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뉴스에서 흥미로운 연재를 발견했다. 임대차 계약이 만료한 후에 집 주인이 임차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경우,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과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글쓰신 분은 9월 말에 계약이 끝나 사전에 이사 나갈 것을 몇 차례 전달했고, 집을 부동산중계소에 내놨으나, 가격 문제로 다음 임차인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 다음 임차인이 정해지지 않아 집 주인이 보증금을 받지 못해도,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집 주인은 보증금을 현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이 집 주인은 추석 연휴를 핑계로 못 돌려주겠다고 했고, 그 후에도 계속 돌려주길 거부했다.
상황은 아직도 진행중이며, 총 3개의 기사를 읽으면서 과거 내 경험과 같거나 비슷한 점을 몇 가지 발견했다. 우선 계약서 상 집 주인과 집을 관리하며 집 주인 행세를 하는 사람이 다르다는 점이 같다. 이 기사에선 주인 행세를 하는 할머니의 아들이 법적인 소유주였고, 내 경우에도 주인 행세를 했던 할머니의 어린 아들이 법적 소유주 였던 적이 있었고, 또 영감의 딸이 법적 소유주였던 경우도 있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나이 드신 집 주인 중에 경우없이 억지를 쓰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고, 여러가지 이권 때문에 자식 명의로 돌려놓았지만, 실제 그 집의 주인은 그 할머니나 영감이라는 뜻이다. 지금까지 남의 집 살이 해오면서 딱 한번 괜찮은 집 주인 만났는데, 우리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비교적 젊은 분들이었다. 거의 대부분 집 주인이나 그 대리인들은 나이가 많았고, 그 나이만큼이나 경우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두번째는 집 주인이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하고, 언성을 높이고, 욕을 퍼붓는다는 점이다. 예전에 나도 몇 번이나 집주인 횡포 때문에 괴로웠다. 그들의 횡포와 일방적인 태도는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한겨울 몇 십년 만의 추위였다고 뉴스에서도 크게 다뤘던 그 밤, 보일러가 고장나 태어난 지 백일도 안된 큰 아이를 얼음판이 된 바닥에 누일수가 없어서 아내와 밤새 번갈아 안고 지새웠던 밤이 있었다. 다음날 보일러를 고쳐달라고 요구했더니, 세입자의 잘못으로 고장났으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보일러 기사님은 수명이 지나도 한참 지났기 때문에 고쳐도 임시 방편일 뿐이다. 아마 겨울을 다 나기 전에 또 고장이 날 것이라고 했다. 다시 어린 아기를 안고 집 주인에게 찾아가보일러 교체를 요구했으나, 무조건 세입자 잘못이니 못해준다는 말 뿐이었고, 계약서에 적혀있는 집 주인의 의무임을 강조했더니 아기를 안고 있는 나를 계단에서 밀어버리고, 욕을 퍼부었다. 사람을 민 것도 엄연한 폭력이므로 경찰을 불렀으나, 경찰은 집 주인과 화해하라는 엉뚱한 말만 늘어놓고 돌아갔다. 그 사이 그 집 딸이 또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퍼부었다. 맘 같아선 제대로 대응해서 버릇을 고쳐주고 싶었으나, 아직 어린 아기가 고생할 걸 생각하니 너무 불쌍해서 그냥 집 내놓고 이사나왔던 적이 있었다. 당시의 그 추위와 아기의 고생만 아니었으면 제대로 집 주인 애먹일 수 있었을텐데, 두고두고 아쉽다.
집 주인의 일방적인 태도는 그 집 뿐만 아니다. 녹물 때문에 3달을 넘게 싸웠던 집 주인도 어지간히 말이 안 통했다. 베란다 누수를 고쳐주지 않았던 주인도, 계약 만료 때문에 새 집을 알아보려고 계약금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무시했던 주인도 모두 임차인인 우리 말은 들어주지 않고 자신의 일방적인 요구와 태도만 고수했다.
나는 다행히 소송으로 간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두 세번 정도는 내용증명 보내고, 민사소송을 할 것이라는 예고를 보낸 후에야 상황이 해결된 적이 있다. 녹물 때문에 3달 넘게 애 먹였던 집 주인은 내용증명과 소송 예고를 받고 나서는 곧바로 달려와서 사과하고, 해결을 약속했다. 그냥 말로 할 때는 3달 동안 아이들을 고생시켜놓고, 소송 걸겠다고 하니 바로 달려왔다. 계약금 건도 비슷했다. 몇 번이나 말 바꾸고 약속을 지키지 않더니, 내용증명 보내고, 그 집에 얽힌 몇 가지 문제점을 갖고 소송을 걸겠다고 하니, 결국 태도를 바꿨다. 참 여러번 집 주인 횡포 때문에 변호사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그나마 나는 가까이에 물어볼 변호사 친구라도 있어서 이 정도였지, 만약 도움 줄 사람이 없었다면 훨씬 더 막막했을 것이다. 대학생 친구 한 명만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전태일 열사의 심정이 이해간다.
그래도 소송 전에 해결이 되었지만, 만약 끝까지 집 주인들이 버텼다면, 나도 아마 끝까지 누가 이기는지 가봤을 것이다. 당시 변호사 친구는 결국 소송으로 가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돈도 많이 들고, 막판에는 합의를 할 수 밖에 없게 될텐데, 원하는 만큼의 성과도 얻어내기 쉽지 않다고 얘기했지만, 나는 그럼에도 집 주인에게 소송을 걸어 이 상황의 잘잘못을 분명히 따지고, 충분히 괴롭게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이 기사의 글쓴이가 존경스러운 점은 망설임이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기사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어찌 망설임이 없었겠는가만 일정을 하나하나 곱씹어보면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찾아서 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대단하다!
세번째 공통점은 부동산 중계인의 태도다. 이 기사에는 부동산 중계인의 실수에 대해 짧은 언급이 있지만, 아마 이래저래 속상할 일이 많았을 것이다. 난 집 주인 운이 없었던 만큼 부동산 운도 없었는데, 앞서 한겨울 보일러 사건이 났던 집을 중계했던 부동산과는 주먹다툼 직전까지 갔었다. 이사 날짜는 휴일로 잡는 경우가 많고, 관례적으로 인터넷 뱅킹에 의한 이체로 잔금을 치루거나, 이사 나온 집 주인이 건네주는 수표를 받아 잔금을 치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사 나온 집에서 수표를 작은 단위로 여러장 끊어준 것이 아니라 큰 금액으로 달랑 한 장을 건네줬는데, 잔금으로 남은 돈과는 단위가 안 맞았다. 결국 수표를 쪼개어 잔금을 치뤄야 하는데, 은행은 영업을 하지 않고, 씨디기계에 수표를 입금해도 하루가 지나야 이체가 가능하다. 부동산 중계인은 이 점을 트집 삼았는데, 해서는 안되는 인격 모독성 표현을 하길래 따졌더니 다짜고짜 소리 지르고, 욕을 하더라. 그 중계인 경상도 사람이었고, 아주 익숙한 욕을 하길래, 나도 어릴때부터 한 욕하던 솜씨를 유감없이 들려줬다. 그 인간은 욕을 듣더니 주먹을 휘두르려고 했고, 난 웃으면서 잘 됐다고, 당신 합의금으로 잔금 치르면 되겠다고 때려보라고 했다. 그 와중에도 욕은 계속 들려줬다. 결국 장모님께서 중재하셔서 잔금 건은 해결되었으나, 그 중계인은 나의 사과 요구를 묵살하고 끝까지 자기 억지 주장만 펼쳤다. 그 동네 오래 살지 않았지만, 오가면서 그 중계인 만날 때마다 눈 앞에서 침을 뱉어주고, 욕을 들려주고 지나갔다.
녹물 문제가 있었던 집 부동산 중계인도 비슷했다. 처음엔 아주 좋은 집이라고 간도 쓸개도 다 내줄 것처럼 친절하게 대하더니, 막상 계약서 작성하고, 중계 수수료 지급하고 나면 남의 일이 되어 버린다. 처음 보여줄 당시에 녹물이 나오지 않았던 건 분명히 부동산이 우릴 속였던 것이었다. 초기에는 집 주인은 아예 연락을 받지 않았고, 부동산에 요청해서 해결해달라고 했는데, 해주겠다고 대답만 하고는 며칠을 그냥 보냈다. 몇 번이나 확인 전화를 걸었지만, 늘 연락 중이니 기다리라고만 했다. 결국 한 달이 지난 후에야 좀 언성을 높여 따졌더니, 오히려 중계인이 나에게 화를 냈다. 자기가 그 알량한 복비 몇 푼 받고 언제까지 심부름을 해야 하냐고. 녹물 문제는 분명히 집 주인이 해결해 줘야 할 중대한 하자이고, 당신은 이 건은 중계한 사람이기 때문에 해결해줄 책임이 있다고 했더니, 오히려 먼저 욕을 퍼붓는다. 전화로 욕 배틀을 하다가, 다음날부터 찾아갔더니 갈 때마다 자릴 비우고 없었다. 이후 내 전화는 아예 받지 않았다. 자신의 중계 책임을 다 하지 않고 오히려 의뢰인에게 욕을 퍼붓는 중계사라니! 참 이 나라는 집 주인들 만큼이나 엉터리 중계사들이 많다.
연재 기사 3편을 읽으면서 10년이 훌쩍 넘어, 15년이 다 된 기간 동안 서울이라는 어마어마한 인구 밀집 지역에서 세입자로 살아왔던 숱한 고생들이 머리속을 스쳤다. 예전에 내가 쓴 글을 다시 찾아 읽어보니, 어느 분이 댓글로 그 주인들도 사람이니 분명 좋은 면이 있을 거라고, 잘 얘기해서 풀라고 남겼다. 지금도 변함없는 생각이지만, 당시에 나는 시스템의 문제라고 답을 썼다. 분명 그 사람들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일 것이다. 가족으로서, 친구로서 말이다. 하지만 집 주인으로서는 인간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짓을 저지른다. 아마 누구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촛불 시민들에게 곤봉과 날선 방패를 휘두르고, 군화발로 짓밟는 경찰들도 가족들에게는 자상한 아버지이자, 다정한 남편일 것이다. 여기자를 성추행하고, 이권을 넘겨 뇌물을 받아먹는 정치인이나 권력자들도 그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는 분명 좋은 사람일 것이다. 핵 발전소를 잔뜩 지어 배를 채우는 핵 마피아들도 역시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일 수 있다. 그들이 악마여서, 철저하게 나쁜 인간이어서 그런 짓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상황에 맞게 자신의 이익을 취할 뿐이며 그 짓이 그리 나쁜 짓이 아니라고 믿을 것이다.
예전에 평생 대중교통을 한번도 타 본적이 없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알 수 없다. 만원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것이 어떤 일인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이 썩어빠진 대한민국에서 집 주인이라는 슈퍼 갑은 을인 세입자의 처지를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자신이 옳고 잘났을 뿐이다.
암튼 이 기사를 쓰신 분이 하루 빨리 임차보증금을 돌려받고 연재를 중단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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