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학원생 인터뷰


한국 대학원 석사과정이나 박사과정 학생들의 인터뷰는 여러 번 했었다. 다 기억도 못할 정도로 자주 있었다. 그때마다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고 자료도 많이 챙겨줬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았는지 몰라도 일본 나고야 대학 환경대학원 학생이라고 하면서 인터뷰 요청이 이메일로 왔다. 메일을 받자마자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했는데, 그 학생이 중간에 영어 기사 하나를 링크로 보내줬다. 열어보니 내 이름과 활동 내용이 담긴 기사였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싶었던 것이,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그 영어 기사를 썼다는 기자와 인터뷰를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언론 인터뷰도 제법 많이 했었는데,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해도 대체로 이름을 보면 아, 그때 했었지 하고 떠올릴 수 있을 정도이긴 한데, 이 영어 기사를 쓴 한국인 기자 이름은 너무 낯설었다. 게다가 그 내용도 낯설었고, 심지어 사실관계가 잘못된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 영어 기사만을 쓰기 위해 나를 인터뷰 했을 리는 없을테고, 같은 내용의 한글 기사를 영어로도 올린 것일텐데, 검색해봐도 그 기자 이름으로 된 한글 인터뷰 기사는 없었다. 나를 인터뷰 한 기자가 기사를 올리기 전에 나에게 최종적으로 사실관계 확인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그런 요청이 있었다면 저 사실관계가 틀린 내용을 그대로 뒀을 리는 없다.


내 생각에는 다른 인터뷰 기사와 내가 기고한 기사를 바탕으로 저 기자가 영문 기사를 쓴 것이 아닐까 싶다. 암튼 그 영문 기사 덕분에 일본 대학원생이 나와 우리 조합의 활동 내용을 알게 되었고, 내게 인터뷰 요청을 해온 것이다. 나는 당연히 인터뷰에 응했고, 사전에 질문지를 보내주길래, 아주 꼼꼼하게 상세하게 답변을 달아서 미리 보내줬다. 질문들이 조금 평이했고, 구체적이지 못하고 일반적인 내용도 있어서, 그냥 간단히 답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도 있어서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을 달았다. 그래서 답변을 적은 문서가 7쪽이 넘는 분량이 나왔다. 


다만 이 답변을 영어로 작성할 정도의 여유는 없어서 그냥 한글로 적었는데, 그 대학원생들이 일본어로 다시 번역하는데 애를 먹었을 것 같다. 물론 요즘은 번역기가 잘 되어 있긴 한데, 일상 용어가 아닌 전문 용어들의 번역은 또 그리 신통치 않은 것 같아서 세세하게 더 찾아보고 교차 검증을 해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도 그쪽에서 일본어 원문과 함께 영어와 한글로 질문을 적어줬길래, 한글 질문이 좀 애매하거나 이상한 문맥이 있어서 문장 단위로 교차 검증을 하면서 정확한 질문을 파악했었다.


예전에 일본 대학생들하고 국제교류행사를 준비할 때에나, 출판사에 있을 당시에 해외에서 도서 주문이 오면 모두 영어로 소통했었는데, 그건 젊은 시절이었으니 가능했던 것 같다. 이젠 영어로 문장을 쓰려니 도무지 자신이 없다. 답장을 보내면서 한글로만 적어 보내서 미안하다고 언급했다. 관련 참고자료를 좀 챙겨서 보냈느데, 그것들도 모두 한글 자료라 미안하다고 했다. 다행히 인터뷰 하러 올 때에는 한국인 교수와 함께 올 예정이며 그 분이 통역을 맡아주실 거라고 답이 왔다.


그렇게 서로 이메일로 소통한 것이 지난 달 중순부터 지난 주 까지였다. 내가 미리 답변서를 자세하게 써서 보낼 것을 그쪽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무척 놀라며 매우 고맙다고 했다. 한국 언론이나 대학원생들에게 사전에 질문지를 받으면 늘 미리 답변서를 보냈었다. 그래야 인터뷰 당일 더 구체적인 내용들을 설명할 수 있고, 보다 정확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 이번에는 특히 내가 일본어를 모르고, 그쪽은 한국어를 모르는 입장이라 아무리 통역이 있어도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조금 더 자세하게 써서 보낸 것 뿐이다.


그리고 오늘 일본 대학원생 10명과 한국인 교수 한 분이 왔다. 대학원생 10명 중에는 인도에서 유학원 학생 한 명과 이스라엘에서 유학원 학생 한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먼저 우리 조합에서 운영하는 제로웨이스트 매장을 꼼꼼히 둘러본 후에 내가 매장의 특징에 대해 설명을 했고, 지하 교육장으로 이동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맨 처음에는 5명의 학생과 한국인 교수 한 분이 오실거라고 해서 매장에 있는 테이블에서 인터뷰를 할 생각이었는데, 중간에 학생이 10명으로 늘어난다고 연락이 왔다. 매장 내 테이블에는 최대 7명 정도까지 앉을 수 있어서 6명이 오는 건 괜찮은데, 11명은 도저히 앉을 수 없어서 어쩔수 없이 인터뷰 장소를 지하로 옮겼다.


인터뷰 때는 일본어와 영어로 질문이 오면 통역하시는 교수님이 우리말로 옮겨주셨고, 나는 우리말로 답하고 다시 교수님이 영어와 일본어로 옮겨 주셨다. 간단한 답변은 영어로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 역시 일상적으로 쓰지 않으면 말이 잘 나오지 않더라. 그대로 일본어와 영어 모두 흥미를 가지고 익히려고 노력했던 말들이라서 들으면서 조금은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평소 좀 더 열심히 익혔다면, 더 잘 알아듣고, 간단하게 답변도 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는 생각을 했지만, 다시 금방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았으면서 그리 쉽게 될 리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즐거운 경험이었고, 내가 나눠줄 수 있는 경험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일본인들은 정말 계속 반복적으로 감사합니다! 를 얘기하더라. 대체 얼마나 많은 감사합니다를 들었는지 모르겠다. 처음 내게 이메일을 보낸 후에 계속 소통했던 대학원생은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원을 병행하는 사람인데 정말 열심히 하는 학생이라고 한국인 교수님이 칭찬을 여러 번 했다. 인터뷰 할 때에도 내 옆에 앉아서 번역 앱으로 뭔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한글로 변환하여 폰을 보여주곤 했다.


인터뷰까지 공식 일정을 다 마치고 학생들이 매장에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구매하는 시간 동안 나는 그동안 소통해왔던 학생을 포함해 한 두 학생과 개인적인 대화를 좀 나누고 싶었다. 가능하면 일본어로 말을 걸어보고 싶었는데, 하아! 정말 간단한 몇 가지 표현 외에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일본어로 말을 건 후에 하고 싶은 말은 영어로 했다. 학생들을 데리고 온 한국인 교수님은 이렇게 친절하게 잘 해주실 줄 몰랐다면서 다음에는 정식으로 강의를 편성해서 강사비도 책정해서 오겠다고 했다. 계속 교류하면서 다음에 꼭 다시 오겠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예전에 프랑스 르망 대학교 교수님이 한국 협동조합 전공 교수님과 함께 와서 인터뷰를 했던 것이 외국인과 인터뷰 첫 경험이었는데, 이번이 두번째가 되었다. 그때는 프랑스에서 유명한 교수님이라고 들었고, 통역하러 함께 오시는 한국 교수님도 엄청 유명하신 분이어서 (게다가 엄청 깐깐하신 분이셔서) 긴장을 좀 많이 했었다. 이번에는 대학원생들이 오는 거라서 긴장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준비를 미리 다 해뒀기 때문에 아주 여유있게, 편한 마음으로 차근차근 질문에 답을 했다.


다음에 또 만날 기회가 되면 아예 ppt 로 시각 자료를 띄워놓고 강의나 발표 형식으로 설명하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과 작별하면서 여러번 말한 것처럼 이 교류가 단발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있기를 바란다.


안면도


주말에 아이들과 안면도에 다녀왔다. 모처럼 일 없이 쉬는 주말이기도 했고, 아이들과 아무 생각없이 어디 놀러 가고 싶기도 했다. 친한 후배가 매년 연말 회사에서 숙박비로 쓴 경비를 정산해서 돌려받기 때문에 겨울마다 친한 사람들에게 숙소를 끊어 주곤 한다. 몇 해 전에는 그 비용으로 친한 선후배들 모아서 놀러 다녀오기도 했었다. 올해는 수능 시험을 본 우리 큰 아이를 위해 선물하고 싶다고 나에게 숙소를 예매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처음에 온양온천 쪽에 숙소를 잡아달라고 했는데, 그쪽은 지금이 성수기인지 여의치 않다고 하더라. 그래서 아무데나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잡아 달라고 했더니 안면도의 해안가 펜션을 잡아주었다.


아이들이 오전엔 늦잠을 자는 편이라 점심때가 지나 데리러 갔고, 준비가 덜 되어 있어서 조금 기다렸다 출발했는데, 서해안 고속도로가 제법 막혀서 숙소에 도착했을 때에는 벌써 해질 무렵이 다 되어 있었다. 나는 금요일 밤새 일을 하느라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상태로 에너지 음료와 커피를 들이붓고 운전을 시작했다. 혹시 졸릴지 몰라서 입에 씹을 사탕과 초콜릿을 미리 챙겨두었다. 도로를 달리면 졸립지 않은데, 차가 막혀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니 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이미 뒷좌석에서 자고 있었다. 누가 말을 붙여 줄 사람도 없고, 음악을 틀어놓아도 졸리긴 마찬가지였다. 사탕을 입에 넣고 간신히 졸음을 쫓으며 운전했다. 막히는 구간을 벗어나자 다시 금방 졸음이 달아났고, 또 막히는 구간이 오면 그땐 사탕의 힘으로 버텨서 졸음 때문에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예전에 출판사에 다닐 때에는 정말 피곤한 상태로 운전하는 일이 잦았다. 욕심이 많아서 영업과 편집을 같이 했는데, 낮에는 영업하러 다니고, 밤에는 교정교열을 보느라 밤을 새곤 했다. 그런다고 월급을 더 받은 것도 아닌데, 왜 그러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정말! 그때 졸음을 쫓기에 좋은 여러 방법들을 많이 시도해봤다. 내 결론은 작은 사탕이나 초콜릿이었다. 평소라면 달아서 입에도 대지 않는 것들이지만, 운전할 때 입에 넣으면 졸음이 싹 달아났다. 그래서 그 후로 그리 피곤한 상태가 아니라도 운전할 때에는 그런 것들을 꼭 챙기는 편이다.


숙소에 도착해서 조금 쉬니 해가 졌다. 창 밖으로 일몰 모습이 정말 멋졌다. 저녁을 먹기 위해 차를 타고 조금 이동해 식당을 찾았다. 저녁을 먹고 미리 검색해 둔 카트 체험장으로 이동했다. 이미 해가 져서 어두웠다. 전화로 미리 물어보니 해가 져도 라이트를 켜 둬서 운전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부터 체험이 가능하다고 해서 우리 아이들 모두 따로 운전을 해볼 수 있었다. 카트를 운전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핸들이 엄청 무거워서 (즉 파워핸들이 아니라서) 힘을 계속 주고 돌려야 했고, 엑셀과 브레이크가 모두 힘껏 밟아야 해서 쉽게 적응하기 어려웠다. 큰 아이는 그래도 재미있어 하고 금방 적응해서 운전을 잘 했다. 아주 작은 자동차 경주 트랙을 요리조리 움직였다. 작은 아이는 타기 전부터 무서워하며 걱정을 많이 했고, 타고 나서도 차가 마음대로 잘 움직이지 않아서 무서워했다. 재미를 느낄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초반에 일부러 작은 아이 뒤쪽에서 아이를 응원하며 몇 가지 요령을 알려주고 칭찬해주며 뒤따라 갔는데, 아이 입장에서는 집중하느라 힘든데 내가 자꾸 말을 시키는 것이 오히려 방해되는 것 처럼 느낀 것 같았다. 그래서 작은 아이를 믿고 그냥 내 페이스대로 즐겼다.


최고 속력이 약 40킬로미터 까지 나오는 작은 카트를 크게 커브를 돌아야 하는 트랙으로 모는 일은 스릴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다만 엔진 소음이 제법 컸고, 해 떨어진 이후라 찬 바람이 제법 불었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트랙을 몇 바퀴 돌고 나니 손도 시렵고, 몸도 좀 추웠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아이들이 늦게까지 놀도록 내버려뒀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잠들었고 아이들은 과자 먹으며 늦게까지 놀았을 것이다. 다음날 조금 늦잠을 자고 일어나 숙소 정리를 하고 나와서 미로 공원에 갔다. 미로 공원은 제법 넓은 부지에 요일마다 돌아가면서 6개의 코스로 운영을 한다고 했다. 재미있었다. 나는 일부러 아이들을 앞세워 알아서 길을 찾아보라고 했다. 나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아이들이 이끄는대로 그냥 따라만 다녔다. 아이들은 중간에 좀 길을 헤매였으나 나중에는 어렵지 않게 길을 찾았다. 미로 곳곳에 스탬프를 찍는 거점이 4개 있었는데, 그걸 다 찍고 나가려면 좀 헤맬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스탬프 4개를 다 찍고 미로를 빠져나왔다.


점심으로 맛있는 걸 사주고 싶어서 여기저기 식당을 찾아 좀 돌아다녔다. 아이들 입맛에 딱 맞는 식당이 별로 없었다. 제법 오래 식당을 찾아서 차를 몰고 다니다가 지칠 무렵에 전라도 밥상이란 식당이 눈에 보이길래 전라도식 백반을 떠올려 들어갔는데, 간장게장 정식집이었다. 아이들은 간장게장을 안 먹어봤으니 먹어보면 맛있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좀 비싸도 정식을 주문했는데, 대실패였다. 아이들은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나만 혼자 3인분의 간장게장과 양념게장과 대하장을 다 먹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다른 반찬으로 밥을 맛있게 먹었다. 뭐 결과적으로 맛있게 먹었으니 됐지 뭐. 하면서 위안을 삼았다.


저녁 늦게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니 밤이었다. 야간 운전 때문에 좀 피곤했다. 정말 딱 씻자마자 기절하듯 잠이 들어 버렸다.


이번 주도 일정이 많고 준비해야 할 일들도 많다. 무사히 잘 보내길 바라며, 힘을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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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신드롬


오래 전 영화 [쉬리]가 개봉했을 때, 주위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영화를 봤다고 얘기하곤 했었고, 언론에서도 다루는 걸 봤었다. 나는 이상하게 삐딱한 기질이 있어서 남들이 다 하는 건 일부러 피하곤 하는데, 남들이 다 보는 영화는 이상하게 보고 싶지 않았었다. 그래서 영화관을 찾지 않았다. 남들이 잘 보지 않을 것 같은, 그러나 나에게는 뭔가 끌리는 영화를 찾아보곤 했었다. 문득 [쉬리]의 관객수가 궁금해 찾아보니 580만 가량이다. 언젠가부터 천만 관객 영화가 종종 나오곤 했던 걸 생각하면 [쉬리]는 내 기억과는 달리 그렇게 크게 유행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일까? 아니면 당시로서는 그 정도 관객수도 많았던 것일까? 내 기억에 비슷한 시기에 [쉬리] 보다 더 크게 흥행했던, 정말 내 주위에 안 본 사람을 찾을 수 없었던 영화 [타이타닉]의 흥행성적도 궁금해 찾아보았다. 세계적으로 크게 흥행했던 것으로 아는데, 우리나라에서는 590만으로 추정한다고 나온다. 재개봉 포함 전국 635만이라고 나온다. 그럼 확실히 당시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의 총 인원수가 적었던 것이다.


암튼 삐딱한 나는 저 두 영화를 일부러 보러 가지 않았다. 남들이 그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듣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두 영화는 아주 나중에 티비로 봤다. [쉬리]는 재미있었지만, 그냥 딱 재미있는 오락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그렇게 유행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과 일부러 극장을 찾지 않은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타이타닉]은 달랐다. 와! 영화의 스케일 자체가 달랐고, 그때까지 보았던 어떤 영화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압도하는 느낌이 있었다. 저 영화는 극장에서 보았으면 더 좋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올해 초 나는 우연히 작은 아이와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을 극장에서 보았다. 원래 영화를 볼 계획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즉흥적으로 영화를 보자고 했고, 마침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들 중 제일 끌리는 영화가 바로 그거였다. 암튼 그렇게 아바타를 보고 또 한번 감탄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극장에서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비나 태블릿으로 봤으면 이 정도의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금 [쉬리]와 [타이타닉] 이야기를 한 것은 요즘 언론과 사람들 사이에 폭발적으로 회자되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 때문이다. 지금 이 분위기 어쩐지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만 떠올려보니 딱 저 두 영화의 개봉 시기의 내 기분이 지금과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외에 다른 영화들도 제법 있었을 것이다. 이 사회는 좀 과할 정도로 유행에 민감하고, 뭔가 하나가 회자되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그에 편승해 더 많은 이야기들을 퍼트린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다만, 내 개인적인 기억에서는 저 두 영화가 제일 먼저 떠올랐을 뿐이다. 최근의 흐름으로 보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나 [더 글로리]의 흥행과도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서울의 봄] 흥행은 두 가지 생각이 들게 한다. 일단은 12월 12일이 다가오는 시기에 저 군사 쿠테타의 부당함과 죄상을 전 국민들에게 다시 상기시키고, 그래서 다함께 전씨와 그 일당들에게 분노하는 국민적인 유행을 일으킨 것에 대한 반가운 감정이다. 아마 저 영화가 이렇게까지 흥행할 수 있는 요인 중에는 전씨와 노씨의 죽음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과거 영화 [26년]은 제작과정에서 수차례 외압을 받아 프로젝트가 중단되거나 와해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고 들었다. 게다가 전씨가 아직 살아있었다면 이 영화에 저렇게 유명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 며칠 동안 언론과 각종 유튜브 채널에서는 앞다투어 그날의 실제 이야기, 영화 속 배역의 실제 인물들, 당시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를 결정적인 순간들 등의 다양한 연관 콘텐츠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내용들이 충분히 널리 알려지는 것은 이 영화의 힘이자, 매우 고무적이고 바람직한 현상이라 볼 수 있다. 군사 쿠테타로 정권을 도둑질 했던 독재자의 죽음 이후 다시 또 다른 군부 독재자가 내란을 통해 정권을 훔친 과정을 잘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이후 우리나라는 87년까지 많은 희생을 치르며 간신히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으나, 그것은 제도적 민주화에 그쳤을 뿐, 살인마이자 학살자의 친구가 다시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후 삼당 야합으로 이뤄진 소위 말하는 문민정부 역시 권위주의 정권으로서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민주화라는 관점에서 얼마나 많이 퇴보하게 만든 사건인지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면 좋겠다.


두 번째 드는 생각은 아쉬움이다. 물론 나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내 의견을 잘못된 편견일 수도 있다. 일단 [서울의 봄]이란 제목은 80년 5월 15일 서울역 회군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광주 학살의 간접적인 원인이 된 이 일로 인해 1212 군사 쿠테타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놓친 그 사건 말이다. 결국 오지 못한 '서울의 봄'을 제목으로 쓴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으니 이 답은 나중에 영화를 본 후에 더 고민해봐야겠다.


이 영화는 결국 내란이 성공해 군대 내부 일부 장교들의 사조직이었던 하나회와 그 수장인 전씨가 권력을 손에 넣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게다가 대체로는 실제 역사적 사건의 흐름을 담아냈겠지만, 일부 내용은 현실과 다르게 그렸다고 들었다. 이미 성공한 군사 쿠테타를 세부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 폭도들을 돋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거둔다. 비록 전씨와 노씨는 죽었지만, 당시 쿠테타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폭도들 중 다수는 아직 막대한 부와 권력을 틀어쥐고 잘 살고 있다. 혹시 이들은 이 영화를 보며 자랑스럽게 자신의 무용담을 떠올리지는 않을까? 특히 저 내란을 주도했던 폭도들의 두목인 전씨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부각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어떻게 보면 이런 생각은 좀 과한 것일 수 있다. 다만 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영화라는 틀로 담아낼 때 그 영향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스불재? 누칼협?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내가 속한 여러 조직들은 서로 어울려 노는 자리에서 초성 퀴즈를 자주 하곤 했다. 나와 친한 사람들은 내가 초성 퀴즈를 잘 할 거라고 예상하며, 문제가 나오면 나를 보곤 했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초성 퀴즈를 정말 잘 하지 못했다.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의 뇌는 초성만 가지고 그에 맞는 특정 단어를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몇 년 동안 종종 초성 퀴즈를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순발력이 좋은 몇몇 사람들이 유난히 잘 맞추는 것을 깨달았다. 약간의 선입견을 갖고 말하자면 저들은 그다지 어휘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암튼 그랬다.


초성을 단어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과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분명 아는 사람이 맞는 것 같긴 한데, 그가 누구인지 얼른 기억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아주 친한 사람과 가족들의 얼굴을 못 알아보기도 했었다. 어쩌면 나는 시각적인 정보를 빠르게 내가 아는 정보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초성 퀴즈에 유난히 약한 것처럼 줄임말에도 약한 편이다. 아, 그런데 초성 퀴즈는 눈으로 보고 단어를 유추하는 것이라 시각 정보가 중요한 것이 맞지만, 줄임말은 기본적으로 발음으로 단어를 유추하는 것이라 또 성격이 다르긴 하다. 둘 다 전체 정보가 바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부 정보만을 제한적으로 제공한다는 것은 비슷하지만. 물론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널리 퍼지는 줄임말들이 있고, 이미 익숙해진 줄임말은 읽거나 듣는 순간 바로 본 뜻과 연결된다. 다만 요즘은 젊은? 아니 어린? 암튼 육체적 나이로든 문화적 나이로든 나이 차에 따라 유행하는 줄임말의 숫자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다.


아, 내 지인들이 내가 초성퀴즈를 잘 할 거라고 오해하는 이유는 일반적인 상식 퀴즈와 같은 것들을 상대적으로 잘 하기 때문이다. 한때 국문과 전공이었다는 점, 편집자였다는 점 등이 그런 오해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와 친한 다른 국문과 전공자와 편집자들도 초성퀴즈는 썩 그리 잘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것과 그것은 크게 관계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아이들이 대화할 때 전혀 모르는 단어가 들리곤 한다. 그 뜻을 물으면 아이들은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나는 외국어 아니 외계어라도 들은 느낌이 든다. 큰 아이의 자세한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안되는 경우도 자주 있다. 다른 적절한 표현이 분명 있을텐데, 왜 저렇게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 표현을 일부러 쓰는 걸까? 저 아이들은 모두 저 표현의 정확한 표현을 알고 쓰는 걸까? 하고 궁금해지기도 한다.


오늘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저 두 단어를 보았다. 스불재와 누칼협. 전혀 뜻을 짐작할 수 없는 단어였다. 평소 하는 것처럼 검색을 해 보려다가 한번 맞춰보고 싶어서 조금 생각을 해봤다. 아무리 떠올려봐도 연관되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검색 대신 댓글들을 읽었다. 댓글들 중에도 정확한 뜻을 알려주는 것은 없었다. 한 절반 정도는 나처럼 그게 뭐냐는 질문을 남기고 있었지만, 아무도 알려주지는 않았다. 음, 결국 검색을 해야겠네 하며 새 창을 띄우려다가 갑자기 어떤 느낌이 떠올랐다. 그 글을 쓴 사람은 이것저것 떠맡은 일들이 많아 여러가지 일들의 마감에 쫓기고 있다는 뉘앙스의 글을 쓰면서 저 두 단어를 썼다. 갑자기 누칼협의 칼이 그 칼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누가 칼로 협박한 것도 아닌데' 라는 말이 떠올랐다. 스불재는 좀 더 고민하다가 갑자기 신해철 형님의 노래 가사가 문득 떠올랐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 즉, 시시각각 다가오는 여러 원고 마감에 쫓기는 이 상황이 남 탓이 아닌 제 탓이란 의미다.


여기까지 이해하고 나니 동지를 만난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나 역시 딱히 원하지는 않았지만, 또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은 이런저런 일들을 자주 떠안는 편이라 동시에 여러 개의 마감에 쫓기는 일이 잦다. 내일은 아이들과 여행을 가기로 되어 있는데, 월요일 오전까지 마쳐야 할 일을 아직 절반도 못 했기 때문에 이 새벽까지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일하다 말고 약간의 리프레쉬를 위해 서재에 글을 써본다. 자, 이제 다시 일하자. 내일 운전하려면 조금이라도 더 일찍 잠들어야지. 


마지막으로 책 이야기















어쩌다 이 책의 북콘서트 진행을 맡았다. 미리 책을 다 읽어야 재미있는 질문도 뽑고, 원활하게 진행을 할 수 있을텐데. 다가올 10일 안에 공부모임도 있어서 읽어야 할 책이 또 한 권 있다. 두 권을 최대한 빨리 읽으면서도 내용을 잘 이해할 방법을 터득하면 좋겠다. 아! 빨리 일하자. 빨리 책 읽고 빨리 대본도 작성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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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2-09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의 봄...겁나 재밌게 봤습니다.
스토리를 다 알았지만...배우들의 연기가 보는 내내 몰입하게 되더군요.
근래 본 한국영화 중 최고였습니다..^^

감은빛 2023-12-11 18:50   좋아요 0 | URL
네, 야무님.
보신 분들 모두 연기가 좋았다고 하시더라구요.
편집을 잘 했다는 분들도 계셨구요.
저도 기회를 만들어 꼭 보려고 합니다.
 

완벽주의자


또 누군가에게 '완벽주의자'라는 얘길 들었다. 지역의 중요한 행사를 준비하는 기획회의에서 경험이 많아서 사람들을 척 보고 그 사람의 성향을 통찰력으로 파악하는 분을 만났다. 그날 회의에 어느 분이 못 나와서 사전에 합의된 준비사항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져서 몇몇 분들이 평소 그 분이 좀 미덥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그 통찰력 있는 분이 그날 못 나온 사람을 딱 한 마디로 설명했는데, 다들 그 말에 동의하고 수긍했다. "타고난 에너지가 적은 사람으로 소소한 일들을 잘 해내지만, 좀 큰 일이 주어지면 소화하기 어렵다." 정확한 표현이나 단어는 다를 수 있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그러더니 그 통찰력 있는 분이 그 자리에 계신 다른 선배 한 분을 향해서도 딱 한 마디를 했는데, 그 표현에 대해서도 다들 딱 맞는 설명이라고 동의했다. 그 분의 표현이 짧으면서도 딱 적절하다고 느껴 다들 놀라워했다. 경험이 많은 것에 대해 타로 카드나 아로마 카드 등으로 상담도 하고 계시다고 했다.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 덕분에 그 분은 나중에 나에게도 한 말씀 하셨는데, 그게 바로 저 완벽주의자 라는 단어였다.


일하면서 늘 들어왔던 말이고, 나도 잘 알고 있는 점이다. 가끔은 득이 될 때도 있지만, 대개는 득보다는 실이 될 때가 더 많은 성향이다. 평소 생활은 썩 그렇지 못한데, 일을 할 때면 늘 저 완벽주의자 기질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좋은 방향으로 잘 살리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으니, 자연히 저 기질을 좀 고쳤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곤 한다. 저 선생님이 말씀하신 의미도 좋은 뜻과 그렇지 못한 뜻이 내포되어 있음을 말투로 깨닫는다. 사람의 성향이나 기질이 원한다고 그리 쉽게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평생 못 고치고 그렇게 살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대개 좋지 않은 쪽으로 결과가 나올 때는 일이 내 기준으로 완벽하게 될 때까지 계속 손을 댄 다거나(그러니까 다른 사람들 기준으로는 적당히 괜찮다고 여겨도 나는 성에 차지 않는 경우), 아니면 어떤 완벽한 타이밍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거나 하는 경우다. 반대로 좋은 결과가 나오는 때도 있다. 대개 짧은 시간에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일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다. 몇 해전 친한 친구와 같이 어느 국회의원 보좌관들과 회의를 했을 때, 내가 회의를 진행하고 정리하는 모습을 본 친구가 깜짝 놀랐다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보좌관들과 환경단체 활동가들 등 한 20여명이 참여한 회의였는데, 사안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는 분들이 자꾸 논점을 흐리거나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면 내가 바로 잡아주고, 발언들 중간중간에 핵심을 정리해주고, 거의 두 시간이 넘는 회의를 마칠 때 참여한 분들의 발언을 전부 정리하고 요약해서 공유했었다. 회의를 진행해야 할 상황이라 별도로 기록을 해두지 않았음에도 각 발언자들의 순서와 발언의 요지를 머리 속에 잘 담아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사무실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짧은 시간 안에 간이 회의록을 폰으로 만들어서 공유까지 했었다. 당시 그 친구는 내가 일할 때 그 정도로 집중한다는 것을 깨닫고 놀랍다고 했다.


지겹게 듣고 있는 저 완벽주의자 소릴 또 들어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는데, 어쨌거나 버릴 수 없는 기질이라면 잘 활용해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숫자 착오 /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의 어려움


며칠 전 퇴근 시간에 아이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파주행 좌석 버스를 탔다. 언젠가부터 자동차 전용 도로를 이용해 경기도를 오가는 좌석버스들은 입석을 금지하고 좌석이 꽉 차면 승객을 더 태우지 않고 그냥 출발했다. 작년 겨울에는 이것 때문에 추위에 1시간 넘게 서너대의 버스를 그냥 보내고 속수무책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곤 했다. 아이들이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화가 나고 짜증도 났다. 입석으로라도 타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해도 벌금을 맞는다며 매몰차게 출발해버리는 버스 기사님들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여유있게 버스를 타려면 무조건 퇴근시간 보다 조금 일찍 정류장으로 가야 하는데, 사람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원하는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봄부터 가을까지는 퇴근 시간에 버스를 타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는데, 유독 겨울에 버스 타기가 어려운 것 같다. 이게 내가 기다리는 정류장에 오기 전에 이미 좌석이 다 차서 오면, 기다리는 입장에서 달리 방법이 없다. 유일한 방법은 그 정류장 보다 몇 정류장 앞으로 가서 기다려야 하는데, 좌석 버스는 정류장 간격도 길고 퇴근 시간에 그 거리를 이동하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려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암튼 며칠 전에도 버스를 기다리면서 작년 겨울 몇 차례 1시간씩 추위에 떨며 버스들 여러 대를 그냥 보내곤 했던 기억이 나서 좀 조마조마했다. 마침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왔고, 그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분주히 버스 정차 위치를 예측해 움직였다. 남은 좌석 수를 정확히 보지 못했으나 몇 좌석이 안 남았을 것이 뻔했기에 무조건 앞쪽에서 타야 한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내 앞에 이미 여러 명이 줄을 서고 있었다. 아무리 급해도 예의 없이 그 사람들을 미쳐내고 버스를 탈 수도 없었다. 정말로 다행히 나까지 버스에 올라 카드를 찍고 나서 기사님께서 다음 사람을 제지했다. 딱 내 차례에서 좌석이 다 찬 것이다. 속으로 다행이라고 안심하며 앉을 자리르 찾았는데, 어라! 빈 자리가 없었다. 기사님은 버스를 출발시켰고, 내가 혹시 잘 못 봤나 싶어서 여러 번 전체 좌석을 훑으며 빈 자리를 찾고 있을 때, 내게 얼른 앉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자리가 없어요 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서너번을 둘러봐도 정말 자리가 없었다. 기사님께서 숫자를 착각해 나 한 사람을 더 태운 것이다. 나는 30분 넘게 자동차 전용 도로를 서서 가더라도 버스를 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 바로 뒷사람이 아니라 나부터 거부 당했다면 이번에도 또 몇 대의 버스를 그냥 보내야 할 상황이 되었을지 모른다. 배차 간격이 긴 이 좌석버스들은 자주 오지도 않아서 한 대를 보내면 마냥 기다려야 하는데, 그렇게 기다린 버스도 좌석이 없다고 또 그냥 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운이 좋았던 것은 자동차 전용 도로에 오르기 직전 정류장에서 딱 한명의 승객이 내렸다. 그 분은 내게 자신의 자리에 앉으라고 친절하게 말씀하시고 내렸다. 나는 감사한 마음을 자리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님도 내가 앉는 것을 보고 안심하고 출발했다.


올 겨울에 몇 번이나 더 그 좌석 버스를 타고 파주를 가야할지 모르지만, 겨울은 이제 시작되었으니, 그때마다 이렇게 가슴을 졸이며 빈 좌석이 있는 버스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게 참 경기도민은 어떻게 서울로 출퇴근을 하라는 말인지. 차라리 입석 금지 조치를 풀어주면 좋으련만, 아마도 안전 문제 때문에 내린 그 조치를 쉽게 취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 안에만 있을 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경기도의 버스 상황이 이렇게 열악한 줄 몰랐다. 다행히 전철역에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라면 그래도 괜찮았지만, 거리가 멀어서 버스로 갈아타야 하거나 특정 좌석 버스 노선 밖에 방법이 없다면 정말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버스 회사 입장에서도 이게 참 쉬운 문제가 아닌 것이 그 노선에 탑승객이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나만해도 아이들을 보러 파주에 갈 때마다 출퇴근 시간이 아닌 낮이나 밤에 버스를 타면 거의 대체로 대여섯 명도 안 되는 승객이 탄 것을 본다. 어떤 경우엔 나 혼자 타고 제2 자유로를 30분 넘게 달리기도 한다.


경기도지사가 경기도를 경기북도와 경기남도로 나눌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상황이 좀 바뀔까? 뭐든 대안이 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공부모임


지역의 여러 협동조합에서 경영을 책임지거나 조직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몇몇 분들이 모여 공부모임을 만들었다. 사회적 경제 영역과 복지 영역이 만나 이 지역에 꼭 필요한데, 아직 잘 구현되지 못한 가치와 활동을 만들어가자는 취지였다. 지난 10월 첫 모임을 가졌고, 두 번째 모임은 12월에 예정되어 있다. 다들 정말 바쁜 분들이라 모임 날짜를 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12월에는 [래디컬 헬프]를 읽고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책은 일찍 공지가 되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구매해도 읽지 못할 것 같아서 미루고 있다가 최근에야 구매했다. 이번 주말부터 읽기 시작해서 최대한 빠르게 1번 읽고, 모임 직전에 중요한 내용들만 다시 읽을 생각이다.
















지난 첫 모임에선 [생협이 왜 이런 것까지 할까]라는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눴었다. 약 2시간 가량의 모임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우선 참가자들 모두 지역에서 10년 이상 20년 가까이 활동하신 분들이라 그 내공이 어마어마했다. 한 분 한 분 말씀하실 때마다 배울 점들이 보였다. 책의 내용을 두고 나눈 대화는 많지 않았다. 이 일본의 굉장한 사례를 어떻게 우리 동네에 적용해 볼 수 있을까? 우리에게 지금 부족한 것과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접근하는 방향이 각자 달랐는데, 그래서 더 좋은 시간이었다. 긴 시간 같은 사람들을 주로 만나며 약간 틀에 박힌 활동이 지속되는 것에 대해 경각심과 위기감을 갖고 있었디 때문에 이런 공부모임이 무척 반가웠다. 그날 마지막 소감으로 나는 이 자리가 나에게 힐링이 되어 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말했었다.
















긴 시간 여유가 없는 삶을 살다보니 꾸준히 나가던 독서모임들도 다 그만두었고, 등산모임도 못 나간지 오래되었다. 늘 나오라는 사람들은 많은데 나는 늘 힘들다. 피곤하다. 죽을 것 같다고 답하며 이 삶을 지속하고 있다. 이젠 좀 하고 싶었던 것들도 찾아볼 수 있는 삶이 되었으면. 내가 더 즐겁게 활동하기 위해서라도 내 관심에 맞는 일들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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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1-25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엔날에는 완변주의 성향이 강했는데, 그보단 계속 수정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게 훨씬 편하고 스트레스도 덜하더라구요..ㅎㅎ

저도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고 있지만 비교적 서울 직장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경기도라 출퇴근엔 그리 불만이 없습니다. 그래도 거리가 멀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되는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거 같아요..

공부모임은 이제 하고 있지 않습니다. 모임에 이제는 회의감이 드는지라...이제는 뭐든 혼자하고 혼자 잘 할 수 있는 배움의 루트를 찾고 있죠. 찾아보니 참 많더군요. 모임은 모임대로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많아 이제는 피하게 되요~^^

감은빛 2023-12-09 03:41   좋아요 0 | URL
야무님, 성향을 바꾸는 일이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근데 확실히 스트레스는 덜할 것 같아요.

경기도는 거리의 문제도 있지만,
전철로 연결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도 있더라구요.
경기도의 일부 지역 버스는 정말 답이 안 나올 정도였어요.

저도 대체로는 야무님처럼 공부 모임에는 부정적입니다.
다만, 이 글에서 언급한 모임은 조금 성격이 다르다고 느꼈어요.
그 모임 구성원들이 죄다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이라,
그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배울 것들이 많고,
그 분들의 경험담들을 듣는 것이 재미있었거든요.
 

대체 왜 이래?


지금 살고 있는 언덕 꼭대기 낡은 빌라로 이사 온 지 5년 6개월 가량 지났다. 이 집에 살면서 위 아래층에서 물이 새는 문제를 여러 번 겪었다. 아래 층에서 물이 샌다고 연락 받은 것이 총 3번, 위 층에서 우리 집으로 물이 샌 적이 한 번 있었다. 위 층에서 물이 샜던 경우에는 위층에서 누수공사를 해서 해결한 후에 물이 샌 자리 도배를 새로 해줬었다. 아래층에 물이 샜던 3번 중에 첫 번째는 지금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 가벼운 문제였던 것 같다. 두번째 물이 샜을 때, 좀 심하게 새서 화장실 바닥을 다 깨부수고 새로 바닥을 깔았었다. 그리고 한 2년 가량 지난 최근에 다시 아래층에서 또 물이 샌다고 연락이 왔다. 아! 진짜 이 놈의 낡아빠진 집. 정말! 안그래도 피곤한 인생인데, 나한테 대체 왜 이래? 그새 집주인이 바뀌어서 새 집주인에게 2년 전에도 비슷한 증상으로 물이 샜었고, 그때 공사를 했었다고 설명을 했다. 그리고 2년 전에 공사했던 업체 사장님이 이번에도 오셨다. 나도 기억을 못 했고, 그 분도 처음엔 기억을 못 하다가, 우리집 화장실을 보고서야 "어! 이거 내가 했던 건데." 하고 말하시더라. 제대로 된 세면대도 없는 우리집 화장실의 열악한 환경이 그 사장님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었던가보다.


화장실에서 물을 쓸 때마다 물이 새는 것 같다고 했고, 사장님과 업체 직원 한 분이 우리 집과 아랫집을 여러 차례 오가더니 하수관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했고, 시멘트를 부수는 드릴과 망치로 바닥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나는 아침에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그 분들을 맞아 공사를 시작하는 걸 보고 출근했다. 씻지 못한 상태가 너무 마음에 걸려서 출근길에 근처 후배 집에 들러 씻었다. 나중에 연락 받았는데, 결국 두 군데 누수지점을 찾아 공사를 마쳤다고 들었다. 깨부순 바닥에 다시 시멘트를 발라 놓았으니 내일까지 장판을 덮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했고, 화장실에서도 물을 쓰지 말라고 했다. 오늘과 내일은 씻지도 못하고, 집도 엉망진창일 거라서 아침에 잠시 들러 씼었던 후배 집에 하루 재워달라고 요청해놓았다.


수능 전날


내일은 수학능력시험 치는 날이다. 큰 아이가 내일 수능을 본다. 앞서 한 번 글에 적었듯이 아이는 최근에 몇 군데 대학에 수시 원서를 넣고 면접과 실기시험 등을 보았었다. 아직 제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은 곳도 있고, 결과 발표를 했는데, 바로 합격하지 못하고 예비 합격자 순번을 받은 곳도 있다. 내일 수능 결과에 따라 정시에도 응시를 하겠지.


내가 대학 갈 때와는 제도 자쳬가 워낙 많이 바뀌어서 지금의 이 입시 시스템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너무 쓸데없이 복잡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아이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겠지. 엄청나게 비싼 대학 등록금이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아직 합격도 못 했는데, 벌써 등록금을 걱정하는 것은 오바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늘은 저녁 늦게까지 회의를 하는 날이다. 회의 자료 출력을 걸어놓고 지금 이 글을 빠르게 두드린다. 에휴 피곤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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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3-11-15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불편하셨겠어요. 그래도 누수 지점 찾아 해결이 됐으니 다행입니다. 아드님이 수능을 보는군요! 잘 보기를 기원합니다.

감은빛 2023-11-24 20:0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블랑카님.
누수가 한 번에 해결되지 않고 또 반복되어서 정말 불편하고 힘들었어요.
다행히 오래가지 않고 해결이 되긴 했는데,
워낙 낡은 집이라 또 문제가 생길까 두렵네요.

아들이 아니라 딸이에요.
조심스레 잘 봤냐고 물었더니, 어려웠다는 답이 돌아왔어요. ^^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2023-11-15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쪽이든 물이 새면 불편하고 공사를 해야 하니 정말 번거롭죠.
그나마 누수지점을 잘 찾아 다행입니다.
아드님, 내일 수능 시험 잘 봐서 꼭 대학 합격하기를 기원합니다.
요즘은 제가 학교 다닐 때와는 다르게 국가 장학금제도가 잘 되어 있더라고요.
최저임금이 괜찮아 알바를 조금 하면 충분히 용돈 벌이도 가능하고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감은빛 2023-11-24 20:01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 맞아요.
물이 샌다는 얘길 들은 날부터 해결될 때까지
빨래도 못 돌리고, 씻을 때에도 제대로 못 씻고,
최대한 빨리 가볍게 씻곤 했어요.
어떤 날엔 가까이 사는 후배 집에 가서 씻기도 했구요.

아들이 아니라 딸이 수능을 봤는데,
어려웠다고 하네요.
평소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어려웠겠죠. ㅎㅎ

아마 당장은 합격하더라도 장학금을 받을 성적은 못 될 것 같고요.
알바를 할 생각은 하고 있더라구요.
그래봐야 알바로 학비까지 충당하기는 쉽지 않을거예요.
본인 용돈 정도 벌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희선 2023-11-16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 새는 건 정말 안 좋아요 그런 일 여러 번 있고 오랫동안 있기도 했군요 물이 새는 곳을 찾고 공사해서 다행입니다 여러 날 걸리지 않고 하루 만에 한 것도 다행이네요 감은빛 님을 재워주는 후배 분이 있는 것도...

따님 대학에 붙겠지요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즐겁게 공부하기를 바랍니다


희선

감은빛 2023-11-24 20:03   좋아요 0 | URL
희선님, 안녕하세요.
물이 샌다고 듣고 공사업체를 부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말씀처럼 다행히 업체가 하루만에 해결해줘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아직은 합격한 곳이 없지만,
결과 발표가 나지 않은 곳들이 있으니 희망을 가져봅니다.

고맙습니다!!

잉크냄새 2023-11-24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수는 복층 건물의 숙명이군요. 타인과 결부된 문제라 처리도 머리 아프고요.

대입시의 간결함만으로 따지면 선지원 후시험제의 학력고사가 제일 화끈했던 것 같아요.

감은빛 2023-11-24 20:07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안녕하세요.
정말 낡은 빌라에서 누수 문제는 피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저 같은 세입자의 고충이 있고, 또 집 주인의 고충이 있겠지요.
일단 물이 새면 모두 피해를 볼 수 밖에 없고
누수 지점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쉽지 않아 정말 머리가 아픈 문제인 것 같아요.

학력고사 세대이시군요. ㅎㅎ
수시라는 제도가 생겨서, 수시와 정시로 복잡하기만 한
요즘 입시제도는 참 이해하기 어렵더라구요.
 


자전거 VS 달리기


9월 초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전거를 제대로 타는 것을 성공했다. 그 당시 글에도 적었지만, 그 전에 시도했던 건 20년 전이었고, 그때도 골목에서 조금 타는 것은 성공했으나, 차도를 만나자마자 도저히 더 탈 수가 없어서 그냥 포기했었다. 자전거를 평생 못 탈거라고 생각하고 시도할 생각도 안 하고 살았는데, 자전거를 정말 좋아하는 후배들 덕분에 다시 해봤고, 첫 시도에서 바로 자전거를 탔다. 당일 사람 없는 곳에서 두 시간 정도 연습하다가, 우리 동네 천변 자전거 도로를 같이 달려보자는 후배들 말을 믿고 따라가다가 골목에서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보고 괜히 혼자 긴장해서 어버버 하다가 넘어져서 손가락과 손바닥이 까져 피가 났다. 그리고는 다시 한 달 이상 자전거를 안 탔다. 최근에 어쨌든 이번에는 꼭 제대로 자전거를 익히고 싶어서 다시 짧게 연습했다. 두 번. 그래서 지금까지 세 번 자전거 연습을 한 셈이다. 사람이 없는 곳을 그냥 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 시야에 사람이나 차량이 보이는 순간 긴장해서 자꾸만 균형을 잃는다. 아주 조금씩 익숙해지는 듯도 한데, 다음 순간에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암튼 자전거를 타면 긴장해서 온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조금만 타도 엄청 힘들고 피곤하다. 익숙하지 않은 일은 이렇게 힘들구나. 게다가 서울시 공유 자전거 따릉이는 무거워서 초심자들이 타기에 적절치 않다고 지인들이 전했다. 그렇구나. 뭐 가벼워도 나는 여전히 잘 타지 못할 것 같지만. 결국은 내가 자전거를 타도록 만들어 준 두 후배는 늘 내게 칭찬만 한다. 잘 탄다고. 처음 타는데 이 정도면 엄청 잘 하는 거라고. 두번째인데 이 정도면 정말 잘 하는 거라고. 며칠 전 세번째 탈 때에는 그 두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서, 내가 자전거 연습을 하는 그 공간 전체를 한 바퀴를 돌았다. 도중에 계속 사람들을 마주치고 심지어 차량도 마주쳤는데, 넘어지지 않고 끝까지 잘 왔다. 물론 중간에 위태로운 순간이 여러 번 있었지만, 아주 낮은 플라스틱 과속방지턱이 한 대여섯 개 정도 있었는데, 만날 때마다 긴장하며 속도를 줄이고 조심조심 넘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좀 타고 나서는 달리기를 했다. 자전거는 아직 걸음마를 떼는 단계라면, 달리기는 제법 자신 있는 종목이다. 아직 해본 적은 없지만, 단거리 경주를 해본다면 한 2~30미터 정도까지는 내가 자전거 보다 더 빠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전거는 속도를 내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는 바로 전력질주가 가능하니까. 한 50미터 이상 넘어가면 자전거가 앞서가기 시작해서 100미터 이상 지나면 차이가 벌어지겠지만.


여름 동안 너무 더워서 달리기를 쉬었고, 가을로 접어들면서 다시 달리기를 조금 했는데,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10월엔 달리기를 별로 못 했다. 그걸 반성하는 의미로 10월 말부터 그러니까 이번 주부터 다시 매일 조금씩이라도 달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1킬로미터 최고 속도를 찍기도 했다. 엊그제 달리기를 마치고 앱에서 기록을 확인해보니 올해 거의 95킬로미터를 달렸더라. 4월과 5월에 좀 많이 달렸고, 6월부터 7월까지는 확 줄었고, 8월엔 거의 달리지 않았었다. 9월에 다시 조금 달리기 시작했고, 10월엔 다시 확 줄었다. 암튼 욕심 내지 않고 하루에 1~2 킬로미터 정도로, 1주일에 5킬로미터 정도를 목표로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도중에 분명 못 달리는 기간이 생길테니, 연말까지 120 킬로미터를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저번에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었던 마라톤을 취미로 하는 선배와 최근에 달리기 이야기를 좀 했었다. 그 양반은 매주 금요일에 달리기 모임을 이끌고 있고, 나는 매주 목요일에 달리기 모임을 이끌고 있다. 그 분은 거의 준 프로에 가까워서 본인의 달리기 실력은 뭐 말이 필요 없지만, 다른 참가자들을 챙기는 데에는 조금 신경을 덜 쓰는 듯하다. 나는 평소 달리기를 할 일이 거의 없는 평범한 사람들 보다는 잘 달리지만, 그래도 그냥 아마추어라 내 실력은 아직 내세울 것이 없다. 다만 내가 어렵게 힘들게 폐활량을 키우고, 주법을 익히며, 바른 자세와 호흡법을 배웠던 과정을 생생히 알고 있기 때문에 달리기 경험이 별로 없는 다른 참여자들에게 이런 부분들을 많이 알려주고, 힘들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해주는 편이다.


그 형이랑 제대로 달리기를 딱 두 번 했는데, 확실히 장거리 달리기를 주로 하는 사람을 내가 따라가기가 정말 어렵더라. 나는 단거리, 무호흡, 전력질주 중심으로 훈련하는 사람이라, 장거리 달리기는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도 폐활량을 키우기 위해 장거리를 안 할 수 없지만, 가능하면 1킬로미터나 2킬로미터 단위로 끊어서 달리고 쉬기를 반복하는 편이다. 목요일에는 하루에 5킬로미터까지 달리지만, 나머지 평일에는 보통 1킬로에서 멈추고, 좀 컨디션이 좋다 싶으면 2킬로까지 가곤 한다. 그런데 저 형은 제일 짧게 달리는 것이 6킬로 이상이다. 도중에 전혀 멈추거나 쉬지 않는다. 나로서는 그런 훈련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어서 따라가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기는 했다. 진짜 머리가 멍해지고, 시야가 노랗게 변했다가 회색빛으로 변했다가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함부로 저 사람이랑 같이 달릴 일이 아니구나 깨닫기도 했고, 다른 한 편으로는 내게 좋은 자극이 되어서 아주 가끔 도전해 볼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는 짧게 달리기를 자주 하고, 매주 목요일엔 쉬지 않고 달리는 거리를 조금씩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할 생각이다.


어제 목요일 오후에 전혀 예상치 못하게 좀 과한 육체노동을 할 일이 갑자기 생겼다. 처음에 긴팔 티셔츠를 입고 일하다가 한 시간도 안 되어 셔츠가 완전히 땀에 젖어버렸다. 젖은 옷을 입고 계속 일하기가 그래서 티셔츠를 벗었다. 어제 아침에 속에 받쳐 입을 옷이 없어서 여름 휴가 때 해변에서나 입는 새빨간 민소매 셔츠를 안에 입고 나왔던 것이 기억나서였다. 위에 입었던 티셔츠가 다 젖었으니 당연히 민소매 셔츠도 다 젖어 있었고, 몸에 완전히 붙는 옷이라 좀 민망하긴 했다. 게다가 새빨간 색이라서 더욱. 다행히 작업하던 곳에 지나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가끔씩 오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신경이 쓰이긴 햇다. 하지만 처음에만 잠시 그랬을 뿐, 나중엔 일하느라 그걸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저녁까지 그렇게 육체 노동을 한 후에 달리기 모임을 위해 잠시 쉬면서도 땀에 젖은 긴팔 셔츠를 입지 않고 민소매 셔츠 차림으로 기다렸다. 저녁이 되어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불어 빠르게 땀이 식길래, 조금 고민을 했다. 달리기를 하면 또 땀에 젖을텐데, 이 차림으로 달릴까 아님 지금 조금 몸이 식기 시작하니 젖은 옷이라도 그냥 긴 팔 셔츠를 입어야 하나. 그런데 기다리는 중에 오시기로 한 참여자가 더 늦는다고 연락이 왔고, 슬슬 맨 몸인 팔에 추위가 느껴지기 시작해서 더 고민하지 않고 그냥 옷을 다시 입었고, 참여자가 온 후에 그 상태로 그냥 달리기를 했다. 


믹스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


커피 맛도 잘 모르고,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일을 하기 위해 안 돌아가는 머리를 억지로 돌리려고 가끔 믹스 커피를 타 마신다. 그런데 단 맛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 믹스커피는 너무 달다. 그렇다고 커피 맛도 모르는데, 밖에 나가서 비싼 아메리카노를 마시기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물을 많이 타서 약간 밍밍한 믹스 커피를 종종 마셨다. 최근에 매니저님께서 사무실에 전혀 달지 않고 담백한 맛의 두유를 좀 많이 사 두신 것을 봤다. 잘은 모르지만, 커피에 우유를 타서 마시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나는 우유를 못 마시니 두유를 한 번 타서 마셔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믹스 커피 한 잔을 타면서 두유를 엄청 많이 섞어서 마시니 단 맛이 거의 안 느껴지고 담백한 맛이 제법 괜찮게 느껴졌다. 


나는 아침과 점심을 안 먹는 날이 많아서, 저녁 한 끼만 먹는 1일 1식을 하는 편이다. 평소엔 점심을 안 먹어도 별로 지장이 없는데, 가끔 머리를 많이 쓴 날이나, 가끔 육체 노동을 한 날이면 오후에 좀 허전할 때가 있다. 그런 날에 이렇게 믹스 커피와 함께 두유를 섞어 마시니 점심 대용으로도 좋은 것 같았다. 이거 제법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점심을 거르고 일을 하다가 집중이 필요할 때 커피와 함께 두유를 타서 마셨다. 아직 매니저님께서 사두신 두유가 좀 있으니 한동안은 이렇게 계속 마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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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1-03 2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리기 거리를 미터가 아니라 킬로미터로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두 분 다 프로시네요.
자전거를 세 번쯤의 연습으로 타신다면 훌륭합니다. 옆에서 동기부여 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되지요. 커피 좋아하지 않는 점은 참 좋은 점 같습니다. 건강을 위해 커피를 끊고 싶은데 그건 할 수 없겠더라고요. 자기의 기록에 도전하고 새로운 걸 배우며 사는 게 좋아 보입니다. 파이팅!!!

감은빛 2023-11-24 20:09   좋아요 0 | URL
페크님, 안녕하세요. 답이 좀 늦었네요.
보통 한 번 달리면 1~2킬로미터 달립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 기준으로는 적은 거리죠.

자전거는 첫 시도에서 어떻게 타긴 했는데,
말 그대로 그냥 탈 수는 있게 되었지만, 아직 제대로 타지는 못 했죠.

늘 도전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그게 참 쉽지가 않네요.
고맙습니다!

cyrus 2023-11-04 0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말에 평소처럼 삼시세끼를 먹지 않아요. 주말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날인데 독서와 글쓰기에 집중하면 어느새 밥 먹는 시간을 놓쳐버려요. 밥 대신에 커피를 마실 때가 많아요. 아메리카노를 마시다가 혀가 심심하면 달콤한 맛이 나는 라떼를 마셔요. ^^

2023-11-11 0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23-11-24 20:12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 반가워요.
밥 시간이라고 밥을 챙겨 먹는 사람들이 저는 좀 신기하더라구요.
배가 고프지 않으면 입맛이 전혀 생기지 않아서요.
그런데 아침과 점심을 안 먹는 습관이 길들어진 후로는
낮엔 배고픔을 거의 느끼지 못해서요.

저는 커피도 몸에 안 받아서 잘 마시지 않아요.
단 맛을 싫어해서 라떼는 거의 먹어 본 적이 없구요.
간혹 먹을 일이 생기면 그냥 아메리카노를 마시죠.

주말에 뭔가 집중하면 다른 일은 잊게 마련이죠.
시루스님의 멋진 글들 잘 읽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얄라알라 2023-11-11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향하는 삶을 사시는 감은빛님, 달리는 사람 감은빛님, 1일 1식 감은빛님.

근데 저는 그걸 지키기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ㅎ

감은빛 2023-11-24 20:15   좋아요 1 | URL
얄라알라님. 안녕하세요.
저도 저녁만 먹기 시작하기 전에는 낮에 배가 고프지 않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어요.
일단 한 번 시도해보시면 어때요?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이는 것도 필요합니다.
탄수화물이 적게 들어가면 그만큼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되더라구요.

누구나 어려움이 있지요.
저도 얄라알라님께 부러워하는 점이 있고,
저만의 어려움도 많으니까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