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샤덴프로이데

왕따를 당했던 경험 덕분에 나는 연민이 무엇인지 더 잘 알게 됐고, 약한 사람을 공감하게 됐으며, 타인의 어려움을 내 것처럼 느끼게 됐다. 또한 대학에서 동료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기에 나는 더 경각심을 갖고 나 자신을 살피게 됐다. 마치 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하루하루를 보내게 됐다고나 할까. 내게 상처 줬던 사람들은 확실히 나의 긍정 에너지를 키워줬다.

타이완의 유명한 심리치료사 쉬하오이는 말했다.

“당신에게 상처 주는 사람들은 단지 생존을 바라는 것 뿐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당신의 존재가 자신의 인생에 방해가 되거나 해를 입힐거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당신에게 심한 상처를 주는 사람일수록 약자이며 당신이야말로 그들의 마음속 강자이다.

이런 깨달음을 알고도 계속 자기 연민에만 빠져 있을 텐가? 당신 자신에게 ‘모두 지나간다’라고 말해줘야 한다. 현재의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며, 앞으로 꿋꿋이 나아갈 때 과거의 고통과 상처는 의미가 없어진다. 지난날과 화해하고, 나 자신과 화해할 때 비로소 여유롭고 평온하게 늙어갈 수 있다.
-『내 나이 또래, 중년의 당신에게』


‘샤덴프로이데‘ 라는 독일어가 있다.
‘샤덴‘은 상처를 주는 것이고 ‘프로이데‘는 기쁨이다 .
이 두 단어를 합친 것이다.
직역하면 타인의 불행은 개꿀, 꿀맛, 쌤통, 고소하다란 말이다.
타인의 고통을 즐기며 따라다니며 상처를 주는 샤덴프로이데들은 어쩌면 가장 나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기연민과 자기불행을 타인에게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공감과 연대정신으로 똘똘 뭉쳐있는 사회인들은 이런 샤덴프로이데의 감정을 경계한다. 또한 남을 미워하고 괴롭히는 감정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 대부분 너그럽지 못하다.
PC방 살해사건에 공분하여 피해자를 위해 한 목소리를 내는 것만보아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공감과 연대를 지닌 희망의 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일수록 공감을 일으키지 못하며 결국 그 상처는 자신에게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자신의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시키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며 내면을 치유할 때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중년이라면 이제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며 나 스스로를 안아주어야 한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기쁨이 아닌 타인의 고통도 나의 고통이며, 그 고통을 이겨내면 또다른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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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나는 이상적인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IT회사의 설립자인 남자는 재혼을 한 뒤에야 자식을 얻었다. 그는 아이의 알레르기를 치료하기 위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에서 살기로 결심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주식을 양도하고 경영에서 물러났다. 그는 일하지 않고 아내와 아들, 개 한 마리,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사는 삶을 다시 배워야 했다. 그들은 후원에 향초들을 가꿨는데 모두 아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또한 집 지하실에 음향기기와 프로젝터 등을 설치해 남자의 로망을 실현했다. 남자는 아들이 여덟 살이 되던 생일에 직접 작은 나무집을 지어 선물하기도 했다. 산으로 이사한 뒤 남자는 수없이 바뀌는 산속 구름과 안개를 보며 문득 촬영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그는 구식카메라를 찾아내 꽃이며 새, 벌레와 물고기는 물론이고 자연과 가족, 애완동물 등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랐다. 과거에 심장 수술을 했던 그에게 한 친구는 몸을 챙겨야 한다고 권했지만 그는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지는 내가 결정하지 못해. 하지만 어떻게 살지는 내가 정할 수 있어.”

한랭 기단이 몰려온다는 보도가 있던 어느 날 아침, 그는 개를 산책시킨 뒤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려고 준비하며 창문 앞에 서서 커피를 마시다 갑자기 쓰러져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그의 아내는 페이스북에 그의 부고를 알리며 ‘안타까운 소식’이라든지 ‘청천벽력’ 같은 말 대신 지극히 평화로운 글을 남겼다.

‘남편은 커피 한 잔을 다 마신 뒤 우리 가족의 사랑과 영원한 그리움을 안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작별했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부고 소식이 뜻밖이었지만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그가 원하는 삶을 살다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의 생명을 완성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막 쉰다섯 살 생일을 맞았고 겨우 아홉 살 난 아들이 있었지만, 그의 친구들은 페이스북에 부러움이 묻어나는 말을 남기며 그와 이별했다. 그는 너무 늦지 않은 때에 자신이 원하는 생활방식을 선택했다고 말이다.

사람은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많은 것들을 미뤄 왔음을 깨닫는다. 꼭 해야 했던 일, 하고 싶었던 말,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들 모두 미뤄왔다. 때로는 스스로 움츠러들어서, 혹은 먼저 배려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제 펜과 종이를 꺼내 당신이 인생 전반전 동안 미뤄왔던 것들을 일일이 기록해보라. 미뤄왔던 것이 많을수록 남을 위해 희생했던 것이 많고, 스스로 손해 본 것이 많았다는 뜻이다. 이미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선 우리는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내 나이 또래, 중년의 당신에게』

지난 주 토요일, 친구아내의 부고 소식으로 부산 장례식에 다녀왔다. 유방암 말기 진단을 받고 4개월만의 죽음이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떠났을 언니의 슬픔이 부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장례식을 가는 동안, 그리고 오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점점 익숙해져가는 나이라는 사실을 통감하였다.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하는 이유는 완벽한 타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잘 들어주고 화를 내지 않으며 나의 이야기만 해도 싫은 내색을 절대 하지 않는 ‘완벽한 타인’들. 매일의 일상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완벽한 타인’인 페북 친구들이 또 다른 관계를 형성하여 나를 위로해주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이유보다도 내가 페이스북을 시작하였던 것은 완벽한 타인보다는 기록의 차원이 더 컸다. 매일매일 다른 일상,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그 안에 담겨져 오로지 나만의 클리셰가 만들어져 있었다. 『내 나이 또래, 중년의 당신에게』에서 중병을 앓던 사람이 선택한 삶은 병원이 아니라 ‘이상적인 삶’에 대한 기록이다. 자신만의 클리셰를 이루고 떠나는 것. 이제까지 미뤄두고 용기 내지 못했던 삶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룬 것이었다. 중년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습관적인 두려움으로 시작조차 하지 못한 채 떠나간다. 나의 이야기를 쓰기에 중년은 아주 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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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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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덴프로이데> . 즉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이죠. 모름지기 신문은 그런 감정을 존중하고 북돋워야 해요. -p218


우리는 수많은 음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들의 일대기는 더욱 흥미롭고 신비한 이야기들이 많다. 광해군이 대역이 있다는 상상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듯이 한 번쯤은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의혹과 음모로 느껴질 때가 많다. 뇌가 넘치도록 끊임없이 정보를 주입해야 하는데다 가짜 뉴스를 만들기 쉬워진 인터넷 환경에서 진실과 거짓을 걸러줄 수 있는 필터기능의 언론이 필요한 세상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0의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대필 작가 콜론나는 글 쓰는 재주를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이름이 아닌 타인의 이름으로 소설을 발표하고 번역 일을 통해 입에 풀칠만 하고 산다. 그가 능력이 있으면서도 대필 작가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독일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독일어 번역일 때문에 학사학위를 받지 못하였고 그 덕에 그는 평생을 대필 작가로 먹고 살아야 했다는 설명이 있다. 추리소설을 써달라는 이에게 자신의 문체로 타인의 이름을 빌어 소설을 발표한다. (타인의 이름으로 발표된 소설의 문체가 자신의 문체임을 볼 때마다 콜론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런 그의 능력을 높이 산 시메이 주필은 <한 저널리스트의 회상록>이라는 책을 집필해 달라고 한다. 물론 시메이의 이름으로. 그렇게 6명의 기자와 한 팀이 되어 책을 집필하기 시작하는데 어느 날, 무솔리니의 죽음을 추적하던 브라가도초가 살해당하면서 책집필은 취소된다. 브라가도초가 말하고 싶었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소설은 주역이었던 이들을 조역으로, 조역이었던 이들을 주역으로 내세우며 왜곡된 현실을 비춘다. 대필 작가로 살았던 이의 삶, 무솔리니의 대역으로 살았던 이의 삶, 세계 뉴스의 헤드라인만 뽑아서 고치는 형태로 쓰는 신문기자들의 삶은 공기 중에 부유하는 먼지처럼 우리가 주목하지 않는 부차적인 삶들이다. 그렇게 소설은 세 가지의 왜곡된 이들의 삶에서 권력 이데올로기에 지배받는 허상의 메커니즘을 그린다. 첫 번째 왜곡은 대필 작가로 50년을 살아온 작가의 삶이다. 두 번째 왜곡은 로마의 부활을 꿈꾸었으나 히틀러와 손잡고 잔인한 독재자였던 무솔리니의 최후이다. 카톨릭의 나라에서 교황청의 막강한 권력배경으로 무솔리니의 대역이 존재했으며 광장에서 총살당하는 그 순간의 무솔리니는 대역이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왜곡은 창간하지 않을 신문을 만드는 신문기자들이다. 이 세 가지의 왜곡을 통해 에코는 실질과 다른 허상이 지배하는 현실세계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혜경궁 김씨가 이재명 부인이라는 뉴스가 언론사마다 보도가 된다. 온라인에서 설왕설래하며 치열한 댓글싸움을 보기도 하였고, 뉴스를 거짓으로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은 온통 음모투성이인 것만 같다. 이재명에게도 무솔리니 같은 대역이 있거나, 소설의 주인공처럼 글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 존재했던 것일까? 어쨌거나 우리는 보이는 것이 전부인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어느 날 갑자기 유병언이 살아있다는 속보가 터지고 내 남편이 사실 여자였다는 사실을 뉴스를 통해 만나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게 느끼게 할, 허구속의 현실이라는 묘한 오버랩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분이 누구더라? 그래, 진리란 그런 거야. 사람들이 무언가를 더 폭로하면 다 거짓말처럼 보이게 하지.-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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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fmail 2018-11-29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는 기독교복음침례회의 평신도 김동수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위 게시물의 내용중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알려드리고자 덧글을 남깁니다.

사실과 다른 내용: 세월호 실소유주 유병언

위 내용은 사실과 다릅니다. 또한 최근 법원에서 유 전 회장의 자금이 청해진 해운에 유입되었다는 사실이 전혀 증명되지 않았고 오히려 반대되는 진술만 있기 때문에 유 전 회장을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라고 특정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또한 이는 언론사에서 정정보도 된 바 있습니다.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242416
위 기사를 확인하여 주시고 부디 오해가 풀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해가 풀리셨다면 해당 부분에 대해서 수정, 삭제 등 재검토를 부탁드립니다. 혹시 이와 관련하여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klefmail@naver.com으로 메일 주시기 바랍니다.

드림모노로그 2018-11-29 12:05   좋아요 0 | URL
삭제했습니다.
서평 내용은 사실과 다른 허구의 예로 쓰여진 것이라
굳이 사실관계가 필요하지 않다 생각하여 쓴 것인데..
(댓글보고 사실 놀랐네요 ㅎ)
인터넷에는 여전히 세월호 실소유주 유병언이라는 글들이 난무하고 있는데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겠네요 ...진행과정은 잘 모르겠고 .
다음에는 사실여부를 잘 판단하여 신중하게 쓰도록 해야겠네요 ^^
감사합니다
 
아웃사이더의 반란
스티브 리처즈 지음, 장서연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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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바마의 당선을 기정사실화하며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라는 책에서는 오바마가 대통령 선거당시 가장 많은 검색 후보자였다는 사실만으로 빅데이터의 정확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허나 트럼프가 제 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 여론조사는 클린턴의 우승을 예측하였다. 이와 비슷한 현상은 한국에서도 있었다.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에는 거의 모든 후보자들이 여론조사의 결과와는 전혀 다른 후보가 당선되었다. 거기에 또 아웃사이더들의 갑작스런 부상은 세간을 더욱 놀라게 했다. 

 

아웃사이더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의 기성 틀에서 벗어나서 독자적인 사상을 지니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우리나라의 아웃사이더 정치인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있다. 이들의 행보는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는데 박원순은 최초의 3선 시장이라는 기록을, 이재명은 민선 5·6기 경기도 성남시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민선 7기 경기도지사로 정치적 입지를 다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아직 풀지 못한 의혹과 문제들이 산재되어 있다. 박원순의 아들 박주신은 병역비리의 논란을 일으키고는 아직 영국에서 귀국한 적이 없다. 이재명은 성남시장직에 있을 때 있었던 사적인 문제에서부터 공적인 문제들로 인해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아웃사이더들의 등장은 비단 우리나라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아웃사이더들의 혜성 같은 등장과 함께 이슈몰이에 성공하면서 주류 정치인의 길을 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정당의 정체성을 지닌 정치인들이 성공하던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행보인 것이다. 이들은 많은 주요 정당들이 정체성 위기에 빠져 있을 때 모두 혜성처럼 등장하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은 정치와 사회분야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미국의 트럼프가 그러했고 캐나다의 쥐스탱 총리, 네덜란드의 마르크 뤼터 총리 등 이들은 모두 같은 패턴을 가지고 있다. 

 

  

매끄럽지 못한 패턴의 경계 역시 중요하다. 민주주의 세계에서 아웃사이더들은 위협적일 만큼 강하지만 동시에 분명히 약하기도 하다. 그들은 권력을 쟁취했고 역사적 변화를 불러일으켰으며, 정권에서 멀어져 있을 때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는 마치 동네의 테니스 초보자가 윔블던이나 US 오픈에서 승리하는 것에 비견될 만한, 정치 초보자들의 예외적인 성과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아웃사이더들은 무기력하고, 허술하며, 일관성이 없고, 경험도 일천한데다가 종종 어리석기까지 한데, 이는 정치인으로서 진중하게 여겨지길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피해야 할 자질이다. 그들은 대의명분이나 이상을 변덕스럽게 지지하지만 그것을 쌓아 나갈 견고한 기반은 없다. 그들의 목적은 종종 분명하지 않으며, 공개적으로 내부 분열이 드러나기도 한다. 정치인으로서 그들은 강력하면서도 동시에 절망적이다. -P17

  

아웃사이더들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들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게 하면서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고난체험의 선봉에 서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웃사이더들은 생각만큼 정치를 알지 못했고 이들을 시험에 빠뜨리는 문제들이 현대에는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혜성같은 등장에도 그들 앞에 산재해 있는 정치와 경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트럼프는 끊임없이 주류 정치인들에게 압박을 받았다. 반이민 행정명령 이행과 국가안보보좌관 임명, 오바마 케어의 폐기를 요구하는 주류정치인들을 다루어야 했고 그리스의 치프라스 역시 권력의 안쪽으로 들어가자 큰 벽에 부딪힌다. 이들은 모두 권력의 딜레마에 빠져 버렸다. 세계의 모든 정치인들이 세금과 복지에 신경을 쓰지만, 세금을 많이 내고 싶은 유권자는 어디에도 없으며 공공의 복지서비스는 누구나 최상으로 누리고 싶어 한다. 이런 유권자를 설득하는 방법을 아웃사이더뿐만 아니라 주류 정치인들조차 모른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생애 최초 청년국민연금' 정책 발표로 나라가 시끄럽다. 안그래도 고갈될 위기에 처해 있는 연금은 50조라는 천문학적 부도를 맞이할 것이며 이재명 경기도지사 정책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파격행보는 이뿐만이 아니다. 성남시장으로 있을 당시에도 끝없는 선심성 정책으로 전 국민들을 혼란의 도가니에 빠뜨렸고 현 경기도지사를 지내는 작금에도 그의 걸음걸음마다 구설수가 난무했다. 이 책에서 비춰지는 아웃사이더의 이미지는 딱 그러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같은 세계의 아웃사이더들이 생각보다 많았던 것이다. 이것을 시대의 흐름이나 정치기조라 보고 싶지는 않지만 왜 아웃사이더들에 대해 국민들이 열광하는지에 대해 역으로 생각해 본다면 아웃사이더들을 향한 시선이 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우리 앞에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문제가 산재되어 있다. 세계화와 그에 따른 4차 혁명의 물결 속에서 살아남아 하는 생존의 문제들과 세금과 복지는 어떻게 배분해야 평등해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아웃사이더들의 번성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고민한다는 것이다. 주류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나 정당 정체성에만 신경을 쓰느라 아무도 우리 앞에 산재되어 있는 문제들을 고민할 여과가 없어 보인다. 자유한국당은 내부 분열을 거듭하며 민생은 뒷전이라는 것이 문제다. 정체성을 상실한 채 침몰하고 있는 정당의 분열에 국민들은 싸늘한 시선만을 보낼 뿐이다. 그러나, 아웃사이더들은 -그들이 비록 불안정해보이고 정치적으로 서툴러 보일지 모르지만 - 국민들의 고민을 적어도 이해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웃사이더의 반란은 국민의 필요를 충족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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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리커버 특별판)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 동녘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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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조선인 혁명가 김산을 만났다

몇 년 전 중국인 혁명가들의 역작을 다뤘던 중국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중국이라는 나라의 정신적 뼈대는 이들 혁명가들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었을까를 생각하며 우리나라 혁명가들의 이야기가 무척 듣고 싶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조선인 혁명가들의 이야기는 시대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밭에 나가 일을 하고 거둔 곡식들은 모두 일본인들에게 착취당했고 가난을 벗어날 길이 없었던 조선인들은 글을 배울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가난과 무지, 이것은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조선인들에게 역사의 기록이란 부르조아의 전유물이었던 것이다. 혁명가들은 이런 현실을 매우 잘 알았다. 이들은 산을 깎아 만든 신흥학교에서 조선 독립을 위해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전술과 전투를 배웠다. 제국주의라는 시대격변속에서 식민지 민중이었던 독립군들의 삶은 중국인들의 그 어떤 투쟁보다도  격렬하고 더 방대하였으나, 열악한 환경은 조선 혁명가들의 삶을 역사에 잠들게 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해야만 한다. 

 

이 책 아리랑1941, 미국에서 출판되었지만 곧 사라졌듯이 수많은 자료와 기록들은 일본의 왜곡과 방해로 역사속에 잠들어 있었다.  한국인은 조선혁명가들의 이름보다는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와 같은 이들의 삶을 더 잘 안다. 그것 자체가 우리의 비극이며 우리의 민요 아리랑의 슬픔인지도 모른다. 

 

첫 장을 넘길 때는 님 웨일즈가 김산(장지락)의 전기를 다룬 책이리라 예상하였다. 예상은 틀렸다. 님 웨일즈가 김산을 만났을 때 그는 중국 비밀 공산당원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님웨일즈는 기자로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만났고 그들의 삶에 주목했다.  그 수많은 혁명가들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 김산이었다고 한다. 첫 눈에 매료된 김산에게 님 웨일즈는 책을 집필할 것을 제안하였고 김산의 방대한 일기와 구술을 바탕으로 이 책이 탄생하게 되었다. 님 웨일즈가 나중에 안 사실은 김산은 혁명가이면서도 시대에 보기드문 시인의 감성을 가졌었고 작가로서 훌륭한 글을 써왔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젊은 시절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마도 조선이란 나라가 자기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춘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리라.-p56

 

그랬다. 김산이 기억하는 조선에서의 어린 시절은 죽어 있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태생적으로 가난했던 조선인들의 삶에서 김산에게는 오로지 민족의 해방이라는 거대한 숙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가치있는 삶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어린 나이에 맨 몸으로 뛰쳐나온 것은 오로지 그 이유였다. 일본인들과 싸우는 삶. 이후 그는 일본과 중국에서 조선의 독립을 위한 삶을 걷는다. 

 

우리는 조선인이 천성적으로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존재라는 편견을 때려부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개인적인 용기를 세계 만방에 떨치면서 영웅적으로 죽어갈 생각이었다.-p57

 

내 인생에 행복했던 기억은 하나도 없다. 나는 역사에 밀착해서 살아왔다. 역사는 목동의 피리 소리에 맞춰서 춤추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부상자의 신음소리와 싸움하는 소리 뿐이다. 투쟁하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다. 그 밖의 것은 모두 내 세계에서는 하나도 의미가 없다. 바로 그 투쟁의 대립물 속에 나와 인간생활의 일치가, 나와 인간역사의 통일이 존재하는 것이다.-p68

 

혁명가들의 신음소리, 오로지 투쟁만 있는 삶이 김산의 일대기이다가출 후 무조건 신흥학교를 찾아가 조선독립을 위해 살겠다는 말을 했을 때, 그는 고작 16살이었다. 작은 형의 지원으로 일본에 갔지만,  수 천명의 조선인과 중국인이 대학살을 당하자 중국으로 피난을 가게 되면서 자연적으로 의열단에 가입하게 된다. 1924년 의열단은 민족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로 분열이 되기 시작하는데 김산은 이미 정신적인 지도자이자 이상이었던 톨스토이의 이념대로 무정부주의자의 길을 걷게 된다. 같은 노선을 걸었던 혁명 동지들 김약산과 오성륜의 일화는 당시 혁명가들의 얼마나 치열한 투쟁을 했는지를 엿볼 수 있으며 동시대를 살며 같은 고민을 하였던 안창호와 이광수의 등장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꺼내 돋을새김 하는 과정과도 같았다그만큼 조선 혁명가들의 삶은 생경하면서도 익숙하였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사랑도 투쟁과 같았다. 김산은 여성을 사랑한다는 것이 혁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지만, 두 동지들은 사랑도 혁명처럼 했다. 혁명과 사랑에 대한 김산의 고민은 투쟁에 전생을 저당잡힌 한 인간의 고뇌와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김산에게는 낭만적이면서도 혁명이라는 과업 앞에서는 허무한 것으로 여겼고 욕망을 참지 못하는 것도 혁명의 모순이라 이해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하고나서야 세상에 빛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는 장면에서는 혁명가의 비운의 삶을 상기시켜주기도 한다. 언제 죽을 지 모른다는 사실하나만으로 그들의 피는 들끓었다. 그 역시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을 했고 그러면서 죽음과 동행했다. 그가 사랑한  아리랑을 일본 감옥과 중국 감옥에서 부르며, 님웨일즈에게도 불러 주었을 때도 그는 아리랑의 비극이 언젠가는 민족해방의 승리로 바뀔 것임을 믿었다.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나 자신에 대하여- 승리했을 뿐이다. -p464

 

비극은 인생의 한 부분이다. 억압을 딛고 일어서는 것은 한 인간의 영광이요, 굴복하는 것은 한 인간의 수치이다. 내게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제국주의 전쟁 속에서 자신들의 생명을 맹목적으로 포기하는 모습을 본다는 것이 비극이다. 그것은 낭비인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를 억누르는 데 이용당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내게는 비극이다. 그것은 어리석음이다. 자유를 위하여, 자기들이 믿고 있는 것을 위하여 싸우다 의식적으로 죽는 것은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영광이요 장렬함인 것이다. 죽음은 선도 아니요 악도 아니다. 스스로 믿고 있는 하나의 목적으로 위해 자발적으로 싸우다 죽는 것은 행복한 죽음이다.-p472

 

이 책은 김산의 책이었다. 님 웨일즈가 만난 김산의 이야기가 아닌 암호로 쓰인 김산의 일기가 그의 책이  되었다.  집필 당시 김산은 전쟁중이었다. 동료들의 이야기가 사실적으로 쓰여있고 혁명의 날들이 기록되었기에 김산은 2년 뒤에 출간 해 줄 것을 부탁했다. 전쟁 중이며 혁명가로 살면서도 의학을 배웠고 독일어를 배웠고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마르크스 이론에 심취했으며 혁명가로 살기 위해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조선혁명가 김산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유일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긴 김산의 노력덕분이라는 것이 고마웠고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높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렇게 조선의 민족해방을 위해서는 투쟁만이 가치 있는 일이라 했던 김산은 1938년 일본스파이라는 오명으로 비밀 처형당했다. 이후 1983에서야 그의 신원은 불명예를 벗고 회복된다. 

 

아직도 우리는 비극 가운데 있다. 아리랑에 담긴 민족의 한, 그것은 비극이였으며 21세기를 사는 대한민국 역시도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건국일조차 갈등의 쟁점에 있는 한국사회에서 아리랑의 마지막 구절은 승리로 쓰고 싶다고 한 혁명가의 염원을 보며 이제 우리도 변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의 자유는 수 천, 수 만의 조선인이 희생한 댓가라는 것을 잊고 산다면 우리는 또 비극의 역사를 써야만 할 것이다. 


 20181030일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권이 전원합의체로 판결되었다. 그동안 왜곡과 조작으로 강제지용자들을 조선반도 출신의 노동자로 여론전을 펼쳐오며 왜곡의 역사로 일관해왔던 일본은 처음으로 강제징용의 불법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이와 맞물려 방탄소년단의 도쿄 공연이 일방적으로 취소가 되었다.  방탄소년단의 공연 취소는 방탄소년단의 멤버 지민이 광복티셔츠로 비롯된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강제징용 청구권 승소에 대한 반발이라는 정치적 시각이 더 지배적이다.  아직도 일본과 한국은 길고 긴 투쟁중에 있는 것을 보여주는 헤프닝이기도 하지만, 방탄소년단이 지닌 문화적 힘이 정치권력까지 움직일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님 웨일즈가 김산을 처음 만난 날은 1937년이었다. 그 당시에 님웨일즈는 조선인을 처음 본 것이었는데 조선인을 보고 한 말이 있다. 아마도 조선인은 극동지역에서 가장 잘생긴 민족이라며  아름답고 총명하고 우수해보이는 민족이 외형상 두드러짐이 없는 작은 일본인들에게 복종하며 살게 된 것이 생물학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고. 그 말을 들으니 지금의 한류는 우연이 아닌 우리 민족은 원래 우수했던 것이다. 작금에도 방탄소년단으로 인해 일본의 식민지 만행이 폭로되고 있으니 아리랑의 마지막 구절은 진정 희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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