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5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백온유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4월
평점 :

2025년 7명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소설집이다. 서장원 『리틀 프라이드』, 성해나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성혜령 『원경』, 이희주 『최애의 아이』, 현호정 『물결치는 몸 떠다니는 혼』을 만날 수 있고, 강보라 『바우어의 정원』은 <소설 보다 봄 2025>를 통해서 읽었다.
대상 수상작 백온유 작가의 『반의반의 반』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소설 제목이 의미하는 것이 의미심장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소설의 첫 문장에서 외할머니가 외손녀를 반기지 않고 차가운 언행을 하는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현진이 집에 왔을 때, 영실은 손녀를 반기기는커녕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흘긋 쳐다볼 뿐이었다... "저리 가! 추워." ..."네년이 냉기를 묻혀오니까 그렇지." (9쪽)
외손녀는 외할머니의 이런 말투와 행동에 흔들리지 않는다. 차분하게 대응하는 이유들도 설명되기 시작한다. 할머니의 미모를 손녀는 동경하면서 성장하였고 지금 노쇠해진 할머니의 모습을 아름답게 바라보지도 못하는 식견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할머니는 노골적으로 초라하게 늙고 알았다. 검버섯. 눈가의 물사마귀" (38쪽) 늙어감은 초라하고 비참한 것이 아니다. 백발의 머리, 노화를 감추고 부끄러워하라고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손녀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할머니는 젊은 나이에 남편의 사망보험금으로 받았지만 사용하지 않고 간직하였던 인물이다. 부족한 삶은 아니었지만 딸이 이혼하고 자신의 집에서 손녀와 함께 생활하면서 넉넉하지 않은 생활을 하였음을 알게 된다. 손녀와 딸은 할머니가 잃어버린 돈에 대해 속내를 감추며 원망을 쏟아내는 장면이 드러나면서 할머니가 살아왔을 삶, 남편의 사망보험금을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진정한 이유조차도 이해하지 못한다. "윤미가 겪은 일들은 고난이기는 해도 영실이 보기에는 금방 지나갈 파란이었다." (31쪽)
갑작스러운 전신마취 수술을 받게 된 할머니가 손녀와 딸에게 평생 키워온 화분들을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주라는 부탁을 하지만 손녀와 딸은 할머니의 부탁을 귀담아듣지 않았음을 퇴원한 후 식물들의 상태를 보면서 확인하게 된다. 할머니가 표현하지 않았을 섭섭함, 사람을 믿지 않았다는 것에는 손녀와 딸도 포함되었음을 감지하게 된다.
자신의 몸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노년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소설이다. 딸과 손녀의 보살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라 요양보호사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할머니가 요양보호사에게 마음을 열고 사라진 돈의 행방을 추적하다가 범인으로 지목되는 요양보호사를 믿는 할머니의 태도가 낯설지가 않았던 이유에는 딸과 손녀에게도 책임이 뒤따른다. 상속, 증여의 개념으로 할머니의 돈이 자신의 재산인 것처럼 원망하는 속내를 소설가는 사실적으로 전하는 작품이다. "도둑맞은 금액의 반의반만 있어도 지금보다는 행복할 텐데." (36쪽)
사라진 돈이 남편의 목숨값이었고 재혼할 딸이 기죽지 말라고 지원해 주려고 준비한 지참금이라는 것을 손녀와 딸은 전혀 모르는 상황이다. 그들이 행복하라고 준비한 기나긴 세월 사용하지 않았던 돈이지만 그들은 돈의 출처보다는 사라진 돈을 자신들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을 생각하면서 원망을 속내로 감추고 있음을 목도한 작품이다. "왜 나의 필요를 채워주려 할머니는 희생하지 않았을까. 할머니는 마땅히 그런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현진은 억지를 써가며 영실을 열렬히 원망해 보았다." (35쪽)
할머니가 실버타운으로 가야겠다는 계획을 하게 된 이유, 죽음을 준비하고 남은 생애를 초라하지 않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낸 이유도 그려보게 하는 이야기이다. 어느 집이든지 노년의 부모와 죽음, 상속과 증여는 남겨진 숙제가 될 것이다. 노년은 초라함의 대명사가 아니라는 것, 성숙한 노인이 되는 과정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차가운 말과 행동으로 따뜻함이 흐르지 않는 노인의 모습보다는 온유한 모습으로 늙어가는 여유도 필요해 보인다.
할머니가 딸과 손녀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 원인을 살펴보는 여유로움도 필요해진다. 어머니가 딸의 충동적인 삶을 걱정하면서 이마를 지긋하게 눌렀다는 장면, 딸이 대학 졸업을 하지 못하고 결혼과 출산을 하였다는 것, 동창과 불륜을 저지르고 간통죄로 범죄 경력을 남겼다는 것, 이혼하고 자신의 집에서 손녀와 함께 생활하였다는 사실들을 살펴보게 하는 소설이다. 요양보호사에게 할머니가 느꼈던 감정은 행복이었고 그 감정을 느끼게 해준 그녀를 딸처럼 아꼈다는 것이다. "나는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이 없었는데, 이제야 좀 행복한 거 같구나." (37쪽)
할머니 영실이 순응한 세월의 역사들이 열거된다. 그녀가 순응한 것들은 커다랗고 커다란 피멍이 되는 역사였음을 감지하게 된다. 큰 한숨을 그녀의 순응의 역사만큼 쉬어야 한다는 것을 긴 그녀의 생애에게 발견하게 된다. 반면 딸과 손녀는 할머니 영실의 검버섯, 눈가의 물사마귀, 주름, 백발을 초라한 노인으로만 바라본다. 그녀가 살아낸 순응의 순간들은 버텨낸 그녀의 긴 숨이었음을 가족들은 모른다는 것이 보였던 이야기이다.
영실은 줄곧 순응해왔다. 부모가 사라진 세상에 책임질 생명이 탄생한 세상에, 남편이 사라진 세상에,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름답지 않은 세상에, 그리고 덜컥 할머니가 된 세상에도. 31
현진이 집에 왔을 때, 영실은 손녀를 반기기는커녕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흘긋 쳐다볼 뿐이었다... "저리 가! 추워." ..."네년이 냉기를 묻혀오니까 그렇지 - P9
윤미가 겪은 일들은 고난이기는 해도 영실이 보기에는 금방 지나갈 파란이었다. - P31
도둑맞은 금액의 반의반만 있어도 지금보다는 행복할 텐데. - P36
왜 나의 필요를 채워주려 할머니는 희생하지 않았을까. 할머니는 마땅히 그런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현진은 억지를 써가며 영실을 열렬히 원망해 보았다. - P35
나는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이 없었는데, 이제야 좀 행복한 거 같구나. - P37
영실은 줄곧 순응해왔다. 부모가 사라진 세상에 책임질 생명이 탄생한 세상에, 남편이 사라진 세상에,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름답지 않은 세상에, 그리고 덜컥 할머니가 된 세상에도. - P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