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인문 엠디가 페이스북에 이 책의 표지와 함께 다음의 글을 올렸다.
#오늘의제목 <남자는 언제나 이유를 모른다>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뭐가 미안한 건데?" 어떤 면접 압박 보다도 어려운 공포의 질문들.
여기에 번역자인 친한 형이 '남자를 위한 책일까, 여자를 위한 책일까?' 라고 댓글을 달았다. 나는 표지를 보는 순간 딱! 이건 늘 궁지에 몰리는 남자들을 위한 지침서 같은 책이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아마 남자를 위한 책인 것 같다는 의견을 댓글로 남겼다. 다만 엔터를 치기 전에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남자를 이해하도록 돕는 용도의 여자를 위한 책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읽어봐야 알 수 있겠다는 도망갈 구멍을 하나 만들어 뒀다. 그러자 그 형이 '남자를 겨냥한 책이 (감히) 저런 제목을 달았다면 많이 안 팔릴 것 같은데… ^^' 라는 댓글을 다시 올렸다.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난 평소 저런 생각을 자주 해서, 딱 제목만 봐도 한번 읽어봐야겠다 싶은데. 일단은 그 형의 의견에 동의하고 넘어갔는데, 한참 후에 다시 댓글이 달렸다. 목차 등 책 정보를 살펴본 그 형이 저자도 남자이고, 남자들을 독자로 겨냥한 책이 맞는 듯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여전히 제목이 맘에 안 드는지, '남자에게 이유를 묻지 마라' 정도의 제목이 어땠을까라는 제안을 했다. 음, 난 여전히 저 제목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어서 별로 제목에 대한 의견은 없었고, 이 정도 대화를 하고 보니 책 정보라도 한번 봐야겠다 싶어서 나도 목차와 저자 정보를 읽었다. 일본인 저자는 남성인 듯하고, 번역자는 (이름만 봐서는) 여성인 듯하다. 내용은 확실히 남자들을 위한 책이다. 정말 궁지에 몰렸을 때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재미로 한 번쯤 읽어볼 만하겠다 싶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여기에 '원제=여자는 남자의 어디를 봐야 할까.'라는 댓글을 남겼고, 아마도 여성이 아닐까 생각되는 두 분이 각각 '어떤 면접압박보다 어려운 질문들....이라니ㅎㅎㅎㅎㅎ'와 '그걸 왜 모를까요... ㅎㅎㅎㅎ'라는 댓글을 남겼다.
'그걸 왜 모를까요' 라는 댓글을 남긴 여성분과 친분이 없어, 직접 말씀드리지는 못했지만, '모를 수밖에 없다.'는 답을 드리고 싶다. 저 질문은 반대로 여성들도 남성들이 '왜 모르는지'를 모른다는 뜻이다. 하긴 여성과 남성으로 단순화해서 그렇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 외의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본다.) 나는 늘 또래 친구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서울에 올라와서는 서울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연애를 할 때는 여자친구를 잘 이해하지 못했고, 결혼하고 나니 아내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아이들 입장에 쉽게 서지 못해 어려움이 많고, 직장 생활에서는 사장님과 직속상관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또 평직원의 입장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뿐인가 대학 동기들, 친한 친구들, 선후배들, 함께 활동하는 동지들 등등 누구 하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연애 시절, 갑자기 표정과 분위기가 변한 여자친구는 그야말로 악몽 그 자체였다. 이 데이트를 위해 얼마나 기다렸고, 얼마나 설렜는데, 지금 이렇게 망쳐버리다니. 아니 근데, 대체 왜 화가 난 걸까? 왜 기분이 나빠졌을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알 수 없다. 이러다 싸움으로 번지면 으레 질문을 당한다. '왜 화났는지 알아?' 알 수 없다. 알라딘 인문 엠디의 표현처럼 면접관의 질문보다 더 어렵고 긴장되는 것이 여자친구 혹은 아내의 질문(혹은 추궁)이다.
아내와 자주 다툰 덕분에 아내도 이젠 내가 모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듯하다. 내가 아내의 미묘한 감정 변화와 그 원인을 쉽게 깨닫지 못하듯, 아내 역시 내 기분 변화와 그 원인을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서로 대화를 해봐도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그게 왜 기분이 나쁜 걸까? 왜 그 말에 화를 내는 걸까? 아무리 이해하려 노력해봐도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이쯤 되면 노력하기보다는 그냥 포기하는 게 낫다. 굳이 이해하기 어려운 상대의 심정을 쫓으려 애쓰기보다는 상대의 그 감정과 원인을 그대로 인정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그리고 상대를 존중해서 되도록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더 중요할 것이다. 연애와 결혼 생활을 거쳐 여기까지는 어렵게 어렵게 왔다. 그런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문제는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거다. 그리고 지독하게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거다. 한바탕 서로의 생활 방식과 의견 충돌로 싸움이 생기고, 어렵게 화해를 하고 나면 당분간은 서로 조심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어느새 긴장이 풀리고 자신도 모르게 같은 일이 반복된다. 개인마다 경우는 다르겠지만, 분명 노력한다고 실수를 완벽하게 보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답은 아마도 서로의 실수를 감싸주는 포용력이 아닐까? 젊은 시절 한때는 '사랑'이란 단어에 대한 어떤 환상 혹은 집착이 있었던 것 같다. 사랑한다는 감정 하나면 다 해결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더는 사랑이란 말을 믿지 않는다. 다만 서로 위하는 마음, 이해하려 애쓰는 마음, 이해하지 못해도 감싸줄 수 있는 마음, 이런 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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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가 내린다. 11월 30일 밀양 탈핵버스를 탈까 말까를 놓고 며칠째 고민 중이다. 요즘 계속 바빠서 여유가 없어서 주말만이라도 좀 쉬고 싶다는 생각도 있고, 토요일에는 이미 다른 일정도 있다. 하지만 늘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도 밀양에 가보지 못한 것이 계속 맘에 걸린다. 지난 토요일 시청광장에서 열린 탈핵 집회에는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지만, 기대만큼 많은 수는 아니었다.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사태와 천주교 신부님들의 시국선언까지 그레이트 어메이징 스펙타클 판타스틱 정국에서 밀양과 강정은 점점 잊혀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공사가 재개된 후 이 추운 날씨에 날마다 경찰과 한전 직원과 중장비와 맞서고 있을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이 달려가 봐야 할 텐데. 에이 우울한 마음에 또 술 생각이 간절하다. 요즘 거의 매일 마셨건만, 술을 마실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너무 많다. 내가 나중에 일찍 죽는다면, 그건 술 때문이 아니라, 부패 정치인들, 부패 관료들, 핵마피아들, 건설마피아들, 돈에 눈 먼 기업인들, 정치 깡패들, 용역 깡패들, 권력에 눈 먼 경찰들과 검찰들과 판사들 등등 이 사회 각지에 뿌리 내리고 있는 썩은 인간들 때문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