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3일째 쓴 칼럼
칼럼 형식의 글을 써달라고 부탁받은 것은 아마 마감 5일 전이었다. 하지만 난 신문 편집위원이기 때문에 실제 신문 마감이 언제인지 알고 있었다. 실제 마감일로 따지면 8일 전에 원고청탁을 받았다. 내 활동과 관련 있는 분야이고, 최근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많이 찾아봤기 때문에 글을 쓰는 건 어렵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5일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3일은 원고청탁 자체를 잊었다. 그러니까 청탁받은 마감일 바로 전날인, 4일째 되는 날에야 글을 어떻게 쓸지 고민을 시작했다. 각종 언론 기사를 찾아보고 주요 기사들을 갈무리 해두고, 내가 취할 태도를 명확하게 그리며, 글의 얼개를 대략 짜놓았다. 그리고 다음날인 청탁받았던 마감일에 글을 써서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요일이었던 그날은 글을 쓰려고 컴퓨터를 켜기가 너무 싫었다. 집에선 도무지 집중이 안 되었고, 글을 쓰려고 사무실에 나가기도 너무 귀찮았다.
다음날 사무실에서 써야지 생각했는데, 월요일이라 또 무지 바빴다. 그렇게 마감을 하루 지나도 글을 시작도 못했고, 화요일에 편집장님과 통화하면서 신문 원고를 최종마감하는 수요일에 글을 써서 신문사로 가겠다고 했다. 마감 교정을 함께 보기 위해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그때까지 글을 쓰겠다는 뜻이었다.
이번 칼럼은 생각보다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마지막에 분량 조절하느라 좀 애를 먹었다. 해야할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는 좀 더 많았는데, 도무지 다 담아낼 수가 없었다. 앞에 도입부를 좀 줄이고 넣어야 할텐데, 난 도입부가 마음에 들어 더 줄이고 싶지 않았다. 결국 뒷부분을 대부분 축약하고 보낼 수 밖에 없었는데, 나중에 편집회의에서 지적을 받았다. 글의 중간까지는 정말 좋았는데, 뒷부분의 흐름이 끊겨서 무척 어색했다는 이야기였다.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역시 글을 잘 쓰는 건 어려운 일이다.
강의 당일 만든 강의자료
강의 요청을 받았던 건, 아마 1달 반 전이었던 듯하다. 비슷한 강의를 몇 번 해봐서 기존에 있는 강의자료를 조금 수정하면 되리라 여겼다. 이후 그쪽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원하는 강의 내용을 적어서 보냈는데, 큰 틀에서는 같은 내용이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강의자료를 좀 더 꼼꼼하게 손을 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했을 때부터 조금씩 고쳐놓거나, 내용 준비를 해뒀어야 했는데, 그러고 1달 넘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바로 강의 직전에야 강의자료 생각이 났다. 이틀 전에 파일을 열어서 추가할 내용을 간략하게 메모하고, 슬라이드 순서를 수정하는 등 1차 작업은 해뒀다. 하루 전에 작업해서 완성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하루 전에는 손 댈 여유가 없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일을 하는 오래된 습관 때문에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당일 낮에 작업해서 저녁에 가져가면 될 일이라고 여겼다. 중요한 업무들을 해놓고, 오후 3시쯤부터 강의자료를 만들었다. 요청했던 내용을 다시 꼼꼼히 보니, 생각보다 손을 많이 봐야할 상황이었다. 세부적인 내용은 굳이 자료에 안 넣어도 말로 풀어서 설명할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전체적은 흐름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혹시 빠뜨린 이슈는 없는지 하는 부분에 더 신경을 썼다.
도중에 업무 전화를 몇 번 받아야 했고, 옆 사무실 활동가와 일정 조정하느라 잠시 면담도 해야 했다. 시간은 점점 흘렀고, 자료는 계속 미완성 상태였다. 6시를 넘기면서 포털에서 이동시간을 검색해봤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가 다소 불편한 동네였다. 최소한 6시 15분에는 출발해야 했다. 급하게 마무리짓고 사무실을 나섰다. 딱 15분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도착 시간을 조회해봤는데, 너무 오래 걸린다 싶었다. 강의할 사람이 지각하는 건 용납하기 어려운 실수다. 택시를 잡아 탔다. 목적지를 설명하기 위해 스마트폰 지도를 기사님께 보여주고, 잠시 숨을 고르다가 문득 불안한 느낌이 들어 주머니를 뒤져봤다. 강의자료를 담은 유에스비 메모리를 컴퓨터에 꽂아둔 채로 나왔다는 걸 깨달았다.
기사님께 차를 돌려달라고 말씀드리려 했는데, 유턴할 수 있는 교차로가 한참 멀었다. 게다가 퇴근시간이라 양쪽 도로가 모두 꽉 막혀 있었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택시를 내려 사무실로 뛰었다. 머리 속으로 계산한 시간은 7분. 숨이 턱에 차도록 뛰었는데, 8분 걸렸다. 컴퓨터에 꽂혀 있는 유에스비를 꺼내어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뛰어나갔다.
운이 썩 나쁘지는 않았나보다.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기사님께 목적지를 설명하고, 최대한 빨리 가달라고 부탁드렸다. 기사님이 약간 돌아가는 길을 말씀하시길래, 더 빠른 길을 알려드렸다. 다행히 강의시간 2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강의는 특별한 실수 없이, 재밌게 잘 마쳤다.
결국 펑크 난 회의자료
월요일 저녁에 이사회 회의가 있었다. 대개 금요일부터 회의자료를 준비하고, 다 완성하지 못하면 일요일에 출근해서 마무리하기도 한다. 금요일은 외부 회의가 두 개 있었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시간이 길지 않았다. 결국 거의 손을 대지 못하고 퇴근했다. 저녁에 술약속이 있었고, 자리가 파할 때쯤 지갑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좀 많이 당황스러웠다. 술에 취한 것도 아니었고, 지갑을 꺼낸 기억이 없는데, 분명 뒷주머니에 있어야 할 지갑이 없었다.
주말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혹시 사무실에 지갑을 두고 나왔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지갑 생각을 하느라 다른 건 제대로 한 것도 없이 주말을 보냈다. 일요일 저녁에 출근해서 일을 해야할 텐데 라는 생각을 해봤으나, 지갑에 들어있던 보안카드가 없어서 건물에 들어갈 수 조차 없었다. 월요일 아침에 누군가 출근해서 보안문을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었다.
월요일 아침 출근해서 보니 역시 지갑은 없었다. 바로 회의자료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나는 지갑 생각에 빠져 지하철 유실물보관센터 몇 군데 전화를 걸고, 경찰청에서 운영하는 lost112 사이트에 가입해서 지갑 분실 신고를 하고 있었다. 그러느라 오전을 다 보내고, 평소보다 점심도 늦게 먹고, 오후에야 회의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초조했다. 속으로 시간 안에 완성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과 어떻게든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그런 와중에 전화도 많이 왔고, 찾아와서 뭘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회의시간아 다 되도록 자료를 완성하지 못했다. 하나의 항목은 아예 쓰지 못했고, 두 개 정도의 항목을 부실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오탈자는 고사하고, 날짜나 숫자가 안 맞는 내용이 많았다.
당연히 회의에서는 부실한 자료에 대한 지적이 나왔고, 하나 둘 잘못된 내용이 나올 때마다 나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번에는 너무 심했다 싶을 정도였다. 평소 별로 말이 없던 이사님조차 지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그만!
최근 한 두어달 동안 진행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별 다른 원인도 없이 중요한 일이 안 풀리니, 다른 일은 통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의 특성상 내가 중간에 끼어서 양쪽의 의사소통을 조율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 원활하게 진행이 안되니 뭔가 다 내 잘못인 것만 같고, 의욕이 잘 생기지 않았다.
평소와 달리 정신을 못 차리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정신적인 압박을 받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난 이사회 때 완전히 바닥을 찍은 느낌이었다. 실수를 깨달았으니 이젠 바로잡아야 할 시간이다. 앞으로 정신을 좀 차리고 다시 차분하게 하나씩 해나가야겠다. 연휴가 끝나면 곧바로 중요한 일정들이 줄줄이 다가온다. 자, 마음을 다 잡고, 자신감과 여유를 갖고 한번 해보자! 잃어버린 점수를 만회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