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를 읽지 못하는 여성들이 문학에 등장하는 시대가 있다. 위안부 소설 민음사 『간단후쿠』에서도 글을 읽지 못하는 여성이 등장하며 위화 장편소설 『원청』에서도 '샤오메이는 글자를 읽을 줄 몰랐다'(407쪽)고 전해진다. 왜 여성들을 배움의 기회에서 배제시켰던 것인지가 중요해지면서 배워서 아는 세상이 많아지고 지각이 넓어지면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는다면서 딸이 교육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아버지들이 존재하였음을 떠올리게 된다.



글을 읽고 생각을 하는 힘이 생겨나면 복종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여성이 자신들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던 것이다. 파과 영화의 원작소설에서도 가난하고 자식이 많은 집안에서 밥숟가락 들어줄 여자아이를 다른 집에 보내는 일이 일어나면서 등장인물의 삶은 타인에 의해 휘어지고 굴곡진 삶으로 전개되는 것을 짙은 채도로 전개하는 소설 속의 여성 주인공을 떠올리게 된다. 여자로 태어난 이유만으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여기저기 던져지고 버려지고 배제되고 삭제되는 운명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는지 질문을 멈추지 않게 하는 문학을 마주할 때마다 큰 숨을 내어쉬면서 한숨을 쉬게 되는 문학들을 주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위화 소설 『원청』에서는 시어머니의 학대로 민며느리가 스스로 자살하는 이야기도 등장한다. 교육의 기회를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되면서 글을 읽지 못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안타까움은 착취당하는 존재로 여성의 삶을 살아가라는 의미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글을 읽지 못하는 국민은 없는 시대이지만 글을 읽고 생각할 수 있는 숙고의 시대를 살지 못하도록 문명의 방해에 노출된 시대임을 떠올리게 된다.

읽고 생각하는 독서의 힘은 자본주의와 대조적인 힘을 지니기에 숏폼으로 추려지고 요약되는 것으로 한 권을 읽었다고 확신하는 것은 읽는 힘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책을 읽고 무수히 밑줄 치면서 차곡히 간직한 문장들은 어마한 힘을 무장한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뿌리가 내리지 못한 인생은 광고의 힘에 휩쓸려가고 망가지기 마련이다. 그 시대의 남성이 여성에게 원한 여성상은 순종하고 아내, 딸이라는 여성이었음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 시대의 자본주의는 유행에 민감하게 움직이면서 소비에 거침없는 시대를 원하는 것이 목표임을 목도하게 된다.

원청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잔혹한 토비에게 희생된 기생의 죽음을 응시하게 된다. 가난한 평범한 사람으로 살면 토비에게 재산을 빼앗기거나 죽임을 당하느냐 토비가 되어 타인의 재산을 강탈하면서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인지 그 무엇도 현혹되지 못할 운명에 놓여있었던 그들의 이야기도 전해진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고전소설에서도 권력의 답습에 순응하고 복종할 것인지 프랑스 혁명으로 표출된 피권력층의 분노는 그 무엇도 이상적인 모습으로 표상되지 못한다. 억울하게 권력층인 귀족의 성 노리개가 되어 남편도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여성은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며 마약성분을 강제로 먹이면서 권력이 저지른 악행에 남겨진 가족이 억울함을 억누르면서 보복하는 술집 사장의 아내의 이야기도 광적인 모습을 엿보게 된다.

프랑스 혁명에서 단두대로 사용된 나무에 대한 작가의 응시와 나무의 쓰임이 수많은 억울한 죽음에 대한 사연을 들려주게 된다. 더불어 십자가의 의미도 단두대와 같은 죽음을 상징한다. 밤이 되면 수많은 십자들이 마을과 도시를 알려주는 십자가이지만 '사랑하라'는 의미와는 멀어지는 수많은 악행과 전쟁, 재판과 혐오, 차별로 치열하게 다투고 싸우는 전쟁터를 지금도 많은 소음과 형태로 표출되고 있음을 떠올리게 된다.



수평보다는 수직을 선호하고 계급을 나누면서 수치화하는 현상을 둘러보게 된다. 『향수』라는 영화의 내용이 처음에는 놀라웠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 영화 작품의 의미는 더욱 강열하게 자리잡는다. '사랑하라'는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 민며느리를 구박하여 자살하게 만든 시어머니에게서, 평생 착취당하면서 남편과 시댁에 구박당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딸로 키워서 결혼시킨 수많은 아버지들에게서, 귀족의 삶을 유유히 이어갈 거라고 믿고 악행을 수없이 저지른 『두 도시 이야기』의 귀족에게서, 위안부를 만들어서 착취한 수많은 이윤을 챙긴 사람들에게서 무엇이 부족하였는지 찾게 된다. 고통을 호소하는 그들의 삶을 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결백을 주장해도 듣지 않았던 『두 도시 이야기』의 혁명의 주인공들이 보여준 모순된 태도에 이슬처럼 사라졌을 젊은 재봉사 처녀의 죽음까지도 쉽게 사라지지 않게 된다. 누가 권력을 잡아도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여러 작품들을 통해서 확인한 시간이다.






샤오메이는 글자를 읽을 줄 몰랐다 - P407

민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구박받고 욕먹고 얻어맞는 건 시진에서 아주 흔한 일... 견디다 못한 민며느리가 목을 메거나 우물에 뛰어든 일도 8년 동안 몇 번이나 보고 들었다. - P455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5-12-21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갖고 있기만 하고 아직 못읽었는데, 구름모모님 리뷰 보니 읽고 싶네요.
 



『해리포터』를 제치고 만장일치로 카네기 메달을 수상한 작품으로 전 세계 21개국의 십대들에게 최고의 고전으로 자리를 잡은 명작소설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진지하게 살펴보게 하는 작품이다. 그림을 그린 할아버지는 고집이 대단한 분으로 유독 손녀에게만 친절하여 수영을 좋아한 소녀를 응원한 인물이다. 그림을 그리는 준비를 손녀에게만 허락한 한 분으로 15살 손녀인 제스는 부모님과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할아버지의 고향집이 어렸을 때 불에 타서 부모님이 사망한 사건 이후로 고향을 떠난 할아버지는 한 번도 과거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현재 지금 순간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고 살아간 할아버지라 유언장을 작성하는 것조차도 힘들어한 인물이다.

눈에 띄게 체력이 허약해진 할아버지를 위해 부모님은 여행을 준비하게 되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고향을 찾고자 하고 이유와 그곳에서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해진다. 고향에서 만나려고 하는 친구 알프레드가 지금 살아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라 부모님은 그분을 수소문하기 시작한다.

책표지 소년이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강열하다. 17년 연속 베스트셀러인 청소년 소설은 멋진 감동을 안겨준 작품이다. 할아버지가 젊은 날 강의 시작점인 발원지에서 바다까지 수영을 하고자 했다는 사실과 리버 보이라는 소년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제스가 휴가지에서 느낀 기묘한 느낌과 기운들을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게 된다. 우연히 목격한 리버 보이가 강에서 수영하는 모습을 보고 대화를 나누게 된다. 리버 보이를 다시 만나고자 바다까지 수영하게 된 제스가 두려움과 불안을 이겨낸 이유에는 할아버지를 사랑한 마음이 근원이 된다.

현재에 집중하였던 할아버지와 두려움과 불안을 이겨낸 제스의 모습, 죽어가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을 뿐 죽음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다. "아름답지 않은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이겠지." (207쪽) 끝이 시작이라고 말하는 대화도 인상적인 기운을 남긴 소설이다. "바다에 도달하면,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준비를 하지. 그들에겐 끝이 시작이야. 난 그 모습을 볼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껴." (207쪽)

강물과 인생을 비유하는 장면에서 안식을 찾은 모든 것들을 응시하게 한다. 죽음이 끝이 아니며 바람이 되고 물이 된다는 것으로 새로운 출발임을 보여주면서 평안이 된다는 것을 들려준다. 기묘한 경험들을 하지만 설명이 어려운 것들이 존재한다. 할아버지가 그린 그림이 자화상이라고 말하는 친구분의 이야기에 아들, 며느리, 손녀가 할아버지의 그림을 이해하게 된다.

죽음을 슬픔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출발로 이해하도록 이끌어준 소설이다. 제스의 어머니가 딸이 발견될 곳을 기발하게 유추하는 장면과 할아버지의 영혼이 떠났음을 인지하면서 제스가 의연하게 할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유도 평소에 '관'이라고 말하는 것에 연습 삼아 들어간 할아버지의 언행들 덕분임을 이해하면서 죽음이 막연히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간 할아버지와 리버 보이의 모습을 회상하게 되는 소설이다.



팀 보울러 작품들















언제나 강하고 결단력 있는 아내. 진정으로 사랑하는 딸. 그들에게는 서로에 대한 추억이 있었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위한 힘이 될 것이다. - P246

사람의 일생을 보는 것 같지? 강의 일생일 수도 있고. 강은 여기에서 태어나 자기에게 주어진 거리만큼 흘러가지.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곧게 때로는 구불구불 돌아서,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바다에 닿을 때까지 계속해서 흐르는 거야. 난 이 모든 곳에서 안식을 찾아. - P206

재능이 가져다준 명성이나 돈에는 눈금만큼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평생을 그런 것들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다. 그림에 대한 열정 - P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대한 신사를 섬기는 소망을 가진 영국 집사의 회고록으로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 소설들 중의 하나이다. 그는 35년을 주인을 섬기는 일에 인생을 바친 집사로 자신의 아버지가 집사로 살면서 절제된 감정을 보이면서 살아온 것을 보면서 성장한 인물이다. 절제된 감정으로 평생을 주인을 위해 살았을 집사의 인생은 어떤 인생이었을까.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고 살아온 집사의 표정들이 묵묵히 흘러넘치는 소설이다.

비밀유지가 우선이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직업을 가진 현대인들이 떠오른다. 감정노동자들이 얼마나 주위에 많은지 무수히 보이기 시작한 소설이다. <태풍상사> 넷플릭스 드라마에서 백화점 안내 직원으로 일하는 여동생의 모습에서 미소와 표정, 태도가 얼마나 인위적인 감정 노동인지 엿보게 된다. <당신이 죽였다> 넷플릭스 드라마에서도 판매 영업직에 종사하는 직원이 고객들에 대한 비밀유지가 최우선이라는 것을 상기하는 장면도 떠오른다.

감정 절제와 자만심을 배제하고 복종의 자세를 가져라고 소설 주인들은 집사에게 요구한다. 그가 고수한 35년 동안의 세월을 뒤돌아보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소설이다. 주인을 향한 복종이 자부심이었던 집사는 주인의 삶이 오류가 되는 날 저택과 함께 집사도 묶음 상품처럼 새로운 주인에게 넘겨지면서 자신의 가졌던 자부심이 어떤 오류였는지 깨닫게 된다. 국왕과 나라를 위해, 주인과 지배계급을 위해 일하는 수많은 영혼들이 존재한다.

새로운 주인 미국 라이프 스타일과 가치관이 영국 옛 주인의 스타일과 대비되기 시작하면서 집사는 자신이 세웠던 굳건한 직업관에 의심을 부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고리타분한 생각과 유명한 가문, 속물근성이 가진 오류를 현대사회에서도 쉽게 찾아보면서 소수의 지배자와 수억 수십만의 노예들이 현존하는 세상을 향해 외치는 작품이다. 자유는 타인이 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 자유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서 보여준다.

품위가 무엇인지 정의된다. 진정한 품위는 투표로 의원의 자리를 앉혔다가 빼앗는 것이라고 또렷하게 명시한다. 읽고 생각하고 분별하고 자유를 찾는 품위가 무엇인지 작가는 명확하게 전달한다. 노예적 삶을 살아가는 것, 영원히 그들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 자유가 아님을 작가는 아우성 같은 목소리로 소설에서 말한다. 민중의 고통에 늦장만 부리는 행태를 얼마나 많은 세월 한탄하였는지 기억해야 하는 시대이다. 더불어 국왕과 나라를 위해 아들이 목숨을 바친 것에 대해서도 소설을 통해서 꼬집는다. <간단후쿠>소설에서도 나라를 위해 희생된 이들은 젊은 아들과 젊은 딸들이라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 주인의 오류적 삶에 자신의 35년이 고스란히 바쳐진 것이 어떤 심정일지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자신의 삶을 살아야 주인이며 자유를 찾는 삶을 살아야 주인인 것이다.

집사의 삶은 팬터마임을 연기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소설은 말한다. 무언극과 같은 삶을 35년 동안 살아간다는 것은 자부심이 아닌 고행과 다름없는 삶이지만 그들은 자유가 없는 삶에 익숙하여 불행한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이다. 작가는 그러한 삶은 주체적인 삶이 아님을 명시한다. 소설의 인물과 배경은 현대사회에서 누구의 삶이며 주인으로 직시된 이들은 어떤 집단이며 인물인지 차분히 따져보는 시간으로 연결된다.

집사로 산다는 것은 무슨 팬터마임을 연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70

모세가 약속의 땅에 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헤맨 이유를 이 소설에서도 찾아보게 된다. <사람을 안다는 것> 인문학 책에서도 출애굽기의 여정을 시작했느냐고 질문한다. 노예로 제자리에서 맴도는 원형적인 삶을 살아가서는 자유를 찾지 못하게 된다. 사다리를 타고 자유를 찾는 삶은 스스로 노력하는 주체적 의지가 있는 이들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엿보게 된다.

어리석은 생각이 우리 삶의 행복에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작가는엄중한 목소리로 전한다. 어리석은 생각들이 무엇인가. 작가의 놀라운 통찰력에 감탄하면서 읽은 소설로 다시 읽어도 좋은 추천도서이다.


















어리석은 생각들이 당신 자신과 당신 몫의 행복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될 겁니다.
- P365

퇴직 후의 인생이야말로 부부 생활의 황금기라고.
- P366

집사로 산다는 것은 무슨 팬터마임을 연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 P70

소수의 지배자와 수억 수십만의 노예들만 존재하는 세상... 노예 상태에서는 결코 품위를 갖출 수 없습니다... 자유 시민으로 살 권리를 쟁취... 투표로 의원 나리들을 의사당에 앉혔다 빼냈다 할 수 있으니까요... 그게 바로 진정한 품위입니다
- P2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뽀족한 가시에 질리는 것보다도 더 아린 고통과 슬픔에 침식되는 소설들이 있다. 숨을 쉬고 있는 것이 기적이구나라고 몇 번을 말해주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에서 이들의 슬픔과 불안, 굶주림의 근원적 이유를 찾아 헤매다가 다시 이야기로 진입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게 된다. 일본군 위안부 소녀들의 소설을 읽다 보면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모든 상황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거부하다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혼란스러운 어린 소녀들이 보인 소설로 깊게 빨려 들어간 작품이다.

전쟁이 일어난 이유와 전쟁을 일으킨 인물들이 누구인지가 중요해지면서 그들이 전쟁터의 참혹한 현장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매번 목도하게 된다. 그들은 어디에 있고 죽음을 향해 징집되는 이들은 누구인지가 중대한 질문으로 남는다. 자발적으로 참전하는 군인이 생존하여 돌아오지만 이전의 영혼을 잃어버린 『반쪼가리 자작』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전쟁과 군인이 무엇인지 이해하지도 못하는 소녀들이 군인들에게 폭행당하는 소설도 무수히 등장한다. 작가들이 깊게 응시한 그들의 폭력성에 희생되는 소녀들을 작품에 언급한 이유는 분명해진다. 꾹 눌러서 방점을 찍는 문장으로 읽히는 문장도 있지만 이 소설은 시적이면서도 환상을 보는 기분으로 살아남은 소녀를 매번 발견하게 된다. 소녀는 임신을 하였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비밀로 남긴다. 그 비밀은 오래가지 못하고 부풀어 오르는 배를 보고 군인들에게, 주인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듣게 된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일상 속에서 일본군 위안부 소녀들을 잊기 쉬웠지만 작가의 유려한 문장에 녹아들수록 미치지 않기 위해 주인공 소녀가 끊임없이 일상 속에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슬픔으로 공존한 작품이다. 소녀들의 나이에 우리는 무엇을 하였던가. 소녀들은 그 나이에 어디에서 어떻게 생을 부여잡고 있었는지 떠올릴수록 그 아픔과 슬픔은 깊은 상흔이 되어 눈물이 고이는 순간을 여러 번 마주한 소설이다.

인신매매하는 상황에 내몰려 던져진 소녀들의 가혹한 삶이 사실적으로 전해진다. 이것이 전쟁이며, 전쟁의 실상을 제대로 고발하는 참담한 이야기이다. 총검을 가진 주인이 감시하여 도망도 가지 못하는 어린 소녀들이 빚을 갚아가지만 매일 이자는 놀라운 속도로 붙어서 희망마저도 잃어버린 주인공 소녀의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 작품이다. 전쟁의 참혹한 참상과 인간이 가진 잔혹성과 폭력성에 희생된 어린 소녀들을 잊어서는 안되는 이유를 깊은 한숨을 토해내면서 읽은 작품이다.

반복되어서는 안되는 역사이다. 누구도 이 나라의 어린 소녀들과 젊은 청년들을 전쟁의 희생물로 삼아서는 안되는 이유를 이 소설에서도 만날 수 있다. 평화주의가 왜 필요한지, 제국주의와 폭력주의가 정당화되지 못하는 이유를 이 소설의 일본군 위안부 어린 소녀들을 통해서 보여준다. 아기집을 가진 여성으로 태어난 것과 태어날 여자아기를 축복할 수 있는 평화주의가 절실해지는 시대이다.

어린 소녀들을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동조한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함께 직접적으로 때리고 총검으로 어린 소녀의 머리를 내리치는 술 취한 군인도 있다. 아편을 하면서 정신이 혼미해진 소녀도 등장하면서 쓸모가 없어진 위안부가 또 어딘가로 팔려가는 것도 목격하게 된다. 갇혀버린 지옥과 같은 현장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 기적이며 그 현장을 이야기하고 증언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음을, 그 소녀들이 있다는 것을 또렷하게 기억하게 된다. 제국주의를 추앙하는 분위기에 동조하는 집단이 누구인지 분별하는 힘도 절실해진다.


오백 년 전 파란 눈 게르만인은 순전히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처녀를 강간했다. 30 _ 바닥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 보다 여름 2024 <천사들>소설에 이어 읽은 작가의 두 번째 소설이다. 천사들 소설에서 '악취나는 의도'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과 흑백영화를 보는 이모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여름에 만난 이 소설집에는 세 명의 작가 단편소설과 인터뷰로 구성된 문학과 지성사의 계절마다 만나는 책이다.

책표지 디자인이 눈길을 충분히 사로잡아서 구매한 소설집이다. 뜨거운 여름을 함께 보낸 소설로 천천히 읽고 완독하여도 쉽게 보내지 못한 소설집이다. 소도시와 대도시 삶은 매우 대조적이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은 소도시의 라이프 스타일이 익숙해지지 않고 낯설기만 하다. 그래서 훌쩍 여행을 떠나는 여행지가 조용한 여행지가 되고 있다. 작가도 여행지에서 경험한 장면들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인터뷰에서 설명한다.

소와 돼지의 부산물을 받아먹는 독수리를 사람과 비슷한 자태라고 관찰한 장면이 꽤 인상적이다. 인간이란 무엇인지 진중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노아라는 개신교 이름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데 지방 공무원이 직업인데 민원인이 드러낸 불안의 근원이 자신의 이름이었다는 것도 상기한다. 다른 종교에 예민함을 불안으로 표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양성이 공존하고 수용하고 다름을 인정하기보다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이분법적 사고로 구별하고 차별하는 사회적 문제까지도 함께 짚어보게 된다. 노아라는 이름을 지은 부모의 기대감으로 바라볼 수 여유와 이해보다 다름이라는 차별적 시선이 깊게 자리잡고 있음이 민원인들의 태도에서 드러난다.

적은 무엇인가. 적이라고 단정 짓고 살아가는 인간적 한계를 민원인들의 불안한 모습, 천문대에 거주하는 선화라는 인물, 녹원의 타이어를 의도적으로 파손하고도 개의치 않는 표정 없는 얼굴의 소년, 무엇도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 녹원이라는 동료 공무원 직원에게서 보여준 소설이다.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적은 누구이며 어떻게 명명되어 삶의 뿌리를 이루었는지 고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모호한 태도로 친절하지 않는 인간의 한계를 인물들의 일상적인 모습에서 적을 찾게 하고 그들의 대면하는 인간이 보여주는 이중적인 모호함을 보여준 소설이다.

모든 책에서 구원은 적의 공습 뒤에 찾아왔다. 적이 온다는 것은 긴긴 괴로움으로 뭉쳐진 기다림,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가 되어버린 기다림이 끝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156

적의 공습을 기다린 사람들은 구원을 찾고자 했고 구원을 찾고자 기다린 긴 괴로움으로 뭉친 하나의 세계가 어떤 자태로, 어떤 향기로 응집되었는지 여러 인물들의 거짓된 말과 태도, 표정이 없다고 느낄 정도의 얼굴로 살아가고 모호한 태도로 구원을 기다린 사람들에게 다시 질문하게 되는 작품이다.


선명하고 맑고 아름다워야 하는 삶이지만 이 세계 너머의 구원을 기다리며 혼탁하고 어둡고 불투명한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구원을 기다리는 태도인지 거듭 질문하게 되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닌 혼자만 살아남기를 의도하는 '악취나는 의도'가 구원으로 반의된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종교의 진정한 의미, 방향성을 잊고 자신만의 구원을 구축하고 대립하고 분쟁하는 사회적 문제의 중심에 종교가 자리잡고 있음을 떠올리면서 책장을 덮게 된다. 지금 도래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독수리처럼 소와 돼지의 부산물을 먹는 종교인이 되지 않도록, 동료 직원에게도 모호한 태도로 친절하지 않는 녹원의 모습까지도 적이 누구였는지 생각해 보는 인물로 남는다.



무엇 하나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 P144

독수리 / 소와 돼지의 부산물을 받아먹었다. - P126

묘하게 사람다운 면이 있었다. 둥글게 구부린 어깨나 축 늘어뜨린 목 등이 특히 그랬다. - P126

아무런 표정 없는 얼굴 - P140

모든 책에서 구원은 적의 공습 뒤에 찾아왔다. 적이 온다는 것은 긴긴 괴로움으로 뭉쳐진 기다림,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가 되어버린 기다림이 끝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 P1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