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다락방님 글에 댓글로 남긴 적이 있는데, 내 알라딘 블로그 주소는 팝 가수 핑크에게 보내는 사랑고백이다. 이 블로그를 만들었던 2004년의 나는 그만큼 핑크에게 빠져있었던 것이다. 2004년을 떠올리면, 참 철없던 시절이었다는 생각부터 먼저 든다. 폭력 사건으로 인해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는 걸로 한 해를 시작했다. 낯선 서울 땅에서 혼자 좁은 고시원에 처박혀 시간을 보내기만 했다. 패배감, 상실감, 좌절감, 자기 혐오로 미칠 것 같은 시간들이었다. 하루종일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은 날도 여러날이었다. 다시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찾아보기까지 얼마나 오래 그런 시간을 보냈을까?


단언컨데 우울증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건 분명 이유가 있는 침몰이자, 침잠이었다. 나 자신에게로 깊이, 더 깊이 빠져들었던 날들. 당시에 좁은 고시원 침대에서 나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만화책을 보고, 옆방 여학생이 남자친구를 데려와 내지르는 교성에 짜증을 내다가 게임방에 가서 밤새 게임을 하곤 했다. 당시 나는 부산 깡통시장에서 산 일제 씨디 플레이어가 하나 있었다. 책을 제외하고는 내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소중한 물건이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딱 씨디 크기만한 플레이어로 핑크, 알라니스 모리셋, 크랜베리스, 나탈리 임부를리아, 로렌 크리스티, 데비 깁슨, 셰릴 크로우, 코어스, 셀린 디온, 머라이어 캐리, 샤니아 트웨인, 시네이드 오코너, 사라 맥라클란, 비요크, 사라 브라이트만, 포 넌 블론즈, 에이스 오브 베이스, 야끼다, 조안 오스번,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브리트니 스피어스, 티엘씨, 브랜디, 모니카, 데스티니스 차일드, 알리야, 바넷사 칼튼, 미쉘 브랜치, 켈리 클락슨, 에이브릴 라빈, 에반에센스 등을 들었다.


이 시절 특히 즐겨 들었던 노래는 핑크의 <Don't let me get me> 였다. 노랫말을 정확하게 해석하지는 못했지만 한구절 한구절이 모두 내 이야기인 듯 느껴졌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건 언제였을까? 아마 아직 학교를 졸업하기 전의 어느 시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 날이 아마 핑크에게 푹 빠진 첫 날이었을 것이다. 누워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 순간, 주변 풍경이 좁고 지저분한 자취방이 아니었던 걸 보면, 아마 부모님 집에 잠시 다녀가는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는 날 중 하나였을 것이다. 마구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핑크의 라이브 영상을 보게 되었다. 핑크는 반주가 시작되자 갑자기 무대 바닥에 드러누웠고, 그 상태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노래 가사가 I'm lyin' here on the floor 로 시작한다.) 잠시 그렇게 누워서 노래를 부르다가, 서서히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문득 일어난 후에는, 무대 위를 방방 뛰어다니며 노래를 불렀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환상적인 무대 매너에 완전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누워서 노래를 시작했다는 점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 들었던 노래가 바로 <just like a pill> 였고, 뒤이어 부른 노래가 <Don't let me get me> 였다. 두 곡 모두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핑크를 검색하면서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알아냈다. 한때 정말 자주 들었던 노래, <what's up>을 부른 포 넌 블론즈의 린다 페이와 핑크의 일화는 제법 재미있었다.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가수를 찾기 위해 전화번호부를 찾아보고, 매일 전화하고, 심지어 찾아가기도 하면서 설득해 같이 음반 작업을 했고, 그 2집 앨범이 어마어마한 히트를 쳤다는 이야기. (내가 처음 듣고 바로 반해버렸던 두 곡 모두 그 앨범에 들어있는 곡) 핑크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알게 되고, 린다 페리와 핑크가 얼마나 친해졌는지를 읽으며 한때 좋아했던 가수와 최근 좋아하는 가수가 서로 이렇게 깊은 인연이었다는 이야기가 또 신기했다.(나중에 알게된 핑크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불화에도 린다 페리가 관련되어 있었다.)












당시 저 두 곡 외에도 <Family Portrait>와 <Get the Party Started> 등의 2집 수록곡들을 다 좋아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좋아했던 건, 내 처지를 노래하는 듯한 <Don't let me get me> 였다. 난 하나에 빠지면 정말 미친듯이 빠지는데, 노래 한 곡을 수없이 반복해서 듣기도 했다.


점점 시간이 흘러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 노래를 들을 여유가 없어지고, 그렇게 좋아했던 핑크의 노래를 찾아 들을 여유조차 없는 삶을 살아가다가 문득 핑크의 노래를 듣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모르는 노래라도 그 특유의 목소리를 못 알아볼 수는 없다. 


미국 드라마 글리에 등장해서 더 반가웠던 <Raise Your Glass>와 저번에 다락방님의 글에서 만난 <Just Give Me a Reason>는 최근 자주 듣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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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30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4-11-08 23:31   좋아요 0 | URL
가끔 들르긴했는데, 다른 사람 글을 읽을 여유도, 뭔가 끄적거릴 여유도 없었어요.
한동안 책도 거의 안 읽고 살았던 터라, 책 얘기도 할 게 없었구요.
날이 추워지니 따뜻한 방에서 이불 덮어쓰고 책 좀 읽었으면 좋겠네요.
 

녹색당의 마지막 연습

 

문득 날짜를 보니 벌써 8월 말이다. 바람이 부는 걸 보니 이제 곧 가을이 오겠구나 싶다. 곧 추석이 다가오고,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리라. 가을이라고 생각하니 문득 3년 전 녹색당 창당을 위해 한창 바쁘게 뛰어다니던 기억이 난다. 그땐 아직 녹색당 창당이 정말 성공하리란 기대조차 없었다. 과거에도 몇 차례 창당을 시도했다가 불발로 그친 적이 있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 정당법이 아무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도록, 아주 견고한 장벽을 쌓아놓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녹색'이 들어간 이름의 "가짜" 녹색당은 있었다. 녹색 가치와는 전혀 관계 없는 그런 정당. 이번 지방선거에 단 한 명의 후보를 내어 유권자들을 헷갈리게 만든 "가짜" 녹색당인 '국제녹색당'처럼 과거에도 이름에 '녹색'이 들어간 정당은 분명 있었지만, 진짜 녹색 가치를 표방한 녹색당은 없었다. 그 당시만해도 실패할 거라는 생각이 더 많았고, 비록 실패하더라도 이 시점에서 이번 시도가 의미를 갖기 위해 더 열심히 뛰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설마 겨울이 지나 진짜로 창당을 할거라는 생각은 감히 하지도 못했다.

 

지난 3년간 개인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진보 운동과는 달리 진보 정치에는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가졌던 내가 당 활동을 통해 정치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그 전이었다면 상상도 하기 힘든 변화다. 운동의 영역에서만 머물렀던 내가 정치의 영역으로 한발짝 더 앞으로 나선 것이다. 처음에는 창당도 어렵다고 생각했고, 가까스로 창당을 하더라도 평당원으로 조용히 힘을 보태고 싶었는데, 지역 단위 운영위원이 되고, 당직 출마를 권유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벌써 8월 말. 지방선거가 끝난 지 두 달이 다 되어간다. 녹색당에서는 11명의 지역구 후보와 12명의 광역비례 후보를 냈지만, 모두 낙선하는 결과가 나왔다.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던 것을 서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실망은 컸다. 물론 높디 높은 현실의 벽도 몰랐던 건 아니다. 그래도 이정도 일줄은 몰랐다. 특히 창당 당시 현역 기초의원으로 합류한 과천의 서형원 선배와 구미의 김수민 씨는 이번에도 무난히 당선되리라 생각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

 

선거가 끝나고, 선관위에 제출해야 할 서류들을 마무리하고, 내외부적으로 선거 평가를 시작했다. 평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평가 작업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마음이 그랬다. 하지만 달리 할 사람도 없었다. 선거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피할 수가 없었다. 하기 싫은 일은 능률이 오르지 않는 법이다. 대략적인 그리고 외부에 발표할 선거 평가는 허술하게나마 마무리가 되었지만, 내부적으로 제대로 평가서를 만들어보자는 계획은 아직도 다 이루지 못하고 미뤄두고 있다.

 

지난 7월 중순 전국 각지에서 선거에 참여했던 당원들이 모여 평가 워크숍을 가졌다. 그때 조별 토론 과정에서 나온 질문 중 하나는 "녹색당에게 지난 지방선거는 000 이다."의 빈 칸을 채우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대답들이 나왔다. 재치있으면서도 녹색당이 처한 상황을 냉철하게 잘 짚어줄 수 있는 단어들이었다. 여러 대답들 중에서 나는 '마지막 연습'이라는 말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녹색당은 2년 전 창당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총선을 치뤘고, 곧바로 등록취소라는 참담한 결과를 맞았다. 재창당하면서 '녹색당'이란 당명조차 사용하지 못하고, '녹색당더하기'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등록하여, '녹색당'을 '녹색당'이라 부르지도 못하는 허망한 상황에 처했었다. 다행히 헌법소원을 통해 당명을 되찾았고, 어렵고 힘들게 후보를 만들어 지방선거에 참여하는 단계까지 왔건만, 다시 한번 현실이라는 쓰디쓴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이제 앞으로 녹색당에게 주어진 기회는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스스로 '반정당의 정당'이라고 말하고, 기존 제도권 정당과의 차별점을 강조한다고 해도, 정당인 이상 선거를 통해 정치활동에 참여해야하고, 선거에서 일정한 성과를 이루지 못한다면 정치활동에 제대로 참여할 수조차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다음 총선과 다음 지방선거를 통해 살아남을 수 없다면, 녹색당에게 더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절박한 마음이 '마지막 연습'이라는 말 속에 잘 드러난다.

 

한편으로 현실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별개로 우리가 가진 녹색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의지와 희망도 필요하다. 당장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하다보면 좀 더 나은 미래가 오리라는 희망은 지금 우리를 움직이는 힘이 되어 준다.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더 힘차게 앞으로 나가는 것이 현재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보정당 100년의 역사

 

우리는 늘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는다. 녹색당 창당 과정에서 유럽 녹색당, 특히 독일 녹색당의 역사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역사에서 모든 답을 얻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무엇은 하지 말아야 하고,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도움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이번에 황소걸음 출판사에서 [사회주의 100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책을 펴냈다. 1권이 952쪽이고, 2권이 840쪽이니 2천쪽에 가까운 분량이다. 저자가 도널드 서순 이란 사실을 알고나면 이 어마어마한 분량이 조금 이해가 간다. 무려 5권짜리 [유럽문화사]를 곧바로 떠올렸을테니 말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현재 이 나라는 양당제의 거대한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구정당과 그에 못지 않은 보수정당이 서로 대립하는 체제. 전체적인 판에서 본다면 거대여당이나 거대야당이나 그다지 색깔차이가 나지 않는데, 이 나라에서는 어째선지 보수야당이 마치 진보인 것처럼, 그것도 단 하나밖에 없는 진보이자 대안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왜 이런 어이없는 현상이 생긴 것일까?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분명 존재하건만 왜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를 잘 알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걸까?

 

그래서 녹색당을 비롯한 여러 소수정당들(그들 모두가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중에는 제대로 된 진보도 분명 있지만, 그렇지 않은 정당들도 있다.)이 이 거대한 늪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무엇일까? 다양한 논의와 토론과 실천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우선 과거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과거 유럽 각국의 다양한 진보를 표방한 정당들이 어떻게 생겨나서,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떠한 결과를 이뤄냈는지 살펴보는 것이 현재 우리가 처한 조건에서 최소한의 도움을 얻는 방법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물론 이 두꺼운 책을 읽는 일은 어렵다. 가뜩이나 현재의 상황은 우리가 책으로 눈을 돌릴만한 여유를 주지 않는다. 최소한의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 참담한 현실에서 책에 눈을 두는 것은 차라리 사치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도 나는 이럴 때일수록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공부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그저 필요한 것을 찾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어떨까? 몸으로 실천하는 것만큼, 고민하고, 필요한 것을 찾아보는 노력도 중요한 법이다.

 

도무지 혼자 다 읽을 자신이 없다면 마음 맞는 사람들을 찾아 함께 읽기를 제안해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빠짐없이 독파해야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정치학자나 역사학자가 아닌 이상, 교양수준으로 전체의 흐름을 꿰고, 각 시기의 상황을 알아두면 될 일이다. 분량과 내용에 미리 겁 먹을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덧붙임~~

 

자, 녹색당 동지 여러분, 가까운 당원들과 함께 이 책을 읽어봅시다. 또 자신이 진보정당 당원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니 굳이 당원이 아니라도 진보 정치를 지지하는 분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 것이 우리가 양당체제라는 거대한 늪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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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


 어느날 길을 걷다가 갑자지 머리 속에서 어떤 노래가 맴돌았다. 그게 단 한 소절 "키스 키스 키스 베이비" 라는 아마도 후렴구로 여겨지는 부분만 계속 머리 속에서 무한 반복되는 것이다. 이게 대체 어떤 노래일까? 내가 어디서 이 노래를 들었길래, 이 부분만 자꾸 떠오르는 걸까? 누구 누래일까? 궁금했지만 아무런 단서가 없었기에 그냥 넘어가야했다. 그 노래는 며칠동안 잊을만하면 한번씩 머리 속을 맴돌았는데, 바쁘기도 하고, 노래에 신경쓸 여유가 없기도 하고, 궁금함을 참고 지낼 수 밖에 없었다.


며칠 후 좀 여유가 생긴 어느 저녁 검색창에 저 가사를 넣어봤다. 바로 노래 제목을 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고, 몇 개의 문서를 뒤지다가 미쓰에이라는 그룹의 허쉬라는 제목의 곡이라고 알아냈다. 집에 티비도 없고, 대중가요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에 노래를 잘 듣지도 않는 편이다.(팝 음악에는 조금 관심이 있어서 가끔 듣긴 하지만) 미쓰에이가 몇 명인지 어떤 그룹인지조차 모르는 내가 어떻게 그 노래를 들었던 걸까? 길 가다가 어디 가게에서 크게 틀어놓은 음악을 들었던가? 아니면 어디 커피숍이나 호프집에서 들었던 것일까?


나중에 우연히 깨달았는데, 전혀 상상도 못했던 곳에서 거의 매일 듣고 있던 노래였다. 바로 운동하러 가는 헬스클럽에서 매일 틀어놓은 음악이었던 것이다. 나는 헬스큽럽에서 머무는 시간이 평균적으로 20분이 채 안될 정도로 짧다. 남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동안 아주 고강도 운동을 하고 나오는 편인데, 남들이 주로 이용하는 머신은 일체 쓰지 않고, 오로지 역기를 붙들고 프리웨이트 운동만 하고 나오는 편이다. 몸의 다른 근육은 일체 쓰지 않고, 오로지 움직이는 부위의 근육만 사용하는 머신운동은 완벽한 고립운동이다. 그래서 비교적 안전하다. 사실 이 머신운동은 초기에 재활훈련 등 어딘가 불편한 사람들이 안전하게 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고 들었다.


머신운동에 비해 프리웨이트는 신체 모든 부위를 다 써서 운동해야 하고, 자칫 잘못하면 다칠수도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연습과 주의가 필요하고,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해야 한다. 나는 5분에서 15분 가량 짧은 본운동 시간(준비운동과 마무리운동을 제외한) 안에 옷이 흠뻑 젖을만큼 고강도 운동을 하는 편이라 매일 무거운 무게에 도전하고, 횟수를 늘리고, 새로운 운동을 시도하는 등 고도의 집중력이 없으면 부상으로 이어질만한 운동을 하고 있다.


아마 그래서 헬스클럽 안에서 노래를 들은 기억은 전혀 없다.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시끄럽게 노래를 틀어놓는 곳에서 나는 단 한번도 노래를 들었다는 기억을 떠올릴 수 없다. 그런데 하필 그날은 노래를 들었던 것이다. 전날부터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갑자기 쏟아진 폭우를 맞았고, 에어컨 바람 때문에 살짝 냉방병과 감기 기운이 있었다. 그래도 운동을 해야지 싶어서 억지로 가긴 했는데, 막상 역기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더 심각하게 몸이 무거웠다. 아마 이 헬스클럽에 다닌 3개월 동안 거의 유일하게 벤치에 앉아서 쉬었던 날이었다.(평소엔 아무리 지쳐도 앉아서 쉬지 않는다. 서서 숨을 고르고,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다음 세트를 이어가거나, 다른 운동으로 옮겨갈 뿐) 차가운 물을 마시고, 멍하게 앉아 있는데 노래 소리가 들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곳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헬스클럽은 시끄러운 음악을 하루종일 틀어놓는다. 앞서 머리 속을 맴달았던 '허쉬'란 노래는 아니었다. 제목과 가수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걸그룹, 혹은 아이돌그룹이라 부를만한 젊은 여성들이 부르는 노래였다. 뻔했다. 아마 이것도 유행하는 노래이겠지. 


그제서야 떠올랐다. 내 머리속에 '허쉬'가 계속 맴돌았던 이유도, 여기서 들었기 때문이구나. 그러고나니 무의식 중에 여기서 그 노래를 거의 매일 들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의식하지 못한 와중에서도 나의 뇌는 그 노래를 기억하고 아무 이유없이 어느 시점에 그 노래의 일부 후렴구를 무한반복으로 플레이 했던 것이다.


무의식이란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구나!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는 광고가 중요하고, 입에 착착 감기는 유행어가 중요하구나. 슈퍼에서 어떤 물건을 보았을 때, 무의식적으로 반복적으로 들어왔던 어떤 광고를 떠올리고, 그 연상작용이 구매로 이어지도록 만들어진 이 사회가 몸서리쳐지도록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파이트 클럽]을 보면 영화 곳곳에 작은 브래드 피트가 아주 짧은 시간동안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찾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짧은 순간이다. 감독은 광고나 영상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세뇌효과에 대해 일깨우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거대한 남성 생식기(브래드 피트의 것이라는 소문을 들은 기억이 있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는 충격적이다. 설사 나의 의식이 짧은 순간 스쳐지나간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나의 무의식은 그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어딘가에 저장해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내가 전혀 상상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어떤 순간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


내가 의식하고 있는 동안 한번도 들은 적이 없던 노래를 무의식중에 기억하고 있다가 후렴구를 반복 플레이했던 그 경험이 나는 소름끼치도록 무섭다!


학교 교육이나 사회생활도 모두 마찬가지다. 학교에서는 국가의 말에 순응하는 인간, 자본의 말에 순응하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경쟁하는 인간, 누군가가 가르키는 목표에 의심하지 않고 달려드는 인간, 남들과 협력하려하지 않고 경졍하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 바로 공교육의 목표다. 이것이 바로 무서운 세뇌이며, 그 덕분에 우리는 지금 무한 경쟁 시대, 철저한 자본주의 시대, 국가 권력이 국민을 우롱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도 웃을만한 '1번 어뢰'를 믿어야 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북한 해커들의 존재를 믿어야 하고, 그래서 어딘가가 해킹을 당하면 무조건 북한 소행임을 먼저 떠올려야 한다. 비행가능 거리와 무게, 연료 등과는 전혀 관계 없이 무인기는 무조건 북한에서 보낸 것이라 여겨야 하고, 변사체의 사인을 밝히지 못했어도, 그 시체의 신원이 누구라고 발표한다면 무조건 믿어야 하는 것이다. 설혹 그 사체가 한겨울 옷을 입고 한여름에 죽었다고 발표한다고 해도 말이다.


풍요 속의 빈곤


집 근처에 헬스클럽이 서너개가 있건만, 모두 나에게는 전혀 불필요한 머신만 가득한 곳이고, 내가 원하는 프리웨이트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의외로 간단하다. 역기를 한 두개쯤 여유있게 구비해놓고, 역기를 들 수 있는 거울 앞 빈 공간이 조금 있길 바랐을 뿐이다. 하지만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네 곳 중에 두 곳은 아예 프리웨이트를 할 공간 자체가 없었고, 한 곳은 조금 공간이 있었지만 좁았고, 여유분의 역기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갔던 곳, 집에서 가장 먼 곳에서 그나마 운동할 공간을 발견해서 기뻤다. 하지만 여유분의 역기가 단 하나였다. 데스크 앞에 앉아 있는 트레이너에게 물었더니 하나만으로 충분할 거라고, 그 역기를 따로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다.


더이상 찾아가 볼 곳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프리웨이트를 할 수 있는 비교적 넓은 공간이 마음에 들어서 그 곳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운동하러 갔던 첫 날 크게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요즘 각광받고 있는 케틀벨이 아예 없었고, 작년에 헬스클럽에서 즐겨했던 전신운동 기구인 로잉머신도 없었다. 게다가 여유분으로 하나 있었던 역기는 길이가 짧았다. '클린 앤 저크'는 할 수 있었지만, '스내치'와 '오버헤드 스퀏'은 할 수 없었다. 그 역기로는 제대로 운동을 할 수 없었고, 결국 스퀏렉에 걸린 역기나 벤치 프레스에 걸린 역기 둘 중 하나를 가져와서 써야 했다. 게다가 스퀏 렉에 있는 역기는 아주 낡아서 녹이 잔뜩 슬었고, 완만하게 휘어져 있어서 가끔 바가 제멋대로 헛돌기도 했다.


조금 고민하다가 어쨌거나 돈을 내고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데스크에 있는 트레이너에게 물었다. 케틀벨을 구매할 수는 없는지? 여유분 바벨을 제대로 된 것으로 하나 더 구매할 수 없는지? 스퀏 렉에 있는 낡은 바를 교체할 수 없는지? 내 질문에 트레이너는 무척 황당한 표정으로 마치 '당신이 뭔데 그런 걸 요구하느냐?'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이 헬스클럽을 이용하는 대다수는 그냥 머신운동만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케틀벨을 구매해봐야 쓸 사람은 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열악한 여건 속에서 그리 어려운 요구도 아니고, 그리 고가의 장비를 요구한 것도 아니고 모두 적은 비용으로 구비가 가능한 품목들인데, 그것도 고려해보지 못한다면 내가 여기서 오래도록 운동할 수 있겠는가? 


사실 트레이너의 반응이 기분 나빠서 첫 한 달만 다니고 그만두려 생각했다. 그런데 달리 갈 곳이 없었다. 좀 귀찮아도 벤치 프레스에 걸려있는 제일 멀쩡한 역기를 프리웨이트 공간으로 옮겨와서 운동하는 것에 익숙해지기도 했다. 물론 누군가가 사용하고 있으면 어쩔수 없었지만, 그땐 그냥 여유분의 역기로 클린 앤 저크를 열심히 했다. 지난 3달 동안 가끔 트레이너에게 혹시 케틀벨은 어떻게 되었냐를 물었지만, 늘 알아보겠다는 무성의한 답변만 돌아왔다. 본 운동을 마치고 마무리 운동으로 제일 좋은 두 가지는 케틀벨 스윙과 로잉머신인데, 여기는 케틀벨도, 로잉머신도 없었다. 결국 나는 케틀벨 대신 덤벨로 스윙운동을 했고, 로잉머신은 대체할 운동이 아예 없었기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또 운동하다가 예를 들어 스내치 동작 중에 뭔가 잘 안되고, 누군가가 좀 가르쳐줬으면 싶을 때가 있었는데, 어디 물어볼 사람도 전혀 없었다. 여기는 모두 머신 운동을 하러 온 사람들 밖에 없었고, 트레이너 조차 역기를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비싼 돈 주고 개인 트레이닝을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데드리프트 동작을 엉터리로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는 어이가 없었다.)


달리 대안이 없어서 3달동안 다니긴 했지만, 좀 더 제대로 운동하고 싶다는 갈증이 늘 있었다. 하지만 크로스핏 전용 체육관을 가려면 지금 내고 있는 돈의 4배 가까운 돈을 내야 했다. 없는 형편에 그렇게까지 무리를 할 수는 없었다. 대신 할 수 있는 운동을 제대로 열심히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얼마전 3달의 기간이 끝나고나서 재등록을 하지 않았다. 달리 갈 곳은 없기 때문에 당분간 집에서 혼자 운동을 해보기로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케틀벨부터 구매했다. 집에 역기가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케틀벨과 덤벨로 대체해서 충분히 운동할 수 있다. 당분간 해보다가 정 안되겠다 싶으면 그때가서 또 고민해보면 된다. 다시 거기를 돌아가던가, 아니면 좀 멀어도 제대로 된 곳을 찾아보던가.


분명 예전에 비해 헬스클럽은 많이 늘었고, 헬스머신의 종류도 많아졌다. 하지만 머신을 전혀 이용하지 않는 나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나는 가끔 남들과 같은 돈을 내는 것도 아깝다 느낄때가 있다. 예를들어 가장 전기를 많이 잡아먹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트레드밀(런닝머신)을 나는 아주 가끔 밖에 이용하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지난 3달동안 5번 정도 써봤다. 그것도 남들이 한 시간 내내 달리거나 30분 이상 달릴 때, 나는 길면 5분, 짧으면 3분동안 전력질주하고 지쳐서 내려오곤 했다. 평소 나는 준비운동 차원에서 헬스클럽까지 뛰어다니곤 했다. 트레드밀을 사용했던 5번은 사정상 달려올 상황이 안되었거나, 준비운동이 미흡했거나, 전날 운동의 피로가 덜 풀려 과도한 웨이트가 무리라고 판단했을 때 뿐이었다. 그렇다면 트레드밀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에 비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기도 덜 쓰고, 공간도 덜 쓰고, 아니 아예 그 많은 머신들 중에서 내가 이용하는 건 거의 없는데, 그 넓은 공간 중에서 구석에서 역기 하나 들 수 있는 공간(즉 사람 하나 설 수 있는 공간)만 사용할 뿐인데 같은 돈을 내는 것이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떠오른 단어가 풍요 속의 빈곤이었다. 남들과 다른 운동을 지향하는 사람에겐 어쩔 수 없는 것이가. 삶에서도 남들과 다른 길을 가고자 하는 입장에서 늘 비슷한 처지에 놓일 수 밖에 없는 듯하다. 언제쯤 이 아웃사이더 인생르 벗어나 보려나?



중앙아시아 유목 민족의 역사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은 일본 학자가 쓴 [몽골 세계제국]이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했는데, 예전부터 몽골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이 책과 함께 주위에 꽂혀 있는 몇 권을 한꺼번에 집어들고 비교해가며 살펴보았다.


이 책이 특히 흥미로웠던 건 앞부분에서 이 책을 세계 최초로 세계사를 집대성한 라시드 웃 딘(일반적으로 라시드 알 딘이라 부름) 의 [집사(集史, Jami' al-Tavarikh)]를 기초로 하여 썼다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콜럼버스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인도를 향해 출항한 것이 아니라 쿠빌라이칸을 만나기 위해 출발했다는 사실을 밝힌 것도 흥미로웠고, 흔히 '동방견문록'이라 알려진 [백만의 서(Il Millione)의 저자 마르코 폴로가 실존인물이라는 역사적 진술을 찾아볼 수 없다고 써놓은 부분들도 흥미로웠다. 몽골에 대한 관심에서 펼쳐본 책이었지만, 공부할 꺼리가 무척 많았다. 이 책을 시작으로 몽골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역사에 대해 좀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아주 오랜만에 공부에 흥미가 생겼다. 















다음에는 이 책을 읽을 생각이다. 몽골 건국신화다. 어디까지가 신화이고,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일지 직접 읽어가면서 추리해보는 것도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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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4-07-27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집에 티비가 없으시다니!!

게가다 전 여태 사회활동가로서 뭔가 마르시고 건전한 스포츠 머리에 책을 양 쪽에 끼고 다시는 감은빛님을 상상했는 데 오늘 이 글을 읽으며 느낀 것은 육체미의 남성 분이란 사실이랍니다. 근육질의 감은빛님이라...뭐 나쁘지는 않은데요. ㅎ

요즘 에리히 프롬의 평전을 읽고 있어요. 무의식 속에 들어오는 사회적 성격들 그런 것들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하더군요. 권위주의적 사회 그것을 무의식 속에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을 이 책을 보며 느끼는 데, 감은빛님의 풍요 속의 빈곤이란 문장도 그런 것을 느껴요.

몽골은 저도 참 신기하게 생각하는 민족이라 할까? 칭키스칸이란 사람을 탄생시키고 마치 그는 한 명의 초인처럼 시대를 정복하고 사라자고, 몽골은 다시 축소되잖아요. 암튼 뭔가 미스테리한 느낌을 받아요.

헬스클럽은 마치 제가 옆에서 구경하듯이 글이 읽혀지네요. ㅋ 전 남자 운동하는 거 보다 여자 운동하는 거 구경하는 게 좋아요. ㅋ

감은빛 2014-08-27 19:35   좋아요 0 | URL
또 답이 늦었군요. (--) (__) 죄송!!

티비 없이 산지 13년쯤 된 것 같아요.
평소엔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데,
가끔 티비가 있는 집(고향집, 처가집 등)에 가면
신기해하며 하루종일 티비만 보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루쉰님의 상상에 부합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입니다.
스포츠 머리를 굉장히 싫어합니다.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긴 합니다만, 사실 밖에선 읽을 일이 별로 없더라구요.
마른 편이라는 사실이 그나마 맞아서 다행이네요.
육체미라거나 근육질이라는 단어도 그닥 어울리지는 않습니다.
언젠가 글에서 쓴 적이 있는데,
저는 키도 작고, 덩치도 작아서 겉보기엔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펌핑운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운동량에 비해 근육의 크기도 작은 편입니다.
다만 근선명도는 좋은 편이라 근육량에 비해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늘 루쉰님이 제게 갖는 관심에 고마울 따름입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4-07-28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전에서 근력이 필요한 종합격투기 선수들 훈련하는 체육관 훈련시간을 보면 확실히 프리웨이트 위주로 운동을 하더군요.턱걸이나 주먹 푸시업도 하고...

반면 요즘 헬쓰클럽은 보기 좋은 몸매 위주의 운동을 하니까 트레이너들도 몸매 다듬기 위주의 운동을 시키죠.등록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요.아무래도 감은빛 님은 전문보디빌더들이 운동하는 체육관을 가야 할 것 같아요.

감은빛 2014-08-27 19:41   좋아요 0 | URL
답이 무척 늦어 죄송합니다!

사실 크로스핏 전용 체육관이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벌써부터 거길 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고,
거기서는 제가 위에 장황하게 쓴 문제들이 대부분 해결되리라 생각해요.

하지만 돈이! 돈이! 돈이! 돈이!
동네 헬스장에 비해 무려 4배 가까이 차이가 나서 못 가고 있어요. ㅠ.ㅠ
 

 

GOP 총기 난사 사건의 원인은?

 

뉴스에 관심을 두고 살지 않아서, 총기 난사 사고가 있었다는 얘기만 얼핏 보았을 뿐,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 있었다. 우연히 22사단이란 부대명을 보고서야 깜짝 놀라 찾아봤다. 그리고 경향신문의 아래 칼럼을 읽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6232045505&code=990303



이 글에선 임병장이 전입되어 온 병사라고 했다. 그리고 잔류와 전입 등이 육군본부도 잘 모르는 변칙과 편법이라고 했다.

난 22사단 출신이다. 이등병 때 GOP에 올라갔다가 나중에 페바에 내려왔는데, 병장이 될 무렵 다시 GOP 투입에 대한 소문이 돌았으나, 다행히 내가 제대한 후에야 우리 대대가 다시 올라갔다. 그런데 당시 매우 비정상적이면서 큰 규모의 부대 이동이 있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대대급 규모의 부대 하나가 사라지면서 해당 부대 병사들은 여기저기 쪼개져서 흩어져 남의 부대로 배치되었다. 그래서 하나의 중대에 대략 한 개 소대 규모의 전입병사가 들어왔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한 편에선 GOP 경험이 없거나 적은 부대에, GOP 경험이 풍부한 부대원들을 무더기로 몰아준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 부대를 곧 투입할 예정이기 때문이라는 얘기와 함께

즉, 내가 있었던 당시에도 GOP 투입을 앞두고 임병장과 같은 전입 병사가 대거 들어왔단 얘기다. 그리고 당연하게 큰 혼란이 이어졌다! 군생활은 무조건 서열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갑작스레 들어온 여러명의 전입 병사들은 기존 소대원들의 서열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그들은 전혀 뒤섞이지 못하고, 서로 긴장한 채로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한다.

당시 우리 소대에 GOP를 경험한 병사는 서열상 내가 마지막이었다. 내 뒤로는 모두 페바에 있을때부터 들어왔다. 그런데 서열상 내 바로 뒤에 여럿의 전입병사가 들어왔다. 원래 소대에서 내 바로 뒷 서열이었던 상병들은 갑작스럽게 자기 앞으로 끼어 들어온 전입 병사들을 고참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한동안 반발했던 기억이 난다.

이 글을 쓴 사람의 주장이 무조건 옳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내 경험과 임병장의 경험이 전혀 관계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글을 읽으니, 당시 그 어이없던 대규모 전입 사태가 왜 일어났던 것인지는 조금 이해가 간다. 육군본부조차 모르는 편법이라니.

 

 

살인 충동

 

남성들은 대부분 자신이 겪은 일이 더 대단하다고 여기기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여성들은 가본적도 없고, 별로 궁금하지 않은 것이 바로 군대 얘기다. 즉, 해봐야 별로 좋을 것이 없는 얘기겠지만, 말이 나온 김에 조금만 더 풀어놓자면, 군 생활하는 동안 위험한 경우가 제법 많았다.

 

일단 자대배치를 위해 전방으로 투입되는 날, 사상 최악의 지뢰 폭발 사고 소식을 들었다. 전방으로 들어가는 포차 안에서 말이다. 휴일이라 축구를 하던 중이었다고 들었다. 축구공이 공터를 벗어나 길 옆 풀밭으로 떨어졌고, 평소에 늘 다니던 길에서 불과 몇 발짝 더 벗어났을 뿐이라 아무 생각없이 공을 주으러 갔다. 축구를 하던 중이었으니, 당연히 여러 명이 우루루 공을 향해 달려갔을 것이고, 그 중 가장 가까이 있던 혹은 제일 계급이 낮은 한 명이 공을 주으러 풀밭에 들어가서 공을 집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M16이라는 대인 지뢰가 사람 머리 보다 더 높이 튀어올랐다. 다음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다 죽었다고 들었다. 머리 위에서 터진 지뢰가 사람 몸을 찢어 놓아서 시신 수습도 어려웠다고 들었다. 그런 얘길 들으면서 앞으로 경계 근무를 서게 될 소초를 향해 들어가고 있었다.

 

배치받은 소초의 소초장은 한 마디로 미친 인간이었다. 신병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경계근무에 바로 투입되지 않고, 순찰을 다니는 소초장이나 부소초장을 따라다니는 임무를 받았다. 소초장은 길이 아닌 곳으로 함부로 돌아다녔다. 또 버젓이 '지뢰지대'라고 철조망으로 막아놓은 곳을 가리키며 저기에 과연 지뢰가 있을까 없을까를 물었다. 그 인간 말은 이랬다. 사실 지뢰는 방심한 적을 살상하기 위한 무기인데, 저렇게 해골을 그려놓거나, 지뢰지대라고 써놓으면 누가 들어와서 밟겠느냐는 질문이었다. 즉, 저건 가짜로 만들어놓은 지뢰지대이고, 저기엔 지뢰가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지. 신병이었던 나는 군기가 바짝 들어서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 와 "네 그럽습니다!"만 크게 외쳐댔는데, 그 인간이 실제 지뢰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보고 들어가보라는 명령을 내렸다.

 

첫 날 들었던 소식은 실제로 주변 초소에서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소식 때문에 유독 지뢰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던 나는 소초장이 진심으로 미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진지했으니까. 나는 끝까지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고, 결국 그 인간은 자신이 먼저 들어가 볼테니, 나도 꼭 따라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뢰지대라는 안내판이 붙은 철조망을 가볍게 넘어서 안 쪽으로 서너 발쯤 조심스레 들어갔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나를 재촉했다. 나는 이건 정말 미친짓이야를 머리 속으로 외치면서도 그가 밟았던 발자국을 그대로 밟으려 애쓰며 딱 그가 갔던 곳까지 들어갔다가 돌아왔다. 수명이 줄었다는 관용어구를 정말 이럴 때 써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지오피에서 경계 근무를 나갈때는 실탄과 수류탄을 받는다. 적과 조우할 수 있는 위험지역인만큼 당연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실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사건이 있었다. 병장이 하나 있었다. 서열은 대략 5위 정도 였던가. 나는 화기분대 탄약수로 배정받았고, 그 병장은 화기분대 기관총 사수였다. 화기분대에는 기관총 사수가 두 명있는데, 그는 내 사수는 아니었고, 다른 한 명의 사수였다. 소초로 발령받아 온 지 며칠이 지나면서 슬슬 이 생활에 적응이 되어간다 싶을 때쯤에 그 병장이 나를 갈구기 시작했다. 갈군다는 말이 아마 사투리였던가? 잘 모르겠다. 암튼 시도때도 없이 괴롭히기 시작하는데, 대개 아무런 이유가 없는 그냥 괴롭힘이었다. 온갖 모욕과 수치를 견뎌내며 하루 하루 지나던 날들. 나는 신병이었기 때문에 맞아도 참아야 했고, 욕을 들어도 참아야 했다.

 

내 바로 위 탄약수는 일병이었는데, 키가 크고, 골격이 크고, 얼굴도 시원하게 잘 생긴 사람이었다. 지오피는 처음 들어올 때 인원을 꽉 채워서 오기 때문에 들어와서 한참동안 신병이 들어올 일이 없다. 그는 꽤 오랜동안 소초 막내였다. 그리고 내가 들어와서야 막내를 벗어났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는 내게 참 잘해줬다. 뭐든 다 챙겨주고, 가르쳐 주고, 지저분한 일들, 누구라도 꺼릴 일들을 척척 해내곤, 씩 웃곤 했다. 나는 맏이라서 형이 없는데, 만약 가족 중에 형이 있다면 이런 사람이겠구나 싶을 정도로 그를 따랐다.

 

나와 그 일병은 화기 분대의 선임 사수에게 소속되어 있었다. 선임사수와 앞서 소개한 또 한 명의 사수, 그 병장은 서로 사이가 안 좋았는데, 우리 사수는 별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보지 못했건만 그 병장은 자주 불만을 드러냈다. 하지만 선임에게는 함부로 대들지 못하니까 그 밑에 있던 사람들, 부사수와 두 탄약수를 괴롭혔다. 이것이 내가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그가 나를 괴롭히는 이유의 전부였다.

 

어느 날 그는 별일도 아닌 걸로 트집을 잡아 나와 그 일병을 밖으로 불러내 굴리기 시작했다.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엎드려 뻗쳐 등등 얼마나 굴렀을까, 지쳐서 가쁜 숨을 내 쉬느라 올바른 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군화발이 날아왔다. 내 옆에서 나와 같은 얼차려를 받았던 일병이 뭐라고 했던가? 아니면 그냥 눈빛만 보냈을까? 아픔 때문에 제대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그 병장은 이게 감히 어디서 개기냐며, 일병을 패기 시작했다. 아, 정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욕을 쏟아 붓고, 할 수 있는 모든 저주를 퍼붓고 싶었던 날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한 밤중에 경계근무를 나가 있었는데, 순찰조가 우리 근무지로 접근했다. 근무지에 누군가 접근하면 암구어를 외치고, 제대로 된 답이 돌아오지 않으면 멈추게 한 다음, 포박하도록 되어 있다. 만약 그가 내 명령에 따르지 않고 계속 접근해온다면 경고한 후에 사격하도록 되어있다. 멀리 있을 때는 알수 없었으나, 대화가 될 정도로 가까이 오고 보니, 순찰조는 부소초장과 그 병장이었다. 나는 큰 소리로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를 외치고, 곧이어 암구어를 불렀다. 평소대로 였다면 곧바로 답이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답이 없었다. 한번 더 암구어를 불렀다. 또 답이 없었다. 걸어오던 부소차장이 힐끔 그 병장을 쳐다보았다. 암구어를 외우는 것은 늘 후임의 몫이다. 언제나 2인 1조로 움직이는 전방에서, 선임은 암구어 따위 신경도 안 쓰고, 후임이 외우도록 되어있다. 평소라면 늘 선임이었을 그 병장은 아마 암구어 때위 신경도 안 썼을 것이다. 그리고 부소초장은 아예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고. 두 사람은 멈추지도 않고, 속도도 줄이지 않고 우리 쪽을 향해 왔다. 나는 세 번째로 암구어를 불렀다. 역시 답은 없었다. 같이 경계를 서고 있던 선임을 쳐다봤다. 그도 나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낯선 사람들이 아니었고, 누군지 알는 상대이므로, 암구어를 모른다고 굳이 포박할 이유는 없었다.

 

순찰조는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그 짧은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 그 때 내 머리속에는 그 병장을 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살인 충동. 조준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처음 암구어를 불렀던 순간부터 나는 계속 사격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왼쪽 눈을 지그시 감고 그 병장을 겨눴다. 조준경의 막대 위에 그의 얼굴이 올라왔다. 이제 장전하고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그를 꿰뚫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증언 할 것이다. 구름 때문이었는지, 평소보다 어두웠고, 그들이 누구인지 잘 안 보였습니다. 그리고 암구어를 세 번 부를 동안 답이 없었고, 멈추라는 명령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총을 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증언한다면 나는 죄가 없는 것이다. 라는 상상을 하는 동안 그들은 우리 앞에 도착했다.

 

이어서 그 병장은 손을 들어 내 화이바를 내려쳤다. "이 새끼야, 암구어를 세 번 대는 동안 답이 없으면 어떻게 하도록 되어 있어? 왜 가만히 있는거야?" 어이가 없었던 나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암구어를 안 외운 것은 본인 실수인데, 오히려 가만히 있었다고 나를 때리다니. 몇 번의 욕을 듣고, 몇 번의 구타가 이어진 후 부소초장은 슬쩍 그 병장을 말렸고,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암구어가 뭐냐고 물었다.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다. 우리 경계조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다음 근무지에서 또 암구어를 댈 수 없을 것이고 또 망신을 당할테니까. 그 병장은 대답을 빨리 안한다고 나를 한 대 더 때렸고, 보다못한 우리 경계조의 선임이 암구어를 알려줬다. 다음 근무지를 향해 걸음을 옮겨가는 그 병장을 쏘아보며, 진짜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쏴 버릴걸 하고 후회했다.

 

진짜로 누구를 죽이고 싶다는 살인 충동을 느낀 건 아마 그 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죽일 수 있는 수단을 손에 쥐고 있었다. 내 사격 실력은 나쁘지 않았고, 그는 내 조준경 안에 들어와 있었고, 손가락만 까딱 했으면......

 

아, 역시 군대 얘길 하다보니 말이 많아진다. 애초 생각보다 글이 훨씬 길어졌다.

 

전쟁과 군대와 남성

 

이건 우연이었을까? 최근 읽고 있던 책이 바로 [기사도에서 테러리즘까지]였다. 작년 지역의 시민신문에 글을 연재하면서 때로는 소액의 도서상품권을 원고료로 받았고, 때로는 책을 받기도 했다. 또 때로는 신문사 측에서도 잊어버리고, 나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연재를 마칠 때쯤 신문사에서 보유하고 있던(여기저기서 기증받았던) 도서 목록을 공유하면서 필자들에게 책을 신청하라고 연락해왔는데, 그때 딱 눈에 들어온 책이 저거였다. 책을 받으러 가겠다고 말해놓고는 거의 반 년동안 신문사를 찾아가지 못했다. 얼마 전 선거가 끝나고 좀 시간 여유가 있어서 오후 시간에 신문사를 찾아가서 편집장님과 잠시 수다를 떨고 받아왔다. 그리고 이제 대략 3분의 1 정도를 읽었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글이 어렵고, 번역 상태와 교정 상태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그래도 몰랐던 사실을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한참 전쟁과 군대 그리고 남성성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고민하던 차에 총기 난사 사건 소식을 접하고, 그 옛날 군대 시절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올해는 안타까운 죽음들이 유난히 많은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군대의 경우 '사고 사례 전파' 등을 통해 몇 차례 접했던 GOP 총기 난사 및 수류탄 투척 사건들이 기억났다. 세월호는 좀 예외적인 경우이지만, 군대에서의 죽음은 평소에도 늘 있었던 일이다.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 이번에만 유독 무장 탈영과 저항으로 이어져서 알려진 것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이 땅에서 무기를 들어야만 한는 젊은 목숨들을 위해 잠시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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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4-06-26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국방부에서 불 나기를 기다리는 병사로 있었지만 못난 선임들을 소방차에 빠트려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ㅎ
근데 감은빛님의 글을 읽으니 전방의 그 상황이 눈 앞에 그려지네요...
완전 몰입해서 읽었네요 그 병장 저도 쏘고 싶네요...
흠. 군대 문화 끔직해요

감은빛 2014-07-27 01:27   좋아요 0 | URL
루쉰님, 답이 한 달 늦었군요.
사실 7월 초반에 이 댓글을 보긴 했는데,
여유가 없어 답을 쓰지 못하고 넘어갔던게, 한 달이 늦어지게 되었네요.

국방부에 불 나기를 기다렸다니, 무서운 병사였군요!
오랜만에 루쉰님이 제 블로그에 와주셔서 무척 반갑네요!

루쉰P 2014-07-27 17:22   좋아요 0 | URL
나름 군대 문화를 저주하는 병사였죠. ㅋ
감은빛님이 무서운 병사라고 하시니 흠...저도 솔직히 자신에게 소름이 좀 끼치네요. 흠..이게 다 군대 문화 탓이에요. 전 평화를 사랑하는 데...
 

 

"아빠, 어디가? 선거에 가는거야?"

 

2년 전 총선때 녹색당을 '노찌따'라고 발음했던 작은 아이는 이제 분명하게 '녹색당'을 발음할 수 있을만큼 자랐다. 하지만 '선거사무실'이라는 단어는 아직 어렵고 낯선가보다. 줄여서 '선거'라고 부른다. 어린이집에서 작은 아이를 데리고 나오면, 아이는 엄마는 어디 있는지, 언니는 어디있는지를 먼저 묻고, 지금 자기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묻는다. 묻지 않아도 답은 이미 알고 있다. 선거사무실로 데려가는 중이라는 것을. 작은 아이 손을 잡고 골목길을 걷다보면 저만치에서 큰 아이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작은 아이 데리러 오기 전에 전화로 동생 어린이집으로 오라고 말해뒀기 때문이다. 언니와 동생은 마치 몇 년만에 만난 듯이 서로 뛰어가 부둥켜 안고, 반가워한다. 두 녀석의 손을 잡고 선거사무실로 돌아온다. 지난 두 달간 저녁 풍경이다.

 

어느 유명한 시인의 말에서 나온 잔인한 달, 4월은 개인적으로도 늘 그런 느낌을 주는 달이었다. 실연, 실직, 갈등 유독 해마다 4월이면 어렵고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올해 4월도 그랬다. 3월 말에 정리해고를 당해, 실직 상태로 4월을 맞았다. 하필 그때가 지방선거로 녹색당이 한창 바쁜 때였다. 그리고 우리동네에는 친하게 지내던 후배 당원이 구의원 후보로 출마를 결심했다. 마을 활동을 고민하던 시기에 마침 녹색당 후보로 출마해서 제대로 동네를 바꿔보자는 결심을 한 것이다. 약 3년 전 창당준비위원회때부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던 나는 자연스럽게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밖에 없었고, 동네 구의원 후보의 선거 사무실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을 해왔지만 나는 유난히 선거에는 관심이 없었다. 학생회 간부로 활동도 했고, 과 학생회장이나 단과대 학생회장 출마 권유도 많이 받았지만, 다 거절했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찍어달라고 나서는 모양새가 왠지 우스워 보였다. 나중에는 출마하는 후배들이 선거운동을 도와달라는 요청도 많이 했는데, 그때도 모두 거절했다. '선거'라는 행위, 그 단어 자체에 대한 어떤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다.

 

선거가 내 인생에서 제대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녹색당 창당 후 맞은, 2012년 총선 때부터였다. 시민운동을 할 때부터 정치인과 정당, 이 나라의 정치 지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선거를 치르면서 깨달은 내부 지형은 또 달랐다. 그리고 선거 결과 예상보다 저조했던 진보정당들의 득표율을 보면서 실망도 많았다.

 

이번이 녹색당에서 맞는 두 번째 선거다. 지난 총선에 녹색당은 부산과 영덕 2군데 밖에 지역구 후보를 내지 못했고, 비례 후보를 3명 냈지만 모두 낙선했다. 이번 지방 선거에는 11명의 지역구 후보를 내고, 광역 비례 후보는 12명을 냈다. 2년 밖에 안된 신생정당이며, 유명한 정치인이 없는 시민의 정당, 녹색당 입장에서는 이 숫자를 만들어 낸 것만도 기적에 가깝다. 당파에 따라 끊임없이 만들었다 없어지고, 합쳤다가 분열되기를 반복하는 기존 정당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녹색당의 후보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다. 평범하기 때문에 기존 정치인들과는 달리 실제로 지역 주민들과 함께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오늘은 자랑스러운 녹색당 후보들을 한명씩 소개해보고 싶다.

 

과천시장 후보로 나온 서형원 선배는 두 번 연속 무소속으로 과천시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첫 당선 당시 여당과 야당의 후보들이 1번부터 앞번호를 다 차지하고 있던 상황에서, 13번이라는 번호를 달고 당선한 거의 기적에 가까운 승리를 이끌어 냈던 사람이다. 그만큼 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같은 과천시의원 출신인 정의당 황순식 후보와 단일화를 이뤘다. 경선에는 과천 시민의 10%라는 경의적인 참여를 끌어냈다. 개인적으로는 환경연합 선배 활동가이기에 이 사람에게 더욱 믿음이 간다. 부디 시장으로 당선되어 과천을 대한민국의 생태도시로 만들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녹색당은 창당하자마자 두 명의 시의원을 얻었다. 과천의 서형원 의원과 구미의 김수민 의원이 그들이다. 김수민 씨는 고향인 구미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시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이번에는 녹색당에서 재선에 도전한다. 현역 시의원인 만큼 녹색당 내에서 아주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고, 젊은 시의원인만큼 활발하게 의정활동을 벌여왔다. 판에 박힌 공약, 선거에서만 써먹는 공약이 아닌 지역 주민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공약을 내세워 이번에도 당선이 유력할 것으로 본다. 경북 구미시 마 선거구(인동동(구평동, 황상동, 인의동, 신동), 진미동(진평동, 임수동, 시미동))에 녹색 정책을 펼쳐나갈 김수민 후보를 응원한다.

 

녹색당은 이번 선거에서 서울에 두 명의 지역구 후보를 냈다. 서대문구 가 선거구(충현동, 천연동, 북아현동, 신촌동)에 출마한 이태영 후보는 한국YMCA 전국연맹 활동가 출신이고, 현재 신촌민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또한 서울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함께 일해 본 이태영 씨는 젊은 나이와 외모에서 나오는 느낌과는 달리,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현명하게 일을 풀어가는 사람이다. 신촌 일대에서 활동하는 만큼 선거운동도 참신하고, 세련되게 펼쳐나가고 있다. 신촌 일대의 녹색 미래를 책임질 이태영 후보가 꼭 당선되기를 희망한다.

 

은평 마 선거구(갈현2동, 구산동)에 출마한 박종원 후보는 어린이, 청소년 놀이 프로그램 기획진행자로, 고무신학교 교사였다. 서울KYC 활동가 였고, 현재 작은 도서관인 '초록길도서관' 운영위원이다. 마을 활동을 활발히 펼쳐나가고, 교육, 보육 정책에 관심이 많다. 은평구의 녹색 미래를 책임질 믿음직한 후보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당선 되길 바란다!

 

의왕시 가 선거구(고천동, 부곡동, 오전동)에 출마한 안명균 후보는 환경운동연합에서 20년 이상 활동했던 활동가 출신이다. 안양천 살리기 운동을 오랫동안 해왔고, 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에도 정통한 전문가이다. 개인적으로 환경연합에 일할 당시에 인연을 맺었던 선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성격이 그러하듯, 환경운동 뿐 아니라 노동, 인권, 여성 등 다양한 의제에도 활발하게 참여해온 정책 전문가라 할 수 있다. 꼭 당선되어 오랜 경험을 시민들을 위해 활용해주기를 바란다.

 

이천시 다 선거구(부발읍, 대월면, 모가면, 설성면, 장호원읍, 율면) 임을재 후보는 귀농한 여성 농민이며, 도농직거래 '콩세알 나눔마을' 운영위원이다. 또 한강 환경지킴이 활동을 3년째 해오는 등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오신 분이다. 꼭 당선되셔서 녹색 이천을 만들어주시길 희망한다.

 

 

전남 보성 제 2선거구(벌교읍, 겸백면, 율어면, 복내면, 문덕면, 조성면)에 출마한 최혁봉 후보는 10년 전 벌교 산골로 귀농한 농민이다. 강정과 밀양 등 전국적인 이슈가 있는 곳에는 항상 달려오는 최혁봉 후보는 긴 수염이 매력적이었지만, 이번 선거에 출마하면서 면도를 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젊은 사람이었다니!) 꼭 당선되셔서 특유의 부지런하고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시기를 바란다.

 

춘천시 바 선거구(소양동, 조운동, 약사명동, 근화동, 신사우동) 박설희 후보는 춘천 여성 민우회 활동가이며 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 시절부터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SNS를 통해 활발하게 녹색당을 알리는 박설희 후보를 보면 나도 모르게 표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매력적이다! 꼭 당선되어 춘천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를 기대한다.

 

이 글을 처음 쓸 당시만해도 모든 지역구 후보와 비례 후보를 다 소개해야지 생각했으나, 예상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선거운동을 하다가 틈틈히 쓰는 글이라 벌써 3일이 훌쩍 지나버렸다. 이제 내일이면 선거일이라 더이상 미루면 이 글을 쓰는 의미가 없고, 다 소개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걸리므로 정말 미안하지만, 남은 후보들은 이름만 소개하는 걸로 이 글을 마무리 하려한다.(부득이 소개못한 후보님들께는 죄송!)

 

충청남도 천안시 제7선거구(성정1동, 성정2동, 백석동)에는 이윤상 후보가 출마했고, 충청남도 홍성군 제1선거구(홍성읍, 홍북면, 금마면, 갈산면, 구항면)에는 정영희 후보가 출마했다. 광주광역시 북구 사 선거구(삼각동, 일곡동)에는 박필순 후보가 출마했다.

 

이상이 지역에서 출마한 후보이며, 광역 비례 후보도 12명을 냈다. 아래 지도에 출마 지역이 표시되어 있다.

 

 

 

 

서울시의원 비례 후보로 나선 이유진 후보는 녹색연합 활동가 출신이며,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 분야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에너지 전문가이다. 박원순 시장의 '원전1기 줄이기' 사업은 거의 대부분 이유진 후보가 만들어낸 내용이었다. 박원순 시장과 함께 녹색당 이유진 후보가 당선되어 서울시의 에너지 정책을 좀 더 제대로 만들어 내길 바란다!

 

경기 비례 후보 이동현 씨는 딴지일보 기자다. 2011년 늦가을 서울녹색당 발기인 대회에서 취재차 왔다가 바로 당원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딴지 팟캐스트를 듣고, 매력적인 목소리에 반했던 기억이 있다. 경기도 도의원으로 당선되길 바란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새로운 일을 하면서 재미있는 경험도 많았다. 결과에 상관없이 후회없는 선거가 되도록 오늘 자정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


더 자세한 후보 소개는 녹색당 선거 홈페이지에서 확인 할 수 있다.

http://www.kgreens.org/election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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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6-03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지하는 정당이 없어서
투표 안하려고 했는데
녹색당 당원분이 겨기 비례 후보로 나오셨군요.

작은 한표 보태겠습니다...


감은빛 2014-06-03 15:57   좋아요 0 | URL
경기도민이시군요. 고맙습니다!
함께 녹색 미래를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chika 2014-06-03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안그래도 오늘 감은빛님이 생각나던데... ^^;;

지지정당 얘기를 하는데, 녹색당을 모르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ㅠㅠㅠㅠ
암튼 꿋꿋하게 녹색당 얘기를 꺼냈는데, 다행히 함께 식사를 하던 신부님께서 녹색당 지지 발언을 해 주셨습니다. 옆에 계시던 분들이 그냥 혹,하게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단 말이지요 ^^
어머니는 음식물 쓰레기 봉투 얘기하다가, 언니는 사전투표 하러 가다가 특별히 찍어야되는 곳 없으면 녹색당,이라고 했더니 뭐라고 투덜대면서도 녹색당에 표를 줬다고 합니다 ^^

근데 선거공보물이 없는데다가 정당이 어떻게 나오는지도 공고되지 않아서 저도 혹시나 하는 맘에 검색까지 해봤더랬습니다. 녹색당 지지하라고 떠들어댔는데 막상 정당 투표에 없으면 어쩌나 하는 소심한 걱정에... ㅡ,.ㅡ
그래서 정말 홍보가 필요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은빛님의 글이 올라오길 기다렸는데...
암튼. 이번은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은빛 2014-06-03 21:2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치카님.
제 글을 기다리셨다니, 좀 더 일찍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계속 빨리 글을 써야지 했는데,
여유가 없어서 생각만하다가
겨우 틈을 만들어 글을 쓰긴 시작했는데,
한번에 쓰지 못하고 며칠간 조금씩 쓰다말다 하다보니 늦어졌네요.

녹색당에 투표해주시고, 지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결과가 나오길 함께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