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슬럼프? 침체기? 우울증? 무기력증? 침몰? 쇠약?
요즘의 나는 흔히 부진하고, 저조하고, 무기력하고, 바닥을 친다는 뜻으로 말하는 온갖 단어를 다 갖다 붙여도 다 해당되지만, 그 말들을 다 동원해도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그런 상태다. 몸도, 마음도, 일도, 인간관계도, 주변 상황도 모두 그렇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마음의 파멸
오래전 츠바이크의 [마음의 파멸]을 읽었을 때 바로 알 수 있었다. 내 마음이 얼마나 약한지. 아니 요즘 말로 멘탈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아니면 인격이라고 불러야 하려나. 이 책을 읽을 당시 난 어렸지만, 이미 한 번 이상 마음이 완전히 깨져버리는 파멸을 겪은 후였기에 그 상황을 너무나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음이 부서지는 건 항상 아주 충격적인 사건을 겪어서는 아니다. 일상의 작은 일에도 얼마든지 마음에 균열이 생길 수 있고, 처음엔 별것 아니라 느꼈던 그 작은 균열이 점점 커져 결국 파멸로 몰아갈 수 있다.
물론 부서진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본인의 마음가짐에 따라 얼마든지 다시 회복할 수 있고, 다른 방향으로 새로운 마음을 키워갈 수도 있다. 마음이란 건 늘 상처 받았다가 다시 회복하길 반복하는 것이니. 우리 몸이 그렇듯, 우리 마음이란 것도 늘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지금의 나는 어딘지 모를 아주 깊고 깊은 나락에 가라앉아 있다. 마음이 완전히 부서져버린 상태임을 느낀다. 최근 뭔가 큰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아, 물론 사건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삶이란 늘 크고 작은 사건의 연속이니. 다만 지금 내 마음의 파멸을 설명할 큰 사건이 최근에 있었던 건 아니란 뜻이다.
사실 균열은 꽤 오래전에 있었다. 사실 이정도면 꽤 오래 버틴 것이라 볼 수 있다. 어쩌면 지금에서야 무너져버린 것을 오히려 칭찬해 줄 수 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꽤 긴 시간 나는 무리하며 살아왔다. 몇 해 전부터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마음은 더이상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상처를 입었고, 거기서 멈추지 않기 위해, 부서지기 않기 위해, 나락으로 가라앉지 않기 위해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생활을 이어왔다. 속으론 다 부서질 것 같은 마음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버티고 있었지만, 겉으론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일상을 살아왔다. 그 차이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버틴 건 오로지 술과 친구들 덕분이었다. 몇몇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들어주고, 받아주고, 마음 써준 덕분이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틴 게 왜 하필 최근에 터져버렸을까? 아마 시작은 업무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올해 유난히 일이 잘 안 풀리고, 업무상 상대해야 하는 인간들의 무책임한 행태 때문에 어이없는 상황을 여러 번 겪었다. 어지간하면 누군가에게 겪하게 화를 내지 않는 편인데, 그렇게 화를 내본 것도 참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졌다. 집중력이 떨어지니, 자꾸 업무 시간은 길어졌다.
그리고 몸이 자꾸 아팠다. 작년 가을 어깨 부상과 올해 여름 무릎 부상이라는 큰 부상을 두 번 겪었고, 꽤 오랫동안 팔을 제대로 쓰지 못했고, 제대로 걷거나 앉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그 부상 부위 자체는 제법 아물었지만, 이젠 온 몸의 관절이 다 아프고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늘, 매일 그런 건 아니고 어떤 날은 손목이고, 어떤 날은 손가락 관절이고, 어떤 날은 골반과 고관절이고, 어떤 날은 발목이었다. 가끔 하나가 아니라 둘이 겹치면 좀 심하게 힘들었다. 가령 뜬금없이 왼쪽 발목이 아픈 어느 아침, 그날따라 유난히 부상당했던 오른쪽 무릎이 상태가 안 좋으면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이게 이사간 집 덕분에 아주 말도 못하게 힘들었다. 가끔 집에 먹을 게 하나도 없는 어느 주말, 정말 배가 고팠지만 언덕을 오르내리는 일이 너무나도 무섭고 힘들어 그냥 배고픔을 참고 견딜 정도였다. 택시를 타고 오르면 순간적으로 몸이 뒤로 누으며, 택시 기사님이 깜짝 놀랄 만큼의 길고 높은 급경사. 애들이 오는 날, 아이들 손을 붙들고 그 길을 오르면 애들이 숨을 헐떡 거리며 힘들다고 하소연 하는 그런 언덕이었다.
반지하였던 이전 집에는 자주 놀러와서 같이 술도 마시고, 책도 마음껏 보던 친한 친구가 이 집에 한 두번 자고 간 이후로 웬만해선 오지 않길래 물었더니, 그 언덕이 너무 무서워서 오기 싫다는 것이다.
무릎을 다치기 전엔 이렇게 무섭고 힘들지 않았다. 그게 다 운동이고 체력 단련이라 여겼고, 오히려 좋아했고 또 고마워했다. 일부러 산에 가지 않아도 매일 야트막한 뒷동산을 등산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런데 입장이 달라지니 그게 그렇게 힘들고 무서웠다.
그때부터 느꼈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일도, 내 몸도, 내 마음도 자꾸 꼬였고, 추락해갔다. 자신감을 잃었고, 쾌활함을 잃었고, 생기를 잃었다. 집중력을 잃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일상은 자꾸만 내게 일을 쏟아부었다. 끊임없이 주어진 무언가를 해야했고, 어떻게든 무리를 해서라도 완수해야만 했다. 그 삶이, 그 일상이, 그 과정이, 그 고단함이 너무 힘들고 싫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평일엔 어떻게든 버텼지만, 주말엔 완전히 무너졌다. 특히 아이들이 다녀간 이후, 대개 일요일 저녁이 그랬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보내던 어느 주말, 어지간해선 절대 전화가 오지 않던 동생에게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아파서 입원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즈음 유난히 아들 목소리가 듣고 싶다고, 왜 이렇게 목소리 듣기가 어렵냐고 여러번 전화를 받았던 걸 기억했다. 무심한 불효자를 향한 엄마의 짝사랑은 언제나 아들을 죄스럽게 만들고 또 위축시킨다. 동생에게 들으니 다행히 아직은 크게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엄마와 아버지는 혹여나 멀리 있는 아들이 걱정이라도 할까봐, 아프다는 사실도, 입원했다는 사실도 모두 아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마음이 아들이 자주 연락하지 않는 이유와 같다는 걸 혹시 아실까? 자주 연락하면 힘든 마음을 들킬까봐,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 간신히 붙들고 있는 이 마음이 무너져버릴까봐 자주 연락하지 못했다고 변명하면 혹시 이해하실까?
혼자 많은 일을 겨우 겨우 꾸려가다가 작년부터 일터에 동료가 생겼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일을 잘 해줘서 아주 든든하게 생각해왔다. 익숙하지 않을 이 일에 점점 적응해가며 서로 장단점을 보완해주는 좋은 동료가 되리라고 기대했건만, 그는 갑자기 건강진단을 통해 큰 문제를 발견했고, 큰 수술을 받았고, 병가를 냈고, 조금 회복된 것처럼 보여 돌아오려 했으나, 시간이 지나도 계속 회복이 더뎠고, 반상근으로 억지로 맡은 일을 일부라도 해오고 있었는데, 최근 도저히 몸이 안 좋아서 안되겠다고,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만약 다른 이유라면 백 번이라도 더 붙잡고 싶었지만, 몸이 아파서 도저히 못 나오겠다고 하는데,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도 그 결정을 내리고, 그 말을 내게 꺼내기까지 아마 오래 고민하고, 어렵게 내린 결론이었을 것이다. 그 결정을 존중할 수 밖에.
할 수 있다! (제발!)
지금 나는 매일, 아니 매 순간 극도의 무기력증과 자기 혐오와 싸우고 있다. 그냥 이대로 이 세상에서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당장 해야할 일을 떠올리며, 만나야 할 누군가를 떠올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들 얼굴을 떠올리며 간신히 이 세상에 발을 걸쳐두고 살고 있다.
그나마 긴 시간 무리하며 살아온 습관이 평소 억지로라도, 기계적으로라도 일상에 맞춰 움직이는 것은 가능하게 만들어, 가끔은 이렇게만 해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밤새 불면에 시달리다가 겨우 짧은 잠을 자고 일어나, 몇 번이나 자기 혐오를 달래고, 무기력증을 몰아내고 나가 설명회에 다녀왔다. 그렇게 가기 싫었고, 하기 싫었고, 자신 없었던 설명회였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이 술술 잘 나왔다. 막힘없이 설명하는 자신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기계적으로 떠들어대는 것이 나인가, 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아니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것 같았던 무기력한 것이 나인가 헷갈렸다.
그리고 억지로 자신을 달래기 시작했다. 할 수 있어! 넌 할 수 있어! 지금껏 이만큼 해왔잖아. 분명 할 수 있을거야. 조금만 더 힘을 내! 하지만 그 감언이설 뒤에 또 다른 나는 그럼에도 늘 내가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고, 늘 무언가 부족했던 경험을 상기시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할 수 있어. 딱 고만큼. 할 수는 있을거야. 간신히.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지만 말야.
음악으로 버티자
가장 힘든 시기였던 최근 몇 년을 버틴 것은 순전히 음악 덕분이었다. 한때 정말 열심히 들었던 (거의 하루종일 틀어놓고 있었던) 중국 아이돌 SING女團의 노래들은 그야말로 일등 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거다. 중국어를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몇몇 곡들은 발음만이라면 외울 수 있을 정도로 들었다. 워낙 많이 들어서 요즘은 조금 시선을 돌려 다른 중국 노래들을 닥치는 대로 듣고 있다. 영화 음악, 옛날 노래, 요즘 노래, 슬픈 노래, 신나는 노래 등등.
최근 우연히 발견한 노래는 정말 오랜만에 들었던 곡이다. 92년 이었던가, 당시 길에서 산 해적판 테이프가 닳도록 들었던 싱가폴 가수 마이쥬라(Maizurah Hamzah)의 [Wrong girl]과 [Doctor's Order]를 유튜브를 통해 마주쳤고, 그 두 곡을 무한 반복으로 들었다. 그 노래들을 듣고 있으면 고등학교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처럼 당시의 어떤 장면들이 계속 떠올랐다. 당시의 어떤 하늘과 어떤 바람과 그 바람에 살짝 흩날리던 어떤 이의 머리칼과 그의 높고 밝은 웃음 소리와 수줍어 어쩔줄 몰라하던 내 마음까지 다 떠올랐다.
오늘 아침 설명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Doctor's Order] 노래의 주인공이 마치 나인 것 같았다. 이 끝없는 나락에서 나를 끌어올려줄, 이 극도의 무기력증을 몰아내 줄, 이 바닥난 자존감을 회복시켜 줄 무언가가 간절히 필요하다고 말이다.
실험
최근 실험을 하고 있다. 일단 담배. 이건 일부러 끊으려고 노력한다기 보다는 지금은 어떤 이유로 별로 땡기지 않아서 당분간 안 피고 있는 상태인데, 이게 생각보다 길게 이어져서 나로서도 의외이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상황이다. 예전엔 친한 이가 담배 한 대 피우자고 부르면 별로 안 땡겨도 그냥 따라가서 한 대 피우곤 했는데, 요즘은 그냥 안 내킨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두번째는 술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 거의 매일 마시던 술을 요즘은 많이 (매일 마시던 거에 비하면) 줄였다. 이건 일부러 일정 시간 동안 술을 줄이는 변화를 주자는 생각 때문이다. 꽤 긴 시간 술독에 빠져 살았으니, 잠시라도 그 술독을 벗어나 살아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뭔가 변화가 생긴다면 그건 그 나름대로 또 의미가 있을테니. 근데 신기한 것이 그렇게 일부러 줄이고 나니 확실히 술도 예전보다 덜 땡겼다.
마지막은 게을러지기 혹은 앞 뒤 재지 말고 일단 마음가는 대로 해보기이다. 이건 사실 청소년 시기부터 주위 사람들과 다른, 내 삶을 설명할 수 있는 태도이긴 한데, 어느 시기부터 이런 태도가 좀 부족한, 그러니까 너무 남들처럼 혹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상식적인 선에서 살아가려고 애쓴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태도가 일반적으로는 좋은 선택일 수 없을텐데,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한 번 해보련다. 아무리 할일이 많이 밀려 있어도 이렇게 길고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이런 글을 두드리고 있는 지금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