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를 뚫고
어제 저녁 아이들과 임진각을 다녀왔다.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문득 비 내리는 강가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왔으면 좋겠다 싶었다. 처음엔 바다를 생각했다. 그러다 비 오는 날엔 강이 더 어울리겠다 싶었다. 그럼 어디? 예전에 출판사 다닐 때 파주에 있는 거래처를 오가며 임진각이 여기서 멀지 않겠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임진각을 한번도 가 본적이 없어 거기 가면 바로 강이 보일거라고 생각했다. 오후 늦게 집을 나설 때는 비가 그리 많이 오진 않았다. 사실 비도 오고 아이들도 나가는 걸 귀찮아해서 좀 고민을 했다. 게다가 연휴 한 가운데 끼인 날이라, 나눔카 업체에 놀고 있는 차가 거의 없었다. 집 근처에 새로 생긴 대여존이 많았고, 차도 많이 늘었길래, 쉽게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지하철 역을 기준으로 두세정거장 거리에 10여 개의 대여존 중에 놀고 있는 차가 없었다. 그래서 조금 멀리 이동하더라도 차를 빌릴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귀찮아서 가지 말자 생각을 했는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자고 마음 먹었는데, 누군가 예약을 취소했는지 차가 하나 나왔다. 얼른 예약부터 해놓고, 아이들을 준비시키고, 나도 세수하고 옷을 입었다.
비가 오니 아이들과 나도 모두 방수가 되는 잠바를 입고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아이들은 집을 나서면서 배가 고프다고,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했고, 평소라면 사주지 않았을 테지만, 이번만은 아이들 기분을 고려해 사줬다. 햄버거가 나오는 동안 근처 카페에서 아이들이 버거랑 마실 스무디를 사고,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샀다. 확실히 아이들과 움직이면 시간이 더 걸린다. 이동시간까지 고려해 시간을 예약했건만, 예약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주차장에 도착했고, 넓은 주차장에서 차를 찾는데 시간이 또 걸렸다. 흘러가버린 시간이 아깝긴 했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오늘 내 목표는 비가 내리는 강을 보는 것. 그걸 위해 사소한 건 따지지 말자.
아이들이 안전벨트를 매고 버거와 스무디를 먹기 시작했다. 차가 흔들리고, 움직일 때 스무디 쏟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당부를 하고, 라디오를 켜고 운전을 시작했다. 이건 경차의 새 모델이던가? 처음 몰아보는 차종. 계기판도 낯설고 뭔가 모르는 게 잔뜩이다. 비가 내리고 흐린 날씨라 라이트를 켜고 운전해야 했는데, 핸들 왼쪽 레버를 아무리 돌려도 라이트가 켜지지 않더라. 요즘 차들은 외부 밝기에 따라 자동으로 라이트가 켜졌다가 꺼지던데, 이 차종도 그런 줄만 알고 그냥 운전했다. 가면서 아무리 봐도 라이트가 들어온 것 같지 않은데, 이상하다는 생각만 계속했다. 와이퍼의 조작도 뭔가 어색했고, 뒤쪽 와이퍼 조작 버튼도 찾질 못했다.
낯선 차 운전에 조금 익숙해지면서 나도 배가 고파 내 몫으로 산 햄버거를 꺼내 한 입 물었다. 작은 아이가 갑자기 "아빠 운전하면서 햄버거를 드시면 어떡해요? 사고 날지도 모르잖아요!" 라고 말한다.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을까? 안전교육 같은 걸 받을 때 그런 말을 들었던 걸까? "아빠는 앞에서 눈을 안 떼고 먹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라고 아이를 안심시켰지만, 그닥 안심한 눈초리는 아니었다. 예전에 출판사에서 출장 다닐 때에는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즉 한 시라도 일찍 돌아오고 싶어서) 밥도 식당에서 사먹지 않고, 김밥이나 햄버거 따위를 사서 차를 몰고 고속도로 위에서 먹으며 운전하곤 했다. 김밥이 한 입씩 먹으면서 운전하기 좋지만, 햄버거라고 뭐 그리 어려울 일은 없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차 천장으로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제법 괜찮았다.
예전에 자주 운전을 해야했을 때에는 빗길 운전이 그렇게 싫었다. 비가 오면 차가 잘 미끄러지기도 하고, 앞뒤좌우가 잘 안 보여 시야가 매우 좁아진다.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은 날 빗길 운전을 해야 할 때면, 좁디 좁은 감옥에 갇힌 듯한 느낌이 든다. 잘 보이지 않아서 원하는 대로 차선 변경도 못하고 무조건 앞으로만 가야하는 듯한 느낌. 어딘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폭우가 내릴 때 운전한 적이 여러번 있었다. 첫 기억은 시민단체 활동가였던 시절,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대회가 있어서 선배와 후배 활동가를 태우고 갔을 때였다. 장소가 아마 군산이었던가? 아침 일찍 나섰는데, 그때 이미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서울을 빠져나가 서해안고속도로에 들어선 후부터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하더니, 경기도 남쪽 어딘가에서 부터 완전 물폭탄 같은 폭우로 바뀌었다. 와이퍼를 최고 속도로 해놓아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고속도로에 있던 모든 차들이 비상등을 켜고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 역시 앞 차의 비상등이 깜빡이는 걸 간신히 알아보고 천천히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폭우 때문에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어버렸다. 얼마나 그렇게 달렸을까? 아주 조금 비가 덜 온다 싶을 때(그래도 여전히 폭우)부터 차들이 조금씩 속도를 더 냈다. 시속 30미만이다가 한 60 정도로 속도가 올라갔다. 그리고 서해대교를 지난 이후로는 시속 80~100가량을 유지할 수 있었다. 비는 여전히 내렸지만, 그 순간에 비하면 안 내리는 거나 마찬가지 같은 느낌이었다. 그 순간은 정말 악몽이었다. 와이퍼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내리는 비라니!
두번째 기억은 출판사에 다닐 때, 파주에 있는 거래처를 가는 길이었다. 자유로를 타고 올라가는데,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국도에 접어든 이후로는 폭우로 바뀌었다. 차가 많지 않은 길이라 부담은 별로 없었지만, 자주 다니지 않는 길이라 헷갈려하는 곳에서 앞이 잘 보이지 않으니 답답했다. 게다가 거래처 약속 시간 안에 가야했기 때문에 부담감이 컸다. 순간적으로 확 퍼부울 때는 와이퍼를 최고 속력으로 해놓아도 잘 안 보였지만, 그 순간은 짧았고, 이후에는 앞이 보이지 않는 수준은 아니었다. 어딘가 교차로를 지나자 철길 교차로가 나타났다. 갑자기 그 폭우 속에서 노란 비옷을 입은 아저씨들이 빨간 안전봉을 들고 나타나 길을 막았다. 차단막이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땡땡땡땡 종이 울리고 멀리서부터 열차의 진동과 소리가 느껴졌다. 나는 비가 많이 오고 있었음에도 창문을 내리고 비를 맞으며 그 빗속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아저씨들을 보았다. 그냥 차단막이 내려오기만 해도 차들이 멈추지 않나? 저 폭우 속에 저렇게 뛰어나왔다가 또 들어가야 하나? 저 분들은 어디서 비를 피하고 몸을 녹이다가 다시 또 뛰어나올까?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다.
마지막 기억은 폭우는 아니고 짙은 안개 때문에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날이다. 어차피 폭우 때문에 힘든 건 앞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 갇혀서 눈먼 상태가 되는 건 생각하기도 싫을만큼 끔찍한 일이다. 안개도 마찬가지다. 잡지사에 있을 때였다. 잡지 편집위원이었던 선배가 늦은 나이에 장가를 가는데, 결혼식 장소가 전북 고창이라 잡지사 식구들을 태우고 운전해서 갔다. 선배는 시인이었고, 가끔 르뽀 글을 쓰는 작가였고, 형수가 될 분은 소설가였다. 그 쑥맥인 선배가 어떻게 형수를 만났을까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암튼 우린 결혼식 전날 내려가서 장어와 복분자주를 마시고, 선운사 근처에서 하루 밤을 지내고 아침에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올라왔다. 갑자기 짙은 안개 때문에 앞이 전혀 보이지 않게 된 건 고창 시내에서 선운사 쪽으로 이동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우리 차는 연식이 오래된 프라이드였는데, 안개등이 따로 없었다. 낡아 빠진 차라서 라이트도 그리 밝지 않았던 터라, 안개가 짙어지니 발 밑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지금 구름 위를 달리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 였다. 비상등을 켜고 속력을 시속 30 미만으로 완전히 줄이고, 천천히 나가야 했다. 난 답답하고 무서웠는데, 동행했던 여성 편집자는 그 안개가 낭만적으로 느껴졌나보다. 갑자기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무슨 노래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난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고, 그는 한껏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만 기억난다.
어제는 출발할 때는 비가 많이 오진 않았다. 파주를 가로질러 북으로 달리는 중에 몇 차례 빗줄기가 굵어졌다가 잦아들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빗길을 달려 강을 보기 위해 나섰던 것이니. 예전에 자주 운전하던 날엔 조금이라도 비가 오면 신경이 예민해져 무척 싫었는데, 지금 이렇게 빗길을 달리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싶어서 신기했다. 그리고 일부러 느긋하게 달렸다. 아이들을 태우고 있기도 했고, 별로 서두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차선을 바꿔갔을 정도로 앞차가 답답하게 달려도 그냥 뒤따라 갔다. 속도가 느릴 때, 신호에 걸렸을 때 햄버거를 다 먹어치우고, 커피를 마시며 느긋한 마음으로 빗소리를 즐기며 차를 몰았다.
해가 저물어 어두어질 무렵 임진각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막판에 잠들었기에, 도착했다고 깨우니 좀 짜증을 냈다. 어두워서 뭔가 잘 보이질 않았다. 게다가 비가 다시 거세지고 있었다. 주차장과 도로는 물이 잘 빠지지 않아 곳곳에 물이 고여 있었다. 아이들과 나는 모두 신발과 바지가 다 젖은 채로 강을 볼 수 있는 곳을 찾아 움직였다. 마침내 전망대를 찾아 올라갔는데, 바람이 엄청 심하게 불었고, 비는 다시 폭우가 되었다. 아이들은 춥다고 건물 안에 머물렀고, 혼자 전망대 겸 옥상에 올라 북녁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와 안개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저 너머 임진강이 흐르는 곳이라 짐작되는 곳으로 시선을 주고 한참을 서 있었다. 바람 때문에 우산이 소용이 없어, 그냥 폭우를 다 맞고 서있었더니 온 몸이 다 젖어버렸다. 그래도 좋았다. 하늘은 어두웠고, 비는 쏟아졌고,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이 시공간이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 비 내리는 강을 보고 싶다고 무작정 찾아온 것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덜덜 떨리는 몸을 추스려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작은 아이는 아빠가 한동안 내려오지 않아 걱정이 되었던지, 계단에서 내가 보이자마자 큰 소리를 아빠를 불렀다. 난 계단을 뛰어 내려가 작은 아이 앞에 쪼그려 앉아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젖은 머리칼을 넘겨줬다. 아이들을 화장실에 들여보내고, 아빠가 입구 바로 앞까지 차를 가져올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하고, 폭우를 뚫고 달렸다. 다 젖어버린 바지가 몸에 붙어 잘 뛰어지지 않았다. 차에 시동을 켜고 앞으로 나가려는데, 전혀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어두웠기 때문에 라이트를 켜야 했는데, 난 아직 라이트 작동법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왼쪽 레버를 밀었다가 당겨보기를 반복했다. 당겼을 때 상향등이 켜졌다. 하지만 레버가 고정되지 않고, 손을 놓으면 다시 어두워졌다. 난 왼손으로 레버를 당겨 상향등을 켠 채로 운전해서 아이들을이 있는 전망대 입구로 갔다.
아이들을 태우고 임진각에서 나오면서 도저히 상향등 레버를 당긴 채로는 운전을 못 하겠어서, 라이트 켜는 법을 찾고 가리라 맘 먹었다. 실내등을 켜고 차근차근 하나씩 운전대를 살폈다. 뒷 유리에 성에가 끼어 보이지 않았기에 뒷 유리 열선을 켜는 법도 찾아야 했다. 뒷 유리 와이퍼 조작 버튼을 먼저 찾고, 열선 켜는 법도 찾았다. 이제 라이트만 찾으면 되는데, 왼쪽 옆에 뭔가 동그란 버튼이 있어서 돌려봤더니 드디어 라이트가 켜졌다. 이걸 못 찾아서 그렇게 헤맸다니! 어이가 없어서 헛 웃음이 나왔다.
돌아오는 길도 느긋했다. 차량이 많지 않은 길이라 천천히 달려도 문제는 없었다. 올때 잠들었던 아이들은 갈 때는 눈이 말똥말똥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며 돌아오는 길도 재밌었다. 마침 롤링스톤즈 잡지가 선정한 90년대 최고의 노래 100곡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내가 한창 좋아했던 음악들, 자주 들었던 음악들이 나와서 좋았다. 어느 교차로에 차가 멈췄는데, 배철수 아저씨가 셰릴 크로의 'If it makes you happy'를 틀어줬다. 나도 모르게 볼륨을 올리고, 핸들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고개를 까딱이고 있었다. 셰릴 크로의 2집은 테이프가 늘어나도록 반복해서 들었다.
이 곡도 좋지만, 'hard to make a stand'도 좋고, 월마트에서 산 총으로 서로를 죽이는 이들을 조심하라는 가사 때문에 월마트에서 음반 판매를 거부해, 결국 흥행에 참패하게 만든 곡 'love is goodthing'도 정말 좋다.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끝날 때쯤 우리도 차를 빌렸던 주차장 근처에 도착했다. 네비로 정확하게 그 주차장을 찾아 찍을 수 없어서 근처 골목에서 좀 헤맸다. 일방통행에서 거꾸로 들어갔다가 비켜주기도 했고, 길이 이상하게 꼬여 있어서 다시 큰 길로 나갔다가 다른 골목을 찾기도 했다. 간신히 주차장 주 출입구 앞에 도착했는데, 철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이거 어떻게 하지? 난 이제 차를 반납해야 하는데, 주차장이 잠겨 있으면 어떻게 들어가지? 관리하는 아저씨도 퇴근해서 보이지 않았다. 혹시 다른 뒷문이 있는데 내가 못 본 걸까? 차를 몰고 주차장 근처를 한 바퀴 돌았는데, 찾지 못했다. 반납 예정시간이 이제 거의 다가왔다. 30분 단위로 연장이 가능한데, 그러려면 돈을 또 더 내야 한다. 다급했다. 우산도 안 쓰고 내려서 관리실 근처를 돌아보는데, 누군가 주차장 안쪽에서 담배를 피우며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큰 소리로 물었다. 거기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는 그는 친절하게 뒤쪽에서 들어오는 골목 입구를 알려줬다. 빠르게 차를 몰아 그 골목으로 들어왔다. 차를 주차시키고, 아이들에게 짐을 챙겨 내리게 하고, 반납 버튼을 누르고 보니 딱 반납 예정시간이었다. 반납이 완료되었다는 문자는 1분 후에 왔다. 휴~ 가슴을 한번 쓸어내리고 아이들 손을 붙잡고 나왔다.
근처 마트에서 먹고 싶은 걸 잔뜩 하고, 와인도 한 병 사서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큰 아이가 갑자기 모 뷔페식당 이름을 보고 가고 싶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큰 아이의 말을 듣고도 잠시 망설였다. 비싼 가격 때문이기도 했고, 온 몸이 다 젖은 이 상태로 거길 가야 하나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에게 물었다. "맛있는 것, 먹고 싶은 것 사서 집에가서 씻고 편하게 먹을면 안될까? 아빠가 다 사줄게." 이렇게 옷도 신반도 다 젖은 찝찝한 상태로 먹고 싶지 않을 것 같아서 물었는데, 아이는 그래도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 오늘은 원하는 대로 해주자 싶었다.
아이들은 신나서 이것저것 먹었다. 난 사실 그리 입맛이 땡기는 음식이 없었다. 회 종류를 비롯한 해산물은 거의 없었다. 말라버린 훈제연어가 유일했다. 할라피뇨가 들어간 매운 파스타와 치킨을 비롯한 몇 가지로 배를 채울 생각이었다. 아이들 물을 떠 주려고 구석으로 갔다가 와인통을 발견했다. 돈을 좀 더 내면 와인을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다고 써있었다. 직원에게 물었더니, 영수증 한 장을 더 발급하고, 내 팔목에 흰색 테이프를 감고, 와인잔을 가져다 주었다. 처음에 화이트와인을 조금 따라 마셨는데, 무척 달았다. 그 옆에 있는 레드와인도 달았다. 곧바로 후회했다. 이렇게 달기만 한 와인인 줄 알았으면 안 마실 걸 그랬다 싶었다.
달디 단 와인을 마시며 와인을 좋아하는 이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곧바로 답이 왔다. 달지 않고 드라이 한 와인이 있으니 그걸 마시라고 했다. 내가 찾지 못했다고 답을 했더니 통이 두 개라고, 하나는 달고, 하나는 드라이한 거라고 했다. 남은 와인을 한번에 마시고 다시 가보니 과연 그렇더라. 처음엔 보지 못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작은 글씨로 설명을 다 붙여 놓았더라. 멜롯 어쩌구 하는 드라이 한 맛의 와인을 잔 가득 따라와서 마셨다.
와인을 서너잔 쯤 마셨는데,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 간다는 방송이 나왔다. 나는 빠르게 잔을 비우고 또 와인을 가득 채워왔다. 이미 배가 불러 다른 안주는 못 먹겠고, 할라피뇨 두 세 조각과 올리브 서너조각만 담아왔다. 아이들은 이미 달기만 한 케익 조각이나 쿠키 종류를 먹고 있었다. 딱 문 닫는 시간까지 와인을 다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젖은 옷을 벗으며 빨래가 걱정이 되긴 했지만, 하루를 잘 보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언젠가 아이들이 임진각이란 단어를 듣거나 보면, 어제를 떠올리겠지. 햄버거와 스무디와 폭우와 바람과 추위 그리고 맛있었던 음식을 기억할 지 모른다. 아빠가 문득 비 내리는 강을 보고 싶어서 다녀왔다는 말은 혹시 기억할까? 어쩌면 다 잊어버리고 왜 아빠가 우릴 비 맞히고, 추위에 떨게 했을까 원망만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