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메인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유재영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듭지어지지 못한 죽음의 이야기

『 도메인 』

유재영 / 교유서가







이것이야말로 이야기의 영역이다.

죽음이 이야기를 영속하게 할 것이니...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죽음과 마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다양한 형태의 죽음을 보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나와는 먼 듯한 아니면 죽음이란 단어를 거부하고 있는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메인>은 '영'과 '역' 두 가지의 단편으로, 죽음을 목도한 인물들의 끝나지 않은 영역을 그려내고 있다. 마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듯이... 지워내고 싶지만 기억을 되뇌이게 되는 흔적들이 거짓인듯 진실처럼 들리는 것은 나뿐일까 싶다.







지우고 싶은 기억을 말하고

불길에 뼛조각을 던지면

그 기억을 지울 수 있대요.



첫번째 단편소설 '영'...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여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녹록치 않았던 어느날... 다섯번째 결혼 기념일을 맞이해 여행계획을 세웠던 진언과 지혜는 친구 기태의 초대로 캠핑을 떠나게 됐고 운전부주의로 무언가에 부딪혀 판단이 흐트러진다. 반대차선에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짓이겨진 사체가 있었으나 그들과는 상관없었기에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그들이 피운 모닥불 주위로 개와 고양이가 다가왔고 그들은 지우고 싶은 기억들의 이야기들을 모닥불에 던져버리는데... 

두번째 단편소설 '역'... 등굣길에 만난 선배는 나를 방송실로 데려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그 자리를 얼른 벗어나고 싶었기에 할머니 댁에서 보낸 여름날 밤에 일어난 실종됐다 저수지에서 발견된 누나가 물에 젖은 채 서 있었다고 했다. 

연결되어 있지 않는 '영'과 '역'의 이야기는 깊숙히 생각하면 섬뜩하게 이어져 있는 듯 하다. 혹! 그 저수지가 같은 곳은 아닌지, 그리고 의문스런 주인장의 행태는 무엇을 감추려 하는지, 이 이야기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모든 이야기를 자신과 잇는 듯 하다. 그것이 죽음이라 할지라도... 은연중에 문득 스치는 어두운 기억의 잔해는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잔영이 남기때문일까...? 


<도메인>은 저수지라는 어둠을 공존하며 죽음의 비밀을 끝까지 매듭짓지 않는다. 아니... 끝나지 않았기에 매듭짓지 못한 것일수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정은영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과 세계의 진실을 은유하는 버그의 서사

『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 』

정은영 / 교유서가






의문 하나로 시작하는 장애에 대한 시선...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는 장애아 출산율 0%를 향한 실험으로 인한 인간성의 상실을 그려낸 소설이었다. 예전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고정욱작가의 강연을 들으며 장애가 주는 어려운 현실뿐만 아니라 배제된 사회적 지원으로 인한 부담을 얘기한 적이 있다. 가장 큰 어려움은 그런 사회의 모순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었다는거... 장애인이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것처럼 멋대로 도우려 하지말라는 말이 마음 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장애아가 탄생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소재의 SF적 상상력이 버그로 인한 비극을 자초하는 일을 만들고 물의를 빚었다면 과연 인간은 인간다운 선택을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 또한 갖게 했던 소설이었다.






인간들은 무엇을 지키려고 기억을 제거하는가.

인간의 일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제기해서는 안 되는 의문이었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이 완벽한 인간을 탄생시킨다는 불편한 진실을 그려낸 완벽한 소설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는 그저 버그였다. 상상력에서부터 잘못되면 모든 기억을 지워버린다는 반인륜적 설정이 어쩌면 읽는 독자들에게 실패했으면 좋겠다는 의지를 가지게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기발한 소재로 독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결말이 맺어진 듯 했다.

혐오없는 도시 만들기의 일환으로 인구관리국에서 진행한 장애아 출산율 0%는 버그로 인한 오류를 마주하게 된다. 임산부 로봇에게 인간처럼 태교하는 법을 교육하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하지말라니... 자신의 뱃속에 아이를 품은 임산부 로봇이 "아기의 냄새도 이렇지 않을까?"하는 의문조차 갖지 못하는 그녀들의 소모품같은 일상... 쓰여지고 버려지는 소모품임에도 임산부 로봇에게 그녀라 호칭하는 말이 몹시나 씁쓸함을 남기는 스토리였다. 과연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떨지...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는 이 이야기뿐만 아니라 '소년과 소년'이라는 단편도 담고 있었다. 짧지만 의미하는 바가 결코 작지않은 장애란 주제에 대해서 말이다. 

디스토피아적 스토리로 빛이 아닌 그림자를 그린 이야기들은 우리가 직시해야하는 장애와 인권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독자에게 주는 과제였다면 아마도 쉽지 않은 과제가 아닐까 싶다. 생각이란걸 해 본 적 없는 로봇이 의문을 갖게 된다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박초이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실과 고독의 풍경

『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 』

박초이 단편소설 / 교유서가







정말 무서운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젊은이들의 초상이라 말해야 할까? 집과 차는 꿈조차 꿀 수 없는데다 몸을 사리지않고 열심히 일해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형편에 우울하기만 하다. 게다가 누군가와 인연을 잇고 싶다하더라도 만나면 돈이란 것이 있어야하기때문에 괜히 가까워지기라도 하면 식상한 관계의 연속이 될 수 있다는 불안으로 헤어짐이 두려워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는거...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는 관계의 상실을 그린 단편소설로 세상에 중심에 서야 하는 이들이 스스로를 소외시켜야 하는 외로운 실상을 그려냈다. 과거가 지긋지긋했고 희망없는 미래가 어렵기만하지만, 과거 잘못 들어선 갈림길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들로 미래를 다시 설계하겠다는 의지를 담아낸 이야기다.






나는 둥근 원을 돌면서

내가 원하는 진실을 시간 속에 짜맞추고 있었다.

이제 과거를 다시 쓰고 싶었다.

내가 만들어갈 미래가 내 과거가 될 수 있도록.



작고 아늑한 장례식장... 열차 기관사였던 가 자신의 삶이 마치 이동하는 변기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을 때, 미래를 만났다고 한다. 기관사는 운전실에 간이변기를 두고 볼 일을 보기때문에... 그러던 어느날, 정차역 화장실에서 나오다 발견한 아기 고양이는 머리 한번 쓰다듬어줬다고 자신을 따라왔다고 한다. 

그렇게 우연한 인연으로 만난 고양이 미래는 구에게... 그리고 장거리 운행으로 맞겨진 에게 인연이 아닌 존재로서 다가왔다. 그 누구에게 무엇이 되지않아도 될 미래에겐 오롯이 나를 보여줄 수 있었기때문에...

관계없이 살아가는 외로운 나는 어떻게든 살아가야했기에 미래를 위한 과거를 다시 쓰고 싶었다. 이 깊숙한 의미의 이야기들은 과연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가 의미하는 바는 무척이나 짙었다. 미래가 남긴 스물여섯 개의 추억조차도 다 전해지지 못했다는 것이 관계의 상실에 홀로남은 이들의 초상을 보는 듯 그런 의미에서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또 다른 단편소설 '사소한 사실들' 또한 서울에 있는 대학 그리고 성인이 되면 뭐라도 변할 줄 알았던 '나'는 그저 옥탑방 바퀴벌레처럼 혼자 견뎌야했던 외로운 현실을 그려냈다는 점을 보면 두 작품은 닮은것도 같다.

그럼에도 희망적이며 그럼에도 괜찮을거라고 감히 말 할순없지만 결국 인간은 누군가를 만날 것이고 관계는 이어질 것이며 그렇게 살아낼 것임을 전하고 싶다. 한국단편소설 <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는 고독한 이들에게 선물과도 같은 책이었고 만나봐야 할 이유가 되는 책이기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년의 금서 - 개정판
김진명 지음 / 새움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건의 미궁 한가운데엔 대한민국이 있다

『 천년의 금서 』

김진명 장편소설 / 새움











일본인들의 억지와 우리의 무지로

완전히 묻어버린 우리의 고대사에

이처럼 자랑스럽고 찬란한 문명이 있었던 겁니다.




우리의 무지함이 역사를 빼앗기는 현실과 마주하게 됐다. 

과거 청소년 시절... 역사의 기록을 외우고 있느니 차라리 어려운 수학문제를 푸는게 쉽다고 얘기했던 나는 이제와 생각해보니 참으로 무지한 사람이었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 사회의 중측이 되고 누군가의 엄마가 되면서 기록의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 지금, 정권이 바뀌면 왜 교과서가 개정됐고 어떤 오류로 내가 배웠던 역사를 근거도 없이 다시금 새기려하는지 관심조차 없었다는거... 무지한 탓도 있었겠지만 그동안 한국의 역사가 일본의 흔적을 벗어내지 못했다는 사실때문에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모른다는 것이 더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언제였더라...? 우리나라의 국보와 보물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1호에 대한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했던 적이 있어 찾아보니, 그 기록 자체가 일제치하에 만들어 졌고 이동하며 보이는 순서대로 적었다는 내용을 인터넷 페이지에서 확인하고 기함을 했던 적이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기록을 남기려는 우리와 일본의 갈등은 여전히 대립관계에 있고 김치나 한복에 관한 중국의 주장 또한 역사의 기록만으로 증명해야 하는만큼 기록의 역사와 진실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하겠다.



다른 건 차차 생각해봐야 알겠지만

일단 스스로 목을 맨 건 틀림없습니다.

손이나 목이나 저항한 흔적이 전혀 없으니 말입니다.

남에게 목을 졸려 죽은 시체가 이렇게 깨끗할 수는 없습니다.




첫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후로 발표했던 도서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던 김진명 작가... 그는 <천년의 금서>를 통해 대한민국이란 국호의 유래를 밝혔다. 마치 미스터리한 여교수의 사망을 소재로 더께한 기록의 흔적을 찾아 비밀스러운 행보를 보였다는거... 우리가 알고 있었던 단군신화 이전의 '한'의 기록을 찾았는데 읽는내내 가슴의 두근거림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느꼈다는 것이다.

사망한 여교수가 남긴 다섯 개의 별자리와 웹하드에 남겨진 메세지로 추리소설과도 같은 증거의 흐름을 따라 사건을 해결하는데 <천년의 금서>가 사실인지 허구인지 독자들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명색이 역사학자이자 국사편찬위원이고

대학에서 선생질을 하고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이 왜 대한민국인지,

한국인이 왜 한국인인지,

한반도가 왜 한반도인지,

도대체 그 한(한)이라는 글자가

어디서 왔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목반장은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의심이 들어 현장에 직접 찾아간다. 혼자 사는 30대의 여자로 책장에 꽂혀진 책에 여러겹으로 엮인 빨간줄로 목을 매고 자살했는데, 자살이라고 하기엔 자세가 이상했다는 점이다.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했지만 타살 흔적이 없어 사건을 마무리했지만 아무래도 찝찝한 마음에 목반장은 혼자 수사를 진행한다. 그러던 중 컴퓨터에서 자주 메일을 주고 받는 한은원 역사교수를 발견하게 되는데...

어쨌든 자살한 김미진 교수의 장례식장을 찾은 이정서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목반장은 그 또한 타살이 분명하다는 주장에 도움을 청하게 된다. 프랑스의 핵융합 연구소 소속인 이정서는 미진의 흔적을 찾다 은원 또한 실종된 사실을 알게 되고 사건의 진실을 찾으러 중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고조선 이전에 존재했던 '한'이라는 역사의 기록에 대한 진실이 과연 어디로 향할지...



김진명 소설엔 대한민국 역사의 혼이 담겨져 있다. <천년의 금서> 또한 한이라는 성이 중국의 한나라에서 온 것이 아니라 고조선 이전의 '한'과 고종 실록에 쓰여진 대한제국이란 국호의 탄생을 보며 오래도록 이어온 '한'에 대한 유래를 찾았던 역사적 발자취를 맛보게 하였다.

한국소설의 거장 김진명 작가는 이를 위해 오래전부터 고전분투하며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았고 앞으로의 기록을 위한 역사학자들의 노력을 응원했다. 여전히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흔들고 있는 주변국의 횡포가 국민의 정서를 혼란에 빠지게 만드는 지금... 바로 이때 우리는 <천년의 금서>를 만나야 할 이유가 될 것이다.



김진명 소설엔 대한민국 역사의 혼이 담겨져 있다. <천년의 금서> 또한 한이라는 성이 중국의 한나라에서 온 것이 아니라 고조선 이전의 '한'과 고종 실록에 쓰여진 대한제국이란 국호의 탄생을 보며 오래도록 이어온 '한'에 대한 유래를 찾았던 역사적 발자취를 맛보게 하였다.

한국소설의 거장 김진명 작가는 이를 위해 오래전부터 고전분투하며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았고 앞으로의 기록을 위한 역사학자들의 노력을 응원했다. 여전히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흔들고 있는 주변국의 횡포가 국민의 정서를 혼란에 빠지게 만드는 지금... 바로 이때 우리는 <천년의 금서>를 만나야 할 이유가 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생》 《허삼관 매혈기》 위화의 8년 만의 신작!

『 원청 : 잃어버린 도시 』

위화 장편소설 / 푸른숲







이건 아직 시작도 시작되지 않고,

끝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우리내 삶은 그저 정해진 운명대로 따라가는 것에 불과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잔잔하게 늘어지는 시간을 조심스레 잡아보았다. 운명대로 살되 삶의 희망을 놓지않으려 무던히도 애썼던 날들과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려 앙다문 입으로 성실히 살아왔던 날들을 되새겨 본다. 이 불행이 운명이라면 내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했고 희망이 없더라도 기회를 만들어보겠노라 다짐했던 나날... 그런 날들이 하루하루 더해져서 그럼에도 살만하다 느끼며 살고 있는 듯 하다.

<원청>의 회색빛 잔잔한 어둠을 보면서 그나마 밝은 곳을 찾으려는 나의 눈길에 아직은 희망을 보고 있구나~란 생각에 작은 미소를 짓게 된다. 이렇게나 두껍고 긴 여정을 그려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고 끝나지도 않았음이 의미하는 것은 여전히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가 있기에 이런 메세지를 띄운건 아닐까 싶었다.








<원청>은 진시황 이래 군주제의 종말을 맞이했던 중국사의 근대적 소설로 1911년에 민주주의 혁명이었던 신해혁명기를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시대를 관통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위화의 중국소설은 출간한지 1년 만에 150만 부가 판매되었다고 하니 붙임말조차 필요치 않은 듯 하다. 

작년에 강연한 영상을 옅보니 저자 위화는 <원청>에서 가장 애착이 갔던 인물로 샤오메이를 뽑았는데, 격변의 시대상 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 감내해야했던 침묵에 무척이나 설움이 북받쳤다는 점이다. 저자 또한 그런 의미에서 작품 속 샤오메이를 놓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전생은 어디이고 내세는 어디인가,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가.



부유한 집안의 린샹푸... 아버지는 5살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19살에 쓰러졌지만 남겨진 유산이 많아 살아가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남다른 재주로 가업을 물려받아 가구만드는 일을 했으며 생전에 아버님 말씀대로 재산도 적잖게 불려나가며 평화로운 삶을 살았었다. 

그러던 중 황혼이 내리는 어느날... 자신들이 타고가던 마차의 바퀴가 망가져 하룻밤 묵어가게 도와달라 청하는 남매의 부탁에 린샹푸는 그들을 손님방에 모시게 된다. 오라비는 아창이고 여동생은 샤오메이이며 원청이라는 남쪽도시에서 왔다는 의문의 남매, 다음날 오라비는 여동생만 두고 홀연히 사라졌고 남겨진 샤오메이와 린샹푸는 부부의 연을 이어 행복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그녀 또한 자취를 감추고 마는데...

역경의 시간은 왜 자신을 비켜가지 않는지... 모아둔 재산을 가지고 사라졌던 그녀가 배가 남산만해져 린샹푸를 찾아왔고 출산한지 얼마지나지 않아 아이만 남겨둔채 또 다시 자취를 감춘다. 그녀를 찾아 '원청'으로 향했던 린샹푸의 견뎌내야하는 고달픈 삶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아니 시작이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살아 숨 쉬는 한, 삶은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원청>은 꿋꿋이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군상을 그렸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보려 하는 희망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마치 이 또한 운명인것처럼...

힘든 지금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으로 견뎌내야 하는지 고민하는 독자가 있다면 위화의 장편소설 <원청>을 추천하고 싶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서도 이렇게나 아쉬웠던 책은 오랜만인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