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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회빈 강씨 - 소현세자 부인
김용상 지음 / 멜론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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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대가 변함에 따라 요구되는 지도자의 모습이 있다. 조선 왕조 5백년의 역사 속에서 비극의 주인공이었음에도 새롭게 소현세자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소현세자에게서 시대의 표상을 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국한 청나라의 선진문물들을 가난한 조선에 들려와 강하게  만들 꿈에 부풀었던 소현세자를 절망케 했던 것은 다름아닌 아버지 인조가 아닌가. 그리고 그의 아내 민회빈 강씨, 인조에게는 며느리인 그녀 또한 인조의 명에 의해 사약을 먹고 죽은 비운의 주인공이다.  조선시대의 여성의 삶은 불행했다. 나는 가끔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한다. 조선을 말해주는 두 단어  성리학과 사대부, 그 둘만 생각하는 것도 머리가 아파온다. 허난설헌이 글쓰는 재주로 인하여 소박맞은 채 쓸쓸히 죽어간 것도 서글프고 학식과 예술성을 두루 갖추었음에도 천민으로  태어나 비루하게 살다간  황진이의 삶 또한 서글프다. 그리고 민회빈 강씨의 삶 또한 서글프다.

병자호란 때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간  민회빈 강씨는  갖은 고생을 하며 살아갈 방도를 모색하던 중 청에서 배정된 농토를 경작하며 농사일 뿐만 아니라 무역을 배워 상인의 기질을 보여주기도 하고 청에 끌려온 조선인들을 속환하기 위해 힘을 쓰는 등 조선여인으로서는 하기 힘든, 더더군다나 왕족으로서는 하기 힘든 많은 일들을 한다. 청에 가서 보니 세상이 넓고 얼마나 큰지 몸소 체험한 민회빈 강씨는 조선에 개혁과 개방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온몸으로 깨닫고 조선을 벗어나 조선을 바라보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 확연하게 알게 된다. 무엇보다도  조선에 돌아가 청국에서 경험한 것들로 조선을 강하게 만들고 싶은 꿈을 안고  8년만에 조선에 돌아가지만 조선은 환대는 커녕 차가운 냉대만을 할 뿐이었으니,


" 조선이 오랑캐라고 깔보던 청나라가 대제국 명나라를 제압해 대부분을 수중에 넣다시피 했습니다. 그 힘이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선비들은 입만 살아서 '오랑캐들은 말 달리고 활 쏘고 창 던져서 짐승 잡아먹는 천한 자들이라 우리의 정신까지 지배하지는 못한다'고 하지요. 그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백성을 위하고 아끼는 지배계층의 마음은 이들이 우리보다 앞선다고 생각합니다. 제도를 봐도 본받을 것이 많고, 사람들의 일상을 이롭게 해주는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용기도 배울 만하다고, 아니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조선에서는 인조의 후궁 조소용이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조소용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세자와 세자빈이 이쁠리가 없었기에 기회만 되면 세자내외를 죽일 궁리를 하고 있었다. 인조는 조선의 왕들 중에서도 용렬하고 비겁하기 그지없는 성품이었으며 자신의 왕좌에 항상 불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인조가 즉위한 것도 반정으로 했으며 즉위이후에도 끊임없이 역모가 발생하였기에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까봐 늘 좌불안석이다. 게다가 인조가 추구하는 대외정책이었던  친명배금정책에 세자내외가 청의 볼모로 지내는 동안 청과 화친한 이유를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세자를 아들이 아닌 경계의 대상으로 대하게 된다. 결국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비극의 중심에는 악녀 조소용의 간계가 있었다.
 
다 읽고 나서 가슴이 먹먹하여 한참을 앉아있어야 했다. 권력앞에서는 사람은 이성을 잃는구나 ...그것이 사람이지하며, 어떻게 자신의 아들 손자, 며느리를 모두 죽였을까? 비정한 왕이라니... 사실 이 책이 미회빈 강씨의 이야기로만 보기는 어려울 듯 하다. 민회빈 강씨가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비중이 크지 않아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대에 여자가 움직일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이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책에서 보여지는 민회빈 강씨가 딱히 시대의 표상의 역할을 한 여인으로는 보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여성의 몸으로 청에서 한 행동은 현명하다고 보여진다.그러나  이후 조선에서의 행동에 대한 이야기들에서 민회빈 강씨의 이야기가  거의 없다는 점이 조금은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역사에 존재했으며 그 역사속에서 조선을 위해 살았던 한 여인,민회빈 강씨를 알게 된 것은 무척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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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슬픔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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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는 더 큰 슬픔을 부어넣어야 한다. 그래야 넘쳐흘러 덜어진다. 가득 찬 물잔에 물을 더 부으면 넘쳐흐르듯이, 그러듯이, 이 괴로움은 더 큰 저 괴로움이 치유하고, 열풍은 더 큰 열풍만이 잠재울 수 있고.

 

깊은 슬픔의 심연 속에 빠진 느낌이다. 슬픔에는 더 큰 슬픔이 치유되듯이 은서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가슴 깊은 무언가를 자꾸 건드린다. 마치 내 슬픔 전부를 쓸어가버리듯이 ..... 그렇게 은서의 이야기는 내 슬픔보다 더 큰 슬픔으로 나를 치유해 준다.

 

기다림의 계절 봄. 삶이란 기다림만 배우면 반은 안 것이나 다름없다는데......

 완은 그렇게 은서를 기다리게 한다. 완을 은서는 기다리고 또 기다리지만  완은 오지 않고 은서에게 온 사람은 옆방 여자 화연이다. 상처투성이인 옆방 여자 화연은 은서보다 더 깊은 슬픔을 앓고 있었고 화연으로 인해 은서는 그 기다림을 견딜 수 있었다.

 

그리고 여름, 세에게서 들은 아름답고 따뜻한 말을 완에게 간절히 들려주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은서의 모습이다.  은서는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완에게서 받은 서러움이나 야속함 같은 걸 그대로 세에게 쏟아내고 있다는 걸 어느 날 문득 깨닫고  완에게 주고 싶은 것들은 세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것들이고, 세에게 자신도 모르게 툭툭 내뱉게 되는 말과 행동들은 또 완이 자신에게 했던 것과 닮아 있음을 은서는 느낀다. 그렇게 완과 세와 은서는 반복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완은 은서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전부이기도 하지만 완에게 은서는 그냥 .. 세에게서 뺏고 싶은 여자, 그저 수도 없이 많은 여자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서는 완을 사랑한다.그리고 세는 은서를 사랑한다.

 

 

그리고 가을 ,사랑이란 서로에게 시간을 내주는게 아깝지 않은 것.

 언제부턴가 완은 은서에게 시간을 내주지 않는다. 은서는 절망하지만 그래도 화연이 있기에 살아가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더한 슬픔을 가진 화연이 있었기에 완의 결혼에도 살 수 있던 것이다. 미칠 것 같았는데 미치지 않았던 것은 화연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화연이 죽고 홀로 된 은서에게 손을 내밀어준 세가 있었기에 그래도 살 수 있었다. 세는 은서에게 고향같은 친구이니까.

 

사랑이 아픈 겨울, 한번도 화내지 않는 세, 언제나 기다려주던 세를 이제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은서, 그러나 이제 세는 은서를 사랑하지 않는다.

 완을 사랑하는 동안 세를 너무 외롭게 했던 벌을 받는 것이라고 자조하지만 은서는 세의 집요한 의심과 집착으로 인해 상처받는다.자신을 언제나 믿어주던 세의 변한 모습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 상처가 독이 되어 은서를 갉아먹고 있는다.

 

너는 너 너이외에 다른 것에 닿으려고 하지 말아라.오로지 너에게로 가는 일에 길을 내렴. 큰길로 못 가면 작은 길로 그것도 안되면 그 밑으로라도 가서 너를 믿고 살거라. 누군가를 사랑한다 해도 그가 떠나기를 원하면 손을 놓아주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그것을 받아들여. 돌아오지 않으면 그건 처음부터 너의 것이 아니었다고 잊어버리며 살거라.

 

늘 완의 등만 보던 은서, 은서의 등만 보던 세, 사랑이란 이름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사랑은 그렇게 낯설은 이름일 뿐이다. 서로 마음을 다해 사랑하려 하지만 언제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관계의 연속이다. 기다림으로 시작했던 은서의 사랑은 결국 모든 것이 부질없었음을  이야기한다. 사랑 그것이 전부였던 여자의 이야기는 사랑이 전부여서는 안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저 스쳐가는 하나의 부분으로서 사랑할 것을, 그리고 그저 사랑은 수많은 만남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고 말한다. 사랑이 전부여서 슬펐던 여자 은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만을 사랑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 부질없는 꿈같다고 말하는 은서,

 이 소설에 나오는 여자들 모두가 깊은 슬픔을 가진 사람들이다. 화연이 그렇고 유혜란이 그렇다. 그들의 사랑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들이 말하는 슬픔은 바로 내슬픔의 모습이다.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 아련하게 시작한 사랑이야기는 결국 나를 울리고 나서야 끝이 났다. 사랑을 잊으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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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벳 - 세상을 바꾼 1천 번의 작은 실험
피터 심스 지음, 안진환 옮김 / 에코의서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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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대는 행복한 시대일까?

한 젊은 청년이 자살을 했다. 연봉도 많이 받고 인물도 훤칠하고 얼굴도 잘생긴 이십대 청년의 자살을 바라보며 씁쓸함을 금치 못했다.그 이유는 나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이기 때문이다.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의 심정을 안다고 했듯이 그 청년의 부모의 심정이 헤아려보니 더 마음이 아파왔다. 그러나 왜 그런 전도유망한 젊은이들이 자살을 하는 것일까? 나는 그 문제를 교육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결과만을 중시하는 교육이다. 물론 최근 더 나은 교육을 하기 위한 시도들을 하고 있긴 하지만 성적에 따라 아이들을 평가하는 교육은 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에게 실패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사회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성공만이 살아남는 법이라는 식이다. 바른 인격을 형성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임에도 사실 지식습득만을 강조할 뿐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최근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대학에서 벌어진 성폭행관련 사건도 그런 교육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그러나 그 사건은 돈없는 이들은 무거운 형벌을 받아야 하는 죄질이었으나 돈이 있는 이들이었는지 가벼운 벌금형에 그치고 말았다. 그 사건을 보며  아직도 우리나라는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진리가 통하고 있는 나라라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살고 있는 시대는 과도기시대에 들어서있다. 실제로 과거의 방식대로 살면 왠지 도태될 것 같은 위태로움을 느낀다. 물질문명은 벌써 우리를 앞지르고 있는데 우리의 생활은 물질문명을 따라가지 못한채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다. 점점  세상은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세상으로, 곳곳에서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변화로  자연재해가 속출하고 있다. 거기에 지구촌 한 곳은 전쟁중에 있고 주식은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또한 각 나라마다  경제위기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으나 해결책은 없는 시대, 바로 작금의 현실이다.

 

 이런 불확실성을 헤쳐나가며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해주는 책이 바로 '리틀 벳' 이다.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구상하고 재구상한 뒤, 그 결과를 수정하고 또 다시 작은 실험을 활용하는 것으로 이 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는 원천의 힘이 될 수 있음을 저자는 여러가지의 사례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베토벤, 에디슨에서 애플의 스티브 잡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까지 위대한 창조와 혁신적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아이디어 개발과 실험 과정을 치밀하고 심도 깊게 연구한 결과,공통 요소가 존재함을 발견한다.또한 그들이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방법을 통해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아이디어나 전략, 계획을 발견하게 되는 바탕정신이  바로 리틀 벳 정신임을 말한다.  

 

여기서 '실패'라는 것이 말에 대한 의미를 떠올려보게 되는데 대부분이 실패라는 단어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목적인 교육은 아이를 창의적으로 키우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은 창의적인 사고를 하지 않으면 적응하지 못하게끔 변화하고 있다.교육사학자들은 현재의 교육체제가 20세기 전반 산업혁명의 요구에 맞춰 계획된 것이기에 오늘날의 혁신적인 지식경제 체제와는 어울리지 않음을 거듭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지식을 습득하는 교육이 아닌 지식을 창조하는 교육을 해야하는 현실에 있다. 끊임없는 작은 실험들을 통해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관찰자로서 세상을 살아야 함을 <리틀 벳>을 통해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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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전 2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시공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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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의 이야기로 전개되고 있는 공성전은 1권에 이어 프랑스편인 데포소 대위, 스페인편에서 사업적으로 공생관계인 롤리타 팔마와 페페 로보선장, 그리고 연쇄살인범을 추격하고 있는 형사 티손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2권에서 돋보이는 이야기는 살인범을 잡기 위해 스페인형사와 프랑스 대위가 서로 손을 잡고 협력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런 모습을 통해 작가는 인간이 만들어낸 규범과 현대사회가 전쟁 가운데에서도 비록 적이고 전쟁중이라 하더라도 인간에게는 휴머니즘이 바탕이 된다는 것을 데포소대위와 티손이라는 인물을 통하여 보여준다.

 

2권에서는 스토리가 점점 더 흥미로워지는데  프랑스인 데포소 대위를 통해 스페인 사람들의 천성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다. 그리고 이런 스페인 사람들의 천성은 아마도 카디스를 손에 넣지 못한 나폴레옹이 멸망한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스페인 사람들의 천성은 바로 무질서와 잔혹함이다. 프랑스군은 조국에 대한 충성심과 조직적인 면이 강한데  스페인군은 무질서한 반면에 명예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런 모습은 대규모 공성전에서도 죽기를 각오하고 성을 지키는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쉽게 패하기도 하지만 쉽게 일어서기도 한다는 것이다.  다시 불굴의 의지로 달려드는 모습에서는 기가 꺾였다거나 풀 죽은 기색을 전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무질서와 잔혹함, 바로 이런 면들이 프랑스인들에게 스페인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푸마갈이 연쇄살인범인 줄 알고 모진 고문을 하고 있던 중 또 한명의 소녀가 잔인하게 살해되어 발견되고 티손형사는 푸마갈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망연자실하는데 범인과의 게임은 티손을 점점 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하고 티손은 범인에게 미끼를 던지기로 한다. 티손은  프랑스의 첩자였던 푸마갈을 내어주고 프랑스의 데포소 대위와 기이한 협약을 맺게 되는데 그러한 미끼에도 범인은 잡히지 않고 시간만 흐르자 초조함에 의한 강박관념이 티손을 지배한다

 

페페 로보 선장은 길을 가다 구걸하는 거지를 만나게 되는데 거지에게서 선원이었던 문신을 보게 된다. 더럽고 헝클어진 머리와 수염, 잘려 나간 다리의 흉터를 본 순간 자신의 미래를 보는 듯한 비애감에 빠지게 된다. 평생을 바다와 전쟁이라는 우연의 장에 자신을 맡겨 살아온 거지의 모습에서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느끼게 된 본능적인 미래에 대한 불안감 말이다.

 

티손 형사의 수사를 도와주는 바롤 교수는 살인범이 데카르트의 소용돌이 이론에 근거한 어떤 현상이 일어나거나, 혹은 일어나지 않는 , 그것도 아니면, 다른 곳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어나는 특수한 공간이 카디스의 한 지점에 있다고 믿게 되고 그 이론을 바탕으로 카디스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타인의 공포와 나 자신의 공포가 한데 뒤섞이는 기이한 공간의 존재, 그곳이 바로 범인의 은닉처였던 것이다.

 

그리고 롤리타 팔마가 소유한 가장 비싼 배인 마르코 브루토호는  아주 중요한 화물을 싣고 카디스에 들어 오는 중 프랑스 해적선에 포획당한다. 마르코 브루토호를 잃게 되면 팔마사는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되고 결국 롤리타는 로보 선장에게 가서 마르토 브루토호를 찾아달라고 말한다. 로보 선장은 결국 자신의 모든 것과 더불어 선원 스물 세명의 목숨을 담보로 프랑스에 포획당한 마르코 브루토호를 찾으러 폭풍우가 치는 바다로 나간다.

 

전쟁 가운데에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에 근거한 연쇄 살인 사건은 카디스가 가지고 있는 기이한 특성 - 바다와 바람을 마주보면서도 수로들로 얽혀 있는 구조로 이루어짐- 을 이용하여 살인하게 된 과정은 조금 추상적이며 형이상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극단적 감수성을 동반한 강박관념은 그를 괴물로 만들고 포탄의 낙하지점과 생명의 희생을 자신의 정교함과 불완전한 기술을 완성시켰다는 논리를 만들어 낸다. 마치 그것이 카디스라는 인간의 영역에서 범인은 신의 역할로서 자연의 법칙 그대로 고통을 복원시키는 방법처럼 모든 것을 체스판이 말을 움직이듯 카디스를 체스판으로 생각해 왔던 것이다. 한마디로 살인범은 신이고 카디스의 인간들은 하찮은 개미새끼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스페인의 작가 레베르테는 그런 살인범을 통해 모든 세계가 신의 손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음을 ,결국 세상 모든 일은 신의 획책 때문에 벌어졌다는 철학으로 이 모든 이야기를 탄생시킨 것이다. <공성전>은 역사이야기이기 전에 바로 인간이라는 하나의 개개인의 메타포를 그려내고 있으며 그 모든 것이 신의 획책으로 인한 것으로 귀결하고 있다. 레베르테를 스페인의 움베르토 에코라고 부르는 이유가 아마도 이런 철학적인 시각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성전은 전쟁이야기가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 개개인의 메타포를 보여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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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전 1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시공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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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스는 거의 바다로 둘러싸인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럽 전 지역이 프랑스에 무릎을 꿇었으나 인구 6만밖에 되지 않는 카디스만은 예외가 된다. 그것은 카디스가 가지고 있는 지리적인 특성과 함께 스페인인들의 전형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공성전> 이 책은 전쟁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휴머니즘을 내포한 인문서이기도 하며 나폴레옹의 몰락을 가져온 스페인의 카디스라는 항구도시의 역사이야기이기도 하다.

 

1811년 현재 프랑스의 공성전이 시작되었지만 카디스는 영국 군함과 스페인 군함들이 정박중이며 해안과 운하를 넘마들며 종횡무진하는 함포형 소형번선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최강의 군사력을 갖추고 있기에  뭍에 있던 프랑스는 공격시도조차 하지 못한채 적당한 때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중간 중간 소심한 폭격을 가하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던 프랑스는 바로 코앞에서 스페인 배가 왔다갔다 하는 것을 멍청히 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덕분에 카디스는 전쟁중이지만 별다른 제재없이 스페인의 항구도시와 활발한 교역을  하고 있었고 오히려 전쟁으로 인해 유입된 인구의 증가로 인하여 상업과 모든 면이 전쟁전보다 더 큰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서글픈 비유이지만 포위된 자들이 포위하고 있는 이들보다도 휠씬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카디스 시내에서 어린 소녀들의 시체가 연쇄적으로 발견된다. 소녀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있었으며 등에는 채찍당한 흔적과 포탄이 떨어진 장소에서 발견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까칠하고 잔인한 성격의 티손형사는 범인이 체스게임처럼 연쇄살인을 즐긴다는 것과 카디스라는 독특한 플롯을 내포한 하나의 공간으로 인지하고 있음을 감각적으로 느끼게 된다.그런  본능은 티손형사의 딸이 죽고 나서 느꼈던 허무감과 잊지 못할 딸의 향기,딸이 떠오를 때마다 견디기 힘든 고통과 함께 수반되는 고독감에서 비롯된 본능적인 감각이었으며 또 하나의 단서는 200년전의 고전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에서 영감을 얻게 된다.

 

인간은 많은 것들을 보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되기 때문에, 미래에 어떤 것들이 눈앞에 펼쳐질지 그 누구도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그런 살인 사건 속에서 카디스에서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사업적 수완과 대외적 품격까지 두루 갖춘 롤리타 팔마와  선장인 페페 로보와의 로맨스가 펼쳐진다. 그러나 명망있는 가문인 롤리타에게 빈털털이인 페퍼 로보 선장과의 만남은 서로 탐색만 할 뿐이고 누구 하나 마음을 표현하지도 못하는데 그 이유는 롤리타가 평범한 여자가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팔마가문이 그나마 명문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롤리타의 뛰어난 사업적인 두뇌와 명석한 판단때문이었으며 전쟁으로 인하여 해상무역에 대한 자금이 원활히 돌아가지 않자 롤리타는 스페인 국왕이 허가한 합법적인 해적선에 투자사업을 벌리게 되는데 그 해적선의 선장이 바로 페페 로보인 것이다. 자신을 고용하고 있는 고용주인 여자가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하자 당황스럽기만 한 선장.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는 프랑스의 데포소 대위와 프랑스에게 카디스지도를 만들어 주는 스파이역할을 하면서 동물박제사 일을 하고 있는 푸마갈의 이야기인데 데포소대위는 카디스를 공격하기 위해 대포의 사거리를 늘리는 연구를 하게 되고 전서구를 잘 다루는 푸마갈이 그려주는 카디스의 지도는 데포소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러나 티손형사는 푸마갈이 스파이 혐의가 있는 동시에 살인범으로 오해하고 모진 고문을 하게 되는데....

 

이들 모두의 이야기들이 조화를 이루어 내며 마치 실제 상황인 듯 생생하게 상황을 그려내고 있으며 카디스라는 매력적인 항구도시를 통하여 이어지는 삶의 다양한 모습들에서 공성전이라는 전쟁속에서도 희망을 가지려 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기도 한다. 작가는 데카르트가 말한 우주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용돌이의 총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처럼 카디스라는 하나의 공간이 세상과 사람들, 사물과 행성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는 상이한 공간으로 카디스를 탄생시켰다.

 거기에 스릴러라는 장르를 첨가하여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 한 가운데에서도 살인마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형사 로헬리오 티손을 통하여 휴머니즘을, 페페 로보 선장과 로리타 델마의 로맨스를 통해 사랑을, 프랑스 장교 데포소 대위를 통하여 타인에 대한 휴머니티를 담고 있다. 모든 것이 이 공성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 공성전>이 역사소설뿐만이 아닌 지적스릴러인 동시에 한가지로 정의 할 수 없는 폭넓은 문학성을 담아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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