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주의자


학생운동 시절부터 늘 회의, 회의 또 회의 이러면서 살았다. 잡지사 겸 출판사에 있을 때는 조금 덜했지만, 시민단체 시절과 지금 협동조합에 일하면서 늘 회의에 치여 산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4건 이상 회의에 참석했던 날, 누군가 내게 말했다. "회의주의자!" 회의에 참석하다보면 삶에 회의가 드는 경우도 있다.


오늘 오전에 약 3시간 이상 많은 인원이 참석하는 회의가 있었다. 인원이 많은 회의는 힘들다. 아니 원래 회의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회의 주최자가 명확한 주제에 대해 충분히 논의를 권하되, 주제를 벗어나지 않도록, 특정한 사람에게 발언이 쏠리지 않고 균등하게 발언 기회가 주어지도록, 그러면서도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논의를 잘 끌어가야 한다. 이렇게 회의가 진행되려면 주최자가 경험이 많고, 적절한 시점에 잘 개입하면서도, 각자의 발언을 요약 정리하면서, 이견에 대한 합의와 상호 이해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 아침에는 회의에 앉아 있으며, 대체 내가 왜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회의가 들었다. 회의에 참가한 것 만으로 회의주의자가 되어버린 상황. 회의 자리에서 발언을 주로 하다보면 그 발언자가 그 일을 떠맡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지간하면 발언을 자제하고 흐름을 따라가는 이유다. 그러나 아침 회의에선 명확하게 요구받은 내용이 있었고, 주최자가 나를 콕 찍어서 의견을 요청하기도 해서 어쩔수 없이 회의에 젖어 멍하니 있던 상태를 벗어나 회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회의를 아주 많이 해본, 회의에 익숙한 사람이고, 회의 진행도 많이 해본 사람이고, 회의가 주제를 따라가지 못하고 산으로 바다로 가는 상황을 무척 싫어하는 편이라, 그런 회의에 참여하는 일이 무척 괴롭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나도 모르게 회의에 개입하게 된다. 입을 여는 순간 일이 또 하나 늘어날 것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어쩔 수 없다.


결정적인 것 하나


위는 내가 주도하지 않는, 다른 주체들이 주도하는 회의에 참여해야 할 경우에 주로 일어나는 일이고, 내가 주최하는 회의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사전에 회의자료 준비에서부터 주요 안건에 대한 설명과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일까지 맡아야 한다. 또 업무상 소위 말하는 급이 높은 사람들, 이를테면 고위 공직자나 시의원이나 국회의원 등 힘있는 사람들과 회의를 해야 할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단순히 논의에 잘 참여하는 것에 더해 뭔가 임팩트 있는 인상을 심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를테면 결정적인 것 하나를 던지는 것이다. 논의 흐름상 중요한 어떤 의견, 반드시 짚어야 할 어떤 논점, 논의를 매끄럽게 풀어갈 수 있는 어떤 흐름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순간 그 힘있는 어떤 분을 포함한 회의 참석자 전원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오늘 오전 긴 회의를 마치고 자리를 나설 때, 같이 참석했던 한 여성 참가자가 친근하게 다가오더니, 귀속말을 하듯 귀 가까이 입을 대고 살짝 속삭였다. 내가 주장했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말이었고, 내가 그걸 말해줘서 고마웠다는 말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회의에 불려다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문제는 회의에 참여하면 대개 일이 더 생긴다는 부작용이 있다. 그리고 회의는 야근을 부른다. 낮에 회의를 다니느라 못한 일을 남아서 해야 한다.


또 내가 주최한 회의는 회의록이나 회의결과 문서를 작성해야 한다.


제일 하기 싫은 일


제일 하기 싫은 일을 하나 꼽으라면 회의록을 만드는 것이다. 몇몇 능력자들은 회의 진행 중에 노트북으로 발언들을 다 기록하고, 회의가 끝남과 동시에 회의록을 만들어 내기도 하더라. 하지만 내 경우에는 논의 흐름 자체에 집중하거나, 대개 회의 안건 자료를 설명하느라 기록까지 챙기지 못한다. 대개는 핵심 내용을 적어놓고, 논의 내용은 녹음해놓았다가 나중에 녹취록을 풀어서 회의록을 만든다. 그러면 그 녹취록을 푸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만약 2시간까지 회의 녹취록을 풀려면 거의 3시간 이상이 걸린다.


게다가 그 녹취록의 흐름에 따라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핵심만 정리하는데 또 시간이 걸린다. 이건 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가늠하기 어렵다. 예전엔 이런 일에 무척 능숙했다. 만약 회의에 집중했고 바로 회의록을 쓸 여유가 있을 때는 녹취록도 듣지 않고, 1시간도 걸리지 않아 회의록을 뚝딱 만들기도 했다. 왜냐하면 집중했기에 대부분의 중요한 발언들 핵심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과 올해는 연합회 담당자가 있음에도 경험 부족을 이유로 내가 대부분의 실무를 도와줬다. 사실 도와줬다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실제로는 거의 대부분의 일을 내가 한 거이나 마찬가지다. 회의 기록도 마찬가지다. 늘 회의에 들어갈 때는 담당자에게 기록을 요청한다. 나는 그 담당자를 대신해 회의 자료도 만들어주고, 회의 안건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의를 마치고 그 담당자가 보내온 기록을 보면 실망스럽다. 핵심을 놓치고 군더더기를 적어놓거나, 표현이 정확하지 않거나. 심지어 엉뚱한 내용을 기록해두기도 한다. 대략 2달 전에 들어온 연합회 담당자는 벌써 3번 연속 회의 기록을 맡겼는데 자료를 주지 않았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 들을 수 없었다며 기록을 못 했다고 했다. 아니 정확하게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어도, 외국어가 아닌 우리말로 하는 회의 기록을 하나도 못 했다는 게 말이 되나? 그래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내가 회의록을 대신 만들었다. 두 번째는 앞 부분의 아주 일부분만 기록하고 역시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번에도 내가 대신 만들었다. 세번째는 기록해놓은 파일이 실수로 지워진것 같다고 했다.


아, 아무리 잘 이해해주려고 해도 이렇게 나오면 참 곤란하다. 그래도 혹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 기죽일까봐 별 말하지 않고 대신 해줬다. 그리고 내가 만들었다는 걸 연합회 다른 조합 사람들이 알면 안 되니, 모두 그 분이 공유하도록 했다. 내 소중한 시간을 이렇게 계속 뺏기면서 나는 아무런 실속이 없다. 참 허무하다.


야근


회의는 야근을 부른다. 앞서 말했듯 회의를 하러 돌아다니느라 일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회의 결정사항에 따른 역할분담으로 일이 더 생기기 때문이다. 어떤 일은 기꺼이 즐겁게 할 수도 있지만, 또 어떤 일은 진짜 하기 싫은데, 관계 때문에 어쩔수 없이 떠맡기도 한다. 이럴 때는 야근을 하려고 앉아는 있지만, 자꾸만 마음은 콩밭으로 가기 마련이다. 자료를 찾는 다는 핑계로 SNS 나 검색 결과를 뒤적이며 필요 이상의 시간을 보낸다.


야근은 피로를 낳고, 술을 부른다. 피곤한 몸과 머리는 이상하게 더욱 쉽게 잠들지 못한다. 이럴 때 술을 한 잔 먹어야 빨리 잘 수 있다. 빨리 자야 다음날 아침에 또 출근할테니. 그런데 자려고 마신 술은 다음날 아침 숙취를 부른다.


이상하게 꼭 야근을 하고 나면 한 잔 생각이 간절하다. 그리고 나는 저녁에 회의나 다른 일정이 없는 한 자주 야근을 한다. 저녁에 회의가 잡히는 경우도 많다. 남들 퇴근할 시간에 나는 회의 시간에 쫓겨 이동한다.


만원버스


어제가 그랬다. 6시 30분 회의였는데, 사무실에서 상담 전화를 받다가 10분 전에야 출발했다. 이동 시간이 최소 20분은 걸리는 곳이었다. 게다가 꼭 급할 때 버스는 늦게 왔다. 그리고 그 버스는 완전 만원버스였다. 그 버스를 놓치면 다른 방법이 없어서 뒷문으로 억지로 밀고 들어갔다. 내 뒤에도 두 명 정도가 더 밀고 들어왔다. 우린 잡을 수 있는 손잡이도 없이 사람들 틈에 끼어 이리저리 떠밀리며 움직였다. 


후끈한 공기 속에 누군가의 체취가 코를 자극했다. 왼쪽 앞에 선 키 큰 젊은 남성은 자꾸 팔굼치로 내 가슴을 밀었고, 오른쪽 뒤쪽에 선 여성은 자꾸만 내 팔에 몸을 기대었다. 물론 나도 차가 흔들릴 때마다 앞 뒤의 누군가에게 기대었다. 바로 서곤 했다.


문득 아주 오래 전, 고등학교 때 만원 버스에서 내게 푹 안겼던 인연으로 잠시 사귀었던 여성이 떠올랐으나, 계속 흔들리는 차량 안에서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는 사치는 허용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손잡이를 잡고 체중을 버티기 위해 허리와 허벅지와 발목에 힘을 꽉 줘야 했다.


목적지에 다와서 버스를 내리는 순간 이미 지쳐버렸다. 하지만 나는 회의 장소로 걸어가 약 1시간 반 가량 회의에 참여했고, 당연하다는 듯이 회의 뒷풀이에 참석해 맥주를 조금 마셨다. 


여성 출마 프로젝트 2020


녹색당에서 여성 출마 프로젝트 2020을 추진 중이다. 학생 운동과 시민 운동과 마을 활동 영역에서 20여년을 지내보니 대부분 일은 여성들이 다 하는데, 어디 나가서 목에 힘주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이더라.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딜 가나 항상 그랬다.


어쩌다 핵심 부분 일부만 읽은 이 책 [내 안의 가부장]에 그 이유를 추정해 볼만한 내용이 있긴 했다. 어쩌면 가부장제는 우리 생각보다 더 강하게 개인들을 세뇌시켜 그 체제를 견고하게 만들어 왔을 것이다. 나도 내 주변의 활동가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자기 안의 가부장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세상을 바꾸려면 더 많은 여성들이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청년들이 정치인이 되고, 더 많은 소수자들이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학자 중 한 명인 정희진 선생님이 인구의 1%가 녹색당원이 된다면 99%가 행복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동의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준연동형비례대표제, 석패율제, 권역별비례대표제, 패스트 트랙, 청소년 참정권 등등 공부해야 할 것도 많고 신경써야 할 일도 많다. 



며칠인지 모를 기간 동안 연속으로 술을 마시고 있다. 물론 어떤 날엔 가볍게 맥주 한 캔 마셨고, 또 어떤 날엔 막걸리 두어잔 마시기도 했지만, 적은 양의 술이라도 술은 술이니까 연속 음주는 맞다. 얼마나 오래 연속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니까 아마 꽤 오래 된 것 같다.


오늘은 정말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연속 기록을 끊어 버리겠다. 집에가서 운동하고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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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씬하시네요"와 "니가 임신했냐?" 사이에서


2010년 가을에 ["날씬하시네요"와 "니가 임신했냐?" 사이에서]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내용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애들 엄마는 예전에 내 지인에게 "어쩌다 이런 애와 결혼했냐?" 와 같은 질문을 받으면 "몸매 보고 결혼했는데, 속았다." 라고 답변했다. 농담 반, 진담 반 질문에 역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답변한 것이다. 그 답변이 스스로 재치있다 여겼는지, 이후 그 답을 여러번 사용했다. 결혼 전엔 실제로 몸매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지만, 결혼 후 완전 망가져가는 과정에서 그 '속았다'는 표현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그러려니 넘어가곤 했는데, 둘째를 임신해 배가 불러가던 그가 내 배를 보더니 "니가 임신했냐?"고 물었던 건 좀 충격이 컸었다. 그래서 둘째가 태어난 시점부터 다시 꾸준히 운동을 하던 과정에서, 어느 날 둘째가 다니던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이를 안겨주고, 아기띠의 허리끈을 채워주며 "아버님, 끈을 더 늘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물었다가, 쉽게 '달칵'하고 채워지자, "아버님, 정말 날씬하시네요!"라고 놀라며 했던 말을 듣고 우쭐한 마음에 썼던 글이다.


운동을 오래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마음은 예전처럼 쉽게 무게를 올리고, 난이도 높은 동작들을 해낼 것 같은데, 막상 몸은 뻣뻣하고 근육은 힘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머리로는 한창 운동할 때를 떠올리지만, 몸은 운동을 모르던 시절의 상태라는 걸 깨닫는 것이다.


관절 통증으로 제법 오래 운동을 쉬었던 탓에 다시 시작한 운동이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 한편 당황스럽고, 한편 몸이 고되다는 걸 새삼 깨달으며, 예전에 "니가 임신했냐?"라는 충격적인 말을 듣고, 결혼 후 오래 방치했던 몸을 다시 만들어가던 과정이 떠올랐다.


통증의 원인과 처방은?


게다가 예전보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관절 통증을 느끼는 상황에서 운동하는 건 더 어렵더라. 한의원 한 곳과 정형외과 한 곳과 의료협동조합 마을 주치의까지 3명의 의사를 찾아다녔지만, 아무도 내 통증의 원인을 진단하지 못했다. 류머티스성 관절염이 아닐까 의심해서 의료보험도 적용되지 않는 고액의 혈액검사를 받았지만, 결과는 류머티스성은 아닌 걸로 나왔다. 다른 진단은 오랫동안 잘못된 자세로, 하루종일 앉은 자세로 지내는 것과 스트레스였다. 일리 있는 진단이었지만, 어떤 날은 손목이 아프다가, 다른 날엔 손목은 씻은 듯이 낫고, 어깨가 아프고, 또 다른 날엔 어깨는 멀쩡하고 발목과 무릎이 아픈 등 비정기적, 불규칙적으로 온 몸의 관절이 아프다 말다 하는 현상을 설명해주기엔 부족했다. 


또 다른 진단은 관절 통증이 있는 날엔 붓기가 동반되는 현상에 따라 신장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나는 이 진단이 가장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평소 물을 자주 마시지 않는 편이라 깨달으며, 관절 통증이 있는 날엔 전날 물 섭취가 부족했던 것 같다고 느꼈다. 또 주위에서 관절 통증을 잦은 음주와 연결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실제로 술을 마실 때는 물을 잘 마시지 않으므로 조금 상관관계가 있다 여겼다.


이후로 가능하면 물을 많이 마시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아직 정확한 원인을 진단하지 못 했으니, 신장 때문이란 건 하나의 가설 일 뿐이니까) 확실히 예전보다 통증 빈도와 강도가 줄어들었다. 


나쁜 자세와 오래 앉아있는 업무 패턴 때문이란 진단도 일리가 있다는 걸 또 깨달은 것이 이후 가능하면 자주 자세를 바로 잡으려 노력하고, 운동을 통해 관절 주변 근육의 힘을 키우려 노력한 것이 조금씩 시간이 지나며 역시 통증의 빈도와 강도를 줄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물과 운동


어쨌거나 의사들도 모르는 원인을 내가 장담할 수는 없겟지만, 한 편으로 내 몸이니 내가 잘 알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내가 내린 처방은 위에 나온 것처럼 물과 운동이다. 사실 이는 10대 후반 본격적으로 운동에 재미를 붙여 꾸준히 즐기던 시절에는 당연한 것이었다. 이 처방이 효과를 거두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열심히 운동을 해보련다.


준비운동과 마무리운동의 중요성


운동할 때 나쁜 습관 중에 하나는 준비운동(워밍업)과 마무리운동(쿨다운)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고 성격이 급해서, 귀찮아서 그랬다. 바쁘니까 그냥 본 운동만 제대로 해도 되겠지 여겼던 것이 어쩌면 관절에 무리를 준 것은 아닌지 싶다. 그래서 이제 본 운동보다 준비운동과 마무리운동에 더 공을 들인다. 


운동 시간이 훨씬 더 소요되지만, 오래 쉬어서 뻣뻣하고 근육 힘이 약해진 몸에게 적응할 시간을 주고, 그래서 본 운동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몸의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무슨 일을 하던 준비와 마무리가 중요한 법이다.


준비 운동


준비 운동은 두 가지가 필요하다. 워밍업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 몸을 움직여 덥혀주는 것과 몸을 부드럽게 풀어주어 긴장과 수축에 적응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달리기와 스트레칭이 필요하다. 달릴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면 버피가 좋은 대안이다. 사실 스쿼트(앉기) + 엎드려뻗쳐 + 팔굽혀펴기 + 양다리 끌어오기 + 스쿼트(일어서기) + 제자리 점프 로 이어지는 버피는 본 운동으로 해도 충분할만큼 과격한 운동이다. 어디 나가서 달릴 여유가 없다면 버피 몇 차례만으로 충분히 워밍업이 될거란 의미로 준비운동으로 적합하다는 뜻이며, 실제로 나는 버피를 워밍업으로 자주 활용한다.



또다른 워밍업은 타바타 인터벌을 활용한 순환운동이다. 타바타 인터벌이란 일본의 운동생리학자 타바타 이즈미가 개발한 운동과 쉼 사이의 간격을 말하는데, 이를 활용한 운동법을 타바타 트레이닝이라고 부른다. 고강도의 20초 운동과 10초 휴식을 8회 반복하는 것으로 쉬엄쉬엄 천천히 하는 것이 아니라 고강도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즉, 죽을 것처럼 20초 운동하고 10초를 쉬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사실 한 가지 동작을 이렇게 8회 반복하기는 제법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순환 운동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2가지 혹은 4가지 운동을 순서대로 돌리는 것이다.


여기에 넣을 동작은 운동 목표와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에어스쿼트, 푸쉬업, 런지, 싯업을 주로 순환운동으로 활용하며 철봉이나 평행봉이 있다면 풀업과 딥스 등을 활용할 수 있고, 스텝박스를 활용해서 더욱 다양한 동작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타바타 인터벌을 활용한 최고의 운동은 역시 앞서 언급한 버피다. 버피를 타바타 방식으로 하면 그야 말로 죽음이다. 마지막 8세트가 끝나는 순간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워 한동안 터질 것 같은 심장으로 숨을 헐떡이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다. 예전에 층간 소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반지하 집에 살 때는 밤마다 버피 타바타를 즐기기도 했다.


스트레칭에 대한 얘기는 따로 안 해도 되겠지. 요즘은 스트레칭에 좀 더 집중해 기본적인 동작들 외에 각 부위별로 다양한 동작을 해보려고 판형이 크고, 그림이 잘 나온 스트레칭 책을 사서 펼쳐보면서 따라하고 있다.


마무리 운동


마무리 운동에서도 역시 스트레칭은 빠지지 않는다. 가만 보니 운동은 스트레칭으로 시작해 스트레칭으로 끝나는 구나. 근데 난 그걸 빼먹고 본 운동만 했었네. 그리고 앞서 워밍업으로 몸을 덮혔던 동작을 조금 가볍게 반복하며 쿨다운 할 수도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쿨다운 운동은 캐틀벨 스윙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다른 운동보다 캐틀벨 스윙으로 운동을 마무리했을 때 기분이 좋다고 느꼈다. 만약 핏니스클럽에 로잉머신이 있다면 이것도 좋은 마무리 운동이다.


본 운동


본 운동은 운동 목표에 따라 달리 선택할테고, 운동과 휴식의 효과적인 병행을 위해 분할 운동을 많이 할 것이다. 언젠가 알라딘에서 고백한 적이 있듯이 나는 몇 년째 스내치 동작을 가장 좋아하고, 잘 하고 싶다. 바벨 스내치는 특히 어려운 동작이고, 부상 위험도 크다. 작년 여름 무릎 인대를 다친 것도 바벨 스내치를 하다가 실수로 동작이 틀어져서였다. 그래서 요즘은 바벨 스내치를 시도하지 않고 캐틀벨 스내치를 해보려고 하는데, 아직 캐틀벨 운동에 익숙해지지 못해서 집에 있는 캐틀벨의 무게가 스내치 동작을 제대로 하기엔 너무 무겁다. 조금 가벼운 캐틀벨을 사야하나 계속 고민 중이다.


스내치에 빠지기 전에는 주로 프레스를 많이 했다. 벤치 프레스, 푸쉬 프레스, 밀리터리 프레스 등을 주로 했었다. 이젠 프레스 동작을 거의 하지 않는다. 내가 클린 앤 저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온 몸의 근육을 쥐어 짜내어 한 순간에 들어올리는 스내치에 비해 클린 앤 저크와 프레스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약수터와 핏니스클럽에서 가장 열심히 했던 운동은 벤치 프레스였는데, 지금은 집에 벤치와 바벨이 있어도 벤치 프레스를 하지 않는다. 역시 재미를 느끼지 못해서다.


동작의 난이도와 투여되는 힘에 비해 가장 큰 효과를 거두는 운동은 아마 스쿼트와 데드리프트일 것이다. 최근에 백스쿼트가 허리에 부담이 크고, 불가리안 스플릿 스쿼트라는 대체할 다른 동작이 있기 때문에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소식을 접하고 충격이 크지만, 운동하는 사람 치고 백스쿼트를 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나도 꾸준히 백스쿼트 무게를 늘리기 위해 노력했었고, 그 효과는 다른 동작에 비해 컸다.


백스쿼트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접한 후 요즘 나는 오버헤드 스쿼트를 주로 한다. 사실 오버헤드 스쿼트는 스내치를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동작이므로 예전에도 많이 하긴 했다. 다만 예전에는 스내치를 위한 동작이었다면, 요즘은 그 자체로 하나의 본 운동 동작이 된 것이다.


바벨 데드리프트는 가장 무거운 무게를 들어올릴 수 있는 동작이다. 운동을 쉬었다가 다시하는 입장에서 온 몸의 근육 협응력을 높이며, 약해진 악력을 다시 기를 수 있는 좋은 동작이다. 요즘은 캐틀벨 데드리프트를 더 많이 하는데, 바벨 데드리프트와는 다른 맛이 있어서 좋다.


집에 있는 실내 철봉과 덤벨 등을 활용하면 훨씬 더 다양한 운동을 할 수 있다. 나는 핏니스클럽에서 머신 운동만 반복하는 행위를 그만둔 지 오래되었는데, 머신을 벗어나보니 정말 다양하고 재밌는 운동의 세계가 다시 펼쳐졌다.


작은 아이가 우리 집에 오면, 마치 놀이터에서 놀이 기구를 타듯이 실내 철봉에서 논다. 가끔 아이의 동작들을 보면서 운동이란 저렇게 기능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본능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깨닫는다. 머신에 올라 고립 운동으로 저중량 고반복을 이어가는 건 너무 지겹고 비효율적이다. 


음, 정말 장황하게 적었는데, 주로 내가 이렇게 몸을 움직이며 재미를 느낀다는 얘기다. 글을 쓰다보니 버피 타바타를 하고 싶은데, 집에서는 층간 소음 때문에 할 수가 없다. 일터와 집 근처엔 마땅한 소공원 같은 공간도 없다. 예전에 일터 옥상에서 해본 적이 있었는데, 속옷을 포함해 옷이 모두 땀에 젖어버려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수 많은 사람들과 마주치기 민망해서 다시 시도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 땀에 젖었던 옷을 입고 버스에 오르면 주변 사람들은 또 무슨 죄란 말인가!


아! 이렇게 쓰고보니 정말 버피 타바타를 하고 싶구나! 집 근처에 작은 공원 하나 있으면 정말 좋겠다!


매일 술 마시기 위해 매일 운동하기


언젠가 술 자리에서 운동 얘기를 하다가 그 힘든 운동을 왜 하냐는 물음에 "매일 술 마시기 위해 매일 운동한다"고 답한 적이 있다. 역시 술꾼에게 모든 결론은 술로 통한다. 운동은 재미도 있고, 보람도 느끼고, 그를 통해 이쁜 몸을 만들 수도 있지만, 역시 운동하는 이유는 오래오래 매일매일 술을 마시기 위해서다!


아마 재작년 가을 어깨 인대를 다치기 전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샤워를 마치고 거울을 보며 이쁜 내 몸매에 반하곤 했던 게 말이다. 이제 다시 되찾아야겠다. 


매일 술을 마시기 위해, 매일 샤워하며 내 몸매에 반하기 위해, 관절 통증을 이겨내기 위해, 스내치를 완성하기 위해 오늘도 이를 악물고 몸을 움직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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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5-10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생각해요. 내가 좋아하는 거 하면서 지내기 위해서, 먹고 싶고 마시고 싶은 거 즐기기 위해서 운동해야 겠다고요. 맛있는 거 먹고 마시는 거 저는 행복하거든요. 계속 행복하려면 건강해야겠더라고요.

감은빛님 운동 페이퍼 읽는 거 저는 너무 좋지만, 무리하지는 마세요! 이를 악물기 보다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합시다.

감은빛 2019-05-14 18:50   좋아요 0 | URL
제가 운동을 너무 오래 쉬었나봐요.
오랜만에 하려니 몸이 막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네요.
이를 악물어야 간신히 기대치보다 한참 못 미친 결과를 볼 수 있어요.

물론 다시 꾸준히 하다보면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되는 때가 오겠지요.
다시 몸 만들기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옥희 나와


오키나와 여행 얘기가 나온 건 작년 초겨울 어느날 새벽, 술자리에서였다. 해외 여행을 아직 한 번도 못 가봤다는 선배와 오키나와를 한 번 다녀왔는데, 정말 좋았다는 후배가 마음이 맞아 "가자. 가자." 했고, 나도 예전에 미군기지로 인한 피해를 주제로 한 국제컨퍼런스를 진행했을 때, 오키나와 참가자들을 안내하며 짧게 영어 통역을 했던 기억이 있어서 언젠가 가보고 싶은 곳 명단에 들어있었기에 마음이 동했다. 그날 새벽의 결론은 사람을 모으자! 였다. 렌트카 기준으로 차 1대 혹은 2대에 맞추거나, 성비를 고려해 숙소에 들어가 인원을 모으자는 것.


어렵게 오키나와 일정을 한 번 정했다가 다든 바쁜 사람들이라 취소되었을 때, 내 팔자에 무슨 해외 여행이냐! 싶어서 그냥 포기했다. 그런데 올해 초에 이 사람들이 다시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다. 어느새 7명이 모였다고 내게 마지막 멤버로 들어오라는 권유가 왔다. 늘 바쁘지만, 훨씬 더 바쁠 시기라서 좀 망설였는데, 이렇게 지르지 않으면 평생 또 기회가 없을 거란 생각에 합류했다.


막상 단톡방에 들어가보니 멤버 구성이 재미있었다. 동네 선후배들. 다행히 나는 모든 멤버들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다. 이 구성으로 3박4일 해외여행이라.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니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단톡방의 제목 "옥희 나와"는 누군가 오키나와 여행갈 거란 얘길 했는데, 듣던 사람 중 성함이 '옥희'인 분이 "왜 날 부르냐?"고 물었다는 마치 거짓말 같은 일화에서 착안해 정했다고 했다. 멤버들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유쾌했다.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여성 4분과 남성 4이었던 멤버는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성 1분이 빠져서 성비가 안 맞게 되었지만, 그대로 7명이 가는 걸로 정했다.


여행을 다녀온 시점에서 참가자들의 우애는 무척 깊어졌다. 우린 수시로 톡을 주고 받았고, 자주 만나 술을 마셨고, 다음 여행을 어디로 갔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수없이 나눴다. 베트남,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주로 언급되었고, 나는 몽골에 다시 가고 싶다고 했다. 어디를 가던 돈이 필요하니 매달 일정 금액을 모으는 여행계로 하자고 했고, 가장 믿을 만한 분을 계주로 선출했다.


우리 7명은 각자 캐릭터가 뚜렸했는데, 환상의 궁합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서로 사전에 조율하지도 않는데 역할분담을 잘 맡았다. 신기했다. 일부러 그렇게 시켜도 쉽지 않았을텐데,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서로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 누군가가 사전에 여행 계획과 비행기와 숙소, 렌트카 등 예약을 도맡았고, 가서는 일정 진행과 안내를 맡아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여행이었고, 누군가가 그때 그때 필요한 사소한 일들을 다 챙겨주지 않았다면 상당히 불편한 여행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식사 준비를 비롯해 먹거리를 챙겨주지 않았다면 여행 비용이 훨씬 더 들었을 것이고, 누군가 숙소와 이동하는 차 안에서 분위기를 잘 띄워주지 않았다면 서로가 친해지는데 훨씬 더 시간이 걸려 조금은 서먹한 분위기가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맏언니, 맏형으로서 든든하게 챙겨주지 않았다면 서로 조금씩 더 부담을 가졌을 것이다.


나는 운전을 주로 맡았고, 전체 일행 중 딱 중간인 나이대여서 위로 선배들을 챙기고, 아래로 후배들과 소통하는 중간 세대로서 여러가지 일들을 신경쓰고 챙겼다. 내가 잘 하지 못하는 영역 혹은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부분들을 잘 챙겨주는 일행들이 고마웠고,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최선을 다해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늘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가 제일 좋았다. 그래서 일행 모두 한결같이 또 다음 여행을 생각하는 것이리라.


예전에는 친한 친구와 여행을 가도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다투거나, 속으로 상처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한때 여행은 무조건 혼자 간다는 원칙을 세워 홀로 여행을 다닌 적도 제법 있었다. 그런데 7명이라는 인원이 큰 갈등 없이 재밌게 3박4일을 지낸 건, 대단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 멤버들 중 일부가 지난 어린이날 연휴에 당일치기로 강화도 여행도 다녀왔다. 그것도 역시 12시를 넘긴 시간 술자리에서 급하게 제안되어 시간이 되는 사람들만 3명이 단촐하게 다녀왔다. 


이 친밀감과 유대감이 얼마나 갈지, 정말 이 멤버 그대로 또 어디론가 여행을 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관계가 너무 소중하고 좋다.


바쁘게 지내는 와중에 문득 문득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오키나와 여행에 대해서도 풀어놓고 싶은 얘기가 잔뜩 있었고, 일부는 폰에 메모로 남아있다. 하지만 막상 쓰려고 하니 시간이 부족하고 엄두가 안 난다.


일상에서 가끔 남겨놓는 메모들을 보며, 이런 조각 얘기들을 이어붙여 재밌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은 있으나, 늘 시간이 문제다. 바쁘고 바쁘고 또 바쁘지만, 그래도 소중한 관계들이 있어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 일본 떠먹는 요구르트 뚜껑에는 요구르트가 묻지 않는다. 아무리 뒤집어보고, 일부러 묻혀봐도 안 묻는다. 신기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눠준 한국 요구르트를 여는 순간 묻어 있는 요구르트를 보며 일행 모두 같은 행동을 취했다. 혀로 뚜껑에 묻은 요구르트를 핥으며 이게 당연한 행동이지 생각해본다.


+ 역시 술꾼들이 포함된 멤버 구성답게 매일 밤 아와모리를 마셨다. 맛있었다. 처음 먹었는데, 지금까지 먹어온 어떤 술보다 내 입맛에 맞았다. 덕분에 매일 행복한 술자리가 이어졌다. 늦게까지 술을 마셨어도 누구 하나 아침에 늦게 일어나 일정에 차질을 주는 일도 없었다. 서로 배려하고 서로 먼저 움직이는 아름다운 술자리와 여행이었다.


+ 오키나와 음식은 죄다 엄청나게 짰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짠 맛! 너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생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엄청 기대했던 회는 생각보다 별로였다. 일본 회는 우리처럼 활어회가 아니라 쫄깃한 씹히는 맛이 없었다. 회 센터를 한 바퀴 돌아봐도 살아서 팔딱이는 생선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죄다 썰어서 포장해놓은 갖가지 회들만 전시되어 있었다. 그래도 참치는 많이 먹었다. 참치는 우리나라에서 먹던 맛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 생각보다 아름다운 오키나와의 자연을 별로 즐기지 못했다. 도착한 날엔 비가 왔고, 다음 날엔 많이 흐렸다. 날씨만 맑았어도 훨씬 좋았을텐데, 타이밍이 아쉬웠다.


+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렌트카 업체를 기다리는데, 다른 업체들은 두번씩 버스가 왔다갈 시간동안 우리 업체는 오지 않았다. 뭔가 잘 못 되었다 싶어서 전화를 하자고 했는데,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가 영어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니, 처음에 받은 직원은 영어가 서툴어 잘 알아듣지 못하다가 다른 직원을 바꿨고, 그 직원이 영어로 특정 위치를 언급하고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그때 우리 일행 모두 나를 구원자처럼 쳐다봤다. 이후 길을 물어보거나, 특정한 물건을 찾거나, 식당에서 주문할 때 영어로 했는데, 나도 워낙 오랜만에 영어를 쓰는 거라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영어공부를 해야겠구나 싶었다. 동네로 돌아오니 어느새 내가 영어를 아주 잘 하는 것처럼 소문이 돌고 있었다. 역시 소문은 진실이 아닐 확률이 크고 빨리 돈다.


더 쓰고 싶은 얘기 거리는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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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9-05-09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옥희 나와‘ 정말 멋진 제목이네요. 한 편의 콩트나 단편 하나 뚝딱 나올 거 같은...^^

감은빛 2019-05-10 21:16   좋아요 1 | URL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단편 소설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라서 메모장에 간단히 적어놓기는 했어요. 그걸 언제 풀어놓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러다 금방 잊혀져 버릴지도 모르죠.
 

늦어도 목요일까지는 급한 일들을 마무리 지어놓고 금요일엔 조금 느긋하게 출국 준비하고, 내가 없는 동안의 업무 지시만 하면 될 줄 알았다.

수요일 급한 일이 하나 끼어들어 마무리했어야 할 일들을 못 끝냈고, 목요일에 또다시 규모가 큰 사업계획서가 한 건 떨어졌다. 다음날인 금요일 밤이 마감이었다. 물리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정이라 포기하려 했지만, 위에서 밀어붙였다.

환전과 국제면허증 발급과 기타 준비해야할 것들을 다 금요일로 미뤄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금요일 아침부터 큰 프로젝트 추진 회의를 하면서 대부분의 일이 내게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시청 공무원이 메일로 보내줄 줄 알았던 중요한 계약 서류도 직접 수령해가라고 해서 시청에도 다녀와야했다.

사업계획서에서 내가 맡은 분량을 쓰다가 다 못 쓰고 시청으로 출발. 서류를 받고 보니 이미 은행 영업시간이 끝날 무렵이었다. 원래 사무실 근처 영업점을 지정해두어서, 그리로 전화했더니 늦게 도착하면 방법이 없다고 했다. 대신 가까운 곳에 다른 영업점을 찾으라고 했다. 난감했다. 면허시험장에 가서 국제면허증도 발급받아야 해서 이미 택시를 탄 상황이었다.

은행 직원이 애프터뱅크 영업점에 대해 언급하길래, 검색해보니 가는 방향 면허시험장 근처에 애프터뱅크 영업점이 하나 있었다. 택시 기사님께 행선지 변경을 요청하고 은행에 도착했다. 미리 인터넷으로 신청해둔 금액을 무사히 찾았다. 다시 택시를 타고 면허시험장으로 갔다.

사실 왜 미리 국제면허증을 찾아놓지 않았냐는 일행들의 타박을 듣고 좀 억울한 점이 있었다. 분명 주중에는 바빠서 방문할 여유가 없을거라 생각하고 토요일에 움직이기 귀찮다고 투덜대는 아이들을 달래서 면허시험장에 왔었다.

예전에 면허증 갱신 때문에 토요일 오후에 방문했던 기억이 나서 당연히 문을 열었을거라 생각했다. 단 한치의 의심도 없이 먼 길을 찾아갔는데 황당하게 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일상에서 정말 중요한 운전면허 업무를 하는 기관이 토요일에 문을 닫아버리면, 직장인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화가 났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냥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암튼 금요일 오후 늦게 그 바쁜 와중에 택시를 타고 가서 국제면허증을 받았다. 하나 더 위기가 있었는데 국제면허증에 첨부할 사진은 여권용 사진이어야 한다고 했다. 하필 아침에 챙겨나온 사진 중엔 여권용 사진이 없었다. 이번에 여권을 발급받으러 가면서 2년 전쯤 증명사진 찍을때 아저씨가 3장 넣어준 여권용 사진을 가져갔는데, 바탕이 흰 색이 아니라고 해서 어쩔수 없이 다시 찍어야했고 구청 앞 작은 사진관에서 성의없게 찍은 그 여권사진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냥 어딘가에 던져두고 잊어버렸다.

암튼 혹시 사진 때문에 국제면허증 발급이 안 된다고 할까봐 긴장을 바짝했다. 그 순간 발급을 못 받으면 운전할 사람이 부족하니 도저히 용사받을 수 없는 실수가 될 것 같았다. 담당자가 국제면허증을 발급하는 그 몇 분이 마치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다행히 담당자는 사진을 문제삼지 않고 국제면허증을 건네줬다. 속으로 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갈길이 바빴다. 빨리 사무길로 돌아가 사업계획서를 마무리지어야 했다. 저녁엔 아이들과 지내기로 되어있어거 야근을 할 수도 없었다.

작은 아이 공동육아 방과후교실에 7시까지 가기로 아이와 약속을 했는데, 7시 5분까지 내가 맡은 분량을 다 못 끝내고 아직 일을 배우는 중인 신임 팀장에게 나머지릉 부탁하고 나와야했다.

택시를 타고 방과후교실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전화를 했다. 일이 꼬여도 완전 제대로 꼬였다. 아이들과 저녁을 사먹고 집으로 들어가서 짐을 쌀 생각이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너무 피곤해서 그대로 잠들도 말았다.

아침에 깨보니 절망스러운 느낌이었다. 짐은 하나도 안 쌌는데, 애들을 챙겨서 보내고 공항으로 향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급하게 애들을 깨우고 난 짐을 싸는데 열중했다. 그래도 다행히 애들은 많이 보채지 않고 일어나 알아서 준비했고, 나도 사전에 머리속에 대략 생각한대로 빠르게 짐을 쌌다.

큰 아이는 학교 방과후 수업을 들으러 갔고, 작은 아이는 애들 엄마가 와서 데려갔다. 난 여권과 국제면허증 등 중요한 소지품들을 한번 더 확인하고 집을 나섰다.

지난 이틀이 정말 길었던 느낌이다. 짧은 여행이지만 후회없이 놀다 와야지. 일을 미뤄두고 가서 조금 맘이 무겁지만, 내 탓이 아니니 그냥 생각하지 않으련다. 그럼 잠시 안녕!

추신, 공항철도 안 몇 발짝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오래전 연락이 끊긴 대학 선배와 무척 닮았다. 근데 혹시 정말 닮은 사람일까봐 아는 척을 못하겠다. 예전엔 정말 친했던 사람인데. 진짜 그 사람이라면 다시 못 볼 기회일텐데. 근데 그는 혹시 나를 보지 못했을까 혹 내가 너무 늙어버려 못 알아보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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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0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20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일이라고 한다. 일제시대 다양한 독립운동의 흐름과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독립 투사들의 기록들을 발굴해야 내야 한다.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역사학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잊혀진 이름들.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불러보고 싶은 밤이다.


5주년이 다가온다


세월호 참사 5주년이 다가온다. 지역에서 세월호 가족 극단인 극단 노란리본의 연극을 포함한 세월호 추모 행사가 있었다. 강의 마치고 부랴부랴 돌아와서 참석했다. 연극은 전혀 슬픈 내용이 아니었는데, 아이들의 엄마들이 교복을 입고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자꾸 눈물이 났다. 결국 연극이 끝나고 배우들(엄마들)과 대화 시간에 한 마디씩 하시면서 자꾸만 울컥 하시며, 억지로 울음을 참는 모습,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는 백여명의 관객들도 모두 눈물을 훔쳤다.


아이들이 무사히 제주로 수학여행을 가서 장기자랑을 했다면 이렇게 멋있었을 것이다라는 가정으로 만든 연극. 잊지 않겠습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함께 외칠때마다 자꾸 눈물이 났다.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


또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이다. 당연한 일이건만 참 어렵고 힘들게 이룬 성과다. 이 성과를 위해 수없이 노력한 동료 여성 활동가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많았다. 일일이 만나서 축하할 순 없으니, 일부러 페이스북에 들어가 그들의 글 하나하나에 좋아요를 눌러줬다. 평소 페이스북에 접속해도 귀찮아서 좋아요를 누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오늘은 마음을 꾹꾹 눌러담아 눌렀다.


위헌이 아니라 헌법 불합치라는 결과는 조금 아쉽다. 여성이 차별받지 않고 남성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또 길고 험난한 여정이 남아있을 것이다.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남성으로서 언제나 마음만은 함께하겠다고 다짐해본다.


동기


2003년 환경운동연합 신입활동가 교육을 함께 받은 교육기수로 동기들이 50여명 있다. 한때 같은 단체에서 같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우리들은 각자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운동판에 있으며 여기저기 다양한 공간에서 가끔 이들을 마주친다. 오늘 우연히 두 명의 동기와 연락이 닿았다. 한 명은 전화로 한 명은 내 강의를 들으러 왔다.


전화 연락은 녹색당 서울시당 활동가로부터 받았다. 전화 목소리가 어쩐지 낯익다 싶었는데, 환경연합 동기라고 먼저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본인은 이름만 보고도 나를 기억했다고. 근데 미안하지만 나는 이름을 듣고도 바로 얼굴이 떠오르진 않았다.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불치병 때문이다. 미안했다. 주말 녹색당 확대운영위원 워크숍 때문에 연락을 한 거라고 했다. 주말이 되면 얼굴을 볼 수 있겠지. 반가운 마음을 잘 표현해야 할텐데.


또 한 명은 강의장소에서 마주쳤다. 멀리서 그 실루엣만 보고도 바로 그가 떠올랐다. 늘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친했던 형. 40대 중반부터 10대 후반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있었던 우리 동기들 중에 나는 유난히 형들을 좋아하고 잘 따랐다. 오늘 만난 그 형과는 티격태격 다툼이 있기도 했고, 장난도 많이 쳤었다. 형 말로는 15년 만이라고 하는데, 내 생각에도 그런 것 같다.


당시 나는 20대 후반이었다. 젊었다기 보다는 어렸던 시절. 뭣도 모르고 선배들 비판을 많이 했던 시기였다. 그의 눈에 나는 얼마나 철없는 동생이었을까? 강의를 마치고 나오며, 언제 소주 한 잔 하자는 약속을 했다.


4시간 연강


학교 강의는 보통 2시간이다. 언젠가 에너지컨설턴트 교육 때 3시간 연강까지도 해봤다. 오늘은 4시간 강의였다. 내용이 무척 방대해서 4시간 안에 다 담아내기 어려울 수 있겠다 싶어서 일부러 속도 조절을 했는데, 마치고 나니 약속한 시간을 10분이나 넘겨버렸다. 아무래도 4시간 연강은 무리다. 다음에 또 요청이 오면 3시간까지만 해야겠다.


목소리가 작고, 목이 약한 편이다. 그래서 학원 강사 시절에도 늘 힘들었다. 오늘은 3시간째부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물을 자주 마시며 억지로 떠들어댔다. 듣는 분들이 대부분 활동 경험이 많은 분들이셔서 이해도도 높았고, 호응도 정말 좋았다. 몸은 많이 힘들었지만, 기분만은 정말 좋았다.


강의 장소가 수원이라 오가는데 1시간 반 가까이 걸렸다. 왕복 3시간, 강의 4시간 총 7시간을 강의를 위해 투자했다.


오늘은 가볍게 한 잔


세월호 추모 행사를 마친 후 장내 정리를 하고 나오며 오늘 같은 날은 여러 의미를 담아 한 잔쯤 해도 되겠지 생각해본다. 집에 가서 가볍게 한 잔 하고 자야겠다. 이건 오늘 수고한 나를 위한 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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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4-11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술 한 잔 하셔도 되는 날 같습니다. 가끔 자기에게 포상하기도 해야죠.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이 자신인데...
참고로 저는 이번 제 생일에 책 5권을 주문해 선물로 가졌습니다. 생각해 보니 몇 년 전부터 그렇게 해 왔던 것 같아요. 식구들이 물으면 현금이 좋아, 라고 말하고 저는 그 돈으로 책을 사고 남은 것은 갖고...

제가 생각해도 4시간 강의는 힘드실 것 같습니다. 잘 마치셨다니 오늘 단잠 주무시겠네요.
굿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