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아무런 계획없이 그냥 훌쩍 떠나는 여행, 참 오랜만이었다. 오래전에 나는 이런 여행 좋아했었다. 그냥 갑자기 훌쩍 떠나 짧으면 2~3주, 길면 4~5주간 여기저기 떠돌다가 돌아오는 여행을 가끔 다녔다. 그래서 친구녀석은 나를 '바람따라 구름따라 김도사'라고 불렀다. 그땐 결혼 전이었고, 직장인도 아니었으니 그게 가능했었지만, 이후 아주 오랫동안 그런 여행을 가보지 못했다. 사실 최근 몇 년간 워크숍이나 출장은 가끔 다녔지만, 일과 전혀 관계없이 그냥 어디 놀러간 적은 거의 없는 듯하다. 


지난 주 금요일 새벽 늦게까지 맥주와 함께 추리소설을 읽다가 잠들기 전, 문득 연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내일 아침에는 애들 데리고 어디 놀러라도 다녀올까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주말에 일정이 있다고 알고 있었다. 평소라면 애들과 집에서 놀다가, 집 근처 놀이터에서 잠시 놀거나, 동네 뒷산을 슬쩍 올랐다가 내려왔을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래도 연휴인데, 애들 더 크기 전에 같이 여행을 좀 자주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결정할 수 없으니, 아침에 아이들에게 물어보기로 맘먹고 잠이 들었다.


아침, 늦게 잠들었고, 술도 마셨기에 늦잠을 더 자고 싶었으나, 작은 아이가 내 배 위에서 쿵쿵 뛰어서 깰 수 밖에 없었다. 쉰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빠랑 같이 어디 놀러갈래?", "어디?", "음, 강이나 산이나 바다나. 가고 싶은 곳으로." 아이들은 조금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더 자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일어나, 몇 해전 놀렀갔던 강원도 평창의 한 펜션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키며, 그런 곳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그 집에 다시 가고 싶다고 했고, 거긴 차 없이 놀러갈만한 곳은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보자고 했다. 일단 여행을 가는 것까지는 결정을 했다. 이제 어디를 갈지를 정해야 하는데, 컴퓨터를 켜서 적당한 곳을 검색했다. 아이들과 함께 놀만한 곳, 차 없이도 이동이 어렵지 않은 곳, 아주 멀지 않은 곳으로. 검색을 하는 중 레일바이크 타는 사진을 큰 아이가 보고 "저거 타러가자."고 했다. 그 페이지에 나온 곳은 김유정 역이었는데, 검색해보니 김유정 역은 이미 연휴 내내 예약이 꽉 차있었다. 다른 레일바이크를 검색했다. 여러군데가 나왔다. 그 중 비교적 가까운 곳인 양평을 검색해 연락했다. 당일 예약은 안되고, 직접와서 표를 사야 한다고 했다. 현재 오후 3시까지는 매진이라고 했다. 일단 양평 레일바이크를 타는 것을 목표로 결정. 1박 2일의 나머지 일정은 가면서 혹은 거기 가서 결정하기로 하고, 간단히 여벌옷과 세면도구만 챙겨 집을 나섰다.


양평은 전철이 연결되어 있어서 쉽게 갈 수 있었다. 우리는 버스를 한 번,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서 양평으로 갔다. 아이들은 놀러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신이 났다. 가면서 양평에 뭐가 있는지, 나머지 시간을 뭐하고 놀지를 검색했다. 용문사라는 절이 유명하다는 걸 알아냈다. 그쪽에 관광단지가 형성되어서 펜션도 많다고 했다. 낮엔 더우니 저녁에 레일바이크를 타고 용문사 쪽으로 넘어가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용문사를 돌아보고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을 대략 세웠다. 나 혼자라면 여기저기 더 많이 돌아다녔겠지만, 아직 어린 작은 아이를 데리고는 무리한 일정을 세울 수는 없었다.



레일바이크


편도 3.2킬로미터, 왕복 6.4킬로미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거리. 갈땐 거의 내리막이라 페달을 안 밟고 쉽게 갔다. 반환점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좀 지루했다. 총 50개의 차 중에 4번이어서 50번이 들어올 때까지 한참 기다렸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 오르막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우리 차 앞뒤로는 4인가족이었다. 아이들도 모두 어리지않아 페달을 밟을 수 있는 나이였다. 그러나 우리는 3명, 작은아이는 발이 닿지 않아 페달을 밟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앞 차가 너무 느려 답답함을 느꼈다. 한참 신나게 페달을 밟았더니 앞차가 코앞에 있었다. 큰아이가 브레이크를 잡을까 고민할 정도로.


거의 다와서 다리에 힘이 빠지고 엉덩이가 아팠다. 오르막길. 내가 힘들어하니, 큰아이가 분발해서 페달을 밟았다. 도착점에 거의 다 와서 옆에 세워진 푯말들이 재밌었다. "얘들아, 열심히 밟아라! 엄마 아빠 힘드시다", " 남자는 힘, 지금 힘드시다면 운동부족입니다" 등 재치있는 문구들이 많았다. 덕분에 막판에 힘을 끌어올려 웃으면서 들어왓다.


타기 전에는, 타고나서 많이 지치겠지, 다리가 꽤나 아프겠지 예상했었다. 작은 아이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고, 큰 아이도 무리하면 다리가 아플테니, 쉬엄쉬엄 페달을 밟으라고 말해둔 터여서 그랬다. 하지만 거의 아무렇지 않았다. 그냥 평소보다 하체 운동을 조금 많이 했다 생각할 정도. 


다음날은 혹시 다리가 땡길지 모르겠다 생각했는데, 크게 신경쓸정도는 아니었다. 타바타 인터벌로 에어스퀏을 했던 다음날엔 거의 걷기가 어려울 정도였는데, 거기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큰 아이도 용문사를 걸을 때에는 조금 다리가 아프다며 투정을 부렸지만, 괜찮아 보였다.


막걸리와 편육


용문사에는 정말 사람들이 많았다. 은행나무를 보고, 절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한참을 그늘에서 쉬다가 내려왔다. 더운 날씨에 아이들은 무척 힘들어했다. 얼린 생수를 한 병 사줬는데, 얼마 안되는 물을 다 마셔버리고는 얼음이 녹기를 기다리느라 어쩔줄을 몰라했다. 조금 녹은 물을 서로 먹겠다고 싸우고 난리였다.


늦은 오후 용문 전철역 근처로 돌아와 배를 채웠다. 아이들에게는 막국수를 시켜주고, 난 지평막걸리와 편육을 시켰다. 캬~ 막걸리가 정말 맛있었다. 고기도 맛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집에 가지말고 막걸리를 몇 병 더 마시고, 하루 더 놀고 싶었지만, 그래도 다음날은 집에서 좀 쉬어야 나도 출근하고, 아이들도 학교와 어린이집을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꾹 참고 전철을 타고 돌아왔다.




이번 짧은 여행은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제법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 맛있게 먹는 모습 등을 보면서 좋았고, 잠시 일상을 벗어나 강과 산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아이들 역시 집을 떠나 새로운 곳을 다녀보고, 낯선 곳에서 자고, 맛난 것들을 먹어서 좋았던 듯하다.


또 자주 여행을 가고 싶지만, 주말 일정이 많고, 주머니 사정도 썩 좋지 않기 때문에 바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못할 것 같다. 하긴 자주 가면 그게 뭔 의미가 있겠나, 가끔 가야 그걸 바라보며 일상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빼놓을 수 없는 책 이야기















이번 여행 틈틈히 읽은 책, 크기도 작고, 얇아서 여행갈때 넣어가기 딱 좋다.(시리즈 이름이 팸플릿이다!) 하지만 내용은 머리 식히러 떠난 여행과는 썩 맞지 않았다. 제목만 보면 착한 전기에 대해 말할 것 같지만, 사실 정부와 핵마피아가 얼마나 나쁜 놈들인지를 알려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괜히 읽다가 열만 받았다!


어쨌거나 전기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이왕 전기를 쓸 수 밖에 없다면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 책이 현재 이 나라의 발전(전기 생산)과 송전(전기 운반) 시스템에 대해 가장 쉽고 자세하게 알려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6월 13일에는 청계천 2가 한빛광장에서 '탈핵시민행동의 날' 행사가 있다. 세월호 문제도 그렇고, 에너지 문제도 마찬가지다. 자꾸 모여서 소리를 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지들이 잘해서 그런 줄 알고 더 지들 배만 채우게 마련이다. 주말이지만, 좀 덥겠지만 그래도 모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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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5-29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낯익은 노란 포스터를 감은빛님 서재에서 보다니 더욱 반갑습니다^^

감은빛 2015-05-29 18:53   좋아요 0 | URL
와! 아른님께서 낯익은 노란 포스터라고 말씀해주시니 정말 반가워요! ^^ 더 많은 분들이 이 포스터를 보고, 참여해주시고 혹 못 오시더라도 지지해주시고, 힘을 실어주셔야 할텐데요
 


쓰고 싶은 내용이 하나 있었는데,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포기한다. 아직 감정이 남아있어 이 내용을 어떻게 옮겨야할지 잘 모르겠다.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잘 옮기는 일은 늘 어렵다. 요즘은 짧은 기사 하나를 쓰는 일도 어렵게만 느껴진다. 보내고도 자신이 없다. 간혹 누군가가 잘 읽었다고 말을 걸어오면,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속으로는 재미없었다고 생각할까봐 불안하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썼던 기획안이나 보고서 류의 글도 이젠 부담스럽다. 욕심때문일거다. 아마도. 잘 쓰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때문에 글쓰기가 두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글은 계속 남는다. 언젠가 자료를 찾다가 오래전 내가 쓴 글을 발견하고, 급한 일도 미뤄두고 옛날 글들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저땐 저렇게 썼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간혹 '이런 글도 썼구나' 싶을 만큼 괜찮은 글도 없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내가 쓴 글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수준 이하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글쓰는 것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 비하면 말은 곧 사라진다. 듣는이가 잊으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부담이 덜하다. 말을 잘 하는 편은 못되지만, 어떤 행사나 프로그램의 사회를 보거나, 발표를 하거나, 강의를 하거나, 인터뷰에 응할 때 비교적 부담없이 결정하는 건 그런 이유다. 물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하거나, 발표를 하면 긴장하고 몸이 떨린다. 준비를 했음에도 내용이 잘 생각이 안나고, 평소 자주 쓰던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그 순간만 넘기면 괜찮다. 일단 말을 내뱉고 나면 조리있게 말을 잘하지 못했더라도 큰 부담이 없다. 듣는 이가 조목조목 따지고, 분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끔 일과 관련해서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글을 청탁받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내용을 잘 전달하려면 인터뷰에 응하는 것보다 내가 직접 쓰는 게 훨 낫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인터뷰 후에 나온 기사를 보면 내가 말했던 내용과 조금 달랐다. 심지어 아예 촛점이 어긋난 글도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러 온 기자는 대개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갖고 들어오기 때문에, 내가 전달하려는 의도와 안 맞는 경우가 많다. 그건 나 자신이 인터뷰를 하러 갈 때와 다녀와서 기사를 쓸때 늘 고민했던 부분이었다. 암튼 어떠한 상황에 대해 내 의견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글을 직접 써야할텐데 요즘 그게 두렵다. 과연 핵심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글을 쓸 생각만으로도 벌써 스트레스가 쌓인다.


















글쓰기나 말하기나 왕도는 없다. 그냥 많이 쓰고, 많이 말해야 조금씩 실력이 늘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늘 글을 잘쓰고, 말을 잘 하는 건 아주 먼 나라의 일인것처럼, 아주 먼 미래의 일인것처럼, 아니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인것처럼 느껴진다.


금요일이다. 아주 오랜만에 음주독서나 해볼까? 오늘은 무슨 맥주를 마시며, 무슨 책을 읽어볼까? 집에가면서 고민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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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5-22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 글들을 보게 되면 여러가지 생각이 들곤 해요. 용감하게 썼을 때가 더 그립기도하구요. 감은빛님, 지금쯤 어떤 맥주랑 어떤 책을 끼고 계실까요^^

감은빛 2015-05-24 12:27   좋아요 1 | URL
맥주는 클라우드였고, 책은 추리소설 선집이었어요. 새벽까지 읽고 아침에 집을 나서 여행왔어요~ ^^

해피북 2015-05-23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써놓은 오래된 글에 대한 불안감이 저두 있어요 가끔씩 제가 읽은 책에 대한 리뷰 읽다가 이건 도저히 못봐주겠다싶어 삭제한 글도 있구요 ㅋㅂㅋ, 그래두 가끔 조금 변한 모습도 보여서 이땐 이랬구나 생각해보기도 한답니다^~^ 음주독서 한번도 안해봤는데 저도 꼭 해보고 싶네요ㅋ

감은빛 2015-05-24 12:30   좋아요 0 | URL
오래전 글을 읽으면 가끔 놀랄때가 있어요. 저땐 저렇게 생각했구나 그런 부분이요. 음주독서 좋아요. 와인이나 맥주 정도는 그닥 취하지 않으면서 책의 분위기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더라구요. 책의 분위기와 잘 맞는 술을 골라야해요 ^^
 

늘 음식 관련 훌륭한 책을 내는 따비 출판사에서 신간이 나왔다. SNS 에서 출간소식을 접한 바로 그날 동네서점에서 책을 사서 주말 동안 읽었다. 완독을 한 건 아니고, 중간중간 건너뛰어가며 대략 3분의 2 정도 읽었다. 그리고 동네신문에 책소개 기사를 쓰기 위해 필요한 부분만 한번씩 더 살폈다.


다른 음식이 아닌 밥(쌀) 자체를 주제로 한 책이라 재미있었고, 재미있는 사실들이 많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탄화미가 우리나라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과 쌀이 다른 곡식에 비해 한반도에 늦게 전파되었지만 주식으로 자리잡게 된 이유에 대한 내용이 재미있었고, 그 뒤로 이어지는 밥의 문화사 부분도 하나하나 놓칠 것 없이 재밌다.


어려서부터 나는 밥만 좋아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가난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그냥 입맛이 그랬을 뿐이었을 수도 있는데, 늘 도시락을 먹고 나면 반찬은 남고, 밥은 모자랐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친구들보다 두 배는 큰 밥통을 갖고 다녔다. 키도 작고, 덩치도 작은 녀석이 밥은 남들보다 두 배를 더 먹었으니 친구들도 놀라곤 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그 밥을 다 먹고도 컵라면 하나를 더 먹었다. 친구들은 나와 밥 먹기를 좋아했다. 늘 반찬이 남았기 때문이다.(남들처럼 맛있는 반찬을 싸다닌 것은 아니지만)


대학 시절 동기들과 놀러간 MT에서 내가 밥통을 끌어안고 먹는 모습을 보고 친구들은 기겁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 서울에 자취하던 동기 집에 놀러가려고 연락했더니, 그 동기는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밥만 많이 해놓으면 되지?"


그런데 이 책에 나온 조선 후기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밥 그릇과 국그릇의 크기가 상상을 초월했다. 밥 먹는 양이 많이 줄어든 지금이라서 그런 걸까? 예전이었으면 별로 놀라지 않았으려나? 요즘 나는 그 시절에 비하면 반의 반의 반의 반도 안 먹는다. 한창 많이 먹었던 20대 후반 시절까지 나는 보통 한 끼에 두 그릇 반, 좀 입맛이 땅기면 서너 그릇 이상의 밥을 먹을 때도 많았지만, 30대부터는 한 그릇 반이 보통이었고, 30대 중반 이후로는 양이 더 줄어서 한 그릇 이상 먹는 일이 거의 없었다. 40대에 접어든 지금은 반 그릇 정도가 적당량이다.
















한편 이 책에서 '구석기 식단'에 대해 언급하는 걸 봤다. 간헐적 단식 이후로 이젠 구석기 식단이 유행이 된건가? 이 구석기 식단이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충 설명을 보니 [다이어트 진화론]에 나오는 이보(EVO) 다이어트와 비슷한 것 같다.


이 책은 딱 몇몇 부분만 발췌해서 읽었는데, 당시에는 제법 일리있는 주장이라 여겼다. 특히 내가 밥만 많이 먹었던 과거를 생각해보면서 더 와닿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금 밥 먹는 양을 확 줄인 것도 이 책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의견과 구석기 시대처럼 곡물 섭취는 확 줄이고 수렵, 채집 시대의 식단처럼 먹어야 한다는 의견이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흥미롭다.


작년 가을 이후로 약 6개월간 제대로 운동을 못했다. 늘 바쁘다는 핑계 때문이다. 어쩌다 생각나면 한번씩 집에서 운동을 했지만 규칙적으로 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현재 내 몸매를 보면 생각보다 양호하다. 예전처럼 밥을 많이 먹지 않아서 일 것이다.(여전히 술과 안주는 많이 먹고 있지만 ㅠㅠ)


우리나라 사람들은 당연히 밥을 먹고 살아야 하지만, 많이 먹지 않고 적절하게 먹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밥이 아닌 다른 것을 위주로 먹어야 한다는 의견은 조금 극단적인 느낌이 들어서 별로다. 그냥 먹고 싶은 것을 그때 그때 먹고 살면 좋지 않을까? 과하지 않게 먹고, 필요한 만큼 몸을 움직여서 일하고 운동하면 좋을 것 같다. 내일은 일터 근처 헬스클럽을 찾아가봐야겠다. 여름이 다가오니 규칙적인 운동을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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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5-12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쌀밥을 씹어 먹으면 특유의 고소한 맛이 느껴져서 어렸을 때 반찬 없이 밥만 먹으려는 오기를 부린 적이 있었어요. 엄마한테 반찬 투정을 했는데 그 반항심에 밥만 먹으려고 했던거죠. 요즘은 쌀밥 대신에 현미가 섞인 잡곡밥을 먹는데 씹어 먹는 버릇이 몸에 배여서 그런지 씹을 때 입맛에 감도는 현미의 맛이 좋습니다.

감은빛 2015-05-12 21:35   좋아요 1 | URL
밥을 오래 씹으면 고소하고 단 맛이 느껴지죠. 그래서 밥만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얘길 들었어요.

저도 완전 현미밥을 먹은지 여러해가 되었어요. 물론 저는 밖에서 밥 먹을 일이 많아서 집밥을 자주 먹지는 못하지만, 현미밥이 진짜 맛있죠!

무해한모리군 2015-05-13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먹고싶은걸로 조금먹자 주의입니다. 저희 딸도 밥만 좋아합니다 ㅎㅎㅎ

나물에 생선이 제일 좋아하는 상차림인데 늘 밖에서 먹으니 현실은 오트밀에 우유 아니면 삼각김밥 뭐 이렇네요...

감은빛 2015-05-14 16:21   좋아요 0 | URL
우리 둘째도 밥만 좋아하더라구요.
저처럼 되지 않도록 반찬도 좀 먹으라고 설득은 해보는데, 쉽지 않아요.

나물에 생선, 좋죠! 근데 나물 나오는 식당은 진짜 찾아보기 어렵더라구요.
생선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로는 먹긴 하지만 꺼림칙하긴 합니다.

암튼 모리님 잘 챙겨드시길 바랍니다!
 


아침에 눈을 떠, 작은 아이가 머리 맡에 놓아둔 색종이 카네이션을 보고 오늘이 어버이날이구나 생각했다. 날짜 감각도 없이 살고 있구나. 하루가 어찌 가는지, 일주일이 어찌 가는지, 한 달이 어찌 가는지 모르고 살고 있구나 싶었다. 숙취로 멍한 머리를 억지로 굴리며 오늘의 스케줄을 떠올려본다. 문득 어린이날은 휴일인데, 어버이날은 왜 휴일이 아니지 생각해본다. 그럼 스승의날도 휴일로 해야하나? 차라리 무슨날 무슨날을 다 휴일로 만들면 어떨까? 적게 일하고, 적게 쓰고, 많이 쉬고, 많이 놀고, 많이 사색하는 삶을 살고 싶다. 바람은 이렇지만 현실은 그나마 적게 쓰는 것 외에는 실현가능성이 없다. 그것도 적게 버니까 적게 쓸 수 밖에 없어서 그런거지 적정하게 버는데 적게 쓰는 건 아디다. 요즘은 적게 벌면서도 자꾸 많이 쓰게 되어 위기감을 느낀다.


씻고 나와 책상 위에서 큰아이의 입체엽서를 발견했다. 빨간 카네이션을 만들어 붙여놓고 짧은 글을 적어놓았다. 나도 모르게 입가가 올라간다. 요즘 유일하게 웃는 시간은 아이들을 생각할 때와 아이들과 함께 지낼 때 뿐이다. 외출복을 입고, 시계를 차다가 노란 리본을 발견했다. 세월호 유가족과 어버이날이라는 두 단어가 겹쳐지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숨이 나왔다. 이런 게 삶인가? 이런 게 삶이어야 하나? 이런 세상을 살아야 하나? 시계를 차다말고 털썩 의자에 주저않는다.


일주일 전, 그러니까 노동절 밤 안국역 근처에서 경찰에게 맞았던 기억이 난다. 캡사이신을 눈에 정통으로 맞기를 여러번,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맞았고, 비닐 우비가 너덜너덜 찢어지도록 경찰과 몸싸움을 했고, 그 와중에 한 경찰이 유가족을 붙잡고 흔드는 걸 막다가 얼굴을 한대 맞았다. 정확히 말하면 스쳐맞았다고 해야하나. 안경이 벗겨져 땅에 떨어질 뻔 했으나 다행히 가방끈에 안경테가 걸려 대롱거리다가 떨어지는 걸 붙잡았다. 맞아서 아프지는 않았으나 화가 났다. 감히 경찰이 시민에게 주먹을 휘둘러? 그것도 얼굴에? 지금도 그 경찰의 이죽거리는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헬멧 속에서 나를 노려보며 비웃던 그 표정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새벽에 경찰이 밀고 들어와 차도에서 인도로 밀렸을 때, 함께 있던 친구가 앞으로 나가려던 나를 붙잡았다. "내일 아이 생일이라며? 아빠가 생일은 챙겨줘야지. 연행되면 어쩌려구?" 평소라면 절대 연행 걱정 말라고, 20년 넘게 운동하면서 집회에서 연행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큰소리 쳤겠지만, 그 순간만은 나도 모르게 순순히 친구 말을 듣고 뒤로 빠졌다. 그래 아이 생일을 유치장에 갇혀서 보낼 순 없지.


4월 18일 밤, 나는 운 좋게 광화문 여러개의 차벽을 통과하여 광화문 앞 유가족이 농성하던 곳까지 넘어왔다. 광장을 가득 메운 수많은 사람들 중에 거기까지 온 사람은 극히 소수였다. 백여명? 많이 잡아도 이백명 가량 될 듯했다. 내가 넘어오고 나서 대략 30분 후에 경찰은 병력을 밀어붙여 시위대를 저쪽 차벽 안쪽으로 몰아냈고, 사람들이 간신히 넘어오던 통로는 막혔다. 유가족과 거기까지 넘어왔던 인원들은 청와대로 행진을 시도했는데, 경복궁 담벼락 모퉁이 쪽에서 경찰 병력에 가로막혀 더이상 나가아지 못했다. 얼마동안 경찰들과 대치해 앉아 계시던 유가족들 옆에 함께 앉아 있었다. 그 분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걸 들으며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 분들이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래 이런 말도 안되는 뭐같은 상황에 처해있지만, 이 사람들도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면 되었을, 우리 주변을 스쳐갔을 그런 사람들이었다.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고, 실종자를 건져내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었다.


오늘 어버이날이자 자신의 생일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세월호 유가족 뉴스가 나왔다. 아침의 그 무거운 마음이 다시 몇 백배 더 무거워졌다. 그저 참담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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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사람


어제 은행에 갔다가 창구 담당자가 한 마디 한다. "혹시 이사장님 동생분이세요? 분위기가 닮았어요." 동네에서 이런 저런 사람들과 닮았다는 말을 종종 들었지만, 이사장님과 닮았다는 말은 처음이다. 이사장님께 전하면 과연 뭐라고 하실지 궁금하다. 암튼 그 덕분인지 어떤지 몰라도 필요한 서류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는데도, 일단 문서를 발급받는데 성공했다. 빠진 서류는 나중에 제출하기로 했다.


동네에서 자주 만나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형이 한 명 있다. 그 형도 나를 무척 아끼는 편이라 둘이 만나면 별 말 없이 그저 술잔만 기울여도 마음이 편안한 그런 사람이다. 본인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둘이 닮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한 술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닮았다는 얘기를 여러번 들었고, 또 어떤 선배님은 그 형을 나로 착각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 적도 있다.(그 전에 그 선배님께 책을 선물한 적이 있었다.) 그 형은 나보다 본인이 훨씬 더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나와 닮았다는 얘길 들으면 꽤 기분이 나쁜가보다. 한번은 그 형의 딸과 우리집 딸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누가 더 잘 생겼는지를 묻더라. 우선 우리 딸들에게 물었다. "잘봐. 너네 아빠하고 삼촌 중에 누가 더 잘 생겼어?" 큰아이는 조금 생각해보더니 "아빠!"라고 답했고, 작은아이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곧바로 "아빠!"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 형은 "아니, 아빠라고 편들지 말고, 객관적으로 잘 생각해보라~"고 기대했던 답이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큰아이는 "그래도 아빠."라고 했고, 작은아이는 "객관적으로가 뭐야?" 라고 물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한 그 형은 이제 자신의 딸에게 물었다. "아빠랑 여기 감은빛이랑 둘 중에 누가 더 잘 생겼어?" 그 아이는 장난기 머금은 웃음을 지으며 한참을 생각하더니 "감은빛!" 이라고 답하고 도망갔다. 부모에게 '객관적으로' 라는 요구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늘 우리 엄마, 아빠가 제일 멋지다고 생각하며 자랐으니까. 그 집 아이는 아마 아빠랑 장난치려고 그런 답을 했을 것이다. 


녹색당이 창당하던 해에 청소년 당원으로 가입한 동생이 하나 있다. 동생이라고 표현하지만 나와 나이차이가 스무살 가까이나는 친구라서 본인은 나를 '쌤'이란 호칭으로 부른다. 아무리 '형'이라고 부르라고 해도 듣지 않는다. 이 친구와도 닮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괜히 미안한 기분이 든다. 싱싱하고 파릇파릇한 젊은 친구가 늙은 사람과 비교 당하고, 닮았다는 말을 들으니 말이다. 한번은 앞서 얘기한 형과 나와 이 친구까지 셋이 한 자리에서 술을 마시는데, 누군가 "셋이 너무 닮았다!" 고 말했다. 제일 기분나빠 한 것은 그 형이었다. 정장 가장 기분나빠해야 할 녀석은 (속으로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그저 가만히 웃고만 있었다.


작년 지방선거 때, 우리 동네에서 기초의원 후보로 나온 후배 선거운동을 함께 할 당시에는, 후보와 닮았다는 소리도 들었다. 또 후보 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선거운동을 할 때, "혹시 후보 본인이시냐?" 는 질문도 가끔 들었다. 재밌는 건 선거운동을 위해 찍은 프로필 사진이 너무 잘 나와서 대부분 후보를 한번 보고 사진을 한번 보고 고개를 갸웃 했다는 거. 후보가 늘 "사진이 저랑 많이 다르죠."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잘 생각해보면 나와 닮았다고 거론된 사람들 대부분 안경을 꼈다는 것 외에는 닮은 점이 그닥 없다. 분위기가 조금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 수는 있겠다. 그건 아마 우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느끼기에 그럴 수 있는데, 우리를 잘 아는 사람들도 닮았다고 하는 건 좀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필독서






 










오래 기다렸던 책이 나왔다. 사실 책이 나오자마자 멋지게 소개해야지 맘먹고 있었는데, 정작 기다렸던 책이 나왔을 때 한창 바빠서 알라딘에 들어올 짬이 없었다. 멋진 서평을 써야지 생각했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으니 더 늦기 전에 소개라도 해야겠다.


책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최초의 책에서부터 고대,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책도 좋아하고, 역사도 좋아하는데 무려 책의 역사를 다룬 책이라니! 이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고, 널리 소개해야 할 책이다!


개인적으로 중세 시대 이야기들이 참 재미있었다. 중세 수도원의 필사실 풍경과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이 퍼지는 과정, 르네상스 시대 필사본과 활판인쇄본이 서로 공존하다가 마침내 활판인쇄본이 대세로 굳어지고, 필사본이 쇠락의 길을 걷는 과정 등이 흥미로웠다.


책을 좋아하는 알라디너들에게 무조건 권하고 싶은 책이다!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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