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컸다
휴가 다녀와서 밀린 일을 하다보니 잠이 모자랐나보다. 컨디션이 나쁠때마다 재발하는 비염이 유난히 심했다. 게다가 에어컨으로 인한 냉방병이 겹쳤다. 작년 봄 알레르기성 비염이라는 판정을 받은 이후 한번에 약 1달치 약을 받아서 증상이 나타날때마다 약을 먹었다. 대략 3~4달 정도 동안 먹으면 약이 다 떨어지곤 했으니, 3~4일에 한번씩 비염 증상이 나타난 셈이다. 암튼 올해는 초봄에 1달치 약을 받아 지난 달 말에 다 먹었으니 약 5달 걸렸다.
비염 증상이 심한데, 약이 없어 병원에 갈 수 밖에 없었다.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늘 할일을 점검하고,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면서 기다렸다. 마침내 차례가 다 와서 진료실 앞 대기의자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 자리를 옮겼는데, 대기의자 옆에 놓인 체중계에 눈길이 갔다. 최근 운동을 다시 시작했는데, 체중이 얼마인지 궁금했다. 이건 체중 뿐 아니라 키도 잴 수 있는 것이었다. 신발을 벗고 발 모양에 올라서서 허리를 쭉 펴고 머리를 뒤쪽 막대에 갖다 댔다. 위에서 바가 내려오더니 내 머리를 탁 치고는 멈췄다. 내려서서 숫자를 봤다. 체중은 오히려 평소보다 더 늘었다. 음 휴가때 하도 잘 먹었던 게 아직 영향을 미치는 듯. 그리고 키를 보니 놀라웠다.
마지막으로 키를 쟀던 것이 언제였던가? 기억으로는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 때가 마지막이었다. 그때 숫자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잊을 수 없는 것이 내가 생각했던 높이에 살짝 못 미치게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내가 늘 생각하는 높이를 살짝 넘겼다. 당시와 비교해보니 약 0.7 센티미터 컸다.
그러고보니 약 1달 반 전에 몇몇 사람들과 담배를 피우다 키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났다. 그날은 두레생협 이사를 도와주고 손을 다친 날이었다. 이사를 도와줘서 고맙다고 두레 이사장님이 식사와 술을 대접했고, 같이 짐을 옮겼던 사람들과 함께였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형이 나보고 키가 커서 부럽다 했고, 나는 평소 그 형이 나와 비슷하거나 더 크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 말이 이상하다 여겼다. 그런데 그날 처음 만난 친구가 쓱 보더니 내가 더 크다고 말해줬다. 서로 숫자를 말했는데, 그 형이 내 키를 의심하면서 내가 그 정도 밖에 안되면 자기는 더 작다는 소린데, 아닐거라고 했다. 처음 만난 친구도 "에이 형님이 잘못 알고 계시겠죠. 더 커보이시는데요." 라고 말했다. 나는 아니라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20년 넘게 키를 재본 적이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오늘 확인해보니 당시 그들의 말이 맞았다. 비록 얼마 차이나지는 않지만, 그 기준이 되는 숫자는 간신히 넘겼다. 이게 20대에 큰 것인지, 30대에 큰 것인지 모르겠지만(설마 40대가 넘어서 키가 큰 것은 아니겠지?) 조금 더 키가 컸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쁘다.
스내치에 미치다
예전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액션영화를 보거나, 공포영화를 보곤 했다. 요즘은 운동하는 영상을 찾아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데, 특히 스내치 영상을 찾아 보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스내치에 빠진 건 재작년부터다. 크로스핏에 관심을 두고, 우리동네 크로스핏 전용 체육관을 알아봤다가 가격 때문에 낙심하고, 비교적 저렴한 핏니스센터에 등록해 동영상으로 배워가면서 운동을 시작했다. 결혼 전에는 나름 이것저것 운동을 했었는데, 결혼 후에는 제대로 운동을 하지 못했다. 해마다 근육은 탄력을 잃어갔고, 배는 늘어졌다. 새로 배우는 크로스핏은 무척 재밌었다. 어렸을 때 약수터에서 돌로 된 역기로 인상과 용상을 배워 들어올리곤 했었는데, 다시 역기를 제대로 공부하게 된 셈이다.
다시 운동을 시작하면서 내가 얼마나 기초가 안 되어 있는지, 내가 얼마나 체력이 약한지를 깨달았다. 당시 수많은 동영상을 검색해가면서 자세를 익혔는데, 인상적인 영상이 하나 있었다. 어려보이는 날씬한 여성이 무거운 바벨로 스내치를 하는데, 크게 힘들어하지 않으면서 연속으로 30개를 해내는 영상이었다. 그걸 보고 좀 충격을 받았다. 어렸을 때 역기를 처음 배웠을 때도 나는 용상(clean & jerk) 보다 역기를 한번에 들어올리는 인상(snatch) 를 더 좋아했다.
그 영상을 본 이후로 목표를 정했다. 그 여성이 들었던 무게로 30번 연속 들어올리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아저씨가 되어버린 내 몸은 어려운 스내치 동작을 쉽게 익히지 못했다. 오랜 시간동안 운동과 담쌓고 지낸 탓에 몸이 다 굳어 버렸고, 체력도 젊은 시절 같지 않았다. 그래도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했다. 스내치를 잘 하기 위해 스퀏(squat), 오버헤드 스퀏, 데드리프트(deadlift) 등도 열심히 익혔다. 하지만 제대로 성과를 내보지도 못하고 무릎을 다쳤고, 이후 몇 달간 운동을 하지 못했다.
그 다음해, 그러니까 작년 늦봄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성급하게 스내치에 집착하지 않고, 스퀏과 데드리프트로 차근차근 기초를 다져나갔다. 이 전략은 어느정도 효과가 있었다. 어느날 스내치를 해봤는데, 죽어라 연습하던 때보다 훨씬 부드럽게 자세가 나왔다. 다시 몇 주간 힘을 키워서 마침내 그 여성과 같은 무게에 도전해봤다.
결과는 연속 10회에서 멈췄다. 더 할 수는 있었지만, 힘이 모자라서 자꾸 자세가 흐트러졌다. 억지로 나쁜 자세로 횟수를 늘리는 건 나 같은 초급자에게는 썩 좋지 않다고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아마 억지로 했다면 15회에서 20회 사이 정도까지는 들어올렸겠지만, 무리하지 않는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 여성처럼 제대로 된 자세로 흐트러짐 없이 30개를 들어올릴 수 있을 체력을 다시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운동에 재미를 붙일 즈음 이번에는 일이 바빠져서 운동을 할 여유가 없어졌다. 한동안 정신없이 바빠 운동은 생각할 틈도 없었다. 그렇게 또 한 해가 지나갔다.
그리고 올해 운동을 다시 시작한 지 3년 차가 되었다. 계속 꾸준히 운동을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본을 만들어놓은 체력과 몸매는 어느정도 유지하고 있었다. 비록 바벨은 없었지만, 집에서 할 수 있는 가벼운 맨몸운동과 덤벨운동은 가끔씩 해왔다. 그리고 작년에는 케틀벨도 구입했다. 작년에 다니던 핏니스센터에는 케틀벨이 없었고, 수차례 구매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바벨도 낡은데다 수량이 부족했고, 정리운동에 필요한 케틀벨과 로잉머신도 없었지만, 빈 공간이 전혀 없이 머신만 잔뜩 차지하고 있는 다른 곳과는 달리 비교적 넓은 프리웨이트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거길 다닐 수 밖에 없었다.
직장인을 그만두고 다시 활동가의 삶을 선택하면서 몸은 더 바빠졌지만, 수입은 반토막이 났다. 고정수입이 줄어드니 경제사정이 확 나빠졌다.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비용과 먹고 사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이 이렇게 많이 드는지 몰랐다. 올해 계속 핏니스센터를 등록하려고 맘 먹었다가도 그냥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으로 최대한 버티다보니 어느새 8월이 되었다.
올해에는 과연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스내치 연습을 안한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다. 대신 요즘은 다양한 스내치 영상을 찾아보는 것이 낙이다. 올림픽 경기 장면, 크로스핏 체육관의 연습 장면, 크로스핏 대회 장면 등 찾아보면 수많은 영상이 있다.
휴가를 마치고 출근하는 첫날인 월요일 아침부터 회의가 있었다. 일요일 밤, 휴가가 끝난 것이 아쉬워 술이라도 한잔하고 자고 싶었지만, 내일 아침 회의 준비 때문에 두세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갑자기 세상일이 다 싫고 귀찮고 막 짜증이 났다. 그래서 스내치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한참을 보다가 한 영상을 발견했다. 여러명의 여성 크로스핏터들이 스내치와 클린 앤 저크와 데드리프트를 성공하는 장면을 모은 것이다. 출연하는 여성은 대략 10여명, 체육관도 다양한 것 같았다. 분량이 상당했다. 날씬하거나, 몸집이 좋거나, 어리거나, 나이가 든 여성들이 가볍거나 무거운 바벨을 힘겹게 들어올려 간신히 성공하는 장면들이었다. 그 성공의 기쁨이 묻어 있는 표정을 보는 것이 참 좋았다. 주위에서 박수를 쳐주거나 축하해주는 모습들도 담겨있었다. 마치 내가 목표를 이룬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잠자기 직전 또 발견한 영상은 러시아의 케틀벨 스내치 대회 영상이었다. 10분동안 케틀벨로 스내치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을 가리는 대회였다. 아직 앳되어 보이는 여성들이 참가했는데, 케틀벨을 들어올리는 속도가 장난아니게 빨랐다. 우승한 여성은 10분이 채 되기 전에 200개를 완성했다. 처음에는 크기만 보고 무게가 얼마 안되겠지 생각했다. (러시아 케틀벨은 무게가 달라도 크기는 똑같고, 미국 케틀벨은 무게에 따라 크기가 다르다.) 그런데 영상을 다시 돌려보니 아니었다. 상당한 무게였다. 이 영상을 보면서 바벨 스내치 뿐 아니라 케틀벨 스내치도 무척 매력적인 운동으로 느껴졌다. 목표가 하나 더 생겼다. 두번째 목표는 케틀벨 스내치를 같은 무게로 10분 안에 200개를 채우기. 아마 이 목표는 더 시간이 오래걸리지 싶다. 일단 케틀벨 스내치를 배워서 익혀야 하고, 그 무게를 들 수 있을만큼 힘을 키워야하고, 10분에 200개를 들 수 있을만큼의 힘과 기술을 익혀야 한다.
아, 갈길이 멀다. 하루라도 빨리 바벨 스내치와 케틀벨 스내치를 마스터하고 싶다. 내일이라도 당장 일터 가까이 있는 핏니스센터에 등록해야겠다.
도움이 될만한 책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 두 책의 표지에 케틀벨이 나온다. 역시 요즘 대세는 케틀벨 운동인가? [강한 것이 아름답다] 를 다시 읽으면서 케틀벨 데드리프트를 새로 배워 익혔다. 예전에는 데드리프트를 하고 싶어도 바벨이 없는 집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는데, 이 책 덕분에 요즘 케틀벨로 데드리프트를 하고 있다. 다만 케틀벨이 하나 밖에 없어서 점점 무게를 올려가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다시 핏니스센터에 등록하면 [남자는 힘이다] 에서 강조하는 운동들로 차근차근 기초를 만들어갈 예정이다. 스퀏, 데드리프트, 오버헤드 스퀏, 푸쉬 프레스 등이었던 걸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