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학의 자리
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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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학의 자리라는 책표지 그림을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야 이해하게 된다. 반전이 마지막까지 자리잡는 스릴러 소설이다. 고등학교 학생과 선생님의 부적절한 관계, 학교 교실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 등이 추리를 거듭하게 한다. 학생이 죽었다. 목에는 칼자국이 여러 군데 발견되고 학생은 목을 매달고 죽어있는 모습을 선생님은 발견한다. 살리고자 노끈을 끊고 심폐소생술을 하지만 희망이 없는 상황이다. 선생님은 자신의 부적절한 상황이 두렵기만 하다. 죽은 학생을 호수에 던져 넣고 완벽한 정황들을 준비하는 꼼꼼함까지 보인다. 누가 죽였을까? 그는 학생을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무책임한 어른들이 자꾸만 어른거리는 이야기이다. 호수에서 발견된 사체는 다현이라는 학생이다. 사기죄로 교도소에 수감되고 그곳에서 자살한 엄마가 있지만 엄마는 자식을 걱정조차 하지 않는 부모이다. 외할머니 집에서 생활한 다현은 할머니가 죽으면서 혼자서 할머니의 집에서 생활중이다. 외할머니 장례식조차도 학교 선생님의 도움으로 진행하게 된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다현은 학교 선생님에게 많이 의지하게 된다.

사기죄 피해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도 소설에 등장한다. 욕망이 너무나도 커져버린 어른들이 무책임하게 사기를 당하게 된다. 자살하고 떠나버린 교무부장 남편의 행동과 선택들도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남은 가족들이 감당해야 하는 것들은 너무나도 큰 파도가 된다. 남겨진 아들은 모범생으로 자라나는 가면속으로 숨어버린다. 엄마가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알기에 더욱 가면 속에 숨어서 모범생으로 생활하지만 실생활은 그렇지 않다.

다현은 늘 무덤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친구가 없어도, 대화할 사람이 없어도 아무 상관 없다라는 뜻한 얼굴... 아무도... 말을 걸지 않고 걱정해 주지 않고 버려두는 것이리라. 다현은 처절하게 외로운 아이였다. 부서질 듯 약한 아이였다. 작은 상처를 받는 것도 두려워 거짓 외피를 서툴게 두른 것뿐... 117

집에 냄새 배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신혼 때에도 반찬 가게에서 산 마른 반찬으로 식탁을 차렸고 그나마도 점차 없어졌다. 집에서 먹는 것은 우유나 견과류가 전부였다. 176

무섭게 굳어버린 얼굴 속에 일그러진 욕망이 있었다. 두려움과 슬픔의 외피를 두른 악마가 도사리고 있었다. 8



45살 교사인 준후의 생각과 행동들을 살펴보게 된다. 다현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모습, 아내와 별거 중인 생활, 자식의 안부를 묻지 않는 모습들도 예의주시하게 된다. 일그러진 자아는 학교 선생님이지만 정상적인 범위를 벗어나 버린다. 도덕적인 것을 벗어버린 교사는 아내에게도, 연인이었던 다현에게도 범죄자의 모습을 보일 뿐이다. 마지막까지 반전이 준비되는 이야기이다. 인간이 가진 욕망이 얼마나 일그러질 수 있는지 소설을 통해서 보여준다.

가면과 가식이라는 범주 안에 안착한 모범생 정은성이라는 학생과 그의 어머니의 범죄행위까지도 놓치지 않게 하는 질문이 된다. 교사 아내의 결혼 생활 모습도 정상적이지 않다. 아내에게 질려버린 남편이 이혼을 생각한 이유도 짐작하게 된다. 홍학의 의미를 소설을 통해서 이해하게 된다. 홍학이 가진 상징성과 동성애, 현재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연인의 모습을 깨닫고 복수하는 것까지 촘촘하게 이해관계들이 넘쳐나는 소설이다.

그중 한 사람만이라도 다른 선택을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328

당연히 죽음을 애도하는 기색은 없었다. (학교) 87

다현의 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 엄마, 학교 선생님, 친구. 그들 중에 한 명이라도 다른 선택을 하였다면 다현의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다현의 인생은 비틀리고 추락하면서 사랑마저도 변질되는 상황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복수하는 방식으로 죽음을 선택하게 된 다현을 보게 된다. 더불어 학생의 죽음마저도 학교는 애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숨기고 감추기에 바쁜 학교의 모습은 이 사회와 다르지가 않다. 초등학교 교사의 죽음을 애도조차 하지 못하도록 학교가 방해하는 기사가 떠오른다. 학교가 온전하게 자기 구실을 다하는 사회인지 거듭 질문을 놓지 않게 한다. 견고하지만 단단하지 않은 사회가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게 한다. 사건의 배경은 학교이지만 사회 전체를 향해 질문을 하게 된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손을 내밀어 준 사회가 되고 있는지 거듭 돌아보게 한다.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책장은 멈추지 않았고 누가 범인이었는지 궁금하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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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설자은 시리즈 1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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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버린 나라 백제와 새롭게 시작하는 신라 시대가 배경이 되는 시대극 추리소설이다. 여러 편의 이야기들은 흥미롭게 사건들을 추리하는 설자은과 옆에서 도움을 많이 주는 인곤이라는 인물의 조합이 멋지다. 반란을 계획하는 무리에게는 가차없이 엄벌을 내리는 신라 왕의 단호함도 이야기를 통해서 전해진다. 출세를 꿈꾸는 설자은 오빠의 계획과 설자은 여동생의 미래를 위해 조언을 하는 모습과 여동생의 심지있는 결단도 전해지는 소설이다. 신라시대 남성과 여성이 치장을 좋아했던 문화가 소설에서도 등장한다. 미려한 모습을 선호한 신라인들의 풍습까지도 놓치지 않고 살펴보게 한다.



당나라로 유학생활을 하는 설자은이 전쟁으로 힘들게 유학생활을 하였음을 알게 된다. 신라로 돌아갈 수 있어서 기뻐하면서 배를 타게 되는데 그곳에서 만나는 인곤이라는 백제 사람과 함께 사건들을 하나씩 해결하게 된다. 미려하지만 차가운 얼굴을 가진 설자은에게 먼저 식객으로 제안을 하면서 다가서는 인곤의 활약도 재미를 더한다. 신라로 돌아가는 배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설자은과 인곤의 활약과 마지막에 드러나는 진실도 꽤 흥미롭게 전개된다.

제 배로 나은 자식에게도

잔혹한 인간들이 많지만 49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모든 일에서 소외되는 것 75

죽는 것보다 못한 혼인 218

하라는 대로 잘 따르던

예전의 너는 어디로 사라진 것이냐? 234



죽은 오빠를 대신해서 유학생활을 한 설자은은 남자로 위장해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다. 여성임을 알고도 비밀을 보호해 주는 인곤의 모습과 설자은의 오른팔과 왼팔이 되는 이 남자의 활약과 서로 화합하는 모습이 꽤 재미있다. 어떤 사건도 범인을 맞추지 못했을 만큼 추리하는 모습에 빠져들게 된다. 단서를 찾고 추리하는 이 두 사람의 맹활약을 4편의 사건을 통해서 전해진다. 사흘 먹지 않아도 허기를 느끼지 않게 된 다음날이라고 전하는 문장과 제 배로 나은 자식에게도 잔혹한 인간들이 많다면서 추리하는 모습에 작가의 폭을 더욱 넓게 바라보게 된다. 술술 넘어가는 이야기 전개와 인물들의 촘촘한 등장에 범인을 찾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여성이 살아가는데 제외되고 선택받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던 시대이다. 모든 일에서 소외되는 여성의 삶이 자주 언급된다. 설자은 여동생인 도은의 삶을 통해서도 언급되며 길쌈을 준비하는 여성들의 많은 사연들에는 여성이 부당하게 혼인을 하고 결혼생활을 하고 있음을 엿보게 된다. 결혼생활이 죽는 것보다도 못하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의 삶을 펼쳐놓는 이야기를 놓치지 않게 한다. 하라는 대로 하는 여동생이 순종하지 않자 오빠가 여동생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모습도 예의주시하게 된다. 순종하고 복종하는 가르침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여성에게는 기회조차 없는 시대에 설자은이 남자의 모습으로 활약하는 수많은 추리 사건들은 의미심장한 주인공으로 자리잡는다.

놓친 게 무엇이지?

어디까지 거슬러올라가야 하지?

확인하지 않은 겉가지가 있나?...

눈 안에 형형한 빛이 보였다. 211

잃은 것을 잃은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괴롭지요.

무엇을 잃었는지 아는 쪽이 낫습니다. 172

한 생이 끝난 듯한 감회가 일었다. 11



탐욕과 비리, 부정행위로 사건의 중심에 자리잡는 매잡이의 탐욕스러운 모습도 기억하게 한다. 왕의 무덤처럼 무심해 보이는 모습도 예의주시하게 된다. 무심한 모습이 어떤 의미들을 상징하는지 우리는 알기에 왕의 모습은 더욱 섬뜩해진다. 관찰력이 뛰어나고 지력이 있는 설자은의 다음 이야기도 기대리게 된다. 시리즈로 출간되는 소설이라 계속 만날 수 있는 시리즈이다.

추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놓친 것, 확인하지 않은 겉가지가 있었는지도 다시금 의심하는 모습, 형형한 눈빛으로 추리하는 모습을 무수히 상상하면서 읽게 하는 이야기이다. 인생에서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 알면서 살아가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인지도 언급된다. 자신이 무엇을 잃고 살아가는지도 모르면서 살아가는 인생은 괴로운 것이라고 말하는 대화 내용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된다. 재미있는 소설 속에서 예리한 시선을 끄집어내는 대화들에 지긋하게 여러 번 삶을 돌아보게 하는 글귀들에 감동도 받았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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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인간 김동식 소설집 1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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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하는 작가의 소설집이라 눈길이 머물렀다. 바닥 타일 기술을 배우고 주물 공장에서 10년 넘게 일한 작가이다. 공포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출간된 책들도 눈길을 끈다. 총 10권의 소설집들까지도 책표지가 낯설지가 않다. 길지 않은 단편소설들이 24편으로 수록된 소설집이다. 기괴하고 기묘한 이야기들이 하나씩 전해진다.

『지옥으로 간 사이비 교주』에서 등장하는 악인들과 악마가 눈길을 끈다. 지옥에서도 권력을 가진 주인공의 최후 모습에 악마들은 낄낄거릴 뿐이다. 지옥에 있는 악인들은 주저앉아야 했던 이유가 전해진다. 죽어서도 악인들이 꿈꾸는 욕망과 행태가 변함없이 전해지는 짧은 소설이다.

『444번 채널의 동굴인들』에서는 인간이 무엇인지 꼬집는 소설이다. 잊고 살면 안 되는 것들도 쉽게 잊고 살아가는 형태를 기묘한 사건인 동굴인들 사건을 통해서 전해진다. 444번 채널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은 전혀 낯설지가 않다. 잊지 않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 강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신은 사라졌고, 사람들은 주저앉았고, 악마들은 낄낄거렸다. 326

처음 몇 달간은 동굴인들을 기억했다.

그러나 1년, 2년, 사람들은

더 이상 444번 채널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궁금하지 않았다. 317

전 인류는 피곤을 모르게 되었다.

인간의 하루 활동 시간이 23시간으로 길어졌다. 232



『흐르는 물이 되어』에서는 인간의 욕망과 과욕이 전해진다. 활동하는 시간과 쉬어야 하는 시간이 엄연하게 필요하다. 쉬지 않고 일하는 인간, 쉬지 못하게 하는 사회, 노인과 미성년자들을 노동시장에서 활용하는 현대사회는 이상한 나라이다. 노인의 기준을 법으로 정한 것과 노동시장에서 죽을 때까지 일하라고 규정하는 노인 일자리가 위태로운 사회이다. 활동성이 부족한 노동자들을 활용하는 나라의 정책이 정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매번 느끼게 된다. 노동시장에 있으면 안 되는 노동력들이 한국 사회는 무분별하게 쓰임을 다하는 사회이다. 이 소설에서도 그러한 모습이 엿보인다. 인류는 피곤을 모르면서 하루 활동 시간을 23시간으로 활용하는 인류가 등장한다. 기묘하지만 기묘하지 않은 한국 사회가 오버랩되는 순간이 된다.

『식인 빌딩』에서는 이기적인 주장과 합리적인 주장이 대립을 이룬다. 다수를 이룬 소수의 희생이 제시되면서 사형수의 희생을 요구하는 사회, 작은 디스토피아에 대해서도 이야기된다.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 절망을 인지한 사람들,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까지도 예리하게 꼬집는다. 지금도 이름 없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다수가 안락하게 생활을 하고 있음을 고찰하게 된다. 위험을 무릅쓰면서 누군가의 희생이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살펴보게 한다. 소방대원의 죽음, 노동자들의 죽음들이 하나둘씩 상기된다. 노동하는 작가의 시선에 떠오른 이야기에서 압축된 한국 사회와 인간성을 보게 된다. 이질적이고 이기적인 인간, 완전하다고 믿는 믿음이 허상이기도 하다는 진실까지도 보게 된다. 부조리한 사회의 모습들을 작가만의 소설로 탄생한 24편의 이야기들에서 예리함을 관찰하게 된다. 허구이지만 낯설지 않은 우리 사회의 모습들이 연거푸 보였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주장. 합리적인 주장 201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사형수의 인권, 작은 디스토피아, 희망과 절망, 희생의 강요까지 202

『인간 재활용』이야기도 긴 잔상을 남긴다. 많은 돈으로 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과 딸을 다시 살려내고자 노력하는 아버지의 재력과 의지는 어떻게 좌절되었는지 진실이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딸이 다시 살아나지 못했던 이유와 공모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밝혀진다. 다시 살아날 기회를 가지고자 가장 먼저 죽여야 했던 한 사람이 있었고 그 괴로움을 호소하고자 아버지 꿈에 나타나지만 아버지는 딸의 부탁을 무시해버린다. 기회가 왔을 때 확률적으로 기회를 가지고자 선택하는 인간의 모습과 포기하지 않는 아버지의 의지로 인해서 무수히 잘려나가는 딸의 신체들도 의미심장해진다. 기발한 이야기들이 무수히 전해져서 읽을 때마다 매번 새로웠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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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진하는 밤 문학과지성 시인선 589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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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워크

뒤로 걷고 싶다 ...

누군가가 두 팔을 벌린 채

내 등을 안아주려고 서 있는 대까지

무사히 도착하고 싶다 ...

'그쪽으로 가지 말고 이리 와봐' 하면서

영원히 나를 기다린 것 같다... 52

나는 대체로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고...

지금부터 뒤로 걷는 거다 부드러운 스텝으로 저쪽 모퉁이까지 그리고 모퉁이를 돌아

구두를 벗고 재킷을 벗고 콧수염을 떼는 거다 53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했는데 지금부터는 뒤로 걷고 싶다고 고백한다. 누군가가 두 팔을 벌린 채 자신을 안아주려고 서 있는 대까지 뒤로 걷고 싶다고 한다. 무사히 도착하고 싶다는 고백이 간절하다.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 쉽지만 뒤로 걸으면서 누군가에게 안기는 그 도착점은 안전할까.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 누군가가 있을까. 누군가가 곧 우리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뒷걸음질을 치는 것도 안전하다는 것을, 안아줄 수 있는 타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앞으로만 걷는 발걸음도 있지만 뒷걸음질도 안전하다는 것을, 안아주는 온기를 가득히 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부드러운 발걸음으로 뒷걸음을 할 수 있도록 모퉁이가 되어주는 우리. 변장하였던 것들을 하나둘씩 벗어던져도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우리가 많아졌으면 한다. 구두를 벗고, 재킷을 벗고, 콧수염도 떼어도 두 팔 벌려서 안아주는 우리가 되고 싶다.




★ 얼굴이라도 보고 와야겠어

모가지가 두 개는 되어야 겨우 버틸 수 있는 얼굴,... 솜으로 채워진 얼굴, 얼굴을 베고 잠든 베개,

자그마한 구명보트가 이마에 정박해 있는 얼굴, 두 손을 가슴에 올리고 심장의 박동을 느낄 때 오늘도 실패했구나 생각하며 경련이 이는 얼굴, 빗물받이처럼 두 귀가 쇠구슬을 같은 눈물을 모으는 얼굴, 보고 있는 것들이 모조리 통과되고 있는 얼굴,... 뒤통수 뒤로 숨는 얼굴 64~65

수많은 얼굴들이 있다. 솜으로 채워진 얼굴은 어떠한 얼굴일까. 얼굴을 베고 잠든 베개는 더욱 압도적이다. 뒤통수 뒤로 숨은 얼굴과 오늘도 실패했구나 생각하며 경련이 이는 얼굴도 다르지가 않다. 두 귀가 눈물을 모으는 얼굴은 어떤 얼굴인지도 상상하게 된다. 생명을 살리는 구명보트도 작기만 하다. 그 작은 구명보트가 이마에 정박해 있는 얼굴은 어떤 하루를 보냈던 것일까. 이 모든 얼굴들이 예사롭지가 않다. 작은 아이들부터 청소년들, 청년들, 비정규직, 계약직, 무거운 발걸음과 한숨을 가득히 담고 바쁜 걸음으로 살아가는 도시인들이 떠오르게 된다. 모두가 이와 같은 얼굴로 살아가지는 않는다. 99%을 이루는 대다수의 현대인들의 얼굴이 이 시어들이 된다.

촉진하는 밤의 시집의 시들을 오랜 시간 무거운 발걸음으로 읽게 한다. 묵직한 무게감들을 버겁게 느끼게 한다. 시인의 시집을 처음으로 읽으면서 몇 번을 감탄하게 한다. 여러 번 다시 읽게 되는 시들이다. 올해의 시집 인기 순위에 자리잡은 시집이라 주문하였고 또 다른 시집들까지도 눈길이 가게 된다.




★ 우리의 활동


매사에 입술을 열 때마다 애를 써야 한다

선의와 호의를 두 배 세 배 열 배로 담기 위해서

그래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전해지니까

슬픔을 나누기 위해서 달려왔으나

우리가 나누는 것은 축복일지도 몰랐다

설사 간간이 울먹인다 해도

...

윤곽만 겨우 남은 지난 일화가 손끝에 잡혔다가 바스라져간다 34

...

나는 너를 좋아하고 있다

튼튼하고 둥근 올가미를 두 손에 들고서

검고 깊은 볼모로서 35


입술로 말을 한다. 말에는 선의와 호의를 담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들이 필요하다. 그러한 노력이 담기지 않는 말은 검은 올가미가 된다. 깊은 올가미가 된다. 올가미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검고 튼튼한 죽음이 된다. 슬픔을 나누는 타인인지도 살펴야 한다. 외롭게 홀로 남겨지도록 무관심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하는 시어가 전해진다. 말을 할 때마다 애를 써라고 시인은 강하게 전한다. 말 한마디가 슬픔을 나누기를, 검은 물이 흐르는 말이 되어서 타인을 죽음으로 몰아세우는 올가미가 되지 않는 말이 되도록 우리의 활동, 우리의 말을 클로즈업시킨다.

<스위트홈>시즌 1에서 괴물이 되는 사람들을 영상미로 보았다. 시집에서는 시어가 전달하는 상징성으로 따가운 매가 되어 우리들의 말들을 단단하게 살피게 한다. 하루하루가 노력해야 하는 삶의 여정이다. 매순간 노력하지 않으면 오물로 뒤덮인 삶의 흔적을 남기기 쉽기에 시인의 시들을 통해서도 매진하게 된다. 든든한 동행자가 되어준 시인이며 시집이다. 밤이 상징하는 어둠을 여러 편의 시들을 통해서 깊게 조우하게 한다. 어떤 말을 하였는지, 어떤 선택들을 하였는지, 어떤 방향성을 지향하고 있는지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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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39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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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이꽃님 작가의 소설들을 계속해서 읽을수록 매번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이제야 알았어. 그 먼 시간을 건너 네 편지가 나한테 도착한 이유를." 누군가에게는 시간의 흐름이 느리고 누군가에게는 시간의 흐름이 빠르다. 이 소설에서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지만 누군가에게는 빠른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시공간을 살고 있는 멋진 기적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느린 우편물로 보낸 편지가 다른 누군가에게 벌써 도착하면서 서로 다른 시대의 두 사람이 주고받는 편지가 인상적이다. 과거의 시간에 있는 누군가에게 도착한 나의 편지 내용과 현재의 고민을 해결해 주고자 노력하는 과거의 누군가가 진지하게 나누는 편지를 통해서 가출을 꿈꾸는 16살 아이의 사적인 고민들이 하나씩 이야기된다.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는 은유는 엄마의 존재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다. 얼굴도 모르고 어떤 정보도 전해 듣지 않은 상태에서 15년을 아빠와 살게 된다. 홀로 생일을 보내고 홀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은유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많은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대화도 없이 지내는 아빠와의 관계에 갑자기 변화가 일어난다. 아빠가 만나는 새로운 여자와 결혼을 준비하면서 아빠가 갑자기 달라지면서 새엄마가 될 사람과도 마찰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여자는 전혀 걱정을 하지 않는다. 뜻모를 말을 남기면서 은유를 더욱 궁금하게 한다.

어쩌면 우린 너무 많은 기적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사는지도 모르겠어.

기적같은 순간들이 매순간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느끼지 못하고 산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특별하게 일어나는 기적같은 일들을 두리번거리면서 깨우치게 된다. 은유의 엄마가 누구였는지 알고 싶어하는 은유의 바램을 편지를 주고받는 과거의 친구였고 언니였던 같은 이름을 가진 은유가 도와주기 시작한다. 아빠가 엄마를 만나는 순간을 추리하면서 아빠를 찾아내는 일, 은유가 태어났을 때를 추리하면서 아빠가 누구를 만나는지도 살피기 시작한다. 은유의 엄마는 누구였을까? 무수히 추리하게 한다. 은유 아빠가 엄마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이유들도 서서히 알게 된다.

아빠는 아빠가 처음이겠지만 나도 딸은 처음이에요...

처음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 대해 여전히 알지 못해. 97

절대로 내 기분 이해 못 해.

넌 '우울함'이 뭔지도 모르고

진짜 '외로움'이 뭔지 모를 테니까. 68

불행하다고 해서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거나,

위험에 빠뜨리는 건

절대 올바른 행동은 아닌 것 같다. 57



두려움이 얼마나 과오를 일으키는지도 은유 아빠를 통해서 보여준다. 아빠가 처음이라서 서툴렀던 은유 아빠가 진심을 보여주지 못하였던 이유도 이해하게 된다. 은유 엄마가 선택한 것과 그 이유도 전해진다. 소중한 은유가 임신되면서 느꼈을 기쁨도 은유 엄마의 편지를 통해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은유 아빠가 얼마나 기뻐했는지도 은유는 알게 된다. 은유를 향한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던 은유 아빠의 서툰 방식이 은유를 더욱 외롭게 하였음을 알게 된다. 기적같은 일,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일어나면서 멋진 한 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고문당해서 미친 거라고.

그 사람들이 원래부터 미친 사람은 아니었대요. 13



IMF 시대, 로또, 삐삐, 고문에 대한 이야기들도 등장한다. 역사 속에 자리 잡는 수많은 시대적 키워드와 그 시대의 맞춤법까지도 세심하게 매만진 소설이다. 경찰서에서 고문당하여 미친 사람들에 대한 아픈 역사까지도 놓치지 않는 소설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한 사연과 암 치료와 새 생명을 두고 한 가지만을 선택할 때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와 신이 자신에게 준 배려라는 것을 느낀 은유 엄마의 사연까지도 구구절절 전해지는 소설이다.

원망이 밀려오지만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신의 배려라는 사실을 깨우친 그녀의 선택을 깊게 사유하게 하는 소설이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간 두 은유의 이야기와 서로가 주고받은 편지들은 서로가 다른 시간속도로 살아가고 있음을 멋지게 이해하게 된다. 양자역학과 관련해서 소설을 이해하는 시간도 가져보게 한다. 마지막에 주고받는 편지가 서서히 흐려지는 이유도 이해하게 된다. 바람이 되어주고 눈물이 되어줄 거라는 그 시대의 은유 편지가 깊게 기억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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