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력
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혹은 익숙한 일을 할 때 그 일을 잘 한다. 나는 가끔 지켜보는 이가 깜짝 놀랄 정도로 어떤 일을 빨리 처리하곤 하는데, 그때의 나를 다시 분석해보면 분명 익숙한 일이거나, 좋아하는 분야가 조금이라도 포함된 일이었다. 그때의 집중력은 엄청나다. 시장 한 복판이나, 전쟁터에 갖다 놓았어도 별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일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내 주의를 끌지 못했을테니. 가끔 마감에 쫓겨 일을 마무리 할때도 비슷한 집중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다 해놓고 나면 언제 다했을까 싶은데, 시간이 훌쩍 지나있기도 했다.
내 경우 10대 후반부터 딱 30대 중반까지 이렇게 집중력이 좋았던 때가 종종 있었던 것 같다. 이제 40대가 넘은 지금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집중력이 예전만 못하다. 주위에서 자꾸 늙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이제 겨우 40년 조금 넘게 살았을 뿐인데, 벌써 늙어 집중력이 떨어지면, 남은 반평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너무 슬프고 무섭다.
작년 연말 무렵부터 이 서재에 여러 번 글을 썼듯이 길고 긴 침체기를 겪으며 내 집중력은 거의 발휘되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도저히 이 시점을 넘기면 큰일 날 업무를 만날 때에만 반짝 불이 붙었다가 다시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평소엔 어떻게 이렇게 일이 안 될 수가 있나 누구 용하다는 무당이라도 찾아가고 싶을 정도로 억울하게 집중력이 살아나지 않는다. 자꾸만 딴 생각. 자꾸만 딴 짓. 자꾸만 내 마음이 어디 먼 곳으로 떠나버린 것 같은 상태에 빠진다.
돌아와라. 집중력. 제발! 네가 없으니 내 삶이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다. 네가 내 곁에 당연하게 머물렀던 시절 너무나도 당연하게 들어왔던 유능하다는 평가와 빠른 업무 처리가 지금 내게 절실하게 필요하다. 다시 내게로 돌아오라.
작년 연말부터 몇 가지 일을 제때,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애를 먹으면서 한동안 잘 쌓아놓았던 유능한 사람 이미지, 좋은 후배 이미지를 계속 까먹고 있다. 이틀이 멀다하고 누군가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제 정신이었다면 이러지 않았을텐데. 왜 이랬을까? 나도 정말 궁금하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다시 예전처럼 집중력이 돌아오면 달라질 수 있을까? 그렇겠지. 집중력이 돌아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걸 모르겠네.
내향성과 외향성
어려서부터 조용하고 내성적인 편이었다. 혼자 구석에서 책 읽기를 즐겼다. 성격이 변하기 시작한 건 아마 중학교 때부터였다. 아니 본질은 아직도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주일 중 유일하게 쉬는 시간인 일요일 오후는 늘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혼자 맛있는 음식에 술을 먹거나,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 여기서 혼자라는 점이 중요하다. 나는 가끔은 혼자 시간을 보내야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아, 물론 어쩔때는 혼자가 외로워 친구나 후배들을 불러내 술을 마시곤 한다. 도무지 외로움을 견디기 어려운 순간, 누군가 부르면 나와줄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이고 축복인지 모르겠다. 다행이도 그런 친구나 후배나 선배가 적어도 10 손가락으로 세는 것 보다는 많다는 걸 깨달으며 그래도 인생 잘 못 살지는 않았구나. 느낀다.
사람들이 겉으로 판단하는 내 모습.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이끌고, 주도하고, 정리하는 모습은 내 기억에 대학교 시절부터 만들어진 혹은 길들여진 모습이다. 가끔 남들 앞에선 겸손하지만 대체로 내 잘난 맛에 살았던 나는 저런 내 모습이 익숙하다고 여겼다. 긴 시간 반복하며 익숙해진 일이니까. 혹은 원래 이런 일을 잘 했으니까. 난 원래 잘났으니까. 뭐 이런 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가만히 찬찬히 생각해보면 어떤 특정한 인간관계나, 술을 마시는 등의 특정한 조건에 놓여있지 않는 한, 난 절대 외향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게 고스란이 몸에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한 편으로 남들 앞에 나서서 그들의 주목과 인정을 받기를 즐기면서, 그 인정과 주목을 내 뛰어난 능력 덕분으로 돌리며, 이런 건 익숙하다 여기며 나를 속이지만, 실은 그 인정과 주목을 위해 순간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며, 그 과정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난 가끔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놀거나, 술을 마시는 걸 즐기기도 한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내향성과 외향성은 늘 고정된 것이 아니라 빈도의 문제일뿐 때로 변하기도 한다.
친구
앞서 말했듯 내가 필요할 때, 누군가 곁에 있어줄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모른다. 지금도 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지만, 과거 출판 영업자로 일했던 시절에 비하면 인간 관계가 많이 줄었다. 그리고 친하고 자주 만나는 사람들의 숫자도 줄었고, 그 빈도도 줄었다. 어떤 특정한 시기마다 가장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조금씩 바뀐다. 지금은 대학 동기이자, 초등학교 선배이고, 잠시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친구가 가장 친한 사람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새삼 깨닫는다. 이렇게 어렵고, 힘들고, 슬프고, 외롭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그래도 버텨내고 있는 건 저 친구가 자주 곁에 있어 주어서가 아닐까 싶다. 고마워 해야 겠다!
감정 나눔
주말에 아이들이 집에 오면 아이들을 꼭 껴안을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좋다. 그 시간이 내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새벽에 깨서 이불을 차고 맨 몸으로 잠든 아이들의 이불을 다시 덮어서 여며주고, 흩어진 머리칼을 손으로 만져주며,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며 잠든 아이의 따뜻한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는 그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세상이 내게서 그 순간을 빼앗아 버린다면, 어쩌면 나는 더이상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점점 그런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이들은 계속 자라고, 언젠가는 내 품을 떠날 것이다. 더이상 내 품에 꼭 안겨 잠들지 않는 날이 오겠지.
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그 미래가 두렵고, 그 순간이 곧 닥칠까봐 두렵고, 불안하다. 지금 사춘기를 맞은 큰 아이가 가끔 너무나도 낯선 모습으로 내게 반항하곤 하는데, 그 빈도가 점점 늘어나 언젠가는 아예 내 품을 떠나버릴까봐 무섭다. 지금은 내 무릎 위에 앉길 좋아하고, 안아줘, 안아줘 어리광을 부리는 작은 아이가 곧 자라 큰 아이 처럼 되어버릴까봐 겁난다. 그런 시간이 오면 과연 난 어디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소중함
가끔 감정이 북받쳐 극단적인 충동이 들 때도 있다. 아니 청소년 시기에 그런 충동이 가장 강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런 감정이 들어도 그리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긴 시간 경험을 통해 나는 그럴만큼의 용기도 없는 인간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그런 순간을 제외하면, 평소 나는 내 삶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편이다. 요즘 가끔 관절 통증으로 몸이 아프긴 하고, 아주 가끔 비염으로 힘들 때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아주 건강한 몸으로 자랐다. 키도, 몸무게도, 외모도 특별히 잘나지 않았지만, 특별히 못난 것도 없어서 평범한 삶을 살아올 수 있었던 행운아였다. 게다가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어도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살았고, 앞으로도 뭘 하던 먹고 사는 데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자신이 있다. 이 또한 얼마나 큰 행운인가. 엄청나게 똑똑하고, 잘 생기고, 돈이 많고, 몸매가 좋지는 않지만, 적당히 똑똑하고, 못나지 않은 외모에, 가난하지만 필요한 만큼의 돈을 벌고, 건강을 유지할 만큼의 몸을 가진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나 자신에게도, 가족에게도, 친구들, 선후배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그들과의 거리만큼 필요한 사람이다.
그러니 나를 좀 더 소중히 여겨야겠다.
인지 심리학
순전히 우연히 유튜브에서 인지 심리학 김경일 교수의 강의를 봤다. 와! 완전 흥미로웠다. 같은 강의를 보고 또 봤다. 그리고 그의 다른 강의들을 찾아서 봤다. 인지 심리학이란 학문은 진짜 신기했다. 심리학이라고 하면 대학시절 교양 수업과 책 몇 권 읽은 후로 접해보지 못했는데, 이 사람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책을 좀 읽고 싶어졌다.
그의 강의 몇 개에서 나온 핵심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지각하지 않는 법
일과 시간을 쪼개서 계획하고 행동하라. 가능하면 최대한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나눠라.
지각하는 이유는 무능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시간 계획을 잘 못 세웠기 때문이다.
계획을 세우는 단계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시간 관리를 잘 못한 것이다.
2. 월요병을 극복하는 법
과거 일요일 밤 개그콘서트가 끝나는 음악 소리가 고문처럼 느꼈던 수많은 직장인들은 불안과 불확실성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다.
불안과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방법은 월요일 아침에 닥칠 일을 미리 적어보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역시 최대한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계획하는 것이 불안을 떨치는데 도움이 된다.
3. 빠져나가는 월급을 지키는 법
마음 속에 여러개의 계좌를 개설해서 돈을 쪼개놓아라.
가능하면 자세하게 돈을 사용할 명목을 붙여 사용처와 금액을 정해둬라.
돈에 이름을 붙이고, 한도를 정하고 최대한 작은 단위로 분산해놓아라.
그가 자주 하는 말은 자꾸 계획하고 적으라는 것. 최대한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적으라는 것. 번호 붙여가며 적으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20대 시절 한창 일 잘한다고 여기저기서 인정받던 시절에 내가 습관들였던 일이다. 특히 번호 붙여가며 적는 것. 난 누구에게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걸 다 알았을까? 아니 어쩌면 선배 활동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내 것으로 만든 것이겠지.
또 하나 창의성과 상황에 대한 그의 강의가 참 재밌고 흥미로웠다. 초등학교 3학년 4개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이야기는 정말 신기했다. 결국 낯설게 하기가 꼭 필요하단 얘긴데, 이것도 20대 시절 문학 공부하던 시절 그렇게 집착했던 개념이 바로 낯설게 하기였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이별과 고통에 대한 인지 심리학계의 최근 발견 소식이었다. 우리가 교통사고를 당해 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당할 때와 가족의 죽음이나 연인과의 이별 혹은 누군가의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당할 때 아픔을 느끼는 뇌의 분위가 같다는 것이다. 적어도 뇌는 고통을 느낀다는 측면에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따로 차별하지 않는 다는 얘기. 그래서 진통제를 먹으면 정신적 고통에도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 그래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 누군가 다친 이에게 마음을 써서 위로하듯, 정신적 고통을 당하는 이들에게도 똑같이 마음을 써서 다가가 위로해야 한다는 이야기. 이 강의를 듣고 눈물이 났다.
이 사람 책도 사서 읽고, 강의도 계속 반복해서 들어야겠다. 유튜브 자동 재생 목록 덕분에 우연히 대단한 인지 심리학자 한 명을 만났다. 고맙다!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