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이다 - 장석주의 인물 읽기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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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왜 이렇게 끔찍하단 말인가? 삶이란 머리카락이 둥둥 떠다니는 수프와 같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그 수프를 마셔야 한다. -플로베르의 앵무새중에서

 

삶은 마셔야만 하는 머리카락이 둥둥 떠다니는 스프. 문명의 발달에 가짜 행복에 잠식되어 살아가는 우리가 종종 잊고 사는 진리이기도 하다. 멀리서 보면 그렇게 행복한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그들의 행복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온 몸에 브랜드 옷을 휘감고 각종 보석을 주렁주렁 걸쳤지만 영혼은 메말라 각종 우울증 약과 공황장애, 정신불안을 달고 사는 것이 머리카락이 둥둥 떠다니는 스프를 매일 마시는 우리네 삶을 반추한다. 현대의 모든 이치가 정신적인 것들을 등한시 하게 물질 만능주의에 젖어 살다보니 사고는 점점 단순해지며 합리적인 사고에서 멀어져 가는 느낌이다.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수많은 사건과 사고에 지나치게 즉흥적으로 반응하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며 패거리 문화를 형성하여 마녀사냥을 일삼는 온라인 문화를 보아도 우린 모두 심각한 정신적 상해를 가하는 동시에 피해자가 되고 있다. 삶에서 추구해야 하는 정신적 의미는 점점 쇠퇴해가며 욕망에만 충실한 삶, 이것이 현실이다.

 

장석주의 신간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이다를 읽으며 삶은 캄캄한 밤하늘에서 별을 찾는 일처럼 어둡고 좁은 인생길에서 저 멀리 빛을 보내고 있는 진리의 등대를 찾아 떠나는 여정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한다. 너무도 고독하고 외롭고 혼자서는 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을 때 등대처럼 진리의 불빛을 비쳐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길이 더 이상 외롭지 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빛 비춤을 해주는 사람들을 장석주 작가는 영혼에 푸른 버드나무처럼 드리워졌다 하여 열 다섯의 성인을 소개해주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 외로움과 고독, 슬픔과 아픔, 사랑과 고통을 빼고 좋은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외로움과 고통이 아플지라도 겪어야만 하는 것은 그것들을 통해 좋은 삶에 대한 성찰을 할 수있기 때문이다. 또한 외로움과 고독의 관문을 겪은 후 찾아오는 정신적 성숙을 통해 내면에 몰입함으로써 찾아오는 행복이 진짜 행복이다. 세속적인 시각에서 장석주 작가가 소개하는 열 다섯의 성인들은 인류문명사에서 가장 불행한 삶을 살았다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이다. 수많은 암살 위협과 음해 속에서도 사랑과 자애로 열반에 들어간 붓다의 삶이나 대문호로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뒤로 하고 가난한 민중들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해 금욕적인 삶을 선택하였던 톨스토이의 길 위에서의 죽음이 그러했다. 불운할 뿐 아니라 불행하기까지 하였던 공자는 평생을 상갓집 개로 천대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 최고의 철학자가 되었다.

 

랭보의 삶에 비하면 다른 이들의 삶은 그나마 행복하다 할 수 있으리. 자신 스스로를 저줍다은 사람을 생각했던 랭보는 스스로의 삶을 탕진하는 데 열중했다. 동성애에 빠지기도 했으며 탈선과 방랑만이 그의 청춘을 물들였다. ‘불행은 나의 신이었다.’라고 할 정도로 자신의 출신과 나라를 저주했고 자신의 삶 역시도 저주받았다 생각했기에 그의 시는 저주로 가득찼고 지옥을 찬양했다. 그렇게 그는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평생을 방랑만하며 살다가 다리에 악성 종양이 생겨 38세 이른 나이에 불행하고 짧은 생을 마친다. 체 게바라와 프리다 칼로, 니체, 스티브 잡스 역시도 불행의 아이콘인 동시에 시대의 변혁을 가져온 혁명의 아이콘들이다. 이들은 모두 불행하게 살았지만 그 불행을 통해 자신의 예술성과 삶에서의 철학을 완성해 가고 있다. 비록 육체는 죽었으나, 영혼은 불멸하여 수천, 수백 년이 지나도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빛으로 스며들어 호흡하고 있다. 현재의 삶, 머리카락이 둥둥 떠다녀도 마실 수밖에 없다면 컴컴한 밤하늘에도 나를 위해 반짝이고 있을 이들을 위해 묵묵히 걸어가자.

 

여러분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사는 것처럼 낭비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도그마에 빠지지 마십시오. 자신 내면의 소리를 방해하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허락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진정 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외의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입니다.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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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문명 세계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갖는 건 어렵다. 늘 패거리에 둘러싸여 있기 일쑤다. 그것은 불가피한 사태이기도 하다. 숲속에서 혼자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진짜로 혼자인 것은 아니다. 태양도 혼자, 호박벌도 혼자, 물새도 혼자, 호수도 혼자, 심지어는 하느님도 혼자다.

혼자 있는 것은 고독한 일이다. 하지만 진정한 고독은 복잡한 세속에서 벗어난 심리적 피난처일 뿐 아니라 심미적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이다. 외로운 것은 혼자라서가 아니라 자연과 교감하는 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온몸의 감각을 열고 주의를 기울이면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금세 깨달을 것이다. 바람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고, 빗방울이 종일 눈물을 떨구는 사연을 들으며, 물새의 웃음소리에 화답하듯이 웃어보라.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이다』

세상사에 씨름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정신줄 놓는 경우가 많아진다.
SNS나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풍경 사진을 올리는 재미에 푹 빠졌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가끔 부질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일상에 취미를 갖는 일은 스트레스를
스스로 자처한다는 일이다.
인간은 관계를 떠나 살 수 없기 때문인데
SNS에 글을 올리는 자체가
또 다른 관계망의 시작이며 정신적 고통을 늘리는 일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매일 자연과 호흡하며 운동을 하루도 빠짐없이 하려는 것도
어쩌면 이런 복잡한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유도 있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제법 내면의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때는 내가 몰랐던 나의 아픔에 닿기도 한다.
너 이렇게 아팠었구나...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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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정의란_무엇인가

1.정의롭지 못한 사건서술
아이들과 놀이공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놀이기구를 타기위해 줄을 서 있는 일반적인 줄서기와는 달리 프리패스라 크게 쓰여 있는 줄에는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줄을 서는 맨 앞줄로 다가가보니 프리패스를 이용하려면 요금을 더 내어야 하며 온라인으로 한 시간 전에 신청가능하다 적혀있었다. 과거 마이클 샌델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말하였듯이 자본주의 사회가 시장경제 체제로 바뀌어 가면서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세상을 목도한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돈으로 무엇이든 사는 행위를 너무도 당연한 행위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죄책감이나 거부감이 전혀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인지도 모른다. 도덕이라는 가치와 개념은 점점 무감각해지며 무엇이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를 시장경제 사회라 샌델은 정의한 바 있다. 실제로도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던 사건 사고들이 돈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들이 비일비재한 것만 보아도 돈으로 무엇이든 사고파는 시장경제가 우리의 생활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놀이공원의 프리패스와 같은 새치기권 판매행태를 보면서도 돈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가 당연시되는 사회분위기가 향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미칠 도덕적 논리까지도 걱정이 되는 이유는 돈이 생활의 수단이 될 수는 있지만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2. 프리패스는 왜 정의롭지 못 할까
최근 수 십 년 동안 전통적으로 비시장 규범이 지배했던 삶의 영역에 시장사회의 개념이 확대되고 있다. 기존과는 달리 비경제적 재화에 가격을 매기는 성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경우라도 도덕적 영역 안에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마이클 샌델은 시장논리가 ‘도덕논리‘로 설명되어야 하며 경제학자들 역시도 도덕적으로 거래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모든 것을 사고판다는 인식이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위기의식이 대두되는 이유를 말하자면, 두 가지이다. 바로 불평등과 부패 때문이다. 불평등이 점차 심화되면서 모든 것이 시장의 지배를 받는 현상은 부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삶이 분리되고 있다는 의미다. 모든 것이 상품화가 됨으로 돈이 소중하게 자리잡게 되면서 불평등 때문에 발생하는 고통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프리패스가 정의롭지 못한 것은 이처럼 불평등과 부패가 깔려있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정의를 "모든 도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비교조차 안 될 만큼 가장 신성하고 강제적인 것.“ 이라고 했다. 반면 존 로크는 ”인간의 자연권을 어느 국가도 넘어설 수 없는 매우 강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의 관점은 한 시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안에 작동하는 불평등과 불의를 해결하는 데서 나타난다. 하지만 정의가 상대적인 것은 아니다. 도덕적인 가치가 토론되면서 도덕적 주체의 반성대상이 된다. 때문에 정의 개념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고,적용 시점에 따라 상이한 평가가 가능하다. 바로 그런 이유로 정의는 ‘한계’를 가진다고 하였다.

위와 같이 정의는 사회적 약속과 책임, 도덕적 가치를 바탕으로 한다. 도덕적 가치를 무시한 정의는 정의가 될 수 없다. 프리패스에 깔려있는 불평등과 부패에 길들여 자란 어린아이들은사회적 약속과 도덕적 가치를 돈보다 낮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자연적으로 인간은 물질 아래로 두고 사회적 가치를 판단하는 것을 당연시 받아들이게 되면서 자본주의보다 더 심각한 시장경제인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게 될 것이다.

3. 대안은 있는 것일까?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프리패스와 같이 편리한 기능은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가치로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허나, 우리가 더불어 아름다운 사회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편리함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 불리우는 부탄은 여행객들의 증가로 자국민들이 농사일에 전념할 수 없다고 하자 여행객들 수를 제한하였다. 돈보다는 국민들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가치의 문제인 것이다. 도덕적 가치가 모호해지고 이제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부분까지 돈이 모든 삶에 파고들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도덕적 가치와 돈의 가치를 구분할 줄 알아야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프리패스가 편리하지만, 그 안에는 불평등과 부패라는 경계해야 할 시장논리가 담겨있듯이 불편하더라도 정의의 길을 추구하려는 개개인의 노력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한다. 불평등은 노력하지 않아도 찾아오고 정의는 노력해야만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인생우화』에는 바보들이 사는 헤움마을이 나온다.
지상에 사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모아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든 다음 다시 지상에 내려보내겠다고 한 신의 심부름으로 천사들은 바보들을 모았다. 그러나, 한 자루에 담기에는 세상에 바보가 너무도 많아 산을 오르는 중간에 자루가 터져버리고 만다. 그곳은 폴란드의 헤움이라는 마을이었는데 신은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 바보들끼리 모여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며 지켜보자고 한다. 이때부터 헤움에는 세상에서 어리석은 바보들이 모두 모여 살아가기 시작하였다.

이웃마을의 부유함이 부러웠던 바보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세상의 정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마부 이하일과 양복장이 이체크를 보내 정의를 구해오라 한다. 배를 타고 가던 중 보물처럼 아끼는 상자에 정의가 있다고 듣자 100달러를 주고 사왔다. 정의를 사 왔다는 말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광장에 모이자, 그때서야 상자를 열어본 이들은 썩은 생선이 가득한 것을 보게 된다. 이들은 긴 여행으로 정의가 부패했다 생각하며 정의를 이렇게 정의한다.

“우리가 구입한 정의에서 악취가 나는 이유는 세상 어디나 정의가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정의를 바로 세워야합니다.˝

결국 정의는 현실에서 추구해야만이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는 정의는 부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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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엠_샘 #영화 #서평

세월이 흘러 내 곁에는 두 아이가 있다. 아이를 키우다보니 과거 영화를 볼때와는 다른 감동이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아이를 키우는 일, 그것은 어떤 경험보다도 힘겨운 생의 사투였고 부모의 삶이라는 화두를 평생 던져준 일생일대의 과제였다.

7살 지능을 가진 아버지를 둔 루시, 루시는 그 누구보다도 힘겹고 어려운 상황이다. 매일 책을 읽어주지만, 글을 읽을 줄 몰라 외운 동화책 한 권만 수천 번을 읽어주는 아버지 샘. 이제 곧 8살이 되는 루시는 동화책의 내용에 질릴 만도 하건만, 유치원에서 보내주는 동화를 읽어내지 못하는 아버지를 위해 동화책을 읽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며 글을 읽지 못하는 척을 한다. 아버지 샘은 다시 또 매일 읽는 동화책을 읽어주며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는 장면은 끝내 눈물샘을 건드리고 만다. 숨가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동화책 한 권 읽어주지 못한 아이들에게 그저 미안함 마음이 들어서였다. 7살 지능을 가졌지만 아이를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할 기세인 샘에게 일생일대의 위기가 찾아온다. 아동복지사로부터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는 아버지 샘으로부터 루시를 강제분리시켰기 때문이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아버지는 변호사를 알아보지만 그 누구도 아버지 샘을 위한 변호를 하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는다.

샘과는 비교되는 세련된 커리어 우먼 변호사 미셸 파이퍼를 찾아가지만, 어쩐지 그 변호사는 너무 정신없는 모습이다. 샘에게 정신감정을 의뢰한 복지사들로부터 정신병원에 가는 동안에도 변호사는 과속을 일삼으며 끊임없이 욕설을 하고, 운전 중에도 수없이 통화를 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저능아 샘보다 더 정신병을 앓고 있는 병자라 해도 믿을 수 있는 장면이었다. 어쩌면 현대인들의 모습은 정상과 비정상을 오가며 끊임없이 방황을 일삼는지도 모른다.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의 모습을 반추하는 엘리트 변호사역의 미셸 파이퍼와 사회적 취약계층의 샘의 만남은 최상의 계층과 최하의 계층이다. 둘의 대조적인 삶이 교차되며 펼쳐진다. 수백 평이 넘어 보이는 집에서 포르쉐를 타는 미셸 파이퍼에게는 세상에서 모든 것을 가진 사람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세련된 옷차림과 자신만만한 그녀의 태도에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지만 그녀에게도 아킬레스건이 있었다. 루시와 같은 나이인 8살 아들 윌리. 사고뭉치에 엄마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으며 오히려 경멸의 눈빛을 하고 있는 아들을 볼 때마다 변호사의 입에서는 한숨이 흘러나온다. 남편은 매일 출장으로 바쁘고 아내와는 전화통화만 할 뿐 가정에는 관심조차 없다. 그런 상황에서 샘을 만났다. 매일 찾아오는 의뢰인들은 서로 아이를 맡지 않겠다며 소송을 걸어대고 자신의 삶에서도 아이는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어 있는 현실이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사랑은 없는 메마른 삶이다.

워커홀릭이었던 그녀를 시기하는 동료들. 돈 밖에 모르는 변호사로 수군대는 동료들에게 장애를 가진 샘을 무료변호 해주겠다는 선언을 해 버리고 만 것은 어쩌면 자신의 이기심에 대한 치기와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샘의 변호를 통해 미셸은 자신의 인생에 무엇이 빠져있는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거친다. 루시를 빼앗겨 울부짖고 있는 샘에게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샘보다 자신이었다는 고백은 미셸의 변화를 알려주는 장면이다. 샘의 지능은 7세이지만 삶에서 소중한 사랑을 주는 방법을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변호인단 앞에서 루시가 한 말은 이것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제게 필요한 건 사랑뿐이에요.’

재판에 진 샘은 위탁가정에 있는 루시를 보러갔다가 멀리서 지켜만 보다 차마 만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다. 이후 집에만 칩거하며 나오지 않자 걱정이 되어 찾아간 미셸은 자책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처음으로 자신의 장애와 무능을 탓하며 괴로워하는 샘을 마주한다. 이제 막 이혼을 하고 온 미셸은 샘에게 소리치며 운다. 누구나 다 그런 고통 하나는 가지고 있다며 성공한 커리어우먼인 자신도 여전히 외모에 대한 열등감과 타인과의 경쟁에서 뒤처질까하는 두려움과 자신을 미워하는 동료들과 싸우는 중이며 매일 자신을 경멸하는 아들의 눈빛에 고통 받고 있다고 모든 것은 샘의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한다.

항소를 준비하는 변호사와 샘은 다시 루시를 찾아오기 위해 의기투합하며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 루시의 위탁가정집 근처에 아파트를 마련한다.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루시를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샘과 루시는 너무도 행복하다. 늦은 밤 아빠를 보고 잠든 루시를 다시 위탁가정집에 돌려보내는 것이 하루일과가 되버린다. 그것을 지켜보는 위탁가정집의 부모들.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위탁가정의 부모들은 루시를 샘에게 보내며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어서 재판에 샘을 나쁘게 말하려 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루시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고. 영화의 마지막은 변호사와 위탁가정의 부모들, 샘의 친구들, 루시의 친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축구를 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두려운 일이기도 하며 어른들 누구도 완벽하지 않기에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다. 늘 모범생인 줄 알았던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자 어긋나기 시작했다. 삐딱한 말투와 삐딱한 행동, 순화되지 않은 말을 사용하기도 하고 어른 흉내를 내며 화장도 시작했다. 근심으로 아이를 보며 아이가 잘못될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늘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사랑의 눈빛으로 마주한 기억이 없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쩌면 그렇게 큰 조건이나 환경이 필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공한 여성조차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고 있듯이 아니면 영화 속 아동복지사들이 아버지로서의 자질을 검증하며 수많은 조건을 내세우는 것조차 어리석은 허울인지도 모른다. 루시가 아버지로서의 지능을 의심하는 복지사들에게 사랑만이 필요하다는 말로 심금을 울렸듯이 아이는 사랑만으로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의 방황은 어쩌면 사랑이 필요한 나이에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한 나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그래. 사랑한다 나의 딸들...
샘의 문장으로 마지막을 대신한다.
전 세계인들을 울게 만든 한 문장...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https://youtu.be/9cGBsTcA-5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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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는 이쁘고 연필도 귀엽고 저스트살구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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