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

 

 

학창시절부터 나는 공부가 싫어서 안 했기 때문에 성적이 나쁠 뿐이지, 공부를 한다면 잘 할수 있다고 생각했고, 분명히 머리는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금방 들은 숫자나 단어를 잊어버릴 정도로 머리가 나쁘다. 게다가 해가 갈수록 사람 이름과 책 이름과 어떤 특정한 단어 등을 떠올리지 못한다. 결국, 머리가 좋다는 것은 그냥 착각일 뿐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국어 선생님은 곧잘 글짓기 숙제를 내주셨는데, 되돌아온 공책에는 늘 좋은 평이 많았다. 어느 날 선생님은 내 글 중 하나를 교내 백일장에 올렸고, 비록 상을 받진 못했지만, 최종 수상작을 고르는 후보로는 올랐다고 들었다.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수없이 적어온 글들은 늘 엉망이었고, 가끔, 아주 가끔 조금 괜찮다 싶은 글을 적었을 때에도,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야 했는데, 그냥 멈춰 서버린 느낌. 게다가 요즘은 글 잘 쓰는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책하게 되는 순간들이 많다. 난 왜 이렇게 재밌는 글을 못 쓰는 걸까?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감동적인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그래, 처음부터 난 글쓰기에 재능 따위 없었던 것이다. 그건 그저 오랜 착각이었을 뿐이다.

 

 

 

나는 학창시절을 통틀어 단 한 번도 반장을 해보지 못했다. 성적이 그만큼 따라주지도 못했지만, 그때는 숫기가 별로 없었다. 처음 학년대표라는 직책으로 뽑혔을 때, 아이들이 나를 선택한 이유는 가장 술을 잘 마시고, 가장 활발하게 놀았기 때문이었다. 앞에 나서서 말을 잘했기 때문은 분명 아니었다. 그런데 자꾸 하다 보면 잘하진 못하더라도, 익숙해지기는 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학원 강사 경험을 쌓았던 것도 도움이 되어, 제법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게 되었다. 덕분에 발표 수업을 하면 늘 여자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서로 같은 조가 되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와 곤란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말을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과 특정한 주제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가 가진 생각을 잘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좀 더 쉽게 설명하고, 좀 더 자세하게 부연하고, 이런저런 예시를 들어봐도 자꾸만 같은 말이 돌아온다. 이런! 난 정말 표현력이 부족한 사람이었구나. 내가 이렇게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구나! 라고 새삼 깨닫는다. 역시 오랜 착각이었을 뿐이다.

 

 

 

남들은 숨도 안 쉬고 공부한다는 고3 때, 나는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책도 꺼내지 않고 엎드려 자곤 했다. 배고프면 도시락을 까먹고 또 잠을 잤고, 잠이 깨면 창 밖을 보면서 공상에 빠졌다. 정규 수업이 끝나면 보충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이 시작되는데, 그럼 몰래 뒷문으로 학교를 빠져나갔다. 소위 문제아라 불리는 친구들을 만나 버스종점 근처 커피숍을 향했다. 근처 여자상업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알바하던 곳이다. 커피는 써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사이다나 콜라 따위의 음료수 하나 시켜놓고 여자아이들과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떠드는 사이에 자주 담배를 피웠고, 그 아이들이 알바였기 때문에 몇 차례 음료수를 리필받았다. 서너 시간 떠들고 나면 적당히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갈 무렵이다. 슬슬 교실로 돌아가서 선생님께 눈도장 찍어주고 다시 나와서, 이번엔 알바가 끝난 그 여자아이들과 술집이나 노래방으로 향했다. 그때 같이 놀던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난 제법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비록 얼굴은 그리 잘 생기지 못했지만, 나름의 어떤 느낌과 말발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때부터 난 여성들에게 제법 인기 있는 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 호감이 천차만별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분명 첫 만남에서 대부분의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순 있지만, 그리고 어쩌다 그런 호감이 발전해서 연애감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극히 드문 일이었고, 그런 정도만으로는 인기 있다고 착각에 빠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이 모든 착각에도 불구하고 가끔 그 착각이 실제인 양 다시 착각에 빠지는 경우도 생기니, 나라는 인간은 정말 구제불능이 아닌가! 하루 또 하루 어떤 착각에 빠져서 살아가게 될까? 그 착각에서 벗어나 현실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그 비참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차라리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워도 착각에 빠져 사는 것이 조금 행복한 것은 아닐까 싶다.

 

 

 

※ 이 책을 읽고 쓴 글이 아닙니다.

다만 제목이 같아서 가져왔을 뿐입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3-01-11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면 착각도 한 때인가봐요, 감은빛님.
저는 (풋- 하고 한 번 웃고) 대학에만 들어가면 남자애들한테 인기 폭발일거라고 혼자 생각했거든요. 이건 착각이라기 보다는 엉뚱한 상상쪽이었죠. 여튼 그랬는데, 맙소사, 여대에 들어갔지 뭡니까. 네?! 그리고 여대를 졸업한 후에는 내가 여대를 다녀서 그렇지, 남녀공학 다녔으면 공부도 열심히 했을거라고 또 혼자 생각해요.

글쓰기도 그래요. 한 때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을 만큼, 그리고 쓸수 있다고 생각했을 만큼 제가 글을 잘 쓰는줄 알았었어요. 고등학생때까지요. 정말 딱 고등학생때까지만 그 생각을 했네요. 세상에 나와보니, 아니 알라딘을 알고 보니 여긴 제가 감히 글을 쓸만한 곳이 아니더라구요. 처음 알라딘에 들어와서 쭈볏거리며 글을 쓰지 못했던 생각이 나네요. 너무 쟁쟁한 분들이 많아서 제 글이 부끄럽더라고요. 대체 내가 그때는 왜 그런 착각에 빠졌을까, 싶어요. 앞으로 또 어떤 착각에 빠지게 될지는 모르지만, 요즘엔 그런 생각을 해요. 아, 나는 남들보다 잘하는게 아무것도 없는 그런 사람이구나, 하고요. 그렇다고 뭐 딱히 슬프거나 하진 않구요.

음, 웃기게 시작했다가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을 맺네요. 하핫.

감은빛 2013-01-11 20:11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는 지금도 늘 착각 속에 빠져서 사는 걸요.
영광이네요. 다락방님과 두 가지 측면에서 겹쳤다니.
매일 고민이 됩니다.
자신감을 갖기 위해 착각인 줄 알면서도 그냥 빠져 있어야 하나?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빠져나와야 하나?

다락방님은 소설 정말 잘 쓰실 것 같아요.
저는 요즘은 통 못 쓰지만,
언젠가 아이들을 다 키우고나면
혼자 골방에 쳐박혀 맘껏 써보고 싶어요.

맥거핀 2013-01-12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글을 읽다보니 어떤 풍경이 떠오릅니다. 마치 오래된 영화를 보듯이요. 왠지 글을 읽다보니 글을 잘 쓴다는 게 뭘까, 생각하게 됩니다.

감은빛 2013-01-23 13:17   좋아요 0 | URL
답이 한참 늦었네요.
어떤 풍경이 떠오르셨을까요?
제 이야기가 맥거핀님께 어떤 추억을 불러일으켰을지 궁금하네요.

순오기 2013-01-12 0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은 착각이다!
첵에서 봤는가 선생님한테 들었는가 가물거리지만
지금까지 살아보니까 '착각' 없이 사는 인생은 '살맛'이 안 나더라고요.^^
착각인 줄 알지만 그 착각을 즐기며 사는 게 좋아요~

감은빛 2013-01-23 13:18   좋아요 0 | URL
그렇죠?
착각인 줄 알면서도 그냥 그걸 즐기며 사는 거.
그게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저도 하고 있습니다. ^^

M의서재 2013-01-13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 글 재밌게 읽었어요. 저도 사실 인기가 많다는 착각과 글을 잘 쓴다는 착각에 빠져 살다가 비참함에 나가 떨어지는 게 한두번이 아니였거든요. 게다가 지금도 그렇다는 것.ㅠ.ㅠ 그래도 착각에 빠져사는 것이 조금은 행복하다는 것에 한 표요~^^;;

감은빛 2013-01-23 13:20   좋아요 0 | URL
역시 불량주부님께서도 저와 비슷한 착각을 하시는 군요.
글 읽으면서 왠지 저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착각에 빠져 사는 것이 그래도 행복하겠죠.
착각을 벗어나는 순간 말씀하신 것처럼 비참해지니까요.

페크pek0501 2013-01-18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태균 저, <가끔은 제정신>이란 책을 읽었는데 우리는 늘 착각 속에 산다고 해요.
가끔만 제정신이라는 거죠. 저도 착각을 하며 산다고 느끼는 게 있는데, 나중에
착각인 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착각인 줄 알면서 착각을 할 때도 있어요.
그래야 맘이 편하다는 생각으로요.
착각이 없다면 어떻게 살 수 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착각한 티만 내지 않으면 나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ㅋㅋ

감은빛 2013-01-23 13:2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늘 착각에 빠져 살다가 가끔만 제정신이군요.
그러고보니 저도 늘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네, 말씀하신 것처럼
착각한 티를 안내면서 살아야 할텐데,
그게 쉽지 않은 것 같아서 문제인 듯 합니다.

소개해주신 책은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고맙습니다! ^^
 

내가 나고 자란 도시에서는 눈을 구경하기 어려웠다. 기록적인 폭설 때를 제외하면 눈을 본 기억은 거의 없다. 군대에서 평생 본 눈보다 훨씬 더 많은 눈을 단 몇 시간 만에 치우면서, 정말 고향이 그리웠다. 그리고 철없이 '화이트 크리스마스' 따위를 동경하곤 했던 시절을 후회했다. 눈이란 정말 보는 것만 좋을 뿐, 생활인들에겐 치가 떨리도록 싫은 존재라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서울에 산지 이제 제법 되었건만, 해마다 겨울 추위는 적응되지 않는다. 고향에선 분명 추위에 강한 편이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듣는 이들은 나이 때문이라고, 이제 너도 그런 때가 된 거라고 말들을 하지만, 갓 서울에 올라온 아직 젊었을 당시에도 난 추위에 적응하지 못했다.

 

 

 

2010년 1월 첫 출근날(아마 4일이었던가?)의 폭설을 잊을 수 없다. 당시 우리 집도 경사가 급한 언덕길 위쪽에 있었고, 일터도 역시 비탈길을 한참 올라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게다가 둘 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골목길 안에 있었다. 눈이 한번 내리면 큰길의 눈은 곧 치워지고 또 녹아 없어지지만, 그런 골목길은 금세 빙판길이 되어서 여러 날이 지나도록 얼음이 녹지 않는다. 연탄재를 뿌리고, 흙을 갖다 뿌려도 미끄러운 길을 걸어 오르거나 내려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때 가파른 빙판길을 기어서 오르내리다가(심지어 기어 다녔음에도) 여러 차례 미끄러져 넘어졌다. 허리와 엉덩이에 멍이 들었고, 발목을 다쳐서 한동안 쩔뚝이며 걸어야 했다. 점심시간에 한의원에서 침 맞고, 저주파와 찜질 치료를 받고 나면 막상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 쩔뚝쩔뚝 걸으며 김밥을 씹기도 했다. 

 

 

지금 우리 집은 당시보다는 조금 더 언덕 아래쪽으로 이사를 왔지만, 여전히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내려야 한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누군가는 낭만적인 데이트를 떠올리며 행복해하고, 누군가는 소리 없이 눈 내리는 풍경이 멋있다고 감탄하고, 누군가는 술친구를 불러내겠지만, 나는 제일 먼저 걱정부터 하게 된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빙판길에 넘어질까 봐 겁난다.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또 데려오는 그 길이 두렵다.

 

 

 

어제 나는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글쓰기 강의'를 듣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아내는 갑자기 약속이 하나 생겼다고 했다. 그리고 큰아이는 생협 소모임에 나가고 싶어 했다. 아내가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큰아이를 소모임 장소에 데려다 주면, 거기서 나는 작은아이를 맡아서 글쓰기 강의를 갈 생각이었다. 큰아이가 모임을 하는 동안 나는 작은아이와 강의를 듣다가 시간 맞춰 다시 큰아이를 데리러 올 생각이었다. 7시가 조금 넘어 아내와 만나면 되겠다고 예상했다. 그때까지 나는 일터에서 좀 더 일을 하고 있었다. 

 

 

출발할 때 연락을 주겠다던 아내로부터 연락이 없어서, 나는 7시 반쯤 일터에서 출발했다. 이미 글쓰기 강의는 시작되었을 시간이다. 큰아이의 소모임 장소는 집과 글쓰기 강의가 있는 장소 사이에 거의 중간쯤 되는 위치다. 거기 도착해서 전화했더니, 아내와 아이들은 출발은 했으나, 버스도 안 오고 택시도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8시가 거의 다 된 시간이었다. 집 앞 도로 상황이 어떨지는 뻔히 그려졌다. 평소에도 잘 안 오는 택시가 이런 날 거기까지 들어올 리는 없을 테고, 버스 역시 얼어붙은 도로 사정으로 늦을 게 뻔했다.

 

 

 

결국 아내와 아이들은 8시 반이 넘어서야 버스에서 내렸다고 전화가 왔다. 서둘러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작은아이를 안고, 큰아이 손을 잡은 아내가 조심스럽게 걸어오고 있었다. 작은아이를 넘겨받고 큰아이는 소모임 장소로 보냈다. 아내는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글쓰기 강의는 9시에서 9시 반 사이에 마칠 것이다. 지금 가도 이미 늦었기 때문에 결국 포기했다. 큰아이의 소모임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날 것이다. 나는 아직 저녁도 못 먹었기 때문에 근처 중국 음식점에 들어가 배를 채웠다.

 

 

 

큰아이가 모임을 마치고 나와서 손을 잡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작은아이를 안은 팔이 무겁다. 녀석 그새 또 많이 자란 모양이다. 인도에 쌓였던 눈이 녹다가 얼어붙어서 아주 미끄러운 상태였다. 한쪽 팔에 아이를 안고, 다른 쪽에 아이 손을 붙잡고 조심조심 천천히 걸었다. 간신히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마주 오던 중년의 아주머니가 꽈당 큰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엉덩방아를 아주 크게 찧었다. 옆에 서 있던 한 아저씨가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계속 넘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늘 아침 큰아이를 학교로 데려가는 골목길도 완전 빙판길이었다.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걸었으나, 아이도 나도 여러 번 미끄러져 균형을 잃었다. 거의 학교에 다 왔을 무렵 결국 아이가 미끄러지며 무릎을 찧었다. 내가 반사적으로 아이를 잡은 손을 끌어올려 넘어지지 않도록 했건만, 이미 아이가 무릎을 찧은 후였다. 우는 녀석을 간신히 달래어 학교로 들여보내고 나서 시계를 보니 평소보다 3배는 더 걸렸다. 저 골목길 얼음이 금방 녹을 일은 없을 테니, 내일부터는 훨씬 더 빨리 집에서 나서야겠다. 이게 다 눈 때문이다! 나는 눈이 정말 싫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맥거핀 2012-12-06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0년 첫 출근날 저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정말 상당했죠.

감은빛 2012-12-07 15:32   좋아요 0 | URL
그날 정말 대단했죠!
하필 그날 저는 파주로 외근을 꼭 나가야 할 상황이라 고생을 좀 했어요.
파주는 서울보다 더 많은 눈이 쌓였더라구요. ㅠ.ㅠ

한숨에 2012-12-07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고난의 행군이었군요..저도요..눈이 싫어요...눈이 싫다는 건 나이를 좀 먹은 거라고들 하던데...

감은빛 2012-12-07 15:34   좋아요 0 | URL
아, 저는 군대 있을때부터 눈을 싫어했어요.
보통 이 땅의 남성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나 싶은대요. ^^

oren 2012-12-07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0년 첫 출근하던 날 폭설은 대단했죠. 그 당시 일화 하나가 떠오릅니다.

일산에 사는 제 친구는 주말을 맞아 근무지(영월, 동강시스타)에서 일산으로 올라왔다가, 새해 첫 출근하던 날 새벽 일찍 일산을 나섰는데, 얼마 못가 폭설을 만났고 별의별 '위험한 고비'를 숱하게 넘기고 간신히 저녁 늦게 영월에 닿을 수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그 친구는 지금 바그다드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한국의 눈'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ㅎㅎ)

폭설이 내리면 제게 떠오르는 영화가 '투모로우'인데, 그 영화에서 여주인공 애미 로섬이 뉴욕의 도서관에 갇혀 맹추위에 떨면서도 '니체의 책'은 차마 불태울 수 없겠다는 '개념있는 대사'를 내놓던 기억도 떠오르네요. ㅎㅎ

감은빛 2012-12-07 15:40   좋아요 0 | URL
새벽에 출근해서 저녁에 닿으셨군요!
정말 별의별 고비를 숱하게 넘기셨겠어요.
그때 고생한 일화들이 상당히 많죠.
전철 중앙선에서는 역과 역 사이가 상당히 멀잖아요.
하필 딱 중간쯤에서 전철 차량 이상으로 승객들을 전부 내려서,
다들 눈 쌓인 벌판을 헤치며 걸었다는 일화도 있더라구요.

저도 [투모루우]에서 말씀하신 그 장면 기억이 납니다.
아무리 추워도 책을 태울 수는 없죠! 그럼요! ^^

blanca 2012-12-0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이가 참석할 수 있는 생협 소모임도 있군요! 고군분투하시는 감은빛님 정경이 떠올라 안타깝기도 하고 그렇네요. 저는 다행히도 아이 유치원이 바로 집 앞에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저대로 또 미끄러질려다 전신주 잡고 버티고 그랫습니다.^^; 다음에는 글쓰기 강의를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은빛 2012-12-13 14:56   좋아요 0 | URL
방송댄스 소모임이라고 TV에 자주 나오는 댄스음악을
틀어놓고 춤추는 소모임이예요.
생협에서 크고작은 행사가 있을때 공연을 하곤 했는데,
우리 큰아이는 초기멤버였고, 벌써 3차례나 공연을 했어요.
어린이가 4명, 어른들이 너댓명 정도 되는 듯 해요.

어젠 글쓰기 강의를 무사히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강의였어요.)
 

몇 살 때였는지는 모르지만 어릴 때 손자병법에 나오는 '배수의 진'에 대해 읽었다. 그 후 '배수의 진'은 내 생활태도 중 하나로 굳어졌다. 예전 글(http://blog.aladin.co.kr/idolovepink/4433998)에서도 짧게 쓴 적이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나는 중요한 일을 미루고 미루다가 막상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시작하곤 했다. 특히 시험공부를 그렇게 했는데, 친구들에게는 늘 '배수의 진'을 들먹이며, 그래서 오히려 성적이 더 좋다고 떠벌리곤 했다. 뒤는 강이고, 앞과 좌우는 모두 적으로 둘러싸인, 더는 도망갈 곳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가진 최대한의 잠재력을 모두 끌어낸다는 것이 어린 마음에는 멋져 보였다. 그리고 평소 공부를 게을리하는 것도 정당화할 수 있었다.

 

 

대학 때는 심지어 시험기간에조차 공부를 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집회 가느라 수업도 자주 빠졌으면서, 시험기간에는 또 술집이 한가롭고 조용해서 술 마시기 딱 좋다고 남들 도서관에 있을 때 나는 술집에 있었다. 그러면서 시험은 평소 실력으로 치는 거라고, 시험 치기 1시간 전에 딱 핵심내용만 훑어볼 거라고 큰소리를 치곤 했다.

 

 

 

공부뿐만이 아니다. 일하면서도 기획안이나 보고서를 제출해야 할 때에도 미리 쓰지 않고, 늘 마감까지 미뤄뒀다가 막판에 집중해서 처리하곤 했다. 원고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건 인쇄물로 남는 거라서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많고, 늘 보내놓고 나면 아쉬워하는 처지라서, 원고만큼은 '배수의 진' 전법을 쓰고 싶지 않은데, 달마다 마감일이 닥쳐서야 원고를 쓰기 시작하니,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한번 굳어진 습관을 고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어제 원고 마감을 두 개나 해야 했다. 하나는 어제까지였고, 또 하나는 벌써 마감이 지난 원고였다. 둘 다 대략 주제와 소재를 정해두긴 했지만 단 한 줄도 쓰지 못한 상태였다. 그 전날 저녁에 고민을 많이 했다. 약속을 취소하고 글을 쓸 것인가. 약속된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서 밤 새 글을 쓸 것인가. 그런데 결국 둘 다 이뤄지지 못했다. 약속을 갔다가 갑자기 다른 술자리로 이동했고, 거기서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돌아왔다. 도저히 글을 쓸 상태가 아니어서 그냥 잠들어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어제는 마음이 엄청 급했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글을 써야 했다. 점심 먹은 후에 짬을 내어 하나를 완성하고, 퇴근 전에 시간을 내어 다른 하나를 완성했다. 두 글 모두 한 번 더 살펴보고 싶은 욕심은 있었으나, 시간은 없었다. 그냥 마음을 비우고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무척 힘들었다. 어쨌거나 해냈다는 성취감과 조금 더 잘 쓸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동시에 찾아왔다. 다음 달에는 꼭 미리 써놓고, 충분히 다시 살펴보고 보내야지 마음먹었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다.

 

※ 주말엔 따뜻한 아랫목에 배깔고 엎드려 하루종일 읽고 싶었던 소설책들 쌓아놓고 읽었으면 좋겠다!(그러나 집안 일들도 해야하고, 애들과도 놀아줘야하고, 나가야 할 일정도 있고......)

 

 

 

 

 요건 다락방님을 비롯한 몇몇 알라디너들의 글을 읽고 구매했는데, 아직 펼쳐보지도 못했다. 과연 언제 읽을 수 있을까?

 

 

 

 

 

 

 

 

 

 

 

 

 이것도 재밌다고 소문난 책이었는데,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언제 읽을까?

 

 

 

 

 

 

 

 

흐 집에가서 책장을  살펴보면 읽고 싶어서 사모은, 그러나 아직 첫 장을 펼치지도 못한 소설들이 잔뜩 있을텐데, 겁이 나서 살펴볼 엄두가 안난다. 하나씩 천천히 읽어야겠지.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클 2012-11-23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배수'의 진 보다 더 독하게 정신 차려야 한다는 '백수'의 진이 있더군요. 제 주변에는 이제 지쳐서 배수의 진은 커녕 아무런 진세도 안 펼치는 구직자도 있지만요.

감은빛 2012-11-23 17:37   좋아요 0 | URL
'백수의 진'이라!
그거 정말 비장함이 느껴지는 단어군요! ^^
저는 가끔 백수가 부럽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러면 안되겠지요. -_-;;

다락방 2012-11-23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이번 주말에는 작정하고 책을 좀 읽어야지 너무 안읽은 책들이 쌓여서 안되겠어요. 그런데 집에서 읽으면 전 자꾸 잠이 와요. 스르륵~

감은빛 2012-11-23 17:3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는 안 읽은 책이 정말정말 많답니다!
이젠 책 사놓고 한 두달 구석에 쳐박아 놓아도 죄책감도 별로 안듭니다. ㅠ.ㅠ

다락방 2012-11-23 17:39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저는 몇 년 된것도 많아요. ㅠㅠ
결국 못읽고 팔아먹은 책도 많답니다. ㅠㅠ

기억의집 2012-11-23 19:5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도요^^

감은빛 2012-11-26 13:2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기억의집님.
저도 당연히 몇 년 지난 책들도 많습니다!
안 읽은 책들이 자꾸만 쌓이니까요.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책들을 다시 펼치기가 어렵더라구요.
이젠 책장 정리가 두려워진답니다.

기억의집 2012-11-23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고 하시는 글들이 있으신가봐요. 감은빛님 서재엔 좋은 글이 많아 고민 그닥 하지 않으실 것 같은데~

감은빛님~ 이상하게 애들이 크면 시간이 남아 더 읽을 줄 알았는데, 진짜 못 읽어요. 애들이 어려도 같이 있어줘야하지만 커서도 같이 있어주어야 해서 애들이랑 거실에 같이 앉아 이야기 저 이야기 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가요. 저는 애들이 크면 지 방에서 안 나온다 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더라구요. 그리고 애들이 성장할수록 밥 달란 말을 너무 자주 해서 전 거의 주방에서 밥 하다 시간 다 보내는 것 같아요. 흐흐.

감은빛 2012-11-26 13:27   좋아요 0 | URL
감사하게도 부족하기 짝이 없는 제 글을 받아주는 곳이 두 곳 있어서요.
감사한 마음으로 잘 써야지 하면서도
늘 마감때가 되면 급하게 쓴 형편없는 글을 보내게 되네요.

기억의집님, 애들과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시다니!
제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모습인데요!
아이들 다 키우고 나면 혼자 골방에서 책읽고 글쓰고 싶은데,
그게 언제쯤이나 가능한 일일지 모르겠네요.

루쉰P 2012-11-24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배수의 진, 백수의 진 등 흥미진진한 전략이군여 ㅋ 저도 백수의 진을 치고 정관정요를 읽은 적이 있었지요 ㅋ 저도 감은빛님처럼 막판에 몰아치는 습관이 있어요 책은 무지하게 쌓여 있구여 ㅋ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뭔가 전우애를 느끼는 페이퍼 였습니다 ㅋ

감은빛 2012-11-26 13:30   좋아요 0 | URL
루쉰님의 독서는 정말 대단해요!
그래서 그렇게 긴 글이 막힘없이 술술 나오는 거겠죠?

우리 교주님께서 전우애를 느끼셨다니,
열심히 성지순례를 했던 일개 평신도는 감격스럽나이다! ^^
 

최근 상태가 많이 안좋다.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속출하고 있는데, 전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터에서도, 집에서도 그리고 다양한 활동공간들에서도. 이렇게 어려운 일들이 한꺼번에 몰린 적이 있었나를 생각해보면, 그런 적은 절대 없었던 것 같은데.

 

어려운 일 하나를 풀어내는데에도 끙끙거려야 할 판에, 몇 가지 문제가 동시에 겹쳐서 오니까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아예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것이 방법일까? 그래서 최근 정신 나간 놈처럼 살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나름 잘난 놈이라고, 고개 빳빳하게 쳐들고 잘난 척 하면서 살아왔는데, 한순간 나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놈인지를 처절하게 깨닫게 된다.

 

어제 밤 아이들을 재우고, 설겆이를 하면서 생각했다. 이건 어쩌면 악몽일지도 모른다. 잠에서 깨어나면 잊혀질 그런 악몽이었으면 좋겠다. 다시 나는 예전처럼 목에 힘주고 잘난 척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설겆이를 마치고 잠들었다.

 

아침에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올리고, 딱딱한 목과 어깨 근육을 주무르면서 나비는 결코 장자가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구나. 당연한 생각을 이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깨닫는다.

 

 

**********

 

기다리던 책이 나왔다. 책 정보에 나와있지는 않지만, 이 책 뒷부분에 있는 우리나라 사례들은 내가 쓴 글이다. 존경하는 선배님께 부탁받았기 때문에 잘 쓰려고 했지만, 자료도 부족했고, 시간도 부족했고, 경험도 부족했다. 그래도 지금 읽어보니, 좀 더 시간을 갖고, 더 자료를 찾고, 더 글을 다듬었다해도 이거보다 더 잘쓰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이건 아마도 나의 역량이 이정도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 하다. 여러모로 나의 모자람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맨 뒤에 포함된 내 글은 많이 부족하지만, 이 책은 정말 값진 책이다. "말은 그만! 이제 나무를 심자!"라는 이 아이들의 직접행동은 말만 번지르르한 나 같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다! 아이들에게 권하기에도 좋고, 어른들이 읽어도 여러모로 느끼는 바가 많다.

 

지구를 구하는 길은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의외로 단순하고 간단한 곳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고민과 토론과 논의 보다는 묵묵히 행하는 간단한 행위 하나가 답일 수도 있겠다 싶다.

 

 

 

 

 

 

 

 

 

 

 

 

 

 

 

 

※ 좀 전에 출판사로부터 실수로 내 이름이 빠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1쇄가 모두 판매되면 2쇄를 찍을 때 이름을 추가하겠다는 말씀도 하셨다.

음, 아마도 이 글을 읽으신 걸까?

이름이 빠진 건 별로 상관없는데, 책이 어서!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이 책이 많이 알려지는만큼, 지구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더 많아질테니.

(2012-11-21 오후)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맥거핀 2012-11-15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또 여러 문제가 겹칠 때면 한 가지가 실마리가 보이면 나머지도 실마리가 보이는 경우가 많더군요(물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요.) 가장 쉬운 문제부터 풀어라,는 수능문제 풀 때만 쓰는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힘내시고 문제들이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네요.^^

감은빛 2012-11-15 15:22   좋아요 0 | URL
맥거핀님, 따뜻한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지금 저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뭐가 가장 쉬운 문제인지 판단조차 어렵네요.
세상 돌아가는 문제, 이 사회의 문제점과 지구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뭐가 가장 중요하고 또 뭐가 가장 쉬운 문제인지 잘 알 수 있을 듯한데,
정작 제게 닥쳐온 문제들에 대해서는 판단이 되지 않네요.
그저 눈 앞에 닥친 문제들을 고민하고 속을 썩이기만 할 뿐이예요.

맥거핀님의 응원 덕분에 조금은 힘이 납니다!
힘 내보겠습니다! ^^

숲노래 2012-11-15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 보면 '나무심기'란 어른들이 만든 어떤 제도권과 같아요. 예부터 '나무를 심은' 적은 없었으니까요. 언제나 씨앗을 받아 나무를 키웠지, '나무를 심지' 않거든요. 아이들이 나무심기 행동을 한다 할 적에도 '나무를 심는 일'이 무엇인지를 슬기롭게 깨닫도록 돕는 책이기를 빌어요.

감은빛 2012-11-15 15:25   좋아요 0 | URL
이 책의 가치는 거기에 있는 듯 해요.
이 아이들은 어른들이 시켜서 나무를 심지 않거든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지요.
어른들이 말로만 떠들고, 싸우는 동안
아이들은 스스로의 깨달음에 의해 직접 행동하는 것.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루쉰P 2012-11-20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감은빛님 글이 책에 실렸군요. ^^ 왕가리 마타이라는 흑인 여성이 생각이 나네요. 아프리카에서 나무를 심으며 대 격투를 벌이던 여성이었는데 요근래에 자서전도 나온 듯 싶더라구요.
이 책에 감은빛님의 글이 실렸다면 안 살 수가 없죠. ㅋㅋ
저는 항상 여러 문제와 싸우고 있어요. '영원의 도읍'에서 주인공이 한 말인데요.
'항상 위기에 싸우고 있는 사람은 더 문제가 발생해도 담담하다.'란 그런 류의 말이었던 것 같아요. 인생은 고뇌나 문제가 없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저도 제 인생관이었는 데 20살 넘어 사회를 나오면 바뀌었어요.
인생은 고뇌나 문제가 있는 게 당연하다고 말이죠. 없는 게 이상하다고 ㅋ 인정하고 들어가니 좀 맘은 편하더라구요. 대신 그런 것들에 휩쓸리지 말자. 마음 먹었는 데 이런 10년 수양 도로아미타불 이라구. 집착어린 사랑에 빠져 완전 맛이 갔네요 -.-
요즘은 출근 전에 거울을 보며 내 마음은 태평양 미사일 수백만 발이 떨어져도 다 받아들이는 태평양이라고 외치며 집을 나서고 있어요. 풉!
암튼 감은빛님의 성지 순례 덕에 리뷰 하나 올렸습니다. ㅎㅎㅎㅎ 역시나 순례객의 발걸음이 무서워요. ㅋ 와 주시고 기다려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

감은빛 2012-11-20 13:20   좋아요 0 | URL
루쉰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맹렬히 환영합니다! ^^

이 책 맨 끝에 조금 포함된 건 제가 쓰긴 했지만,
엄밀히 말해서 제 글이라고 보기 어려워요.
자료조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이 책에 어울리는 말투로 정보를 전달한 것 뿐이예요.

게다가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모자란 글이예요.
책에 제 이름도 안 나와있고 해서,
여기에 밝힐 생각이 없었는데, 책 소개를 하다보니 그냥 말하고 말았네요.

루쉰님 서평 기대됩니다.
지금은 여유가 없고, 이따가 꼭 찾아 읽을 게요! ^^

2012-11-21 0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1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눈을 뜨면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된다. 조금이라도 더 달콤한 꿈 속에 머물고 싶어, 이미 깨버린 잠을 다시 청해보지만, 인정사정없이 알람은 맹렬하게 울어댄다. 아이들을 깨우고, 씻기고, 먹이고, 틈틈히 나도 씻고, 아이가 남긴 밥을 먹는다. 시계는 어느새 나서야 할 시간을 가르키는데, 아이는 자꾸만 딴 짓을 한다. 예쁜 분홍색 바지가 싫다고 징징대는 아이에게 파란색 어벙벙한 바지를 간신히 입히고, 두터운 잠바가 싫다고 또 징징대는걸 겨우겨우 달래어 입혀서 나선다.

 

뛰고 또 뛰어서 간신히 출근시간 세이프. 컴퓨터를 켜기도 전에 이런저런 일거리들이 밀려들어온다. 각종 서류들과 메모지들을 살펴보면서 머리속으로 우선순위를 정한다. 순서대로 해야할 일들을 입력하면서 컴퓨터 부팅을 기다린다. 아참, 아무리 바빠도 커피는 한잔 마셔야지. 직장생활을 하기 전에는 소화가 안되어 커피를 마시지도 못했다. 한 잔만 마셔도 하루종일 속이 더부룩하고, 입맛이 없어서 입에 대질 않았는데,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하루에도 서너잔씩 마신다. 거래처를 방문할 때마다 나오는 믹스커피 한 잔. 졸릴때마다 마시는 믹스커피 한 잔. 정말 몇 년 전에 커피를 한 잔도 못 마시던 사람 맞나 싶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점심시간,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해 배는 고프지만,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다. 뭐 먹으러 갈까 하고 물어보는 동료에게 글쎄, 입맛도 없는데 아무데나 가자 하고 답한다. 밥을 먹는다기보다는 배를 채우는 행위에 가까운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잠시 웹서핑을 하다가 다시 일을 시작한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슬슬 눈치를 봐야 한다. 꼭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사장님과 상사들이 먼저 퇴근을 하고 난 후에 일어서야 할 것 같다. 애들을 데리러가려면 서둘러야 하는데, 오늘따라 사장님 퇴근이 평소보다 늦다. 에라 모르겠다. 더 늦으면 어린이집에 혼자 남아 기다려야 할 작은 녀석에게 미안해진다.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서둘러 발을 놀린다.

 

지하철을 내리자마자 계단을 뛰어 오른다. 큰 아이는 학원에서, 작은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다. 1분 1초라도 먼저 가고픈 마음에 숨이 차도록 뛰어간다. 막상 만난 큰 녀석이 엄마를 먼저 찾는다. 엄마는 오늘 약속이라고 말해주면 입을 삐죽거린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듯한 눈치다. 웃는 얼굴로 잘 다녀오셨어요 라는 인사는 못할지라도, 엄마를 찾으며 울먹거리면 숨이 차도록 뛰어온 사람으로서는 화가 나게 마련이다. 이럴때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애써 화를 참고 아이를 달래면 아이는 오히려 더 짜증을 내고 엄마를 찾으며 우는 경우가 많다. 달래면 달랠수록 아이는 더 울고, 짜증은 더 낸다. 아이를 달래기만해서 쉽게 풀어진 경우는 거의 없다. 반대로 화를 내거나, 화를 내지는 않더라도 아이의 태도를 따끔하게 야단치면 아이는 처음에는 더 울거나 혹은 울음을 참으며 억지로 따라오지만, 조금 지나면 금새 태도를 바꾼다. 이후에는 오히려 아이가 먼저 이런저런 이야기를 재잘대며 잘 따라온다.

 

큰 아이를 만난 후엔 이제 작은 아이를 데리러 간다. 작은 녀석은 조금 걷다가 두 팔을 벌려 아나됴! 라고 말한다. 좀 더 걷자고 대답하고 손을 끌면, 이내 발을 질질 끌며 아나됴! 아나됴를 반복한다. 안아서 조금 더 걷다보면 그제서야 엄마를 찾는다. 엄마는 좀 있다가 올거야 라고 답하면 그말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끝을 올려서 질문으로 답한다. 응 하고 크게 고개를 끄덕여준다.

 

하나는 안고, 하나는 손을 잡고 집에 들어선다. 아침에 급하게 나선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 있는 집은 말 그대로 엉망이다. 게다가 아이들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장난감과 인형 등을 꺼내 늘어놓는다. 냉장고를 열어봐도 마땅한 반찬거리는 없고, 딱히 먹고 싶은 음식도 없고, 대충 남아 있는 반찬들과 계란과 김으로 아이들 밥을 먹인다. 밥 먹다가 자꾸만 딴 짓하는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해가면서 밥 한 공기를 다 비운다. 아이들이 빨리 밥을 먹어야 상을 치우고 설겆이를 하던가 할텐데, 녀석들은 여전히 밥은 놔두고 장난을 치거나 딴 짓을 하고 있다. 잔소리도 하루 이틀이다. 화를 내고 밥그릇을 뺏고나서야 아이들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밥을 싹싹 긁어 먹는다. 빽 화를 내고 났더니 설겆이 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아이들을 씻기기 전에 잠시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열어본다. 그 동안 큰 아이에게 학교 숙제를 다 끝내라고 일러두고, 작은 녀석은 언니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내 주위에서 놀게 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 큰 녀석에게 숙제 빨리 끝내라고 잔소리를 시작하고, 작은 녀석을 먼저 씻기기 시작한다. 씻기고, 닦고, 말리고, 바르고, 입히는 동안 또 소리를 몇 번이나 질러야 하는지. 그래도 다 씻은 후의 아이들은 밝고 예쁘다. 두 녀석의 뺨에 뽀뽀를 하고 잠자리에 눕힌다. 녀석들의 장난은 누워서도 계속된다. 어느 정도 까지는 봐주지만, 장난이 길어지면 아침에 일어날 때 힘들어하기 때문에 두 놈을 격리시켜야 한다. 유난히 늦게 자는 작은 녀석을 데리고 나와서 큰 녀석이 먼저 잠들기를 기다린다.

 

한동안 놀아주다보면 작은 녀석도 곧 졸리다고 코 자러 가겠다고 말한다. 작은 녀석까지 간신히 재우고나면 그제서야 나도 씻을 수 있다. 씻고 나와서 잠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졸리면 잠자리에 든다. 잠들기 직전, 문득 설겆이를 못한 것이 맘에 걸린다. 나중에 돌아온 애들엄마가 하겠지. 정안되면 내일 아침에 대충 하던가. 그러면서 다른 한 편으로 이게 사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남들이 얘기하는 티비 프로그램이나 영화나 음악 얘기 따윈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다. 친구 녀석은 맨날 나를 무슨 원시인이나 외계인 취급하고,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도 대화에 잘 끼질 못한다. 하고 싶은 일, 보고 싶은 영화, 듣고 싶은 음악은 많은데, 늘 일상에 쫓겨 겨우겨우 살아가는 내 모습이 참 한심하다 싶다. 피곤에 지쳐 겨우 겨우 잠이 드는 내 처지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어느새 잠이 든다.

 

 

 

 

 

 

 

 

 

 

 

 

 

 

 

 

 

 정신분석학이라면 의례 프로이트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한방에도 정신 질환 혹은 심리치료를 다루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녹색당에서 만난 한 한의사는 공황장애를 전문으로 다루면서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분이었다. 장애인 무료 진료를 오랫동안 해오고 있고, 장기투쟁 사업장이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투쟁현장에도 달려가서 활동가들에게 무료 진료를 하는 분이었다. 지난 여름 그 분이 강정마을에 다녀온 후 들었다. 그 분 말씀이 이런 정신 질환에 처방하는 약은 오히려 흔한 질병에 쓰는 것보다 약값이 더 비싸다고 한다. 현장 활동가들이 많이 지치고, 일상적인 폭력에 시달리면서 마음의 상처가 깊은데, 제대로 치료하자면 돈도 많이 들고,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강정마을에는 불법으로 해군기지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활동가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연행되곤 한다. 그 곳을 떠나야 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데, 떠나지 못하고 계속 상처를 받아야 하는 처지의 활동가들을 생각하며 긴 한숨만 내쉴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지인으로부터 소개 받은 이 책의 저자도 역시 한방으로 정신 질환이나 심리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분이다. 폭식, 소화불량, 편두통, 습관성 음주와 흡연 등 우리 주변에 만연한 다양한 몸의 문제들이 사실은 마음의 문제는 아닐까 생각해왔다.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받는 갖가지 스트레스들이 결국은 몸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병원에서 이런저런 처방을 받아도 결국은 다 임시조치일 뿐이고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 것이다.

 

요즘 누굴 만나던 '바쁘다'와 '정신없다' 그리고 '재미없다'는 말을 달고 산다. 그만큼 내 마음은 피폐해져서 상처를 받았다는 뜻일 것이다. 이 책을 차근차근 읽으며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쓰다듬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2-10-30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많이 바쁘시군요. 저는 시험 끝난지 이제 며칠 밖에 안 지났는데 이상하게 학교 생활이 여유롭지가 않네요, 책 읽고 글 쓰는 시간마저도 점점 줄어들고 있고요. ^^;;

감은빛 2012-11-12 17:46   좋아요 0 | URL
댓글 많이 늦었네요.
저만 그런게 아니라, 요즘 다들 바쁜 것 같아요.
이제 연말이 다가오니 더더욱 그런 듯 해요.
시루스님과 저에게 여유가 생기기를 바래봅니다. ^^

북드라망 2012-10-30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

감은빛 2012-11-12 17:4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이 글을 읽으셨다니!
부끄럽네요.
열심히 읽고 열심히 들여다보려고 노력중입니다.

조선인 2012-10-30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해까지 우리집 풍경이군요. 큰애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작은애가 일곱살 이상이 되면 한숨 돌릴 수 있게 됩니다. 그때까지 힘내세요!!!

감은빛 2012-11-12 17:48   좋아요 0 | URL
늘 희망과 용기를 주시는 조선인님.
그렇지만 거기까지 아직 여러해가 남았단 말이죠.
그리고 저는 하루하루가 참 힘들게 느껴지네요.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blanca 2012-10-31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쁜 하루, 감은빛님의 아이들은 자라서 아버지의 이 성실함과 따뜻함을 추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화이팅!

감은빛 2012-11-12 17:48   좋아요 0 | URL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기억해준다면 고마운 일이겠지요.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북극곰 2012-11-12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 저의 일상하고 판박입니다. ㅠ.ㅠ
감은빛님 화이팅입니다!!!

감은빛 2012-11-12 17:4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북극곰님.
공감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북극곰님도 힘내시길 바랄게요!

hanicare 2012-11-15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조선인님 페이퍼에 달아놓으신 명료한 댓글을 타고 이 서재에 착륙했는데
바로 이 페이퍼를 읽고는 댁의 남편은 도대체 뭐 하시는데요?하고 답글을 달았다가
남의 가정사에 내가 왠 참견이람 싶어 넘치는 오지랖을 우산 접듯 착 접고는 댓글을 지웠습니다. 그리고 오늘 어떤 분의 피아노 연습 페이퍼에 달린 댓글을 보니 어이쿠 남자분이셨군요.
내 시야에 구멍이 숭숭 났나 도대체 어떻게 읽었길래 이런 황당한 착각을.
우스꽝스런 첫인사가 됐네요.아무튼 새 서재인을 발굴하게 되어 반가와요.
힘들다고 하시지만 행복해보이는데요^^


감은빛 2012-11-15 11:1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하니케어님(이렇게 불러드리는 것이 맞나요?)
먼저 찾아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어 저도 반갑습니다! ^^

이상하게 제 글을 읽은 분들이 저를 여성으로 단정짓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이 글처럼 육아에 대한 글이 아니라도 그냥 서평도 그렇더라구요.
그런 착각이 처음은 아니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글에는 제가 아빠임을 드러내는 부분들이 여럿 있어요.
긴 글이고, 제 글재주가 워낙 미천하여 잘 이해하지 못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아이들 키우는 일도 그렇고, 세상 사는 일도 그렇고,
힘들고 지치지만 또 어느 순간에는 그게 행복이 아닌가 싶고 그렇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