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은 괴로워!
지역 시민신문의 편집위원이라 돈 안되는 일을 제법 한다. 한 달에 두 번씩 회의에 참석해서, 발행한 신문을 평가하고, 발행할 신문을 기획하고, 면 구성과 발행 일정까지 조율한다. 가끔 글도 써야 한다. 원고료는 없다. 지역의 행사 스케치 기사를 쓰기도 하고, 책 이야기를 쓰기도 하고, 일과 관련해서 조금 전문적인 내용을 쓰기도 한다. 지난 회의에서 나는 초미세먼지와 관련한 사설의 초안을 쓰기로 했다. 편집위원들이 돌아가면서 시기에 맞는 주요 이슈를 다루는 사설의 초안을 써서, 여러 편집위원들이 글을 다듬어 신문에 싣는다. 딱 정해진 순서가 있는 건 아니지만, 한번쯤 쓸 때가 되었고, 마침 초미세먼지와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았기 때문에 초안 쓰기를 맡았다.
지난 주 월요일부터 이틀 동안 퇴근 시간 이후에 자료를 찾았다. 알고 있던 내용 외에도 전문적인 내용들을 공부해가며 글의 얼개를 머릿속으로 그려 봤는데, 쉽지 않았다. 수요일과 목요일 밤에는 글을 쓸 생각이었는데, 계속 술 약속이 잡혔다. 저녁에 글을 쓰다 말고 나가고, 새벽에 술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잘 써지지 않았다. 지역 신문 사설로서 글의 얼개가 잡히지 않았다.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쓰자니 사설의 성격에 맞지 않고, 또 대부분의 내용은 이미 중앙 언론에서 다룬 것들이었다. 미세먼지 혹은 초미세먼지와 관련한 지역의 이슈는 거의 없었다. 애초에 쓰려고 했던 것들은 대부분 지역 신문에서 다루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사설로 풀어내기가 어려웠다.
편집장과 통화해서 이러한 어려움을 설명하고, 죄송하지만 이번 사설은 못 쓰겠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편집장은 그래도 써보라고 여러차례 권했고, 난 자신없는 목소리로 노력은 해보겠다고 했다. 지난주는 주말까지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정신이 없었다. 결국 마감일이 지나도록 글을 쓰지 못했고, 난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엊그제 퇴근 무렵, 편집장이 신문 교정교열을 도와달라고 연락을 했다. 편집위원을 맡은 죄로 마감 시기에는 종종 교정을 도와주러 간다. 오탈자를 찾는 건 기본이고, 비문을 다듬고 흐름을 살리기 위해 글을 고치거나, 아예 다시 쓰는 경우도 있다. 지역 신문의 열악한 재정 상황 때문에 취재기자도 모자란 판에 편집 기자를 두는 건 아예 꿈도 꾸지 못한다. 글을 분량에 맞게 줄이는 일도 주로 내가 맡는 일이다. 직접 글을 쓴 기자는 보통 자기 글을 줄이지 못한다.
이번에는 아직 경험이 적은 기자의 기사 두 개를 맡았다. 하나는 기사의 흐름이 완전 엉망이고, 중복된 내용이 있는데, 편집장은 도저히 손을 댈 수 없다고 나에게 맡겼다. 편집장의 말처럼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기사였기 때문에 다시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기자에게 취재한 소스를 달라고 했더니, 따로 취재내용을 기록한 것이 없다고, 보도자료와 유인물을 건네왔다. 어쩔수 없이 취재도 하지 않은 내가 인터넷 검색과 보도자료와 유인물만 갖고 기사를 다시 썼다. 편집장은 내가 다시 쓴 기사를 보고 어떻게 이렇게 썼냐고 놀랐다. 본인은 이 기사를 어쩌지 못해 몇 시간동안 스트레스만 받고 있었다고 했다. 편집장은 한 두 군데 표현을 다듬고, 만족한 얼굴로 기사를 디자이너에게 넘겼다. 기사의 마지막에는 처음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이 들어갔다.
두번째 받은 기사도 같은 기자가 쓴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핵심 내용은 조금 밖에 없고, 주제와 관계 없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역시 다시 쓸 수 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이 기사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측정기에 대한 내용이었다. 사설을 쓰기 위해 공부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이 기사의 근거가 되는 감사원 감사 결과 보고서를 찾아 팩트를 확인했다. 팩트 자체는 간단했는데, 이걸 읽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단어나 개념 자체가 워낙 생소한 분야이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기자가 쓴 원문은 다 날리고, 처음부터 글을 다시 썼다.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걸렸고,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겼다. 다시 쓴 기사를 보고 편집장은 짧은 시간에 잘 쓴 기사이긴 한데, 우리가 과학 전문지가 아니기 때문에 너무 자세한 내용을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하면서, 내가 긴 시간 심혈을 기울여 쓴 핵심 부분을 다 날려버렸다. 속으로 좀 아깝긴 했지만, 편집장의 판단이 맞는 것 같아 반박하지 못했다. 편집장은 전문적인 용어나 설명 부분을 좀 더 줄인 후 나에게 다듬어 달라고 했다. 내용을 조금 더 줄이고 전체적으로 다듬은 후에 기사를 넘기면서 넌지시 말했다. 이 글은 기존 기사와 달리 완전히 새로 쓴 글인데, 내 이름을 넣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편집장은 그러겠다고 했다. 그런데 편집장이 내 이름만 넣고, 원문을 쓴 기자 이름을 넣지 않길래, 처음 기사를 썼던 기자 이름도 넣어야 한다고 다시 말했다.
첫번째 기사는 글을 다시 쓰긴 했지만, 원문의 내용을 대부분 살려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쓴 것이라 기자 이름만 들어가도 상관이 없지만, 두번째 기사는 원문의 내용 중 극히 일부만 들어가고, 대부분 새로 쓴 것이라 내 이름도 함께 들어가는 것이 맞는데, 원문을 쓴 기자의 노동은 당연히 인정해야 하므로 공동기사로 올리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비록 초미세먼지를 주제로 사설은 쓰지 못했지만, 관련한 기사를 다시 썼으므로 그 노력은 인정해주겠다는 편집장의 말을 들으며 먼저 사무실을 나섰다. 그는 밤새 원고를 더 볼 예정이었고, 난 술을 한 잔 마시고 잘 예정이었다.
강의가 너무 길어!
최근 강의를 두 차례 했고, 강의는 아니지만 비슷한 내용을 설명해야 할 기회가 한 번 있었다. 두 차례의 강의는 지역 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더운 날씨에도 학생들이 집중해서 잘 들어줘서 고마웠다. 가끔 경로당 어르신들 대상으로 하는 강의나, 초등학생, 중학생 강의는 하지만, 고등학생 강의는 참 오랫만이다. 아주 오래전 학원 강사 시절에 고등부 수업했던 기억이 났고, 그 후 환경단체 활동가 시절 여고생들과 숲 생태 강의했던 기억이 났다.
이어 떠오른 생각은 역시 내가 나이가 들긴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학원 강사 시절에도, 활동가 시절에도 여학생들에게 수업을 하고 나면 연락처를 묻고, 친해지려고 하는 학생들이 꼭 있었다. 그건 아마도 이성에 대한 감정이라기 보다는,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한 선생님에 대한 호감이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암튼 그랬다. 생태 강의 이후 꾸준히 연락했던 학생 때문에 당시 여자친구가 질투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나 이번 두 차례의 강의에는 열심히 관심을 갖고 듣는 학생들은 있었지만, 강사인 나에게 관심을 갖는 이는 없었다. 당연하겠지. 아직 파릇파릇한 20대 청년이었을 때와 이미 아저씨가 되어버린 지금을 비교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난 옛 생각이 자꾸 떠올라 조금 서글펐다.
앞서 두 차례 강의했던 내용을 압축해서 주민들에게 설명할 일이 있었다. 여러모로 긴장이 되는 자리였다. 방송국 카메라도 비추고 있었고, 낯선 사람들은 낯설어서 부담이 되었고, 잘 아는 사람들은 혹시 실망할까 두려워서 또 부담스러웠다. 일단 집중을 시켜놓고 나니 많은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데, 긴장해서 머릿 속이 하얗게 변했다. 잘 아는 내용이고, 여러번 설명했던 내용이지만, 당시에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몰라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떻게든 말을 떼야겠다 싶어서 일단 시작은 했다. 다행히 그 후로는 자연스럽게 내용이 연결되었다. 초반에는 긴장 때문에 조금 발음이 불명확하게 나가기도 했지만, 뒤로 갈수록 여유를 되찾아 발음도 괜찮아졌다. 여유가 조금 생겨 말을 하면서 주욱 둘러보니 사람들이 집중해서 듣고 있음을 느꼈다. 속으로 어디서 끊어야 할까,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까가 고민이었다. 되도록 짧게 끝내는 것이 좋긴한데, 하지만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이렇게 집중해서 듣고 있는데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비록 강의는 아니지만, 이 기회에 확실하게 내용을 전달하고 싶어서 욕심을 부렸다. 사실 좀 더 여유가 있었으면 농담도 섞어가면서 분위기를 조절했을 텐데 마음이 급해서 빠른 말투에 설명이 좀 많았다.
역시나 끝나고 나를 잘 아는 선배가 이렇게 평가했다. 중반까지는 설명을 잘 했고, 분위기도 좋았다. 제법 성과가 있었다. 다만 조금 길었던 게 흠이다. 다들 집중해서 들으니까 설명이 계속 길어졌는데, 적절하게 끊었어야 했다. 나 역시 마지막에 설명이 좀 길었다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정확하게 짚어줬다. 단점을 파악했으니 고치기 위해 노력해야 할텐데, 문제는 이걸 극복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다. 떠올려보니 설명이 길었다는 지적을 꽤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언젠가 지역 녹색당 총회에서 의장을 맡아 안건을 설명하고, 당원들의 질문에 답을 했는데, 혼자서 두 시간 넘게 떠들었다고, 잘라낼 부분은 잘라내고, 시간 조절을 했어야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언젠가는 10분 발표를 맡았는데, 15분 이상을 마이크를 잡고 있어서 지적 받았던 적이 있었고, 5분 발표를 맡아 얘기중이었는데, 5분이 다 될 동안 얘기해야 할 내용의 절반도 못해서 절망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런 기억이 점점 더 많이 떠올랐다.
말이 느린 편은 아닌데, 핵심이 아닌 도입부에서 시간을 끄는 경향이 있다. 그러고보니 글도 마찬가지다. 주제보다 도입부에서 더 많은 분량을 잡아먹는 경우가 많다. 이건 정말 고치기 쉽지 않겠다. 특히 이번 처럼 즉흥적으로 설명해서는 절대 고칠 수 없다. 미리 설명할 내용을 준비하고, 시간을 재가면서 분량을 조절해야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써놓고 또 다음에 발표나 강의가 예상보다 길어져서 곤란한 경우를 겪겠지. 뭐 인생이 다 그렇지. 또 글을 써도 주제보다 도입부가 긴 글을 쓸 것이고, 늘 마감 시간에 쫓겨 글을 쓸 것이고, 결국 마감을 넘기고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메일을 보내겠지. 뭐 그렇겠지.
디스크는 있다? 없다?
한 이 주 전부터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갑자기 자고 일어났는데 허리가 너무 아파 깜짝 놀랐다. 잠을 잘 못 잔 것일까? 생각해보니 야근이 잦았고, 그만큼 컴퓨터 앞에 거북이 자세로 앉아 있었던 시간이 많았고, 제법 오랫동안 스트레칭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누구나 그런지 유독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관절을 다치거나, 아파서 문제가 된 적이 많았다. 군대에서 무릎을 다쳐 제법 오랫동안 고생했고, 역시 군대에서 어깨를 다치기도 했다. 둘 다 인대가 늘어났는데, 한번 망가지고 나니 다치기 전으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아직도 다쳤던 무릎과 어깨는 움직임의 폭이 좁고,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몇 년 전에는 골반 통증으로 고생을 하기도 했다. 그때 괜히 큰 병인줄 알고 지레 겁을 먹어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나 고민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생각해보니 몇 년 전부터 허리 통증이 간혹 있었다. 증상은 대부분 지금과 같았다. 아마도 나쁜 자세 탓일 것이고, 스트레칭을 꾸준히 하면서 자세를 바로잡으려 노력하면 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아프다. 하루종일 계속 통증이 있는 것은 아닌데, 어쩌다 한번씩 통증이 오면 깜짝 놀랄만큼 아프다. 그래서 요 며칠동안 디스크에 대해 알아봤다. 생각보다 통증이 오래가길래 이런게 디스크인가 싶어서다.
이런저런 글들을 찾아 읽고, 동영상도 여러 편을 찾아봤는데, 내가 느끼는 통증은 디스크와는 달랐다. 한편 안심하면서도 한편 답답한 마음도 들었다. 디스크가 아니라면 내가 느끼는 통증은 대체 뭘까? 뭘 어떻게 해야 통증이 사라질까?
분명 나쁜 자세 때문일텐데, 그래서 자세를 바로 잡고 앉아서 일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러고 앉아 있으면 일에 집중이 잘 안된다. 그리고 막 집중해서 일을 하다가 보면 어느새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목을 쭉 내민 거북이 자세로 앉아 일을 하고 있다. 이거 생각보다 답이 잘 안 나온다.
작년 연말에 나온 현직 정형외과 의사 황윤권 선생의 책은 읽어보진 않았지만, 일리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김철 선생의 책 역시 읽어보진 않았지만, 예전에 김철 선생의 다른 책들과 글을 읽었기에 어떤 내용인지 대체로 알고 있다.
우리는 의학과 과학 때문에 점점 더 우리 몸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의사나 과학자가 우리 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존재여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그들에게 기대어 혹은 그들의 말만 믿고 우리 몸에 관심을 두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가 아니면 발언하지 못하는 시대. 의사와 과학자가 전문가인 것은 맞지만, 과연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을까? 비록 전문적인 지식은 부족해도 내 몸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은 내가 아닐까? 이를테면 비가 오기 전에 무릎에 미약하게 통증이 오는 이유를 어느 의사나 과학자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군대에서 무릎을 다쳤을 때, 연대 의무대에서도, 사단 의무대에서도 군의관들은 뼈가 툭 튀어나온 무릎을 보고 놀라기만 할 뿐 아무런 진단도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나중에 육군 통합병원에 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군의관은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휴가를 받아 나가서 MRI를 찍어 오라고 했다. 어깨 뼈를 다쳤을 때, 휴가를 받아 나와 정형외과를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정형외과 의사 역시 어깨 뼈가 이렇게 툭 튀어나온 이유를 알 수 없다며 그저 물리치료를 받고 가라고 했을 뿐이다. 골반 통증 때도 비슷했다. 유명하다고 소문난 큰 정형외과 의사는 X레이 사진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 MRI를 찍자고 했다. 함께 동행했던, 내가 의심했던 병을 이미 오래전부터 앓아 왔던 큰 처남이 아니었다면, 속는 줄 알면서도 MRI를 찍을 뻔 했다. 통증이 생각보다 오래갔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 너무 절망적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무릎도, 어깨도, 골반도 병원의 아무런 도움 없이 저절로 나았다. 물론 스트레칭을 자주 하고, 해당 부위 주변 근육을 단련하기 위한 노력 등을 하긴 했다. 덕분에 완전히 다치기 전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대부분 저절로 통증이 사라지고, 일상 생활도 가능할 정도로 돌아왔다. 지금 이 허리 통증도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고, 또 시간이 더 지나나면 나쁜 자세와 스트레스 등의 원인으로 다시 나타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병원이 아니라 관심일 지 모른다.(이건 질병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근육이나 인대나 관절이 아플 때에 한정해서) 몸을 잘 못 쓰면 아플 수 밖에 없다. 몸을 잘 쓰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