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북플이 알려준다. 과거 오늘 쓴 글이 3개 있다고. 무심코 살펴보는데, 하나같이 아픈 이야기다. 두 개는 다쳐서 아픈 이야기고, 하나는 마음이 아픈 이야기다. 내게 과거의 오늘은 모두 아픈 날이었구나.

2011년 오늘은 비가 많이 왔나보다. 비를 보며 병든 사회의 아픔을 공감하고 있었다. 그 글을 쓴 시점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당시 출판사 사무실에는 뒤쪽으로 주차장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비슷한 좁은 공간이 있었는데, 거기서 담배를 피우며 빗소리를 듣다가 책상 앞에 돌아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쌍차 노동자 가족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떠올렸고, 4대강 공사로 망가지는 자연의 아픔을 떠올렸다. 강정마을 구럼비의 아픔도 당연히 함께 떠올렸다. 당시 고공농성 중이던 김진숙 지도위원의 아픔에 대해서도 공감하려고 노력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국가 폭력으로 인한 상처는 회복이 쉽지 않다. 그 후로도 숱한 국가 폭력으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당해왔다. 최근에 용산참사 피해자 한 분이 명을 달리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번 그런 이야기들에 화가 나고 또 슬프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그저 잊지 않는 것. 그들의 평안을 기도하는 것 외에는.

2012년에 쓴 글은 책을 포장하다가 종이에 베인 상처를 매개로 내 몸에 유난히 많은 베인 상처들에 대한 글이다. 그날도 기억이 쌩쌩한데, 책 주문을 확인하고 발송작업을 하던 중에 베였다. 창고에 쌓인 책들을 꺼내 분류하고 포장할 때는 대체로 장갑을 낀다. 먼지도 털어내야하고, 벤딩머신 사용 중에 혹시 다칠수도 있으니. 그런데 나는 원래 장갑을 끼면 무슨 일이든 갑갑해서 잘 못하는 편이다. 설겆니 할 때 고무장갑조차 안 끼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암튼 평소 책을 꺼내 표지를 닦을 때까지만 장갑을 끼고, 이후 포장 작업을 할 때는 장갑을 벗고 맨 손으로 하는데, 그날따라 손이 미끄러졌고 다음 순간 피가 주르륵 흘렀다. 결국 피 묻은 책 한 권을 팔지 못하고 파기처분했다. 생각보다 상처가 깊어서 회복하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다음은 2015년에 쓴 글이었다. 신기한 게 며칠전에 그 날 일이 꿈 속에서 재현되어서 재수없다고 생각했는데, 그해 여름에 그 일을 겪었다. 멀쩡히 자다가 술 취한 놈에게 당한 폭력사건. 그 건으로 그 인간에게 몇 십만원 가량 합의금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일요일 밤이었고, 밤새 경찰서에서 진술서를 쓰고 월요일 아침을 맞았다.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나는 집으로 가서 씻고 늦은 출근 준비를 했다.

북플이 알려준 3개의 글이 모두 이모양이라니. 오늘은 과연 어떤 하루가 될까? 아프지 않은 날이었으면 좋겠다. 몸도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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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6-29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년에는 북플이 4개의 글을 알려오겠네요. 늦었지만 지난 3개의 아픔을 덮는 큰 기쁨의 올해 오늘이 되시기를.

감은빛 2019-06-29 22:24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내년에는 4개의 글을 알려주겠군요. 해마다 계속 글을 쓰면 더 늘어나구요. 앞으로 매년 6월 29일은 알라딘에 글쓰는 날로 정할까봐요. ㅎㅎ

syo님 덕분에 즐거운 하루를 보낸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Nussbaum 2019-06-30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람이 오면 일단 깜짝 놀라고, 다음엔 내가 이 땐 이랬었구나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낯설기도 하고 친근하기도 하고 그렇네요 ^^

감은빛 2019-07-05 14:05   좋아요 0 | URL
네, 알람 덕분에 오래전에 썼든 글들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좋더라구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아요 집착


모든 SNS를 실명이 아닌 덧이름으로 이용하고 있다. 각각 특성이 다르듯 내가 이용하는 방식도 다르다. 가장 많이 쓰는 페이스북은 감은빛으로 이용중인데, 대다수 실제로 아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오래전부터 겪어온 환경운동단체, 문화운동단체, 노동운동단체 그리고 출판사와 현재 활동하는 협동조합까지 부대껴온 사람들이 대부분 친구로 엮여 있다. 그들은 감은빛이란 이름으로 올린 글이 사실은 내가 올린 것이란 걸 아는 사람들이다. 익명성이 통하지 않는 곳. 그래서 이곳에선 공식적인 일정을 중심으로 홍보하는 공간이며, 남들이 올린 홍보성 글들을 확인하는 공간이다. 또 믿고 보는 몇몇 사람들이 공유하는 주요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다.


트위터는 초기에 좀 하다가 아예 접속도 안 한지 꽤 오래 되었다. 글자 제한이 처음에는 재밌었는데, 나중에는 족쇄로 여겨졌고, 그 짧은 글 중심으로 이뤄지는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것 처럼 보였다.


인스타그램은 아주 늦게 시작한 편이다. 사실 사진이랑 별로 친하게 지내는 편이 아니라서 별로 시작할 이유를 깨닫지 못했는데, 어쩌다 만들어 놓고 다른 사람들 사진 구경하는 재미로 이용한다. 인스타는 친구 개념이 아니라 트위터처럼 팔로우를 하는 사람과 대상의 관계라 상대적으로 페이스북 보다는 훨씬 덜 부담스럽다. 여기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


각종 SNS가 시간 낭비라는 의견이 많다. 나도 자주 접속하지 않지만, 가끔 들어가서 좀 보다보면 시간이 휙 지나가버렸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가능하면 필요한 경우에만 짧게 접속하려고 노력한다. 가끔 안타깝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여러 경우가 있는데, 제일 안타까운 건 좋아요에 집착하는 분들을 볼 때이다. 실제로는 못 뵌지 아주 오래되었는데, 가끔 페이스북으로 소식을 접하는 분들 중에 예전에 출판계에 있을때 종종 어울렸던 선배 영업자가 최근 좋아요 숫자에 집착하는 내용의 글을 연달아 올리셨다. 좋아요을 많이 받으면 좋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 숫자가 다른 어떤 가치로 전환되는 것도 아닌데, 왜 좋아요 숫자에 집착하시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그걸 그냥 혼자 생각만 하시는 게 아니라 이렇게 대놓고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또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만약 유튜브 운영자라면 좋아요 숫자는 광고 수입 등 돈과 연결되는 문제일 수 있으니, 차라리 그건 이해할 수 있다. 좀 우습게 보이더라도 좋아요 구걸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페이스북에서 도대체 왜? 이건 그냥 나 좀 인정해 달라는 인정 욕구인 것 같은데, 너무 없어보이는 건 내가 너무 가혹한 건가?


인정 욕구


예전에도 알라딘에 인정 욕구에 대해 몇 차례 쓴 적이 있는데, 나도 인정 욕구가 꽤 강한 사람이라는 걸 자주 깨닫는다. 환경운동단체에 있을 때부터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학에서 학생운동하던 시절에도 그랬다. 그게 뭐 대단한 감투라고 학년대표를 맡았을 때와 학생회에서 간부를 맡았을 때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았다. 환경단체에서 대형국책사업에 맞서 전국단위 행동이 있을 때 두각을 나타내어 주요 일간지 사회면 톱에 사진이 올랐을 때에도. 내가 맡은 사업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 주위 사람들에게 그 공을 인정 받았을 때에도 늘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한 편으로 나는 늘 다양한 역할을 총괄하는 일을 해왔다. 열악한 시민단체의 형편 때문에 그랬지만, 한 사람의 활동가가 다양한 역할을 맡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 몇 가지일을 동시에 맡아서 해내는 것에 익숙해졌고, 그때부터 항상 그렇게 일했다. 시민단체를 정리하고 출판사에 들어와서도 그랬다. 잡지 독자관리와 단행본 영업과 취재해서 잡지에 글을 쓰는 일과 단행본 책임 편집과 단행본 기획까지 출판 쪽에서는 제작과 디자인 일을 빼곤 거의 다 해봤다. 내가 일해온 분야에서 인정받고 싶은 건, 아마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이렇게 전체를 종합적으로 경험해본 결과 한 두가지만 해본 것과는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 잘난 인간이니까 인정해줘 이런 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경험과 깊이를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인 듯 하다.


인정받고 싶은 이유는 제각각 다를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인정받는 지가 얼마나 인정받는 지 보다 훨씬 더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 이만큼 잘났어. 나 좀 봐줘 하는 수많은 콘텐츠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그걸 어떻게 천박하지 않게 잘 포장해서 내놓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한계를 깨달으면 겸손해지는 법


아무리 잘난 사람도 한계는 있다. 내가 아무리 잘난 척 해봐야 딱 거기까지다. 어느 분야에서는 혹은 어떤 자리에서는 아무리 잘난 척 하고 싶어도 내세울 게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게다가 누가 뭘 얼만큼 잘 한다는 건 보는 사람에 따라 매우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정말 멋진 강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겨운 강의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 감동적인 글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뻔한 이미지를 우려먹은 평범한 글일 수 있다. 애초에 모든 사람들에게 다 인정받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람들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은 겸양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느끼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본다. 그런 겸손을 아예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뭐 딱히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학교 강의


한 초등학교에서 3일 연속 6회(1회 2교시)의 강의를 맡았다. 혼자서는 도무지 할 수 없어서 내부에서 역할 분담하고 외부에서도 경험이 많은 강사 선생님을 모셨다. 학교 강의가 오랜만이라 느꼈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작년에는 반드시 내가 가야만 하는 강의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이 해도 괜찮은 강의는 모두 넘겨버렸다. 다른 활동가들도 점점 경험을 쌓아 성장해야 하고,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강의가 내 강의보다 더 좋을 수도 있다.


오랜만에 맡은 강의였는데, 너무 바쁜 시기라 사전에 준비할 여유가 많지 않았다. 초등학교 강의는 더욱 어려운데, 단어 설명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나는 6회 중에 첫날과 마지막날 각 1회씩 2회를 맡았다.


강의를 맡은 사람 중 한 분은 마치고 나와서 "기를 다 빨렸다"며 무척 힘들어했다. 사실 힘든게 맞다. 2교시를 혼자 계속 떠드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언제나 학생들을 만나고 오면 오히려 힘을 받는다. 이번에도 그랬다. 아이들의 진지한 눈빛과 반응들이 너무 대견하고 고맙다. 이번에는 간단한 강의 평가를 모든 학생들에게 받았다. 내가 맡았던 2개 반의 강의 평가서를 나중에 스르륵 훑어봤는데, 한 학생이 맨 밑에 따로 한 마디를 적어놓았다. 재미있었고,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반응이 바로 내가 학생들과 만나기를 원하는 이유다.


하지만 늘 내가 욕심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닫는다. 조금만 욕심을 버리면 좀 더 여유있게 강의를 진행하고, 좀 더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을텐데, 늘 설명하다보면 조금 더 하고 싶고, 그러다보면 자꾸 시간에 쫓긴다. 점심 시간을 앞둔 마지막 시간에 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이 여유있게 식사하기 위해 5분만 일찍 마쳐달라고 부탁했는데, 나는 생명의 근원인 탄소 이야기를 설명하다가 오히려 더 늦게 강의를 마쳤다. 그 순간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좀 더 노련한 강사였다면 시간 조절을 잘 했을 텐데, 욕심 많고 시간 조절도 못 하는 강사를 잘 못 만나 애들이 밥을 늦게 먹게 된 것이 정말 미안했다.


사람은 실수에서 배워야 하는 법. 다음부터는 꼭 욕심을 줄이고 전달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아이들과 충분히 소통하리라.


장바구니 비우기


언제나 읽고 싶은 책은 많고, 읽을 시간과 돈은 부족하다. 한동안 신간은 동네서점에서 구매하고, 아이들 책과 구간은 알라딘 헌책방에서 구매했다. 예전처럼 여기 알라딘 온라인에서 몇 십만원씩 구매하는 일을 지난 몇 년간 잘 참아왔다.


그러다 최근에 도서상품권을 받은 것이 있어서 보관함을 뒤졌더니, 장바구니에 무려 20만원 이상의 책이 들어갔다. 추리고 또 추려서 간신히 15만원 수준으로 맞췄는데, 계속 결제를 미루고 있다. 책장에는 아직 읽을 책이 넘치는데 또 이렇게 책을 사는 게 과연 잘 하는 짓인가? 















이 책 장바구니에 담아 놓은지 벌써 한 달은 지난 것 같다. 빨리 장바구니를 비우고 택배를 기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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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6-28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5만원어치의 책은 어떤것들인가요? (남이 어떤책 샀는지 궁금한 1人)

감은빛 2019-06-28 18:38   좋아요 0 | URL
본문에 이미지 첨부했습니다.
다시 조정해서 책을 2권 뺐더니 13만원대가 되었습니다.
최종 주문할 때는 다시 더 늘거나 줄어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락방 2019-06-28 19:16   좋아요 0 | URL
어쩌면 이렇게 겹치는 게 한 권도 없을 수가 있나요..... ㅎㅎ

감은빛 2019-06-28 19:48   좋아요 0 | URL
정말 겹치는 책이 없나요? ㅎㅎ

다락방님은 소설과 페미니즘 책을 중심으로 보시고, 저는 역사와 과학, 사회과학책을 주로 봐서 그런가요? 페미니즘 책은 가끔 애들엄마 책장에서 훑어보긴 하는데, 정독은 거의 못 하고 있네요.

syo 2019-06-28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전 저것들 중에 두 권 읽었습니다. 그리고 네 권쯤 더 읽고 싶네요.
이정도면 겹치는 게 많은 편이죠? ㅎㅎ

다락방 2019-06-28 21:54   좋아요 0 | URL
뭔데뭔데 그 네 권 뭔데요!

syo 2019-06-28 21:57   좋아요 0 | URL
ㅎㅎㅎ 강주룡 포함해서 아래로 여섯 권, 그 안에 읽은 두 권이랑 읽고 싶은 네 권이 다 들어있어요 ㅎㅎ

다락방 2019-06-28 22:01   좋아요 0 | URL
읽은 건 아무튼 두 권?

syo 2019-06-28 22:05   좋아요 0 | URL
땡!! 과학책이랑 아무튼 외국어요 ㅎㅎ 아직 술은 못 읽었어...

감은빛 2019-06-29 00:42   좋아요 0 | URL
오호! 여섯 권이 겹치다니, 많네요! 과학책과 외국어를 이미 읽으셨군요.

[아무튼 외국어]는 어땠나요?

syo 2019-06-29 07:46   좋아요 0 | URL
괜찮은 책이었습니다. 제 기억에, 아무튼 시리즈 중에서도 꽤 괜찮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밝아졌다


요즘 밝아졌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얼굴이 밝아졌다는 얘기도 듣고, 분위기가 밝아졌다는 얘기도 듣는다. 작년에 혼자 너무 힘들게 일했기 때문에 너무 어두운 분위기로 오래 지냈나보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 훨씬 스트레스를 덜 받고 지낸다. 일터에 사람이 늘었고, 그 두 사람이 자기 위치에서 열심이 움직여줘서 고맙고, 도움이 많이 된다. 물론 그래도 내 할일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마음가짐이 바뀌니 스트레스는 확실히 덜 받게 되더라.


스트레스가 줄어드니, 술과 담배도 줄었다. 예전 같았으면 술 마셨을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러니 아마 자연스럽게 얼굴이 밝아졌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표정도 바뀌었을 것이다. 예전엔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에서 누굴 만나 반갑게 웃어도 그 표정이 그리 반가워하는 걸로 보이지 않았을 지 모른다.


다시 운동을 시작한 덕분에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많이 된다. 재작년과 작년에 내가 유난히 힘들었던 이유는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관절 때문에 운동을 할 수 없으니, 그걸 다 술로 풀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부상 후 달라진 점


재작년 가을 어깨 부상과 작년 여름 무릎 부상 때문에 운동을 제법 오래 쉬었다. 다만 완전히 쉬었다기 보다는 되도록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맨몸 운동 위주로 종종 시도를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일부러 운동을 쉰 것이 아니라 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두 번의 관절 부상 보다 더 큰 문제는 아직도 원인을 밝히지 못한 불규칙적이고 비정기적으로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관절 통증이었다. 손가락, 손목, 발목, 무릎, 어깨, 팔굼치 어떤 날은 엄청나게 아프다가 또 다음 날엔 아무런 통증도 없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지고, 또 며칠 후에 다시 아픈 현상의 반복이었다.


암튼 그래서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조금 시도하다가 그만두기를 반복했고, 결국 근육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 한채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가 4월 초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하려고 슬슬 시동을 걸었다. 자꾸 관절이 아프니 겁이 나서 처음부터 본격적으로 제대로 하지 못하고 조금씩 조금씩 이정도 까지 해도 괜찮은지 살펴보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 소위 말해서 내 관절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간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생각보다 괜찮네 싶어서 다시 본격적으로 해봐야지 생각한 게 대략 4월 말 경이었다. 


5월은 그 시도와 실제 내 몸의 통증 사이에서 갈팡질팡 한 시기였다. 어쨌든 정형외과 의사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관절 통증은 끊길 듯 이어졌고 그때마다 여기에 운동을 하는 것이 더 나빠지는 건 아닌지 자꾸 겁이 나고 망설여지는 것이다. 게다가 꽤 오래 쉬었던 까닭에 전반적으로 근력, 지구력, 유연성 모두 많이 떨어져있어서 내가 원하는 동작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움직이다 보면 자꾸 더 관절에 무리가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부상 이후 다시 운동을 시작하면 사람이 겁을 먹는 구나 하고 깨달았다. 또 다칠 까봐 혹은 무리해서 운동하다가 만성 통증으로 이어질까봐 겁이 나는 것이다. 또 하나 깨달은 것은 이제 더이상 젊지 않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겁없이 이것저것 시도해보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몸이라는 걸 깨닫는다. 같은 운동을 해도 젊은 시절과 근육의 성장 속도 자체가 다르다. 무게를 늘리는 속도도 무척 느릴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이번 주에 운동을 하면서 이 정도면 다시 운동을 시작한 것, 즉 발동을 건 것으로는 성공을 한 것 같다고 느낀다. 계속 겁내던 바벨 운동을 다시 시도했고, 조금씩 자세를 다시 익히고, 조금씩 무게를 올려가기 시작했다.


어제 밤에는 친구와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서 운동을 했는데, 관절 통증도 전혀 없고, 각 운동 동작들도 이상하게 잘 되었다. 그래서 무게를 좀 올려서 스냇치를 했는데, 그 성취감이 엄청 컸다. 이제서야 드디어 다시 운동을 시작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은 채 느끼는 쾌감, 오랜만에 다시 느꼈다.


운동 복장


혼자 살면서 제일 편한 점은 옷을 입지 않고 지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오지 않는 날엔 집에서 알몸으로 지내기도 한다. 그리고 운동할 때도 알몸으로 한다. 운동을 하면 땀이 나고, 땀이 나면 옷이 젖고, 그러면 빨래가 늘어난다. 그냥 옷을 입지 않고 운동하고 땀이 나면 수건과 걸레로 닦고,(옷을 입고 해도 수건과 걸레는 필요하다.) 운동을 다 마친 후에 샤워를 하면 된다.


물론 이건 맨몸 운동 중심으로 할 때 얘기다. 그리고 무릎 부상 이전에 그랬다. 이번에 다시 운동을 시작하면서는 꼭 운동 전에 양쪽 무릎에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손목에 손목 보호대를 착용한다. 그리고 맨몸 운동에서는 무게를 주기 어려우니 발목이나 손목에 각 1kg짜리 모래 주머니를 착용한다. 물론 손으로 할 때는 그것보다 덤벨을 드는 것이 더 효과적이니 주로 발목에 착용하고 실내 철봉에 매달린다.


어느 날 거울을 보면서 운동하다가 내 모습이 너무 웃기다 싶었다. 속옷도 입지 않은 알몸에 무릎 보호대와 손목 보호대와 모래 주머니를 착용하고 운동하는 모습이 웃겼다. 사진을 찍어야지 하고 찍었다가 바로 다시 지워버렸다. 요즘 같은 시대에 혹시라도 이 사진이 유출되어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른다 싶어서였다.


요즘은 맨몸 운동은 워밍업으로 하고 주 운동을 바벨이나 케틀벨로 하고 있다. 이때는 바벨과 케틀벨을 드는 과정에서 맨살에 쓸리거나 상처가 날 수 있어 옷을 입어야 한다. 그래서 운동복 반바지만 입고 운동한다.


아, 실내 철봉에 매달리거나 바벨을 들 때는 장갑이나 손바닥 보호대도 착용해야 한다. 굳은 살이 박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통증이 없는 건 아니다. 한동안 바벨 운동 대신 철봉에 매달려 있는 시간이 길어서 늘 손바닥에 열이 나곤 했다. 


홈짐


예전에 실내철봉과 바벨세트를 다소 무리해서 구매했지만, 늘 정말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디 멀리 핏니스 클럽에 가는 일은 쉽지 않지만, 나는 늘 아침 저녁으로 한 번씩 철봉에 매달렸다 내려온다. 눈에 바로 보이는 곳에, 바로 옆에 있으니까 계속 손이 간다.


단 하나의 단점은 집이 2층이라 층간 소음을 조심해야 한다. 바벨이나 케틀벨을 내려놓을 때 아주 조심해서 소리가 나지 않게 해야하고, 뛰는 동작 등을 할 수 없다. 제일 좋아하는 운동이 버피 테스트를 타바타 인터벌로 하는 것인데, 이 집에선 그걸 할 수 없다. 맨 마직막에 점프하는 동작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또 다른 단점은 거울이 좁고 작다는 것. 맨몸 운동과 프리 웨이트 동작들은 계속 거울을 보면서 자세를 바로 잡아야 하는데, 벽에 걸어놓은 전신 거울이 작고 좁다. 체육관이었다면 아마 벽 전체가 거울이었을텐데 말이다.


만약 언젠가 집을 구매하는 날이 오면 바닥을 튼튼하게 대어서 바벨을 쿵 하고 내려놓아도 괜찮게 만들어 놓고, 한 쪽 벽에 거울을 넓게 설치하고, 실내 철봉과 벤치 프레스와 스쿼트 렉을 구매해놓을 테다. 그리고 또 한 쪽에는 샌드백을 걸어야지. 이상하게 이런 상상은 해도해도 질리지 않는다. 다만 늘 마지막에 돈 문제를 생각하면 씁쓸한 입맛과 함께 정신을 차린다는 점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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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만약 청춘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 강양구 기자가 쓴 글에서 켄 그림우드의 [다시 한 번 리플레이]에 대한 글을 읽었다. 내가 이 책을 읽었던 건 몇 년 전이었더라? 얼른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니 꽤 오래전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30대 중반 무렵이었을 것 같다.


중년의 주인공이 죽었는데, 다시 18살 대학 신입생으로 돌아갔다는 설정은 무척 흥미로웠다. 주인공은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연애와 돈, 명예 등 다양한 목표를 추구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 그런데 다시 처음에 죽었던 날이 되자 또 18살 같은 날로 돌아간다. 계속 리플레이 되는 삶. 


소설이 정말 재밌어서 쉬지도 않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다 읽고 나서는 이런 기회가 과연 축복일까? 재앙일까? 생각해본다. 노년의 쇠약한 삶이 없고 중년이 되면 다시 젊고 생기가 넘치던 시기로 돌아가는 인생. 언뜻 생각해보면 이건 축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만의 성취를 이룬 시기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삶은 반대로 엄청난 재앙일 수도 있다.


물론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이니, 상상만으로 추정해 볼 수 밖에 없지만, 아마도 나라면 한 번 정도는 다시 살아볼 만 하다고 여길 것 같다. 이전의 실수와 오류들을 바로 잡고, 낭비했던 시간들을 뭔가 의미있는 시간에 투자해 첫 번째 삶보다 더 빨리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계속 반복되는 삶은 정말 끔찍할 것 같다. 차라리 그냥 죽어버렸으면 싶지 않을까?


실제 소설의 주인공도 반복 되는 삶이 지겨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허비해버린 삶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그래도 또 삶은 계속 반복되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월드시리즈 우승팀을 맞추는 도박 등을 통해 엄청난 경제적 부를 이루기도 하는데, 나는 다시 살더라도 그런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다만 빨리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인물이 되어 국책사업을 통한 환경 파괴 등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게 아니라면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개인적인 성취를 이룰 수도 있겠다.


이 책 이후로 수많은 타임리프, 타임슬립 뭐 이런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도 영화나 웹툰 등으로 여러 작품을 접해봤는데, 역시 원조가 최고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만큼 흥미로운 작품을 접해보지는 못했다.


어쨌거나 집으로 돌아가면 이 책이 어디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결말 부분이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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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6-07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요증 일본 만화에서 많아 다르는 일종의 이세계물이네요.일본도 살기 팍팍해서인지 항상 주인공인 사축의 노예로 살다가 갑작스레 죽어 일종의 전생을 해 새 삶은 산다는 내용이 많더군요.저 역시도 가끔은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삶은 리플레이하면 좀더 행복하게 살수 있을까하는 상상을 합니다요^^

감은빛 2019-06-10 11:34   좋아요 0 | URL
처음 읽을 때만해도 몇 번 정도 인생을 다시 사는 이야기인가보다 싶었는데, 읽다보니 계속 죽고 다시 대학생이 되기를 반복하더라구요. 이런 식으로 일정한 시간이 계속 반복되는 류의 이야기의 원조인 셈인데, 그 반복이 아마 25년이던가 그랬던 것 같아요. 영화나 웹툰 등에서 하루가 반복되거나 길어야 며칠이 반복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카스피님도 리플레이를 상상하시는 군요. 저도 가끔 그래요. ㅎㅎ
 


오빠 같은 사람


엊그제 오랜만에 마을 활동가 한 분과 마주쳤다. 가끔 스치고 지나갔던 기억은 있는데, 말씀을 나눈 건 몇 년만인 것 같다. 딱 나를 보자마자 오키나와 여행 소식을 페이스북에 올린 일행의 사진에서 봤다고 인사를 해왔다. 그리고 그 사진과 함께 올린 글을 상기시켰다. 그 일행은 나보다 거의 10살 가량 많은 여성 선배였는데, 기대하지 않고 갔던 여행이 무척 좋았다면서 일행들에 대해 한 마디씩 남겼는데, 내게는 "오빠 같은" 이란 수식어를 달았었다. 나도 그 선배가 그 글을 올렸을 때 보고 속으로 왜 오빠라고 표현했을까? 궁금했는데, 조금 생각해보니, 회의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몇 차례 그 선배의 사소한 실수들을 바로 잡아주거나, 이런저런 잡다한 부탁들을 여러번 해결해줬던 기억이 났다. 여행 때도 일행 중 딱 나이대가 중간이라 위로 선배들 챙기고, 아래로 동생들 챙겼던 모습을 보고 그렇게 쓴건가 생각하고 잊고 있었는데, 그 분이 다시 언급하셨다.


그 분도 아마 나와 그 선배의 나이 차를 대략 짐작하신 듯. '오빠'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 선배 같은 연차가 오래된 활동가도 오빠처럼 의지할 만한 분 이시군요. 뭐 이런 느낌의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당시 경황이 없어 그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그냥 웃고 넘겼고, 나중에서야 그 분이 그런 뜻으로 말을 한 게 아닌가 짐작했다.


그 분은 짧은 대화에서 또 다른 기억을 상기시켜주셨는데, 오래 전 지역 시민신문에 육아일기 성격의 글을 연재했던 얘기를 꺼내면서 아이들은 얼마나 자랐는지 물어보셨다. 큰 아이가 중2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셨다. 하긴 그때는 아마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것이다. 아이들과 지낸 이야기를 비정기적으로 블로그에 쓰고 있었는데, 누군가 제안해서 시민신문에 1년 조금 넘게 연재했었다. 아빠랑 함께 놀기 라는 컨셉으로 글을 쓰고 싶었지만, 바쁘게 지내다보니 실제로 아이들과 놀 여유가 별로 없었고, 그냥 단순히 놀았던 걸 글로 풀어낼 수 없으니 매번 뭔가 독특한 소재를 찾아야 해서 글을 연재하는 입장에서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당시에 재미있게 읽고 있다고 인사해주신는 분들이 있어서 바쁘고 힘들어도 억지로 쓰긴 했는데, 나중에 신문 개편 과정에서 다른 기획을 이유로 연재를 그만하자고 편집장님이 먼저 제안해주셔서 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했었다. 


그 분에겐 내가 오래전에 아이들과 놀면서 지낸 이야기를 연재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었구나 새삼 깨달았다. 정작 나는 연재를 그만둔 후로 오랫동안 그 사실을 잊고 지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가끔 무서울 때가 있다. 내가 살아온 시간 동안 어떤 순간을 공유했던 누군가에게 나는 늘 그 기억으로만 남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 나쁜 짓 하지 말고, 실수하지 말고 살아야겠구나 싶다.


통상적으로는 술꾼,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과격한 운동권, 빨갱이, 또 누군가에게는 독설가로 기억에 남아있겠지. 어쩌면 육아하는 아빠, 늘 아이랑 함께 다니는 아빠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미지로 남느냐는 내가 결정할 수 없다. 나는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나를 보여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부부 간의 평등














어제 밤 9시 반에 회의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고나니 10시였다. 선배들이 근처 술집에 자리잡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간단히 마시고 헤어지려던 자리는 부부 간의 불화, 불평등에 대한 주제로 대화 주제가 바뀐 후로 갑자기 불이 붙었다. 운동권이지만, 좌파라고 떠들고 다니지만, 집에서는 손도 까딱하지 않는 남자들이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부부 간의 평등은 쉽지 않다. 


물론 좌파니 우파니 보수니 하는 이념과는 상관없이 어려서부터 습관적으로 집안 일을 잘 하는 남자들도 분명 있고, 요즘 젊은 층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다. 다만, 여전히 그 한계는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 결혼하기 전부터 사회를 바꾸기 위해 활동하는 활동가로서, 남녀 불평등을 말로만 떠는 사람이 되지 위해 많이 노력했다. 그리고 결혼 후에 가사노동과 육아를 함께 하기 위해 많이 애썼다. 아무리 야근을 하고 돌아와도, 아무리 술을 마시고 새벽에 돌아와도 아이 천 기저귀는 다 빨아서 삶아놓고 잠들었다. 그래서 잠을 두세시간 밖에 못 자더라도,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그랬다. 평일에는 할 수 없었던 집안 일과 육아를 주말에 몰아서 다 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주말에 잡힌 회의나 행사에 늘 아기를 데리고 다녔다. 그래도 아마 애들 엄마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많았을 것이다.


현실은 그런 것이라 믿는다. 어제 몇몇 선배들의 솔직한 속내 이야기를 들으며, 분명 공감하지만 그 이면에 숨은 진실. 그렇게 밖에 될 수 없었던 다른 이유들도 분명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구나 다 각자의 현실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 책에 그런 면이 얼마나 담겨 있는지 모르겠다. 사소한 일로 서로의 차이를 깨닫는 일화들이 소개되어 있는 건 봤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또 어떨지 모르겠다. 어쨌건 궁금하니까 한 번 읽어봐야겠다.


주말마다 이어지는 일정으로 아이들과 지내야 할 시간이 자꾸 줄어든다. 아이들은 자꾸만 훌쩍 커버리는데, 아이들은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데, 나는 자꾸만 바쁘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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