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따라잡기
요즘 운동의 재미에 한창 빠져 있었다. 일주일에 두세번, 하루에 삼사십분, 고강도로 짧게 운동하고 휴식을 많이 가지면서 하다보니 크게 몸에 무리가 가지도 않았고, 아주 피곤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운동을 하는 날엔 술 약속이 없으니 폭식과 폭음도 많이 줄었다.(물론 여전히 자주 술을 마신다.)
대개 헬쓰클럽에 가서 프리웨이트로 역기를 들었지만, 가끔은 집에서 타바타 인터벌 음악을 틀어놓고 Tabata Something else 를 했다. Push up, Sit up, Squat, Pull up 4개의 운동을 20초 동안 미친듯이 빠르게 하고, 10초간 쉬고, 다시 20초간 미친듯이 하기를 8회 반복하는 것이다. 하나의 운동에 각 4분씩 총 16분이 소요된다. 이렇게 16분 운동하고 나서 바로 쓰러지지 않으면 제대로 미친듯이 하지 않았단 뜻이다. 집에는 풀업을 할 수 있는 철봉이 없기 때문에 풀업 대신, Burpee 를 했다. 맨 처음엔 각각의 운동을 4분간 8라운드를 뛰고 1~2분 쉬다가 다음 운동을 8라운도 뛰는 방식으로 했다. 그랬더니 6라운드 이후로는 횟수가 급격히 줄어서 8라운드엔 거의 몇 개 하지도 못한 채 4분이 지나버렸다. 다음에는 4개의 운동을 차례로 한번씩 번갈아가면서 했다. 2라운드를 돌고 나니(즉 8분을 뛰고 나니) 도저히 더이상 운동을 계속 할 수 없어서 대략 2분간 물도 마시고 쉬었다가 다시 다음 라운드를 뛰었다. 즉 도중에 3회 2분씩 휴식을 해서 총 22분 동안 운동을 했다. 이번에는 운동을 번갈아가며 했더니 후반부 6, 7, 8라운드에도 어느정도 횟수를 채웠다.
이렇게 타바타 썸씽엘스를 하고 이틀 후에 또 하기를 여러차례 반복했더니 확실히 운동능력이 늘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기록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이렇게 운동을 하다보니 몸이 확실히 가볍다는 느낌이 들었다. 꽤 오랫동안 몸이 무거운 느낌으로 살았는데, 가벼운 느낌이 드니 좋았다. 몸이 가벼우니 걸음도 빨리지는 듯 하고, 뜀박질도 더 잘 되는 듯 했다.
하루는 거래처 면담을 가려고 사무실을 나서려는데, 문득 처리하지 못한 업무가 떠올라서 부랴부랴 그거만 해놓고 나가야지 했는데, 또 전화를 받고 어쩌고 하다가 시간이 확 지나가버렸다. 면담 시간에 늦었기에 급하게 나왔는데, 눈 앞에서 버스가 지나가버렸다. 저걸 놓치면 적어도 15분 이상은 기다려야 할텐데, 내 다급한 마음과는 상관없이 버스는 점점 멀어지고, 나는 신호등에 막혀 발을 동동 구를 수 밖에 없었다. 저 멀리서 버스도 신호에 걸려 멈춰섰다. 가만, 여기서 다음 정거장까지 얼마나 되려나? 한번 뛰어보자 싶었다. 신발끈을 조이고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마치 출발선에 선 단거리 선수처럼 몸을 긴장시켰다.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자마자 몸은 튀어나갔다. 점점 버스가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버스도 신호가 바뀌어 출발했다. 저 만치 다음 교차로의 보행신호가 초록불로 바뀌는 것이 보였다. 천천히 사람들이 차도로 내려서고 있었다. 마음이 급했다. 숨을 한 차례 고르고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어떻게 달렸는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두 블럭을 열심히 달렸고 다음 버스 정류장에서 출발하려는 버스를 간신히 잡아 탔다. 버스를 따라잡은 것이다. 쓰러지듯 좌석에 앉는데 온 얼굴과 목으로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옷도 마치 비를 맞은 듯 젖어 있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기분은 좋았다.
무릎 부상
그 다음날이었다.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났다. 비탈진 내리막길을 열심히 달려내려가다가 갑자기 아스팔트 균열에 발이 걸렸다.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내 몸이 중심을 잃고 얼굴부터 땅바닥을 향해 내리꽂히고 있었다. 눈 앞에 땅바닥이 확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안경이 걱정되었다. 새 안경을 맞추려면 제법 돈이 나간다! 안경만은 살려야 한다. 확 다가오는 땅바닥을 손바닥과 무릎으로 땅을 쳤다. 몸을 홱 돌리면서 어깨로 떨어지는데 성공했고 곧이어 내리막을 데굴데굴 굴렀다. 아! 안경과 얼굴은 살렸구나! 안도의 순간은 잠시였다. 아직 일어나지 못한 채 감각이 없는 손바닥과 무릎을 살폈다. 손바닥엔 땅을 치면서 시꺼먼 피가 맺힌 물집이 생겼고, 구르면서 긁힌 상처가 여러곳에 생겼다. 무릎은 일단 바지가 찢어지면서 사이로 빨간 피가 흘르고 있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저 위쪽에서 차가 내려왔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비켜줬다. 절뚝절뚝 한 걸음 걷기가 무척 힘들었다. 찢어진 바지를 갈아입고 상처를 소독하기 위해 다시 집을 향했다.
상처 부위를 씻고 나니,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돌아온 아내가 놀라며 물었다. 어찌된 일이냐고? 설명할 힘도 없어서 그냥 넘어졌다고 답했다. 아내는 구급함을 가져와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바르고 거즈를 대고 반창고를 붙였다. 생각보다 상처가 깊고 컸다. 바지를 갈아입고 다시 출근했다. 절뚝절뚝 계단을 내려가는 일부터 엄청 힘들었다. 지하철 역이 엄청 멀게 느껴졌다. 평소 뛰어다니던 시간에 비하면 서너배 가량 늦어졌다.
시간이 좀 지나면서 무릎의 상태를 살펴보니 뼈나 인대에 문제는 없어 보였다. 예전에 무릎을 다친 경험이 많아서 그런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다만 상처가 커서 아무는데 시간이 걸릴 듯 했다. 게다가 출퇴근과 거래처 방문 등의 돌아다닐 일이 많아서 회복이 더딜 것이 분명했다. 대략 2주쯤 걸리려나? 아무리 트롤의 치유력을 가졌다고 불리는 나라고 해도 2주는 족히 걸릴 것 같았다. 하루에 두세 차례 소독하고 드레싱을 갈아주는 일이 무척 고통스러웠다. 마음은 빨리 걷고 싶은데 절뚝절뚝 걸음이 무거운 것도 무척 힘들었다. 한 쪽 다리로만 걸어다니다보니 그쪽 장단지에 알이 배겼다. 다친 다리는 무릎을 굽힐 때마다 상처가 벌어져서 피가 배어나왔다. 바지 무릎이 피에 물들었다.
그렇게 1주일쯤 지나자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 상처엔 크고 두꺼운 딱지가 앉았고, 움직이다보면 딱지 사이사이가 벌어지며 피와 진물이 배어나왔다. 그래도 처음에 비해서는 많이 회복되었다. 이제 대략 1주일만 더 지나면 상처는 어느 정도 아물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뛰거나 운동을 하지는 못하겠지.
처음 무릎의 상태를 파악했을 때, 든 생각은 이제 운동을 못하겠구나 하는 안타까움이었다. 이제 막 운동에 재미가 붙기 시작했는데, 지금 몇 주간 운동을 쉬어버리면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가버릴까봐 두려웠다. 역기의 무게를 조금씩 늘려가는 재미, 새로운 자세를 익히기 위해 여러번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자세가 좋아졌다 느껴질 때의 즐거움, 운동을 한 다음 날 온 몸이 적당히 뻐근한 쾌감 등이 한 순간에 깨져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 모임에서 읽은 책들
다리가 불편하니 책이라도 좀 읽어야지 생각은 했지만, 내 몸은 그 전보다 더 바빴다. 회의와 스터디 모임과 사회를 봐야 할 행사 등이 연달아 생겼고, 동네 이웃들을 모시고 집들이도 했다. 아이들 이야기를 연재하는 동네 신문에서 만든 행사에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도 받았다. 다리가 아파 운동은 못하건만 자꾸 술자리가 생겨서 마구 먹어대고 있었다. 불행은 겹쳐서 온다는 법칙이 있었던가? 이런저런 머리 아프고 복잡한 일들이 겹쳐 찾아왔다. 일이 잘 해결이 안되니 짜증이 났고, 자연 자꾸 술이 땡겼다. 할일은 많고, 다리는 불편하고,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돈은 없다. 에이! 얼른 다리가 나아서 운동이라도 다시 시작해야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다.
요즘 공부모임에서 '교육'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첫 번째 책은 고전의 반열에 오른 [페다고지].
파울루 프레이리 선생의 실천하는 삶이 느껴지는
훌륭한 책이었다.
한창 바쁜 시기여서 내 발제부분 위주로 읽고,
나머지는 대충 훑었다.
시간 날때 꼭 다시 읽어야 겠다.
다음은 우치다 타츠루의 [하류지향]
이 분의 탁월한 분석과 시선은 분명 대단하다.
그러나 이 책의 기저에 깔린 전제들이 무척 불편했다.
'민들레'처럼 좋은 출판사에서
왜 이런 책을 냈을까 무척 궁금하다.
공교육에 복무하는 교사들에게는 좋은 책일 수도 있겠다.
요즘 [진격의 거인]의 작가가 극우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던데,
텍스트가 깔아놓은 전제를 주의해서 읽어야 함을 깨닫게 해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