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얼굴


매장에 들어오는 손님들은 주로 젊은 여성 분들이다. 젊지 않은 여성 분들도 가끔 오시지만, 구매하시지 않고 구경만 하고 가시거나, 구경한 것이 미안해서 아주 작은 상품 한 두 개를 사시거나 한다. 젊은 여성 분들은 이런 저런 다양한 상품들을 구매하신다. 남성들이 혼자 들어오는 경우는 드물다. 대체로 여성이 들어오니까 따라 들어오거나, 끌려 들어오거나 한다. 매장에 하루종일 있다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누구에게나 늘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하고, 어떤 질문에도 자세히 대답하려고 애쓴다. 나의 이런 태도 덕분에 잘 몰랐던, 관심 없어서 존재조차 몰랐던 상품들에 흥미를 갖고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들을 본다. 오늘도 벌써 3명의 구경만 하러 들어온 손님들에게 몇 가지 상품을 자세히 설명해드려서 구매하시도록 했다. 대부분 내가 직접 사용해 본 상품들이고 그 품질을 보증할 수 있기에 자신있게 권했다.


평소에는 잘 웃지 않는 편인데, 매장에 손님이 들어오면 일부러 계속 웃는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 중이다. 제로웨이스트 매장이라 무포장 제품이 많고, 바코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포스기에서 해당 제품을 찾아 입력하는 것이 쉽지 않다. 벌써 1년을 넘게 하고 있는데도 가끔 구매 제품이 많으면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나는 웃으며 제품을 찾아 입력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니 양해 부탁 드린다고 말씀드리고 포스기 화면을 열심히 살핀다. 그러면 대부분 네 대답하고 주위에 놓인 제품들을 더 둘러보곤 한다. 아까도 손님 한 분이 한 10개 정도 되는 제품들을 계산대로 가져와서 미리 시간이 좀 걸리니 양해해주십사 말씀을 드렸는데, 순간 너무나도 맑은 목소리와 너무나도 밝은 웃음으로 나를 쳐다보며 대답을 해주셨다. 그리고 계산대 앞을 벗어나지 않고 계속 나를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열심히 포스기 화면을 살피며 제품들을 찾아 입력하느라 바빴지만, 왠지 그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계산을 마치고 금액을 말씀드렸더니 역시나 환하게 웃는 얼굴로 카드를 내밀었다. 


별 것 아닌 웃음 하나가 참 사람 기분을 다르게 만드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손님들은 현금이나 카드를 줄 때, 무표정이거나 딱딱한 표정이거나 가끔은 찡그린 표정이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현금을 세느라 혹은 카드를 찾느라 그런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나 역시 다른 가게에서 계산할 때 어떤 표정이었을까 돌아보게 된다. 나 역시 대부분 무표정이거나 딱딱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 매장에서도 다른 곳에서도 일부러라도 더 많이 웃는 표정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거울을 보면서 웃는 표정을 연습해야겠다.


또 달리기 이야기


요즘 어딜가나 누굴 만나나 계속 달리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출근할 때에도 뛰고, 퇴근할 때에도 뛰고, 외부 회의를 가게 되면 3 킬로미터 이내의 거리는 뛰어서 간다. 가끔 버스 노선이 돌아가는

경우에는 오히려 뛰어가는 것이 버스를 타는 것보다 더 빠르기도 하다. 어제도 저녁에 토론회를 가는 길에 뛰었다. 한 2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라서 10~15분 정도 걸릴 거라고 예상했다. 조금 피곤해서 천천히 뛰려고 했는데, 뛰다 보니 저절로 속력이 붙어서 나도 모르게 빨라지고 있었다. 도착해보니 9분 걸렸다. 중간에 두 번 정도 잠깐씩 걸었는데, 안 쉬고 계속 뛰었으면 조금 더 빨랐으리라.


도착해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는데, 친한 동료가 오더니 "뛰어왔어요?" 하고 묻는다. 나는 "응, 요즘 어디 갈 때마다 뛰어다녀." 라고 대답했더니, "운동 중독이구만." 하고 답이 돌아왔다. 나는 계속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호흡을 가다듬다가 "나랑 같이 달리기 할래?"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다른 선배들도 땀 흘리는 나를 보며 한 마디씩 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저랑 같이 달리기 하실래요?" 물었다. 그들도 모두 고개를 저었다.


엊그제는 약 1.5 킬로미터 거리를 뛰어서 회의를 하러 갔다. 역시 다른 참가자들이 땀을 닦고 있는 나를 보며 한 마디씩 했다. 나는 숨을 고르고 난 후에 "달리기 같이 하실래요?" 라고 묻고, 달리기가 얼마나 좋은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우리 달리기 모임의 60대, 50대 언니들이 처음에는 잘 못 달리다가 이제는 엄청 잘 달린다는 사실을 알렸다. 역시 50대인 그 선배들은 조금은 귀가 솔깃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같이 하겠다는 답을 내놓지는 않았다.


나와 친한 남자 후배들 몇 명에게도 계속 달리기를 권하고 있다. 특히 뽈록 나온 배를 내밀고 다니는 녀석에게 권했더니, 두 번 정도 달리기 모임에 나와서 함께 달렸다. 확실히 한 살이라도 어린 것이 체력이 좋긴 좋구나 싶은 정도로 그 녀석은 처음에 잘 달렸는데, 거리가 점점 늘어나고 시간이 길어질 수록 급격하게 속력이 느려졌다. 내가 1~2 킬로미터 이상을 안 쉬고 계속 달리는 동안 그 친구는 도중에 쳐져서 더 따라오지 못했다.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책 소개를 보니 저자가 천천히 달리기를 강조하더라. 나는 천천히 오래 달리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실 마라톤 같은 장거리 달리기를 원하는 건 아니다. 그저 지금보다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멀리 달리고 싶은 생각 뿐이다. 그리고 나는 속도를 원한다. 천천히 달리는 것이 빨리 달리는 것보다 뭐가 더 좋은 건지 모르겠다. 이 책에 그런 내용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냥 달리기 책이 나온 것 자체는 반갑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3-06-11 2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이 달리기를 하시니 무라카미 하루키가 생각나네요. 매일 뛰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달리기 예찬론자지요.
저는 뛸 자신은 없으나 다행히도 걷는 재미는 알게 되었죠. 처음엔 건강을 위해 매일 한 시간씩 걸었는데 습관이 되고 나니 힘들지 않더라고요. 요즘은 격일로 걸었는데 다시 며칠 전부터 매일 걷기로 바꿨어요. 다행히 걷는 즐거움을 알아서 걷는 운동에 대한 거부감은 없어요. 몇 보 걸었는지 달력에 기록하는 재미도 있답니다. 달리기 마니아 감은빛 님 파이팅! 입니다.^^

감은빛 2023-06-16 19:58   좋아요 1 | URL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를 좋아하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죠.
저는 그 분만큼 글을 잘 쓰지도, 잘 달리지도 못 하지만, 저를 통해 그 분을 떠올리셨다니 영광입니다!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약수터에서 돌로 만든 역기를 들기 시작하면서 운동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긴 시간 근력 운동을 중심으로 했는데, 달리기를 좋아하게 된 건 한참 나중이예요. 근력 운동도 그렇고 달리기도 한 번 중독되면 빠져나오기 힘든 것 같아요.
페크님도 차근차근 달리실 수 있을 거예요. 저랑 한 번 달려보실래요? ㅎㅎ
 

연휴지만 쉬지 못하고


이번 주는 정말 순식간에 휙 지나가버렸다. 뭘 했는지 별로 기억도 안 난다. 아주 중요한 회의가 수요일 저녁에 있어서 화요일은 그 회의 준비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었다. 목요일에는 강의가 있어서 수요일 오후와 목요일 오전은 강의 준비하느라 보냈다. 두 번 정도 발전소 보강공사 현장에 다녀왔다. 회의와 강의와 공사 때문에 한 주가 정말 빨리 지나간 것처럼 느껴진 것 같다.


목요일 저녁인 어제는 달리기 모임을 했다. 멤버 중 두 번째 연장자인 50대 언니께서 지난 주말 바다 마라톤 5km 구간을 완주했다고 해서 다같이 축하해드렸다. 무려 38분의 기록을 세우셨다고 했다. 평소 우리랑 같이 달릴 때에는 그 정도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정말 놀라웠다. 본인 보다 조금 더 앞에 가는 사람을 하나 정해서 그 사람만 따라 갔다고 하셨다. 한 2km까지 한번도 안 쉬고 달렸는데 별로 힘들지 않았다고 하셨다. 마라톤을 꾸준히 하고 있는 선배가 6km를 가볍게 달리면 보통 30분이 걸린다고 들었다. 나는 아직 안 쉬고 한 번에 5km를 달린 적은 없다. 암튼 정말 대단한 성과라고 폭풍 칭찬을 해드렸더니, 이게 다 코치님께서 복식호흡을 잘 가르쳐 주신 덕분입니다라고 다시 나를 추켜 세워주셨다. 아! 이런 칭찬, 너무 좋아!


어제 나는 5km를 달리긴 했다. 중간 중간에 한참씩 쉬긴 했지만. 다른 분들은 대부분 1~2km를 달렸는데, 나는 계속 그 분들보다 2배로 달려서 그 정도 거리를 달렸다. 조금씩 달리기의 즐거움에 중독되어 가고 있다고 하시며, 모임에 안 빠지고 꼭 오시는 모습을 보는 것이 무척 즐겁기도 하고 보람을 느낀다. 다양한 스트레칭 방법과 보조 운동들을 가르쳐 드리면 잘 따라하는 모습도 좋다. 다들 나를 코치님 혹은 선생님이라 부르며 존중해주셔서 더욱 기분이 좋다. 지금은 지역 의료생협의 운동 프로그램에 참가하느라 이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프로그램이 끝나도 이 모임을 계속 이어가자고 제안했고, 대다수가 계속 하겠다고 답하셨다. 그리고 얼마 전 있었던 그 바다 마라톤에 내년에는 함께 참여하자고 했다. 앞으로 1년 동안 꾸준히 달리면 내년에는 5km가 아니라 10km 코스도 완주가 가능하리라. 나는 올해 연말까지는 매주 목요일 8시 마다 매장 문을 닫고 달리기를 계속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분들과 매주 달리기의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꼈다. 원래도 이런저런 관계로 잘 아는 사이였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친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분들이었는데, 어제까지 6주 연속 달리기 모임을 하면서 이제는 제법 친해진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 어제는 아까 그 50대 언니께서 남편도 데리고 오셨다. 몸이 어디가 불편하신지 잘 달리시지는 못하셨는데, 쉬고 또 달리기를 반복할 때마다 점점 좋아지셨다. 다음에도 계속 함께 오시라고 권해드렸다. 아마 2~3주만 꾸준히 나오셔도 훨씬 나아지실 것이다.


내일부터 3일 연휴인데, 내일 하루 밖에 쉬지 못한다. 일요일에는 행사가 있어서 나가봐야 하고, 월요일에는 화요일에 예정된 회의 자료 준비 때문에 사무실에 나와서 일을 해야 한다. 게다가 화요일까지 넘기기로 한 기획안도 있어서 그 작업도 해야 하고. 그나마 일요일 오전에 행사 준비를 다른 분들이 맡아주셔서 오전에 늦잠을 자고 오후에 나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6월에 휴일이 많은데 대부분 휴일마다 뭔가 행사가 생기고 있다. 주말마다 못 쉬는 날들이 많아서 체력적으로 부담이 될 것 같아 걱정이다. 주말에 일하면 평일에 대체휴무를 써야하는데, 평일은 또 평일대로 얼마나 바쁘고 일정이 많은지. 대체 휴무일을 정하기가 어렵다.


칭찬들


목요일에 내 강의를 들으신 분들 중 한 분이 나가시면서 다른 동네에서 6월에 할 예정인 강의도 신청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때 또 봐요 하신다. 그 분을 위해서라도 강의 준비를 잘 해야겠다고 생각해본다. 지난 번에 포럼 사회자를 떠맡아서 진행을 했는데, 그날 내 진행이 좀 인상적이었나보다. 사실 그 날의 포럼 주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서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에라 모르겠다 그냥 흘러가는대로 해보자고 생각했었다. 다만, 평소의 나 보다 좀 텐션을 올려서 좀 많이 활발한 나로 모드를 바꿨다. 목소리에도 일부러 힘을 주고 말했다. 토론회 같은 행사의 진행을 종종 맡아서 진행하다보니 매끄럽게 진행하면서 참가자들에게 골고루 발언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나름의 원칙을 갖고 있었고, 그 원칙을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참가자들의 발언들이 질문인지, 의견인지 등을 잘 구분하고 적절하게 순서와 시간 분배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강의 할 때는 정말 시간을 잘 못 지키는 편인데, 이런 진행을 맡으면 시간을 잘 지키려고 노력한다. 진행자의 최대 미덕은 정해진 시간을 지키는 것이다. 암튼 이런저런 원칙들을 잘 지키려고 노력한 덕분에 그날 참가자들에게 진행을 잘 한다는 인상을 준 것이다. 그 다음부터 뭐든 행사가 생기면 죄다 내게 진행을 맡기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버렸다. 도망 다녀야겠다.


이런저런 사소한 칭찬들이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 이 지긋지긋한 재미없는 삶에서 그나마 저런 칭찬들이 없었다면 얼마나 더 답답한 삶을 살았을 것인가.


이 글을 쓰느라 마감 시간 이후에도 한 시간 정도 매장을 더 열어두었더니 방금 모녀 지간의 손님들이 다녀가셨다. 처음엔 구경만 하려고 했다가 이것저것 사기 시작했고, 딸이 자꾸만 새로운 물건들에 관심을 두면 내가 열심히 장점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설명하면 결국 엄마가 그래 사라 하는 방식으로 여러 상품들을 팔았다. 난 역시 뭔가 설명하는 일은 참 잘 한단 말야. 내가 나 자신에게도 칭찬 한 번 더 해준다. 이제 가게 문 닫고 집에 가야겠다. 운동 간단히 하고 저녁 먹어야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페크pek0501 2023-05-26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휴를 다 못 쉬는 건 아쉽네요. 직장인들은 쉬는 맛에 다니는 건데..ㅋㅋ
50대 언니라니깐 웃깁니다. 50대에도 언니 소리 들으면 기분 좋을 것 같아요.
기대에 부응하려면 강의 준비 잘하셔야겠네요. 무심타법, 마음을 비우고 즐기면서 강의하시면
좋은 강의가 될 것 같습니다. 하시던 대로만 하시면 될 것 같아요. ^^

감은빛 2023-06-02 18:43   좋아요 0 | URL
옛날에는 남녀 관계없이 다 언니라고 불렀다죠.
직접 입으로 부르기는 조금 민망하긴 합니다만, 글에서는 언니라고 쓰면 더 친근감 있게 느껴져서 좋은 것 같아요.
우리 달리기 모임의 최고 연장자는 60대 언니예요.

강의는 언제나 즐겁습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더 최신 소식들, 더 정확한 내용들을 담으려고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이 문제입니다만,
이번에는 또 어떤 분들을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생각하는 것이 설레이기도 하고 좋아요.

transient-guest 2023-05-27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리기 좋죠 ㅎㅎ 저도 다시 연습해서 이번엔 그간 벼르던 Octoberfest mini 마라톤 가보고 싶네요

감은빛 2023-06-02 18:45   좋아요 1 | URL
달리기 자체는 정말 너무나도 좋은데,
오래 달리는 일은 또 너무나도 힘든 일이네요.
저는 지금은 딱 5~6 킬로미터 까지가 좋은 것 같아요.
꾸준히 달리다보면 점점 거리가 늘어나겠지요.
 

7년 전 오늘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 있었던 일들을 보니 지인의 아이가 아파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피가 많이 부족하다고 하여 지정 헌혈을 했던 일이 있었다. 기억 못하고 있었는데, 페이스북이 알려줘서 잠시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헌혈 요청은 내 혈액형을 알고 있는 당시 아내로부터 들었다. 헌혈 요청일보다 한 삼사일 전이었다. 그 삼사일 동안 술, 담배를 끊고 건강한 혈액을 아이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그 당시는 정말 거의 매일 술을 마시던 시절이어서 그렇게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면 아이에게 건강하지 못한 피를 전할 뻔했다. 나는 그 요청을 받자마자 헌혈을 하는 날까지 술과 담배를 끊었고, 건강에 좋은 음식들을 챙겨먹으며 얌전히 지냈다. 헌혈은 자주 했기 때문에 오히려 별 일 아니었다. 지정 헌혈을 마치고 나중에 지인으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그 지인과 잘 알고 지내는 동네 선배들 몇 명에게 칭찬도 받았다. 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당연히 해야할 일이었기에 그 칭찬들은 오히려 민망했다.


그 지인이 나중에 페이스북에 자신의 아이의 몸 속에 여러 고마운 분들의 피가 돌고 있다며, 나를 포함해 지정 헌혈에 참여해 준 여러 사람들을 나열했다. 그 글을 읽고 나니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내가 다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지금 건강히 잘 자라고 있겠지? 최근 그 지인과 소통할 기회가 없어서 물어보지 못했네. 다음에 연락할 기회가 생기면 물어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아니, 내가 일부러 물어보면 그 지인에게 또 미안함과 고마움을 상기시키는 일이 될테니 그냥 궁금해도 물어보지 말아야겠다 싶다. 뭐 아이가 다시 아픈 일이 생기면 그 소식이 내게도 전해지겠지.


최근 친하게 지내는 선배가 암 진단을 받고 큰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또 친하지는 않지만, 한때 여러 번 같이 활동한 적이 있던 후배 활동가 한 명이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아마 제일 가슴 아프고 슬픈 소식은 누군가가 크게 다치거나 아픈 소식일 것이다. 이런 슬픈 소식이 연달아 들려오니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다행히 암 진단을 받았던 선배는 수술을 잘 마쳤고, 무사히 퇴원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 사고로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후배 소식은 그 후로는 듣지 못했다. 만약 상황이 더 나빠져 생을 달리하게 된다면 아마 내게도 소식이 전해지겠지. 지금은 궁금해하지 말자. 그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여기고 그가 잘 회복하기를 바라자.


저녁 운동과 밤 운동


어제는 아침부터 발목이 아팠다.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관절 통증. 여기 저기 온 몸의 관절들을 돌아다니며 언제 어디가 아플지 예측할 수 없는 통증. 벌써 몇 년째인지 기억하기도 어려운 지긋지긋한 통증이었다. 그렇게 하루나 이틀 아프다가 또 금방 사라지는 통증이었다. 관절 통증 자체는 익숙하지만, 문제는 당장 당일은 움직이기가 어렵고 불편하다는 점이다. 하필이면 일주일에 한 번 달리기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내가 그 모임을 이끄는 역할인데, 내가 달리기를 못하는 경우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아침부터 이런 저런 방법을 동원해 발목 마사지를 하고 주위 근육을 풀어줬다. 낮에 좀 걸어야 할 일이 생겼는데, 무리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저녁이 되어 다시 상태를 냉정하게 살펴보니 어쩌면 달리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무리하지 않고 조금 천천히 달리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발목 보호대의 힘을 빌리거나 테이핑을 하면 될 것 같았다. 후배 활동가에게 매장을 부탁하고 집에 가서 발목 보호대를 차고 왔다. 그리고 저녁 8시가 되어 매장 문을 닫고 달리기 모임 장소로 이동했다.


발목 보호대를 꽉 조이고, 신발 끈도 꽉 조여 매고 참가자들과 준비운동을 했다. 이번에는 하체 힘을 기르는 간단한 맨몸 운동 두어가지를 알려주고 가볍게 몇 회씩 함께 했다. 다들 입으로는 신음소리를 내며 달리기 하기 전에 벌써 힘들다며 투덜거렸지만, 잘 따라했다. 그리고 달리기를 했다. 참가자들 중 가장 연장자인 60대 언니는 처음 몇 초는 잘 달렸지만, 금방 지쳐서 속도가 떨어졌다. 다른 참가자들은 다들 자세도 괜찮았고, 복식호흡도 잘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처음에는 발목이 신경쓰여 제대로 뛰지 못했다. 휴식 시간에 좀 쉬고 두 번째로 달리기를 할 때부터는 달리면서 발목이 괜찮은 것 같았다. 만약 계속 통증이 있었다면 그렇게 달리지 못했겠지. 그때부터 나는 마치 아프지 않은 날처럼 그러니까 평소처럼 달리기를 했다. 속도도 내보고 남들보다 두 배 정도 더 긴 거리를 달렸다. 괜찮았다. 꽉 조여놓은 보호대 때문에 좀 답답하기는 했지만, 무리했다는 느낌은 없었다. 다시 휴식을 취하고 세 번째 달리기를 했다. 이번에도 달리면서 다시 발목의 상태를 체크했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세 번째 달리기까지 마치고 신발을 벗고, 보호대도 벗고 발목의 상태를 살폈다. 신기하게도 통증이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아침에 느낀 통증이 100이었다면 달리기를 마친 상태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10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이 조금 넘게 달리기를 마치고 다들 헤어졌다. 나는 한 가지 더 중요한 일정이 남아있었다. 바로 당근 거래였다. 당근을 깔고 세가지 키워드 알람 등록을 했었다. '덤벨', '케틀벨', '불가리안 백' 이렇게 세 개였다. 케틀벨과 불가리안 백은 알림이 거의 안 왔는데, 덤벨은 알림이 자주 왔다. 그 중 3가지 무게의 덤벨 한 쌍씩 세 쌍과 덤벨 거치대까지 한번에 판매하는 사람이 잇었다. 딱 보자마자 욕심이 났다. 물론 그 덤벨들은 3kg, 5kg, 6kg 이렇게 낮은 무게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내게는 불피요한 것들이었다. 우리 집엔 이미 원판을 끼우는 덤벨 바가 있어서 무게를 늘리기 위한 원판들이 더 필요할 뿐이었다.


다른 물건에는 욕심이 없는데, 책과 운동기구 욕심은 왜 이렇게 강한 걸까? 나는 그 덤벨세트와 거치대를 누군가에게 선물하거나 아니면 사무실에라도 두려고 마음 먹고 구매하겠다고 말을 걸었다. 그래서 어제 밤 10시에 만나기로 했다. 마침 그가 지정한 장소는 내가 덤벨을 선물할까 생각했던 후배 집과 가까웠다. 그런데 그 후배는 최근 5kg 덤벨 한 쌍을 이미 샀다고 자신은 필요 없다고 답이 왔다. 그럼 사무실에 갖다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약속 장소에서 사무실까지는 걸어서 약 15분 거리였다. 무게를 한 번 계산해봤다. 3*2=6, 5*2=10, 6*2=12, 6+10+12=28 일단 덤벨 무게만 28kg 이었다. 거치대는 무게를 알 수 없지만, 쇠덩어리로 되어 있으니 가볍지는 않을 것이다. 한 3~4kg쯤 되지 않을까? 그럼 31~32kg 정도 되리라. 그 정도면 걸어서 옮기기에는 좀 무거운 무게였다. 그 사람이 어디 가방이나 상자에 담아 줄 리도 없어서 들고 옮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아까 그 후배가 최근에 차를 구매했고, 그 후배가 부탁해서 운전할 때 옆에 타고 조언을 해 준 적도 있었다. 후배에게 차를 빌려달라고 했더니, 본인이 운전해서 사무실까지 실어 주겠다고 했다. 아! 드디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밤 10시 약속이었는데, 55분쯤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내가 아주 잠시 기다리니 반대쪽에서 바퀴달린 손수레를 끌고 한 여성이 나타났다. 그 수레에 덤벨 3쌍이 걸린 거치대를 담고 있었다. 어떻게 가져가실거냐고 약간은 걱정 섞인 듯한 채팅을 주고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물건을 받고 값을 치루고 나니 그 분은 다시 차는 어디 있냐고 어떻게 옮기실 거냐고 묻는다. 친구가 차로 옮겨줄 거라고 저 길 건너편으로 가져가서 기다리면 된다고 말했더니, 건너펀까지 어떻게 옮길 것인지를 다시 걱정했다. 나는 씩 웃으며 걱정 마시라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실제로 들어보기 전까지 나는 자신만만했다. 겨우 30 남짓 정도 되는 무게 밖에 안 되는 걸! 그러나 손잡이도 없고 마땅히 잡을 공간이 없는 거치대를 이리 저리 들어보려다가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네 싶었다. 바닥 쪽에 가로대가 하나 있길래 거기를 오른손으로 잡고, 제일 위쪽을 왼손으 받치고 들어올렸다. 음, 이렇게 하면 되네. 그러고 걷기 시작했다. 자세가 거치대를 살짝 눕혀서 걸을 수 밖에 없었는데, 몇 걸음 걷지 않아서 덤벨들이 아래로 쏠리면서 자꾸만 쏟아지려고 했다. 걸으면서 쏠리지 않게 바로 잡으려고 해보다가 도리어 팔로 덤벨을 건드렸더니 한쪽이 툭 빠져버렸다. 결국 바닥에 내려놓고 덤벨을 제대로 끼우고 잠시 쉬었다. 음, 몇 걸음 안 걸었는데, 엄청 힘들었다. 생각보다 무겁구나.


이번에는 아예 바닥 양쪽 끝 다리를 들고 올렸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이 흘렀다. 가까운 교차로 횡단보도까지 거리가 유난히 멀게만 느껴졌다. 지하철 역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나를 스쳐지나가며 흘끔 흘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부지런히 다리를 놀려 겨우 횡단보다 앞 까지 가서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도로를 건너고 조금만 더 가면 후배네 주차장이었다. 아! 전화! 나는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동안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내려오라고 전했다. 드디어 신호가 바뀌고 다시 덤벨 거치대의 양쪽 다리를 들어올렸다. 아까 자신있게 출발했던 때와는 달리 엄청 무겁게 느껴졌다. 횡단보도를 빠르게 건너는데, 건너편에서 다가오는 여러 사람들의 눈길이 모두 내게로 쏠렸다. 그 중 내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간 젊은 여성 두 분의 대화가 들렸다. "저 사람 좀 봐. 엄청 무거울 것 같은데, 저런 걸 저렇게 들고 가네." 낯선 여성의 관심 덕분에 순간적으로 다시 힘이 났다. 팔에 힘을 주어 자세를 고쳐 잡고 다시 열심히 걸었다. 




나중에 지도 앱으로 거리를 재보니 약 170 미터 정도를 걸었더라. 약 32 킬로그램을 들고 170 미터를 걸었을 뿐인데 상의가 완전히 땀으로 젖었다. 이미 아까 달리기를 하면서 젖었다가 다시 말랐던 옷인데 또 젖은 것이다. 주차장 바닥에 조심스레 물건을 내려놓고 후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며 심호흡을 했다. 


차에 싣기 전에 혼자 한 번 들어보려던 후배는 놀란 표정으로 이걸 어떻게 들고 왔냐고 물었다. 나는 씩 웃으며 이 정도는 별거 아니지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솔직하게 죽는 줄 알았다고 답했다.


드디어 사무실에 덤벨이 생겼다. 이제 일하다 졸리거나 스트레스가 쌓이면 담배 피우러 나가지 말고 운동을 해야겠다. 다만 좁디 좁은 사무실에 제대로 된 운동 공간이 없는 건 문제다. 어디서 운동을 해야 할지는 좀 고민해봐야겠다.


오늘도 저녁에 달리기를 하기로 했다. 달리기 하러 가기 전에 덤벨 운동을 간단히 하고 가야지. 운동 다 마치고 집에 가서는 케틀벨과 바벨을 들며 놀아야지. 내일은 샌드백과 불가리안 백하고도 좀 놀아줘야겠지. 아, 철봉하고도 놀아줘야겠네. 바쁘구나 바빠.


글을 마치려다가 다시 깨달았다. 나 당근마켓에서 덤벨 세트를 하나 더 구매하기로 했었다. 이번에는 우리 집에 있는 것과 같이 바에 원판을 끼우는 형태의 덤벨이고 원판이 총 20개에 바는 6개인데 가격은 정말 저렴했다. 물론 원판들이 다 무게가 낮아서 조금 아쉽기는 했다. 여기는 일단 거리가 제법 멀고 부피가 커서 무조건 차로 옮겨야 한다. 또 차를 빌려야겠구나. 아! 운동기구 욕심은 정말 끝이 없구나. 이제 당근마켓을 지워버려야겠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ransient-guest 2023-05-20 0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상은 만성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셔야 해요. 저도 늘 어딘가 아픈 곳이 있어서 항상 신경을 씁니다. 특히 특정한 부위가 아픈 상태에서 운동을 하거나 움직이게 되면 그 아픈 곳을 대신해서 힘을 주는 곳이 생겨서 자세가 틀어지거나 다른 부상으로 갈 수 있어서 항상 신경을 씁니다. 32kg이 무게도 그렇지만 들기 어렵게 생긴 물건이면 몸 전체를 쓰지 못하고 팔이나 어깨 힘만으로 들고 버티며 움직이셨을 테니 엄청 힘이 드렸을 겁니다. ㅎㅎ 그래서 들고 걷고 당기고 밀고 하면 운동은 다 한 것처럼 말하나 봅니다.ㅎㅎㅎ

감은빛 2023-05-26 20:10   좋아요 0 | URL
운동하는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근손실이고, 두 번째가 부상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저도 인대나 관절 쪽에 자주 부상을 입었어요. 조심 또 조심해도 쉽지가 않네요.

정말 말씀처럼 들기가 어렵게 생겨서 훨씬 더 무겁게 느껴졌어요. 사실 덤벨들 무게가 다 낮아서 저에게는 그닥 유용하지 않은데, 사무실 후배에게 가끔씩 운동 동작들 알려주고 있어요. ㅎㅎ

꼬마요정 2023-05-21 0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깨랑 날개랑 팔뚝이랑 등등 괜찮으신가요? 근육통이 장난 아닐 것 같습니다. 낯선 여인의 관심이 힘을 나게 했네요 ㅎㅎ

운동 사랑은 좋은 것 같아요. 이제 담배 피우러 안 가시고 덤벨 드실 거잖아요^^ 부상 조심하면서 오래도록 즐겁게 운동해요, 우리 ㅎㅎㅎ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은빛 2023-05-26 20:12   좋아요 0 | URL
꼬마용정님. 저 근육통 안 생겼어요. 평소에도 그 정도 운동은 늘 하는 편이니까요. ㅎㅎ

일하다 스트레스 받으니 덤벨은 눈에 안 들어오고 계속 담배 생각만 나네요. 그래도 요즘 달리기 하느라 담배를 많이 줄이긴 했어요. ㅎㅎ

꼬마요정님도 열심히 운동하시니 서로 좋은 운동 친구가 되었네요. 고맙습니다! ^^

페크pek0501 2023-05-21 1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저는 팔에 테니스엘보가 있어서 무거운 것을 들 수가 없어요. 어느 날 철봉을 하다가 악화가 되어서 그다음부턴 팔에 신경을 많이 써서 무리하지 않으려고 한답니다. 팔이 심하게 아픈 날엔
냉장고 문을 열기도 부담스럽답니다. 테니스 선수들이 잘 걸려서 병명이 그렇다는군요.
아무쪼록 조심하시면서 운동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운동 마니아 멋있습니다!!!

감은빛 2023-05-26 20:18   좋아요 0 | URL
어휴, 팔굼치 통증이군요. 엄청 불편하고 힘드시겠어요.
저도 며칠 전에 갑자기 팔굼치가 아팠어요.
한 몇 시간 아프다가 다시 말끔하게 나았지만요.

관절이 아프고 불편할때는 주위 근육과 인대를 튼튼하게 만들어줘야 해요.
재활운동이 그런 역할을 해 주는데, 한 번 찾아보세요.
꼭 괜찮아지시길 바랍니다.
 

518


아침에 북플에서 지난 오늘 쓴 글을 찾아보니 518 광주 이야기를 짧게 쓴 글이 있었다. 그래. 아주 오래 전이었지만, 망월동 묘역을 다녀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광주 학살 당시 상무대 영창이 있던 곳에 만들어진 518 자유공원을 꼼꼼히 둘러봤던 기억도 떠올리면서 잠시 묵념을 하고 하루를 시작했다.


학살자 전두환은 죽고 없지만, 그 손자인 전우원 씨는 사죄를 위해 광주로 향했다. 전우원씨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전직 대통령의 손자로서 온갖 부와 특권을 누리다가 저렇게 행동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을 시작하게 계기는 대부분 광주 민주화 투쟁일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북한군 침투설 같은 헛소리를 지껄이는 정치인들이 고개 들고 다닐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다. 하긴 민주당이라는 이름을 쓰는 이들이 몇 번이나 정권을 잡고서도 국가보안법 하나 손대지 못한 나라이니까. 그 민주당이라는 집단의 정치인들 역시도 사실은 한때 누리 어쩌고 당이었다가 지금 국민 어쩌고 당으로 바뀐 그 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광주에서 목숨을 바쳐 민주화를 외쳤던 시민들을 생각하면 참 한숨 밖에 나오지 않는 현실이다.


도리도리 검색 차단


페이스북을 보다가 누군가 네이버에서 '도리도리' 이미지 검색이 안 된다는 소식을 올린 것을 보았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네이버에 접속해서 도리도리 라는 단어를 입력하고 이미지 탭을 눌렀다. 오! 놀랍게도 아래와 같은 문구 안내가 뜨면서 검색 결과를 보여주지 않았다. "'도리도리' 키워드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검색결과를 볼 수 없습니다. 명예훼손, 저작권침해, 개인정보 유출 등 권리 침해 신고된 키워드. 불법정보 및 청소년 유해정보가 노출될 우려가 있는 키워드" 와! 정말 윤석열 정권과 네이버 참 대단하다! 이런 짓까지 할 줄이야. 참 신기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새삼 깨닫는다.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를 오염수라 부르지 못하고


언론사 기사를 보다가 우리나라 정부가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를 이제 '오염 처리수'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그게 정확한 명칭이라고 발표했다는 소식을 읽었다. 역시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을 보여주는 것이 정치인들이라는 집단이다. 친일 혹은 숭일이라고 부를만한 정권과 대통령 덕분에 별의 별 꼴을 다 보는구나.


달리기의 효능


다시 꾸준히 달리기를 한 지 1달 반 정도 지났다. 달리기 모임도 잘 운영되고 있다. 개인 사정으로 종종 빠지는 분들이 계시지만, 사전 신청했던 멤버는 아니지만, 한 번 달려보고 싶어서 객원멤버로 오시는 분들이 매번 계셔서 모임 참가자는 계속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참가자들의 달리기 실력도 조금씩 늘고 있다. 물론 눈에 띄게 실력이 증가했다고 할 수준은 아니다. 당연히 노력하는 만큼 실력도 좋아지는 것인데, 매주 1회 이상 달리기라고 원칙을 정했지만, 주 2회는 달려야 그래도 다리에 힘도 붙고, 폐활량도 좋아진다고 여러 차례 말하곤 하는데도 대부분 바쁘신 관계로 실천하지 못하고 계시다. 지켜보는 나로서는 조금은 답답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잘 하고 계시다고, 많이 좋아졌다고 폭풍 칭찬을 해줘야 할 시기라 어떻게든 칭찬할 거리를 찾고 있다.


나는 거의 매일 하루에 2~3킬로미터 이상 달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저 1달 반 동안 주 4~5회 이상 달렸다. 좀 많이 달린 날에는 5킬로미터 정도까지 달렸다. 꾸준한 달리기 덕분에 다시 운동에 재미가 붙었다. 꽤 오래 의무 방어전 수준의 가벼운 운동만 하다가 다시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지 1달 정도 되었다. 달리기와 함께 중량 운동을 하니 시너지 효과가 생겨 빠른 속도로 근육이 붙었고, 몸이 좋아졌다. 며칠 전에는 샤워를 하다가 이 정도면 다시 예전처럼 내 몸이 참 예쁘다고 느낄 수준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조금만 더 하다보면 교통사고 이전까지는 안 되더라도 뭐 나쁘지 않네 정도의 몸매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꾸준한 달리기의 확실한 효과 하나는 힙업이다. 거울을 보다가 엉덩이 근육이 눈에 확 띈다는 점을 깨달았다. 확실히 빨리 달리기 위해서는 허벅지나 종아리 보다는 엉덩이 근육이 더 많이 일해야 한다. 별도의 하체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아도 달리기만으로도 이렇게 엉덩이 근육이 발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군살 특히 뱃살이 서서히 깎여가고 있다. 식단 조절을 전혀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재작년 정도까지는 먹는 양이 확 줄어서 운동을 굳이 하지 않아도 뱃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는데, 스트레스를 이유로 자꾸만 폭식을 하다보니 어느새 다시 뱃살이 나왔다. 물론 어떻게든 뱃살을 집어넣어 보려고 노력해서 짧은 기간 날씬한 허리를 유지하다가도 또 금방 몸매가 망가지곤 했다. 내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이기지는 못한다. 그래서 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달리기와 중량 운동을 함께 해나가는 덕분에 빠른 속도로 뱃살이 줄어들었다.


유산소와 무산소


흔히 보디빌딩이라고 부르는 헬스클럽의 기구들을 갖고 고립운동을 주로 하는 사람들에게 운동의 종류를 말하라고 한다면 상체, 하체, 코어 이렇게 분류할 것이다. 더 전문적으로 나누는 사람들은 등, 어깨, 가슴, 허벅지, 엉덩이 등으로 나누겠지. 뭐 이것도 편견이거나 선입견 일 수 있겠지만. 여전히 분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많더라. 꼭 구분짓기를 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나는 운동의 종류라고 떠올리는 순간 곧바로 유산소와 무산소 이렇게 두 종류만 떠오른다. 그리고 흔히 알려진 것처럼 달리기나 자전거는 유산소이고, 대다수의 중량 운동은 무산소라고 구분 짓지는 않는다. 달리기도 단거리는 무산소 운동이다. 100미터 선수들은 결승점에 도달하기까지 호흡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전거도 피치를 올리기 위해 빠르게 패달을 밟으면 무산소 운동이 된다. 나는 달리기를 하면서 대개는 내 호흡이 감당할 수 있는 일정한 속도로 달리지만, 도중에 10~20초 가량은 내가 낼 수 있는 최대 속력으로 달린다. 전력질주를 하는 순간은 저절로 호흡이 가빠지는데, 일부러 숨을 참고 최대 속력을 내보기도 한다. 반면에 중량 운동을 낮은 중량으로 천천히 운동하면 그건 유산소 운동이 된다. 저중량 고반복을 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다. 내가 좋아하는 케틀벨 스윙 같은 운동이 그 좋은 예가 되겠다. 낮은 무게의 케틀벨로 50회나 100회씩 스윙을 하면 그건 유산소 운동이지만, 높은 무게로 10회 미만으로 하면 그건 무산소 운동이 된다.


지금 내 달리기는 80%는 유산소 운동이고 나머지 20% 정도는 무산소 운동이다. 그리고 나머지 운동들 그러니까 케틀벨, 바벨, 덤벨, 불가리안 백 등의 운동들은 대부분 무산소 운동으로 한다. 앞서 언급한 케틀벨 스윙 정도만 유산소에 가깝게 하고 있다. 달리기를 하지 않고 중량 운동만 하던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시너지 효과를 요즘 느끼고 있어서, 이 유산소와 무산소 운동의 조화가 운동 효과가 좋구나 하는 걸 처음으로 깨닫는다.


이래서 삶은 그래도 살아볼 만 하구나 생각해본다. 이 나이에도 처음으로 느끼고 깨닫게 되는 것들이 생기니 말이다. 아직도 내가 모르는 어떤 재미난 것들이 많이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그런 것들을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이 재미없고 지겨운 세상을 버텨낼 원동력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



활동가 인터뷰집















오늘 이 책을 받았다. 아는 선배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낸 책인데, 북펀딩 소식을 보고 참여했었다. 책을 받고 보니 표지가 참 예쁘게 잘 나왔다. 아직 내용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 책 날개에 있는 인터뷰이들을 보니 내가 직접 아는 활동가가 없는 점은 좀 아쉬웠다. 다행히 인맥을 통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2명 있었다. 재작년이었던가 내가 인터뷰이로 참여했던 활동가 인터뷰집도 단행본으로 나왔었는데, 그때는 인터뷰어가 활동 경력이 긴 사람이기도 했고, 주 활동 분야가 달라서 이 책과는 구성이 완전히 다르다. 암튼 재밌게 읽고 나중에 소개 글도 따로 써야겠다.


활동가라는 직업에 대해 할 말이 좀 많은데, 오늘은 이만 줄이고 그 내용은 나중에 책 소개할 때 버무려 넣어야겠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3-05-19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다락방이 좋아합니다. ㅎㅎ

감은빛 2023-05-19 19:29   좋아요 0 | URL
늘 운동에 대한 글을 좋아해주시니 더 자주 올려야겠어요. ㅎㅎ
방금도 좋아하실만한 글을 하나 썼습니다.

transient-guest 2023-05-20 0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명박근혜때 그렇게 많은 유사전문가들 어용학자들 폴리페서들이 설쳤었는데 조금 잠잠해지더니 명분도 실리도 도덕도 실력도 없는 정권이 행정부를 장악하니 다시 가짜들이 돈을 받고 명분을 팔러 다니네요.

감은빛 2023-05-26 20:06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네요. 뉴스 보기가 너무 싫어요!!

페크pek0501 2023-05-21 14: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신 건강을 위해 취미로 하는 ‘독서‘와 몸 건강을 위한 ‘운동‘- 독서와 운동을 꾸준히 한다면
저로선 잘 사는 삶 같습니다. 파이팅!!!

감은빛 2023-05-26 20:07   좋아요 0 | URL
오! 페크님의 말씀을 보니 저는 몸과 정신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군요.
고맙습니다! ^^
 
저주토끼 - 개정판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차갑고 서늘하고 섬뜩한 10개의 단편.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수식이 없었어도 제목 때문에 궁금해서 펼쳐봤을 것 같다. 맨 뒤 작가의 말을 보면 이 책은 부커상을 받은 후에 다시 낸 개정판이다. [저주토끼]는 2017년 출간되었다가 와우북페스티벌을 통해 만난 안톤 허 라는 번역가에 의해 번역되어 해외 출판되었고, 그 덕분에 해외에서 큰 상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10편의 단편은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역시 표제작인 [저주토끼]가 가장 좋았다. 그 다음은 [흉터]인데, 이 책에 실인 단편들 중 가장 분량이 많다. 단편의 미덕은 짧은 이야기 속에 실린 깊은 주제의식이거나 반전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단편의 단점은 짧은 이야기로 인한 정보 부족이나 결말의 아쉬움이다. 단편이라는 형식 자체가 장점이자 단점인 것. [흉터]는 다른 이야기들에 비해 분량이 많아서 이야기의 완성도가 좀 더 높았던 것이 아닐까. 다른 이야기들은 그 나름으로 괜찮지만, 상대적으로 조금 아쉬운 측면도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뛰어난 단편이나 중편을 읽어도 그 자체의 완성도를 인정하더라도 늘 아쉬움을 느끼는 편인 듯하다.

작가의 말에도 등장하는 환상호러 라는 장르에 대해 잠깐 생각해본다. 환상이라는 단어는 여러 느낌을 주는데, 내게는 엉뚱한 상상이나 기상천외한 이야기 같은 느낌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호러는 당연히 무서운 이야기. 그게 피 튀기는 무서움이면, 살짝 거부감이 들고 유령이나 미스터리 같은 쪽으로 가면 좀 더 끌리기는 한다. 어쨌거나 추리물이나 SF 뿐 아니라 환상호러 라는 장르에도 확 끌리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정보라 라는 작가를 앞으로 잘 기억해두고 더 많이 읽어야겠다.

아래는 각 단편들에 대한 개인적인 단상들이다.

저주토끼: 악행, 인과응보, 안개, 보이지 않는 두려움, 스산함, 불특정 다수를 향한 공격, 불행, 저주가 우연히 목표를 잘 찾아가서 다행

머리: 불쾌감, 섬뜩함, 생리, 여성, 기괴함, 일단 변기라는 물건 때문에 읽는 내내 계속 불쾌한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었음, 결말은 조금 뻔한 느낌

차가운 손가락: 신선함, 답답함, 기억상실, 시각 차이, 입장 차이, 재미있었는데 조금 더 정보를 주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

몸하다: 미지에 대한 공포, 막연함, 사랑과 집착, 허무함

안녕 내사랑: 많이 봤을 법한 이야기, 집착, 동기화, 짧은 이야기의 한계

덫: 잔인함, 인과응보, 피, 친족 강간, 돈에 눈이 멀어버린 인간, 어쩌면 현대인 대다수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흉터: 시작 부분은 마치 무협지를 읽는 느낌이었음, 그것에 대한 정보를 마지막까지 통제한 것은 좋았으나 끝까지 시원하게 밝히지 않은 정보들은 아쉬움, 결말 아쉬움, 방황하고 복수하는 내용까지는 정말 좋았음, 앞의 작품들과 다른 결과 느낌, 그러니까 이게 호러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음, 피가 낭자해서 호러인가?

즐거운 나의 집: 왜 꼭 무능한 남편들은 돈 사고에 바람까지 피우는 걸까? 현실고증인가? 확증편향인가? 요즘 말로 고구마 백 개 먹은 기분, 작품 내에서는 (역시 요즘 말로)사이다 결말인데, 정작 나는 별로 사이다 라는 느낌이 안 들었음, 초반 부터 아이의 존재를 좀 더 부각시키며, 묘한 공포심을 줄 수 있었다면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 개인적으로 집중을 잘 못했음, 분량도 짧고, 뭘 말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음. 배신에 대한 이야기일까?

재회: 앞 날개로 돌아가서 저자가 폴란드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음을 확인함, 2차 세계대전, 유령, 수용소, 트라우마, 어려서 학대받은 사실과 묶이는 걸 원하는 성향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 하는 것처럼 여겨졌음, 왜냐하면 앞에서는 계속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다가 뒤에 가서야 엄마 이야기가 나오는데 너무 뒤에서 나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3-05-18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주토끼에서 무서움이 느껴져야 하는데 그리고 그런 건 내가 질색인데
그렇지 않아서 좋았어요. 뭐랄까... 메시지는 고스란히 전해지면서도 독자가 차분해지는... 인과응보여서 그랬을까요...

감은빛 2023-05-18 16:36   좋아요 1 | URL
그렇죠? 저도 환상호러 라는 장르에서 호러는 별로 느끼지 못하고 환상은 많이 느꼈어요. 물론 어떤 섬뜩함이나 서늘함 같은 느낌은 들긴 했지만, 그게 공포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