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짓

 

생각해보면 미친 짓이었다. 운전하면서 미친 짓을 딱 두 번 했는데, 이번이 세번째 미친 짓이다. 또 이런 일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아니 살다보면 또 생기겠지. 이번에도 원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작년 연말부터 질질 끌어온 업무가 자꾸만 내 몸과 마음을 내리누르는 것 같았다. 저번 주에 기필코 끝내리라 생각했지만, 날마다 새로운 일은 자꾸 생기고, 우선 순위에서 자꾸 뒤로 밀렸다. 월요일 아침 출근 하면서 다짐했다. 오늘은 밤을 새서라도 이걸 마무리 하겠다고. 낮엔 다른 일상 업무들 하느라 제대로 열어보지도 못했고, 저녁 먹고 야근에 돌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매달렸다.

 

일하다 중간에 이번 달 취재할 분께 연락 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주에 통화할 때 이번 주 중 평일 낮에 언제든 괜찮다고 하셨으니, 수요일 오후에 방문할 예정이라고 말씀드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에 계신 분이 수요일은 안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목요일나 금요일을 여쭤봤더니 다 안된다고 하신다. 그럼 언제? 바로 내일인 화요일만 시간이 좀 난다고 하신다. 다른 방법은 없다. 취재를 하려면 그 분 일정에 맞춰야 하니, 어쩔 수 없이 화요일 오후로 약속을 잡았다. 급하게 취재 준비를 해야하게 생겼다. 사전 자료 조사를 하고, 질문지를 뽑는데 적어도 너댓시간은 걸릴 터인데, 이를 어쩌나?

 

게다가 애초에 나는 화요일 오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작년에 마치지 못한 일을 끝내리라 다짐했다. 지금 끊지 못하면 이 일을 1월 말까지 끌고 갈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자꾸 들었다. 뭐 다른 방법은 없다. 어쨌든 하려고 했던 일을 해야지. 한참을 모니터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눈이 아파서 고개를 들어보니 자정을 넘겼다. 곧 집에 가는 지하철 막차 시간이다. 지금 접고 집에 가느냐, 새벽까지 좀 더 하느냐 잠시 고민했다. 일을 끝내려면 아직 멀었다. 편의점에 가서 에너지 음료를 하나 사왔다. 다시 일을 시작했다. 중간에 눈이 아프고 집중력이 떨어져서 잠시 엎드려 있긴 했지만, 최대한 열심히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문득 정신을 차리니 5시가 넘어 있었다.

 

중간 중간에 모니터 구석의 시계를 보면서 3시 쯤엔 집에 가야지, 4시 넘으면 가야지 생각했는데, 벌써 첫차가 다닐 무렵이 되었다. 하던 일도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서두르면 한 시간 안에 끝나겠다 싶었는데, 집중력이 너무 떨어졌다. 다른 일로 뇌를 환기 시킬 겸, 잠시 취재 준비를 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좀 찾아보고, 질문할 내용들을 키워드로 툭툭 던져 보았다. 5시 즈음부터 다시 하던 일을 시작해서 6시를 살짝 넘긴 시간에 대충 일단락을 지었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았다. 한번 더 살펴보려고 그냥 넘어갔던 부분들이 중간중간에 있었다. 이걸 다시 보기에는 지금 너무 피곤했다. 일단은 집에 가서 좀 씻고, 옷도 갈아입고 다시 와서 봐야지 싶었다.

 

지하철 역에 내려서 집을 향해 걷는데, 모든 사람들이 나와 반대 방향인 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거 참 묘한 느낌이었다. 남들 출근할 때 퇴근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나도 금방 다시 출근해야 했다. 아산으로 취재를 가기 위해 차를 몰고 나와야 했고, 아직 어린이 집을 옮기지 못한 작은 아이를 예전에 살던 동네로 데려다 줘야 했다.

 

사무실을 향해 차를 몰고 가면서 든 생각은 중간에 한 시간만이라도 잠을 잘 틈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래 점심을 먹지 않고 출발해서 아산 근방 어딘가에 차를 대고 잠시 자다가 시간 맞춰 가야지 싶었다. 쉽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운전 중 나도 모르게 졸다가 사고가 나면 안되니 준비는 철저하게 해야지 싶었다.

 

사무실에서 오전에 급한 일들을 처리하고, 취재 준비를 최대한 간단하게 했다. 급하게 질문지를 작성해서 메일로 보내고, 전화로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밤새워 마친 일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싶었으나, 도저히 그럴 여유는 없었다. 아쉬웠지만 그냥 그대로 넘겼다. 나중에 미숙한 부분에 대해 한 소리를 듣더라도 어쩔수 없다. 틈이 나면 잠시 졸려고 했는데, 그럴 틈은 없었다.

 

졸음 운전을 벗어나는 방법 2

 

앞서 쓴 글에서 졸리면 오히려 속도를 높여 곡예운전을 하는 방법이 있다고 썼다. 어느 술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그 얘길 열심히 떠들었더니, 술집에서 일하시는 분이 참견을 했다. 그런 걸 바로 '칼치기'라고 부른다고, 그걸 당하면 무척 기분이 안 좋다고. 그 이야길 들어주었던 후배도 조심하라고 충고했다. 사실 나는 그 '칼치기'란 것을 자주 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졸리면 히터를 끄고, 창문을 살짝 열고, 껌을 씹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목을 살짝 돌려주는 등의 일반적으로 할 수 있는 행동들을 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대개 껌을 씹는 것만으로도 졸음은 쉽게 달아난다.

 

그러나 나는 밤을 꼴딱 샜고, 단 한 숨도 잠을 자지 못했으며, 대략 2시간 반 가량 운전을 해야 했다. 게다가 고속도로는 신호가 없고, 길이 단조롭기 때문에 쉽게 졸리다. 솔직히 겁이 났다. 졸음 운전이 가장 나쁜 건 나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아무 상관 없는 남에게도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해야 해 졸음을 막아야 했다.

 

껌 : 껌은 기본이다. 앞서도 말했듯 나는 웬만큼 졸린 상황에서도 껌 하나만 씹으면 제법 오래 졸음을 참으며 버틸 수 있다. 씹는 속도와 방식을 자주 바꿔주면 더 오래 버틴다.

 

초콜릿 : 예전에 자주 출장을 다녔던 후배가 그랬다. 야간 운전도 자주 하던 친구였는데, 졸리면 무조건 가까운 편의점에 가서 초콜릿을 왕창 산다고 했다. 초콜릿을 계속 먹으면서 운전하면 밤샘 운전도 가능하다고 했다. 난 한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워낙 경험도 많고 운전도 잘 했던 친구라 그의 말을 믿으며 출발하기 전 편의점에 들러서 초콜릿을 샀다. 판형 초콜릿은 뜯어서 먹기 불편하니 패스, 개별 포장된 작은 초콜릿도 운전 중에 포장 풀기가 불편하니 패스, 플라스틱 통에 든 카카오 함량이 높은 제품을 골랐다.

 

에너지 음료 : 출근하자마자 진하게 커피 한 잔을 마시긴 했지만, 출발 직전에 에너지 음료를 하나 마셨다. 혹시 모르니 하나 더 사서 차에 놔둘까, 엄청 졸릴 때 마실 수 있도록 하는 생각에 냉장고 앞에서 잠시 고민했으나, 내려 가는 동안엔 괜찮겠지 싶었다. 올라올 때 다시 사던가 하지 싶었다.

 

그리운 옛 동네

 

출발할 때는 아침에 생각했던 것처럼, 근처 어딘가에 차를 대고 좀 쉬려고 했다. 점심때가 다 되었지만 너무 피곤한 상태여서 그런지 입맛도 없었다. 밥 보다는 잠이 우선이었다. 예상대로 고속도로에선 계속 비슷한 속도로 달린다는 점과 도로가 단조롭다는 점 때문에 졸리기 시작했다. 창문을 열고 껌을 씹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도 따라 흥얼 거렸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네비가 평택즈음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가라고 안내했다. 안중읍 방면으로 달리다가 아산호 방조제를 건너는 길을 안내하는 듯 했다. 문득 한동안 살았던 시골 마을이 생각났다. 안중 읍내 가는 길목에 있었다. 당시 농사짓는 마을 빈집에 들어가 살았는데, 그 집이 아직 남아있는지, 지금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다. 나와 같이 살고 같은 단체에서 활동했던 선배를 찾아 놀러온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난 곳도 그 집이었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넉넉했다. 익숙한 길이라 어렵지 않게 그 마을을 찾아갔다. 마을 입구에 있는 정미소는 그대로였다. 마을로 들어가는 좁은 길이 조금 넓어졌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큰 길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그 길을 보면서 옛 추억에 잠시 잠겼다. 비록 짧은 기간을 살긴 했지만 그래도 이 길을 아침 저녁으로 오갔던 시간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예전에 살던 집 근처에 도착해보니, 차를 댈 곳도 마땅치 않았다. 게다가  앞집 개가 자꾸 짖어대서 가까이 가질 못했다. 저 안쪽이 바로 살던 집인데 차를 대고 바로 앞까지 가보고 싶은데 어쩌나 고민하고 있는데, 저 앞에서 할머니 한 분이 수상한 눈길로 나를(내 차를) 본다. 개가 자꾸 짖어서 카메라로 조금 먼 발치에서 살던 집을 찍고는 다시 차를 돌려 나왔다. 외관은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한데 빈집 느낌은 아니었다. 그 집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는 빈집이었는데, 지금은 누군가가 살고 있는 듯 했다. 뭐 집에 들어가 볼 생각도 아니었으니, 그냥 그 집이 잘 있구나 하는 걸 확인 한 것으로 만족했다. 차를 돌려 나와서 마을 입구의 정미소 앞에 차를 대고 잠시 내렸다. 논과 밭을 휘휘 둘러보며 옛 추억을 꺼내보고 사진도 몇 컷 찍었다. 이왕 온 거 여기서 좀 쉬다 갈까 싶어 의자를 제끼고 몸을 뉘었는데, 한참이 지나도 잠이 오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다가 안중읍에 가서 배를 채우고 다시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밥을 먹고 다시 아산을 향해 출발. 도중에 졸리지는 않았다. 목적지에 20분 먼저 도착해서 알람을 맞춰놓고 의자를 제꼈으나 이번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내려서 주변을 좀 둘러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고속도로 졸음운전

 

취재는 생각보다 잘 되었다. 준비가 부족해서 조금 걱정했으나, 편안한 분위기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부지런히 받아 적고,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5시를 훌쩍 넘겼다. 장소를 바꿔 한 군데를 더 돌아보고 취재를 마쳤다. 감사와 작별의 인사를 전하고 아산을 출발 한 것이 5시 반이 살짝 넘어서였다. 생각보다 조금 늦어졌다. 사실 5시 이전에 취재를 마치고 출발할 생각이었다. 서울에 도착해서 퇴근길 정체 상황을 맞고 싶지는 않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고 싶어서 커피나 에너지 음료를 살 생각도 못하고 그냥 출발했다. 사실 근처에서 마땅히 살 만한 가게도 없었다.

 

일단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우려했던 대로 졸리기 시작했다. 아까 사두었던 초콜릿이 생각나서 두어 개를 집어 먹었다. 향긋하고 달콤한 향이 입안에 퍼지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이거 생각보다 괜찮았다. 역시 그 후배의 말이 맞았어! 초콜릿만 있으면 밤샘 운전도 하겠다 싶었다. 하나씩 하나씩 초콜릿을 녹여 먹으며 운전을 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 순간부터 도로에 차가 많아졌다 싶더니 속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정체까지는 아니지만, 이 속도로 가다가 언제 도착하나 걱정이 될 만한 상황이었다. 초콜릿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허, 설마 나 초콜릿 한 통을 다 먹는 건가 싶을 때쯤 이미 통은 비어있었다. 평소 단 음식을 즐기지 않고, 초콜릿도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한 통을 다 비우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길게 늘어선 차량의 행렬, 속도가 나지 않는 지루한 고속도로, 초콜릿을 다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졸리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야 해! 자칫 잘못하면 큰일 나! 나 스스로에게 다짐했지만, 졸음을 쫓기는 쉽지 않았다. 껌을 씹었다. 처음 한 동안은 괜찮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눈이 너무 피곤했다.

 

그건 아마도 찰나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잠시 눈이 감겼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내 몸의 감각이 문득 차가 옆으로 쏠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뇌로 경고를 보낸 것 같다. 다행히 차선을 벗어나진 않았다.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구나 싶어서 뺨을 서너대 때리고 눈을 부릅 떴다. 잠시 괜찮았는데, 또 어느 순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무렵이 잠을 못 잔지 대략 30시간이 훌쩍 지났을 때였다. 차량은 느린 속도로 꾸준히 가고 있었다. 앞엔 끝없이 늘어선 차량의 행렬이었다. 어디서부터 밀려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차량 후미 등의 빨간 불빛 수 백개가 눈을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다시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거의 좀비처럼 아무 생각없이, 겨우 최소한의 의식을 유지한 채 앞 차만 따라가고 있었는데, 또 한번 저절로 눈이 감겼다. 차가 왼쪽으로 쏠렸고, 무의식적으로 핸들을 바로 잡으며 눈을 떴다. 다행히 이번에도 옆 차선으로 넘어가지는 않았다. 갑자기 엄청 부끄러웠다. 뒷차와 옆차가 얼마나 욕을 할까 싶었다. 차선을 바꿔 조금 가다보니 휴게소 안내 표지판이 나왔다. 그래, 시간은 좀 더 걸리더라도 일단 조금 쉬었다 가자. 8시에서 9시 사이에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했지만, 아무리 차가 막혀도 8시 반이면 충분히 도착하리라 생각했다.

 

휴게소에 내려 화장실을 다녀오고, 커피와 에너지 음료 사이에서 잠시 갈등하다가 즉각적인 효과가 있는 에너지 음료를 하나 사고, 초콜릿을 찾았는데, 아까 샀던 플라스틱 통에 든 카카오 함량이 높은 초콜릿이 없었다. 판형 초콜릿과 개별 포장된 초콜릿과 초코바만 있었다. 좁은 매장을 두세 바퀴를 돌며 뒤졌지만 없었다. 포기하고 그냥 차에 올랐다. 그래 오늘 하루 먹은 초콜릿이 아마 몇 달간 먹은 양보다 더 많았을거야. 그만 먹자.

 

집으로

 

잠시 쉰 덕분인지, 에너지 음료 덕분인지 몰라도 이제는 졸리지는 않았다. 다만 눈의 피로가 좀 심했고, 머리도 좀 멍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도착해서 뻗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시간 안에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데 집중해야 했다. 도로의 정체는 서울에 가까워질 수록 더 심해졌다. 지루했다.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았다. 배철수 아저씨의 선곡은 마음에 들었다.

 

내가 아는 길이 막혀서 그런지, 네비가 다른 길을 안내했다. 이 길은 한참 돌아가는 길인데, 왜 이런 길로 안내할까? 그냥 내가 아는 길로 갈까? 분명 퇴근길 정체 때문이겠지? 그렇담 얌전히 네비 말을 들어야지. 그런데 역시 익숙치 않은 길에, 상태가 좀비보다 조금 나은 상황이라 그런지 길을 잘못 들어버렸다. 좁은 길이라 차를 돌릴 수도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달려보자. 한참을 달리다보니 익숙한 길이 나왔다. 예전에 일했던 단체 근처였다. 당시 차를 갖고 출퇴근 할 때 늘 다니던 길이었다. 한참을 돌아서 엉뚱한 곳으로 와 버린 것이다. 시간은 이제 빠듯해졌다. 늘 다녔던 길이니 시간은 대략 짐작이 갔다. 그래도 8시 반 전에 도착하겠구나.

 

아이들을 만나기로 한 건물 앞에 차를 세운 건 8시 15분쯤이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긴장이 탁 풀려서 그대로 쓰러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생각해보니 미친 짓이었다. 잠을 한 숨도 안 자고 차를 몰고 출장을 가다니! 고속도로에서 졸다니!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아이들 얼굴을 보니 왠지 미안해졌다. 녀석들을 차에 태우고 집에 가면서 아이들에게 부탁했다. 아빠가 무척 피곤한 상태니, 도착하면 어서 씻고 잘 준비를 하자고. 그러나 부탁한다고 말을 잘 들어주면 아이들이 아니지. 녀석들을 씻기고 재우기까지 또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 했다.

 

막상 애들을 누이고 나니, 나는 잠이 안왔다. 피곤하지만 잠은 안오는 상태. 그래 나 저녁을 안 먹었지. 점심때도 입맛이 없어 밥을 남겼던 터다. 초콜릿만 한 통을 다 먹었을 뿐, 달리 먹은 건 없었다. 밥을 퍼려다가 입안이 까끌거려 도저히 씹지 못할 것 같았다. 집 앞 슈퍼에 뛰어가 막걸리를 한 병 사왔다. 김치 몇 조각, 깍두기 몇 개에 한 병을 비웠다. 아이들은 누워서도 뭔가 장난을 치면서 떠들고 있었다. 두 녀석의 이마에 차례로 입을 맞추고 꼬옥 껴안아 주고 나서 누웠다. 그리고 기절했다. 대략 10시 반쯤이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무척 힘들었다. 한 시간만 더 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억지로 몸을 일으키긴 했다. 결국 10분 지각했다. 지금 멍한 상태로, 퇴근도 안하고 이 글을 쓰는 건, 앞으로 되도록이면 이런 일을 만들지 말아야지 하고 나 자신에게 다짐하는 의미다. 에휴! 취재 해온 내용 정리해서 기사를 써야할텐데, 기사는 안 써지고, 이런 글을 술술 잘 써지니. 한숨이 나온다. 기사 쓸 걱정은 내일 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피로

 

이런 말을 싫어하는 편인데, 가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하는 나를 발견한다. "나도 한때는 말술이었어.", "나도 젊을 때는 체력이 엄청 좋았지.", "한때는 나도 인기 많았다구." 모두 과거 어느 시점을 지목하며 그땐 잘나갔다 뭐 이런 얘기다. 이런 꼰대같은 태도라니! 하지만 이 글의 시작도 이런 말로 해야겠다. 아무리 꼰대같아도 이건 사실이니까. 예전에는 체력이 좋은 편이었다. 이게 뭐 자랑은 아니겠지만, 3일 연속 밤새워 술을 마시면서도 꼬박꼬박 출근했고, 일에 큰 지장을 주지도 않았다. 밤을 새웠다지만 새벽엔 술을 마시다 잠시 졸기도 했고, 출퇴근길, 외근길에 졸기도 했으니 아예 잠을 안 잤던 것은 아니다. 암튼 몇 년전까지만 해도 술마시면서 하루쯤 밤새는 건 뭐 큰일도 아니었으며, 이삼일씩 연속으로 밤새 술을 퍼마시기도 했다는 얘기. 술마실 때만 체력이 좋았던 건 아니다. 밤새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몇 편 연속으로 보거나 하는 날도 자주 있었다. 물론 당시에도 피곤하긴 했다. 하지만 잠깐 졸고나면 나아지거나, 일상에 큰 영향이 없을 정도였다. 늦게까지 일을 해도 한두시간만 자고 일어나면 괜찮았다.

 

요즘 새삼 늙어간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밤새 술을 마시면 다음날 하루종일 정신을 못 차리고, 청탁 받은 글을 쓰거나, 밀린 일을 하면서 새벽까지 버텨도, 예전처럼 능률도 안 오르고, 얼마 못가서 막 졸리고, 한 두시간 자고 일어나려면 억지로 몸은 일으키는데, 도무지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이런 상황임에도 밀린 일이 엄청나서 대략 두 달 가량 일주일에 5일 이상은 새벽까지 뭔가를 해야만 했다. 입안이 헐었다가 며칠만에 낫기도 했고, 코 속에 뭐가 나서 코가 붓기도 했고, 며칠 연속 가볍게 코피가 나기도 했고 도무지 몸이 못 버틴다는 신호가 계속 왔다. 그럼에도 나는 밤에 맘 편히 쉴 수 없었다. 밀린 일의 압박이 너무 심했다. 지난 주부터는 아예 저녁 아홉시쯤 애들을 씻기고, 재우면서 나도 함께 잠들었다가, 새벽 한두시쯤 일어나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밤을 새고 바로 출근하는 날이 많았고, 정 피곤한 날엔 한 시간만 잠깐 눈을 붙이기도 했다.

 

암튼 작년 연말에 이유없이 코 안이 헐어서 아직 낫질 않고 있는데, 해를 넘겨 붙들고 있는 일을 이번주 중에 꼭 끝내고 낫도록 해야겠다.

 

졸음운전 => 곡예운전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외근은 나가야 한다. 외근 일정이 잡힌 전날엔 가급적 평소보다는 많이 자려고 애쓰지만, 늘 지켜지지는 않는다. 피곤이 덜 풀린 상태로 운전대를 잡은 날이 제법 많다. 오늘도 그랬다. 눈이 피곤해서 자꾸만 눈으로 손이 갔다. 시야가 평소보다 좁아졌고, 자주 흐려졌다. 춥다고 켜놓은 히터 때문에 더 졸음이 오는 듯했다. 올 겨울엔 정말 히터 켜놓고 달리다가 졸음 때문에 고생한 날이 제법 많다. 우리 집 차는 낡고 오래되어서 히터를 오래 켜놓아도 따뜻해지지 않기에 몰랐는데, 작년 초에 뽑은 회사 차는 히터가 굉장히 빵빵하다. 히터를 켜놓으면 졸리다는 사실을 이번 겨울에 처음 깨달았는데, 그 뒤로 여러번 같은 경험을 반복하고 있다. 그렇다고 히터를 끄면 손, 발이 시려워서 또 괴롭다. 껌이 있으면 좀 나은데, 뭔가 씹을 거리가 마땅치 않으면 슬슬 겁이 나기도 한다. 이러다 사고 나는거 아닌가 싶다. 빠른 음악을 크게 켜놓아도 별 소용이 없다.

 

이럴때 최후의 수단은 차라리 속도를 높이고 차들 사이로 곡예 운전을 하는거다. 속도를 높이면 나도 모르게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인지, 심장 박동도 빨라지고, 자꾸만 감기고 흐려지던 눈도 번쩍 뜨인다. 눈을 부릅뜨고 차들 사이의 간격을 잘 살피고, 머리로는 끝없이 내 차의 속도와 앞, 뒤, 옆 차들의 속도를 계산하면서 차들을 제치고 나갈 길을 계산한다. 저절로 허리가 반듯하게 펴지고, 핸들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엑셀을 밟은 발에도 힘이 들어간다.

 

이 속도로 달리면서 자칫 실수하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즉,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긴장감에 절로 잠이 깬다. 이 방법의 최대 단점은 정체 지역과 구간속도단속 지역에서는 쓸 수가 없다는 점이고, 우리 집 차처럼 낡고 오래되어서 차의 성능이 따라주지 않으면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점이다. 회사 차처럼 성능이 좋은 차로 그닥 막힐 일이 없는 도로를 달리면 졸음 따위 금방 쫓아버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간이 커야한다. 아니 배짱이 좋아야 한다고 표현해야하나?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속도를 팍 줄이거나, 각도를 틀어 스치듯 피해갈 수 있을 정도로 반사신경이 좋고, 운전 실력도 좋아야 한다. 오늘도 이렇게 졸음을 쫓았고, 덕분에 거래처와의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관심 신간

 

요새는 통 책을 읽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간을 보면 자꾸 책 욕심이 든다.

음, 한동안 책을 안사다가 오랜만에 나한테 주는 선물처럼 좀 비싼 책을 사면 안될까?

암튼 일단 관심이 가는 책들을 기록해두어야 겠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데려와야지!

 

 

 

 

 

 

 

 

 

 

 

 

 

 

이 글을 써놓고, 책 표지를 집어넣고 보니, 피터 싱어의 책 제목이 나에게 묻는 질문처럼 느껴진다. 나,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14-01-07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졸음운전에는 휴식밖에 없어요.암만 회사일이 중해도 건강이 최고지요.
그나저나 늦었지만 감은빛님 서재의 달인 등극 축하드리면 새해 복많이 받으셔용^O^

감은빛 2014-01-08 12:43   좋아요 0 | URL
네, 옳은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운전중에는 엄청 졸리다가도
막상 쉬려고 휴게소에 들어가면 또 잠이 안오는 경우도 많아요.
제 경우는 거의 시간에 쫓겨 다니느라 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지만요.

축하 고맙습니다!
카스피님도 축하드립니다!

2014-01-08 0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8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슈타이너 학교의 참교육 이야기
고야스 미치코 지음, 임영희.이연현 옮김 / 밝은누리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예전에 아이들과 함께 자주 듣던 노래 중에 <문제아>라는 동요가 있다. 부산 감전초등학교 김형창 어린이가 쓴 시에 백창우 씨가 곡을 붙였다. ‘문제아가 되는 건 쉽지만~♪ 보통 아이가 되는 건 어려워♫’ 라는 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다. 이렇게 쉽고 간단하게 교육 문제의 핵심을 짚을 수 있다니!

 

박기범 작가의 『문제아』라는 동화책도 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이오덕 선생이 『어린이 책 이야기』에서 높게 평가한 글을 읽고 찾아본 책이었다. 여기 실린 10개의 글이 대체로 다 좋은데, 우리 사회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특징이 마음에 들었다. 이를테면 어린이들에게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은 다양한 사회문제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잘 다루고 있다.

 

노래와 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학교는 남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권위에 복종하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쉽게 문제아로 낙인을 찍고, 온갖 차별과 괴롭힘을 당하기 마련이다.

 

최근 읽은 책에서 아주 특이한 문제아를 발견했다. 1970년대에 고야스 후미라는 아이가 독일 뮌헨에 있는 루돌프 슈타이너 학교를 다닌 이야기를 소개한 책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발도르프 교육이라는 것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해서 읽었다. 후미와 같은 반 친구인 파우스트는 2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다. 부모님과 선생님을 포함해 주위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머리가 좋은 아이다. 그런데 파우스트는 이 학교에서 문제아다. 선생님이 학부모 회의에서 이름을 언급해 지적할 정도이고, 부모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받아들이고 있으며, 다른 학부모들은 너무 머리가 좋은 아들을 둔 그 부모를 오히려 위로한다. 머리가 좋다는 말이 칭찬이 아니라 위로를 받을 만큼 나쁜 뜻이 되기도 하는구나.

 

파우스트는 일반적인 교육환경에서라면(독일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대단한 우등생으로 떠받들어질 만한 학생이다. 파우스트의 담임인 불프 선생님은 “일반 학교를 다녔다면 두세 번은 ‘월반’할 아이입니다. 그리고 열다섯에 대학에 들어가는 거죠.”라고 말했다. 또 그의 엄마는 “파우스트같이 머리가 너무 좋은 아이, 이건 정말 문제예요.”라고 말을 시작해서 “이런 아이는 계속해서 영재 교육을 받게 되죠. 어른이 되면 어떨까요? ‘문제 어른’이 되지 않겠어요?”라고 설명한다. 파우스트가 왜 문제아인지 짐작이 간다. 앞에서 언급한 <문제아>란 동요에 가사로 넣는다면 ‘공부를 잘해도~♪ 문제아♫’라고 불러볼 수 있겠다.

 

고등학교 때 우리 반에도 천재가 한 명 있었다. 전교 1등이었고, 전국 모의고사를 보면 가끔 전국 1등도 하는 친구. 중학교 때 이미 고등학교 과정을 다 배우고 들어와서 수업시간에는 별로 집중해서 듣지도 않았다. 가끔 수학 선생님의 실수를 지적하거나, 선생님도 못 푸는 어려운 문제를 척척 풀어내, 선생님을 긴장하게 하는 친구였다. 그 친구는 당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특별한 존재였다. 나머지 50여 명의 학생들은 마치 그를 위한 들러리 같았다. 그 친구는 당연하다는 듯 서울대를 들어갔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파우스트 엄마의 말처럼 문제 어른이 되었을지 어떨지 궁금하긴 하다.

 

우리 교육은 문제 어른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가와 자본이 원하는 대로 남들과 똑같이 노동하고, 권위에 복종하는 어른. 획일적이고 편향적이며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어른.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교과서가 없고 시험이 없는 학교에서 삶에 대해 배우고 성찰하면서 자란 아이들이 많아진다면 이 나라의 교육 문제가 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1977년 고야스 후미가 뮌헨 루돌프 슈타이너 학교에 돌아온 시점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전에 후미가 슈타이너 학교를 다녔던 내용은 『독일의 자존심 발도르프 학교』라는 책에 나와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과연 고야스 후미는 어떤 어른으로 자랐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77년에 13 혹은 14살이었으니 지금은 50쯤 되었을텐데. 여러 방면으로 검색을 해봐도 이 책의 저자이자 후미의 어머니인 고야스 미치코가 쓴 책들만 나올 뿐 그외의 정보는 전혀 찾아보기 어렵다.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더 궁금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01-04 0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6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퍼남매맘 2014-01-06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책이네요.
천재가 오히려 문제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이 보통의 시각과는 많이 다르네요.
우리나라에서는 인성은 좀 안 되더라도 공부만 잘하고, 천재의 아이큐를 가지고 있으면 성공하리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잖아요.
머리만 비대해지고, 감수성은 작아지게 만드는 교육은 이제 그만 했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감은빛 2014-01-07 18:07   좋아요 0 | URL
재밌죠?
저는 파우스트의 담임인 불프 선생님이 문제아로 지목한 것도 신기했지만,
파우스트의 부모나 주위 학부모들의 반응이 더 황당했어요.
아이가 2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한 천재라서 위로 받는 부모라니!
우리나라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죠.

한번 읽어보세요.
70년대에 쓰인 책인데,
그로부터 4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우린 여전히 후진 교육을 받고 있어요.
아니 요즘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빠진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해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자꾸만 생기는 오해 때문에 아예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래도 또 오해는 생기겠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입을 닫고 있는 나를 보는 이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으로 나의 생각을 읽어내려 할 테니까. 하긴 내 생각이라는 것에 대해 가끔은 나 조차도 헷갈릴 때가 있는데, 남이 어떻게 내 생각을 알 수 있겠어? 삶에서 오해란 일상적으로 늘 발생하는 것. 필수적인 것이겠지.


상처


그래. 좋아! 오해는 생길 수 밖에 없어. 그런데 그 오해로 인해 입은 상처는 또 어떻게 해야하지? 오해가 반드시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면 뒤따라오는 상처도 역시 삶에서 필수적인 것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어느 유명인이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했다던데, 청춘을 한참 지난 나는 왜 늘 아픈 걸까? 아직도 청춘이라 여기라는 건가? 아니면 청춘이 아니라도, 누구라도 늘 아픈 걸까?

아니. 그래. 다 좋아! 아플 수도 있지. 아프기도 하고 또 낫기도 하는 것이 인생일테니. 그런데 이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패턴이 지겨워 질때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잠시 아픈 건 참을 수 있어. 하지만 아픈 상처가 채 낫기도 전에 또 상처입고 또 상처입게 될 거라는 게 뻔히 눈에 보일 때는 어떻게 해야하지?


연말 풍경


연말은 늘 똑같아. 지겹도록 술을 마시고 또 다음날이면 술을 마셔야 하고 또 그 다음날에도 술을 마셔야 하고. 술자리 얘기도 대개 비슷해. 지난 1년간 수고 많았고, 또 다음 1년간 수고해라! 뭐 이런거지. 이 역시 완전 똑같은 패턴. 물론 디테일은 조금씩 다르기는 해. 하지만 내 머리는 그리 좋지 않아. 디테일은 늘 쉽게 잊어.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 떠들고 마셨던 그 날의 기억이 작년 것인지, 재작년 것인지, 아니면 삼사년 전의 것인지도 가물가물해. 올해는 철도 민영화, 안녕들, 밀양 송전탑, 의료 민영화 등이 술자리에서 거론되었지만, 어느 해라고 안그랬나? 김대중 시절에도, 노무현 시절에도, 이명박 시절에도 늘 정부는 서민들의 목을 졸라댔고, 우리는 그런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뭐 하나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늘 술을 마셨지.


나랑 상관없는 어느 서양인의 생일


내일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어느 서양인의 생일이라는데, 아니 그 동네가 서양이었던가, 동양이었던가, 모르겠다. 암튼 십자가에 매달린 그 모습은 서양사람 느낌이니 그냥 서양인이라고 하자. 아주 옛날에 살았던 분이라는데, 심지어 그 생일도 실제로 그 분의 생일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데, 왜 우리는 그런 사람의 생일을 기념해야 하는 거야? 아, 물론 이렇게 말하면 역시 나와 전혀 상관없는 어느 인도인의 생일을 기리는 날을 들먹일거야. 그래. 나는 그것도 이상하다 생각해. 그치만 인도인의 생일을 기리는 분위기와 서양인의 생일을 기리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 쯤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을거야.

거리에 흘러넘치는 해마다 똑같은 음악들은 지겨워! 나무들에게 뜨거운 전구를 잔뜩 달아서 눈을 어지럽히는 짓거리도 꼴보기 싫어. 아름답다고? 예쁘다고? 누군가 너에게 뜨거운 전구를 잔뜩 매달고 아름답다고 감탄하면 네 기분은 어떨까? 넌 전구가 무겁고, 칭칭 감겨있는 전선이 갑갑하고 답답하고, 열을 내는 전구들이 뜨거워 괴롭기만 한데 말야.

흰 수염에 배 나온 할아버지가 선물을 나눠준다는 괴상한 얘긴 정말 듣고 있기 힘들어. 썰매를 타고 날아다닌다고? 그 배 나온 할아버지가 굴뚝을 통과해서 다닌다고? 굴뚝이 없는 집은 어떻게 할거야? 게다가 이거 불법주거침입이잖아. 선물이란 것도 그래. 사람마다 갖고 싶은 게 다 다를테고, 물질적인 것 만이 아닌 다른 특별한 것들도 많을거야. 그 할아버지가 대체 어떻게 모든 이들에게 다 선물을 줄 수 있다는 거니?


오늘 밤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마. 오늘은 그냥 12월 24일이란 숫자가 매겨진 하루일 뿐이야. 그저 어제와 똑같고, 내일과도 똑같을 하루. 괜한 의미를 부여했다가 나중에 더 실망하지 말고 그냥 평소처럼 지내. 그래 그게 제일 좋을거야. 너에게도 또 나에게도.


어느 추운 겨울 날 내가 나에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립간 2013-12-24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 동양인인지 서양인인지 모르는 그 분의 생일에 관해;

우리나라의 소비적이고, 향락적인 문화는 외래 문화의 창조적 수용이라고 밖에 해석이 안 되지만, 아니면 서양이라고 해서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날이 감사하기 좋은 날로 생각합니다. 실제 그 분은 언제 태어났는지조차 모르고, 내일 그분의 생일은 동지에 맞춰진 기념일입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정리하고 반성하고 새해를 계획하기 좋은 ... 저의 제안입니다.

감은빛 2013-12-26 11:35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 안녕하세요.

어제였죠.
그날은 감사하는 날이라기보다는 먹고 마시고 노는 날인 듯해요.

마립간님의 말씀과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제가 믿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생일에
한 해를 정리하고, 반성하고, 새해를 계획하고, 누군가에게 감사하고 싶진 않습니다.
우리는 옛부터 설날(구정)에 그런 일들을 해왔죠.
요새는 양력 1월 1일(흔히 신정이라 부르는)에 그런 일을 하기도 하구요.

2013-12-24 1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26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3-12-25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하이....
추운날 술 많이 드시면, 더 추워요. 적당하게 드세요. ^^

그러게요...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대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존재인지라
오해를 하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그러네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말하지 않으면 몰라, 말해도 다 모르는걸... 이라고 항상 제 스승님이 말씀하세요.
그게 슬프기도 하지만, 그냥 한계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중이예요.
저는 40대 중반인데도, 상처 잘 받는걸요, 평생 이럴거 같아요.
그래도... 감은빛님을 만난 날, 즐거웠어요. 시간을 통 내지 못 하고 다시 못 만나고 있지만요.

감은빛 2013-12-26 11:4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마녀고양이님.

술 자리가 많네요.
술을 조금만 먹어야지 생각해도,
늘 시국 얘기하다보면 자꾸 들어가고,
술이 취하니 더 술을 들이키게 되네요.
술을 좀 줄여보려고 저도 나름 애쓰고 있습니다.

그렇죠. 늘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존재이죠.
바보처럼 그렇지 않다고, 않을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진심은 통한다! 뭐 이런 말을 계속 믿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믿지 않을래요.

저도 그날 생각이 종종 나네요.
지금보다 조금 이른 시기였죠.
연말 분위기가 나는 추운 겨울날.
또 기회가 되면 즐겁게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을게요. ^^
 

음식솜씨

 

음식을 잘 만드는 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딱히 요리라고 부를만한 대단한 음식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음식을 만드는 데 나름 재주가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전형적인 경상도 집안에서 나고 자라 부엌일을 해볼 경험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몸이 약한 어머니께서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가끔 공장에 일을 나가셨는데, 그때 동생 밥을 챙겨주느라 계란을 굽고, 라면을 끓이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어린 내가 할줄 아는 건 뻔했다. 맨날 라면과 김치와 계란만 먹는 것이 지겨워서 라면을 끓일때마다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대부분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혼자 생각하고 해봤는데, 의외로 맛은 괜찮았다(고 기억한다.).

 

본격적으로 내가 음식을 좀 하는데 라는 잘난척이 시작된 건 자취생활을 하던 때였다. 앞서 말했듯, 딱히 잘하는 음식을 꼽기는 뭐하지만 대부분 내가 만든 음식은 괜찮았다. 대학 시절 어느 날 어머니가 안 계실 때, 냉장고에 콩나물이 있길래, 아버지께 콩나물 국을 끓여드렸는데, 드시기 전에는 미심쩍어 하시더니, 드신 후에는 '니가 너거 엄마보다 낫다.'고 말했다. 그날 난 콩나물 국을 처음 끓여본 거였다.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고 그냥 혼자 생각한 대로 끓인 거다. 알고 있던 사실은 딱 하나였다. 콩나물이 다 익기 전에 뚜껑을 열면 콩나물 비린내가 나니까 조심해야 한다는 거였다. 물론 아버지가 그냥 아들 듣기 좋으라고 하신 말씀일 수 있다. 평생 내공을 쌓아온 어머니께 내가 비교나 되겠는가! 그저 비기너스 럭(초심자의 운)일 수도 있다. 어쩌다 소 발에 쥐 잡은 격으로 말이다.

 

한때 농사짓는 마을에 살 때는 옆집 형님이 놀러왔길래 김치찌개를 대접했다. 그 형님은 고향인 평택을 떠나 이곳저곳 떠돌며 여러 사업을 전전했고, 그 중엔 식당 운영도 있었다고 했다. 형님은 아무래도 못미더운 표정으로 내가 부엌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찌개를 먹기 직전까지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거 내가 못먹을 음식에 손을 대는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곧 그 형님도 내 솜씨를 인정. 사실 다른 재료가 없어 멸치 다시 국물에 김치만 넣고 끓인 거였다. 냉장고에 남아 있는 각종 쌈채소를 잘게 썰어 넣은 게 나름 독특한 승부수였다. 형님은 아주 만족해하며 내 음식 솜씨를 인정했다.

 

이번에 세 차례의 집들이를 하면서 어떤 음식을 대접해야 하나 잠시 고민한 적이 있었다. 몇 가지 음식을 떠올리긴 했지만, 막상 집들이 때는 재료를 준비하지 못했다. 두번째 집들이 때, 아내가 김치전 재료를 준비해뒀는데 그게 내 실력을 발휘할 유일한 기회였다. 전부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는 얘길 여러 차례 들었다. 내공이 뛰어난 주부들에게 들은 칭찬이라 조금 우쭐했다. 요즘은 예전만큼 자주 음식을 만들지 않아서 솜씨가 많이 녹슬었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기본은 하는 구나 싶었다.

 

한밤의 김장

 

한때 내가 자신있었던 메뉴 중 하나는 부추 무침, 부추 오이 무침이었다. 고춧가루와 소금으로 간을 보고 마늘과 각종 양념들로 맛을 내는 무침 류의 음식에 자신있었다. 김장을 직접 해보기 전에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결혼 후 해마다 가까이 계시는 장모님의 지도로 김치를 담가보니, 내가 자신있었던 그런 류의 음식이었다. 김장을 한번 해보니 다음에는 혼자 소량의 배추로 겉절이 김치를 뚝딱 만들수도 있었다.

 

우리 집은 아내가 채식을 하기에 젓갈류가 안들어간, 남들과는 다른 김치를 담근다. 작년까지는 년중 행사이니만큼 장모님과 아내가 일정을 조절해서 주말 하루 날을 잡아 김장을 했는데, 올해는 아내와 장모님 모두 바빠서 그랬는지, 계속 날짜를 잡지 못하고 있는 눈치였다. 결국 주문해놓은 절임배추가 평일인 어제 도착했고, 아내는 저녁에 퇴근 후 둘이서 김장을 하자고 했다.

 

밤 10시 반이 넘어, 아이들을 재워놓고(사실은 방에 불끄고 문 닫아두고, 떠들지 말고 자라고 윽박질러놓고) 준비를 시작했다. 준비를 할 때는 너무 늦은 시간이고, 둘 다 피곤해서 그냥 오늘은 준비만 해놓고 잘 생각이었다. 아내는 꼼꼼하게 재료들을 구해놓았는데, 그것들을 다듬고, 씻고, 물을 빼기 위해 채반에 받쳐두는 것까지만 해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무를 채칼로 가는 일은 약간의 기술과 힘을 필요로 한다. 김장때 늘 내가 하던 일이다. 난 쪽파를 다 다듬고 씻은 후에 무를 채칼로 갈기 시작했다. 무채가 수북이 쌓여 있는 걸 보더니, 아내가 한 마디 한다. '무채를 미리 만들어놓으면 맛이 없다는데, 그냥 지금 양념을 만들어 둘까요?' 난 그러자고 했고 우린 또 바삐 움직였다. 채칼로 배를 갈고, 갓과 쪽파를 썰고, 찹쌀을 쑤는 등 바빴다. 이때까지만해도 양념만 만들어 놓고 김장은 내일 할 생각이었다. 시간은 12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그때 다시 아내가 아예 그냥 지금 김장을 해버리자고 제안했다. 조금 피곤했지만 이왕 손을 댄거 그냥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뒤늦게 절인 배추의 소금물을 빼기 위해 넓은 채반에 받쳐두고 다른 재료들을 장만했다. 아내가 30분만 물을 빼도 된다고 들었다 했는데, 거의 한 시간이 지나도 물이 덜 빠졌길래, 내가 손으로 하나씩 짰다. 배추에 속을 넣는 일은 내가 했다. 여러 해 반복해서 하다보니 동작이 손에 익었다. 장모님도 늘 손이 빠르고 잘 한다고 칭찬해주셨다. 어제는 워낙 피곤해서 손이 더 빨라졌다. 배추도 양이 적었기 때문에 오래 걸릴 일도 아니었다. 잽싸게 김장을 끝내고 한 포기는 겉절이를 만들고, 남은 갓과 쪽파를 함께 버무려서 또 한 종류의 김치를 만들었다. 여기까지 하고나니 시간은 새벽 3시가 조금 넘었다.

 

정말이지 쓰러져 자고 싶었지만, 어지럽게 널려 있는 도구들과 재료들을 모두 치워야 했다. 크기가 제각각인 큰 다라이와 채반들을 깨끗하게 씻어서 포개놓고, 각종 그릇과 통들을 씻고, 바닥을 닦고 어쩌고 하다보니 시간은 4시를 넘었다. 이제부터 잠을 자도 얼마 못자고 출근 준비를 해야하는 구나. 김장을 하느라 아픈 허리와 무릎을 두드리고 주무르며 다시는 한밤에 이러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그냥 밤에 잠을 못자는 것만으로도 피곤하거늘, 고된 육체노동까지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으랴. 나는 너무 피곤하면 오히려 잠을 잘 못자는 편인데, 딱 그 순간이 그랬다. 아내는 씻고 곧 뻗었으나, 난 씻고 나오니 다시 정신이 말똥해졌다. 이럴때 방법은 하나다. 술을 한 잔 하고 눕는 거다. 술을 꺼내 안주도 없이 세 잔을 거푸 마시고 누워도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한참을 뒤척였는데 어떻게 잠들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아마 기절하듯 순간적으로 잠이 들지 않았을까?

 

겨울에는 추위 때문에 이불 밖으로 나오기가 참 싫다! 따뜻한 이불 아래서 딱 한 숨만 더 자면 안될까? 오늘 아침엔 추위와 피로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미친 짓 같았지만 그래도 어제 김장을 끝내둬서 다행이다. 오늘 퇴근해서 김장을 해야 한다 생각하면 더 힘들 것 같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양철나무꾼 2013-11-28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남편은 음식은 아니고 청소 전문이라는, ㅋ~.
난 나 앉을 곳만 깨끗하면 된다는 주의여서,
이리저리 밀춰놓고 앉는데...
울남편은 창문 틈의 먼지를 손가락으로 쓸어가며 검사를 한답니다.
덕분에 이젠, 각자의 몫이 완전히 정해져서...
우리집은 음식은 내가, 청소는 남편이 하는 완전 분업화된 가족입니다여, ㅋ~.

날도 추운데 고생하셨네요.
어제라서 다행이예요, 오늘은 더 추워요~^^

감은빛 2013-11-28 15:49   좋아요 0 | URL
분업이 잘 되어있군요! ^^
저희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제가 요즘은 집에서 음식을 거의 안 하거든요.
재료와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건지,
귀찮아서 안 하는 건지는 모르겠네요.
음식을 안 하니, 설겆이나 청소라도 열심히 해야죠. 뭐.

라주미힌 2013-11-28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장 배우고 싶네요 ... ㅎ

감은빛 2013-12-02 12:43   좋아요 0 | URL
전 사실 배우고 싶어 배운 건 아닙니다.
어머니와 장모님 두 분께 번갈아 배우셔요!

단발머리 2013-11-29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완전 멋지세요.
일단 올해 자체판단 대김장기여도 7.8에 성공한 저의 객관적인 판정에 의하면,
감은빛님은 대김장 기여도 8에 육박하시네요.
아, 아내분은요.
아내분은, 대김장 기여도 9.2세요.
이건 전체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점수 받는 거거든요.

수고하셨어요~~.
다음에 부추 무침, 부추 오이 무침 레시피 좀 올려주실 수 있어요?
저, 주부인데, 여기서 레시피 물어봐도 되나요? @@

감은빛 2013-12-02 12:46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저의 기여도를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근데 저보다는 단발머리님께서 더 고생하신 듯한데,
제가 좀 더 낮게 나와야하지 않을까요?

레시피는 따로 없어요.
글에도 적어놓았는데, 저는 따로 공식처럼 음식을 만들지 않아서요.
그냥 그때 그때 기분내키는대로,
즉, 손이 가는대로 만든답니다.

게다가 제가 아무리 잘 만들어봐야
단발머리님보다는 못 할 것 같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