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의 좌절과 허무
열심히 달렸건만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 그런 상태를 좌절이라고 표현하던가? 어제 환경운동연합이 낸 '새만금 방조제 완공 10년, 새만금을 다시 이야기하자'라는 성명을 읽었다. 그래. 벌써 10년이 지났구나. 아니 2003년 6월 정부가 아직 2~3개월 더 남은 공사기간을 줄이기 위해 밤낮없이 덤프트럭으로 바위와 흙을 퍼날라 4공구를 막았던 날로 부터 13년이 지났다. 2006년 4월 21일은 새만금 끝물막이 공사가 끝난 날로 2공구가 완전히 막힌 날이다. 하지만 방조제가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방조제는 그로부터 4년이 더 지나 2010년 4월 27일에 완성되었다. 그리고 방조제가 완성되고도 6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새만금 사업은 더 진행되지 못한 채 버려져 있다. 해수유통이 되지 않아 바닷물과 갯벌은 썩어가고 있고, 갯벌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던 수많은 생명들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 새만금 싸움의 실패와 연이어 벌어진 고속철도 싸움의 분열과 실패는 나에게 무척 충격적이었다. 아마 그때 나는 좌절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실망했다. 허무했다. 환경활동가로서 나에게 더이상 어떤 전망이 있을까 절망했던 것 같다.
녹색당의 도전과 허무
녹색당의 세번의 도전 실패 역시 허무했다. 2012년 당시 단번에 국회의원을 낼 거라고 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 저조한 득표율은 너무 허무했다. 비록 비례후보 밖에 없었기에 선거운동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당시 진보신당(현 노동당)과 청년당과 녹색당 이렇게 3당이 비공식 선거평가와 뒷 이야기를 나누는 선거 뒷담화를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내가 진행을 맡았었다. 3당의 당원들이 한결같이 했던 얘기가 주위 사람들은 다 우리당 찍었는데, 어떻게 이거 밖에 안 나올 수 있냐는 얘기였다. 그나마 경험이 좀 있었던 진보신당 당원들은 예상을 아예 못한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청년당과 녹색당 당원들은 정말 멘붕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좁은 틀 안에 갇혀 살고 있는지를 확실히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그래 현실 감각을 익힌 소중한 기회였다고 볼 수 있겠다.
두번째 도전 지방선거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지역구 후보와 광역비례 후보를 내어 나름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었다. 정말 될 수도 있겠다 믿었던 과천과 구미가 모두 안 되어 결국 한 석도 얻지 못한 것은 충격이긴 했지만. 이번에는 녹색당이 정당으로서의 기반을 다져가는 과정으로 의미를 둘 수 있겠다.
이 두 번의 실패는 나름 힘들었고, 조금 허무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어떤 지점에서는 더 독하게 다음을 준비해야 한하는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이번 세번째 실패는 그간 축적해온 노력과 성과에 비해 득표율이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해 참담한 기분이다.
그렇지만 녹색당의 선거운동은 과거 두 번에 비해 훨씬 진화했고,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을 보여줬다. 녹색당 당원은 짧은 기간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지지자도 가파르게 늘어났다. 이것은 녹색당이 준비해왔던 노력을 인정받을 만한 성과로 볼 수 있다.
한편 나는 이성적으로 이 땅의 정치 현실을 깨닫고 허무하게 주저앉기보다 즐겁고 신났던 선거운동의 기억을 통해 또 하나의 희망을 이야기 하고 싶다.
선거운동 이야기
#1
하루종일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건 중노동이다. 거기에 마이크도 없이 생목으로 녹색당을 외쳐야했다. 미세먼지 경보는 계속 '나쁨'으로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실내에 머물라고 했건만, 매연과 미세먼지를 마셔가며, 온갖 소음에 맞서 목소리를 쥐어 짜내며 소리를 냈더니 목이 완전히 가버렸다. 선거운동이 끝나고 10일이 지났건만 아직도 목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2
그런 와중에 사람들의 호응은 정말로 큰 힘이 된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을 때, 차량 한 대가 서행으로 다가오더니,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녹색당 화이팅!"이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떠났을 때, 횡단보도를 건너온 한 시민이 역시 "화이팅"이라고 외쳤을 때, 당원인데 선거운동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너무 반갑다고 다가와 인사를 건넸을 때, 여성 두 분이 "녹색당에 투표하겠다"고 말하고 지나갔을 때, 또 한 여성이 웃으며 "수고 많으세요! 고맙습니다!"하고 지나갔을 때 몸은 힘들지만, 기분이 좋아 잠시나마 피로가 가시는 경험을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들고 있던 피켓을 더 힘껏 높이 들어올리고, 허리를 꽂꽂이 세워 당당하게 시민들을 만났고, 좀 더 힘차게 녹색당을 알리기 위해 목소리를 냈다.
#3
재미있었던 건 한 고등학생이 나에게 함께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던 일이다. 당시 난 어깨와 팔이 좀 뻐근했지만 피켓을 높게 들고 있었는데, 그 학생과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어깨의 통증을 참으며 억지로 웃음을 짓는 일이 좀 힘들기도 하고,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학생과 대화를 좀 해보고 싶었는데, 뭐라 말을 걸어볼까 잠시 망설이는 사이 사진을 찍어준 친구와 함께 저 쪽으로 사라졌다. 그때 멀리서 들린 사진 찍어준 친구의 말. "너 취향 참 독특하다!"
#4
신촌은 정말 사람이 많은 공간임을 새삼 깨달았다. 특히 차없는 도로로 운영하는 주말 저녁이면 어마어마한 인파가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이 젊은 사람들이었다. 저녁때가 되면 이미 많이 지쳤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조용히 피켓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시선을 맞추곤 했다. 주로 연인들이 많았지만, 친구들끼리 온 경우도 많았다. 그 젊음의 거리 한 가운데에서 나는 피켓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요즘은 저런 옷을 주로 입는 구나. 요즘 사람들은 저런 말을 하는 구나. 마치 나는 요즘 사람이 아닌 것처럼(물론 좀 옛날 사람이긴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서 있었다.
#5
신촌에는 외국인이 정말 많았다. 우리 청년들과 함께 다니는 외국인도 많았고, 외국인들끼리 다니는 무리도 제법 있었지만, 외국인 커플도 제법 봤다. 그날은 일요일이어서 점심무렵부터 선거운동을 했는데, 지하철 역 앞에서 한 커플을 만났다. 여성은 금발에 창백할 정도로 흰 피부였고, 남성은 짧은 곱슬머리에 아주 짙은 고동색 피부였다.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내 앞쪽으로 걸어왔다가 멈춰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필 내 바로 앞에 서길래 내가 뒤로 두어발짝, 옆으로 두어발짝 물러서야 했다. 가까이 있는게 부담스럽기도 했고, 그들이 피켓을 가리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잠시 대화를 나누더니 갑자기 두 사람의 입술이 가까워졌다. 쳐다보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눈이 그쪽으로 갔는데, 잠시 후 두 사람은 지하철 역 바로 앞, 그 사람 많은 공간에서 딥키스를 나눴다. 두 사람의 혀가 섞이고, 서로 상대의 입술을 쪽쪽 빠는 모습을 보고 들으며 갑자기 내가 그들의 침실에 침범해서 엿보고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여성이 몸을 돌려 지하철 역으로 내려가려는 걸 남성이 붙잡아 끌어당겼다. 또 키스가 이어지고, 여성은 아마도 늦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는데, 다시 몸을 돌리고, 또 남성은 끌어당기고 또 키스가 이어졌다.
그날 오후 늦게 또 다른 외국인 커플을 봤다. 이번에도 밝은 갈색에 창백한 피부의 여성과 모자를 써서 머리는 보지 못했지만 조금 어두운 갈색 피부의 남성 커플이었다. 그들은 팔짱을 끼고 내 옆에 서서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는데, 남성이 내가 든 피켓이 뭔지 여성에게 물었던 것 같다. 여성이 내 바로 옆에 있어서 정확하게 들었는데, 이렇게 답했다. "Mmm I guess something about nation." 그리고 뚫어져라 내 피켓을 쳐다보았는데, 잠시후 어깨를 으쓱 올리며 "I don't know" 말했다. 곧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었고, 그들은 마지막으로 나와 피켓에 시선을 주고 길을 건넜다. 아마 여성이 '녹색당을 국회로' 라는 문구의 '국'자를 읽고 'nation'을 떠올린 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6
신촌에서는 외국인 뿐 아니라 우리나라 청년들도 사람들 앞에서 애정행위를 벌이는데 별로 거리낌이 없었다. 앞서 언급한 만큼의 딥키스를 하는 연인을 본 적은 없지만, 가볍게 입을 맞추는 행위는 여러번 보았고, 꼭 끌어앉고 있는 모습도 제법 보았다. 상대방의 뺨을 어루만지거나, 상대 허벅지 위에 앉아 있는 모습도 보았다. 뭐 문제라거나 그러면 안된다는 의미로 언급하는 건 아니다. 그저 그런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 신기했다. 사실 이것도 하나의 편견일 수 있겠지만, 저 아래 따뜻한 남쪽 도시(그 도시도 작은 도시는 아닌데)에서 올라온 서울 사람들이 대중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신기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7
사람이 많은 만큼 신촌에는 이상한 사람들도 많았다. 끊임없이 와서 시비를 거는 사람들, 취해서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계속 나타났다. 녹색당 선거운동원 중에 젊은 여성이 여럿 있었다. 이들은 이렇게 젊은 여성들에게 접근해서 뭔가 말을 걸거나, 어떤 행동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운동원들은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입장이라 평소처럼 단호하게 행동하거나 회피하지 못했다. 이들은 아마 그런 속성을 잘 알고 있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예전에도 보면 선거에 나온 후보가 유권자들에게 함부러 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다가와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모욕을 주려고 하거나, 장난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 당원들이 그러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주위에서 도와줘야 하는데, 우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붙어 있지 않고, 제각각 흩어져 있었다. 이런 부분은 당 차원의 공식 선거평가에도 언급해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이다.
#8
내가 함께했던 서대문 선본의 후보는 인디밴드 활동을 하고 있는 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녹색당의 대표적인 정책들을 곡으로 만들어 선거운동기간 동안 매일 저녁마다 정책 콘서트 형식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중 '녹색당을 국회로'(앨범에는 선거법 때문에 '녹색당을 거기로'라고 녹음했다.) 라는 흥겨운 곡에 후보의 아내(이 두 사람은 본선거 운동기간에 들어가기 직전에 결혼했다.)가 율동을 붙여 춤을 만들었다. 선본 사람들은 신촌 한 가운도에서 이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췄다. 재밌었던 건 춤을 춘 당원들이 완전히 이 곡과 춤에 빠져들어서 너무 즐거워했던 것. 대중 앞에서 춤을 춘다는 행위가 민망하기도 하고, 쑥쓰러울수도 있을텐데, 한 두번만 춤을 춰보면 대부분 태도가 확 바뀌었다.
난 사실 평일엔 거의 결합을 못해 뒤늦게 춤을 배웠는데, 처음엔 춤을 배울 생각이 없었다. 춤을 추는 대신 피켓을 들거나, 명함을 뿌리거나, 사진을 찍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후보의 아내(자꾸 이렇게 표현해 미안하지만, 이름을 부르지 않는 이상 달리 표현하기 어렵네)를 비롯해 여러 당원들이 자꾸 권해 어쩔수 없이 몸을 움직였다. 사실 난 몸치로 춤을 춰 본 적이 별로 없다. 물론 술에 취해 막 몸을 움직인 적은 있겠지만, 그건 춤이라고 부를 수 없는 그저 몸부림이다. 대학 시절부터 몸짓이나 율동이나 춤 같은 건 거의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 역시 당원들과 함께 몸을 움직여보니 즐거웠고, 용기를 내어 어색하고 못 추는 춤이지만, 녹색당을 국회로 보내기 위해서라면 까짓 춤 따위 못 추겠나 하고 생각을 바꿨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서 함께 춤을 춰보니 다른 사람들이라고 다 잘 추는 것도 아니었다. 다들 자기만의 개성어린 동작이 있었고, 틀린 동작도 있었고, 각자의 분위기가 있었다.
춤은 하루에 두세번 가량 췄는데, 저녁이 되고 바람이 불면 제법 쌀쌀했기 때문에 추워서라도 다들 춤을 추고 싶어했다. 나 역시 한 두번의 어색함을 극복한 뒤론 누구보다 열심히 그 춤과 노래를 즐겼다. 나중에 사람들 앞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춤을 춰봤다고 말했는데, 내게 춤 출 것을 권했던 안무를 만든 당원이 그 말이 인상적이었는지 나중에 언급하기도 했다.
이 춤 덕분에 내가 참 재밌게 읽었던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라는 책 제목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이전까지는 정말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였다면, 이젠 몸으로, 감각으로 그 느낌을 깨달은 것이다. 이런 뜻이었구나! 춤 춘다는 건 바로 이런 느낌이었구나! 하는 소중한 감각을 배웠다.
#9
녹색당은 2011년 창당준비를 시작해, 2012년 초에 정식 창당했고, 곧바로 총선을 치뤘다가 득표율 미만으로 정당등록이 취소되었다. 다시 재창당 과정을 거쳐 '녹색당플러스'란 당명으로 창당했는데, 우리 의도는 '녹색당+' 였는데, 선관위의 오락가락하는 입장 덕에 선거용지에 한글 여섯 글자가 기재된 이상한 이름이 되어버렸다. 우린 득표율이 낮다고 정당 등록을 취소해버린 악법에 저항해 헌법소원을 제기해 다시 '녹색당'이란 당명을 되찾았다. 그리고 득표율이 낮다고 정당등록을 취소하던 악법도 없앴다. 만약 아직 그 법이 남아있었다면, 노동당, 민중연합당, 녹색당을 비롯한 대부분의 정당들이 모두 등록이 취소되고 같은 이름을 쓰지 못하는 뭐 같은 경우를 또 당했어야 할 것이다.
암튼 그렇게 녹색당은 나름의 시간을 거쳐 성장해 온 정당이다. 활동하는 정당중에 가장 오랫동안 같은 이름을 유지해 온, 다른 말로 오래된 정당이며, 선관위에 등록된 정당 중에 당비를 납부하는 당원이 가장 많은 정당이고,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여성이 더 많은 정당이며, 국내 최초로 전면 추첨식 대의원제도를 운영하는 정당이다.
그런데 지난 총선에 짝퉁 녹색당이 하나 더 나타났다. 녹색당의 공식 색깔보다 약같 옅은 연두색에 가까운 녹색을 쓰는 안모씨의 정당이다. 선거운동을 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녹색당이 아닌 비슷한 색깔의 다른 당으로 오해했다. 자주 안모씨와 녹색당의 관계가 뭐냐고 질문을 받았고, 심지어 녹색당이 무슨 당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녹색당은 그냥 이름 그대로 녹색당이라고 말해도 계속 더민주냐 국민의당이냐 뭐 이런 질문을 하기도 했다.
충격적이었던 건, 응원한다고 했던 사람 중에 가까이와서 자세히 보더니 왜 번호가 3번이 아니고 15번이냐고 물었던 사람이 있었다. 원조 녹색당 당원으로서 참 화가 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결국 우린 거리에서 안모씨의 정당 선거운동을 해준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짝퉁 녹색당은 하나 더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녹색당의 표를 많이 가져가버린 '국제녹색당'이다. 이 정당은 거의 활동이 없어 어떤 당인지 잘 알지 못하지만 지난 지방선거 당시 정책을 보면 분명 녹색당과는 거리가 먼 정당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이름처럼 국제적인 정당도 아니었다. 우리 녹색당은 전세계 90여개 국에서 함께 하는 국내 유일의 국제정당이다.(세계 녹색당은 글러벌그린스 라는 네트워크로 묶여 있으며 공동의 가치를 추구한다.) 이 가짜 국제 정당이 가나다 순으로 우리보다 앞 번호를 받아 녹색당으로 와야 할 표를 많이 먹었다. 당시 '녹색당'에 투표해달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나중에 선거 이후 만나보니 "네가 시키는 대로 찍었어. 국제녹색당 맞지?" 하는 얘길 엄청 많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은 이번에 이 가짜 국제 정당은 선거에 나오지 않았다.
#10
이번 총선을 통해 명확하게 깨달았다. 방송과 전국언론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 원외정당, 소수정당인 녹색당은 대중 인지도도 지극히 낮고, 정권심판의 논리, 진영의 논리, 사표 논리 등 현실 정치 지형 안에서 힘을쓰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이 헛된 논리를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답을 찾지 않는다면 앞으로 녹색당에게 기회가 오기는 어렵다고 본다. 우리끼리 즐겁고 행복한 것도 한 두번이다. 계속 선거에서 참패한다면 정당으로서 제대로 된 꼴을 유지해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고민 또 고민이다!
#11
선거운동 첫날과 마지막날이 가장 힘들었다. 엄청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사실 난 평일엔 일 때문에 거의 결합하지 못하고, 주말과 가끔 시간이 나는 저녁에 함께 했고, 마지막 날은 월차를 내고 아침부터 함께 했다. 이렇게 쓰고 나니 한 편 미안하다. 더 엄청난 일정을 소화했던 후보와 선본의 다른 당원들은 나보다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식 선거운동을 함께 한 날은 토요일이었다. 아침부터 만나 홍제천을 한강 방면에서 홍제까지 걸었다. 노란 개나리꽃이 예쁘게 핀 날이었다. 미세먼지가 지독한 날이기도 했다. 홍제역에서 정책콘서트를 짧게 하고 점심을 먹은 후 무악재를 넘어 독립문을 지나 서대문까지 걸으며 선거유세를 했다. 몇몇 당원들은 다음 일정 때문에 빠져서 택시나 버스로 이동했는데, 선거차량으로 쓰고 있던 세발 자전거와 두 명의 당원은 서대문에서 다시 충정로, 아현, 이대 앞을 지나 신촌으로 돌아와야 했다.
마지막날은 그간의 피로가 쌓여 더 힘든 날이었다. 매일 선거운동을 함께하진 못했지만, 일터 일 때문에 야근을 하기도 했고, 하루는 거의 밤을 새기도 했기 때문에 몸이 엄청 피곤했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하루종일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쉬지 못한 채 마지막 날을 보냈다. 막판에는 정말 온 몸이 다 아프고, 특히 발목이 너무 아파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주변의 젊은 당원이 비교적 여유있는 모습을 보면서 난 이제 정말 늙었구나 하는 낙담을 하기도 했다. 다음 선거에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체력을 더 길러 놓아야 겠다.
#12
마지막날 11시까지 공식적으로 마이크를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린 10시까지 흩어져 선거운동을 하다가 신촌 광장으로 모였다. 빙 둘러 앉아 시민들과 당원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서대문 선본과 비례후보 1명과 청년 선본이 결합해 인원이 제법 많았다. 감동적이었다. 제각각 모두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 하는 일도 다르고, 다른 이유로 당에 들어온 사람들이지만, 지금 이 순간 모두 자발적으로 녹색당을 알리기 위해 여기 서 있었다. 한 시간 남짓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행복하다고 느꼈다.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있어서 선거운동을 하길 너무 잘했다고 생각했다.
#13
광란의 뒤풀이가 이어졌다. 거의 빌려쓰다시피 했던 지하의 펍은 녹색당의 열기로 꽉 차 있었다. 실내에는 후보의 앨범을 계속 틀어놓아서 2주 동안 함께 선거운동을 하며 노래를 다 외운 당원들은 계속 노래를 따라 불렀고, '녹색당을 국회로' 노래가 나오면 앉은 자리에서 혹은 일어서서 일제히 춤을 추었다. 아! 이 사람들 모두 미쳤구나. 단 한 명 미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나 역시 반쯤 미쳐 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함께 선거운동을 했지만, 잘 알지 못했던 당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장난치고, 노래 부르고, 춤추며 밤을 지새웠다.
하나 아쉬웠던 건 막판에 술에 취해버렸던 점. 물론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 것이지만, 술에 취해 몇몇 청년 당원들에게 꼰대짓을 한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 사실 자꾸 나이가 들면서 아는 척하고, 가르치려고 들고, 잘난 척하는 꼰대짓을 하는 걸 느낀다.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 조심하고 있었는데, 결국 못 지키고 해버린 거다. 한심한 아저씨의 쓸데없는 말을 받아주고 있었을 청년 당원들께 죄송한 마음이다.
다음 선거를 기다리며
선거 운동은 힘들었지만 즐거웠고, 선거 결과는 참담했지만, 그래도 선거를 뛸 수 있어서 행복했다. 누군가 선거를 민주주의의 축제라 부르던데, 나에게는 당원들의 축제였던 셈이다. 아마 다른 정당이었다면 이렇게 즐겁고 행복할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물론 그들에게도 그들의 즐거움과 행복이 있으리라 믿는다. 이 말은 어디까지나 나는 그랬을 거라는 뜻) 다시 돌아올 선거가 어떤 양상일지, 어떤 후보와 어떻게 치룰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역시 힘들겠지만, 즐거울 것이고, 어렵겠지만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다음 지방 선거에서는 '녹색당을 지방 의회로' 보내고, 다음 총선에서는 꼭 '녹색당을 국회로' 보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