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있었던 기억들
살다 살다 별일을 다 겪어본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래 살다보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의 일을 겪기도 한다. 가만히 그런 일들을 꼽아보면 생각보다 많다고 느껴진다. 그 모든 기억들을 다 끄집어내려면 1박2일도 모자랄테지만, 아주 인상적인 것만 떠올려보면 다음과 같다.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대들다가 두들겨 맞고 집을 나왔는데, 갈데가 없어 거리를 방황하다가 밤늦게 친한 친구 집에 찾아갔다가 다시 집으로 끌려간 기억. 그 친구 엄마와 우리 엄마 역시 친한 친구 사이였다. 당시 나로서는 집을 나간다는 행위를 스스로 저질렀다는 것도 무척 의외였지만, 그 친구 부모님들께서 나에게 그렇게 따뜻하게 잘 대해주시고, 뒤로 우리집으로 연락해 나를 끌려가게 만들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다.(물론 지금은 당연히 이해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 분단 대항 축구경기에서 MVP로 선정되었던 일도 의외였다. 운동을 좋아하지만, 무슨 운동이든 잘하는 편은 못되었다. 말하자면 운동신경이 없는 편이라고 할까. 축구를 좋아하지 않고 자란 남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어렸을 때는 축구한 기억 밖에 없었다. 그러나 열심히 한다고 누구나 잘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재능이 없는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반에는 축구에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이 많았다. 가장 잘하는 친구는 그 유명한 "스피드가 기술입니다"의 김주성을 연상할 정도로 빠르고 발재간이 뛰어났다. 그런 친구들을 제치고 우승에 가장 기여도가 높은 MVP를 내가 받은 것은 무척 의외였다. 나는 최후방 수비수로서 센터라인조차 넘은 적이 거의 없었다. 한 경기에 몇 골씩 넣었던 친구들보다 공로를 인정받았던 것은 거의 골을 먹지 않도록 상대 공격수를 철저하게 마크하고 결정적인 찬스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살면서 겪은 의외의 순간들 중에는 어둡고 아픈 기억들도 많다. 패싸움과 파출소, 경찰서, 검사실, 사회봉사 등 폭력과 연관된 잊고 싶은, 그러나 잊을 수 없는 기억들도 많다. 맨몸으로 칼을 든 상대와 맞섰을 때의 떨렸던 기억, 여러 명에게 둘러쌓여 두들겨 맞던 기억, 당시 마음에 두고 있던 여성 앞에서 일대 다수 싸움에 휘말렸다가 무사히 빠져나왔던 기억 등,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러고 살았을까 싶은 기억들이다. 학생운동과 환경운동을 겪으며 활동가의 삶을 살면서도 의외의 순간들은 많았다. 아니 역사적인 순간들이라고 표현해야 더 적절할까? 새만금, 고속철도, 방폐장 등 2000년대 초반 국책사업이란 이름으로 벌어진 자연생태계 파괴의 순간들에 맞서 싸워왔다.
문화적인 경험으로는 고등학교 때 잠시 재미로 다녔던 교회 연극에서 예수 그리스도 역을 맡았던 기억이 의외였다. 난 그때나 지금이나 신은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믿고 있지만, 당시에는 예쁜 여학생들이 많았고, 맘껏 기타를 치고 놀 수 있어서 교회에 다녔다. 아마 여름 수련회 때로 기억하는데, 고등부 학생들이 연극을 준비했고, 당시 주연은 아니지만 아주 비중이 높은 예수 역을 맡았던 기억이 난다. 잘 어울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대학시절에는 동아리에서 흥부전이라는 고전을 영어연극으로 올렸는데, 주연인 흥부를 맡았다. 역시 이유는 잘 어울린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또래 친구들보다 폭력에 많이 노출되었던 내가 늘 착해보인다는 평을 받아, 예수나 흥부 등의 배역을 맡았던 건 지금 생각해도 의외다.
패션쇼!
얼마 전 나는 생애 처음으로 패션쇼 모델이 되었다. 서울시에서 '쿨비즈 패션쇼'를 여는데, 여기에 시민 모델들을 참가시킬 생각이고, 그 대상을 에너지컨설턴트들 중에서 구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서울시 관계자로부터 나를 콕 찍어서 모델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사실 시청 관계자의 요청을 구청 관계자가 전달했으므로 직접 들었던 것은 아니다.) 에너지컨설턴트를 해보니 대부분 50대~60대 여성들이었다. 젊은 사람도 드물었고, 남성도 드물었다. 나는 상대적으로 젊은 남성이었다. 콕 찍어서 요청할만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패션쇼라니! 그런 걸 내가 잘 할수 있을 리가 없다고 여겼고, 업무 시간이란 이유로 거절했다. 그쪽에서 꼭 해야한다고 부탁을 거듭해왔다. 나는 결제권을 가진 이사장님을 비롯한 직속상관들을 핑계로 다시 거절했다. 그런데 이사장님이 참여해보라고 말씀하셨다.
준비과정에서 좀 어이없는 일이 있었다. 패션쇼 진행을 맡은 업체 담당자라고 연락이 왔는데, 무척 불친절한 태도였고, 낮에 일하는 사람에게 당일 패션쇼에서 입을 옷을 골라서 사진을 보내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것도 그날 중으로 보내달란다. 난 지금 일하는 중이고, 요구하는 적절한 옷이 나에게 있는지, 없는지 옷장을 뒤져봐야 한다고, 난 평소 정장을 입지 않고 일하기 때문에 와이셔츠를 입어본 기억이 아주 오래다. 우리 집에 와이셔츠가 있는지 없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출근해서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날 중으로 사진찍어 보내달라는 요구는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퇵근을 해야 집에가서 옷을 살펴볼 수 있고, 옷을 찾는데도 시간이 걸리니 빨라야 다음날 오전에야 보내줄 수 있다고 답했다. 어쨌거나 난 바쁜 업무시간을 쪼개 억지로 참여하는 것이지만 하나도 얻는 것이 없었다. 전문모델이 아니기에 모델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보상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불친절하고 딱딱한 태도는 도데체 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일 패션쇼가 열릴 무대로 갔다가 한번 더 놀랐다. 시민모델이 여려명일거라는 구청 담당자의 말과 달리 시민모델은 거의 없었다. 특히 에너지컨설턴트 중에는 없는 것 같았다. 50대, 60대 여성이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생이라는 20대 여성 파트너와 함께 연인이라는 설정으로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헉! 이건 또 뭔가? 이 나이에 20대 여성과 연인이라니! 그 이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얼마나 기분이 나쁠까? 그런데 그는 의외로 적극적이었다. 이런저런 연출을 제안했다. 난 조금 당황하고 어색했지만, 내가 뒤로 빼는 인상을 주면 그에게 더 미안할 것 같아서, 열심히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한편으로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은 면도 있었다.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젊고 아리따운 그의 모습과 기운이 옆에 있는 내 기분도 절로 좋게 만들었다. 무대 워킹도 생각보다 부담스럽지 않았다. 일단 리허설 때는 관객이 없었으므로 부담이 없었다. 무대 총괄하는 담당자도 시민모델이기 때문에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계속 잘 한다고 말해주고, 자연스럽게 부담없이 하라는 말을 해줬다. 내 파트너는 자연스럽지 않고, 어색하다며 몇 가지 설정들을 제안했다. 우린 워킹 도중 무대 한가운데에서 하이파이브를 했고, 손을 잡고 걸어 보기도 했고, 내가 덥다는 몸짓을 보이면, 그가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아주는 몸짓을 연습하기도 했다. 퇴장 전에는 내가 그의 어깨를 감싸고, 그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리허설은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끝냈는데, 한참 기다린 후에 본 무대에 오르려니 무척 긴장되었다.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카메라들이 문제였다. 방송 카메라를 비롯한 크고작은 카메라들이 내 몸짓 하나하나를 쫓고 있었다. 카메라를 의식하는 순간부터 발걸음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고, 팔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고, 머리가 무겁게 느껴졌다. 발과 몸과 팔과 머리가 각각 따로 노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침착하자! 이보다 훨 사람들이 많은 무대에도 서 봤잖아. 비록 패션쇼는 처음이지만, 연극과 노래, 연설과 진행 등 다양한 역할로 크고 작은 무대에 섰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긴장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아마 몸은 무척 뻣뻣했을 것이다! ㅠㅠ
패션쇼가 끝나고 종편에서 인터뷰 요청을 해왔다. 나와 파트너를 각각 인터뷰했는데, 기자의 질문이 완전 달랐다. 속으로 느꼈다. 아마 나는 통편집 당해 아예 방송에 나가지 않을 것이고, 그는 그래도 한두마디 정도 나갈 거라고. 그동안 방송 인터뷰를 몇 차례 해보면서 깨달은 사실이다. 전문가 인터뷰로 딱 정해놓고 하는 게 아닌 이상 핵심적인 내용을 말하는 사람은 잘 내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별 내용이 없는 말을 해도 비주얼이 되는 사람이 무조건 방송에 나오더라. 종편 따위에 인터뷰를 하지 말걸, 괜히 인터뷰해놓고 기분만 나빴다.
아마도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패션 모델 체험이 그렇게 끝났다. 나는 보상으로 플라스틱 텀블러 하나를 받았다. 5분 리허설하고, 1시간 반 넘게 기다리고, 5분 본 무대에서 걸었던 댓가다. 아, 처음 들었던 것과 달리 시민모델이 거의 없었던 대신 전문 모델들이 제법 많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키가 크고 늘씬한 몸매에 걸음도 시원시원했다. 그래 모델은 저런 아이들이 하는 거지. 나처럼 키 작고 늙은 아저씨가 아닌 젊은 청년들이 하는 거지. 나도 모르게 기가 죽었다.
동네 몇몇 사람들에게 내가 패션쇼에 나갔다고 소문이 났다. 정말 다행인 것은 나를 비롯해 내 주위에 종편을 보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아무도 패션쇼를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