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만나 서로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보면 예전에 어딘가에서 어떻게 인연을 맺었던 경우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게 아주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비교적 최근 일인 경우도 있겠다. 또 그 인연에 대해 한 쪽만 기억하거나, 둘 다 기억은 하는데 서로에 대해서는 잘 몰랐거나, 둘 다 기억을 못하는 경우도 있겠다. 어쨌거나 나중에 그런 인연을 깨닫게 되면 누구나 반가움을 느끼지 않을까? 아, 물론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겠다.


학생운동, 사회운동 판에 있으면 이런 거 자주 겪는다. 어딘가 현장에서 마주쳤던 인연인데, 당시에는 모르는 사이였다가 나중에 인사를 하고, 관계를 쌓아가다 보면 그때 함께 있었던 분이셨군요. 하고 깨닫는 것이다. 이 판이 워낙 좁고, 이 판에 계속 있다보면 언젠가는 마주칠 확률이 높으므로 이런 경우는 그야말로 비일비재하다.


워낙 많은 사람들을 만나니까 그들을 일일이 기억하는 것은 힘들다. 한번 스쳤던 인연이라도 곧 잊고 있다가 나중에 다른 계기로 만나 관계를 쌓다가 알고보니 그때 나랑 이렇게 만났던 인연이었구나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게 둘 다 서로 몰랐다가, 아~ 그랬군요. 하면 그래도 괜찮은데, 한 쪽만 기억하는 경우라면 좀 민망할 때가 있다. 몇차례 글에서 언급했듯이, 난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라 난감하고 민망한 경우가 많다. 분명 처음 만났을 거라 생각하고 인사를 건넸는데, 상대방이 언제 어디서 만났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가끔은 있다. 그럼 뒷머리를 한번 긁적거리고, 제가 머리가 나빠서 잘 기억을 못해요. 죄송해요! 이러고 만다. 어차피 고민하고 기억을 더듬어봐야 생각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전의 인연을 둘 다 기억하고 다시 만났을 때 반갑게 인사하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주 오래전에 만났다가, 긴 시간 서로 볼 일이 없다가, 최근 종종 마주칠 일이 생기는 인연들이 있다. 동향 사람, 대학 선배, 예전에 일했던 단체에서 알던 활동가 등이 있다.


한편 둘 다 서로 몰랐는데, 우연한 계기로 예전의 인연을 깨닫는 경우도 있다. 최근 내 기준에서 신기한 인연을 둘 발견했다. 하나는 이메일 계정을 정리하다가 찾았다. 쓰고 있는 포털 메일함의 용량이 다 찼다고 해서 오래된 메일들을 뒤지며 꼭 필요한 것들을 놔두고, 나머지는 다 지우고 있는데, 몇 년 전에 도착한 메일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당시 내가 몸담고 있었던 잡지사 기자로 지원하는 이력서에서 최근 자주 만나는 사람의 이름을 찾은 것이다. 흔한 이름이 아니라서 조금 놀랐다. 설마 하고 문서를 열어 사진을 봤더니, 그 사람이 맞았다. 와! 이 사람이 그때 당시에 기자로 지원했던단 말야? 놀라운 일이었다. 어쩌면 이 사람을 몇 년 일찍 회사에서 만났을 수도 있었겠다 생각하니 신기했다.


또 하나는 오늘 우연히 찾았다. 저녁에 회의를 했는데, 나에게 엄청나게 많은 일이 떨어졌다. 안그래도 오늘 할 일이 많아 야근을 해야겠다 싶었는데, 거기에 더 많은 일들이 얹어진 것이다. 할일이 많은 수록 더 일을 하기는 싫어진다. 일의 규모가 어느정도 인지, 얼마나 하면 언제 끝날지 예측이 되어야 하는데,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양의 일이 떨어지면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조금 끄적끄적 문서를 쓰다말다 했는데,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아서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페이스북에 이름을 입력하면 삼국지 영웅중 한 명에게 대입하는 심심풀이용 게임(?)을 올렸길래, 이름을 넣어봤다. 내 이름을 넣었더니 유비가 나왔고, 페이스북에서 사용하는 덧이름인 감은빛을 넣었더니 서서가 나왔다.


이름을 갖고 몇 가지 생각을 하다가 호기심에 나와 이름이 같은 페이스북 이용자 얼마나 있는지 검색해봤다. 명단이 나왔다. 흔한 이름이 아니라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았다. 이번에는 이름을 구글에 넣고 검색해봤다. 이미지 검색으로 들어가니, 아이들 사진이 나왔다. 이건 지역 시민신문에 연재했던 글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 사진, 이건 녹색당에서 일인시위 했을 때 사진이었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큰 아이가 아직 갓난쟁이였던 시절의 사진이 나왔다. 클릭했더니 무슨 여성웹진 기사가 나왔다. 그제서야 육아휴직했던 시절에 전화인터뷰 했던 기억이 났다. 기사 제목이 '육아 휴직으로 아이 키우는 아빠'로 붙은 짧은 기사였다. 그래 그때 전화 인터뷰를 했었지 하고 그냥 지나칠 뻔 했는데, 맨 밑에 기사 작성한 사람 이름이 낯익었다. 흔치 않은 이름이었고,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았다.


당시 전화 인터뷰는 어느 후배 활동가의 부탁으로 응했고, 전화를 건 기자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그러니까 십년쯤 전에는 몰랐던 그를 대략 삼사년 전에 처음 만났던 것이고, 그 당시에 우리는 서로 그 인터뷰의 존재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아마 내가 우연히 그 기사를 검색하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당시에 전화 인터뷰를 했던 사실은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요즘 간혹 마주치는 그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줄까 말까 생각해본다. 아마 전해주면 무척 반가워하며, 특유의 활짝 웃는 웃음을 보이겠지. 어쩌면 내 어깨를 살짝 치며 "어머! 그 사람이 당신이었어요?"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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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5-06-20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그러니까 감은빛님이 육아휴직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셨단 거네요. 그런 분을 거의 처음 봐서 정말 반갑네요...!! 저도 그런 인연을 얘기하자면 경향신문에 처음으로 글을 청탁받을 때 전화건 사람이 그보다 14년 전 매거진 X에서 저랑 삐삐에 대해 인터뷰를 했던 분이었어요. 겁나 반가웠다는...

감은빛 2015-06-20 19:07   좋아요 0 | URL
제가 버는것보다 아내가 버는게 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현실적인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14년만의 인연이라니 무척 반가우셨겠어요!

마녀고양이 2015-06-20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 난감한 일이 있었네요. 상대는 반갑게 인사하는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을 못 해내는거예요. 둘이 어디서 봤을지 맞춰보는데, 그 사람도 저를 만난 사실이나 나눈 이야기를 기억하지만 어디서 봤는지 기억 못 해서, 결국 그렇게 헤어졌는데.... 몇 달 후에 갑자기 만난 장소가 기억나더군요. 사람의 기억이 참으로 신기해요.

육아 휴직하고 아이를 키웠던 감은빛님, 멋져요...

감은빛 2015-06-20 19:09   좋아요 0 | URL
저는 그런 일이 너무 많아서 다 말하려면 끝도 없어요. ㅠㅠ

마녀고양이님께 멋지단 소릴 들으니 무척 기분 좋아요! ^^

다락방 2015-06-20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얘기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 사람이 당신이었어요?˝ 라니, 그 반응이 너무 낭만적으로 느껴져서 말이지요. 헤헷.

저는 제 직업상 얼굴과 목소리를 잘 외우는 게 꼭 필요한데 그렇지 못해서 질책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건 뭐 어떻게 안되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감은빛 2015-06-20 19:11   좋아요 0 | URL
실제 반응이 어떨지는 모르지요. 그동안 만나온 감으로는 아마 그러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무래도 반응이 궁금해서 꼭 얘기해야겠네요! ^^
 


며칠 전 '사회적 글쓰기' 강의를 들었다. 활동가로서 다양한 사회현상에 대해 글을 써야 할 일이 많지만, 어렵고 복잡한 여러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가 어렵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재밌게 쓰기도 어렵다. 게다가 내가 가진 문제의식을 잘 전달하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다. 최근 그런 고민을 계속하던 차였기 때문에 이 강의가 무척 반가웠다. 물론 강의 한번 듣는다고 이 고민이 해결되리라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이건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의 문제가 아니라 몸으로 체득해야 하는 경험의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잘 깨닫지 못했던 어떤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강의는 내 생각과는 달랐다.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실망스러운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시간만 지나갔다. 공자도 3명이 지나가면 적어도 1명은 스승이 있다고 했건만, 아무리 모자라는 강의라도 반면교사로 삼을 내용이라도 있건만, 이 강의에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아! 딱 하나 있다면 나는 저런 강의를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었다. 글쓰기에 대해 뭘 얻은 것이 아니라, 강의 준비하면서 어떤 준비를 어떻게 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 강의에서 하나 거슬렸던 것은 글을 잘 쓰기 위한 노력으로 '필사'를 하는데, 강사는 그 필사에 대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안 그래도 별 내용이 없어서 실망하고 있었는데, 이 발언을 듣고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들어 발언 신청을 하고, 한번 호흡을 고르고 의견을 말했다. "좋은 글을 필사하면, 자신도 모르게 그 좋은 글이 가진 다양한 요소들을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올바른 맞춤법, 문장력, 문체, 글의 흐름, 구조 등에 대해 저절로 공부하는 효과를 얻는다. 필사를 해본 사람은 글을 잘 쓰고 못쓰고를 떠나서 아주 기본적인 부분에서 실수하지 않는다. 그래서 글쓰기 공부를 하는 사람이 필사를 한번이라도 해보는 것은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위와 같이 말한 것은 아니지만, 대략 이런 내용으로 의견을 제시했다. 그리고 강사가 뭔가 반론을 제기할 것이라 생각하고 기다렸다. 어떤 반론이 나올지 궁금해하면서, 거기에 대한 재반론을 어떻게 펼칠 것인지를 머릿속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사는 그저 나의 필사 경험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는 그냥 다른 내용으로 넘어가 버렸다. 내 의견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잔뜩 긴장하고 기다렸는데, 반론이 없었으므로 맥이 빠졌다.


내 필사 경험은 그리 많지 않다. 난 사실 필사라는 행위에 대해 배우거나 인지하고 글을 베껴 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좋은 글을 따라 쓰면서 필사를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을 거라고 본다. 내가 좋아하는 시, 문장, 글귀 등을 공책에 베껴 쓰는 사람들. 첫 시작은 아주 실용적인 동기 때문이었다. 단편소설을 쓰려고 몇 가지 줄거리를 구상하고 있었는데, 글의 첫 부분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가 고민이었다. 나도 그렇고 다른 대부분의 독자들도 첫머리에서 확 휘어잡지 못하면 그 글을 더 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재밌게 읽었던, 감동적이었던, 작품들의 첫 부분을 베껴 쓰기 시작했다. 어떤 작품에선 단 한 줄, 어떤 작품에선 몇 문장, 어떤 작품에선 아예 몇 페이지를 베껴 쓰기도 했다. 그러다가 점차 단편 하나를 다 베껴 쓰기도 했고, 어느 작가의 단편집을 베껴 쓰기도 했다. (얇은 책이었는데, 2/3 정도를 필사했다.)


나중에 이렇게 좋은 글을 베껴 쓰는 걸 필사라고 부르고, 필사가 글쓰기 공부의 아주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훨씬 나중에 신경숙 작가가 '난쏘공'을 필사했다는 글을 어딘가에서 읽었다. 사실 신경숙 작가는 내 인생의 아주 중요한 시점에서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아니 그 작가가 아니라 그 작가의 작품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한때 아주 좋아했던 아이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신경숙의 데뷔작이었다. 아마 앞서 말한 첫 머리 베껴 쓰기에 포함된 작품 중에 신경숙의 단편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두 세 개의 작품 첫머리를 필사한 기억이 난다. 거기엔 90년대 대표적인 단편소설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가장 많은 작품이 포함된 작가가 아마 윤대녕, 은희경, 김형경, 하성란이었을 것이다.


나는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파는 편이다. 한 작가에게 빠지면 다른 건 안 읽고 그 사람 작품만 다 찾아 읽는 편이다. 작가로서 신경숙을 좋아한 기억은 없다. 그래서 초기 작품 몇 개, 단편 몇 개를 읽었을 뿐이다. 이렇게 작가로서는 나에게 큰 의미가 없지만, 신경숙이란 이름은 나에게 어떤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의 아이,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귀밑머리를 넘기며 수줍은 듯 나를 바라보던 아이, 무어라 날 놀려대고 나서 깔깔 웃던 그 아이와 보낸 시간들이 마치 영화 필름처럼 머릿속에서 재생되곤 했다. 나에게 신경숙이란 이름은 나의 뇌를 향해 그 아이와의 추억을 쏘는 방아쇠인 셈이다. 다만 오랜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어느 날부터는 그런 연상작용도 차츰 없어지기 시작하더라. [엄마를 부탁해]라는 베스트셀러 덕분에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이름을 읽거나 듣던 시절에는 이미 그 연상이 거의 사라진 후여서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만약 그때까지도 그 연상이 자주 일어났다면 아마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아이를 떠올리며 담배 몇 가치를 태웠으리라.


이번 신경숙 표절 사태를 보면서 아주 오랜만에 그 아이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뭐 표절에 대한 신경숙과 창비의 변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그럴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그 기사를 보면서 아주 오랜만에 옛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와 동갑이니 이젠 중년의 여성이 되어있을 그이는 내 기억 속에서는 영원히 여고생으로 남아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흩날리며 나를 뒤돌아보고 웃는 그 아이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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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6-18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신경숙님이 난쏘공을 필사하고 한국문학전집을 읽는 3개월동안 외출을 일절하지 않았다던 기사를 읽은 적 있어요 그 시간에 자신은 마음의 텃밭이 생겼다던 이야기가 너무 좋아 나도 그런 모습을 닮고싶다는 생각 참 많이 했답니다.
이번 기사를 보며 설마하고 있는데 사실이라면 참 속상할거 같아요
그런데 강사분의 태도에 정말 속상하셨겠어요... 어떤 근거도 없이 필사가 좋지 않다니 저두 그 이유가 궁금해지네요^~^

감은빛 2015-06-18 12:01   좋아요 0 | URL
해피북님도 그 글 읽으셨군요.
저도 그 글 읽고 나중에 난쏘공을 필사해봐야지 생각했으나,
그 당시에는 이미 문학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있던 시절이라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네, 강사님이 뭐든 근거를 대거나, 반론을 해주셨다면 좋았을텐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좋지 않은 방법이라고 하니 좀 황당하더라구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cyrus 2015-06-18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작가부터 글쓰기 고수라는 명함을 내민 사람들까지 글쓰기 방법에 관한 책을 많이 냅니다. 글 잘 쓰는 방법이 다양해서 무조건 한 가지 방법이 좋지 않다고 주장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봐요. 차라리 장단점을 같이 알려줬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을 겁니다.

감은빛 2015-06-18 12:02   좋아요 0 | URL
네, 시루스님 말씀처럼 장단점을 알려주는 방식이라면,
저도 분명 수긍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강의 참여자와 함께 건전한 토론을 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시루스님 말씀 고맙습니다!

2015-06-18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8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8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5-06-18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경숙님의 표절 사태, 맘이 아파요.

감은빛 2015-06-18 12:03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표절 그 자체보다 지금 대처 방식을 보니 더 맘이 아프네요.ㅠㅠ

마녀고양이 2015-06-18 12:07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그래요.

CREBBP 2015-06-18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필사를 안해본 입장이라, 필사, 뭐가 도움이 될까 라는 생각이 들지만, 하지 마라라고 강사가 얘기하려면 적어도 논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냥 근거 없는 자기 생각을 얘기하는 거잖아요? 글쓰기 강의가 많아지면서 쓸모없는 글쓰기 강의도 같이 늘어나는 것 같군요.

감은빛 2015-06-19 14:4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기네스님.
그렇죠. 무슨 의견이나 주장에는 근거가 있어야 할 텐데요.
반론 제기를 그렇게 쿨하게 넘겨버리니 좀 어이가 없더라구요.

필사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건 아닙니다.
그저 좋은 글이라 생각되는 글을 베껴 써보면 그게 필사지요.
그냥 눈으로만 읽는 거랑은 좀 다르더라구요.

transient-guest 2015-06-20 0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필사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와는 별개로 신경숙 작가의 표절사태는 큰 문제라고 봅니다.

감은빛 2015-06-21 23:37   좋아요 0 | URL
네, 신경숙 작가의 표절은 큰 문제지요.
많이 알려진 경우였다고 하는데, 쉬쉬해왔다니 그게 더 충격이구요.
이제라도 크게 이슈가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검은 머리 외국인
이시백 지음 / 레디앙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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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이야기의 배경이 이 나라가 아닌 저 멀리 어딘가의 이름도 생소한 나라가 되어버린 이유를 들었다. 아니 근데 까멜리아라는 나라가 있기는 한가? 글을 쓰려고 검색해보니 없다. 아니 저자가 글머리에서 말한 것처럼 지금 이 시간에도 시시각각 새로운 나라가 생겼다가 없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니 어쩌면 '실제로 있는지 알수 없지만 검색한 결과에는 없었다!'라고 표현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서두에 나오는 까멜리아의 역사를 읽으면서 역시 이시백이라고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짧은 글에 이시백 선생의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해학의 정신이 모두 잘 담겨 있었다. 아 정말 이래서 이시백 선생의 글은 무조건 읽을 수 밖에 없다. 


역대 독재자들을 외국 이름으로 바꿔 놓았는데, 쓱 보면 누굴 말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이승만은 '세이만'으로, 박정희는 '다사오 준장'으로 표현했다. 글머리에는 이름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한 언급도 있다. "대머리가 벗겨진 군인 출신이 제 동기와 번갈아 대통령 자리를 해먹다가 쫓겨났다."는 문장이다. 본문에는 이름도 나온다. 낯선 이름이고 전두환과 노태우의 이름과 직접적인 연관을 쉽게 찾지 못해 그냥 넘어갔는데, 내용 중에 제 식구를 잘 챙겨서 절과 감옥에 잠시 갇혀 있어도 주위 측근들이 끝까지 충성하는 누군가와 아무도 챙기는 이 없이 늙고 병들어 있는 누군가를 비교하는 부분이어서 이들이 바로 전두환과 노태우로구나 싶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노조원으로 은행 매각을 반대하다가 해고당해 이리저리 구르다가 현재 사채업자가 된 주인공 루반의 일상에서 시작한다. 실제 사채업자가 이렇게 돈 없이 궁상맞게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루반은 참 찌질하고 궁상맞게 살아간다. 이혼 당해 아이와 떨어져 살면서 양육비와 생활비를 제때 챙겨주지 못한다고 전처에게도 잔소리를 듣는다. 이야기의 배경은 IMF로 어려운 시기인데, 그 시기에 사채업자들도 저렇게 어려웠으려나? 오히려 합법적인 금융권보다 훨씬 더 형편이 좋지 않았으려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뭐 실제로 어떠했는지 지금 알 수 없으니 넘어가자.


루반과 같이 은행을 다녔던 옛 동료들을 중심으로 은행 매각에 앞장섰던 이, 반대 투쟁에 앞장섰던 이, 반대하지만 행동하지 못하고 동료가 해고당할 때 속으로 미안한 감정만 느꼈던 이 등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의 실체를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들 각자는 권력과 탐욕 그리고 정의와 생존을 위해 노력한다. 이런 이야기 전개 역시 이시백 선생이 가진 장점이라 볼 수 있다. 개성이 강한 다양한 인물들, 평면적이 아닌 입체적인 인물들, 그들이 이리저리 얽혀서 예측할 수 없게 진행되는 이야기 덕분에 책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다.


미국계 사모펀드이자 산업자본인 유니온페어가 재정상태가 건실한 까멜리아 은행을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 수치를 조작하고, 주가를 조작해 헐 값에 날로 먹은 이야기, 그리고 나중에 엄청난 이득을 취한 뒤 팔고 빠지는 이야기, 그래놓고 유니온페어가 국가를 상대로 ISD(투자자-국가 소송) 소송을 걸 예정이라는 이야기, 초기 은행 매각 승인 당시에 외자 유치라고 떠들어댔지만 사실 매각에 쓴 돈은 국내 재계 유력 인사들의 비자금이었다는 이야기


이거 너무나도 익숙한 이야기 아닌가? 까멜리아라는 어디있는지도 모를(아니 존재하는지도 모를) 나라 이야기가 왜 론스타 이야기와 똑같지?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꿀꺽 했다가 다시 엄청난 시세차익을 챙겨 도망간 후,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ISD 소송을 걸었다. 그 1심 재판이 최근(2015년 5월) 있었지만, 정부는 모든 정보를 통제해 국민들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당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자금이 외국 자본이 아닌 국내 유력 인사의 돈이었다는 이야기와 뭐가 다른가?


긴장감 있는 전개와 두껍지 않은 분량 덕분에 책을 손에 쥔 후, 거의 쉬지 않고 단숨에 읽었다.(중간에 아이들 밥 챙겨주느라 한 20여분 손에서 놓았다.) 한 3시간 쯤 걸렸던 것 같다. 읽는 중에 어려운 경제 용어와 개념들 덕분에 조금 머리가 혼란스럽긴 했다. 그래도 큰 줄기를 따라가는데는 무리가 없었다. 이시백 선생도 원고 쓰시면서 많이 어려웠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덮고 너무 많은 생각들이 머리속을 떠다녔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딱 뭐라고 할만큼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아직도 그 상태에서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그저 답답한 마음에 담배만 땡길 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중 재계 유력 인사들(바로 검은머리 외국인들)이 각각 누구를 모델로 등장하는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매각 저지 공대위에 속한 인물들에 대해서는 대략 모델이 되는 사람들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설령 작가가 그렇게 현실의 인물을 모델로 쓰지 않았다 하더라도 분위기 상 매치되는 인물들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죄 외국 이름이라 게다가 문학에서 흔히 접하는 익숙한 영미권 이름이 아니라서 좀 거슬렸다. 나라 이름과 기업이름 등도 낯설어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맨 앞에서 말했듯 왜 가상의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상정하고 글을 썼는지는 알겠지만, 그래도 이건 그냥 우리 이름으로 썼으면 훨씬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겠다 싶다. 예를들어 아까 말한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한 내용도 이름이 익숙하지 않아, 자칫 그게 군부독재 절친들 이야기라는 걸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아직도 이시백 선생의 이름을 보면 지하철에서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를 읽다가 난데없이 웃음보가 터져 주위로부터 일제히 묘한 시선을 받았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아, 정말 이 책을 공공장소에서 읽는 것은 '나 미친 사람이오!' 하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누가 말을 죽였을까]는 절대 공공장소에서 읽지 않고, 집에서 야금야금 읽었다. 이런 류의 책은 단번에 읽어줘야 맛인데, 야금야금 찔끔찔끔 읽으려니 도무지 맛이 나지 않았다. 이 책에서도 이시백 특유의 해학 코드가 숨어 있어서 반가웠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는데, 옆에서 만화책을 읽고 있던 큰 아이와 동화책의 그림을 보고 있던 작은 아이가 "왜?", "아빠 왜 웃어?"라고 물었다. 왜 웃긴지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도저히 이 녀석들에게 설명할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아빠가 너희들을 위해 이 책을 잘 보관해둘테니 나중에 읽어보거라. 왜 웃을 수 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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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있었던 기억들


살다 살다 별일을 다 겪어본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래 살다보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의 일을 겪기도 한다. 가만히 그런 일들을 꼽아보면 생각보다 많다고 느껴진다. 그 모든 기억들을 다 끄집어내려면 1박2일도 모자랄테지만, 아주 인상적인 것만 떠올려보면 다음과 같다.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대들다가 두들겨 맞고 집을 나왔는데, 갈데가 없어 거리를 방황하다가 밤늦게 친한 친구 집에 찾아갔다가 다시 집으로 끌려간 기억. 그 친구 엄마와 우리 엄마 역시 친한 친구 사이였다. 당시 나로서는 집을 나간다는 행위를 스스로 저질렀다는 것도 무척 의외였지만, 그 친구 부모님들께서 나에게 그렇게 따뜻하게 잘 대해주시고, 뒤로 우리집으로 연락해 나를 끌려가게 만들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다.(물론 지금은 당연히 이해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 분단 대항 축구경기에서 MVP로 선정되었던 일도 의외였다. 운동을 좋아하지만, 무슨 운동이든 잘하는 편은 못되었다. 말하자면 운동신경이 없는 편이라고 할까. 축구를 좋아하지 않고 자란 남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어렸을 때는 축구한 기억 밖에 없었다. 그러나 열심히 한다고 누구나 잘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재능이 없는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반에는 축구에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이 많았다. 가장 잘하는 친구는 그 유명한 "스피드가 기술입니다"의 김주성을 연상할 정도로 빠르고 발재간이 뛰어났다. 그런 친구들을 제치고 우승에 가장 기여도가 높은 MVP를 내가 받은 것은 무척 의외였다. 나는 최후방 수비수로서 센터라인조차 넘은 적이 거의 없었다. 한 경기에 몇 골씩 넣었던 친구들보다 공로를 인정받았던 것은 거의 골을 먹지 않도록 상대 공격수를 철저하게 마크하고 결정적인 찬스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살면서 겪은 의외의 순간들 중에는 어둡고 아픈 기억들도 많다. 패싸움과 파출소, 경찰서, 검사실, 사회봉사 등 폭력과 연관된 잊고 싶은, 그러나 잊을 수 없는 기억들도 많다. 맨몸으로 칼을 든 상대와 맞섰을 때의 떨렸던 기억, 여러 명에게 둘러쌓여 두들겨 맞던 기억, 당시 마음에 두고 있던 여성 앞에서 일대 다수 싸움에 휘말렸다가 무사히 빠져나왔던 기억 등,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러고 살았을까 싶은 기억들이다. 학생운동과 환경운동을 겪으며 활동가의 삶을 살면서도 의외의 순간들은 많았다. 아니 역사적인 순간들이라고 표현해야 더 적절할까? 새만금, 고속철도, 방폐장 등 2000년대 초반 국책사업이란 이름으로 벌어진 자연생태계 파괴의 순간들에 맞서 싸워왔다.


문화적인 경험으로는 고등학교 때 잠시 재미로 다녔던 교회 연극에서 예수 그리스도 역을 맡았던 기억이 의외였다. 난 그때나 지금이나 신은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믿고 있지만, 당시에는 예쁜 여학생들이 많았고, 맘껏 기타를 치고 놀 수 있어서 교회에 다녔다. 아마 여름 수련회 때로 기억하는데, 고등부 학생들이 연극을 준비했고, 당시 주연은 아니지만 아주 비중이 높은 예수 역을 맡았던 기억이 난다. 잘 어울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대학시절에는 동아리에서 흥부전이라는 고전을 영어연극으로 올렸는데, 주연인 흥부를 맡았다. 역시 이유는 잘 어울린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또래 친구들보다 폭력에 많이 노출되었던 내가 늘 착해보인다는 평을 받아, 예수나 흥부 등의 배역을 맡았던 건 지금 생각해도 의외다.


패션쇼!


얼마 전 나는 생애 처음으로 패션쇼 모델이 되었다. 서울시에서 '쿨비즈 패션쇼'를 여는데, 여기에 시민 모델들을 참가시킬 생각이고, 그 대상을 에너지컨설턴트들 중에서 구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서울시 관계자로부터 나를 콕 찍어서 모델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사실 시청 관계자의 요청을 구청 관계자가 전달했으므로 직접 들었던 것은 아니다.) 에너지컨설턴트를 해보니 대부분 50대~60대 여성들이었다. 젊은 사람도 드물었고, 남성도 드물었다. 나는 상대적으로 젊은 남성이었다. 콕 찍어서 요청할만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패션쇼라니! 그런 걸 내가 잘 할수 있을 리가 없다고 여겼고, 업무 시간이란 이유로 거절했다. 그쪽에서 꼭 해야한다고 부탁을 거듭해왔다. 나는 결제권을 가진 이사장님을 비롯한 직속상관들을 핑계로 다시 거절했다. 그런데 이사장님이 참여해보라고 말씀하셨다.


준비과정에서 좀 어이없는 일이 있었다. 패션쇼 진행을 맡은 업체 담당자라고 연락이 왔는데, 무척 불친절한 태도였고, 낮에 일하는 사람에게 당일 패션쇼에서 입을 옷을 골라서 사진을 보내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것도 그날 중으로 보내달란다. 난 지금 일하는 중이고, 요구하는 적절한 옷이 나에게 있는지, 없는지 옷장을 뒤져봐야 한다고, 난 평소 정장을 입지 않고 일하기 때문에 와이셔츠를 입어본 기억이 아주 오래다. 우리 집에 와이셔츠가 있는지 없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출근해서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날 중으로 사진찍어 보내달라는 요구는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퇵근을 해야 집에가서 옷을 살펴볼 수 있고, 옷을 찾는데도 시간이 걸리니 빨라야 다음날 오전에야 보내줄 수 있다고 답했다. 어쨌거나 난 바쁜 업무시간을 쪼개 억지로 참여하는 것이지만 하나도 얻는 것이 없었다. 전문모델이 아니기에 모델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보상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불친절하고 딱딱한 태도는 도데체 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일 패션쇼가 열릴 무대로 갔다가 한번 더 놀랐다. 시민모델이 여려명일거라는 구청 담당자의 말과 달리 시민모델은 거의 없었다. 특히 에너지컨설턴트 중에는 없는 것 같았다. 50대, 60대 여성이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생이라는 20대 여성 파트너와 함께 연인이라는 설정으로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헉! 이건 또 뭔가? 이 나이에 20대 여성과 연인이라니! 그 이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얼마나 기분이 나쁠까? 그런데 그는 의외로 적극적이었다. 이런저런 연출을 제안했다. 난 조금 당황하고 어색했지만, 내가 뒤로 빼는 인상을 주면 그에게 더 미안할 것 같아서, 열심히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한편으로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은 면도 있었다.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젊고 아리따운 그의 모습과 기운이 옆에 있는 내 기분도 절로 좋게 만들었다. 무대 워킹도 생각보다 부담스럽지 않았다. 일단 리허설 때는 관객이 없었으므로 부담이 없었다. 무대 총괄하는 담당자도 시민모델이기 때문에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계속 잘 한다고 말해주고, 자연스럽게 부담없이 하라는 말을 해줬다. 내 파트너는 자연스럽지 않고, 어색하다며 몇 가지 설정들을 제안했다. 우린 워킹 도중 무대 한가운데에서 하이파이브를 했고, 손을 잡고 걸어 보기도 했고, 내가 덥다는 몸짓을 보이면, 그가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아주는 몸짓을 연습하기도 했다. 퇴장 전에는 내가 그의 어깨를 감싸고, 그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리허설은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끝냈는데, 한참 기다린 후에 본 무대에 오르려니 무척 긴장되었다.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카메라들이 문제였다. 방송 카메라를 비롯한 크고작은 카메라들이 내 몸짓 하나하나를 쫓고 있었다. 카메라를 의식하는 순간부터 발걸음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고, 팔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고, 머리가 무겁게 느껴졌다. 발과 몸과 팔과 머리가 각각 따로 노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침착하자! 이보다 훨 사람들이 많은 무대에도 서 봤잖아. 비록 패션쇼는 처음이지만, 연극과 노래, 연설과 진행 등 다양한 역할로 크고 작은 무대에 섰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긴장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아마 몸은 무척 뻣뻣했을 것이다! ㅠㅠ


패션쇼가 끝나고 종편에서 인터뷰 요청을 해왔다. 나와 파트너를 각각 인터뷰했는데, 기자의 질문이 완전 달랐다. 속으로 느꼈다. 아마 나는 통편집 당해 아예 방송에 나가지 않을 것이고, 그는 그래도 한두마디 정도 나갈 거라고. 그동안 방송 인터뷰를 몇 차례 해보면서 깨달은 사실이다. 전문가 인터뷰로 딱 정해놓고 하는 게 아닌 이상 핵심적인 내용을 말하는 사람은 잘 내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별 내용이 없는 말을 해도 비주얼이 되는 사람이 무조건 방송에 나오더라. 종편 따위에 인터뷰를 하지 말걸, 괜히 인터뷰해놓고 기분만 나빴다.


아마도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패션 모델 체험이 그렇게 끝났다. 나는 보상으로 플라스틱 텀블러 하나를 받았다. 5분 리허설하고, 1시간 반 넘게 기다리고, 5분 본 무대에서 걸었던 댓가다. 아, 처음 들었던 것과 달리 시민모델이 거의 없었던 대신 전문 모델들이 제법 많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키가 크고 늘씬한 몸매에 걸음도 시원시원했다. 그래 모델은 저런 아이들이 하는 거지. 나처럼 키 작고 늙은 아저씨가 아닌 젊은 청년들이 하는 거지. 나도 모르게 기가 죽었다. 


동네 몇몇 사람들에게 내가 패션쇼에 나갔다고 소문이 났다. 정말 다행인 것은 나를 비롯해 내 주위에 종편을 보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아무도 패션쇼를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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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6-12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의 모습이 있는 사진이 없어서 아쉬워요.

감은빛 2015-06-15 17:44   좋아요 0 | URL
키 작고 못 생긴 나이 든 아저씨 사진은 왜 궁금해 하세요? ^^
한편으로는 바빠서, 다른 한편으로는 종편을 찾아보고 싶지 않아서
그 패션쇼에 대해서는 더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저 젊고 아리따운 아가씨가 함께 셀카를 찍자고 해서 응했는데,
나중에 사진을 받고 보니 진짜 아저시 티가 팍팍 나서 좀 실망이었습니다. ㅠㅠ
 


동네에 잘 아는 사람이 조산을 해서 아기가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곧이어 헌혈을 부탁하는 연락이 왔다. 아기와 내 혈액형이 같다는 걸 알고 연락이 온 것이다. 뭔가 설명을 들었는데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여성은 안되고 남성은 된다는 말을 들었다. 어쨌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돕는것이 당연한 일. 하나 조건은 전날 술을 마시지 않았어야 한다는 것인데, 묘하게도 그 당시 몸이 좀 피곤하고, 일도 많고 해서 일주일째 술을 입에 대지 않았었다. 평소 일주일에 3~4일은 술믈 마시는 내게는 매우 드문, 깨끗한 피를 갖고 있는 시기였다. 또 하나는 헌혈의집이 저녁에 문을 닫기 때문에 바쁜 일과시간 중에 시간을 내야 한다는 점인데, 일이 밀려 야근을 하더라도 이건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억지로 시간을 만들었다. 


지정헌혈이란 단어는 처음 들었다. 한동안 헌혈을 안했지만, 좀 더 젊었을 때는 자주 했었다. 그래서 헌혈증을 꽤 많이 갖고 있었는데, 아는 선배의 친척이 큰 병에 걸렸다고 헌혈증을 기증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편으로 보내준 기억이 있다. 어쨌거나 그냥 헌혈을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환자를 지정해서 피를 뽑아 보내는 지정헌혈을 해야 한다고 들었다. 꼭 지정헌혈이라고 얘기해야 한다고 여러차례 신신당부를 듣고 헌혈의집을 찾았다.


요즘은 헌혈 전 문진을 전자문진으로 대체하더라. 꼼꼼하게 읽고 답을 다 하고 나니, 대기장소에서 좀 기다려야 했다. 차례가 되어 간호사에게 가니, 아까 전자문진으로 답했던 질문들을 다시 빠르게 물어보더라. 지정헌혈이라 피를 보낼 병원과 환자 정보를 알려줬다. 내 정보를 살펴보더니, 내가 총 몇 차례 헌혈을 했고, 마지막 헌혈이 언제였는지도 알려주더라. 마지막 헌혈 이후로 10년이 넘었더라.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나 결혼한 이후로 헌혈을 한번도 안했구나. 총 횟수는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두자리 숫자라는 것에 의의를 두고, 앞으로 가끔 헌혈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음 술을 자주 마셔서 쉽지 않으려나.


자리에 누으니 또다른 간호사가 와서 바늘을 꽂았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라고 해서 옛기억이 떠올랐다. 아직 학생이었던 시절 당시 여자친구와 데이트하다가 영화표를 준다기에 헌혈을 하게 되었다. 여자친구는 기다리고(아마 체질 때문에 헌혈을 못한다고 했던 듯) 난 헌혈을 했는데, 기다리기 지루하다고 빨리 하라고 해서 엄청 열심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보다 먼저 시작한 사람들보다 빨리 헌혈을 끝내고 영화를 보러갔던 기억. 


이번에도 바쁜 일정 중에 억지로 시간을 뺐던 터라, 빨리 끝내야지 싶어서 열심히 주먹을 쥐었다. 그래서였을까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친절한 간호사는 이제 거의 다 되어 간다고, 주먹을 쥐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난 맘이 급했지만, 간호사의 말에 따라 동작을 멈췄다. 선물을 고르라고 하길래, 좀 고민이 되었다. 종류가 꽤 많던데, 딱 이거다 싶은게 없어서 망설였는데, 아까 떠오른 옛날 기억에 따라 나도 모르게 영화표를 선택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지도 무척 오래되었다.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뭐였는지 기억도 안난다. 물론 영화표를 받으면서 바빠서 이걸 언제 쓰려나 후회를 하긴 했다.


헌혈은 끝났으나 침대에 7분인가 더 누워 쉬어야 한다고 했다. 맘이 급했지만 어쩔수 없이 기다렸다. 지루했다. 그리고 알람이 울려 내려왔더니 다시 대기실에서 10분을 더 쉬다 가야 한다고 했다. 음료수와 초코케익 과자를 먹고 한참을 기다리다 적당히 눈치를 보고 나섰다. 아까 친절하게 대해주던 간호사가 마침 지나가다가 떠나려던 날 보고 인사를 했다. 혹시 더 쉬다 가야한다고 말하려나 싶어 살짝 걱정했는데, 괜찮은지를 묻더니 함박 웃음을 보이며 배웅하더라. 저 친절한 간호사 때문에라도 다음에 또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일터로 돌아갔다.


책상에 앉아 일하는데, 이런저런 회의나 모임에서 자주 만나는 동네 활동가가 나를 찾아와서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인사를 전하더라. 뭐 선지국이라도 사줄까 묻길래, 괜찮다고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 거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며칠동안 그런 인사를 여러번 더 들었다. 의료생협의 이사장님은 고맙다고 기프티콘을 보내주셨다.


[허삼관 매혈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집에 있었는데, 늘 읽어야지 생각만하고 결국 손을 대지 못했다. 최근 어느 주말 아이들과 컴퓨터로 [허삼관 매혈기] 영화를 봤다. 거기서 허삼관을 병원으로 데려간 사람이 피를 팔고 나서는 순대를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기억났다. 퇴근해서 아이들을 만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순대를 사먹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오늘 피를 뽑았으니, 순대를 먹어야 해! 2인분을 사서 아이들과 맛있게 먹어야지. 순대만 먹기 그러니까 막걸리도 한 병 마셔야지. 아까 간호사는 술은 안된다고 했지만, 막걸리 한 병 정도야 괜찮겠지 생각하면서 분식집 앞까지 갔다. 순대를 주문하려다가 혹시 싶어 지갑을 확인했는데, 헉! 돈이 없었다. 어라, 왜 돈이 없지? 그제서야 한동안 현금을 찾아놓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주머니를 다 뒤졌다. 지갑엔 달랑 천원 지폐 한장, 주머니엔 오백원과 백원짜리 동전으로 딱 이천원이 있었다. 이거 정확하게 순대 1인분 값이다. 2인분은 먹어야 제대로 먹을텐데, 그렇다고 분식집에 카드를 내밀 수는 없어서 어쩔수 없이 1인분만 샀다. 막걸리를 살 돈도 없었다. 슈퍼에서는 카드 결제가 가능하지만, 겨우 천원 조금 넘는 막걸리 한 병 사고 카드를 내밀기는 미안했다. 결국 내 계획과는 달리 순대는 겨우 맛만 보는 정도로 끝났고, 막걸리도 마시지 못했다.


헌혈한 날에는 목욕은 안되지만, 가벼운 샤워는 괜찮다고 해서 잠들기 전 몸을 씻는데, 바늘을 꽂았던 곳에 피멍이 들어있다. 어라! 오래전 기억이긴 하지만 예전에는 헌혈했다고 피멍이 들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어찌된 일이지? 아마 바쁘다고 너무 빨리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서 이렇게 된 건 아닌가 싶었다. 그 외에는 이유가 없는 것 같았다. 이 멍은 대략 1주일간 있다가 사라졌다.


영화를 보고 나서 꼭 책을 읽어야지 생각했는데, 그러고 다시 며칠이 지나는동안 책에 손도 못댔다. 헌혈을 하고 온 날, 다시 이 책을 읽어야지 생각했는데, 다시 일주일 지나는 동안 또 손을 못댔다. 오늘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다짐한다. 이번에는 꼭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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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6-04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일 하셨어요~^^ 바쁜 와중이라 짬 내시기도 힘드셨을텐데 ㅎㅎ 감은빛님의 아이디의 의미 이제야 깨달았어요 ㅋ

감은빛 2015-06-12 02:32   좋아요 0 | URL
해피북님 고맙습니다!
제 아이디의 의미라면, 블로그 주소에 있는 영문 말씀인가요?
언젠가 어디선가 댓글에서 말한 기억이 나네요. ^^

chika 2015-06-05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빈혈이 심해서 헌혈은 시도해본적이 없네요. ㅠㅠ
그나저나 여전히 바쁘시고 여전히 좋은일은 빼먹지 않고 하고 계시누만요 ^^

감은빛 2015-06-12 02:38   좋아요 0 | URL
앗! 빈혈이 심하시다니!
쉽게 낫지 않는 증상일텐데, 몸관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늘 바쁘지만, 의미없는 날들을 꾸역꾸역 보내고있어요. ㅠㅠ

프레이야 2015-06-05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한 일 하셨어요. 쉽지않은 일이지요. 저도 허혈이라 헌혈은 못 한답니다. 정기적으로 헌혈하는 분 봤는데 처음 하게 된 동기도 지인의 어머니 수혈을 위해서였더군요. 허삼관매혈기는 읽어보시면 흡족해하실거에요. 최근 영화에선 다 표현되지못한 부분들이 웃프게도‥

감은빛 2015-06-12 02:35   좋아요 0 | URL
사실 별일 아닌데, 제가 글에 과장해서 쓴 거지요.
헌혈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저는 그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이죠.
그나마 젊은 시절 몇 번 하다가, 결혼 후 10년 넘게 한번도 안했던 사람인걸요.

허삼관! 하~ 진짜 아직 다 못 읽었네요. ㅠㅠ

양철나무꾼 2015-06-05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한편의 콩트를 보는것 같아요, ㅋ~.
알싸하니 톡 쏘는 것이 삿갓주 맛이 나는 거 아실랑가 몰라여~~~~~^^

감은빛 2015-06-12 02:36   좋아요 0 | URL
삿갓주는 무슨 맛일까요?
한 잔 쏘시죠! ^^

다락방 2015-06-05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헌혈을 하러 갔다가 빈혈이라 헌혈이 안된다는 말을 듣고 멘붕왔었어요. 이, 내가, 빈...빈혈이라고??? 제가 빈혈이 있다는 걸 믿을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아-

순대 1인분, 제가 옆에 있었으면 사드렸을텐데요. 막걸리도 같이요. 안타깝네요.

감은빛 2015-06-12 02:39   좋아요 0 | URL
빈혈이라니!
그런데 의외로 여성들 중에 빈혈이 많은 것 같아요.
제가 만나왔던 여성들 중에도 몇 명 있고,
아내도 빈혈이거든요.

반면 남성들 중에 빈혈이라는 말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설사 빈혈이라해도 말을 안 해서 모르는 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