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눗방울 퐁
이유리 지음 / 민음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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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작가의 소설집을 하나씩 읽을수록 작가가 펼쳐놓는 작품들에 푹 빠져들게 된다. 『보험가 야구르트』와 『담금주의 맛』이라는 2편의 단편소설도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사랑들을 한다. 자기가 사랑한 사람을 믿고 살아가지만 한순간 자신이 사랑한 것들이 잿빛이 되기도 한다. 그동안 무엇을 사랑했던 것인지 자기의문을 쏟아내면서 무엇에 분노하고 실망하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들여다볼 여력이 없었다는 것도 뒤늦게 자각하는 인물이 있다. 『담금주의 맛』이라는 소설의 화자가 그러하다.

변함없을 것 같았던 일상 속에서 남편의 휴대폰에 있는 의문의 대화 내용들을 보게 된다. 남편의 손가락에 투명한 매니큐어 흔적이 발단이 되면서 발견한 남편의 불륜 증거들을 확인하면서 그녀의 결혼생활은 이혼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자기 앞에서 불륜녀의 의견을 전화로 듣고 트렁크에 남편이 자기 옷들을 챙겨 넣는 장면을 목격한 그녀는 자기가 사랑한 남편과 결혼을 의문스럽게 밀쳐내기 시작한다. 이혼 후 그녀는 자신을 삶을 온전하게 찾은 것도 아닌 상황이다. 그러한 그녀에게 담금주를 담는 키트가 배달되면서 그녀는 담금주를 담는 이유, 담금주를 음미할 수 있는 시기가 언제인지도 가름하게 된다. 그녀가 담은 담금주를 처음으로 맛보는 그날이 소설에 등장한다.

담금주를 담았을 때와 담금주를 먹는 날 그녀는 얼마나 변화되어 있었을지 보여준다. 담금주를 담는 순간 그녀가 자신의 사랑과 결혼생활, 이혼하게 된 이유들과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회사 동료였다는 12살이나 어렸던 여자 직원에 대한 기억들을 처음으로 차근차근 떠올리게 된다. 남편이 얼마나 비도덕적인 사람이었는지, 자신을 어떻게 호칭하면서 불렸을지도 짐작하게 된다. 거부감 없이 살았던 집에 불륜녀와 함께 초대받아 집으로 들어오는 남편과 불륜녀를 보면서 그녀가 느낀 것들도 등장한다. 결혼은 끝났지만 그녀의 인생은 끝이 아니었다. 그녀가 정리하여야 했을 것들을 미처 하지 못했기에 담금주를 담으면서 그녀는 하나씩 기억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밀봉된 담금주처럼 경험은 흐릿하게 남아있겠지만 예전처럼 선명하지도 않을 그때의 결혼생활과 슬픔과 상처는 숙성될 것이다.

그녀가 담금주를 마셔도 되는 날이 왔을 때 그녀는 예전의 그때의 자신이 아님을 확인한다. 그 당시의 감정과 분노, 슬픔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으며 완전히 달라진 자신의 현재 생활과 감정들만이 지금 자신을 통제하고 일상을 가득하게 채워 넣고 있음을 담금주의 맛을 느끼면서 확인한다. 삶도 그러하다. 완전히 파괴된 것처럼 흐물흐물해진 자신이 언젠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내고 있을 시간이 꼭 찾아온다는 것을, 상관없는 사람들이 되어서 멀리 보내버린 흐릿한 일로 남을 거라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감당하기 힘든 사랑, 이별, 상처, 슬픔도 담금주를 담으면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그때의 사랑과 인연이 전부였겠지만 다른 삶도 존재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들려주는 작품이다.

늙고 가난한 레즈비언 커플이 등장하는 소설 『보험가 야구르트』가 있다. 마른이 넘은 아줌마, 야구르트 아줌마와 보험 아줌마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커플이다. 이 커플이 가진 돈은 오천만 원 정도가 전부이다. 처음 첫 직장을 찾았을 때와 지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들이 살고 있는 집, 가진 돈, 함께 먹는 음식들에서도 큰 변화가 없는 현재이다. 그들이 여전히 제자리에 머무른 것과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그들은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과 방법도 찾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 커플 중의 헤원은 첫 직장이 중견 기업의 로비에서 하이힐을 신고 일하다가 족저근막염으로 염증 제거 수술을 하게 되면서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사회가 원했던 만큼만 쓰임을 다했고 혜원은 쓰임을 다하고 수술까지 하면서도 스스로 직장을 그만둔 젊은 노동자였다. 화자도 자궁근종이 파열되어 응급수술을 받게 되면서 피주머니와 오줌주머니를 찬 기억을 떠올린다. 연이어 헤원은 신장 결석 수술도 받았다는 것도 들려준다. 가난과 질병은 미래를 안전하게 보장해 주지 않는다. 마흔이 넘은 이 아줌마 커플이 또 아프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도 충분히 예상하게 된다.

피로를 팔아서 번 돈,

피로한 삶을 사는 것,

언젠가는 그것조차도 하지 못할 때가 찾아올 거라는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

노동의 가치와 돈의 가치를 차분히 떠올리지만 이들 커플의 미래는 희망은 보이지 않으며 엉망진창인 오늘의 삶을 연속하면서 이 커플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한다. 영화와 소설은 가상이지만 이들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현실은 치열한 사회문제로 거론된다. 가난이 왜 대물림되는지 이 커플이 직장 생활에서 당했던 부당한 대우들과 질병에 노출되면서 사라진 돈들과 현실적으로 일할 수 있는 선택이 얼마나 부족해지는도 보여준 소설이다. 이 커플의 사랑이 사회적으로, 가족들에게 외면당하였다는 것도 언급된다. <윤희에게>영화도 떠올려보지 않을 수가 없었던 작품이다.


지금은 피로를 팔아 피로한 삶을 살고 있지만 어느 시점에는 그조차 할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다. 내 노동의 가치는 조금씩 떨어질 것이고 결국에는 누구도 돈과 그것을 바꾸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노쇠하고 병들어 고칠 곳투성이인 몸뚱이를 어디서도 찾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때가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 P199

엉망진창인 오늘도 끝나면 내일이 된다. - P202

그토록 피로하여 번 돈으로 다만 피로한 삶을 겨우 유지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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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형으로 스피드를 구해줘! - 삼각형으로 배우는 갈릴레이의 낙하법칙 수학으로 통하는 과학 1
정완상 지음, 이지후 그림 / 자음과모음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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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통하는 과학시리즈 중의 한 권이다. 두께감이 있는 초등 도서이며 활자는 큰 편이다. 평소에 독서를 꾸준히 한 학습자와 자녀에게는 전혀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을 책이다. 초등수학과 중등 수학을 직접 가르친 엄마샘이라 초등수학과 중등수학 도서는 언제나 관심이 많은 편이라 펼친 초등수학도서, 초등과학도서이다.

기대한 만큼 만족도와 충족감은 상당하였던 도서이다. 담아내는 내용도 풍성하고 수준도 있는 내용들이 구성된 초등수학도서이다. 이 시리즈는 스토리텔링 형식이라 초등학생들이 전혀 부담감 없이 가독성을 발휘할 수 있는 책이다. 책장이 어느새 술술 넘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라 학부모가 자녀에게 권해도 좋을 책이다.

주인공들이 개성이 강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초등 고학년에게는 또래 친구들이 등장하고 있어서 매우 흥미롭게 심취해서 읽을 수 있을 내용이다. 수학에 흥미를 가진 친구들이 등장하며 수학에 뛰어난 친구들이 등장하면서 더욱 흥미를 이끌어 줄 인물들이다. 수학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등장하기에 등장인물들은 개성 있는 친구들로 독자들에게 좋은 흥미를 유발하게 된다.

이야기는 유명한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만남을 가지게 되는 초대에서 시작된다. 일어나는 사건들과 관련 있는 수학 개념들과 과학 개념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내용들이라 거부감 없이 이야기에 빠져서 수학과 과학 개념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도움을 주는 초등 수학과학도서이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학습 유발을 선호하기에 추천하게 된다.

내용들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지라도 그림이 구성되어 있어서 이해를 돕는 것도 특징이다. 수학적인 수식도 이해하기 쉽도록 편집되어 있다. 이외에도 과학 개념과 공식을 이해하도록 편집된 내용들도 마음에 드는 내용 중의 하나가 된다. 이야기를 담고 있는 스토리텔링이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 어느새 자연스럽게 학습을 습득한 것을 자신도 모르게 되는 묘한 매력을 담고 있는 학습도서이다.

정완상 저자분은 수학과 과학에 관심 많은 분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저자이다. 『과학 공화국 시리즈』의 저자분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던 도서이다. 수학과 과학에 흥미를 가지는 초등학생들에게 추천하는 도서 시리즈이다. 차곡히 쌓아가다 보면 흥미를 가지게 될 수학과 과학이 될 것이다. 학년 구분을 하지 않고 아이가 흥미를 가지는 학문이라면 무한히 좋은 자극을 주어도 좋은 방법이 관련 도서를 통해서 흥미를 유발하고 이끌어주는 것이라고 권하게 된다.

배수, 최소공배수, 속력, 초속, 시속, 평균, 수직선, 좌변, 우변, 양변, 미지수, 평균속력, 순간속력, 모순, 유레카, 자연수, 소수, 정삼각형, 닮음, 경사도, 비율, 전항, 후항, 최대공약수, 닮음의 중심, 닮은 삼각형의 성질, 대응하는 각, 증명, 평행선의 성질, 포물선, 이등변 삼각형, 밑각 등이 구성된다. 퀴즈가 중간중간 나오면서 아이들에게 더욱 흥미와 좋은 자극을 주는 내용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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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 원작만화 <조명가게> 드라마를 보면서 등장하는 명대사들을 들으면서 이 책을 몇 차례나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죽음을 체험한 사람들의 공통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와 사고의 범주로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임사체험을 경험한 그들은 그들만의 경험을 잘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명가게>드라마에서도 우리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들과 인물들의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실존 인물이다. 희망을 가져볼 수 없는 상황인 중증 질병에 해당하는 암을 기적처럼 이겨낸 그녀만의 이야기들이 책에서 전해진다. 의사들도 이해하기 힘든 기묘한 일들이 그녀에게서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완치되는 기적들을 그녀가 직접 보여주기 시작하고 있음을 책을 통해서 이야기한다.


나는 더 이상 어떤 것도 추구하지 않는다.

그저 ‘허용할’ 뿐이다.


의사와 간호사들, 병원 직원들도 이해하기가 힘든 기적적인 치유의 과정들을 그녀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그녀가 경험한 임사체험은 그녀를 어떻게 변화시키는 동기가 되었고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고 버려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자문하도록 이끄는 내용으로 남는다.

책을 읽고 무수히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분명하고도 뚜렷하게 각인되는 하나가 분명해지는 책이 되어준 내용이 있다. 그녀의 몸에 있는 암이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한다. 스스로 자신을 치유하고 있는 이러한 현상에 의사들과 간호사들도 놀라움을 감추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녀를 치유해 준 것은 무엇이며 무엇에서 시작한 치유였는지 저자는 책을 통해서 전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몸을 아프게 한 암의 발병 원민부터 그녀는 짚어내는 과정부터가 중요한 암 예방법으로 전해진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는지부터가 암의 치유의 출발선이 된다.



그녀가 성장한 나라의 종교와 부모의 성향이 그녀를 어떻게 억압하고 강요하였는지부터 살펴보면서 그녀는 자신을 아프게 한 암의 발병 원인을 찾는다. 엄격하고도 강요된 규율들이 그녀를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어떤 영향력을 억압하였는지 문화와 종교, 사회적 관습부터 살펴보게 된다.

한국도 다르지가 않는 사회이다. 남녀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고 같은 조건이지만 사회적으로 차별화되는 사회문화는 여전히 고수되는 상황이다. 부당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여전히 실존하는 한국사회이다. 하지만 여성작가들은 문학을 통해서 한국 사회가 여전히 얼마나 부당한 성차별과 가부장제에 희생되는 여성들의 역사가 우리들의 가정에서 여전히 실존하고 있는지 매섭게 꼬집는 여러 작가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한강 작가, 권여선 작가, 최은영 작가, 박서련 작가, 이슬아 작가가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이 작가들의 책들을 읽다가 작가가 작품으로 발현하는 응집되는 목소리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던 것 같다.

엘리프 샤팍 장편소설 『이브의 세 딸』에서 "중앙 집권적인 권위가 적으면 적을수록, 자유는 더 커집니다!" (166쪽) 문장이 말하듯이 가정과 사회, 국가의 권력과 권위가 어느 정도 부여되느냐가 관건으로 남는다. 권위와 자유가 어떤 작용을 하는지 우리는 현대사를 직접 목격하면서 더욱 통찰하게 된다. 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격노하고 있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시작되었는지 확인하게 된다.

인도라는 사회와 국가도 이 책을 통해서 한 뼘 알아가는 시간이 된다. 부모와 국가가 강요하는 것들이 그녀를 어떻게 아프게 하였고 암으로 발병하게 되었는지 문제들을 직시하게 한다. 가부장제가 어떤 문제들을 양산하고 결과적으로 비혼주의, 비출산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도 한국은 사회적 문제로 뒤늦게 문제를 파악하는 상황이다. 그녀는 이러한 사회적인 악습과 규범들과 싸우다가 암이 발병하였음을 자각하게 된다.



출처 : 인스타그램 



이외에도 관습에 대해 언급하는 서머싯 몸 작가의 세계문학전집 『달과 6펜스』, 크리스티앙 보뱅의 『흰옷을 입은 여인』 에세이, 남들보다 튀는 여자들의 목을 쳐라는 모나 숄레의 인문사회학 책 『마녀』 책도 상기시키는 내용들이다. 이슬아 작가 소설 『가녀장의 시대』, 한강 작가 소설 『채식주의자』, 권여선 작가 소설 『각각의 계절』, 최은영 작가 소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구병모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 등이 가부장제를 다루는 소설들로 기억에 남는다.

두려움이 어떻게 자신을 위협하고 아프게 하였는지도 상기된다. 두려워한 것들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진지하게 짚어보게 한다.

'나를 사랑하라'는 그녀의 엄중하고도 진실한 말에 다시 집중하게 하는 책이다. 이 말은 이기적인 의미의 사랑을 뜻하지 않는 의미이다.

이외에도 원자와 분자, 쿼크 등의 의미들도 사랑이라고 전한다. 그녀가 말하는 사랑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랑의 범주를 넘어서는 확장된 의미로 설명된다. 하느님에 대한, 신에 대한 존재가 아닌 '존재의 상태'를 의미한다. <조명가게> 드라마를 보면서 다시 펼친 도서는 놓치고 있었던 것들은 없었는지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다행히 저자가 강조한 내용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매번 상기하면서 살아왔음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어주면서 책 내용을 다시 덮어쓰고 더 깊게 호흡하는 기회가 된 책이다.


내 삶을 만들어가는 창조자가 아니라

상황의 희생자였다.

병조차도 어느날 우연히 내게 '닥친' 외부 사건이었다.
































내가 치유된 것은 내 파괴적인 생각들을 다른 생각으로 고쳤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생각들이 그저 말끔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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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지음 / 민음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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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소년』, 『브로콜리 펀치』 등 소설로 유명한 이유리 작가의 8개 소설들을 만날 수 있는 신간 소설집이다. 그중에서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소설이 인상깊게 자리잡는다. "성재가 떠났다. 내게는 텅 빈 집과 아픈 고양이, 그리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랑이 남았다. 남은 사랑을 팔기로 한 것은 그래서이다." (81쪽) 설레는 사랑을 하고 기분 좋은 행복을 나누었던 사람이 떠난 후 남겨진 것을 하나씩 이야기하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슬픔과 상실감을 오롯이 대면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친구가 제안하는 감정전이 센터에서 감정 샘플을 추출하기로 약속한다. 친구 영인은 결혼한 친구인데 남편이 조건만남을 한 후 상처받은 감정들을 혼자의 힘으로는 회복할 수 없어서 감정전이 센터를 이용해서 화자와 서로 감정을 전이하는 것을 제안한 것이다. 



감정 샘플을 배양하고 특수 기체가 두 여자의 감정들을 치유하게 된다. 물론 부작용도 나타난다는 것도 언급되는 상황이지만 친구 영인은 매우 만족스럽다면서 행복해하고 기뻐하면서 남편과 회복된 관계를 즐거워한다. 하지만 화자는 갑자기 흐르는 눈물의 의미조차도 낯설기만 하다. 스스로의 의지로 떠난 이별을 회복하지 못했음을 아직 깨닫지 못하면서 감정전이의 부작용으로만 설명될 뿐이다. 감정을 오롯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우리는 거부하기도 하고 외면하기도 하지만 눈물과 분노, 화라는 감정까지도 치유로 나아가는 과정의 단계라는 것을 이 소설의 두 여자를 보면서 안타깝게 바라보게 된다.




가상의 세계를 펼쳐놓을수록 우리가 온전하게 느끼고 슬퍼할 수 있어야 하는 시간과 날들이 왜 필요한지도 진지하게 조명하는 작품이다. 뒤늦게서야 자신들에게 일어난 이러한 일들이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관계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회피하지 않고 감정을 잘 들여다보는 것도 절실하다. 사랑하는 것도, 이별하고 헤어진 후에 어떤 감정들로 정리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이끄는 작품이다.



헤어지면 무조건 감정전이를 하는 남자 영욱도 등장한다. 변호사인 영욱은 만났던 사람들과 헤어진 사람들에게 어떠한 감정적 소모도 남기지 않는 감정전이를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남자이다.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진다는 것에는 상당히 많은 시간과 감정들이 소모되는데 이러한 것들을 쉽게 지워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가능한 소설 속의 시대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영욱과 친구 영욱 부부를 통해서 살펴보게 된다. 진짜 고뇌하는 영욱의 남편의 통화에서도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게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가끔 들거든요... 지금 영인이의 생각이 온전히 영인이의 것이라 아니라는 게. 껍데기는 분명히 영인이인데 속 알맹이는 다른 누군가의 것을 대신 집어넣은 것 같아요." (127쪽) 



진짜가 사라져 버린 것, 회피해 버린 것이 텅 빈 껍데기이라는 것을 이들은 뒤늦게서야 알게 된다.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감정들에 지치고 달아나고 싶어질 때가 누구에게나 찾아오기도 한다. 그때 우리는 도망하고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슬퍼하고 인정하며 떠나보내야 하는 감정들도 있다는 것, 눈물도 기꺼이 흘러도 된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서 보여준 작품이다.




헤어지면 무조건 감정전이를 해요. 얼마나 좋아요? - P134

감정이라는 게 무슨 장기 이식하듯이 누구 것을 빼서 다른 누구에게 넣는다고 그게 진짜 자기 것이 될까요.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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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지음 / 민음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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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편의 짧은 소설들이지만 남겨진 여운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던 소설들 중에 <크로노스>라는 소설이 있다. 문명의 발달이 어떤 결과들을 불러놓을지 함께 상상해 보면서 읽었던 작품이다. 크로노스의 알고리즘이 작동한 결과물이 자신의 눈앞에 기억 속의 엄마로 나타나면서 치매가 걸리기 전의 영특하고 따뜻했던 엄마의 모습으로 다가서지만 이것은 절대로 현재의 엄마가 아님을 알기에 양미의 언니인 피부과 의사는 크로노스를 거부하는 상황이다.

양미는 언니와는 다르게 크로노스를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적응한다. 현재 어머니는 치매로 요양원에 있지만 치매가 없었을 때의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자주 크로노스를 이용하게 된다. 양미의 언니에게 청혼을 송 선생도 크로노스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만족하는 사람이다.

치매가 어떤 증상인지는 막연하게 알지만 얼마나 주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힘들게 하며 포악해지고 폭력적으로 돌변하는지 소설을 통해서 경험하게 된다. 어머니는 양미의 두 아이들을 키워주면서 생활하였지만 치매 증세가 심해진 날 두 아이를 공격하면서 응급실에서 처치를 받게 되는 상황이 되면서 두 자매는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는 선택을 하게 된다.

엄마를 이루던 것들이 하나하나 무너져 가면서 우리의 일상도 함께 어그러지기 시작한 것은 당연했다. 20

고유하게 지닌 성격과 억제하였던 모든 것들이 통제되지 못하면서 치매 환자가 드러내는 폭력성이 사실적으로 전해진다. 우리가 통제하였던 이성이 하나씩 무너지면서 주변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일상까지도 와르르 무너져버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들의 나이보다도 어렸던 엄마는 두 자매를 악착같이 키워냈다는 것을 두 자매가 모르지 않는다. 매일 씩씩하게 키워낸 엄마, 용감하게 삶을 감당하였을 엄마이다. 그런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기까지 두 자매는 쉽지 않았다는 것도 전해진다.

엄마는 언제나 두 자매가 정했다면 그게 맞는 것이라고 응원한 분이다. 무엇을 정했는가는 중요하지가 않았다. 그렇게 두 자매가 엄마의 치매 증세로 나날이 힘겨워지는 일상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크로노스를 통해 누군가는 현재의 상황을 힘차게 이겨내는 딸도 있고 크로노스를 부정하면서 힘들어하기도 한다. 이 두 자매가 크로노스를 통해 어떻게 화해하고 청혼한 송 선생의 삶도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한다. 엄마의 젊은 날의 삶과 자신들의 삶은 분명히 모든 것이 다르게 전개된다. 양미가 이혼을 하는 날 엄마가 사 왔던 꽃다발의 색깔까지도 크로노스에 저장하였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고난이 찾아온 딸에게 축하한다는 꽃다발을 건넨 엄마이다. 양미의 두 아이도 치매 증세가 있는 외할머니의 공격에 상처를 입어도 이해하는 모습으로 그리워한다는 것을 아이가 만든 할머니를 위한 선물에서도 보여준다. 어린아이들도 두 명의 외할머니를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피부과 의사인 언니도 크로노스를 인정하기 시작한다.

그리운 사람이지만 다시는 자주 볼 수 없는 기억 속의 어머니를 크로노스라는 문명을 이용해서 위로받고 치유받고 있는 가상의 이야기가 꽤 진지하게 펼쳐진 소설이다. 노의사가 자신이 치매가 걸리면 어떤 선택을 할지 미리 동료 의사에게 부탁한 책 내용이 떠오른다. 치매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인격체로 받아들여야 할지 이 소설을 통해서도 다시금 진지하게 고찰하게 한 작품이다.




지금 내 나이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은 엄마가 혼자서 얼마나 악착같이 나와 양미를 키워냈는지 모르는 우리가 아니었다. 엄마라고 우리를 어디다 떼어버리고 싶은 순간이 없었을까. 한 번도 힘든 내색 없이 매일 씩씩하고 용감하게 삶에 임했던 엄마를 이제 와 남의 손에 내맡길 수는 없었다. - P21

그렇게 정했다면 그게 맞는 거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정했든 상관없었다. 그 순간 그건 정말로 맞는 게 되고 나는 모든 게 이대로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테니까. 항상 그랬던 것처럼.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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