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 동녘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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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는 민요가 하나 있다. 그것은 고통 받는 민중들의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옛 노래다.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선율에는 슬픔이 담겨 있듯이, 이것도 슬픈 노래다. 조선이 그렇게 오랫동안 비극적이었듯이, 이 노래도 비극적이다. 아름답고 비극적이기 때문에 이노래는 300년 동안이나 모든 조선 사람들에게 애창되어 왔다.
서울 근처에 아리랑 고개가 있다. 이 고개 꼭대기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한 그루 우뚝 솟아 있었다. 조선왕조의 압정하에서 이 소나무는 수백 년 동안이나 사형대로 사용되었다. 수만 명의 죄수가 이 노송의 옹이 진 가지에 목이 매여 죽었다. 그리고 시체는 옆에 있는 벼랑으로 던져졌다. 그중에는 산적도 있었고 일반 죄수도 있었다. 정부를 비판한 학자도 있었고, 조선 왕족의 적들도 있었고, 반역자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압제에 대항해 봉기한 빈농이거나 학정과 부정에 대항해 싸운 청년 반역자들이었다. 이런 젊은이 중의 한 명이 옥중에서 노래를 한 곡 만들어서는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천천히 아리랑 고개를 올라가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가 민중에게 알려진 뒤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이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의 즐거움과 슬픔에 이별을 고하게 되었다. 이 애끊는 노래가 조선의 모든 감옥에 메아리쳤다. 이윽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최후의 권리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아리랑’은 비극의 상징이 되었다. 이 노래의 내용은 끊임없이 어려움을 뛰어넘고 또 뛰어넘더라도 결국에 가서는 죽음만이 남게 될 뿐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노래는 죽음의 노래이지, 삶의 노래가 아니다. 그러나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수많은 죽음 가운데 승리가 태어날 수도 있다. 이 오래된 ‘아리랑’에 새로운 가사를 붙이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 한 구절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은 죽었으며, 더욱 많은 사람이 ‘압록강을 건너’유랑하고 있다. 그렇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는 돌아가게 될 것이다.

『SONG OF ARIRAN』

"중국에서는 맑은 강물이나 시냇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조선 사람들은 강에서 투신자살할 수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답니다. 중국의 강들은 그러기엔 너무 더럽지요."

"당신네 조선인들도 일본 사람만큼이나 자살을 좋아하는 모양이지요?"

"자살은 식민지 민중이 선택할 수 있는 불과 몇 안 되는 존엄한 인간의 권리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자살마저도 선택할 자유가 없습니다. 당신이 말한 서울의 그 다리 위에는 벌써 오래 전에 일본 놈들이 푯말을 세워 두었지요. 거기에는 ‘5분만 기다리시오.’라고 씌어 있습니다. 굶주린 아기 엄마들이 종종 자기 자식을 강물에 집어던지고는 자신도 뛰어듭니다. 그래서 전담 경찰을 파견해 혼자 그곳에 와서 심각한 얼굴로 강물을 내려다보는 사람을 감시합니다. 이것이 우리 조선 사람에게 베푸는 훌륭한 친절이라고 그놈들은 생각합니다. 안둥 부근에 있는 압록강 또한 자살하기에는 딱 좋은 곳이지요. 자살하지 않으려면 강을 건너서 망명하는 길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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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 - 인지 과학이 밝힌 진보-보수 프레임의 실체
조지 레이코프 & 엘리자베스 웨흘링 지음, 나익주 옮김 / 생각정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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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스스로를 진보나 보수로 정치색을 단정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음을 볼 수 있다이들은 희안하게도 어떤 정책적인 문제에 닥치면 진보나 보수의 노선을 충실히 따라간다예를 들어 무상급식이나 무상복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최저임금 인상 또한 반대를 하며 세월호에 대한 거부감을 보인다반대로 복지의 확대와 최저임금 인상을 찬성하는 이들은 세월호 리본을 달고 다닌다이런 첨예한 갈등은 엉뚱한 곳에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곤 하는데 평창올림픽에서 한 선수가 세월호 리본을 착용했다고 하여 반대 진영의 사람들로부터 여론의 뭇매를 맡기도 했다점점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에 한 번쯤은 고민해 보아야만 할 문제가 바로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이 아닐까한다.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 선긋기에 대하여 인지학적 연구를 꾸준히 해왔던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통해 이념이라는 것은 우리의 프레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 에는 프레임의 문제에서 구체적으로 전혀 다른 생각과 입장을 갖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있다프레임 안에서 보수와 진보는 왜 극단적이며 대립적인 입장이 되는 것일까?에 대하여 레이코프와 웨흘링은 정치적인 은유에서 이 두 개념이 갈라진다고 한다.

 

저자들은 인간의 사고에 가장 중요한 네 가지 이유를 든다.

첫째사람들은 자신의 사고가 의식적이라 가정한다는 것그러나 대부분의 98퍼센트는 완전히 무의식적사고를 한다.

둘째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합리성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신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다그러나 신체와 뇌의 물리적 실재에 의존한다.

셋째많은 사람들은 추론이 보편적이라고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사유한다 믿는다그러나 모두가 하나의 보편적인 추론 방식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사람들은 세계에 대해 서로 다르게 사유한다저마다의 문화적 경험과 개인적 경험을 통해 마음속에서 변별적인 구조를 습득해왔기 때문이다.

넷째사람들은 인간이 축자적으로 -세계 내에 존재하는 그대로-사물을 이해할 수 있으며사물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그러나우리는 언제나 은유를 통해 사유하고 말한다는 사실하지만 이 사실을 거의 의식조차 못 하고 산다예컨대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 은유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쉽게 추론하거나 말할 수 없다는 함정이 있다.

 

은유의 표현은 정치적 연설이나 해석에서 선호되고 있다이 은유가 지닌 힘은 매우 조작적이고 설득적인 힘을 실을 수 있기에 혹자들은 모든 은유에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말한다따라서 저자들은 은유가 어떻게 정치적 사고와 정치적 행위를 정의하는지어떻게 실제로 국가 간 전쟁을 초래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인간 인지의 기본적인 기제를 살펴보아야 하며 인간이 기본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은유로 이해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가령자유와 정의공정성과 같은 개념이 이 은유를 통해 우리의 사고를 정립해가는 과정을 유추하는 것이다이 과정에서 보수와 진보의 개인과 국가의 관계적 은유가 국가는 가정이라는 개념이다국가는 가정이라 규정할 때 국민은 자녀가 되고 정부나 정부의 수장은 부모가 된다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태도에서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이 나누어지는데 이때 엄격한 아버지 가정 모형이 보수적 사고를 자애로운 아버지 가정 모형이 진보라는 정치적 차이를 만든다고 한다이런 양육과정이 뇌신경 회로의 작동 방식에 영향을 주며 길들여진 은유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골자이다.

반면진보나 보수의 그 중간개념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모형의 사람들을 이중개념주의(biconceptualism)’ 소유자들로 정의하며이 이중개념주의를 지닌 사람이 진보와 보수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강조한다대부분의 선거의 승패는 사실 이중개념을 지닌 이들에게 있다스스로를 중도라 생각하는 이중개념 소유자들도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의견을 갖고 있다.

 

상당히 흥미롭게 읽히는 책이었다신문뉴스정치연예경제모든 부분에서 진보와 보수의 싸움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하지만스스로를 진보와 보수로 단정 지으며 모든 사람들을 이분법의 잣대로만 판단하려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도 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보수와 진보가 은유로 만들어진 프레임에 갇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같이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서로에게 드리워진 은유의 장막이 걷혀야만 맨얼굴이 드러난다그때의 맨얼굴이 진짜 정치다.

 

*책속에서 

진리나 지식에 관한 한 은유는 중대한 퇴행으로 봐야 한다이 퇴행은 언어 자체의 퇴행이거나 은유적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퇴행이다-p043

 

도덕성은 정치의 아주 중요한 동력입니다더욱이 도덕성은 추상적인 개념즉 우리 마음이 은유적 사상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개념이지요.-p063

 

보수주의를 뜻하는 conservatism은 언어적 기원이 손대지 않고 계속 그대로 두고 보존하거나 유지하는 것으로 번역되는 라틴어 낱말 conservare에서 나왔다정치적 보수주의는 전통적인 가치와 사회적 규범을 보호한다는 개념에 근거한다반면에 진보주의는 개념적으로 사회의 진보와 변화를 향한 긍정적 태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p087

 

보수적인 정책이 범죄자에게 더 엄격한’ 경향이 있고 진보적인 정책이 사회적 취약 계층에게 더 친절한’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p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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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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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이른젊다면 젊은 나이에 떠나간 시인 허수경누군가를 떠나보낸 슬픔은 아직도 우두커니 남아서 문득문득 가슴에 작은 불이 들어오곤 한다허수경 시인은 평생을 방랑자처럼 살았다자발적 방랑자를 꿈꾸었던 시인은 자신의 문학에 자신의 말을 담는 것으로 그 의미를 다했다자신의 그림자를 벗 삼아 시대를 걸었던 방랑자 시인 허수경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나 역시 무슨 말을 이 시대에 남기고 떠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는 허수경 시인의 방랑의 기록이다독일에서 고대 근동 고고학을 공부하면서 써놓았던 페이지를 읽는 일은 무척 쓸쓸했다마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경건한 수도자들과 같았고 단조롭고 관조적인 은율이 마음을 더욱 애상에 깃들게 하였다. 


그때나는 묻는다.

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왜 나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

서로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때 서로 어긋나거나 만나거나 안거나 뒹굴거나 그럴 때,

서로의 가슴이 이를테면 사슴처럼

저 너른 우주의 밭을 돌아 서로에게로 갈 때,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럴 때,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그럴 때,

나는 내가 태어나서 어떤 시간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이 고맙다.

-고마웠다그 생애의 어떤 시간 (p131)



허수경 시인은 황폐한 서역땅 독일에서 공부를 시작하였다노년의 공부는 힘들고 외로운 작업이었다가난한 코스모폴리탄의 삶을 살짝살짝 엿보면서 부와 명예보다는 가난한 독학생이 되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땅 속에 오래 잠들어 있던 수메르 문자를 번역하면서 허수경 시인은 무엇을 배우고 싶었던 것일까문득문득 궁금해지곤 한다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나 역시도 공부를 놓지 못하고 있다이미 불혹이 넘었는데공부를 하는 것을 무슨 대단한 사치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할 일이 없는 사람이니까 공부를 한다는 말도 듣기도 하였다하지만공부를 하는 것은 아무 이유도 없이 시작한 것이었다뭔가 거창한 또는 대단한 이유가 있을 거라 기대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몰랐던 것을 배우는 기쁨 하나 때문에 공부가 계속 이어져갔다세상에 배울 것은 너무도 많고 내가 아는 것은 정말 너무 작고 작은 일부라는 자각이 공부를 하게끔 만들었다허수경 시인도 그러했을까수많은 말 중에 자신만의 문학탑을 만들어 오로지 자신의 말’ 로 된 문학을 만들어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그 소박한 소망이 너무도 숭고하여 타지의 외로움이 너무 사무치기에 책을 읽으면서 눈물이 왕왕 났다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 자신의 그림자를 동무 삼아 걸어야만 했던 깊은 고독의 외길에서 잠을 자듯 조용한 죽음을 기다리며 그리움만 쌓여가는 시간의 더께위에서 춤을 추듯 하나씩 하나씩 풀어놓는 시인의 말말말...

 

낙엽비가 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고독이 흘러넘치는 계절을 홀로 견디는 일은 왜 그렇게 쓸쓸한 것인지오랜 서랍장 속에서 케케묵은 기억들을 꺼내 들어서는 왜 그때는 그렇게 어리석었을까를 후회하기도 하며 왜 그때는 그토록 용감하였던 것일까 하며 자조를 하다가도 어떤 방법으로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이제는 그땐 그랬지’ 라며 다시 시간을 되돌려도 변하는 것은 없다는 진실을 마주한다그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제서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젊었을 때는 몰랐던 진정한 나의 모습을 나이가 들어 길고 긴 고독의 길에 접어들어서야 내면의 나와 악수할 용기가 생겼다고나 할까하나씩 하나씩 이야기를 꺼내 놓은 허수경시인의 이야기는 그래서 위안이 된다나의 시간을 덤으로 깨우며 내게도 남아있는 시간들은 얼마쯤 남아 있을까를 가늠해 본다나는 어디까지 왔을까잠을 자듯 조용한 죽음을 기다리는 삶 안에 나는 어떤 말을 남길 수 있을까후회와 미련이 점철된 삶에 나를 기억해 줄 나의 말그것이 허수경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문학의 본질이 아니었을까.

 

어떻게 살아야만 그 근원을 스스로 알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을까하는 거……상스러운 말그리고 그 말에 휘둘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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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더 1 브론크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스테판 툰베리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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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난무하는 세상그런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묘연하다도처에 널려있는 폭력 앞에서 사랑이나 평화라는 말은 너무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해 보이기까지 하다브레이크가 고장 난 채 과속하며 달리고 있는 자동차가 어쩌면 현대의 가족들의 모습이 아닐까그만큼 우리는 가족이란 목적과 의미를 상실한 채 무턱대고 달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아 반장과 부반장을 해왔고 늘 친구에게 둘러 싸여 있었던 막내가 최근 학교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학교에 여러 번 오가다보니 학교폭력이라는 것이 남의 이야기인줄 알고 있었는데 내 아이의 문제가 되고  보니 학교 폭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지를 새삼 느낀다. 가해자 부모들과 미팅을 하면서도 느꼈던 것은 학교 폭력이 왜 해결되기 힘든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매일 같이 또래들과의 노는 즐거움에 빠져있던 아이는 자신의 친구들이 좋은 친구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친구들을 멀리 하기 시작했다. 집단에서 이탈한다는 것은 그 집단에서 왕따가 될 각오가 있어야 한다.  아이와 친한 모든 친구들과의 관계를 교묘히 끊어놓았고 전혀 모르는 아이들에게조차 전화로 협박을 받는 일까지 있었다. 점점 고립되던 아이는 학교에 도움을 요청하였고 현재는 학교와 가정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아이는 친구들과의 관계에 집중하던 것을 가족에게 쏟고 있다. 어쩌면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지능이 훨씬 높다. 그것도 나쁜 쪽으로는 더욱.  이제 더 이상 자신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는 아이에 대해 집단적인 따돌림은 교묘했고 치밀했다. 성인이라면 이미 자신들의 인생에 대한 플랜이 짜여져 있고 계획이 되어 있기에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학교 폭력은 가정과 가정이라는 집단의 문제이기에 더욱 난제로 남겨진다.  게다가 어린 나이의 학교 폭력이라는 것은 정신이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한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 전혀 없다는 것이 또 하나의 큰 문제였다.  자신의 아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과 신념으로 똘똘 뭉친 이들은 집단이었지만 피해를 당하는 내 아이는 혼자였다. 그럼에도 아이는 잘 이겨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가운데 읽게 된 범죄스릴러 더 파더 1.2』 는 상당히 의미깊게 다가왔다. 


가해자  부모들은 자신들의 아이가 집단폭력을 가했다는 자체를 믿기 힘들어했다. 눈앞에서 거짓말을 태연히 하고 있는 아이의 말이 분명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를 두둔하였고 되려 선생님이 아이에게 거짓말을 시켰다며 선생님께 화를 내는 가해자의 부모들을 모습을 보며 극단적이고 이기적인 현대가족의 복사판을 보는 기분이었다. 눈앞에서 내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면 분명 잘못을 인정하게 하고 사과를 하는 것이 기본적인 교육임에도 그 부모들은 그러지 않았다. 거짓말을 두둔했던 것이다. 그것도 선생님의 탓을 하면서. 세상은 메아리다. 자신이 한 모든 것은 언젠가 자신에게 그대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미성숙한 성인들이 아이에게 거짓말을 가르치고 있었다. 


 사랑으로 아이를 키우는 말에는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아이를 사랑하는 것에는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믿음도 필요하지만 사회인으로서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 주어야 하는 역할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곁가지도 잘라주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레오아빠가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우린 가족이다

가족은 서로를 지켜주는 거야,-p146

 

가정폭력이것은 상상이상의 고통으로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다강한 연대와 소속감을 가지며 사회인으로 성장하기까지 가족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경우 정신적인 건강을 유지하기 힘들다현재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정폭력은 아주 오랜 시간동안 축적되어 곪아서 어디서부터 메스를 대어 고름을 짜내야 할지 모르는 지경에 다다르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지만우리는 누구나 알고 있다소설보다 현실이 더 잔인하다는 것을가족범죄단 사건은 비단 유럽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니까.  스웨덴 전역을 충격에 빠뜨렸던 밀리터리 갱’ 사건이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 가족범죄단이었던 '밀리터리 갱'은 소설에서는 '특수부태'로 분했다. 

 

미움과 사랑은 한 가지 감정에서 출발한다문득 그런 생각이 확신을 만들어주는 소설이라고나 할까아버지 이반은 그러한 사람이었다. 자식을 사랑만큼이나 미워했다.아니면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거나. 반듯하고 조용하고 신중했던 맏이 레오에게 아버지란 닮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사랑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미워하면서도 가족이란 집단에 속했을 때는 누구보다 강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을 향해 폭력으로 소통하는 남자였던 아버지 이반은  레오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죽도록 맞고 돌아온 날상대를 한 방에 제압하는  싸움법을 알려준다. 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맏이로서의 책임감과 동시에 아버지로부터 동생들과 엄마를 지키는 역할까지 해야 했던 레오에게는 아버지는 스승이면서도 적이었다. 이반은 아내가 도망치려 할 때마다 심하게 폭행을 가했고 아내가 가출하여 외할아버지 집으로 피신하였을 때에는  외할아버지 집을 불태워 버렸다. 모든 것을 아이들과  함께 했다. 가정폭력범과 방화범으로 교도소에 갔을 때만 빼고 아이들은 가정폭력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왔다. 감옥에 갔다 온 후, 더러움과 게으름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아버지의 아파트에 레오가 간 이유는 이반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 였다. 이반은 레오가 강도단 두목이 된 것은 까마득히 모른 채 그저 성공한 사업가 흉내를 내는 레오의 돈을 무덤덤히 받아들였다. 

 

이반은 자신이 되고 싶었던 모습을 갖춘 한 남자를 바라보았다레오는 자신이 결코 닮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가진 한 남자를 보았다.-p180

 

레오를 쫓던 형사 브론크스에게도 레오와 같은 트라우마가 있었다아버지의 폭력에 지쳐 아버지가 잠든 사이 아버지를 죽인 형과 형이 아니었으면 자신이 죽였을 것이라는 무서운 자책감속에서 살아가는 형사이다브론크스에게도 가족이란 깊은 상처였고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법을 배우지 못한 탓에 사랑하는 여인을 눈앞에 두고도 떠나보내는 성장만 했지 성숙하지 못한  상처투성이의 남자다은행털이범 레오를 본 순간, 본능적으로 이끌린 것은 어쩌면 둘은 오랫동안 폭력에 길들여진 상처받은 영혼의 동질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메아리이다범죄자가 된 아들을 보는 아버지 이반도 여느 아버지처럼 아픔을 느꼈다그러나자식에 대한 사랑법을 몰랐던 아버지 이반은 다시 레오의 범죄에 가담하는 것으로 어긋난 부성애를 보여준다레오가 자신을 괴롭히던 하세를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폭력을 행사했을 때하세의 아버지가 레오의 집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병원에서 생사를 오가는 아들을 대신해 찾아온 하세 아버지에게 이반은 위협을 가하며 폭력을 행사한다. 그것이 아버지 이반이 할 수 있는 소통의 방법이였고 사랑법이었다. 어쩌면 레오가 자신인 행사한 폭력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였더라면 레오의 미래는 보다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하는  안타까움이 드는 장면이 기억이 난다. 


더 파더 1.2를 읽으면서 사회에 만연한 폭력이 어쩌면 일그러진 현대의 가족사랑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를 고민케 하는 소설이다. 며칠 전 뉴스에  '어차피 망한 인생 돈이나 훔쳐서 폼 나게 살자' 라며 고가의 차를 수십 대 훔친 청소년들이 검거되는 사건이 있었다.  자포자기의 삶희망도 꿈도 없는 청소년들의 근원적인 문제는 가장 큰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가족들이 청소년들을 범죄자로 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현대가족의 역할을 되돌아보게 되는 그런 소설이었다. 부모로 산다는 것, 그것은 정말 얼마나 큰 과업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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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별

나는 늘 기다렸다.
깊은 밤 어두운 하늘을 보며
살별이 떨어져 내리기를,
가슴에 흘러들기를,
이승에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그리움처럼 그를 기다렸다.
-오정희 [비어있는 들]중에서


오정희 소설에는 순우리말이 많이 나온다.
혜성이라는 말보다 살별은 낯설지만
무언가 오염되지 않는 순수함을 연상하게 한다.
순우리말을 이처럼 아름답게 사용하는 작가의 책은 처음본다.
순우리말도 그렇지만 문장의 묘사가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지난 해 오정희컬렉션이 나오자마자 구입하여
읽고 또 읽고 했던 이유가
배울 것이 많은 문학책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서평을 써야할 차례임에도
그냥 이렇게 읽기만 해도 좋다.

✔살별의 뜻(네이버 지식사전 참조)
태양계에 속하는 여러 행성들은 대개 작은 점이나 원형의 빛을 내고 있지만 어떤 별들은 빛나는 긴 꼬리를 끌고 움직이기도 한다. 이런 별들을 ‘혜성(彗星)’이라고 하는데, 우리말로는 ‘살별’ 또는 ‘꼬리별’이라 한다. 살별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76년을 주기로 하늘에 나타난다는 ‘헬리혜성’을 들 수 있다. 살별은 흔히 별똥별이라고 하는 유성과 다르다. 유성은 우주 공간의 먼지 덩어리가 지구의 대기권 안으로 들어와서 빠른 속도로 낙하하며 공기와 마찰하면서 내는 빛인 반면, 살별은 그 자체가 하나의 행성으로서 일정한 주기로 태양의 둘레를 도는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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