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랜베리스


길을 걷다가 낮익은 음악을 들었다. 초등학교 근처 골목이었는데, 5학년이나 6학년 정도로 보이는 여자 아이 둘이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어떤 음악을 부르고 있었다. "뚜 뚜두뚜 뚜 뚜두뚜 뚜 뚜두뚜 뚜 뚜두뚜" 딱 듣자마자 내 머리속에는 돌로레스 오리어던이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더 크랜베리스의 [Ode to my family] 였기 때문이다. 마치 천사처럼 느껴졌던 그 모습을 티비 화면으로 본 것이 그룹 크랜베리스를 처음 접한 것이었고, 돌로레스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던 날이었다. 


한때 우리나라 광고 음악으로도 많이 쓰였고, 드라마에서도 종종 들을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잔잔한 멜로디와 아름다운 목소리가 인상적인 곡. 나는 크랜베리스의 음악들 중에 상대적으로 좀 시끄럽고 흥겨운 곡들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저 곡은 꽤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요즘에도 이  곡이 티비를 통해 가끔 나오는걸까? 저 아이들은 어떻게 저 노래를 알고 길에서 함께 부르는 걸까?


90년대말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알라니스 모리셋, 셰릴 크로우와 함께 가장 좋아했던 가수가 바로 돌로레스 오리어던이었다. 2018년 1월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몇 달 뒤에 접하고 한참 멍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Zombie], [Dreams], [Linger], [I just shot John Lennon], [Fee Fi Fo], [Shattered] 등의 노래를 들었다. 정작 [Ode to my family] 를 다시 찾아듣지는 않았다.



오버 트레이닝


운동하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근손실'이라는 건 대부분 인정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두번째 두려워하는 것은 뭘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오버 트레이닝'이다. 쉽게 말해 무리하는 것. 내 체력보다 과하게 운동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운동을 과하게 해버리면 근육이 성장할 기회가 오히려 줄어들고 신체 전반적인 운동능력이 오히려 떨어져서 역효과만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동하는 사람들은 요일별로 운동하는 부위를 정해놓고 분할 운동을 하곤 한다. 월요일은 상체, 화요일은 하체, 수요일은 코어, 다시 목요일은 상체, 금요일은 하체, 토요일은 코어, 일요일은 휴식 이런 식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다만 나는 고립운동을 거의 하지 않고 전신 운동을 주로 하기 때문에 이런 분할 운동이 의미가 별로 없다. 운동을 쉬지 않고 하고 싶을 때는 상체와 하체로만 구분해서 나눠하기도 하는데, 어느 경우에도 코어는 늘 운동을 하기 때문에 코어를 따로 뺄 필요는 없고, 수요일에도 휴식을 넣어서, 상체, 하체, 휴식 이런 식으로 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실은 상체를 중심으로 운동한다고 하체가 놀지는 않기 때문에 상체, 하체를 분할하는 것도 의미가 별로 없고, 오히려 오버 트레이닝이 될 확률이 높다.


과거의 나는 차라리 운동, 휴식, 휴식, 운동, 휴식, 휴식 이런 패턴으로 반복하는 것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운동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크게 다친 후에 다시 운동을 시작하면서는 이런 개념이 다 필요가 없다. 일단 일상 생활 자체를 소화하기에도 체력이 딸리는 상황이라 별도로 운동을 할 기회를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렵더라. 주말을 푹 쉬고난 일요일 오후가 일주일 중 가장 컨디션이 좋을 때인데, 나는 주로 그때 운동을 하고 일주일을 골골거리다가 가끔 목요일이나 금요일쯤 운동을 하고 다시 일요일로 넘어가곤 한다. 그 일요일에는 컨디션이 좋다보니 아무래도 적정한 선에서 멈추지 않고 자꾸 운동을 더 하고 싶어지는데, 이게 가장 나쁜 판단이자 선택이 되곤 한다.


지난 주에는 어쩌다 목요일 저녁에 컨디션이 꽤 괜찮았다. 그날따라 안되던 동작도 잘 되었고, 신기하게 별로 힘이 들지도 않았다. 나도 모르게 하고 싶었던 다른 동작들을 시도했고, 아주 오랜만에 예전처럼 운동이 된다는 것이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간 너무 무기력하게 힘도 잘 못쓰고, 동작도 마음대로 안 되어서 운동을 하고서도 그닥 좋은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암튼 그날 한참 운동을 하다가 문득 내가 이미 체력의 한계를 넘어 운동하고 있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그때 멈췄어야 했는데, 그때 멈춰도 이미 늦은 것이었는데, 나는 거기서 몇 가지 동작을 더 했고 다음날 정말 극심한 근육통과 온 몸의 피로감을 느꼈다. 다행히 금요일은 쉬는 날이었지만, 이것저것 할 일은 있었다. 오후에 간신히 몸을 움직여 몇 가지 일을 처리했는데,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주말 내내 컨디션은 돌아오지 않았고, 화요일인 오늘도 아직 다시 운동을 할 정도의 체력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오버 트레이닝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반응들


"예전에 운동한 걸 몸이 기억하고 있나봐. 빨리 몸 만드니까 멋있더라."

부상에서 회복하면서 다시 몸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아보려고 가끔 운동하는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고 있다. 가끔 사진 몇 장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데, 어느날 그걸 본 친구가 톡을 보내왔다. 평소 칭찬에 인색한 친구의 반응이라 좀 당황했다. 나로서는 아직 몸 만들기를 시작도 못한 상태인데, 벌써 이런 반응이라는 것도 조금 당황스럽다.


"한 몇 년만 더 지나면 이제 네가 나보다 오빠처럼 보일거야."

나보다 한 열살 정도 많으려나. 암튼 50대인 선배 활동가가 장난처럼 한 말. 예전에도 흰 머리는 많았는데, 오랜만에 봐서 흰머리가 더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살이 빠진 것도 나이들어 보이는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수염 탓이겠지만.


"어머! 크게 다쳤다는 얘길 들었는데,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살 빠졌다는 얘길 해서 이제 그 얘기는 좀 그만들었으면 싶은데, 계속 피곤하고 지친 상태라서 그런지 살은 계속 더 빠지는 중인 것 같다. 예전이었다면 오히려 듣고 기분이 좋아졌을법한 말인데, 이 말이 이렇게 듣기 싫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 것도 신기하긴 하다.



3월을 보내며


매 월말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지겹긴하지만, 정말 3월도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갔다. 누군가는 이제 늙어서 그런 거라고, 앞으로 점점 더 시간이 빨리 갈 거라고 하는데, 그럼 60대나 70대쯤 되면 얼마나 더 빨라진다는 걸까? 


다시 일을 시작한 2월 1일도 바로 엊그제 처럼 느껴지는데, 벌써 업무 복귀한지 두 달이 다 되었다니. 믿을 수가 없다. 이렇게 하루 하루 허무하게 보내는 것이 서글프게 느껴지는데, 그것도 하도 반복되는 일이니, 그 서글픔에도 점점 무뎌지는 것 같다. 어쩌면 가장 무서운 것은 그 무뎌짐이 아닐까? 슬픔에도, 아픔에도, 외로움에도 무뎌져버려서 외로운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아픈지도, 슬픈지도 모르고 살아간다면 그게 가장 무서운 일일 것 같다.



제목을 뭐라고 적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나도 모르게 '3월을 보내며' 라고 두드렸다. 그걸 깨닫자 마자 내 속의 내가 말했다. "아직 하루 남았다." 원빈 말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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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3-30 23: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저씨> 대사 일까요?ㅋㅋ저도 그랜베리스 참 좋아하는데요. 초등학교 아이들이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니 놀랍네요! 아 그리고 저는 키가 커서 맨 뒷자리 였지요!ㅋㅋㅋㅋ

감은빛 2021-04-12 16:53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미미님.
영화 [아저씨]의 대사는 ˝아직 한 발 남았다.˝ 였습니다. ^^

키가 커서 맨 뒷자리를 차지하셨던 거였군요.
저도 작은 키는 아니지만,
요즘은 점점 평균키의 기준이 올라가다보니 기가 죽는 경우가 있습니다.
키 큰 분들 부럽습니다!

바람돌이 2021-03-31 00: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진짜 날이 잘가서 이제 진짜 3월 마지막날이네요. 12시 지났어요. ㅎㅎ 뭐든 무리해서 하지 마시고 천천히 천천히 해요. 감은빛님이느 저나 무리하면 탈나는 나이일듯.... ㅎㅎ 3월 마지막 밤 펀안한 밤 되세요

감은빛 2021-04-12 16:5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바람돌이님.
댓글이 좀 늦어서 벌써 또 4월하고도 중순이 다 되었네요. ㅠㅠ

따뜻한 말씀 덕분에 3월의 마지막 날은 편안하게 잘 보냈습니다.
이후로 또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지만요.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2021-03-31 00: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저씨‘ 영화 생각나네요^^
저도 3월부터 다시 운동 시작하고 있는데 확실히 몸에 좋은것 같아요. 그런데 뱃살이 빠지지 않아 고민이예요.그래서 오늘부터 유산소 비중을 좀 늘렸는데 어찌 될지 모르겠어요~~
말씀 들어보면 운동에 대해 많이 아시는것 같아요.~~
한번씩 운동에 대한 팁도 기대하겠습니다^^

감은빛 2021-04-12 17:02   좋아요 2 | URL
안녕하세요. 페넬로페님.
제가 트레이너는 아니라서 아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운동을 오래했기 때문에 운동 경험이 없는 분들보다는 조금 더 알긴 하죠. ^^

뱃살 때문에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으시죠.
저도 조금 방심하면 배가 나오는데, 이제 나름의 노하우가 생겨서
원하는 만큼의 몸매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사람의 몸과 체질은 사람마다 다 다르니 어떤 정답이 있을 수는 없고,
대체로 이러한 방향으로 가면 좋다라는 조언은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유산소 운동을 늘릴지 말지 고민이라고 하셨는데,
평소 생활 패턴과 어떤 운동을 좋아하시는지, 어떤 운동을 주로 하시는지 등
정보가 더 있으면 제가 아주 조금 조언을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운동 이야기도 자주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다락방 2021-03-31 08: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원빈 말투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빵터졌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은빛 2021-04-12 17:0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께 웃음을 드릴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ㅎㅎㅎㅎ

희선 2021-04-10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삼월 다 가고 사월도 여러 날 갔네요 운동하다 다음날 힘드셨다니, 멈춰야 할 때 멈추면 좋겠지만 잘 되는 날은 더 하고 싶을 것도 같습니다 그때 경험하셨으니 이제는 멈출 때 멈추시겠지요 운동하시니 조금씩이라도 나아지실 겁니다 그러기를 바랍니다


희선

감은빛 2021-04-12 17:0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희선님.
그렇네요. 4월도 여러날이 지나가버렸네요.
조금씩이라도 운동량이 늘어나면 보람이 있을텐데,
꼭 그렇지는 않더라구요.
운동도 몸을 쓰는 것이니, 당일 컨디션에 크게 좌우됩니다.
대체로 제가 원하는 목표에 한참 못 미치는 경우가 많구요.
정말 어쩌다 간혹 잘 되는 날이 있는 것 같아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붕붕툐툐 2021-04-24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거의 한달째 모습이 보이지 않아, 찾아와봤습니다. 잘 지내시죠? 일주일 후에 4월을 보내며로 돌아오십니까?^^

감은빛 2021-04-24 12:00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붕붕툐툐님.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좀 바쁘기도 했고, 글 쓸 여유가 없었어요. 쓰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는데 말이죠. 4월을 다 보내기 전에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야겠죠.

이렇게 말씀 남겨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 ^^
 

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게 있는 법


친한 후배가 저녁 9시쯤 회의를 마칠 것 같다고, 마치면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해서 야근을 하며 기다렸다. 9시가 넘어서 문자가 왔다. 곧 마칠 것 같은데, 안 마치고 자꾸 시간을 끌고 있다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어차피 나도 일하고 있으니 걱정말고 다 마치면 연락하라고 답했다. 조금 배가 고프긴 했지만, 참을만 했다. 9시 40분을 조금 넘겨서 전화가 왔다. 지금 마쳐서 이동 중인데, 10시가 거의 다 되어서 저녁을 먹을 곳이 없으니 어쩌면 좋을지 묻는다. 그렇구나. 코로나19 방역수칙 때문에 10시까지 밖에 영업을 못 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우리는 바로 근처 치킨 집에서 반반 한 마리를 주문하고, 인근 편의점에서 음료와 술을 샀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내가 다치기 전에는 자주 만나서 사소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고, 가끔 심각한 이야기들도 주고 받았던 좋은 후배다. 올해는 특히 서로가 각자의 협동조합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달라고 청해서, 일종의 거래처럼 나는 그의 조합에서 역할을 하나 맡아주고, 그는 나의 조합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주었다. 실은 이런 일은 아주 익숙하다. 시민단체 활동가 시절, 자주 만나는 이웃 단체 활동가들을 우리 단체 회원으로 가입시키려면 나도 상대방 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해야 했다. 그렇게 활동비가 최저 생계비에도 한참 못미칠 정도의 활동가 급여에서 꽤 큰 부분이 여러 시민단체의 회비로 나갔다. 그 뿐인가 정당에서도 그랬다. 여타 진보정당과 같이 사업을 추진하려고 하면, 이웃 정당에서 원하는 것을 하나 들어줘야 우리도 뭔가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약 16년 정도 된 그 후배와의 관계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깊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내가 일방적으로 그 후배를 챙겨준다는 일종의 착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 시간이 흐른 후였다. 지금은 그 후배도 나도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주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계가 지속되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그닥 나쁘지 않았음을 생각하며 다행이라고 여긴다.


학부모 총회


큰 아이가 글을 쓰고 싶다고 예술고등학교 문창과를 가고 싶다고 얘기한 것은 조금 신선한 충격이었다. 요즘은 이러저러한 길들이 일찍부터 열려 있구나 하는 걸 새삼 깨달으면서, 그런 시스템에 들어가기 위한 돈과 노력이 또 얼마나 될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사실 내가 대학을 갈 무렵에는 문예창작과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고, 나중에 군대에 다녀오고 나서 대학에 문창과라는 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국문과 복수전공을 하면서 시와 소설 관련 과목을 열심히 들었지만, 내 개인의 창작에 그닥 도움이 된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물론 나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한다. 나는 국문과 과목들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고, 늘 거리감을 느끼곤 했다. 유명한 시인과 소설가가 우리 과 교수님으로 계셨지만, 그 분들의 수업은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암튼 큰 아이는 이웃 도시의 예고 문창과에 합격했고 올해 3월 초에 입학했다. 잘은 모르지만 나름 유명한 학교라고 했다. 최근 학교에서 학부모 총회에 대한 알림이 왔다. 애들 엄마에게 물어보니 내가 가는 것이 좋겠다고 답이 왔다. 아이 학교가 궁금하기도 했고,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내가 가기로 했다. 이웃 도시라고 쓴 것처럼 서울이 아닌 서울에 바로 붙은 외곽 도시인데, 서울 외곽에 위치한 우리 집으로부터도 꽤 거리가 멀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만 1시간 20분 이상이 걸리고 걸어가고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을 포함하면 거의 1시간 40여분이 걸린다. 처음에는 아이가 그렇게 먼 거리의 학교를 다녀야 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도 고등학교 때는 버스로 1시간 이상이 걸리는 학교로 다녔다. 거리가 그렇게 멀지는 않았으나 바로 가는 버스가 단 하나의 노선 밖에 없었고, 그 노선은 남고와 여고를 포함해서 8개의 고등학교를 지나갔고,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로 운행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 실제로 걸리는 이동시간을 따지면 1시간 반정도 걸리곤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아이가 자신의 꿈을 위해 전국에 몇 개 되지 않는 예고 문창과를 가기 위해 등학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가 좀 힘들긴 하겠지만, 그것도 아이 몫이라 생각했다.  


일부러 그날 일을 쉬고 저녁에 있을 학부모 총회에 느긋하게 갈 생각이었는데, 일정에 쫓기다보니 그날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래도 미리 시간을 체크해서 여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언제나 예상은 빗나가는 것 같다. 이동 경로 대다수가 대중교통으로도 닿지 않는 공간들이었고, 이래저래 움직이다보니 매번 시간에 쫓기며 간신히 움직였고, 마지막 학교를 향하는 길에서도 어이없는 실수로 한 정거장 먼저 내리는 바람에 겨우 시작 시간 5분 전에야 행사장에 도착했다. 학부모 총회 자체는 단순했다. 대부분이 학교 측의 전달사항들이었고, 그것도 대학입시에 대한 내용들이 많았다. 원래는 학교 차원의 총회와 각 과별 총회와 각 반별 총회가 각각 진행되었어야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학교 총회는 못하고, 각 과별로 30명 정도의 학부모가 모이도록 분산해서 총회를 준비했다고 말한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훨씬 더 길고 지루한 시간이 될 뻔 했다. 이럴 때는 코로나 바이러스에게 감사해야 하나?


문창과 전체 학부모가 모이는 총회를 마치고 각 반별로 다시 모였고, 나는 아이의 반으로 이동했다. 아이에게 연락해서 아이 자리가 어딘지 물었다. 창가쪽 맨 뒷자리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이름을 가나다 순으로 놓고 번호를 정하고 번호가 빠른 순서부터 창가쪽 자리부터 세로로 자리를 배치한 거라고 했다. 예전에 내 고등학교 시절에는 키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고 번호가 빠른 순서부터 가로로 자리를 배치해서, 키가 작은 아이들이 앞쪽부터 채우는 방식이었다. 나는 중2까지는 키가 작아서 앞에서 둘째줄이나 셋째줄에 앉곤 했지만, 그 이후로는 중간 정도인 너댓째 줄에 앉게 되었던 것이 떠올랐다. 아이의 책상을 확인하자마자 그 자리가 예전에는 소위 반에서 제일 잘 나가는 애들이 앉는 자리라는 것이 떠올랐다. 창가쪽 맨 뒷 자리. 이건 영화나 소설에서 일종의 클리셰처럼 쓰이는 장치일 것이다.


수첩을 한 장 찢어서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글자를 적어서 책상 서랍 안에 넣어두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아이가 등교해서 교과서를 꺼내다가 발견하고 놀라겠지.


학부모 총회에 참석한 문창과 1학년 학부모들은 대략 스무명 가까이 되는 것 같았다. 부부가 모두 참석한 경우도 한 두 쌍 정도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의외로 아빠들이 몇 명 있어서 놀랐다.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경우 부모 참관 수업이나 학부모 총회라고 가보면 아빠들은 거의 없어서 나 혼자이거나 겨우 한 두명 정도 더 보았는데, 여기는 나 포함 너댓명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앞서 적었듯이 총회에 오기 전에 일정이 꼬여서 간단히라도 배를 채울 시간이 없어서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배가 고팠다. 사람은 누구라도 배가 고프면 기분이 나빠지는 법. 이제 겨우 1학년 학부모일 뿐인데, 학부모들이 계속 대학 입시에 대한 질문만 해대는 걸 보고 짜증도 나고,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나는 오히려 대학 입시는 하나도 안 궁금하고, 아이들이 평소 어떻게 지내는 지, 혹시 뭔가 불편한 것은 없을지 이런 질문을 할텐데. 어쩜 단 한 명도 예외없이 모두 입시에 대한 질문만 해댔다.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어쩐지 그런 자리에서 입시에 대한 질문만 던지는 부모라면 아이를 아이로서 바로 보지 못하고 그저 대학에 목을 매는 얼빠진 부모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근데 질문을 한 부모는 모두 예외없이 입시 질문이었느니, 마치 나를 제외한 모든 부모가 얼빠진 부모가 된 것처럼 느껴지는 착각에 빠졌다. 물론 질문을 하지 않은 부모가 더 많았으므로 그건 확실히 착각이며, 입시 질문을 던졌다고 꼭 그렇다는 법은 없으니 더더욱 착각이다.



아이에게 아빠란


아이가 공모전(옛날엔 백일장이라고 불렀는데, 요샌 이렇게 부른다고)에 낼 소설 주제를 고르다가 아빠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전화를 했다. 한참 늦은 시간이었다. 주제를 환경이나 에너지 쪽으로 정하려고 하는데, 이 일을 오래 하고 있는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고 했다. 자신이 아는 아빠는 그냥 아빠일 뿐이고, 아빠가 어떤 일을 하는지 피상적으로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어떤 업무를 하는지가 궁금하다고 했다.


아마 3년쯤 되었을텐데, 작은 아이가 우리 가족을 캐릭터로 만들면서 엄마는 소띠라 소를 모티브로 해서 '움마'라고 했고, 언니는 토끼를 모델로 해서 '단토끼'라고 했으며, 자신은 다람쥐가 좋다고 '람쥐'라고 이름을 지었으며 각 동물 모양을 만화 캐릭터로 만들었었다. 그때 아빠는 북극곰을 모델로 해서 '끄곰이'라고 이름을 짓길래, "왜 아빠는 북극곰이야?" 라고 물었더니, "아빠는 북극곰을 살리는 일을 하잖아."라고 답하더라. 그때 속에서 뭔지 모를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요 꼬마 녀석이 이런 말을 다 할 줄 아는구나. 그때 아이가 그린 캐릭터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이 이야기를 그대로 적어두었다.


그런데 최근에 인스타그램에 가입해서 내 계정의 모든 게시물을 다 찾아보고 좋아요를 누른 아이가 갑자기 내게 물었다. "아빠. 내가 그때 북극곰 캐릭터 만들었을 때, 진짜 그렇게 말했어?" 그렇게 멋진 말을 해서 아빠를 감격하게 만든 아이는 몇 년이 지난 지금 자신이 한 말을 기억도 하지 못했다. 어째 허무한 기분이다.


활동가의 삶을 살면서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것이 많았다. 경제적으로 남들만큼 풍족한 삶을 살지 못한 점도 그 중 하나다. 다만 나는 어려서부터 워낙 가난하게 자라서 지금 우리 아이들은 충분히 풍족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또래 친구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뒤처질 수 있겠지만,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그 다음으로 미안한 점은 어려서부터 여기저기 일하는 곳에 많이 데리고 다녔다는 것이다. 큰 아이의 경우 특히 더 그랬다. 작은 아이는 내가 시민단체 활동을 그만두고, 출판사에 다니면서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 받으며 일할 시절에 태어났지만, 큰 아이는 한창 단체 활동가로서 일에 푹 빠져 지내던 시절에 태어났다. 활동가의 삶을 살면서 육아와 가사노동을 함께 하기란 참 쉽지 않았다. 내가 아이를 돌봐야 하는 날에는 모든 일정에 아이를 데리고 움직여야 했다. 저녁에 회의나 토론회나 강좌가 생기기도 하고, 촛불집회가 잡히기도 했다. 주말에도 이런저런 일정들이 많았다. 특히 집회가 잡혀 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때는 집회에 참가하는 입장이 아닌 집회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입장이어서 집회에 빠질 수도 없었다. 아직 어린 아기를 아기띠에 안고, 등에는 기저귀와 여벌옷과 분유통이 든 가방을 메고 집회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맡아 처리하곤 했다. 


거리 행진을 하다가 아기가 울면 근처 큰 건물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 기저귀를 갈아주고 길가에 앉아 분유를 먹이기도 했다. 행진 대오가 멀어지고 나면 아기를 들춰 업고 뛰어서 따라가곤 했다. 어릴 때 내 기억 속에 가장 먼저 외웠던 노래가 동요나 대중가요가 아닌 민중가요였던 것처럼, 큰 아이는 아기 때부터 나를 따라 온갖 집회 현장을 다녀서 이런 저런 구호와 운동가들을 따라하곤 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주 어릴 때 일이라 지금은 기억을 못하는 듯하다. 


작은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녹색당 활동과 동네의 크고 작은 일들에 주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이젠 아이들이 좀 자라기도 했고, 아이가 둘이라 서로 놀아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큰 아이는 좀 지겨워하고 싫어하기도 했지만, 작은 아이는 반대로 놀러가는 것으로 여기는 듯했다. 나는 한 편으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이런 엄마와 아빠 덕분에 남들과 다른 독특한 경험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 내 경험이 내게 아주 큰 영향을 미친 것처럼 아이의 인생에도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다. 


다만 늘 바쁜 삶이라 아이들을 위한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 것은 미안한 일이다. 또 아빠를 따라 늦게까지 밖에 머물러 피곤한 아이들을 보면 정말로 미안했다. 언젠가 저녁 회의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가 한 9시쯤 회의를 다 마치기도 전에 회의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거의 10시가 다 되어 내려야 하는데, 두 녀석이 서로 기댄 채로 잠이 들어 있었다. 한참을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못했다. 얼마나 피곤했을까? 나 역시 엄청 피곤하고 힘들었다. 나는 대체 뭘 위해 나와 아이들을 이렇게 고생시키는 걸까? 이런 생각들이 잠시 들었지만, 어쨌거나 애들을 데리고 내리지 못하면 훨씬 더 고생이고, 훨씬 더 피곤해진다. 큰 아이의 가방을 앞 쪽으로 메고, 작은 아이의 가방은 한쪽 팔만 걸쳐서 내 가방 위에 얹히게 만든 다음에, 한 팔에 하나씩 아이들을 안고 일어섰다. 좌석에 뒤로 기댄 아이들을 내 몸쪽으로 기대게 만들고, 양 팔을 아이들 엉덩이 밑으로 집어넣어, 균형을 잘 잡으며 일어서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평소 스쿼트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해서 다행이었다.


일단 열차에서 내리는데 성공했고, 계단을 올라갔는데, 두 손에 아이를 안은 채로 지갑을 꺼내 교통카드를 찍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옆에 계신 누군가에게 청바지 뒷 주머니 지갑을 꺼내 찍어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정신이 없어서 누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여성 분이 친절하게 지갑을 꺼내 찍어주고, 다시 내 잠바 주머니에 넣어주셨다.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약 20분 정도 거리였다. 집 근처에 다와서는 꽤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도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아이 둘을 안고 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냥 갈 수 밖에. 그 날은 지금으로부터 약 7년쯤 전이었던 것 같은데, 작은 아이는 아직 어려서 가벼웠지만, 큰 아이는 많이 자라서 결코 가볍지 않았다. 게다가 잠든 아이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해서 걷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지하철 개찰구를 나와 출구 계단을 오르고 나니 찬 바람이 확 불었다. 한참을 더 걷다보니 팔이 후덜거리기 시작했다. 팔에 힘이 빠져서 안긴 자세가 불편해서인지, 찬 바람 때문에 잠이 깬 것인지 몰라도 큰 아이가 잠이 깨서 칭얼거렸다. 쪼그려 앉으면서 큰 아이를 잠시 땅에 내린 상태로 꼭 안아주었다. 아이는 잠시 칭얼대다가 곧 상황을 파악하고 씩씩하게 걸었다. 작은 아이는 깨지도 않고 계속 안겨서 자고 있었다. 한 손에 작은 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에 큰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갔다. 설잠에서 깬 큰 아이가 많이 칭얼대지 않고 대견하게 걸어주어서 너무나도 고마웠다.


두 아이는 각자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나에게 어린이를 위한 에너지 강의를 들었었다. 나는 지역의 어린이 도서관이나 공동육아 방과후 교실 등에서 어린이 에너지 교실과 같은 프로그램들을 많이 맡아서 진행했고, 이왕이면 내가 맡은 프로그램에 아이들을 데리고 참여하곤 했으니, 아이들은 내가 하는 일이 대략 이런 분야 일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암튼 그래서 큰 아이의 공모전에 도움 될만한 정보들을 찾아줬다. 일단 아이가 아직 고등학생이니 청소년과 기후위기 활동을 연결해서 몇 가지 아이디어들을 정리해줬다. 내가 중,고등학교에 청소년 에너지 교육을 가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의 한 두가지 아이디어와 몇 해 전에 애들 엄마가 번역한 어린이, 청소년 기후변화 활동에 대한 내용에 내가 국내 사례를 정리해서 짧은 원고를 보태어 출간한 책을 책장에서 찾아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청소년 기후위기 활동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너무나도 유명한 그레타 툰베리에 대한 이야기들과 그레타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청소년 기후위기 대응 활동들. 그 중에서도 정부를 상대로 한 청소년 기후 소송 사례들을 알려줬다. 아이가 접근하기 쉽게 정리된 몇 개의 사이트 정보와 유튜브 동영상 등을 추천해줬다. 아이는 무척 신기해하고 흥미로워했다. 특히 노벨 평화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던 그레타 툰베리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나처럼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가졌던 희망사항이었다. 한국이라는 환경 분야에 있어서 최악의 조건에서 환경운동을 해온 덕분에 소설로 써먹기 좋은 에피소드들이 꽤 있기도 하고. 잘만 구상하면 흥미로운 소설이 될 것 같지만, 잘 담아내고 싶은 욕심과 글 쓸 시간이 없다는 핑계 때문에 늘 머릿 속으로 구상만 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아이가 먼저 쓰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아이가 이 내용을 잘 숙성시켜 잘 담아내기에는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공모전 마감일은 이미 바로 코 앞이었다. 아이에게 이번에는 참여해 보는 것에 의의를 두고,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공부하고 고민해서 풀어내어 보라고 했다. 절대 욕심부러지 말고, 지금 현재 할 수 있는 것만큼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줬다. 


아이는 아빠 덕분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나는 오히려 아이가 이런 일로 나에게 물어보고 도움을 요청해줘서 고맙다. 아이가 글을 쓰고 싶어 해서, 내 관심사 역시 글쓰는 일이어서 다행히고, 아이가 관심을 가진 분야가 마침 내가 아주 잘 알려줄 수 있는 것이어서 고마운 일이었다.


늘 아이에게 미안하기만 한 아빠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조금이라도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아빠라서 다행이다. 하루하루 참 힘들고 괴로운 인생이지만, 뭐하러 살아야 하나 싶은 때가 종종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생각하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뭐 이 정도면 그래도 아주 나쁘지는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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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3-26 1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다가 눈물났어요..감은빛님도 꼭 쓰셨으면 해요!! 아버지가 제게 그런 쪽지를 남겨주셨다면 저는 평생 간직했을거예요ㅋㅋㅡ창가쪽 맨뒷자리 선점했던 미미😊

감은빛 2021-03-30 23:25   좋아요 2 | URL
앗! 미미님. 혹시 학창시절에 껌 좀 씹이셨던가요? ㅎㅎ
창가 맨 뒷자리는 아무나 못 앉는 자리 아니던가요? ㅎㅎㅎ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붕붕툐툐 2021-03-26 23: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쪽지를 넣어놓고 오시다니.. 감은빛님은 넘 멋진 아부지~ 제가 바라던 딱 그런 아버지네요~👍👍
따님이 고등학생인데도 글을 쓰고 싶다고 문창과에 입학한 거 넘 멋져요~ 은빛님도 소설 꼭 쓰시고 따님도 작가 데뷰하셔서 제 2의 한승원-한강 부녀가 탄생하길!!🙏(이거 칭찬으로 한 건데, 이 작가를 싫어하시면 어쩌나 살짝 걱정~헤헷~)

감은빛 2021-03-30 23:33   좋아요 2 | URL
붕붕툐툐님. 그래서 아이의 친구들이 저보고 로맨틱한 아버지 라고 말했대요.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작은 아이는 깔깔 웃으면서
˝누가? 우리 아빠가????˝ 이런 반응을 보였어요. ㅎㅎ

바람으로서는 저도 아이도 원하는대로 글을 쓰면서 살아가면 좋겠지만,
늘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다는 걸 깨닫게 되기 마련이죠.
저도 한때 골방에 갇혀서 신춘문예를 준비하던 시절에는
평생 글쓰며 살아갈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구요.

과분한 칭찬을 하시고는 오히려 싫어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시다니!
붕붕툐툐님의 태도에 제가 오히려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ㅎㅎ

희선 2021-03-27 03: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따님이 학교에 가서 감은빛 님이 수첩에 적은 걸 보면, 겉으로는 이건 뭐야 해도 마음속으로는 기뻐할 듯합니다 1학년인데 벌써 입시 이야기를 하다니... 고등학교 생활을 어떻게 하나 그런 걸 물어봐야 할 텐데, 부모는 학교에서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지요 감은빛 님이 글을 쓰기도 하셔서 따님이 물어보기도 했군요 그건 감은빛 님이 좋으셨겠습니다 함께 이야기 할 게 있어서 좋을 듯합니다 벌써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찾다니 부럽네요 따님이 지금은 즐겁게 하면 좋겠습니다


희선

감은빛 2021-03-30 23:36   좋아요 3 | URL
네, 희선님. 아이가 글쓰는 일을 하고 싶어해서 좋았어요.
그래서 아이가 쓴 글을 읽고 감상을 말해줄 수 있어서 좋고,
함께 글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아요.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은지,
어떤 스킬을 기르는 훈련을 하면 좋은지를 알려줄 수 있어서 좋아요.

그렇지만 내가 좀 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어서,
겨우 이 정도 밖에 해줄 수 없어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사람은 언제나 그런 존재인가 봅니다.

scott 2021-03-31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따님에게 따스한 빛 같은 아부지 ^ㅎ^

감은빛 2021-04-12 16:50   좋아요 0 | URL
scott 님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사람은 변한다.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외모도 변하고, 성격도 조금은 변한다. 생각도 행동도 옷차림도 변한다. 좋아하는 음식이나 싫어하는 음식이 새로 생기거나 없어지기도 하고 바뀌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좋아하는 책, 영화, 음악, 작가, 감독, 배우, 가수, 연주가 등이 바뀐다. 하루에도 몇 번씩 체중이 바뀌고 미세하게 키가 늘었다가 줄기도 한다. 뱃살이 나왔다가 들어가기도 하고, 발이 퉁퉁 부었다가 붓기가 빠지기도 한다. 입안이 헐었다가 낫기도 하고, 입술이 부르트거나 입 주위에 뭔가 솟았다가 없어지기도 한다. 손톱이, 머리카락이, 수염이, 몸 여기저기 체모들이 조금씩 자란다. 모르던 지식을 배우기도 하고, 외우고 있던 전화번호나 숫자들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기타를 익숙하게 칠 수 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코드나 주법을 다시 못 치게 되기도 하고, 팔굽혀펴기를 백 개도 넘게 하다가 부상 당한 후에 오십 개도 채 못 하게 되기도 한다. 지독하게 혐오하던 코메디 영화를 보고 낄낄 거리며 웃을 수도 있고, 여러 차례 보아도 감명깊었던 에스에프 영화를 보고 문득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익숙하고 정겨운 산책길 풍경을 보고 안정감을 느낄 수도 있고, 매번 같은 길을 걷는 것에 싫증을 느끼기도 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늙어가며 외모가 조금씩 변해도 인상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성격도 조금은 변할 수 있지만, 큰 틀에서는 거기서 거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20년도 더 지난 대학 시절이에도 MBTI 결과는 INTP 였는데, 궁금해서 온라인으로 약식 검사를 해보니 여전히 INTP 가 나온다. 생각이나 행동도 마찬가지다. 조금씩 변화가 생길 수도 있지만, 대체로는 큰 변화가 없이 어떤 범주 안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상황에서 무슨 생각을 떠올리고, 어떤 장소에서 어떤 행동을 할 지 예측 가능하다. 옷차림도 그렇다. 나는 대학시절에 구매했던 몇몇 옷들을 20년이 지난 지금도 입는다. 시간이 지나면 취향도 조금씩 바뀌어 좋아하는 책과 영화, 음악 등이 바뀌기도 하지만, 어쩌다 다시 예전에 좋아했던 작가나 작품을 다시 접하면,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다시 좋아지곤 한다. 어쩌면 취향이 바뀐다는 말도 맞겠지만, 달리 말하면 취향이 더 풍성해진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 어제 우연히 데비 깁슨의 80년대 노래들을 들었는데, 그의 노래에 푹 빠져있었던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느껴져 그 노래들이 더 좋게 느껴졌다.


변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기도 한다.

이런 식이면 하루종일도 쓸 수 있다. 사람은 변한다고 해놓고 변하지 않는 증거를 백 개도 넘게 댈 수 있고, 변하지 않는다고 해놓고 변한다는 증거를 백 개도 넘게 댈 수 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변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기도 한다는 얘기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얘기다. 누가 옳고 누가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언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짧은 시간에 꽤 많은 일이 나를 치고 지나갔다. 좋은 시간이라고 기억될만한 일도 있었고, 그저 그런 별 감흥이 없었던 기억들도 있었고, 그닥 좋지 않다고 생각할만한 일들은 좀 많았다. 그리고 최악이라고 할만한 아주 당황스럽고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도 있었다. 그 결과를 전해듣기 전까지 단 한 번도 그런 결과가 나오리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내가 잘 못 들은 줄 알았다. 다시 듣고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막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대체 뭐가 왜 어떻게 어디서 잘못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화는 좀 나중에 따라왔는데,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화를 내야할 지 몰랐다. 상대를 찾지 못한 화는 나 자신에게 향했고,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화를 받아 안고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른채로 주말을 보냈다.


왜? 가 중요한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나은가?

고민을 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일이 많다. 고민을 해서 답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고민을 계속 해야할까? 그냥 받아들이기만 해도 될 일이 있지 않을까? 언젠가부터 맛있게 먹어왔던 어떤 특정한 과자를 먹다가 갑자기 맛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 입맛이 변한 걸까? 과자 공장에서 잘 못 만든 걸까? 과자 공장에서 재료를 바꾼 걸까? 만약 내 입맛이 변한 거라면 왜 변한 걸까? 이런 걸 고민한다고 과연 그 답을 찾을 수 있나? 그냥 단순히 이젠 이게 별로 맛이 없네. 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을. 그냥 이제 먹지 않으면 그만인 것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답을 모르는 상태가 너무 답답하고 싫은 경우가 있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변한다는 것이 혹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고 슬픈 일이 되기도 한다. 가령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하고 사랑했던 사람에게 싫증을 느낀다면 그건 이유를 따져야 하는 걸까?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걸까? 어떤 경우에는 여전히 사랑스러울 수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싫증이 날 수도 있다. 변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기도 한다는 말처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 같은 거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다. 어떤 선을 넘어가면 하나의 단계로 고착된다.


악순환 그리고 시도

다시 일을 시작하고 나서 한 달하고 반이 지났다. 집에서 오래 쉬고 있던 몸과 머리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일단 체력이 받쳐주지 못했다.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만 했는데도 너무 힘들고 지쳤다. 다른 무언가를 할 에너지가 없었다. 나는 운동을 하고 싶었고, 책을 읽고 싶었고, 글도 쓰고 싶었는데, 그냥 출근과 퇴근만 하는 것도 힘겨웠다. 집에 돌아오면 지친 몸을 누이기 바빴고, 그만큼 체력은 더 나빠졌다. 악순환이다. 어떻게든 운동을 하고 체력을 더 길러야 하는데,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는 불가능했다. 어디서 돌파구를 찾아야 할까?

꽤 오랫동안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숨만 쉬며 살아온 것 같았는데, 요즘은 생각이란 걸 조금씩 해본다. 더 늙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내 존재가 점점 작아져 없어져 버리기 전에 뭔가를 하고 싶다는, 아니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생각이 들면 일단 해봐야겠지. 좋고 나쁘고는 해보고 따져볼 일이다. 이를테면 지금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기르고 있는 것도, 수염을 기르고 있는 것도 모두 생각이란 걸 해본 결과 중 하나다. 누군가는 수염이 보기 싫다 하고, 누군가는 꽁지 머리가 꼴 사납다고 하고, 누군가는 그냥 내 존재 자체가 싫은 모양이지만, 그들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내 못난 외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머리카락이 어중간한 길이라서 너무 지저분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배우처럼 수염이 멋지게 자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괜찮다고 느낀다. 나는 안다. 내가 잘난 외모가 아니란 것도, 어느 멋진 배우처럼 멋진 수염을 가질 수 없음도, 제멋대로 뻗치는 반곱슬 머리에 숱이 적어서 이렇게 길러봐야 멋진 스타일을 만들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 어떤가? 그냥 내가 괜찮으면 된 것 아닌가? 내가 괜찮지 않은 때가 온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머리카락을 자를 것이고 면도를 깔끔하게 할 것이다. 누가 억을 준다고 해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마는 사람이다.

더 늙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시도들을 더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란 걸 해봤다. 이런저런 상황을 떠올려봐도 그닥 나쁠 건 없어 보인다. 해보면 좋겠다. 문제는 체력이다. 일도 하고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들을 수 있는 체력이 필요하다. 한번에 좋아질 수 없다는 건 잘 안다. 뭐든 그저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지금은 일단 뒤집어 볼 수 있는 수 하나가 필요하다. 어쩌면 주말 동안의 길고 긴 불면의 밤이 그 수가 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드는 악수가 될지도 모르지만. 일단 일어난 일을 돌이킬 수 없다. 게다가 내 탓이 아니다. 나는 분명 불면이 두려워 초저녁부터 불을 끄고 누워서 온갖 노력을 다 동원했다.

날이 밝아온다. 너무나도 싫은 월요일 아침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학창시절에도 나는 월요일 아침이 싫었다. 사람은 변한다. 월요일 아침이 싫지만, 이렇게 밤을 지새우고 맞이하는 월요일 아침은 또 그렇게까지 싫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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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1-03-15 09: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간관계가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하루아침에 확 달라지도록 큰 변화를 주는 사람보다는 조금이라도 변화를 시도하게끔 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

감은빛 2021-03-17 21:29   좋아요 1 | URL
그렇죠. 시루스님.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인간관계이겠죠.
시루스님께서 바라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오거서 2021-03-15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사람은 변한다는 결론이군요. ^^

감은빛 2021-03-17 21:29   좋아요 1 | URL
쓰다보니 마지막에 결론이 그렇게 나 버렸군요. ^^

syo 2021-03-15 1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생의 고민이란 내가 자라고 자라도 끝이 없는 모양이군요..... 사람은 늘 고민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의 증거고, 그때의 고민과 오늘의 고민이 다른 것은 변한다는 것의 증거라면, 오늘의 이 고민은 변하려고 하는 걸까요, 변하지 않으려고 하는 걸까요? 그것만 알아도 어떤 고민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감은빛 2021-03-17 21:32   좋아요 1 | URL
아무리 고민해도 늘 답을 알기 어렵다는 것이 삶이 어렵고 힘든 이유가 아닐까요?
매번 변하려고도 혹은 변하지 않으려고도 왔다 갔다 바뀌는 것이 사람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고민이 끝나는 순간이란 삶이 마지막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혹 마지막 순간까지도 간절한 궁금증이나 고민이 있다면 그건 좀 안타까울 것 같아요.

라로 2021-03-15 1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이 안 오시면 멜라토닌 추천해요. 저도 요즘 밤낮이 바뀌어 멜라토닌 먹을 생각이에요. 예전엔 약을 먹으면 죽으라는 소리로 알아들었는데, 요즘 병원에서 일하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못 자는 것보다는 약의 도움을 받는 게 낫다,,,로요. 암튼 제 응원을 보냅니다. 337,337,337,화이팅!!! (다른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마시고 회복에 중점을 두시길,, 아직 회복이 안 되어 그런 것 같아요.)

감은빛 2021-03-17 21:34   좋아요 1 | URL
네, 라로님의 충고 깊이 새겨듣고 잘 따르겠습니다.
늘 마음 써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
최근에 유난히 일이 좀 안 풀려서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아요.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겠어요.

붕붕툐툐 2021-03-15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쿵~ 밤새우고 월욜에 출근하셔서 괜찮으셨어요? 잠 들지 않더라도 편히 누워만 있으면, 자는 것의 70%는 회복된대요. 꼭 자야지 생각함 더 잠 안 들잖아요~ 이 말 듣고 저도 맘이 편해졌던 기억이 있네요~ 불면증에 ‘바디스캔 추천해요. 이거 부작용이 잠드는 거라 잠 드는 것도 좋고, 아니어도 좋고!!(유튜브 치면 많이 나와요!)
조그마한 시도 저도 참 좋아해요. 좀 돌더라도 새로운 길로 가보기도 하고, 내 몸에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도 하구요~ 감은빛님의 작은 시도를 응원합니다!! 꽁지머리&수염 콜라보라닛! 저 진심 감은빛님 만나뵙고 싶어요! ㅎㅎ

감은빛 2021-03-17 21:39   좋아요 1 | URL
붕붕툐툐님. 낮에 엄청 졸려서 힘들었어요.
제가 어려서부터 야행성이었고, 수면시간도 굉장히 불규칙하고,
일이 많을 때는 사나흘씩 집에도 못 들어가고 연속 밤샘을 하기도 하고,
그렇게 48시간, 72시간씩 잠을 안 자도 커피랑 에너지 음료 마시면
또 버텨지기도 했거든요.

이젠 늙어서 그런지, 사고 후 회복에 전념하느라 잠을 많이 자서 그런지.
이젠 그런 삶을 다시 살 수 없을 것 같네요.

최근 오랜만에 만나는 분들의 반응을 보는 것이 재밌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요.
다들 깜짝 놀라시는데, 그 다음에 반응이 갈려요.
어울린다. 괜찮네. 멋지다 뭐 이런 류의 긍정적인 반응은 주로 여성 분들이고,
인상을 찌푸리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류와 과감하게 안 된다고 소리치는 분들은 주로 남성 분들이지만, 꼭 성별로 나뉘지도 않긴 하네요. ㅎㅎ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samadhi(眞我) 2021-03-16 2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학 때 선배가 서른이 된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때는 스무살 언저리라 별로 와닿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서른도 그리 많지 않은 나인데. 서른이라는 나이가 좀 더 갑작스러운 느낌이 드는 때이기도 한 것 같아요. 20대가 워낙 하는 것 없이 빛나는 느낌이라 그런가. 저도 뭐가 언제 닥쳐올지 모를 일이니 달리고 있습니다. 내내 겨울잠만 늘어지게 자다가.

감은빛 2021-03-17 21:41   좋아요 2 | URL
진아님.
내내 겨울잠만 늘어지게 자는 삶이 너무나 그립고 부럽습니다!
올해 1월까지 제가 그러고 살았는데, 이제 다시 바쁘게 일하려니 너무 힘드네요.
계속 바쁘게 살기만 할 때는 몰랐는데,
쉬어보고 놀아보니 이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네요. ㅎㅎ

samadhi(眞我) 2021-03-17 21:56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현대사회는 인간을 너무 밀어부치네요. 그러다보니 점점 자연스러운 삶에서 멀어져 다치고, 아프고 하지요. 조금 떨어져서 덜 배불리 먹고 덜 풍요하고 조금 불편하게 자연에 가깝게 살아보려고 해볼랍니다. 그게 될랑가 모르겠지만.

희선 2021-03-16 2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게 다치고 쉬다가 일하기 쉽지 않을 듯합니다 일을 조금씩 할 수는 없는지... 그러려면 다른 일을 해야 할지... 이런 건 쉽게 말할 수 없겠습니다 사람은 바뀌기도 하고 바뀌지 않기도 하겠지요 하고 싶은 걸 못하면 우울하기도 하겠지만, 지금은 어려울지도 모르겠네요 시간이 가면 좀 나아질지, 나아질 거예요 조급하게 생각하시지 말고 천천히 하시기 바랍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어려운 일일 듯합니다


희선

감은빛 2021-03-17 21:43   좋아요 2 | URL
네, 희선님.
오래 쉬다가 다시 일하려니 적응도 잘 안되고,
예전에 금방 해내던 일을 요즘은 한참 다시 들여다봐야 해낼 수 있고 그러네요.
말씀처럼 천천히 할 수 밖에 없겠죠.
계속 하다보면 다시 예전처럼 익숙해지겠지요.
고맙습니다!

scott 2021-03-18 1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하루키옹이 라디오에서 40까지는 밤을 꼴딱 지새우고 다음날 강행군을 해도 크게 몸에 무리를 못느꼈는데 50중반 넘으니 어제 무리하면 오늘은 몸져 눕게 된다고,,,

주변인들이 이러쿵 저러쿵 하는 말 새겨듣지 마시고 나편한게 쵝오!

전 수용일이 증말 힘든데
감은빛 님 오늘은 내일보다 더 밝고 활기찬 나날이라는 희망을 !

감은빛 2021-03-30 23:40   좋아요 1 | URL
하루키 옹의 라디오를 즐겨 들으시는군요.
저도 일이 많을 때는 밤을 새워서 일을 마무리 짓는 편이예요.
다음날에도 분명 일정이 있으니 쉬지 못하고 또 이어서 일을 해야하고,
어떤 경우엔은 그게 며칠씩 이어져서 삼일이나 사일동안 연달아 밤을 새기도 하죠.
예전에는 그래도 크게 문제가 없었는데,
이젠 정말 하루 밤을 새는 것도 힘들어서 다음날 아무것도 못 하겠더라구요.

점점 나이듦을 느끼고 그런 나 자신을 깨닫는 게 슬퍼져요.

말씀 고맙습니다! 스콧님.
 


온라인 강의

줌을 이용한 온라인 강의는 처음이었다. 강의 내용은 작년에 했던 강의를 그대로 해달라고 요청받았는데, 물어보니 작년에 이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분들이 이번에도 몇 분 계시다고 했다. 그때 강의 내용을 그대로 기억할 수도 없고, 어차피 새로 준비를 해야하니 작년에 만든 강의안을 바탕으로 내용을 추가해 보완했다. 급하게 청탁을 받았고, 나도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엄청 바쁜 기간이어서 매일 밤마다 야근을 하면서 강의 전날 밤에야 겨우 강의안을 완성했다. 주최측이 강의 장소로 지정한 곳은 강남쪽의 어느 작은 스튜디오였다. 가보니 이 교육프로그램 전체 진행을 도와주시는 강사님이 계셨다. 줌 사용법을 알려주시고, 간단히 분위기를 설명하고 도움이 될만한 팁을 알려주셨다. 그래도 이 분이 옆에 계셔서 큰 도움이 되었다. 만약 혼자 그 방에서 떠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3시간 연강이었는데, 휴식 후 다시 강의를 시작할 때마다 마이크 연결상태에 문제가 생기거나 카메라가 말썽이거나 하는 등 사소한 문제들이 계속 발생했다. 이래저래 시간을 제법 뺏겨서 내 강의 시간도 줄어들 수 밖에 없었고, 나는 이번에도 또 시간 배분에 실패해서 막판에 엄청 시간에 쫓겼다. 말이 빨라졌고, 발음이 잘 되지 않아 버벅거렸다. 강의를 다시 하는 것도 너무 오랜만이라 3시간째에는 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오래전 학원에서 일할 때는 하루에 7시간씩 강의를 했는데, 이젠 고작 3시간 강의도 못 버티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적응이 안 되었던 게, 좌우와 정면에 3개씩이나 설치한 조명이었다. 너무 밝았고 내 얼굴이 너무 적나라하게 화면에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부끄럽기도 했다. 흉터가 잘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일부러 수염을 길렀고, 이 못난 얼굴을 좀 가리고 살았으면 싶어서 머리카락을 기르고 있긴 한데, 이렇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한다는 것, 게다가 강의실이 아닌 온라인 강의라는 것이 내게는 부담이었다. 지인들의 조언에 따라 머리칼을 묶고, 모자를 쓴 상태로 강의를 하러 갔다. 그나마 지저분해 보이는 머리의 상태를 보완할 수 있었다. 서른개가 넘는 작은 화면들을 보면서 말을 해야한다는 것도 어색했고,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도 잘 모르겠더라. 비록 악필이지만, 칠판이나 화이트보드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을 하는 편이고, 계속 몸을 움직이고, 걸어다니면서 말을 해야 설명이 잘 되는 편이다. 매번 강의실에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동선을 충분히 확보해야 원활하게 강의를 할 수 있는 편인데, 가만히 책상에 앉아 강의안을 넘기면서 입으로만 설명을 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다행히 강의안에다 마우스로 그림이나 글씨를 쓸 수는 있던데, 이게 익숙치 않은 사람에게는 너무 삐뚤빼뚤 엉망으로 글씨나 그림이 그려져서 쉽지 않더라. 모든 게 내가 생각하는대로 잘 되지 않으니 자꾸만 핀트가 어긋나고, 말이 자꾸만 헛 나오고, 발음이 자꾸만 뭉개졌다. 아! 결국 최악의 강의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이 절망감!

정말 다행히도 옆에 계신 강사님께서 계속 이것저것 도움 말씀을 주시기도 하고, 휴식 시간에는 강의 내용에 대한 질문들을 해주면서 계속 말을 걸어주셔서 절망감에 침잠되지 않고 빠져나와서 다시 강의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일부러 내 자신감을 올려주려고 계속 그렇게 말을 걸어주신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만약 작년처럼 강의실에서 할 수 있었다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강의였다. 일을 쉬고 있는 동안 감도 많이 무뎌졌고, 구체적인 수치나 조항들도 많이 잊어버렸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질문이 들어올 때마다 이렇게 간단한 것도 바로 답이 생각이 안 난단 말이지 생각이 들면서 머뭇거리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는 정말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접촉을 통한 충전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면서는 일부러 강의에 대한 생각을 빨리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이 바쁜 날에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자꾸 미련을 가지면 준비해야 할 일들에 실수가 생길 수도 있으니. 음악을 들으려고 무선 헤드폰을 착용했는데, 전원이 켜지지 않았다. 아침에 이동할 때 듣고 분명 전원을 꺼뒀을텐데, 그때 전원이 꺼지지 않고 계속 켜져 있다가 방전된 것일까? 무선 이어폰이나 헤드폰의 가장 큰 단점은 꼭 필요한 순간 예상치 못하게 배터리가 방전된 것이다. 가방 안에 무선 이어폰이 하나 더 있었는데, 꺼내기가 귀찮아 헤드폰을 목에 걸고 그냥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처리해야 할 업무들을 머리속에서 미리 하나씩 해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을 만나는 날이라 미리 아이들과 시간 약속을 정해뒀다. 큰 아이가 리조또가 먹고 싶다고 하길래, 동네에 있는 파스타 가게에서 만나기로 했다. 시간 상 무리가 없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중요한 순간 예상이 빗나가곤 하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해 시간이 늦어졌고, 아이들은 이미 파스타 가게로 출발했는데, 나는 아직 사무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마음이 급하니 자꾸만 손이 엉뚱한 동작을 했고, 머리가 집중을 못했다. 일터 동료가 내 허둥대는 모습을 보면서 ˝국장님, 제가 마무리 할테니까 먼저 출발하세요.˝ 라고 말해줬다. 그 친구는 이미 아이들이 기다릴까봐 허둥대는 내 상황을 간파한 것이다. 고맙다고 잘 준비해달라고 말하고 급히 사무실을 나왔다. 아이들은 이미 가게에 도착했고, 먼저 주문해서 음식이 나오면 먹고 있으라고 했다. 내가 먹을 음식도 미리 주문하라고 했다.

택시를 타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리인데, 퇴근시간이라 차가 막혔다. 이 서울이란 도시는 이 외곽에서조차 늘 교통체증에 시달려야 하는 곳이다. 급해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은 너무나도 느림보처럼 차를 몰았다. 앞 차에 바짝 붙어서 갔으면 충분히 신호가 바뀌기 전에 지나갔을 것 같은데, 거리를 한참 두고 있다가 신호가 바뀔 즈음에야 천천히 움직이더니 신호가 바뀌니 그냥 그 자리에 멈춰섰다. 하!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내가 운전석에 앉았다면 벌써 도착했을 것 같은데. 자꾸만 급해지는 마음을 심호흡을 하며 가라앉히려 애썼다. 우회전해도 되는 상황에서도 멈춰서 기다리고, 미리 차선을 바꾸면 좋을 곳에서도 깜빡이만 켜고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택시 기사가 왜이렇게 운전을 못 하는지 따지고 싶은 마음을 참고 참고 또 참았다. 결국 내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는 큰 아이의 문자에 근처인데 차가 밀려서 조금 더 걸린다고 답장을 보내고 뒷좌석에 등을 기대버렸다. 이 기사님 정말. 마지막에 내릴 때조차도 차를 횡단보도 한 가운데 세우는 어이없는 짓을 저지른다. 뭐라고 한 마디 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기다리는 아이들 때문에 참았다.

아이들을 만나자마자 내가 원하는대로 강의를 못한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과 일이 꼬여서 늦어진 것에 대한 스트레스와 택시 기사에 대한 화가 모두 눈 녹듯이 사라졌다. 늦어서 미안하긴 했지만, 아이들이 별 것도 아닌 일로 투닥거리며 파스타를 먹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 세상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졌다. 애들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말. 믿기 어렵지만 정말 사실이다. 강의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이 애매해서 제대로 점심도 먹지 못했고, 택시를 타고 오는 동안 허기를 느꼈지만, 나는 눈 앞에 음식 보다는 애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급했고, 더 좋았다.

인간이라는 건 어쩌면 타인과 접촉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평소 다른 누군가와 신체 접촉을 할 일이 거의 없다. 코로나-19 사태로 너무나도 당연했던 악수조차 하지 못하게 된 마당이니 더욱 그렇다. 그나마 일터 동료의 어깨를 툭 건드리거나, 오랜만에 만난 친한 후배들과 악수 대신 주먹을 마주치거나, 팔을 건드리는 등의 행위들이 가끔 일어나는 접촉이다.

그러다 아이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손이 자꾸만 나간다. 머리를 쓰다듬고, 뺨을 손등으로 문지르고, 귓불을 만지고, 손을 꼭 붙잡게 된다. 특히 아직도 내 무릎에 앉는 걸 좋아하는 작은 아이는 꼭 껴안고 있게 된다. 이건 내가 생각하고 일부러 하는 행동이 아닌 마치 본능처럼 저절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방전되어 버린 배터리를 다시 충전해야 하듯이, 일상에 지친 내 마음을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있는 동안, 아이들을 꼭 껴안고 있는 동안 충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만약 아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누구를 통해 충전할 수 있을까? 충전 없이 계속 방전만 일어나는 삶은 상상하기도 싫다. 끔찍하다.

어떤 죽음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이 당연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언제나 어렵고 힘겹다. 최근 김기홍 활동가와 변희수 전 하사의 소식 때문에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오랜만에 다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오래 전 노동당 박은지 부 대표의 선택 이후로 꽤 오랜만이긴 하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껨은 자살이 전염되는 사회적 현상이라고 밝혔다. 그 의견에 동의한다. 신기하게도 자살은 전염된다. 나는 청소년기부터 여러 번 자살충동에 시달렸는데, 매번 마지막 행동을 실행할 용기가 없어서 실패했고, 지금까지 그 실패가 반복된 결과를 살아내고 있다.

코로나19 판데믹과 아프리카 돼지 열병과 조류 독감의 유행, 점점 심각하고 다양해지는 전세계의 이상 기후 현상들(기후 위기의 증거들) 때문에 점점 삶이라는 것에 대해 회의가 생길 수 밖에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어차피 단 한번도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늙고 병든 몸으로 사는 것보다는, 사회를 바로 보지 못하고 기득권과 언론이 가르키는 대로만 바라보는 사람들(그토록 경멸했던 사람들)처럼 늙어갈 바에야 날카롭고 예민한 정신을 갖고 있는 상태로 죽고 싶다는 생각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 없다.

다만 아이들이 태어나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지금은 적당한 시기가 아니라는 것은 머리로 알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생각은 변함없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제 힘으로 사회를 견딜 수 있고, 제 삶을 찾아 내 품에서 벗어날 때까지는 아이들 곁에 머물러 줘야 하는 것을 의무라고 여긴다. 그 이후에 대해서는 지금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박은지 부 대표의 선택이 내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의 아이가 아직 어렸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직 어린데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걸 용기라고 해야할지, 절망이라고 해야할지,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마지막 실행을 할 수 있는 어떤 것이 그에게는 있었고, 나에게는 없었다.

지금은 잃어버린 MP3 플레이어 폴더 중 하나에는 다양한 버전의 [글루미 썬데이]가 수십곡 들어있었다. 문득 며칠 연속 오로지 그 곡만 반복해서 들으며 지냈던 어떤 시절들이 떠올랐다. 그 곡을 그렇게 다양한 버전으로 다시 들어보기는 이제 어려울 것 같다. 암튼 다시 그 노래를 들어보고 싶어졌다. 이왕이면 영화 [글루미 썬데이]의 주인공 에리카 마로잔의 목소리로, 헝가리어 버전으로. 독일어 버전은 검색해서 찾았는데, 헝가리어 버전은 못 찾겠다. 오전 동안만이라도 노래를 들으며 가만히 내 속으로 침잠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오후부터는 다시 바빠질테니.


추신) 성폭력으로 공석이 된 서울시장을 선출할 재보궐선거 판이 너무 엉망이라 보고 있기가 괴로워 신경을 끄고 지냈다. 투표소에도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표를 줄 사람이 없어도 투표장에 가서 당당히 무효표를 제출하는 것이 내 권리이자 의무라고 여겼도, 투표권을 얻은 후 단 한번도 투표소에 가지 않은 적은 없었는데, 이제는 귀찮다고, 지쳤다고 생각했다. 부산 시장 자리에 눈이 멀어 가덕도 신공항이라는 미친 선택을 한 민주당과 정권에 대한 분노와 역겨움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괴롭고 힘들었다. 그렇게 노무현도 문재인도 환경운동가의 눈으로 보면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와 별로 다르지 않다고 평소에 떠들고 다닌 내 주장을 증명해줘서 고맙다고 해야할까?

암튼 이제 그 분노를 쏟아낼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신지예 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할 것을 선언했다. 투표소에서 내 한 표를 던지는 것 외에 도움이 된다면 뭐든 그를 돕는 것이 이 국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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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3-06 1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줌으로 강의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줌으로 참가해서 말하는것 만으로도 쑥스러운데 조명이 있는데서 강의까지 하려면 더 힘드셨겠어요.
개학을 해서도 딸아아는 여전히 사강을 듣는데 1년이 지나서인지 이제는 교수님들도 줌강의를 다들 편하게 하시더라구요~~
애들이 맛있게 먹는걸 보고 있는것도,
안기는 것도 참 좋죠^^
그리고 마지막 구절의 선거에 대한 말씀도 공감합니다.**

감은빛 2021-03-17 18:54   좋아요 0 | URL
답이 많이 늦었네요. 페넬로페님.
정말 조명이 너무 환하게 저를 비추고 있어서 처음에는 너무 어색했어요.
여러 모로 공감해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

코로나19 덕분에 교육 분야에 계신 분들은 온라인 강의 전문가가
되어가고 계신 것 같아요.
제 친구도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데,
본인이 지난 학기 온라인 강의 평가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자랑하더라구요.

저는 작년에 중,고등학교에 보낼 강의 영상을 촬영했는데,
나중에 그 영상을 보니 너무 산만해서 보고 있기 힘들더라구요.
교실에서 수업하는 것과 가만히 앉아서 수업하는 건 너무 다른 일이라서
훈련되지 않은 저 같은 사람에게는 힘든 일인 것 같아요.

:Dora 2021-03-06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 첨으로 줌회의를 진행했는데 너무 서툴고 민망해서 창피했습니다 쩔쩔매는 모습을 보이는 게 아무렇지 않은 뻔뻔함을 기르고 싶어요 ><

감은빛 2021-03-17 21:16   좋아요 0 | URL
그렇죠. 도라님.
서툴고 민망하고 창피하구요.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서로 그러니까 더욱 민망하더라구요.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우리가 공부하고 익숙해져야 할 일들이 많아지네요.

samadhi(眞我) 2021-03-06 12: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요가 첫 강의를 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장님이 그냥 맡겨버려서 당황하고 끊임없이 어버버어버버... 하면서. 다음주부터 저도 줌요가 수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오히려 줌이 더 편할 것 같아요^^ 제가 서툴러서 그런지.

언니들이 아는 사람들을 열심히 섭외(?)해와서 다행스레 시작은 할 수 있게 됐네요. 제 요가 수업이 맞으면 계속 듣고 아니면 그만두겠지 하고 그냥 편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사도 초보, 수련생도 초보 괜찮은 조합이라고 봅니다^^ 일방으로 제가 가르친다는 헛된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함께 해나가려 합니다. 함께니까 어떻게든 될거라고 낙관하면서 밀어부칩니다.

아이들을 향한 애틋한 부정(父情)에 뭉클하네요.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해주려고 했는데 도리어 힘을 얻었다는 얘기들이 와닿아요.

감은빛 2021-03-17 21:18   좋아요 0 | URL
와! 요가 첫 강의!!
진아님, 요가 강사님이셨군요. ^^
저 아주 오래 전에 잠시 요가했었는데, 몸이 참 뻣뻣하더라구요.
다시 요가 배우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네요.

진아님의 낙관의 힘을 저도 믿으며 응원합니다!
늘 고맙습니다!

바람돌이 2021-03-06 13: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온라인 강의 참 힘들죠. 기계는 뜻대로 안먹어주고 내 목소리 내 표정 몸짓 다 어색하고 아무도 없는 허공에 떠드는 내가 너무 이상하고... ㅎㅎ 근데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그것도 하다보니 그냥 일상이 되더라구요. 저는 요새 온라인 수업하면서도 평소랑 똑같이 농담하고 욕도하고 딴짓도 하고 할어 다합니다. ㅎㅎ
감은빛님 아이들과의 시간 얘기를 읽으면서는 또 그래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데 이제 애들이 컸으니 정말 얼마 안남았다싶어 저도 맘이 뭉클해지네요.

요즘 신문기사를 보는건 여전히 맘이 싱숭생숭합니다. 안타까운 두분의 죽음에 미얀마에.... 뭔가 할수 있는게 없을까 뒤적뒤적하고 있습니다

감은빛 2021-03-17 21:23   좋아요 1 | URL
와! 이렇게 공감해주시니, 눈물이 다 나려고 하네요. ㅎㅎ
이미 온라인 수업에 익숙해지셔서 소위 말해 도가 튼 단계에 이르셨군요.
부럽기도 하고 왠지 노하우 전수를 부탁드려야 할 것도 같습니다.
작년에 신청하는 학교에 배포하기위해 2교시 강의 내용을
1교시(50분)으로 줄여서 강의 영상을 찍었고,
나중에 각 학교에 배포했다고 들었어요.
사고에서 회복되는 과정에, 아주 나중에 제 강의 영상을 봤는데,
가만히 앉아서 설명하는 것에 익숙지 않아서 너무 산만하더라구요.
제 목소리를 듣는 것도 너무 괴롭고, 여러모로 충격이었습니다.

코로나19가 참 별의별 경험을 다 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 모로 공감해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 바람돌이님. ^^

붕붕툐툐 2021-03-06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급한 상황에서 운전 답답하게 하는 기사님을 만났을 때의 감은빛님 마음이 너무 고스라니 느껴지는데요~ 안을 수 있는 아이들이 있어 너무 좋으시겠다, 부러움을 느낍니다~
강의하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생의 마침표는 언제든 찍을 수 있으니 지금은 그냥 행복하게 살아요!!^^

감은빛 2021-03-17 21:25   좋아요 1 | URL
붕붕툐툐님. 아이를 매일 안을 수 없는 것이 저는 가끔 매우 슬프고 힘들더라구요.
또 아이들이 점점 자랄수록 예전과 다름을 깨닫습니다.
딸들은 자라면서 엄마랑 더 친해지고, 아빠랑은 조금씩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ㅠㅠ

언제나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희선 2021-03-07 02: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모르지만 온라인 강의 처음 할 때는 꽤 힘든가 봐요 지난해에 많은 사람이 그런 말을 하더군요 감은빛 님도 처음이었으니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하셨군요 그렇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감은빛 님이 강의를 잘하셔서 그렇게 부탁했나 봅니다

여러 가지 안 좋은 기분을 아이들 만나고 푸셨군요 그것도 다행입니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한동안 기분이 안 좋았을 거 아니예요

사람은 다 언젠가 죽겠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안타깝기도 합니다 사는 게 더 힘들기는 해요 앞으로도 살 아주 작은 힘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게 다 사라진 사람도 있네요


희선

감은빛 2021-03-17 21:27   좋아요 1 | URL
네, 희선님. 처음은 뭐든 다 조금씩은 힘든 것 같아요.
저는 나름 강의를 잘 하는 편이라고 자신(혹은 자만?)하는데,
막상 온라인 강의가 제 맘대로 잘 되지 않아서 더 당황했어요.

자주 그런 생각을 합니다.
죽을 용기로 살라는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죠.
저는 사람으로서 죽음을 선택할 자유도 분명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성전환수술 이후 강제전역 당했던 변희수 전 하사의 소식을 접했다. 얼마전 녹색당에서 성소수자 운동을 펼치던 김기홍 씨의 부고를 들었던 터라 더욱 참담함을 느낀다. 이 사회가 과연 제대로 된 곳인가? 안타까운 목숨들이 차별로 인해 생을 달리하는 모습이 정상인가?

이틀 연속 야근으로 몸도 무거운데, 마음까지 무너져내린다. 이런 세상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를 바꿔보려고 이렇게 애쓰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아! 오늘 같은 날은 낮술이라도 마시고 뻗어버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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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1-03-04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까울 뿐입니다.................................

2021-03-04 1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