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자 우선


바쁜 와중에 강의 청탁을 받았다. 바빠서 왠만하면 안 받으려 했다. 근데, 일부러 추천해주신 분이 계시다는 말씀에 마음을 바꿨다.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보니 내가 잘 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또 최근 지출이 늘어서 재정적으로 쪼들리기도 했다. 강의 준비할 시간이 부족할까봐 걱정이었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밤이라도 새서 써야지 하는 마음으로 수락했다.


그리고 정말 이틀 밤을 새서 강의 원고를 썼다. 근데 담당자가 이론 강의가 아닌 실무 강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왔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보낸 원고는 전체를 아우르는 큰 그림에서부터 한 발짝씩 문을 열고 들어와 방을 하나씩 세부적으로 살펴보는 내용으로 구성했는데, 앞 부분의 큰 그림과 몇몇 세부 내용을 사족으로 본 것이다. 이런 태도를 예전에도 몇 번 겪었다. 실제 강의는 최대한 담당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맞춰주더라도 큰 그림을 놓치지 않고 가야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도 사전에 담당자와 충분히 소통하지 않고, 내 기준으로 원고를 보낸 것은 내 잘못이 분명하다. 그 담당자의 문자를 읽었을 때, 그래서 부끄러웠다. 나중에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내 의도를 설명하고, 그쪽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다시 강의 내용을 수정하기로 했다. 담당자도 내 설명을 듣고 받아들였다. 


어쨌든 강의는 무조건 듣는 사람이 필요로하는 내용으로 해야한다. 뻔히 다 아는 내용을 혼자 떠드는 강사는 아무 쓸모없다. 듣는 사람들이 뭐 하나라도 꼭 챙겨갈 수 있는 강의를 만들어보겠다.



악몽이라고 해야할까? 불쾌한 꿈이라고 해야할까? 최근 깊게 잠들지 못하고 자주 깬다. 그리고 깰때마다 꿈 때문에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하룻밤에도 몇 번씩 다양한 꿈을 꾸곤 하는데, 공통점이 있다면 묘하게 기분 나쁜 내용이라는 것. 그러니까 확실히 기분 나쁜 요소가 꼭 포함된 꿈이다. 그럼에도 설레게 하는 요소가 꼭 있다. 이러니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이런 방식이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다시 군대에 입대한다. (아오! 진짜 민방위도 끝난는데 다시 입대라니!) 말도 안되는 미션을 수행하며 고생하다가 누군가 면회를 온다. (실제 군생활에선 부모님께서 신병교육대 끝나는 날 딱 한 번 찾아온 걸 제외하면 한번도 면회 온 적이 없었다.) 그 누군가는 나를 무척 아끼고 사랑해준다. 그러면 당연히 내가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할텐데, 잠에서 깬 후의 내가 다시 떠올려보면 누군지 모르겠다. 암튼 꿈 속 기준으로 그 누군가와 함께 짧고 즐거운 면회 시간을 보내고, 다시 내무반으로 돌아왔다가 갑자기 뭔가 큰 일이 벌어져서 실전에 투입된다. 주위 다른 병사들은 모두 젊고 경험이 없어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지만, 나는 실제 군생활 당시 전방 철책선 근무 경험도 있고 훈련을 하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 와중에 누군지 모를 적이 총격을 가하고, 나는 꿈 속 시점에선 신병이지만, 병사들을 이끌어 전략적 행동으로 적을 격파한다. 하지만 우리 소대는 큰 피해를 입고 흩어지게 되고, 우리 분대는 어느 기관 사수 임무를 받는데, 대규모 적의 습격으로 동료들이 차례로 전사하고, 나 혼자 전장을 이탈하여 도망친다. 도망치는 와중에 정부 권력자들과 돈 많은 기업인들은 사전에 정보를 입수하고 이미 안전한 지대로 다 도망치고, 시민들은 남겨졌다가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군은 대비 없이 실전에 임했다가 큰 피해를 입고 각개 격파 당해 국민들을 지키지 못했다. 그래도 후방에 각개 격파당한 패잔병들을 모아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리고, 도망 중에 만난 군인들이 내게도 그쪽으로 합류할 것을 명령하는데, 나는 억지로 다시 군대에 끌려와 전쟁에 휘말린 것도 억울한데, 다시 합류할 순 없다고 그들에게서 도망친다. 도망 중에 갑자기 아이들이 생각나고 (아무리 꿈속이지만 느닷없이 아이들이 나오다니!) 아이들의 생사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에 집(애들 엄마와 애들이 머무는)으로 찾아갔다가 폐허가 된 마을에 생존자가 없는 상태를 발견하고 울다가 잠에서 깬다.


깬 상태가 무지 슬프고 막막한 감정이었기에 그 감정에 휩싸여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결국 말도 안되는 꿈이란 걸 깨닫고 다시 입대한다는 설정 자체에 화가 나서 기분이 나빠진다. 그러다 문득 짧았던 면회 시간이 떠오르고 누군지 모르지만 나를 아끼고 사랑해줬던 그 느낌만 남는다. 특히 현실에서 그런 느낌을 받을 일이 없다보니 꿈에서 느낀 그것이 무척 그립고 소중한 기분이 든다. 결국 별것도 아닌 꿈일 뿐이지만, 그 꿈의 느낌과 감정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본다.


운영위원장


먹고 살기 위해 돈 버는 일외에 다른 일과 활동을 병행하면서 살아온 지 제법 오래 되었다. 돈 한 푼 못 버는 일이지만, 의무감, 소속감, 보람, 즐거움 등 여러가지 이유로 계속해왔다. 그런 일들은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가 해도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최근 몇 년은 그런 일들을 계속 줄여왔다. 이제 돈 버는 일만해도 너무 힘들고 버거웠기 때문이다. 올해는 다시 역할이 좀 늘어났다.


그 중에 하나는 녹색당 지역 모임에서 오랜만에 다시 운영위원을 맡은 것이다. 초기부터 계속 운영위원을 맡았었고, 긴 시간동안 지역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다가 잠시만 쉬었다가 다시 해야지 생각했던 게, 3년을 직책없이 평 당원으로 지냈다. 물론 그래도 활동당원이라 불리며 활동은 계속했다. 직책만 맡지 않았을 뿐. 올해는 다시 주도적으로 당 활동을 해보고 싶어서 운영위원에 지원했다. 그리고 운영위원으로 돌아오자마자 운영위원장까지 맡았다. 


첫 운영위 회의에서 여성 1인을 포함한 공동운영위원장을 호선해야 했는데, 아무도 지원자가 나오지 않았다. 다들 이런 저런 이유로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누군가 나를 추천했고, 나도 운영위원은 다시 하고 싶었지만, 대외적으로 위원장까지 맡기에는 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후 길게 논의가 이어줄수록 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명백해보였다. 결국 그 깨달음이 1년만 위원장을 맡자라는 판단으로 이어져 공동운영위원장 직을 수락했다.


하지만 녹색당 당규 상으로 여성을 포함한 공동운영위원장을 선출해야 하기에, 나 혼자는 운영위원장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당일 여성 운영위원들은 모두 여러 사정을 이유로 어렵다고 했다. 결국 일주일 이상 시간을 두고 열린 두 번째 운영위에서 한 분이 다시 공동운영위원장 직을 맡기로 하면서 남녀 각 1인의 공동운영위원장단이 구성되었다. 올해는 녹색당 활동을 통해 여러가지 추억을 만들어볼 예정이다.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또 다른 단체가 있다. 지역의 환경단체로 2년 전부터 운영위원으로 참여해 올해가 3년째다. 며칠 전 올해 처음 운영위 회의가 열렸는데, 여기에서도 운영위원장 직을 맡을 뻔했다. 신임 운영위원을 제외하고 연임한 운영위원 중에 위원장을 뽑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두 명의 연임한 운영위원 중 다른 한 분이 나를 추천하는 바람에, 다들 내 얼굴만 쳐다보는 상황이 되었다. 이거 가만히 있다가는 또 운영위원장 직을 하나 더 맡겠구나 싶어 다급한 마음에 현재로선 어렵다는 입장을 적극적으로 밝혔다.


다행히 바로 운영위원장을 선출할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에 다들 공감했다. 한 서너달을 운영위원장을 공석으로 두고 회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만약 어쩌다가 이 단체 운영위원장까지 맡았다면 그 무게감에 어깨가 무너져내릴 뻔했다. 다행이다.


늘 할 일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잘 거절하는 법을 익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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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


친한 친구에게 감정 노동이란 단어를 들었다. 내가 본인에게 뭔가 어렵고 안되는 일에 대해서만 자꾸 얘길하고, 그걸 듣는 일이 힘들다는 얘기였다.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했다. 한 삼사년전부터 내가 자주 그랬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어렵고 힘든 상황에 대해 자꾸 말하곤 했다. 그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살 수 있었으니까.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서 손에 꼽을 정도인데, 그 중 한 친구가 그것 때문에 힘들었다고 하니 미안했다. 그래서 바로 사과했고, 다시 그러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만 나도 아쉬움은 있다. 그를 거의 25년을 알고 지냈고 친한 친구였지만, 한동안 그는 내 직장동료이자 친구였다. 한동안 소식이 끊겼던 그 친구를 자주 만나게 된 건 약 2년 전이었다. 그는 고향의 가족 문제와 본인의 경제적 사정으로 힘들어했고, 나는 그때에도 일이 너무 많고,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어 술에 의지해 지내고 있었다. 우린 가끔 술을 마시며 서로 떠들며 스트레스를 풀었고, 진심으로 서로를 걱정하고 격려했다. 그의 경제적 사정이 긴 시간 나아지지 않았고, 작년에는 기다리던 일이 무산되었다고 들어서, 정말 조금밖에 안 되지만 나와 함께 일하면서 급여를 받아가면 어떠냐고 연합회 반상근 일을 제안했다. 사실 그가 이 일에 딱 맞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란 걸 알았다. 그가 수락하지 않았다면 그 돈을 내가 받으면서 일하면 어떨까 생각도 했었다. 1년 넘게 돈 한 푼 받지 않으면서 연합회 임시 사무국장 일을 해왔었다. 사람이 필요하긴 했지만, 경험자가 필요했고, 그 알량한 돈으로 경험자를 구할 수 없을테니, (그리고 사실 이 바닥에 경험자가 거의 없어서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내가 그 돈 받고 그 일을 해야지 싶었다. 어차피 그 일은 내가 할 수 밖에 없을테니.


암튼 그 친구는 한동안 나와 같이 일을 했다. 워낙 적은 급여 때문에 주 2회 출근이었고, 그 외에 다른 부가 수입을 만들어주려고 노력은 했다. (실제로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겠지만) 암튼 그렇게 약 8개월을 그 친구랑 함께 일하며 우리는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니까 그가 감정노동을 느꼈다고 하니 미안한 마음이지만, 한 켠으로 조금 아쉬움이 생기는 건 인간이라 어쩔수 없는 걸까? 과연 내가 그에게 늘어놓았던 하소연 같은 말들이 부적절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친구로서 혹은 직장 동료로서 부적절한 말이 있었을까? 게다가 그는 평소 내 걱정을 해준다는 이유로 잔소리를 좀 하는 편인데, 그런 잔소리에 답했던 것이 그가 느꼈던 그런 불평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 생각에 그는 뭔가 다른 이유로 내게 화가 났고, 그때부터 내가 떠드는 말들이 듣기 싫어졌고, 그래서 내게 감정노동을 운운한 것 같다. 왜 화가 났는지는 그가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확실히 그의 말이 내게 경각심을 심어주긴 했다. 그날 이후로 친한 후배들과 술 마실 때마다 감정노동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대화에 주의하곤 했다. 지난 이삼년간 그 친구보다 더 자주 술을 마시며 하소연을 많이 늘어놓았던 후배들 몇 명에게 물어봤다. 의외로 그들의 대답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형이 많이 힘들어해서 어떻게든 같이 답을 찾아주고 싶었어요."


신세 한탄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는데, 나는 말 뿐 아니라 글을 쓰면서도 신세 한탄을 하는 구나. 뭔가를 하소연 하는 구나 싶다. 출판사에서 해고 당한 후로 자주 쓰던 서평을 거의 쓰지 않게 되었고, 이후로 이 알라딘 서재에 올리는 내 글은 대부분 일상의 기록이 되었다. 그런데 그 기록의 성격이 대체로 감정을 풀어놓는 글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든다. 맨날 이런 글만 써놓으면 누군가 읽는 이도 감정노동을 하도록 만드는 구나. 그럼 그 분 역시 나에게 질려버릴테니 조심해야 하겠구나.


하지만 습관이란 건 그리 쉽게 고쳐지지 않는 법이다. 아무리 그렇게 느껴도 나는 또 계속 하소연 같은 글을 알라딘에 끄적이고 있겠지. 그게 익숙하니까. 다만 앞으로 하소연이 아닌 다른 글들도 가끔 적어보려 노력해야겠지. 예전처럼 이런 글도, 저런 글도 다양하게 적어봐야지 생각해본다. 


고마운 사람들


꽃샘 추위 때문인지 무리한 야근 때문인지 지난 주 금요일부터 심한 감기 몸살을 앓았다. 금요일까지는 어떻게든 버텼는데, 금요일 저녁 아이들을 데려온 이후로 증상이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토요일 아침에는 열이나고 머리가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토요일에는 중요한 일정이 두 개나 있었다.


남들은 그렇게 원해도 한 번도 안 걸리는데, 나는 세번째로 당첨된 녹색당 전국 대의원 총회가 그날이었다. 당연히 참석할 예정이었고, 미리 자료집을 살펴보고 올해 주요 사업 내용 중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머리 속을 정리해놓았었다. 그런데 씻고 나갈 준비를 하다보니 열 때문에 도저히 자신이 없어졌다. 게다가 작은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했는데, 내 몸도 제대로 챙길 자신이 없는데, 아이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몇 번 고민하다가 포기하고 이불을 덮어쓰고 잠들었다. 녹색당 활동가에게는 아파서 도저히 못 가겠다고 죄송하다고 문자를 남겼다.


땀 흘리며 한 잠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한 결 가벼웠다. 열도 내렸고, 머리도 덜 아팠다. 토요일 두 번째 중요한 일정인 공동육아 방과후협동조합 신입 조합원 환영회가 열릴 시간이었다.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지금 나가면 낮에 쉬어서 회복되었던 것만큼 다시 악화될 것 같았다. 그냥 밤까지 푹 쉬면 일요일 아침엔 감기 기운을 벗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작은 아이가 환영회에 가길 원했다. 아이에게 물었다. 아빠가 아파서 나가기가 힘든데, 안 가면 안 되겠냐 했더니, 안 된단다. 무조건 가야 한단다. 아이는 힘없이 자꾸만 처지는 내 몸을 억지로 일으키려 애쓰며 나가자고 보챘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이런게 아빠인가보다 싶었다.


집을 나서서 가는 길에 아이가 물었다. "올해 환영회는 아빠가 행사 진행 안 해?" 그러고보니 작년 신입 조합원 환영회는 내가 기획하고 진행했었다. 아이도 그 생각이 났었나보다. 사실 이번에도 내게 진행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나는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들살이와 환영회를 포함해 여러 행사 진행을 계속 맡았었는데, 한 두번도 아니고 같은 사람이 계속 하면 지겨울 게 뻔했다. 여러가지 이유로 이번엔 진행을 다른 분이 맡았는데, 다행이었다. 억지로 몸을 움직이느라 행사 시간에 한참 늦어버렸는데, 내가 진행을 맡았다면 펑크가 날 뻔 했다.


행사장에 딱 들어간 순간 한 분과 마주쳤는데, 그가 곧바로 깜짝 놀라며 나를 걱정했다. 아파 보이고, 힘들어 보인다고 했다. 그는 나중에 본인이 아이를 데려다줄테니, 집으로 가서 쉬라고도 했다. 나는 그래도 움직일만 해서 왔다고, 이왕 왔으니 앉아 있다가 가겠다고 답했다. 그날 만난 여러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해줬다. 근데 한 세시간 앉아 있는게 참 힘들더라.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심심해서. 목이 아파 말도 별로 하지 않고, 술도 며칠째 마시지 않고 있어서 달리 시간을 보낼 일이 없었다. 내 주위에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으면서 끝까지 술자리에 함께 있는 사람이 몇 있다. 새삼 그 분들이 존경스러웠다. 술을 안 마시면서 어떻게 술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지난 2주 동안 그래서 일부러 술자리를 피했다. 꼭 가야할 자리라면 되도록 적게 먹으려 애쓰며 그냥 술을 마시는 걸 선택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듣는 와중에 지금껏 살면서 고마웠던 사람들을 하나둘 떠올렸다. 바로 아까 내가 들어오자마자 입구에서 딱 마주쳐서 엄청나게 걱정을 해 준 분부터 시작해, 그날 그 자리에도 고마워 할 사람이 여럿 있었다. 난 평소 지지리 운도 업서고, 복도 없는 인생이라고 여겼건만, 생각해보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게 바로 운이고 복이 아니었나 싶다. 그랬구나! 나 생각보다 복 많은 인간이었어. 운 좋은 사람이었어. 그러고 남은 시간을 보냈다.


운동이 필요해


재작년 가을 어깨 부상과 작년 여름 무릎 부상이 무척 컸다. 그리고 작년 가을부터 여기저기 관절이 불규칙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손가락, 손목, 어깨, 골반, 무릎, 발목까지. 무릎은 아주 가끔을 제외하면 거의 늘 아팠고, 그 다음으로 자주 아팠던 곳이 손가락이었다. 그래서 류마티스성 관절염을 의심했다. 여러 증상이 일치했다.


하지만 건강보험 지원이 안 되어 비싼 돈을 주고 받은 혈액검사 결과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고정된 자세, 즉 계속 앉아 있는 생활 방식이 문제라고 보았다. 잦은 손가락 통증 때문에 류마티스성을 의심하기 전에 내 진단도 그랬다. 


한 2년 전부터 담배를 확 줄이고 나서 평소보다 휴식 시간이 줄었다. 예전에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라도 한 두시간마다 한 번씩 책상 앞을 떠나 옥상에 올라 몸을 움직였는데, 이젠 하루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두세번 화장실 오갈 때를 제외하면 계속 책상 앞에 거북이 자세로 앉아 있는다. 일이 많아서, 일에 집중하느라 그렇기도 하지만, 달리 책상 앞을 떠날 핑계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이게 딱 시간 정해놓고 쉬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소변이 자주 마렵지 않은 날엔 너댓시간을 꼼짝도 않고 앉아있는 경우도 있다.


의사 선생님 처방은 운동(스트레칭 중심)과 규칙적인 휴식이었다. 사실 운동은 나도 계속 원했었다. 여기 저기 관절이 자꾸 아파서 못했던 거였다. 그래도 조금씩 시동을 걸어보려고 안 아픈 관절 중심으로 움직이려 애써보곤 했다. 다만 고립 운동을 지양하는 개인 취향 때문에 특정 관절을 제외하고 운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기서 다시 한 가지 단서가 더 붙었다. 스트레칭을 많이 하라는 거였다. 내 운동 습관 중 가장 나쁜 습관이 워밍업을 소홀히 하는 점인데, 스트레칭을 아주 가볍게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운동 할 때 일부러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려고 큰 판형에 사진이 많은 스트레칭 책도 샀지만,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다시 밤마다 그 책을 펼쳐놓고 스트레칭을 해봐야겠다. 아프다는 핑계로 참 오래도 운동을 쉬었다. 이제 다시 운동에 몰입해보자. 계속 아프고, 힘들고, 어렵고, 피곤하다는 생각에 휩싸여있지말고, 뭔가에 재미를 붙이고 확장해나가야겠다.


도배


지난 겨울 두 번이나 윗 집에서 물이 새는 바람에 방이 아주 엉망이 되어버렸다. 시커멓게 커다란 곰팡이가 피었다. 나 혼자 지내는 날엔 아무 상관이 없는데, 아이들이 오는 날엔 곰팡이 때문에 애들이 아플까봐 걱정이었다. 윗집 주인은 나중에 도배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바쁘게 지내다보니 벌써 4월이 되어다. 지난 주에 다시 전화를 해서 도배 빨리 해달라고 요청했다. 어제 저녁에 공사업체에서 연락이 왔는데, 오늘 도배를 하겠다는 거였다. 하루라도 빨리 곰팡이가 잔뜩 핀 방을 바꾸는 일은 분명 좋은데, 오늘은 아침부터 일이 많은 날이라, 방을 치워둘 여유가 없었다. 근데 도배를 하려면 벽을 비워줘야 한다.


혼자 살면서부터 가구를 들여놓지 않아 옷장이나 이불장 등은 없지만, 행거와 실내 철봉 등 부피가 큰 녀석들이 벽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걔네를 치워줘야 도배를 할 것 아닌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이사짐 싸듯이 큰 비늘봉투에 옷들을 쓸어담고 행거를  분해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결국 사정이 생겨 좀 늦는다고 사무실에 연락하고 방을 치웠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전혀 다른 집이 되어 있을텐데, 나는 또 행거를 조립하고, 옷과 이불을 다시 정리하고, 그외 잡다한 물건들을 치울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이번주 주말에는 안심하고 아이들을 데려올 수 있겠다.















또 읽어야 할 책이 나왔다. 읽을 책은 자꾸 쌓이는데,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사야지. 설레는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겨야지. 돈 없어서 다른 사치는 못 해도 책 사모으는 재미라도 느껴야지. 물론 나중에 이사나갈 때는 또 분명 후회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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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3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10 1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9-04-03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로 하면 공연히 말했다 후회도 되고, 괜스리 디스하는 거 같아 맘도 편치않고...ㅠㅠ
그래서 말보다는 글로 푸는 게 후회도 덜하고 자기성찰도 되는 듯요~^^

감은빛 2019-04-10 18:49   좋아요 0 | URL
네, 생각해보니 확실히 말로 하는 것 보다는 글이 더 낫긴 하네요.
순오기님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지난주 화요일이었던가? 퇴근 시간즈음부터 게시글을 쓰기 시작해, 약 30여 분만에 글을 마치고 등록하기 버튼을 눌렀는데, 뭔가 오류가 났는지 등록이 되지 않았다. 당시 급하게 나가야 할 상황이었고, 정확히 무슨 오류인지 살필 시간이 없어서 일단 임시저장된 글을 불러다 내용을 복사해 메모장으로 옮겨 저장했다. 이동하면서 북플을 이용해 글을 올리면 되겠지 생각했던 거였다.


버스 안에서 북플 앱을 통해 다시 같은 글을 올렸는데, 이번에도 오류 메시지가 떴다. "도박, 음란, 광고 사이트에 대한 게시물"이라는 이유로 등록할 수 없다는 시스템 메시지였다. 좀 황당했다. 내가 쓴 글은 도박과도 관계없었고, 음란한 내용도 전혀 없었으며, 광고 따위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혹시 내가 쓴 특정한 단어가 문제가 되는지 글을 살펴보았다. "당첨"이란 단어가 도박과 관계있다고 본 걸까? "누드 모델"이란 단어가 음란했던 걸까? 광고 사이트 얘긴 뭘까? 내 글에는 인터넷 페이지 주소는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암튼 여러번 시도해도 계속 같은 메시지만 뜨길래, 일단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쁘게 하루,이틀, 사흘이 지나갔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퇴근 시간 무렵 문득 그 글이 생각나서 알라딘에 접속해 같은 글을 등록했다. 이번에도 아래와 같이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맨 처음 글을 작성하자마자 봤던 그 오류 메시지였다. 북플에서 올리려다 실패했을 때 봤던 것과 내용이 같았다. "도박, 음란, 광고 사이트에 대한 게시물"이란 이유다. 황당해서 알라딘에 문의를 넣었다. 문의할 내용을 조목조목 적으면서 좀 화가 났다. 대체 뭘 기준으로 저런 판단을 내린 건지 모르겠지만, 그 글을 올리려고 여러 번 시도했다가 실패하면서 아까운 시간과 내 노동을 허비했고, 이후 이틀이나 시간이 지나버려 해당 글은 타이밍을 놓쳤다. 물론 이 글이 막 시간을 다투는 내용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기준에서 이미 한참 지나간 얘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암튼 문의사항 끝에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요구조건을 넣었다.(길게 풀어쓴 글을 축약하느라 원래 요구하는 글과는 느낌이 달라졌다.)


1. 내 글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 바람(원 글을 텍스트 파일로 첨부했다.)

2. (만약 문제가 있다면) 이 내용을 포함해 게시글을 자동으로 차단하는 어떤 원칙과 그에 따른 조건(금칙어 등)이 있다면 이를 서재 공지사항 등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기

3. 향후 이렇게 자동 차단하는 시스템 때문에 서재 이용자가 당황하지 않도록 보다 자세한 설명과 이에 대한 대응방법을 공지한 페이지를 작성하고 이를 시스템 메시지에 링크로 안내하기


사실 알라딘 고객센터 응대 방식이 형식적이고 기계적이란 걸 14년 넘게 알라딘을 이용하며 잘 알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한 번에 성의있는 답변을 받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요구조건을 길고 상세하게 풀어서 썼던 거였다.


역시나 주말이 지나 월요일에 받은 답변은 성의가 없었다. 짧은 답변을 다시 내 요구에 대한 답변으로만 정리하면 이렇다.


1. 내 글에는 문제가 없었음. 근데 금칙어 사전 db에 문제가 있어서, 이를 수정했음

2. 금칙어 관련 내용은 공지로 처리하지 않고 피드백 페이지를 보완할 예정임

(이게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피드백 페이지는 무슨 뜻일까?)

3. 세번째 요구에 대한 답은 아예 없다. 저 피드백 페이지를 통해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는 내용으로 끝


그래서 결론은? 금칙어 사진 DB 오류가 났었는데, 수정했다는 얘기로 끝인가? 또 오류가 나면, 그 오류로 인해 이용자가 당황하거나 불편을 겪을 수 있으니, 자세하게 안내해 달라는데, 피드백 페이지인지 뭔지를 보완할 예정이니 기다라린 뜻인가? 


참! 알라딘의 무성의는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매번 당할 때마다 화가 나고 짜증난다.


아래는 일주일 하고도 하루 전에 작성했다가 시스템 오류로 등록하지 못했던 글이다.



페미니스트

어느 술자리에서 아마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성과 대화를 나눴다. 여러 얘기중에 미투 운동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그는 요즘 젊은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극단적으로 각을 세우고 보수화되어가고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자신도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대화가 더 나아면서 사회적으로 여전히 여성이 약자일 수 밖에 없는 구조이며, 일상에서도 늘 여성은 약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나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옆에서 그 얘기를 듣고 있던 30대 중반의 후배가 나를 가리키며 "이 형은 페미니스트야." 라고 말했다. 페미니스트라. 평생 한번도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생각해 본 적 없든데, 작년부터 이 말을 여러번 듣는다.

작년 겨울 아주 우연히 만난 출판계 친구와 무척 반갑게 술을 마시는데, 어쩌다 주제가 홍대 누드모델 사진 유출과 메갈리아에 이르렀다. 나는 사회 구조와 일상의 권력관계를 이유로 여성들의 입장에서 말했는데, 그 친구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보더라. 나중에 그 친구의 입에서도 페미니스트 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 이후로도 여러 남성들이 비슷한 태도를 보였고, 그 중 몇 번은 저 단어를 들었던 것 같다.

사실 대학시절부터 여성주의 혹은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싫어했다. 내가 처음 만난 여성주의자, 즉 페미니스트는 교양과목 강사였다. 서울대 출신 학자라고 했고, 1주일에 한 번 부산에 내려와서 우리 과 교양 수업을 진행했다. 당시 나는 학년대표여서 출석부와 분필 등 수업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는 역할을 맡았다. 그 강사는 수업 중에 자주 학년대표를 찾았다. 무슨 질문만 있으면 학년대표를 불러 일으켜 세우고 몰아붙였다.

그 강사의 수업 중에 제일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자꾸 남성을 악한 사람으로 몰아세우는 방식이었다. 기존 사회 질서가 잘못되었고, 그에 물들어 권력 관계를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관성적으로 살아가는 대다수 남성의 태도는 분명 잘못되었지만, 그게 그들이 악한 사람이어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암튼 그 교양수업 때문에 나에게 페미니스트란 남성을 적대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겼고, 특히 그 강사가 수업때마다 학년대표였던 (가만히 앉아 열심히 수업 듣던) 나를 부당하게 괴롭혔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무척 싫어하게 되었다.

나중에 서울에서 활동가 생활을 하며 만난 여성주의 운동가들은 많이 달랐다. 여성연합, 여성환경연대, 성폭력상담소 등 저마다 스펙트럼이 조금씩 다른 다양한 활동가들을 만나며 내 시야도 넓어졌다. 그들 대다수는 남성을 함께 이 사회를 바꿔갈 파트너로 여겼지, 적대해야 할 악한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지금은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그 서울대 출신 강사가 우리에게 잘못된 여성주의를 주입했던 거라 생각한다.

암튼 나는 오래전부터 여성을 동등한 위치에 있는 동료로 여기고, 언제나 서로 평등한 위치에 머물기 위해 노력했다. 일터에서도 집에서도 그랬다. 결혼 생활을 하던 때에는 늘 가사노동과 육아는 함께 분담해서 했다. 내가 아직 어린 아이들을 업고, 안고 회의를 다니거나, 촛불집회 등을 참석했던 모습 등은 지금도 내 주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나는 동네 4~50대 언니들에게 이쁨 받는 후배였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오히려 당시까지만해도 동네에서 활동하지 않았던 애들 엄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기도 했다. 그들이 보기에 내가 자주 아이들을 데리고 활동을 하다보니, 그들이 보지 않는 다른 시간에도 나만 애들을 돌보고, 가사노동을 하는 거라 여긴 건지, 대체 애들 엄마는 뭐하길래 늘 너만 애들을 보고 있냐는 말들을 가끔 들었다. 절대 그렇지 않다고 오히려 어쩔수 없이 엄마라서 애들 엄마가 더 많은 가사노동과 육아를 한다고 설명해야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최대한 여성들과 같은 위치에 서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남성일 뿐, 절대 페미니스트 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여긴다. 그러니 제발 그 과분한 이름을 내게 붙이지 말아 달라.


웃음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 가장 행복한 시간은? 아이들과 장난치며 웃고 떠들고 놀 때다. 요즘은 주로 주말에만 애들을 만나니, 주말이 바로 그런 시간이다. 사람은 참 신기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있을 때는 평소 결코 그런 성격이 아니어도 마치 어린아이처럼 장난꾸러기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아이들을 제외하면 다른 어떤 누구에게도 장난을 치지 않는다. 아마 연애하던 시절에는 사랑했던 사람들에게만 그렇게 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이들 입장에서 아빠는 늘 한결같이 장난꾸러기에,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한번은 작은 아이가 내게 물었다. "아빠는 어떻게 그렇게 장난을 좋아해?" 나는 아니라고 장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자 다시 아이는 그런데 어떻게 항상 장난을 칠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다시 장난을 별로 치지 않는다고 답했다. 다시 아이는 "아빠는 옛날부터 그렇게 장난꾸러기였어?" 물었다. 난 또 아니라고 답했다.

그런데 그런 대화를 하고 얼마 후 아이들과 부산에 갔을 때, 작은 아이가 아버지께 물었다. "할아버지, 우리 아빠 옛날에도 장난꾸러기였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그럼! 장난꾸러기였지." 하셨다. 헉! 내 기억에 아버지는 주로 여동생과 장난치고 노셨고, 나는 구석에서 조용히 책을 읽었다. 초등학교 이전에는 나도 장난을 치기도 했겠지만, 이후 나는 부모님과도, 여동생과도 심지어 친구들과도 그러지 않았었다.

암튼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냐! 작은 아이가 나를 어려서부터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로 알더라도 별로 상관없다. 지금 내가 아이들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아이들을 만나, 토요일을 하루종일 같이 지내고, 일요일 오후쯤 데려다주고 돌아오면 그 허전한 기분을 참기 어렵다. 그리고 월요일부터 출근해 바쁘고도 지루한 일상을 보내다보면 수요일쯤 아이들의 그 웃음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저녁 무렵 애들에게 전화를 걸면 애들은 뭔가에 신경이 팔린 채로 건성으로 통화를 한다.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가 듣고 싶지만, 전화로는 쉽지 않다. 그저 아이들 목소리를 한 번 들은 것으로 만족하고 통화를 종료해야 한다.

대의원 당첨

웬만하면 주말에 다른 일정을 잡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어쩔수 없는 경우는 꼭 생긴다. 3월 초 우리 조합 총회를 치뤘던 토요일이 그랬고, 이번 토요일이 그렇다. 이번 토요일은 일정이 2개나 있는데, 녹색당 전국 대의원 총회가 있고, 공동육아 방과후협동조합 신입 조합원 환영회가 있다.

녹색당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전면 추첨제 대의원제도를 운영중이다. 그리고 난 남들이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아무리 원해도 쉽게 되기 어려운 녹색당 전국 대의원에 세번째 당첨되었다. 첫 대의원 추첨에 당첨되어 아주 기쁜 마음으로 첫 대의원 총회를 갔던 날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각 지역 별로 종이 비행기를 날리거나, 구슬을 굴리거나, 단순히 제비를 뽑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의원을 추첨한 모습을 담은 동영상도 기억난다. 그리고 그 날 우리 조가 토론하는 장면이 찍힌 사진에서 내 모습이 제법 잘 나왔는데, 그 사진이 꽤 오랫동안 녹색당 당원 가입 안내 페이지에 붙어 있어서 꽤나 자부심을 느꼈던 것도 기억난다.

주위에 그렇게 원해도 한 번도 못해봤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많은 전국 대의원을 무려 세 차례나 당첨된 덕에 토요일을 아이들과 보낼 수 없게 되었다. 만약 아이들이 좀 더 어렸다면 데리고 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 청소년이 된 큰 아이와 무조건 언니를 따르는 작은 아이는 분명 듣지도 않고 가지 않겠다고 선언할 것이다. 그리고 그 낯선 공간에 데려가서 긴 시간을 애들을 방치해 두는 것도 부모로서 할 짓이 아니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당첨을 원하는 다른 분들께도 기회가 돌아가길, 나는 이미 여러번 해봤으니, 이젠 주말에 애들과 장난치며 웃고 떠들고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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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능력


좀 더 젊었을 때는 머리 회전이 빨라 뭐든 바로 이해하고, 정리하는 능력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라 여겼다. 그리고 내가 그런 능력을 가졌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잘못이었다는 걸 작년부터 계속 깨달아가는 중이다. 


요즘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능력은 공감능력이다. 그리고 나는 공감능력이 부족한 편인라 여긴다. 아마 두 달쯤 전에 어느 회의 자리에서 업무 관계에서 소통이 어려운 사람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라는 얘길 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일이 늦어지거나,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자체에 대해 의견을 냈으나, 새로 임원으로 합류할 예정인 한 분이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힘드시겠어요. 얼마나 답답할까!" 그 분의 그 말과 표정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 한마디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실제로 나는 답답하고 힘들었고,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나눠 남성은 어쩌고 여성은 어쩌고 하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분이 여성이라는 점이 그 상황에서 그 말을 하신 것과 얼마나 상관관계가 있을까? 평소에도 다른 여성분들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공감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남성은 글쎄 그다지 자주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일터인 공용 사무실에 내 책상 맞은편에는 이웃 협동조합 사무국장님이 계신다. 내가 여기 활동을 시작할 때도 계셨으니 벌써 5년 넘게 마주보고 앉아 일하고 있다. 이 분은 50대 여성이신데, 각종 행정업무와 회계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다. 본인 표현으로 간단한 서류도 어려워한다. 물론 말씀은 그리하셔도 몇 년간 조합의 업무를 혼자 해내왔으니, 다소 약한척하는 모습이라 볼 수 있다. 우리 두 사람은 평소 이런저런 업무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고나, 불평하는 경우가 많다. 그 보다 더 나가서 서로 도와주거나, 상대가 어려워하는 분야를 쉽게 설명해주기도 한다. 이 분도 나에게 공감능력의 중요성을 많이 일깨워준 분이시다.


3월 초에 일년 중 가장 큰 행사이자, 가장 어렵고 힘든 행사인 총회를 마쳤다. 해마다 안 힘들었던 총회 준비는 없었지만, 올해가 유난히 더 힘들었다. 혼자였기 때문이다. 그 힘든 총회를 마치고 조합원들 중에서 수고 많았다고, 고생했다고, 얼마나 힘들었냐고 한 마디씩 건넨 분들은 모두 여성분들이셨다. 아, 물론 남성 중에도 수고했다고 말을 건넨 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내 느낌에 진심으로 내 어려움을 함께한다는 느낌을 받는 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형식적인 인사를 벗어나는 사람들은 평소 나와 친한 사람들 뿐이었다.


이렇게 공감능력의 관점으로만 보면 확실히 여성은 뛰어나고, 남성은 열등하다. 그리고 이 뛰어난 공감능력을 발휘하는 능력자들이 여러 영역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계신다. 특히 활동가들 중에서도 50대 여성 활동가들이 많다. 이 분들의 공감 능력에 나는 오늘도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여유가 뭔가요?


작년에는 1,2,3월 3달 동안 3개 법인의 총회 준비를 했다. 그 중 연합회 1개 법인 총회 준비는 각 회원조합의 임원진 5명 가량이 자주 모여서 함께 준비했고, 또 다른 연합회 1개 법인의 경우 나 혼자서 모든 준비를 해야했다. 그리고 우리 조합의 경우 임원들과 실무자가 1명 더 붙어서 함께 준비했다. 하지만 작년에 나는 혼자 3개 법인의 총회 준비를 다 했다고 말하고 다니곤 했는데, 그 이유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핵심 작업인 총회 자료집을 나 혼자 준비했기 때문이다.


3월 초에 우리 조합 총회를 마쳤고, 어제 연합회 총회를 마쳤다. 올해는 2개 법인의 총회를 준비했는데, 작년에는 총회 자료집을 혼자 정리했기 때문에 혼자 준비했다고 다소 과장해서 표현했지만, 올해는 정말 혼자 2개 법인의 총회를 준비했다. 실무자가 나 혼자였기 때문이다. a부터 z까지 뭐 하나 내 손이 가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었고, 나는 말 그대로 정신이 나간 상태로 3달을 보냈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일터에 동료가 들어와 함께 일하고 있다. 곧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청년인턴제도를 통해 20대의 활동가도 합류할 예정이다. 어제 연합회 총회를 마치고 속으로 다짐했다. 이제 다시는 이렇게 혼자 다 떠안고 죽을 힘을 다해 일하지 않겠다. 만약 그래야 할 상황이 또 생긴다면 그냥 포기하거나 떠나버릴거라고. 다시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정신을 좀 차리고 살아야겠다. 하고 싶었던 운동도 다시 하고, 공부하고 싶었던 외국어도 다시 배우고, 기타도 다시 튕기고, 제일 하고 싶었던 일, 책도 다시 많이 읽어야겠다.


금주와 금연


불규칙적으로, 비정기적으로 나타나는 관절 통증 때문에 병원에 다녀왔다. 어떤 날엔 손가락 관절, 어떤 날엔 손목, 또 어떤 날엔 발목과 무릎, 어떤 날엔 어깨, 어떤 날엔 골반 통증이 느껴지곤 했다. 제일 잦은 건 손가락, 손목, 무릎이었다. 작년 언젠가부터 아픈 날도 있고, 괜찮은 날도 있었지만, 이제 괜찮아졌네 하고 한동안 나았다 싶은 느낌은 없이 계속 이어졌다.


병원에 가기 전에 나는 류머티스성 관절염을 의심했는데, 증상이 살짝 다른 면도 있었지만, 대체로 겹치는 면이 더 많다 싶었다. 의사 선생님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래서 혈액 검사를 받았다. 무릎과 손목, 손가락 등 관절의 모양과 움직임을 꼼꼼하게 살핀 의사는 외관 상으로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혈액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음성이었다. 즉, 류머티스성 관절염이 아닌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그 외엔 이렇게 온 몸의 관절이 불규칙하게 여기저기 아팠다가 괜찮아지는 증상이 뭐가 있을까? 다시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데, 어쩌면 이 증상이 뭔지 답을 찾지 못하는 건 아닐까? 평생 따라다니는 통증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겁이 나기도 한다.


지난 번에 병원을 찾은 후로 의사 선생님이 술을 마시지 말것과 담배를 피우지 말 것을 요청했다. 담배는 많이 줄여서 이젠 평소엔 거의 피우지 않고, 가끔 술 자리에서 한 두대 피우고 말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술이 문제였다. 생각해보니 내가 꽤나 자주 술을 마시고, 그 술 기운에 정서적 위로를 받으며 살고 있었다.


어쨌거나 병원을 안 갔으면 몰라도, 갔으면 의사 선생님 말씀을 따라서 하루라도 빨리 이 통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3월은 여기저기 총회가 많고, 중요한 술자리도 많았다. 하루는 친한 후배가 활동하는 협동조합 총회에 갔다가 뒤풀이를 가지 않고 그냥 떠났는데, 후배가 깜짝 놀라며 진짜 많이 아픈거냐고 물었다. 어지간히 아픈 걸로 술을 마다할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굳이 말하자만 아픔이 커서가 아니라 괜찮은듯하다가도 다시 나타나면서 계속 이어지는 이 통증이 지긋지긋해서였다.


그렇게 술의 유혹을 잘 뿌리치며 며칠을 버텼는데, 하루는 어이없이 답답한 공무원들의 태도 때문에 완전히 뚜껑이 열려버려서 도저히 술을 마시지 않고는 기분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결국 자주 만나는 술친구를 호출했고,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태도로 나왔다. 그날 술을 마시고 담배도 얻어 피웠으니, 금주와 금연은 며칠가지 않아 깨져버렸다.


뭐 가급적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되, 어쩔수 없는 경우에는 가볍게 술과 담배를 해주는 것이 아예 한 잔도, 한 개비도 안된다는 강박에 휩싸여 괴로워하는 것 보다 낫지 않을까? 어쨌든 의사 선생님께 솔직하게 말하고 다시 처방을 받아야겠다.


그 와중에 강양구 기자의 페이스북에서 술에 대한 책 소식을 접했다. 어째 이 책을 읽으면 더 술이 땡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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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3-27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 줄이세요...

감은빛 2019-03-27 20:11   좋아요 0 | URL
네, 술 줄이고 있다고 쓴 글이었어요.
더 노력하겠습니다.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019-03-27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03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9-03-27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을 줄이시면 좋겠어요...

감은빛 2019-03-27 20:12   좋아요 0 | URL
네,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오늘도 친한 선배가 제가 있는 공용사무실 한 켠에 입주해서,
입주 기념으로 한 잔 하자는 걸,
아파서 못 마신다고 거절했어요.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19-03-27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술줄이실수 있어요. 가늘고길게 오래 마십시다

감은빛 2019-03-27 20:14   좋아요 0 | URL
네, 사실 가늘고 길게 오래 마시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통증은 없애고 봐야겠기에
당장은 술을 줄이려구요.
고맙습니다!
 


드라마의 영향


집에 티비가 없어서 남들이 각종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이야기를 하면 잘 알아듣지 못한다. 부모님 집에서 나와 살면서부터 20년 가까이 티비 없이 지냈더니, 가끔 어딘가에서 티비를 보면 낯선 기분이 든다. 물론 티비가 없어도 컴퓨터나 노트북으로 보고 싶은 건 대부분 찾아서 보는 편이다. 중요한 스포츠 경기나 영화는 종종 본다. 그러니 티비가 없어도 크게 아쉬울 건 없다.


난 호흡이 긴 드라마 보다는 짧은 시간 안에 압축적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영화가 아무래도 더 좋다. 드라마는 매우 잘 만들어서 긴장감을 팽팽하게 가져가지 않으면 늘 지루함을 느낀다. 생각해보면 어려서부터 본 드라마가 거의 없다. 유명한 드라마도 아예 한번도 안 본 것들이 더 많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드라마를 정말 좋아한다. 대략 2년쯤 전부터 우리 집에 오면 노트북으로 늘 드라마 켜 달라고 난리다. 예전엔 주로 [청춘시대]를 봤다. 시즌 1과 2를 처음부터 끝까지 대략 서너번 이상 보더니, 아예 장면과 대사를 다 외울 지경이다.


아이들은 얼마전까지는 [뷰티 인사이드] 드라마를 열심히 봤다. 영화와는 분위기가 완전 달라서 난 처음부터 별로였는데, 아이들은 오히려 영화보다 더 좋아했다. 최근에는 [응답하라 1994]를 계속 반복해서 보고 있다. 이번 설에 부산에 내려가면서 노트북을 가져갔다. HDMI 케이블로 화면이 큰 티비와 연결에 엄마에게 영화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계속 일하느라 바빴고, 겨우 시간이 나도 공중파에서 하는 막장 드라마를 보느라 영화에 관심이 없었다. 대신 아이들이 광고 없이 열심히 드라마를 봤다. 아까 말한 [응답하라 1994]였다.


내게도 딱 그 시절이 청춘이라 부를 수 있는 시기였기에, 드라마를 보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X세대라고 앞선 선배들과 많이 다르다고 늘 자부했건만, 이제와 보면 뭐 그리 다를 바도 없었던 것 같다. 


암튼 드라마 덕분에 아이들과 그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예전에는 휴대전화가 없었어. 라고 말하면 그럼 어떻게 연락했냐고 묻는다. 집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썼다고 했다. 컴퓨터나 인터넷도 없었고, 유튜브도 없었다고 말하면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드라마에서 삼천포가 서태지 카세트 테이프를 뜯어서 거꾸로 감다가 윤진에게 혼나는 장면을 보고, 저게 뭐냐고 묻길래, 먼지가 잔뜩 묻은 비틀즈 카세트 테이프를 찾아서 보여줬다. 노래를 들려줘보려고 낡은 미니 콤퍼넌트에 테이프를 넣어봤는데, 고장났는지 작동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드라마에 나오는 삐삐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삐삐를 보면 그 옛날 커피숍 테이블마다 놓여있던 전화기들이 생각난다. 일부러 여자아이들과 연락 주고받기 편하게 웬만하면 커피숍을 벗어나지 않았었다.


그러다 나경이가 매직 아이를 보지 못해 답답해 하는 모습이 나왔다. 애들은 저게 대체 뭔데 저렇게 보고 싶어하는지 궁금해했다. 내게 아빠는 볼 수 있었어? 묻는다. 기억에 몇 개의 그림들을 보고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게 떠올랐다. 매직 아이 책을 요즘도 팔지 않을까? 알라딘에 검색해보았다. 한 권 있었다. 그럼 혹시 중고 매장에는? 아쉽게도 부산에 있는 매장들엔 그 책이 없었다.


서울로 돌아와서 주말에 작은 아이와 매직 아이 책을 사러 알라딘 중고 매장으로 향했다. 마침 집에서 가까운 매장에 딱 1권이 있었다. 아이가 원하는 만화책도 사주고, 나도 읽고 싶었던 인지 심리학 책을 골랐다. 매장에서 나오자마자 빨리 매직 아이 책을 보고 싶었다. 과연 다시 보면 그 입체 그림이 보일까? 가까운 커피숍으로 들어가 눈동자를 모으고 책을 펼쳤다. 처음엔 계속 해도 안 보이고 눈만 아팠다. 작은 아이는 자기도 해보겠다고 계속 책을 뺐어갔다. 요령을 아무리 가르쳐줘도 잘 따라하지 못했다. 반복 또 반복. 계속 실패를 거듭하다 어느 순간 딱 입체 화면이 열렸다. 그 다음부턴 다른 그림들도 잘 보였다. 물론 어떤 그림은 아무리 봐도 잘 안보이는 것도 있었다. 작은 아이는 요령을 잘 터득하지 못하자 금방 흥미를 잃었다. 만화책으로 눈을 돌리더니 더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아직 큰 아이에겐 보여주지 못했다. 과연 큰 아이는 볼 수 있을까?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드라마 덕분에 한동안 옛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다만 시간 배경과 달리 공간 배경이 서울이라는 점은 별로다. 아무래도 같은 시대라도 부산과 서울은 많이 달랐던 것 같다. 물론 등장인물들 중 마산 출신이 많아 익숙한 사투리는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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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4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