감은빛 님 모두 좋은 토론을 하셨다고 생각해요. 애정과, 내공이 있는 대화들이었다고 감히 생각되니까요.

감은빛 2013-01-25 16:54   좋아요 0 | URL
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다락방 2013-01-25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감은빛님.

감은빛 2013-01-25 16:54   좋아요 0 | URL
두서없이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락방님.

맥거핀 2013-01-25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의 사려깊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역시 많은 이야기를 얻고 갑니다. 이번 정가제 관련해서 다만 아쉬운 것은 일반소비자의 입장에서 출판의 구조나 사실에 기초한 주장들을 조금 더 들었으면 좋겠는데 그에 대한 것은 적고 갑자기 찬반만을 묻는 것처럼 느껴진 부분입니다. 결국 책을 대부분 소비하게 되는 것은 일반소비자인 만큼 조금더 정확한 사실 혹은 사실에 기초한 주장들을 들을 수 있는 토론 혹은 공청회, 기타 등등의 기회가 먼저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감은빛 2013-01-25 16:58   좋아요 0 | URL
일반 독자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토론회나 공청회가 있었습니다.
출판계와 도서 유통 시장은 워낙 후진적인 시스템과
기형적이고 왜곡된 방식으로 얽혀 있어서
누구도 정확한 사실에 기초한 주장을 펴기가 쉽지 않습니다.

개별 출판사마다 상황이 모두 제각각 다릅니다.

한기호 소장님을 비롯한 몇몇 평론가 등 주로 의견을 내는 분의 주장들도
일면으론 맞을 수도 있지만, 다르게보면 전혀 틀린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가끔 저는 그런 분들 글을 읽으면서 실소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 재미있는 분야입니다.

맥거핀 2013-01-25 17:31   좋아요 0 | URL
바로 그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라는 사실이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무엇보다도 이것이 동네서점 살리기가 아니라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라는 점에 적극 동감합니다. 대형마트와 동네가게의 문제도 결국은 공정한 경쟁인가가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감은빛 2013-01-25 18:15   좋아요 0 | URL
아마 그 토론회와 공청회를 주최했던 분들은 널리 알리고 싶었겠죠.
솔직히 말해서 저도 그 소식을 늦게 들었고,
직장에 매인 몸이라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맥거핀님께서 동감해주셔도 무척 반갑네요.
제 생각에 본질은 이거 하나입니다.
자꾸 다른 말씀을 하는 것은 전체 출판계를 위해서는 바람직하지만,
이 사안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하이드 2013-01-25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될수록 가격이 오르는 앤틱 말고, 오래되었는데 가격이 안 내리는 상품이 무엇이 있을까요? 구간 할인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구간인척, 실용수인척 하는 꼼수를 막아야겠지요. 그 부분을 이야기해야해요.

그리고, 모출판사에서 말하듯, 그들도 도매상 통해서 알라딘에 책 들어가는거 다 알고 있습니다. 힘겨루기 내지는 언론플레이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비로그인 2013-01-25 17:10   좋아요 0 | URL
김영사나 창비 같은 대형 출판사들만 언론 기사에 오르내리지만, 중소형 출판사들도 블로그나 카페를 통해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중 한 곳을 소개하죠. 산지니라는 출판사입니다. http://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anzinibook&logNo=20176740947&categoryNo=0&currentPage=1&sortType=recent&isFromList=true
출판계의 자정을 촉구한다면 독자들도 양서를 고르는 안목을 길러야 하고, 출판사에 일반 기업보다 더 많은 도덕성을 요구한다면 독자들도 상생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쪽에만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는 없어요. 양쪽이 함께 가야죠.

감은빛 2013-01-25 17:05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책은 일반 공산품과는 다른 성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출간된지 1년 6개월이 지났다고 오래되었다고 판단해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점은 구간 할인이 가능하려면
모든 서점들이 다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서점의 할인은 그들이
교보문고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서점질서를 비집고 들어오기 위해
시행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독자를 위해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책값이 비싸서 시작한 것도 아니란 얘깁니다.

출고정지한 모든 출판사는 아니겠지만,
몇몇 출판사에서는 도매상에 온라인서점 출고를 막았다고 합니다.
독자 입장에서 힘겨루기나 언론플레이로 보시는것은 어쩔수 없지만,
실제로 출판사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하이드 2013-01-25 17:34   좋아요 0 | URL
검색하면 산지니 많이 나와요. 알고 있습니다. 김영사, 창비, 마음산책, 돌배게, 산지니 말고 다른 곳들이 궁금해요. 리스트 만들려다 아무리 검색해도 안 나와서 포기.

출판사에 일반 기업보다 더 많은 도덕성을 요구하지 않고, 덜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독자'라는 카테고리에 저도 분명 들어가니, 전 제 밥그릇도 아닌데, 꽤 고민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 않나요?

구간 가격을 못내리게 법적으로 정해졌을때, 그게 상관없는 출판사도 있는 반면, 그게 힘든 출판사도 있지요, 분명.

하이드 2013-01-25 17:44   좋아요 0 | URL
할인을 독자를 위해서라고 생각할정도로 멍청하지 않구요.

책을 일반 공산품과 다르게 보는 것.은 또 다른 긴 이야기겠지요. 얘기를 할수록 길어집니다. 신간 밀어내기 꼼수(?)가 있는 현상황에서 스테디셀러가 아닌이상, 1년 6개월은 오래지요. 신간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데, 할인이벤트로 다시 신간과 함께 같은 매대에 올릴 수 있다면, 그건 출판사에게도 독자에게도 좋은 이벤트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산책, 창비, 돌배게에 대해서는 알라딘 서재마을에서 저 포함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아껴줬는데, 배신감 들어 감정적이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 세 출판사에서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저 세 출판사중 한 곳에선 알라딘에서 책 사는 알라딘 유저들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고 있지요. 알라딘에 출고정지 결정할 때, 어떤 기사나 블로그 글이나 다 들여다봐도 알라딘에서 책 사는 독자들에 대한 고민은 없네요.

도매상 통해서 들어가는 것까지 막는/막을 수 있는 출판사가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전화했던 출판사는 아니였습니다. 도매상 통해서 다 받으실 수 있어요. 라고 냉큼 대답하던걸요?

70여개 출판사라는 블로그 글을 봤는데, 그 출판사 목록 좀 다 구하고 싶네요. 서점 연합회까지 다 찾아봤는데, 없네요. 출고정지는 그들 마음이고, 불매는 제 마음이니깐요.


감은빛 2013-01-25 17:59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제가 드린 말씀의 핵심은
구간 할인이 가능하려면 모두 다 가능해야 한다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어느 출판사나 도매상에 온라인서점 출고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 출판사들이 만약 출고정지 없이 알라딘에 계속 공급한다면,
매출액 만큼 다음달에 현금으로 송금받습니다.
출고를 정지했기 때문에 도매상을 통해 알라딘에서 판매된다면,
그 매출액은 다음달에 4개월짜리 어음으로 지급받습니다.
도매상에 온라인 출고를 막았다면 아예 매출액이 발생하지 않구요.

출판사마다 비중은 다르겠지만 알라딘은 온라인 거래처 중에서
제법 매출액이 나오는 곳일 겁니다.
그 만큼의 매출을 포기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려도 별로 소용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출판사가 출고정지를 결정할 때, 독자를 고려하지는 않습니다.
해당 거래처와의 관계와 문제가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입니다.

비로그인 2013-01-25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조목조목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판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출판계가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대중들과 소통하는 것을 소흘히 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언론 보도도 대형 서점과 대형 출판사들 위주로 나가는 것도 씁쓸하고요.
도서정가제 문제에 '독자'가 빠졌다고들 비판하는데, 개인적으로 '출판노동자'도 빠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값이 비싸다고 하면서 종이, 디자인 얘기 하시는 분들 중 '인건비' 문제를 말하는 분은 없더군요. 책이 만들어지는 공정에 대해서, 책 하나가 만들어지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과 노력이 들어가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 노동에 대한 대가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의로 도서정가제에 찬성하지만, 그로 인한 이득이 몇몇에게만 돌아가지 않도록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감은빛 2013-01-25 17:1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저도 출판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문제가 본질과는 다른 국면으로 자꾸 빠지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출판계가 독자들과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을 해야 할텐데,
그러기에는 개별 출판사들의 여건이 참으로 열악하죠.
출판노동자의 상황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얘기들도 좀 더 공론화된다면 좋겠네요.

긴 글 읽고,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립간 2013-01-25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 며칠 사이 도서정가제에 대한 글 추천만 하고 다니게 되네요. 동감합니다.

감은빛 2013-01-25 17:11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 고맙습니다!

2013-01-25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3-01-25 18:1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잘 읽으셨다니, 저도 고맙습니다!

blanca 2013-01-25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정가제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목이 말랐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책이 가지는 또 사람들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공공재로서의 기대가 이 논란의 촉발된 지점이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파는 사람도 유통하는 사람도 도덕성, 공정성에 대한 기대가 다른 것들을 만들고 파는 사람보다 더 높다는 것도요. 결국 잘못된 관행은 잡고 최대한 공정성에 가까이 가야 할 텐데요.

감은빛 2013-01-28 10:24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안녕하세요.
저도 업계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도서정가제가 뭔지,
또 책만 유독 정가제를 두고 있는지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
물론 지금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경험상 책이 일반 공산품과는 많이 다르구나 느끼고 있습니다.
블랑카님도 말씀하셨듯이 경쟁은 공정한 룰에서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개정안은 그 첫 걸음에 불과해요.
앞으로 많은 분들의 관심 아래 조금씩 나아지기를 바랍니다.

귀를기울이면 2013-01-25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글을 보니 조금 빛이 보입니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도저히 정가제 취지를 이해하기 어려웠거든요. 생존본능이 있는 모든 존재가 그렇듯 알라딘이든 출판사든 자기에게 어느정도 유리하게 각색된 설명을 일반독자들에게 해온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러하든, 여전히 머리를 떠나지 않는 우려(?)가 있습니다.
정가제가 정착되어 (감은빛님 표현처럼)'정상적인 가격'으로 책이 팔리게 된다면
도서판매량도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당연히 줄어들겠지요)
물론 좋은 책을 알아보는 좋은 독자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할인율과 무관하게 책을 구해보겠지만 책도 화폐와 교환되는 재화니만큼 전체 수요는 '반드시' 가격 변화에 반응할 겁니다.
(매출량 감소와 매출액 증가 중 어느게 더 클지 모르겠지만) 파이를 나누는 방법이 바뀌니 어느정도 중소유통업자와 출판사의 생존에 도움이 되기는 하겠죠. 하지만 사회인문 서적의 초판 판매량이 많이 줄었다는 걱정을 하는 글을 종종 봤던 저로서는 과연 이게 다양한 양서가 꾸준히 나오게 할 수 있는 길인가 의문이 들곤 하더군요.

이것 말고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은 더 있는데 일단은 이정도로만 해야겠네요....

감은빛 2013-01-28 10:30   좋아요 0 | URL
현재의 유통구조는 소수의 출판사 그리고 베스트셀러에 유리한 구조입니다.
베스트셀러는 할인을 많이 하거나, 광고를 하면 초기에 쉽게 올라가죠.
도서정가제가 정착이 되면 좀 더 다양한 책들,
특히 인문,사회과학 책들도 좀 더 평등한 기회를 갖게 됩니다.

베스트셀러(문학이나 자기계발)는 조금 시장이 줄어들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래도 책을 사보시는 독자들은 여전할 거라고 예상합니다.
그리고 이번 개정안에는 도서관 납품가에 대한 상한선 조정도 포함됩니다.
전국 도서관에서 제대로 된 가격으로
보다 더 다양한 도서를 구매하는 것도
출판시장에는 큰 도움이 됩니다.

더 궁금하신 부분은 언제든 여쭤보셔도 좋습니다.
제가 아는 내용이라면 성실히 알려드리겠습니다.

건조기후 2013-01-25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 읽었습니다. 잠깐잠깐 이런 저런 글을 단편적으로만 접하다보니 더 복잡해지기만 하고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감은빛님 글을 읽으니 어느 정도 정리가 되네요. 내친 김에 관련된 글을 더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이런저런 문제가 많이 얽혀있겠지만 온라인-오프라인이건 대형-소형이건 모든 서점이 신간이건 구간이건 모든 책을 동일한 가격으로 공정하게 판매해야한다는 점만 생각하면 의외로 간단한 거 같네요..

감은빛 2013-01-28 10:32   좋아요 0 | URL
네, 건조기후님.
의외로 간단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독자에게 득이 될 것도, 해가 될 것도 없는 내용이지요.
맨 처음 알라딘이 독자들에게 오해를 조장한 것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제대로 소개만 했더라도 이렇게까지 오지 않았을텐데요.

숲노래 2013-01-25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이 쓰신 글은,
책을 읽고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조금만 생각하고 살펴도
누구나 알아채고 알아낼 수 있는 대목,
아니 기본으로 깨닫고 헤아릴 대목이라고 느껴요.

그러나 현실 사회에서는 이조차
제대로 살피거나 헤아리지 않은 채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느니 찬성하느니 하면서
편가르기를 하면서 힘싸움 하는 얼거리를 몰아갑니다.

책값도 할인율도 무엇도 하나도 대수롭지 않아요.
대수로운 한 가지는 오직 하나,
'책'이지요.

나는 내가 쓴 책들이 여러 해 지났대서
이 책들을 출판사에서 20% 넘게 에누리해서 판다면
작가인 나 스스로 그 출판사하고는
절필을 합니다. 곧, 내가 책을 낸 출판사는
내 책이 아닌 다른 작가 책이라 하더라도
펴낸 지 여러 해 지났어도 20% 넘는 에누리를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그게 '책'이니까요.

구간할인이라는 핑계로 반값으로 인터넷책방에서 팔기도 하는 책이 있는데
<난 쏘 공> 같은 책을 구간할인으로 파는 일이란 없겠지요.
'책'이니까요.

<몽실 언니> 같은 책을 구간할인 적용시켜서 아이들한테 읽혀야 할까
하고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책다운 책, 책으로 읽을 책, 책을 읽을 우리들 몸가짐,
이 모두를 어떻게 살펴야 하는가를
스스로 느끼며 올바르게 추스를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도서정가제를 놓고 이래저래 여러 단체와 지식인들 말이 많은데,
저는 어느 쪽에도 마음이 안 닿습니다.
모두 '책' 이야기하고는 동떨어진 주의주장만 하는 듯싶더군요.

동네서점이 살아날 수 있으려면,
사람들 삶이 먼저 달라져야 하고,
사람들 스스로 돈벌이에 목을 매다는 나날이 아닌
사랑과 꿈을 찾는 나날이 될 수 있어야 해요.

귀촌이나 귀농을 하는 사람들조차
책을 안 읽거나 못 읽거든요.
도시에서도 바쁜 사람은 시골에서도 바쁘고 말아요.

곧, 시골에서도 느긋한 넋이어야
도시에서도 느긋하게 살아가며
책이든 이웃이든 어깨동무하면서
삶을 빛낼 수 있어요.

정부는 핵발전소 늘리기는 그만둔다 하지만
화력발전소를 끔찍하게 짓는 쪽으로 돌아가요.
그런데, 이 대목을 비판할 수 있는 가슴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아무쪼록, 알라딘서재에서
곁길로 새는 주의주장 아닌,
'책'을 한복판에 놓고,
삶을 일구는 이야기를 빚는 목소리가
차츰 솟아날 수 있기를 빕니다.

감은빛 2013-01-28 10:35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 말씀 고맙습니다.
가끔 구간 20%정도의 할인은 출판사와 상의없이,
온라인서점에서 단독으로 진행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책이 어느정도 판매가 되고, 매출액 상승효과가 예상될 때이지요.
직거래를 하고 있고, 공급률이 괜찮다는 전제조건도 필요하구요.

모두 바쁜 시대이죠.
좀 더 여유가 생겨야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을까 싶어요.

쿼크 2013-01-27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글 잘 읽었습니다.

(지나가다 투정 한 번 했는데..마음에 걸려 원래 댓글을 수정합니다..)

감은빛 2013-01-28 10: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쿼크님.
맨 처음에 뭐라고 남겨주셨는지 궁금하네요.
어떤 투정이었는지 몰라도,
그냥 남겨두셨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어요.

또 하실 말씀이 있다면 편하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2013-01-25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28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극곰 2013-01-26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잖아도 다른 분들 댓글에서만 보면서 감은빛님의 따로 쓰는 글을 기다렸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은빛 2013-01-28 10:4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북극곰님.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oren 2013-01-28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께서 무척 알기 쉽게 풀어서(?) 쓰신 글을 올려주셨군요.

이 글 덕분에 많은 분들이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오해를 상당부분 풀었으리라 믿습니다.

어쨌든 감은빛님의 글 내용처럼, '현행법'이 지닌 여러 한계점들을 '최소한이나마' 보완하려는 차원에서 이번에 '도서정가제를 강화하려는 개정안'을 발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은 '책값'이나 '정가 대비 할인폭' 등 소비자이자 독자인 '나'에게 미치는 '당장의 손익'에만 너무 매몰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특히나 넘쳐나는 '도서정가제 반대의견들'을 보면서요. 한편으로는 알라딘이 여기에 너무 고무(?)될까 걱정되기도 하구요.)

더군다나 이번에 추진중인 '개정안'을 두고 몇몇 분들이 '동네서점 살리기'와 직결시켜 '도서정가제 강화 무용론'을 주장하는 모습들도 더러 있었는데 저는 그 점도 좀처럼 이해하기가 어렵더군요. 이번 '도서정가제 강화' 취지가 마치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고 나날이 경쟁력을 상실해 나가는 동네서점을 살리기 위한 무슨 '특별법'도 아닌데 말이지요. 이번 법 개정 취지를 그렇게 '좁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점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는 글들은 저로서는 읽기가 좀 민망하더군요.

다른 분도 비유했듯이 '도로교통법'이 있어도 그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소위 '약삭빠른 자들'이 최대한으로 불법과 편법을 마음대로 저지르고(버스나 택시등 '도로 사업자'든 자가용 운전자나 승객등 '도로 소비자'든), 그 무질서와 교란으로 인해 여러 '도로 이용자들'이 '불필요한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런 공익을 저해하는 부실한 도로교통법은 '공익'을 위해서라도 당연히 강화하는 쪽으로 개정하는 게 맞지 않나요?

어쨌든 이번에 알라딘이 '꼼수'를 둔 덕분에 저도 그 점이 못마땅해서 발끈하고 나섰지만 이번 일 덕분에 정말 '책값'과 '도서 유통'을 둘러싸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숱한 이해관계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 점은 '예상외의 소득'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싶은데,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외부로부터의 여러 비판과 거센 도전'에 직면한 알라딘이 이 위기를 쉽게 헤쳐나가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에요. 어쩌면 알라딘에 깊은 애정을 지니신 분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서 알라딘을 감싸고 적극 옹호하는 듯한 모양새가 '위기'를 더욱 부채질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마치 자식에 대한 부모의 '과잉보호'가 가끔씩 그 의도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처럼요.)

늘 '사태'는 엉뚱한 방향으로 자꾸만 번져나가기 마련인데, 애초에 제가 '알라딘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한편으로는 '공정한 경쟁'과 '상생'을 도모할 수 있는 여러 '생산적 논의들'을 기대했던 게 오히려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은빛 2013-02-04 10:12   좋아요 0 | URL
답이 많이 늦었습니다. 오렌님.

출판계에서는 이번 사태의 최대 수혜자를 알라딘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 어느 경우보다 압도적으로 언론 노출이 많았고,
이쪽 바닥에서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출판사들의 출고 정지 소식 이후엔
알라딘 이용자들의 내부 충성도가 엄청 높아졌지요.
알라딘 서재에서도 미루고 있던 책들을
질렀다는 글을 몇 개나 볼 수 있었잖아요.

하지만 오렌님 말씀처럼 이건 단기적인 효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싶어요.
장기적으로는 어떻게 될지 예상하기가 쉽지 않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 기회에 출판 유통에 대해 좀 더 많은 이들이
자세히 알게 되고, 고민해보게 된 것은 좋은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풀어갈지가 더 중요하겠지요.

오렌님, 말씀 나누게 되어 무척 반갑습니다.

chacona 2018-05-01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그 무렵에 알라딘에 출고정지 하노라면서
출판인의 기개를 드날린 김영사가 생각나는군요,
그런데 그 김영사가 속으로 얼마나 곪아 썩었는지 뉴스에 나오는 소송거리들을 보면서 알게 됐습니다.
간혹 출판인들이 책은 상품이 아닌 문화다.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독자를 위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기면피를 하는데요.
지난 도서정가제 몇년간을 살펴보면서 한마디로 그런말 했던 출판인들 모두 사기꾼이었다는 것 밖에는 생각 못하겠습니다.
 

착각

 

 

학창시절부터 나는 공부가 싫어서 안 했기 때문에 성적이 나쁠 뿐이지, 공부를 한다면 잘 할수 있다고 생각했고, 분명히 머리는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금방 들은 숫자나 단어를 잊어버릴 정도로 머리가 나쁘다. 게다가 해가 갈수록 사람 이름과 책 이름과 어떤 특정한 단어 등을 떠올리지 못한다. 결국, 머리가 좋다는 것은 그냥 착각일 뿐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국어 선생님은 곧잘 글짓기 숙제를 내주셨는데, 되돌아온 공책에는 늘 좋은 평이 많았다. 어느 날 선생님은 내 글 중 하나를 교내 백일장에 올렸고, 비록 상을 받진 못했지만, 최종 수상작을 고르는 후보로는 올랐다고 들었다.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수없이 적어온 글들은 늘 엉망이었고, 가끔, 아주 가끔 조금 괜찮다 싶은 글을 적었을 때에도,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야 했는데, 그냥 멈춰 서버린 느낌. 게다가 요즘은 글 잘 쓰는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책하게 되는 순간들이 많다. 난 왜 이렇게 재밌는 글을 못 쓰는 걸까?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감동적인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그래, 처음부터 난 글쓰기에 재능 따위 없었던 것이다. 그건 그저 오랜 착각이었을 뿐이다.

 

 

 

나는 학창시절을 통틀어 단 한 번도 반장을 해보지 못했다. 성적이 그만큼 따라주지도 못했지만, 그때는 숫기가 별로 없었다. 처음 학년대표라는 직책으로 뽑혔을 때, 아이들이 나를 선택한 이유는 가장 술을 잘 마시고, 가장 활발하게 놀았기 때문이었다. 앞에 나서서 말을 잘했기 때문은 분명 아니었다. 그런데 자꾸 하다 보면 잘하진 못하더라도, 익숙해지기는 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학원 강사 경험을 쌓았던 것도 도움이 되어, 제법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게 되었다. 덕분에 발표 수업을 하면 늘 여자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서로 같은 조가 되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와 곤란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말을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과 특정한 주제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가 가진 생각을 잘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좀 더 쉽게 설명하고, 좀 더 자세하게 부연하고, 이런저런 예시를 들어봐도 자꾸만 같은 말이 돌아온다. 이런! 난 정말 표현력이 부족한 사람이었구나. 내가 이렇게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구나! 라고 새삼 깨닫는다. 역시 오랜 착각이었을 뿐이다.

 

 

 

남들은 숨도 안 쉬고 공부한다는 고3 때, 나는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책도 꺼내지 않고 엎드려 자곤 했다. 배고프면 도시락을 까먹고 또 잠을 잤고, 잠이 깨면 창 밖을 보면서 공상에 빠졌다. 정규 수업이 끝나면 보충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이 시작되는데, 그럼 몰래 뒷문으로 학교를 빠져나갔다. 소위 문제아라 불리는 친구들을 만나 버스종점 근처 커피숍을 향했다. 근처 여자상업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알바하던 곳이다. 커피는 써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사이다나 콜라 따위의 음료수 하나 시켜놓고 여자아이들과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떠드는 사이에 자주 담배를 피웠고, 그 아이들이 알바였기 때문에 몇 차례 음료수를 리필받았다. 서너 시간 떠들고 나면 적당히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갈 무렵이다. 슬슬 교실로 돌아가서 선생님께 눈도장 찍어주고 다시 나와서, 이번엔 알바가 끝난 그 여자아이들과 술집이나 노래방으로 향했다. 그때 같이 놀던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난 제법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비록 얼굴은 그리 잘 생기지 못했지만, 나름의 어떤 느낌과 말발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때부터 난 여성들에게 제법 인기 있는 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 호감이 천차만별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분명 첫 만남에서 대부분의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순 있지만, 그리고 어쩌다 그런 호감이 발전해서 연애감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극히 드문 일이었고, 그런 정도만으로는 인기 있다고 착각에 빠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이 모든 착각에도 불구하고 가끔 그 착각이 실제인 양 다시 착각에 빠지는 경우도 생기니, 나라는 인간은 정말 구제불능이 아닌가! 하루 또 하루 어떤 착각에 빠져서 살아가게 될까? 그 착각에서 벗어나 현실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그 비참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차라리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워도 착각에 빠져 사는 것이 조금 행복한 것은 아닐까 싶다.

 

 

 

※ 이 책을 읽고 쓴 글이 아닙니다.

다만 제목이 같아서 가져왔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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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1-11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면 착각도 한 때인가봐요, 감은빛님.
저는 (풋- 하고 한 번 웃고) 대학에만 들어가면 남자애들한테 인기 폭발일거라고 혼자 생각했거든요. 이건 착각이라기 보다는 엉뚱한 상상쪽이었죠. 여튼 그랬는데, 맙소사, 여대에 들어갔지 뭡니까. 네?! 그리고 여대를 졸업한 후에는 내가 여대를 다녀서 그렇지, 남녀공학 다녔으면 공부도 열심히 했을거라고 또 혼자 생각해요.

글쓰기도 그래요. 한 때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을 만큼, 그리고 쓸수 있다고 생각했을 만큼 제가 글을 잘 쓰는줄 알았었어요. 고등학생때까지요. 정말 딱 고등학생때까지만 그 생각을 했네요. 세상에 나와보니, 아니 알라딘을 알고 보니 여긴 제가 감히 글을 쓸만한 곳이 아니더라구요. 처음 알라딘에 들어와서 쭈볏거리며 글을 쓰지 못했던 생각이 나네요. 너무 쟁쟁한 분들이 많아서 제 글이 부끄럽더라고요. 대체 내가 그때는 왜 그런 착각에 빠졌을까, 싶어요. 앞으로 또 어떤 착각에 빠지게 될지는 모르지만, 요즘엔 그런 생각을 해요. 아, 나는 남들보다 잘하는게 아무것도 없는 그런 사람이구나, 하고요. 그렇다고 뭐 딱히 슬프거나 하진 않구요.

음, 웃기게 시작했다가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을 맺네요. 하핫.

감은빛 2013-01-11 20:11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는 지금도 늘 착각 속에 빠져서 사는 걸요.
영광이네요. 다락방님과 두 가지 측면에서 겹쳤다니.
매일 고민이 됩니다.
자신감을 갖기 위해 착각인 줄 알면서도 그냥 빠져 있어야 하나?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빠져나와야 하나?

다락방님은 소설 정말 잘 쓰실 것 같아요.
저는 요즘은 통 못 쓰지만,
언젠가 아이들을 다 키우고나면
혼자 골방에 쳐박혀 맘껏 써보고 싶어요.

맥거핀 2013-01-12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글을 읽다보니 어떤 풍경이 떠오릅니다. 마치 오래된 영화를 보듯이요. 왠지 글을 읽다보니 글을 잘 쓴다는 게 뭘까, 생각하게 됩니다.

감은빛 2013-01-23 13:17   좋아요 0 | URL
답이 한참 늦었네요.
어떤 풍경이 떠오르셨을까요?
제 이야기가 맥거핀님께 어떤 추억을 불러일으켰을지 궁금하네요.

순오기 2013-01-12 0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은 착각이다!
첵에서 봤는가 선생님한테 들었는가 가물거리지만
지금까지 살아보니까 '착각' 없이 사는 인생은 '살맛'이 안 나더라고요.^^
착각인 줄 알지만 그 착각을 즐기며 사는 게 좋아요~

감은빛 2013-01-23 13:18   좋아요 0 | URL
그렇죠?
착각인 줄 알면서도 그냥 그걸 즐기며 사는 거.
그게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저도 하고 있습니다. ^^

M의서재 2013-01-13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 글 재밌게 읽었어요. 저도 사실 인기가 많다는 착각과 글을 잘 쓴다는 착각에 빠져 살다가 비참함에 나가 떨어지는 게 한두번이 아니였거든요. 게다가 지금도 그렇다는 것.ㅠ.ㅠ 그래도 착각에 빠져사는 것이 조금은 행복하다는 것에 한 표요~^^;;

감은빛 2013-01-23 13:20   좋아요 0 | URL
역시 불량주부님께서도 저와 비슷한 착각을 하시는 군요.
글 읽으면서 왠지 저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착각에 빠져 사는 것이 그래도 행복하겠죠.
착각을 벗어나는 순간 말씀하신 것처럼 비참해지니까요.

페크pek0501 2013-01-18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태균 저, <가끔은 제정신>이란 책을 읽었는데 우리는 늘 착각 속에 산다고 해요.
가끔만 제정신이라는 거죠. 저도 착각을 하며 산다고 느끼는 게 있는데, 나중에
착각인 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착각인 줄 알면서 착각을 할 때도 있어요.
그래야 맘이 편하다는 생각으로요.
착각이 없다면 어떻게 살 수 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착각한 티만 내지 않으면 나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ㅋㅋ

감은빛 2013-01-23 13:2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늘 착각에 빠져 살다가 가끔만 제정신이군요.
그러고보니 저도 늘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네, 말씀하신 것처럼
착각한 티를 안내면서 살아야 할텐데,
그게 쉽지 않은 것 같아서 문제인 듯 합니다.

소개해주신 책은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고맙습니다! ^^
 
사람인 까닭에 - 21년차 인권활동가 12년차 식당 노동자 불혹을 넘긴 은숙씨를 선동한 그이들의 낮은 외침
류은숙 지음 / 낮은산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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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은 순간이었지만, 가끔 그럴 때가 있었다. 누군가 칭찬해주거나, 추켜세워주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거리고, 뭔가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 말이다. 수년간 이런저런 사회운동 판에서 변두리를 맴돌다 보니, 그럭저럭 이 판이 돌아가는 모양새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것을.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가끔 떠들어 대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꼭 누군가의 칭찬을 듣게 되고(그이의 칭찬이 진심이었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한 대꾸였던 상관없이), 나는 꼭 우쭐한 기분을 느끼며 더욱 말이 많아지곤 했다. 잘난 것 하나 없는 놈이 맨날 잘난 척한다는 말은 나를 보면 꼭 들어맞는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말로만 잘난 척하는 나와는 달리, 실제 현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오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간사 혹은 활동가 영어로는 Activist 라고 부르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흔히 말하듯 87년 체제 이후 형식적인 민주화를 이루어 냈다는 이유로, 많은 사회운동의 역량이 그전까지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던 부문 운동으로 흩어진 결과일까? 최근 우리 사회에는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 활동가라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반갑고 또 고마운 일이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듯, 어느 분야나 보편적으로 가진 어려움과 장벽이 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아주 어렵고 힘든 분야도 또 있게 마련이다. 운동 판에서 보자면 철거투쟁 활동가들과 장애인운동 활동가들이 가장 어렵고 힘든 분야에 있다고 아마 대부분 동의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인권운동 활동가들은 이 두 영역을 모두 포괄한 활동을 한다(물론 인권운동은 이 둘보다 훨씬 더 넓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소금꽃나무]를 읽기가 두려웠다고 한다. 그 뒤에 서술되는 구체적인 이유를 읽기 전에 나는 벌써 고개가 끄덕여졌다. 같은 이유로 나는 이 책을 읽는 것이 두려웠다(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어느 현장에서 마주쳤던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반갑게 읽고 싶기도 했다.). 비록 많이 부족했지만, 한때 활동가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던 처지라 저자의 활동 영역과 그 치열한 활동에 대해 모를 수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다른 운동영역들 중에서 인권이란 영역에 대해 가장 어렵다고 느꼈던 것은 단순히 그 운동이 물리적으로 힘이 더 들고, 경제적으로 더 어렵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크게 관심을 두지 못하고 살아왔다. 어떤 하나의 사안에 대해 접했을 때,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에 잘 감정이입하지 못하고, 그저 머리로만 판단하는 편이다. 그래서 늘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하는 인권 활동이라는 영역이 어렵게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책에서 일본 인권교육가 아와노 신조오 씨의 프로그램에 대해 읽고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종이에 ‘자기 인생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10명만 적으라.’고 했단다. 저자는 ‘열 명? 그까짓 거!’라고 생각했으나, 막상 가족들 외에는 쉽게 이름을 적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나 역시 가족들을 빼고 나면 써넣을 이름을 쉽게 떠올리기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친구들과 현재 자주 만나는 이들 몇몇을 떠올릴 수 있겠으나,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과연 이들이 다른 사람에 비해 더 소중하고 귀중한가?’ 라는 질문에 쉽게 답을 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그들에게도 내가 소중하거나 귀한 사람일 거라는 확신은 더더욱 할 수 없다.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여기서 더 충격적인 질문들이 던져지지만, 나는 도저히 거기까지 진도를 나갈 수 없는 부족한 존재이므로 소개하지는 않겠다.

 

저자 류은숙은 인권이 ‘개인의 발굴’이라고 했다. 어려운 질문에 대한 좋은 답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은 것을 계기로 삼아, 이제부터라도 나라는 개인과 내 주변의 여러 개인들을 발굴해내는 일을 해봐야겠다. 비록 모자라고 더디겠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보련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연대의 방법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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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 무대 위의 문학 1
하타사와 세이고.구도 치나쓰 지음, 추지나 옮김 / 다른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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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조용한 아이였다. 목소리도 작았고, 늘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어서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그래서였을까? 친구가 별로 없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는 혼자 책상에 앉아 학급문고를 열심히 읽었다. 당시 남자아이들은 운동장에 나가 뛰어놀지 않는 내가 참 이상하다 여겼던 듯하다. 지금도 기억나는 편지가 하나 있다. 아마 초등학교 4학년 혹은 5학년 때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반에서 가장 활달하고, 싸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아이가 보낸 편지였다. 아니 편지라기보단 쪽지에 더 가까웠다. 겨울방학에 들어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반 아이들과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내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받은 쪽지였을 것이다. 거기에는 이런 말들이 삐뚤빼뚤 적혀있었다. “너는 왜 피구를 같이 하지 않니? 너를 처음 봤을 때 피구를 잘 할 거 같았는데” 정확한 표현은 아니겠지만, 대략 저런 얘기였다.

 

암튼 나는 그닥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런 상태를 요새 말로 하면 ‘왕따’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처음 ‘왕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올린 건 어릴 때 내 모습이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맘이 별로 없었다. 그러니까 달리 말하면 친구들이 나를 ‘따’시킨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친구들 모두를 ‘따’시켰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오히려 친구들이 말을 시키거나 귀찮게 해서 책 읽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까웠다.

 

그러니까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당하는 것 자체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나이 때 나름의 괴로움과 고민이 있겠지만, 그런 과정은 그냥 성장통이라고 여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단계가 단순한 따돌림만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폭력이 동반된 괴롭힘으로 이어진다면 그건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나를 폭력의 길로 이끈 것도 그런 과정들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어려서부터 조용한 아이였지만, 누가 나를 건드리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키도 작고 덩치도 작았지만, 깡다구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편이었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주위에서 소문난 깡패학교였다. 일부 덩치 큰 아이들이 매일 키 작은 아이들에게 푼돈을 뺐거나, 도시락 반찬을 뺏어 먹거나, 학용품을 빼앗았다.

 

중학교 1학년 때 1년 동안 나는 반에서 가장 싸움을 많이 한 아이가 되어 있었는데, 도시락 반찬을 뺐거나, 누군가 툭 건드리거나, 욕하거나 놀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때그때마다 맞대응을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런 녀석들도 내 성질을 알게 되어 더는 건드리지 않았는데, 학년이 바뀌면 또 새로운 녀석들이 또 나타나서 같은 과정을 되풀이해야 했다. 그래서 중학교 3년 내내 나는 반에서 가장 싸움을 많이 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3학년 때는 싸움의 횟수가 확실히 줄긴 했는데, 1ㆍ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이 안 건드렸던 것도 있었고, 나의 일화를 소문내줬기 때문이기도 했고, 초기에 태권도부에 속한 한 놈을 박살 내버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우리 학교 태권도부는 전국대회에서 늘 상위권에 오르는 나름 실력 있는 운동부였다.) 아, 그리고 늘 작았던 키가 중2 때 확 크면서 신체적인 조건이 좋아졌던 것도 이유일 수 있겠다.

 

나는 이렇게 폭력에 맞서 폭력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학창시절은 보냈지만, 내 주위 키가 작았던 아이들 중에는 상습적으로 돈을 뺏기고, 온갖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도 분명히 있었다. 이때는 아직 왕따나 빵셔틀 따위의 말도 없었고, 그런 개념도 없었는데, 일상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은 분명히 있었다. 그 아이들은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까? 작은 놀림과 푼돈을 뺏기는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겠다 싶다가도, 나처럼 예민하지만, 나처럼 폭력으로 맞서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 시절을 버티기가 참 어려웠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 폭력 중에는 교사들이 휘두르는 폭력도 비중이 높았다. 몇몇 교사들은 깡패가 알면 친구 먹자고 할 정도로 폭력적이었다. 남자교사들뿐만 아니라 여자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여자교사는 양손으로 동시에 학생들의 뺨을 사정없이 빠르게 때리는 체벌을 매일 했는데, 그것을 아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또 나이 많은 한 여교사는 남학생의 생식기를 쥐고 손톱으로 힘껏 누르는 체벌을 주기도 했다. 남자 교사들이 각목이나 야구배트를 휘두르는 것은 거의 매일 볼 수 있는 아주 일상적인 일이었다. 학교 자체가 거의 변태와 깡패들의 소굴이었다. 그런 교사들을 견디는 것도 사실 매우 힘든 일이었다.

 

왕따와 아이들의 자살과 학교 폭력과 교실 붕괴에 대한 소식들을 들으면 양가감정이 든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교육환경과 현실을 겪게 해서 미안하고 같이 아프다가도, 내 학창시절과 비교해가면서 그 정도도 이겨내지 못하나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뭐 어쨌거나 아프다. 우리 아이들이 곧 자라서 같은 일을 겪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더욱 아프고 답답하다.

 

이 이야기는 처음에 연극대본으로 세상에 나왔다. 일본에서 문제작으로 떠올랐던 작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올 때는 먼저 낭독회를 열었다. 연극 공연으로 올린 것이 아니라 단지 낭독회를 열었을 뿐인데, 많은 관심을 모았다고 들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극본을 소설로 다시 쓰는 작업이 이어졌다. 그래서 탄생한 책이라고 한다. 일련의 과정이 흥미롭다. 그만큼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청소년들의 왕따 문제가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아주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는 제목만큼이나 충격적이다! 뒤표지에도 적혀있듯이 설마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까 싶은 의심이 들다가도, 현실은 이보다 더 충격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언론이 시끄럽게 떠들어댔던 몇몇 사례들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에 힘을 실어주었다.

 

짧은 이야기이고, 등장인물도 몇 안 되고, 장소는 단지 방 하나뿐이다. 그러나 이 작가는 과연 천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흡인력 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짧은 내용 속에서 이렇게 효과적으로 사람들의 심리를 드러낼 수 있나 싶다. 애초에 소설이 아니라 연극 대본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의 갈등구조가 더 잘 드러난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홀로 괴로워하고 있을 아이들 그리고 아이의 고통과 고민을 덜어주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부모들이 한 번쯤 읽어보고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본질적인 고민을 해보면 좋겠다 싶다. 이 책이 어떤 해결책을 내주기 때문에 권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이 문제는 딱 이거다 선언할 해결책은 없다! 정부와 교육 당국이 제시하는 해결책만 바라보기보다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좀 더 다각적인 고민이 우선 필요하고,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실제로 노력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한 것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원해서 친구를 왕따시키고,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그저 그런 현실에 내몰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실에 내몰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부모들이고, 교사들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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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12-27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네요. 이 책이 아니라 앞부분의 이야기요 ^^ 제가 소설가라면 한번쯤 주인공으로 써보고 싶은.
이 책도 재미있을까요?

감은빛 2012-12-28 11:56   좋아요 0 | URL
오! 영광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으로 찍어주셨으니, 이제 쓰시기만 하면 되겠네요! ^^
이 책은 흥미롭지만, 솔직히 재밌다고 하기는 어렵네요.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니까요.
이런 일이 절대 생기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수이 2012-12-28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이 가는데요.
분명 저도 문제가 꽤 많았던 청소년기를 보냈건만 어른이 되고보니 무심하네요;;
그때의 어른들처럼, 반성해야겠어요.

감은빛 2012-12-28 13:03   좋아요 0 | URL
정도의 차가 있겠지만,
대부분 사춘기에 조금씩 반항을 하지 않나 싶어요.
하필 그 중요한 시기에 학교에 갇혀서 압박을 받아야 하니 말예요.
이 심각한 문제를 어찌 풀어야 할지 막막하네요.

마녀고양이 2012-12-28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책 주문했는데, 그 전에 이 리뷰를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
읽고 싶네요...

감은빛님, 편안한 연말되시고 즐거운 일 듬뿍 생기는 새해 되셔요.

감은빛 2013-01-02 11:36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었네요.
어느새 새해가 되었어요.

달여우님, 올해 좋은 일이 가득가득 몰려오기를 바랍니다!

뽀로롱 2013-01-31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도 학창시절에 교우관계 때문에 많은 고민이 있었지요.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학창시절이 좋았고 돌아가고 싶다는 말들을 하지만, 아니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지금이 좋아요.
동지를 만난 기분입니다.

감은빛 2013-02-04 10:1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뽀로롱님.
동지를 만난 기분이라니, 무척 반가운 말씀이셔요! ^^
먼저 인사 남겨주셨으니, 저도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리랑 2013-03-18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뷰 잘보았습니다. 저는 학창시절 말도 없으면서 동시에 힘도 없어 일상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중 한명이었습니다.ㅠ 님의 글을 보니 학창시절의 어려웠던 기억이 좀 나네요^^ 하지만 그래도 학창시절 추억할수있는 리뷰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역시 당시 선생님의 체벌도 심했었는데 저희 학교에도 양손으로 동시에 학생들의 뺨을 사정없이 빠르게 때리는 체벌을 하면서 즐기는 여자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영어선생님이었는데 매일 스무명 이상씩은 1인당 3대 이상씩 맞았던 것 같은데 맞으면서 중간중간 눈떠보면 선생님이 환하게 웃고있어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혹시 감은빛님과 제가 같은 선생님을 만났던것은 아닐지 모르겠네요.

감은빛 2013-03-28 13:5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글 때문에 그리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 것은 아닌지,
조금은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양손으로 뺨을 사정없이 빠르게 때렸던 여 선생님이
아마 수학이거나 생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분명히 영어는 아니었어요.
같은 선생님은 아니니, 그 시절 그런 식의 체벌을 '즐겼던(!)'
여선생님이 한 명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군요.
스트레스를 아이들 뺨에다 풀었던 그 여선생님은 잘 지내시나 모르겠네요.
이젠 많이 늙었겠네요.
 
임박한 파국 - 슬라보예 지젝의 특별한 강의
이택광.홍세화.임민욱 지음 / 꾸리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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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의 책을 처음 읽었다. 그가 직접 쓴 글을 번역한 책은 아니다. 올해 6월 일주일간 한국을 다녀갔을 때 지젝의 강연과 대담 등을 엮은 책이다. 그래서일까 누군가에게 지젝에 대한 입문서로서 가장 적합하다는 추천을 받고 읽었다. 지젝의 책을 직접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왠지 그의 책은 어려울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확실히 잘 읽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주 김종철 선생의 말씀들을 떠올렸다. 지젝이 ‘자본주의의 종말’을 말하고, ‘환경의 위기’, ‘지적재산권 문제’, ‘생명공학의 문제’ 등을 여러 번 지적할 때마다 계속 김종철 선생이 생각났다. [녹색평론]을 읽으면서 접하거나, 직접 강연을 통해 들은 김종철 선생의 말씀들도 대개는 비슷한 내용이었다. 일찍부터 “난파 직전의 배에서 내리기를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을 하셨고, 그 진단에는 환경의 위기를 비롯한 자본주의의 문제가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지젝과 김종철 선생의 생각이 완벽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책을 통해 이해한 바로는 매우 비슷한 면들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지젝은 주로 일상생활이나 영화 등을 통해 이데올로기가 우리에게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강조하고 있었다. 이런 면들은 김종철 선생도 종종 지적했던 부분으로 자본주의와 국가주의 등이 우리에게 작동하는 지점들을 짚어주곤 했다. 지젝이 ‘스타벅스’를 강조했다면, 김종철 선생은 ‘학교 교육’을 강조하곤 했다.

 

지젝이 임박한 파국에 맞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용은 주로 이데올로기의 작동방식에 대한 것이다. 여러 가지를 설명했지만 그 중에서도 ‘믿지 않지만, 마치 믿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에 대한 부분이 가장 공감이 간다. 예로 든 것이 ‘건물에 13층이 없는 것’이나 ‘산타클로스’ 등이다. 우리나라에도 4층이 없거나, 13층이 없는 건물이 대부분이다. 특히 산타클로스에 대한 부분은 나도 평소에 참 우습다고 여겼던 점이라 특히 공감이 간다. 빨간 옷을 입고, 길고 흰 수염을 붙인 가짜 산타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설정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왜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산타라는 거짓 이미지를 강요할까? 동심을 지켜야한다는 말로 그런 우스운 연출을 정당화하는 현실이 한편의 거대한 코미디 같다. 어차피 아이들은 곧 산타는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다. 하지만 어른들의 우스꽝스러운 연극에 맞춰 아이도 속아주는 것처럼 연극을 계속한다. 이것이 바로 이데올로기의 작동방식이며, 바로 어제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결정적인 이유가 아닐까싶다. 이해할 수도 없고 믿는 것도 아니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따르고 또 행동하는 많은 일들이 바로 이데올로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부분은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의 말을 빌어 설명한 철학적 명제이다. 약간 표현이 다르지만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나열해보자. 하나, 우리가 (무언가를)알고 있고, 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있다. 둘, 우리가 모르지만, 그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있다. 셋, 우리가 모르고, 그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도 있다. 이 마지막이 럼즈펠드가 이라크를 침공하기 위한 변명이었다. 그리고 지젝은 여기서 럼즈펠드가 누락시킨 한 가지를 더 지적한다. 바로 네 번째 명제로 우리가 알고 있지만, 그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데올로기의 벽에 갇힌 채, 갇혔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상태가 지젝이 지적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이 책을 추천해준 이에게 감사한다. 덕분에 지젝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앞으로 지젝의 다른 책들을 통해 더 그의 세계를 탐험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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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2-22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데올로기의 벽에 갇힌 채, 갇혔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상태가 지젝이 지적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저는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을 읽고 있는데, 지젝 인터뷰를 실은 거랍니다. 쇼킹한 부분이 있어서 책을 읽는 재미가 있어요. (나중에 페이퍼로 올릴 예정이에요.)

반 정도 읽은 책이 네 권인데, 이번 해에 다 끝내고 싶었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내년으로 넘어가게 되었어요. 시간은 빠르게 달려 가는 것만 같습니다. 계획 실천의 발걸음은 느리기만 하고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감은빛 2012-12-27 16:01   좋아요 0 | URL
쇼킹한 부분이 뭔지 궁금하네요.
방금 다녀왔는데 아직은 안 올리셨네요.
어서 올려주시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