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없다


삶은 참 어렵고 힘들다. 살아가는 일이라는 건 늘 고통이고, 괴로움이고, 슬픔이다. 항상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뭔가가 필요한데, 그것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때도 있다. 게다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다보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어떤 문제와는 아예 서로 충돌해서 해결하고 보면 반드시 다른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답이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답이 있어야 그 답을 구할 것인데, 답이 없다면 이 문제를 풀 수가 없다. 그냥 포기하는 수 밖에. 무엇을 포기해야 하나? 문제 해결을 포기하고 그냥 그 문제를 안고 사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다른 서로 충돌하는 문제의 해결을 포기하고, 이 문제를 그냥 해결해버릴 수도 있겠다. 아예 삶 자체를 포기하는 방법도 있다. 이건 너무 극단적이라 고려하고 싶지 않지만, 가장 완벽한 해결책이 아닌가 싶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자꾸 고민하면 괴롭고, 힘들고, 머리만 아프고, 술만 마시게 된다. 뭔가에 집중하면 상대적으로 고민하는 시간은 줄어드니,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한동안 이 문제를 방치했다. 겨우 마음은 좀 편해졌는데, 상황은 점점 나빠지는 듯하다. 언제까지 이걸 방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언젠가는 해결을 해야할텐데, 지금은 도무지 답이 없어 보인다. 현재 조건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제발 답이 있는 문제만 나왔으면 좋겠다. 인생이라는 시험은 늘 어렵기만 하다.



질투


어렸을 때는 뭔가를 가진 사람들을 많이 부러워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아이, 집이 부자인 아이, 운동을 잘하는 아이, 공부를 잘하는 아이, 키가 큰 아이, 인기가 많은 아이, 외모가 멋진 아이, 성격이 밝은 아이 등 주변에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곤 했다. 나는 뭐 하나 가진 게 없는 듯했다. 혼자였고, 가난했고, 운동신경도 없고, 공부도 못하고, 키도 작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못생긴, 침울한 아이였다. 그런 부러움을 질투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마음이 늘 있었다.


조금 자라서는 나도 나름 뭔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내가 가진 것, 내가 잘 하는 것을 찾고 또 만들어 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어느새 남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더이상 들지 않았다. 그냥 저 사람은 저 사람이고, 나는 나다라고 생각하니 더이상 부러워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언젠가 내가 노력해서 얻으면 될 것이고, 절실하게 원하던 것이 아니라면 갖지 않고 살아도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어느 자리에서 문득 깨달았다.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어떤 것을 가진 사람을 보면서 그 사람이 너무 부러운거다. 질투심이 일었다. 현재 조건에서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어떤 것. 꽤 갖고 싶어했고 노력했으나 결국 갖지 못한 것. 무척 친한 사람이었지만 질투심이 드는 순간 그에 대한 친금감이 많이 사라졌다. 그를 보면 자꾸 이걸 떠올릴테고, 질투를 느끼는 나는 괴로울테고, 바쁘게 살면서 굳이 일부러 괴로워하면서 누군가를 만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한편 들었다. 나중에 시간이 좀 지나면 그에 대한 질투심보다는 내가 좋아했던 점들이 더 커보여서 다시 그를 부담없이 만날 수 있을 때가 올까? 지금은 잘 모르겠다. 내 질투심으로 정말 좋은 술친구를 하나 잃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죽음


설마 했다. 아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들이라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설마 했다. 아무리 이 땅의 법관들이 썩었어도 이런 판결을 내릴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의 가치를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통진당의 가치와 활동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의 페이스북 멘트를 보고 나도 똑같은 의견이라고 생각했다.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부터 누구보다 더 주사파를 싫어했지만, 이 결정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8조 1항은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이다. 설립이 자유라면 정당의 활동도 자유다. 헌법재판소에서 이 어이없는 판결을 내린 근거인 헌법 제8조 4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이다. 판결의 근거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이다. 그들 표현으로 통진당이 아무리 종북활동을 한다해도 그것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민주라는 건 말 그대로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는 뜻이다. 민주의 반대는 독재다. 이 땅에서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정당을 찾으려면 오히려 새누리당을 비롯한 친일친미 수구 정당들이 훨씬 더 빨리 떠오른다.


헌재의 이번 판결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헌법의 기본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이건 굳이 법을 공부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그토록 오래 공부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부끄럽지도 않나? 하긴 수치심을 가진 인간들이었다면 애초에 그런 판결을 내릴 수 없었겠지.


그래도 책은 읽어야지















부제 '노동해방'과 '녹색전환'이 들어가있다. 게다가 '적록동맹'이란다. 이런 책은 무조건 읽어야지. 게다가 운 좋게 저자 싸인까지 받았다. 아직 정독을 하진 못했지만, 몇몇 꼭지를 슬쩍슬쩍 보았는데, 무척 흥미롭다. 잘 몰랐던 이야기들이 제법 많다. 그래 아무리 현실이 절망적이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꿈을 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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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14-12-22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은 언제나 정답이 없죠. 있다면 우리가 사는게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예전에는 정말 누군가가 -신이든 선지자든 뭐든 말이죠 - 딱 나타나서 내 손을 딱잡고 이게 옳은 길이야 하고 이끌어줫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한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마음에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는구나 싶었죠.
하지만 요즘은 나를 이끌어주는 신 말고 나쁜놈들 벌주는 신이 제발 있었으면 좋겠다고 또 헛된 망상을 합니다. ㅠ.ㅠ 나쁜 놈들이 너무 많아요.
덕분에 좋은 책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흥미롭네요. ^^

감은빛 2014-12-23 09:00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안녕하세요.
살면서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고민하는 것이 참 어렵고 힘든 부분인 것 같아요.
누군가(말씀처럼 신이나 선지자가) 딱 정해주면,
저는 아마 반대로 갈 것 같아요.

나쁜 놈들을 벌 주는 신은 없겠지만,
아마 자연의 섭리 혹은 세상의 이치 때문에 그들도 불행하리라 생각해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23 0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인 인생도 어려운데...사회가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자니 아주 기름을 붓는 것 같네요.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 겠죠? 그래야 좀 더 움직이고, 실천할 수 있겠죠.
힘내시는 연말 되세요 감은빛님!

감은빛 2014-12-23 09:05   좋아요 0 | URL
현맘님, 말씀 덕분에 조금 힘이 납니다!

올해 제가 유난히 책을 못 읽었어요.
도무지 책이 손에 잡히지 않더라구요.
평소 책 많이 읽는 지인에게 이 얘길 했더니,
본인도 마찬가지라고,
이 사회가 책 읽을 여유를 주지 않는다 하더군요.

문제는 앞으로도 더 나빠질 뿐,
조금이라도 나아질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는 거죠.
독재 정권에서나 가능할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는 이 시대에
한가롭게 책이나 읽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blanca 2014-12-23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이 고민하는 과정에서 얻는 것들도 있기를 바라요. 정말 살수록 어려워요. 삶이라는 게

감은빛 2014-12-26 13:55   좋아요 0 | URL
고민하는 과정에서 얻는 것이 뭐든 없지는 않겠지요.
다만 그 고민의 과정에서 잃는 것들도 생긴다는 게 안타깝네요.
말씀 고맙습니다! 블랑카님

yamoo 2014-12-23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질투....저는 다른 사람을 거의 부러워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만 부러움을 느낀 적이 있어요. 공기업 다니다가 때려치고 1년 준비해서 사서가 된 분이 있던데, 정말 부러웠습니다. 그 분도 나름 만족하고 다니더군요. 한데, 책하고 담쌓고 있던 분..ㅎ

이번 헌재 판결을 보면서 그런 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 당연히 그런 판결이 나올 거구...헌정 사상 처음이니 아마도 5:4판결일 줄 알았는데, 이건 할 말을 잃게 만드는 판결이었습니다. 소수의견 낸 재판관의 논리가 탁월한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할까요..

이번 판결의 핵심 쟁점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어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갈렸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지엽적으로 본 보수 재판관들의 논리가 짜증날 뿐입니다. 에휴~

감은빛 2014-12-26 13:59   좋아요 0 | URL
질투나 부러움을 느끼지 않는 야무님이 전 부러운걸요. ^^

이명박 때부터 쭉 이어온 흐름으로 보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죠.
말씀하신 것처럼 8:1 이었다는게 충격이긴 했어요.
어떤 대응이 있어야 할텐데,
무엇이 효과적일지? 과연 효과적인 대응이 있기나 한건지?
날은 춥고, 그만큼 마음도 추운 날들입니다. ㅠㅠ

서니데이 2015-01-01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새해 첫 날이라 인사드리러 왔어요.
올해도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건 병이야!


이건 뭐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잘 고쳐지지 않는다. 늘 급한 일을 앞두고도 자꾸만 딴 짓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도저히 그 시간으로는 불가능할 때가 되어서야 고도로 집중해서 일을 한다. 가끔은 기적적으로 그 일을 마무리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절대 그 시간에 끝내지 못한다. 일의 경중에 따라 문책을 받기도 하고, 원망을 받기도 하고, 신뢰를 잃기도 한다. 그러면 그렇게 후회를 하면서도 다음 순간 또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마지막에 고도로 집중해서 일을 하기 때문에, 들인 시간에 비하면 일의 완성도는 높다. 문제는 조금만 더 빨리 시작했다면 완성도 있게 일을 마무리 할 수 있을텐데, 꼭 조금씩 일이 남는다. 늦게 시작했으니 당연한데도 그 마지막 순간에 안타까워한다.


또 하나의 병은 앞의 현상과 관련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마감 시한을 자꾸 설정하거나 받아들인다는 거다. 일의 양으로 보아 도저히 이틀으론 부족한데도, 그걸 그냥 받아들인다. 그래놓고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일단 생각한다. 바로 매달려도 쉽지 않은데, 일단 다른 일을 먼저 하다가 나중에 생각나서 부랴부랴 그 일에 집중한다. 이것도 늘 후회하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병이다.


또 있다. 앞의 두 가지 습관 덕분에 자꾸만 일이 몰린다. 하나를 빨리 하고, 다른 일을 또 받아야 하는데, 앞의 일이 자꾸 밀리는데, 뒤에 일을 급한 일정으로 받아버리면 짧은 시간 안에 두 일을 모두 마쳐야 한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식으로 일을 또 받고 또 받는다. 지난 10월과 11월엔 그런 식으로 한번에 서너개의 급한 일들이 몰리고 또 몰렸다.


이쯤되면 늘 바쁘다고 투덜댈 자격이 없다. 솔직하게 그 시간으로는 부족하다고 스스로에게 인정하고, 상대에게도 표현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그가 거는 기대를 저버리면 안될 것 같고, 왠지 그 시간 안에 꼭 끝내야만 할 것 같고, 어떻게든 될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늘 그렇듯 딱 그때까지 안 되더라도 넘어갈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 모든 나쁜 과정은 자꾸만 반복된다.


지금도 급한 일의 마감시한까지 넘겨놓고 이렇게 딴 짓을 하고 있다.


바빠도 책 이야기



 지난 달에 산 책을 이제서야 읽고 있다.

 (물론 몇 년 전에 사고도 아직 펼쳐보지 못한 책들이 산더미다!)

 이 책을 반쯤 읽다가 목차를 살펴보았는데,

 뭔가 이상했다!

 단편집이라면 보통 표제작의 제목이 책 제목이 되는데,

 그럼 '그 남자의 연애사'라는 단편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그러고 눈을 돌리니 차례 옆 쪽에 일러두기로 설명이 있다.

 초판에 실렸던 그 단편을 이젠 실지 않는다고,

 처음에 경험자의 동의를 구하고 실었는데,

 책이 나온 이후에 항의가 들어온 듯했다. 




 근데 이렇게 되고보니 더더욱 그 글이 읽고 싶어졌다. 책에서 중요한 표제작이 빠지다니! 뭔가 매우 불공평한 일을 당한 것 같이 느껴진다. 이 책을 다 읽어도 정작 표제작을 못 읽는다면 이 책을 읽지 못한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을 구해 읽을 방법은 없나? 도서관에서 찾아보면 초판이 있으려나? 그런데 돈주고 책을 사놓고 내가 왜 도서관까지 뒤지는 수고를 해야하나? 이거 출판사에 항의라도 해보고 싶은데, 뭐라고 해야할 지 잘 감이 안온다. 문제는 바쁘게 지내다보면 그냥 이 책에 대해서 잊고 지나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거다. 결국 그 단편을 읽을 기회는 안 오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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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4-12-18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참 이상하네요. 왜 표제작이 빠졌을까요? 인터넷에 뒤지면 어디 없을라나.

감은빛 2014-12-22 01:35   좋아요 0 | URL
요 밑에 치카님께서 문동 카페의 해당 글 링크를 주셨네요.

cyrus 2014-12-18 1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의 사연이 무척 궁금합니다. 호기심이 강한 저라면 일단 도서관에 초판본을 찾아볼겁니다.

감은빛 2014-12-22 01:36   좋아요 0 | URL
저도 호기심은 강하지만, 바빠서 도서관에 갈 여유가 없네요.
도서관에 안 간지 몇 달은 지났어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18 2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근사해서 갖다 붙여놓기만 한거라면, 출판사에 항의해도 될 만한 일인데요!
(제목 보고 책을 집어들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나저나 제 옆지기도 감은빛님과 같은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요(ㅎㅎ)
항상 위태위태해 보이면서도 또 나름 그런 본인의 방식대로 잘 살아가더라구요.
바뀌지 않는 부분이라면 스릴 있게 즐겨보심도...~^^

감은빛 2014-12-22 01:39   좋아요 0 | URL
원래 초판에는 표제작이 실려있었으나,
해당 작품의 모델이 되는 인물의 요청으로 이후에는 빼버렸대요.
이런 경우도 다 있군요.
문제는 초판 이후로 책을 산 저 같은 사람들이
그 작품을 읽을 기회를 영 잃어버린 것이죠.

현맘님의 옆지기님도 저와 같은 습관을 갖고 계시군요.
의외로 많은 분들이 일을 미루는 습성이 있더라구요.
제가 좀 심한 편이긴 하죠.
늘 스릴있는 삶을 살고 있어요.
늘 불안불안 위태위태해요.

chika 2014-12-19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창훈님 소설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 역시 저 책을 사놓고는 바빠서 읽지 못했네요. 쌓여있는 책무더기의 어디쯤 깔려있을까...싶은데.

http://cafe.naver.com/mhdn/67687

위 주소로 들어가보면 한창훈님의 글이 실려있습니다. 왜 표제작이 빠졌는가에 대한 설명이지요.
다행히(?) 제가 갖고 있는 것은 초판본이라... 감은빛님처럼 궁금해하다 넘기게 되지는 않을 듯 합니다만, 아직 읽지 않았으니 다를게 없겠지요? ㅠㅠ


감은빛 2014-12-22 01:42   좋아요 0 | URL
표제작이 빠진 자세한 이유를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런 경우가 매우 드물텐데,
작가 입장에서도, 출판사 입장에서도 많이 당황했겠어요.
책을 산 저도 좀 당황했거든요.

며칠 바쁘게 지내느라 이 책 생각은 더 안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이 글을 쓸 당시의 막 읽고 싶은 궁금함은 많이 옅어졌는데,
그래도 미련은 남아있네요.
언젠가 초판을 찾아볼 날이 있겠죠.

yamoo 2014-12-19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그런 책이 있다니, 신기하군요..근데, 왜 제목을 바꾸지 않았을까요..
개인적으로 한창훈 소설은 저와 맞지 않아 읽지 않습니다만..정말 궁금해지는 단편인것만은 틀림 없네요..ㅎㅎ

감은빛 2014-12-22 01:45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왜 제목을 바꾸지 않았는지가 궁금했는데,
조금 생각해보니 당연한 결정인 것 같아요.
책이 많이 팔린 것도 아니고, 아직 초판도 다 소화하지 못한 상황에서
표제작 삭제 요청을 받았으니, 제목을 바꿀수가 없었겠죠.

책은 다른 상품과 달리 출간과 더불어 홍보를 해야 효과가 나타나고,
출간 3개월 이후로는 홍보 효과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한창 책 홍보가 진행 중이고, 잘 팔리고 있는 책 제목을 바꿀 수는 없었겠죠.
 


오늘 선택은 틀렸나보다. 평소 강변보다는 올림픽도로가 덜 막힌다는 생각에 올림픽을 탔는데, 차가 많이 막힌다. 그제서야 스마트폰 네비게이션을 켜본다. 과연 다시 강변으로 넘어가면 좀 덜 막히려나. 이렇게 차가 막혀서야 무조건 약속 시간에 늦을 수 밖에 없다. 뭐라 변명을 해야 하나. 솔직하게 차가 막혔다고 말해도 별로 이해받지 못할텐데.


네비게이션은 GPS를 수신한다고 한참을 기다리게 만들더니, 그냥 올림픽도로를 계속 가라고 말한다. 교통상황을 보려고 이래저래 만져보다가 그냥 네비를 종료시킨다. 라디오 볼륨을 올려놓고, 눈을 질끈 감는다. 어차피 늦은 거 마음 졸이지 말고 느긋하게 가자. 눈을 감고 있어도 크락션 울리는 소리가 없는 걸보아 여전히 꽉 막힌 차들은 움직일 생각조차 없는 듯하다. 한쪽 눈만 지그시 떠보니 앞 차가 멀어진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고 있던 오른발을 엑셀로 옮긴다. 조금 멀어졌던 앞 차가 다시 멈춘다. 엑셀을 밟고 있던 발을 다시 브레이크로 옮긴다. 이 차가 수동식 기어였다면 왼발과 오른손도 바빴을 것이다.


라디오에선 냉장고에 전화기를 넣어두었다던가, 전자레인지에 리모컨을 넣어두었다는 시시콜콜한 사연이 나오고 있었다. 채널을 돌리다가 어느 순간 딱 멈췄다. 곧바로 볼륨을 올렸다. 청아한 목소리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노래를 듣는 순간 누군가를 떠올렸다.  


어느날 문득 눈에 들어온 그는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였다. 그저 가끔 얼굴을 마주치는 타인일 뿐. 유독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내 눈에 자꾸 들어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제서야 그 깊은 눈매가, 웃을때 살짝 패이는 보조개가, 시원한 입매가 내 시선을 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모만이 아니었다. 그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 그가 일에 집중하는 모습 등이 보였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옆 사람과 수다떠는 목소리,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목소리, 나를 부르는 목소리, 나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는 목소리. 내용은 전혀 들리지 않고 그저 그 목소리가 내 감각을 휘젖고 있었다.


어느날 술자리에서였다. 저쪽 옆 테이블에서 그와 다른 사람들이 떠들고 있었다. 내 옆에도 일행들이 무언가를 주제로 열을 올리고 있었지만, 내 관심은 오직 그가 앉아 있는 테이블을 향해 있었다. 물론 노골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슬쩍 시선을 비껴 뒤쪽 대형 티비를 보거나, 그 옆 창가를 보기도 하면서, 시끄러운 소음 때문에 들리지도 않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누군가 건배를 권했고, 소주를 들이키고 내려놓는 순간 옆 자리에 누군가가 앉았다. 그였다. 살짝 취한 그가 내게 잔을 채워달라고 빈 잔을 내밀었고, 천천히 술을 따랐다. 살짝 풀린 눈, 평소보다 더 쾌활한 모습, 뭐라고 말을 하다가 내 어깨를 툭 친다. 평소라면 상상도 못할 그의 행동에 조금 당황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나에게 이만큼 편하게 대한다는 뜻이니 나쁠 건 없겠지.


그날 그는 내 옆에서 이런저런 많은 말을 했는데, 깜짝 놀랄 사실이 있었다. 우리가 훨씬 오래 전부터 만나왔다는 사실. 꽤 오랫동안 이런저런 일 때문에 마주칠 일이 많았는데, 최근까지 내가 그를 본체 만체 했다는 것. 그러다가 최근에야 내가 그를 알아봐주기 시작했다고 불평했다. 자기가 얼마나 서운했는지를 강조하며 또 한번 어깨를 툭 친다. 그리고는 잔을 들어 '원샷!'을 외친다. 그랬던가? 내가 그를 의식하기 훨씬 전부터 우린 가끔 만났던 사이였구나. 역시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내가 그에게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 살면서 많이 겪었던 익숙한 상황이라 마치 영화를 보듯 뻔히 내 모습이 그려진다.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후회가 막심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인식 범위 밖에 있었던 걸 무슨 수로 되돌릴 수 있을까?


그땐 몰랐다. 이 관심이, 이 감정이, 이 설렘이 불러올 아픔을, 고통을, 슬픔을 미처 몰랐다. 이 노래를 들으며 갑자기 울컥 감정이 복 받쳤다. 눈물이 날 것 처럼 눈 앞이 흐려졌다. 차가 흔들렸다. 눈물을 훔치고 핸들을 바로 잡았다. 노래는 점점 더 고조되어 고음으로 올라가고, 그럴수록 내 마음은 더 슬프고 아팠다. 도저히 운전을 할 기분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출구로 무조건 차를 몰았다. 한참을 이리저리 도는 동안 여전히 노래가 흘렀다. 마침내 어느 한적한 주차장에 차를 세웠을 때 노래도 멈췄다. 나는 시동을 끄고 나와 담배 한 대를 물었다. 후우! 담배 연기가 한강을 향해 멀리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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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창고 2014-12-17 0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이좋다고해도 실례가 아니라면 잘읽었습니다
소설같은 글에 내 옛날 이야기인듯했습니다
감은빛님 친구허락 감사드리고요 오늘 추운하루 감기조심하세요

감은빛 2014-12-17 18:21   좋아요 0 | URL
아유~ 실례는요? 무척 감사하죠! 소금창고님 인연 맺게 되어 반갑습니다! 따뜻한 댓글도 고맙습니다! ^^

북극곰 2014-12-17 0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부터 눈물이 왈칵하신거에요? ㅜㅜ 덕분에 저는 간만에 노래 잘 들었습니다만, ...

감은빛 2014-12-17 18:22   좋아요 0 | URL
아침부터는 아니구요. 밤에 쓰다만 글을 손봐서 아침에 올린 거예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다락방 2014-12-17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저도 어떤 기억이 떠오르네요, 감은빛님.
아침부터..

감은빛 2014-12-17 18:23   좋아요 0 | URL
아침부터 어떤 기억이 떠오른 날엔 일이 손에 안 잡힌다던가 하지 않던가요? ㅎㅎ
저는 영 일이 안 풀리는 날이던걸요

무해한모리군 2014-12-17 0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아침부터...
언제나 누르면 눈물이 날것 같은 곳이 마음속 어딘가에 누구나 있나봐요.

감은빛 2014-12-17 18:25   좋아요 0 | URL
모리님 앞에 붙은 수식어를 바꾸셨군요~ ^^

누구나 그런 아픈 멍울 하나씩 갖고 살겠죠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17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샷˝ 하는 그 분위기, 그 자리에 저도 있는 것 같네요.
그 느낌, 그 기분, 그 눈물...이 싸한 겨울에 저에게도 익숙한 느낌을 주네요.
글이 너무 좋아요..^^

감은빛 2014-12-17 18:26   좋아요 0 | URL
언젠가 현맘님과도 원샷! 한 번 해보고 싶은걸요

yamoo 2014-12-17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생한 일화네요..근데, 노래를 듣고 왜 그런 슬픔을 느꼈는지 막 궁금해 집니다. 그 노래를 부르는 분이 술자리 옆에서 어깨를 툭 쳤던 바로 그분인가요? 감은빛님은 왜 그런 슬픔에 빠졌을까요? 그분이 이 세상을 하직했나요?? 글에서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매우 궁금증을 유발하는 글입니다..^^

감은빛 2014-12-18 17:16   좋아요 0 | URL
야무님, 그러게요. 왜 그렇게 슬펐을까요?
저도 그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네요.
야무님 말씀처럼 노래를 부른 사람이 아니고,
세상을 떠난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노래를 듣는 순간 그가 떠올랐고, 마음이 아팠어요.
그와의 여러 추억들이 오래된 필름처럼 머리속에서 돌아가더라구요.
왜 슬펐는지를 설명하려면 너무 많은 시간과 글이 필요할 것 같아요.

나와같다면 2015-07-03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릎이 꺽이네요.. 이 곡을 들으니..

감은빛 2015-07-06 17:21   좋아요 0 | URL
무릎이 꺾인다는 표현, 어떤 느낌일지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현대과학·인문학·SF를 통섭하는 재미
원종우 지음 / 생각비행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어떤 고백


이 글은 은밀한 고백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아니 은밀한이라는 단어를 쓰고 보니, 이미 몇 차례 술자리 안주로 이 고백을 써먹은 기억이 나서, 더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경우 이런 류의 고백은 부끄러운 경험이 되기 마련이니, 부끄러운 고백이라고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나는 전혀 이 경험이 부끄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다시 다른 수식어를 떠올려본다. 나로서는 직접 겪은 일이고, 그럴수도 있을 법한 일이라 여겨지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 중에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많았다. 그럼 황당한 고백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충격적인 고백? 아, 모르겠다. 그냥 앞에 수식어를 빼고 고백이라고 해야겠다. 다시 시작해보자.


이 글은 고백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이번에는 너무 밋밋하다. 분명 저 고백이란 단어 앞에 무언가가 들어와야 딱 느낌이 살 것 같은데, 이 첫 문장에서부터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를 않는다. 벌써 몇 시간을 이 한 문장을 두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다. 늦은 밤, 자꾸 눈은 감기고, 이 글은 꼭 쓰고 자고 싶다. 단 한 줄을 적어놓은 빈 문서를 노려보다가 문득 배가 고프다. 아니 입이 심심하다. 두뇌회전에는 견과류가 좋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땅콩 몇 알을 주워먹고 돌아와서 다시 쓴다. 이번에는 지금 겪었던 과정을 일단 쓰고 보자고 생각한다.


이렇게 장황하게 첫 문장의 표현을 두고 고민한 흔적을 남기는 이유는 이 책 5장에 나오는 '시간 여행과 평행우주'라는 내용이 인상적이어서, 나도 내 선택을 강조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의 첫 시작을 장식할 수식어 선택을 놓고 여러가지를 고민한다. 이 중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우주가 갈라져나가는 것이 바로 '평행우주'라고 한다.


이미 술자리 안주로 써먹어서 은밀하다고 표현하기에 적당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 글을 읽을 이들은 대부분 모르는 이야기일테니, 그냥 '은밀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나는, 실제로 부끄럽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대개 부끄러워할 거라는 판단에 '부끄러운'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나와는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에 각기 다른 우주에서 각자 살아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경우의 수는 무수히 많아진다. 어법에 맞지 않는 어떤 단어를 그냥 나열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예 수식어를 빼고 갈 수도 있을 것이고, 첫 문장을 다른 말로 바꿔버릴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고백은 뭐냐고? 아! 그걸 잊어버렸네. 그냥 말 안하고 넘어가면 안될까? 평행우주를 하나 더 만들어내는 셈치고 그냥 첫 문장을 바꿔야겠다. 다시 시작하자.


종교 논쟁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내세 혹은 다음 생이라고 부르는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믿지 않는다. 나는 그냥 살아가면서 받아들인 정보를 바탕으로 뇌에서 판단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뇌가 기능을 멈추는 순간 나라는 존재도 아예 사라진다고 믿는다. 나는 꽤 어려서부터 우리가 신이라고 믿는 초월자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랬는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나름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답답했다. 아니 신기했다.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자명한데 어떻게 믿는 건지 궁금했다. 진짜로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받아들였다. 저 사람들도 사실은 신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믿지 않지만 어떤 이유로 믿는 척 하는 것 뿐이라고 믿었다. 남과 어울리기 위해, 자기가 생각하는 어떤 삶에 잘 어울린다고 여기고 남을 따라 믿는 척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개중에 아주 믿음이 강한 신자를 만나면 저들은 남을 속이려다가 도리어 자기 자신까지도 속이고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봤다.


대부분이 믿는 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크게 잘못된 판단이라고 깨달았던 것은 사람들과 신의 존재와 종교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하면서였다. 살면서 가장 친했던 친구로 꼽을 수 있는 녀석이 있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어른이 된 이후에도 간혹 만났으니, 오래 사귀기도 했다. 이 녀석이 아주 독실한 기도교 신자였다. 녀석은 나를 걱정해준다며 교회에 같이 다니자고 자꾸만 권했고, 나는 녀석이 걱정되어 사실은 신은 없고, 종교는 인간이 만든 허상일 뿐이라고 잘 생각해보라고 설득했다.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며 시작한 토론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셀 수 없다. 늘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그냥 각자의 생각을 각자 하면서 살아가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 외에도 신의 존재에 대한 논쟁을 끝없이 이어졌다. 더 많이 알아야 하기에 종교에 아무런 관심이 없음에도 종교에 대한 책을 구해 읽어야 했다. 이 알라딘 서재에도 종교에 대한 책을 읽은 흔적이 제법 있다. 아무리 논쟁을 하고, 책을 읽어도 본질적인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왜 사람들은 내세를 믿을까? 왜 초월자의 존재를 믿을까?


이 책을 읽다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얻었다. 이 책의 6장에서 '자아'는 인간이 육체안에서 성장해가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가는 것이라고 깨닫고 해주고, 7장과 8장을 거치면서 꿈과 환상, 정신적인 활동과 실제 시간 간의 관계에 대해 알려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1장에 나오는 소설이 비록 저자의 짧은 소설이긴 하지만 내가 궁금해왔던 지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어서 무척 놀라웠다!


세상이라는 흥미로운 재료


책의 3장에서 저자는 학생운동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과학 서적에만 몰두하고, 현실에서 전혀 과학적인 태도를 견지하지 못한 선배들에 대해 말한다. 이 책의 저자보다는 한참 후배지만, 나는 오히려 저자가 지적했던 선배들의 태도로 살아온 것 같다. 아마 학창시절에 주입식 교육을 받은 부작용일거라 생각하는데, 물리학과 생물학 등 과학 계열의 지식은 어렵기만 할 뿐, 전혀 관심을 두기 어려웠다.


앞서 말하려고 했던 고백은 사실 수학과 과학 성적에 대한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수학 0점을 두어번 받았다. 실제로 0점 시험지를 돌려받은 나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는데, 수학 선생님이나 주위 친구들의 반응은 경악이었다. 확률적으로 그냥 찍어도 한 문제는 맞출텐데, 어떻게 0점을 받을 수 있냐는 태도였고, 심지어 모든 문제의 답을 다 알고 일부러 0점을 받은 거 아니냐는 의심이 나왔다. 수학과 과학을 제외하면 비교적 괜찮은 성적을 받는 편이어서 황당한 그 의심을 갖는 친구들이 있었다. 두 과목을 뺀 나머지 평균과 합한 평균이 터무니없이 달랐기 때문에 선생님도 괘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게 더 충격적일텐데 나는 모든 문제를 다 풀려고 노력했고, 대부분의 문제를 풀어서 틀린 답을 골랐다. 수학을 싫어하긴 했지만, 시험 시간에 문제를 풀려는 노력 없이 그냥 답을 찍는 방식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이 고백으로 글을 시작하려 했던 이유는 학교 교육이 수학과 과학에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도록 만들어, 어린시기부터 전혀 과학이라는 분야에 대한 지식을 접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사실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지만, 분명 살아온 시간이 앞으로 살아갈 시간보다 더 많을텐데, 이제서야 과학이 사실은 이렇게 재미있는 분야였구나 깨달아서 너무 아쉽다! 이렇게 재밌는 책을 왜 이제야 만났을까?(이 책이 이제 막 나온 책이니까, 당연히 그 전에는 만날 수 없었겠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이 글에서 꼭 드러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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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12-15 0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읽어 보고 싶어지네요...

감은빛 2014-12-16 05:25   좋아요 0 | URL
재미있습니다.
어려운 현대 과학 이론을 쉽고 재밌게 설명해준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개 2014-12-15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정적으로 11장에 나오는 소설이 비록 저자의 짧은 소설이긴 하지만 내가 궁금해왔던 지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어서 무척 놀라웠다!`--어떤 단서일까요? 저도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으로써 엄청나게 궁금합니다!

그리고 저는 수학능력시험에서 수리영역 8점을 맞았어요. 아하하하하하하하.......
모의고사때도 거의 10점대, 과학부분도 뭐 그렇구요.
수학,과학 잘하시는 분들이 제일 부럽더라구요.

감은빛 2014-12-16 05:27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 저랑 비슷하시군요.
도토리 키재기 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저보다는 조금 더 나은 것 같은데요. ^^

책에 저자의 아주 짧은 소설이 두어 편 있는데,
무척 재미있고 또 흥미로워요!

yamoo 2014-12-15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과학 인문학 sf의 통섭이라....이걸 제대로 통섭했다면 대단한 작가일거란 생각이 듭니다. 서점가서 들춰보고 괜찮으면 구매해야 겠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감은빛 2014-12-16 05:29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저자의 이력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책에 단편적으로 소개하는데, 평범한 경우는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과학 지식이 전혀 없는 편이었고,
아예 관심도 없는 사람이었는데도 무척 재밌게 읽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플라타너스 잎이 바람에 날린다.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살랑살랑 떨어지다가, 휙 불어오는 바람에 앞으로 달려갔다가 또 위로 올라간다. 며칠 전 라디오에서 배철수 디제이가 11월은 아직 가을이라고, 지금 이렇게 추운 건 겨울이라서가 아니라 ‘단풍추위’ 때문이라고 했다. 3월에서 4월 초까지 눈이 내리고 추운 날씨를 꽃샘추위라 부르듯, 11월의 추위를 ‘단풍추위’라 부를 수 있다고, 더불어 이 말은 자신이 처음으로 사용했으니, 저작권은 자신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정말 그가 이 말을 처음 쓴 것인지 모르겠으나, 꽤 재밌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단풍추위 때문에 옷을 단단히 여미고도 모자라 몸을 잔뜩 웅크리고 길을 걷다가 서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했는데, 올가을 나는 몇 권의 책을 읽었던가? 반성하는 마음으로 불광문고에 들어섰다.


앞쪽에 가을을 맞아 사랑이야기를 다룬 문학 작품들을 모아둔 탁자가 있었다. 재밌는 점은 한쪽에는 남성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작품들로 채웠고, 반대편은 여성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들을 모았다. 우선 남성이 주인공인 책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짧은 시간 나는 지나이다에게 첫눈에 반한 블라디미르(첫사랑)가 되었다가, 캐서린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복수와 파멸의 길을 걸어간 히스클리프(폭풍의 언덕)가 되었다. 또 샬롯테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때문에 절망에 빠진 베르테르(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가 되었다가, 일흔넷에 열아홉의 울리케를 사랑했던 괴테처럼, 열일곱의 소녀 은교를 향한 사랑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노작가 이적요(은교)가 되었다. 예전에 읽어본 책들도 있었지만, 제목만 들었을 뿐 읽지 않은 책들도 있었고, 아예 처음 접한 작품도 있었다.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옮겨 여성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를 살펴보았다. 첫눈에 당황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남성 주인공 편과 달리 읽은 책이 없었다. 언젠가 한번은 꼭 읽어야지 맘만 먹고 있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가 그나마 익숙한 책이었고, 여기 전시된 책은 읽지 않았지만, 에쿠니 가오리나 알랭 드 보통은 다른 작품을 접해본 작가였다. 낯선 작가의 책들 중 몇 권을 들춰보았다. 우선 제목부터 독특한 [19 29 39]는 세 여성의 나이를 뜻했다. 젊은 여성 작가 3명이 함께 쓴 소설이었다. 아마 각자 한 명의 주인공을 맡아서 쓴 것 같은데, 흔히 볼 수 없는 작업 방식이라 어떻게 풀어갔을지 흥미가 생겼다. [클라리 세이지]는 허브의 한 종류로, 향이 깊고 부드러워 마음의 안정을 돕고 피로를 달래주는 식물이라고 한다. 이 책은 결혼한 네 여인의 비밀 이야기를 풀어간다고 하는데, 여러 사회 문제들과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과의 관계, 육아와 일터에서 오는 다양한 스트레스 등 무척 공감이 가는 주제였다. 주인공 네 명이 각자의 성격과 상황 안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흥미롭게 느껴졌다. 또 다나베 세이코라는 일본 작가의 책이 둘이나 포함되었다는 점, 마스다 미리라는 일본 30대 미혼 여성을 주제로 여러 작품을 그린 만화가의 책이 포함된 것도 눈길을 끌었다. 살펴보면 하나하나 다 읽고 싶은 책이지만, 시간과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일단 한 권을 골랐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단풍추위를 지나 본격적인 겨울이 오기 전에 사랑이야기에 푹 빠져 보련다.





























## 불광문고에서 만날 수 있는 늦가을 사랑이야기 ##


- 그 남자의 사랑이야기

첫사랑(이반 투르게네프, 민음사, 2003년, 10,000원), 그 남자의 연애사(한창훈, 문학동네, 2013년, 12,000원), 청혼:너를 위해서라면 일요일에 일을 하지 않겠어(오영욱, 달, 2013년, 13,500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요한 볼프강 폰 괴테, 민음사, 1999년, 7,000원), 폭풍의 언덕(에밀리 브론테, 문학동네, 2011년, 13,000원), 180일, 지금만큼은 사랑이 전부인 것처럼(테오, 예담, 2014년 13,800원), 단 한 번의 연애(성석제, 휴먼앤북스, 2012년, 12,500원), 은교(박범신, 문학동네, 2010년, 12,000원), 책 읽어주는 남자(베른하르트 슐링크, 시공사, 10,800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07년, 12,000원), 천 년의 사랑(양귀자, 쓰다, 2013년, 15,000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박민규, 예담, 2009년, 12,800원)




























- 그 여자의 사랑이야기

서른 넘어 함박눈(다나베 세이코, 포레, 2013년, 12,000원), 클라리 세이지 1,2(고선미, 스프링, 2013년, 12,000원/각 권), 잡동사니(에쿠니 가오리, 소담, 2013년, 12,800원), 사랑이 달리다(심윤경, 문학동네, 2012년, 12,000원), 달콤한 나의 도시(정이현, 문학과지성사, 2006년, 12,000원), 우리는 사랑일까(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2005년, 12,500원), 노리코 연애하다(다나베 세이코, 북스토리, 2012년 12,800원), 내 사랑은 그 집에서 죽었다(김형경, 사람풍경, 2012년, 14,500원), 수짱의 연애(마스다 미리, 이봄, 2013년, 8,000원), 19 29 39(최수영, 정수현, 김영은, 소담, 2010년, 11,000원), 안나 카레리나 1,2,3(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펭귄클래식, 2013년, 11,000원/1권, 12,000/2,3권), 나마스테(박범신, 한겨레출판, 2005년, 12,000원)
















* 은평시민신문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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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4-11-29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은 슬펐어요. 사랑의 달콤한 맛과 쓴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소설인 것 같아요.

감은빛 2014-12-02 04:26   좋아요 0 | URL
그렇죠. 예상치 못한 전개에 좀 당황스러웠어요.

비로그인 2014-11-29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 참 좋네요.

감은빛 2014-12-02 04:27   좋아요 0 | URL
어떤 사랑인가에 따라 본질적으로 좋을수도, 아닐수도 있겠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사랑이란 말 자체는 좋은 거죠.

yamoo 2014-11-30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하고 실전은 천지차이더군요~ㅎ 어쨌거나 위의 책 중에서 2권은 읽었고 2권은 그냥 소장만 하고 있습니다. 기회를 봐서 소설책을 전부 처분해야 할 듯합니다. 이 사랑에 관계된 소설책들도 ㅇ예외가 아니겠지요.ㅎ

이 글은 기고문이군요~^^ 잘 봤습니다!

감은빛 2014-12-02 04:29   좋아요 0 | URL
저는 1권은 읽는 중이고, 3권을 읽었네요. 집에 사놓고 안 읽은 책이 잔뜩 있는데, 아내는 자꾸 책 좀 처분하라고 하네요. 읽어야 처분이라도 할텐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