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외투」, 「광인 일기」, 서평가 금정연의 「추천의 말」까지 수록된 니콜라이 고골의 세 작품을 한 권으로 읽을 수 있는 민음사 쏜살문고이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열망을 가진 야심 찬 청년인 고골은 우크라이나의 시골 소지주의 아들이었다. 작품으로는 갖은 고생 끝에 민담을 소재로 쓴 <지칸카 근처 마을의 야화>, 러시아 관료 제도를 풍자한 희극 <검찰관>, 봉건 러시아의 농노제와 부패한 관료들을 풍자한 최대 걸작 <죽은 혼> 등이 있다.

추천글에 등장하는 세 작품 <코>, <외투>, <광인 일기> 인물들을 천지와 또라이, 얼간이 유형으로 설명되는데 꽤 흥미로움을 자극한 비유들이다. 세 작품을 완독 후 작품 인물을 떠올리면서 천지, 또라이, 얼간이로 비유한 이유들을 다시 떠올리게 한 소설이다. 덕분에 작품이 일으키는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시킨 추천글로 기억에 남았던 내용이다.



속물들의 세계, 수직적 관료 체계가 허락하는 것만 상상하고 욕망하는 자들의 세계, 그러한 유형인 얼간이들의 세계가 고골의 소설이라고 설명한다. <첫 여름, 완주>소설에 등장하는 시골 합동 장의사 가게를 찾아온 남자 손님이 떠오른다. 그의 눈빛, 말투, 행동, 입고 있는 옷들의 브랜드, 신은 신발, 타고 온 자동차 브랜드가 총체적으로 열거되면서 시골에서 요구하는 커피 취향이 부적절하게 전해지면서 주인공은 반격하는 대응력을 보인 장면이 상기된다. 속물이고 수직적 관료 체계와 욕망의 눈빛이 이글거리는 얼간이들이 누구인지 차분히 둘러보면서 흥미롭게 읽었던 작품이다.

고골의 작품에서도 신분을 드러내는 의복과 헤어스타일, 관등의 세계들이 여실히 드러난다. 고골의 작품들을 하나씩 재독하는 시간들로 여름날을 채운다. 더불어 넷플릭스 <돌풍>시리즈를 보고 난 후 읽었는데 소설은 시대적 배경과 인물에 머무르지 않고 현시대를 풍자하는 데칼코마니와 다름없는 작품으로 부활한다. 그 시대의 풍자가 현대사회에서는 어떤 부류, 어떤 집단을 상징하는지 <첫 여름, 완주>소설에서도 찾는 재미를 더한다.



경직된 수직 세계를 떠올리면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유고 소설 <8월에 만나요>에 등장하는 섬에 수직으로 묻은 수많은 관들이 생각난다. <첫 여름, 완주>소설의 장의사 일을 하는 수미 엄마의 직업과 팔 없는 분의 죽음 이후 수의를 입히는 과정과 죽은 사연을 전하려는 분의 대화를 단호하게 거절하면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떠오른다. 생의 세계와 죽은 자의 관까지 수직으로 표현하면서 함께 생각해 보자고 불러앉힌 유고 소설 < 8월에 만나요 >과 < 첫 여름, 완주 > 소설도 고골의 소설과 함께 걷는 작품들이 된다.



수평보다는 수직이 압도한 역사가 현재 우리들의 세계이다. 자본주의가 얼마나 황폐한 것인지 소설들은 거침없이 표현한다. 고골의 작품에서도 사실주의가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수직의 세계가 얼마나 많은 문학들을 통해 언급되고 지적되고 있는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교직하게 된다. 이 책에서 만나는 천지, 또라이, 얼간이들이 고골의 소설들에서 누구들을 지칭하는지 만날 수 있다. 재독하여도 흥미가 가중되는 작가의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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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뜻에 따라 신학공부를 하다가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말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양치기가 되어 하늘을 읽으며 땅을 읽는 삶이 시작되면서 배우고 깨우친 것들이 전해진다. 삶의 의미, 인생의 의미, 행복의 의미, 고단한 삶의 의미까지도 주인공이 사유한 흔적을 따라 마주하게 된다.

양을 비유하면서 설명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양에게는 물과 먹이만이 중요하고 만일 자신이 괴물이 되어 양들을 차례로 죽여도 양들은 자기 친구들이 거의 다 죽고 난 후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게 될 거라고 한다. 무엇에 의지하다가 본능에 따라 사는 법을 잊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삶을 위태롭게 하는지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들이 단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소비지향주의에 길들여지는 삶보다 자립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진다.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경제력의 지표가 된다. 자본주의에 길들여지지 않고 자립능력이 얼마나 중대한지 엿보게 된다.


비유되는 양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삶은 부유하는 삶과 다름이 없는 삶으로 명명된다. 『고도를 기다리며』 희곡에 등장하는 인물도 떠올리게 한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삶의 지표가 되는 내용들이 전해지는데 비유된 양처럼 살아가는 부류가 어떤 삶인지 살펴보게 하는 작품이다.

아무런 간구가 없는 기도를 처음으로 경험하면서 그가 이해하고자 애쓴 것의 의미를 조우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신학을 공부한 그가 경험한 것과 특별한 경이로움을 깊게 호흡하면서 지난날 비슷한 경험을 하였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자발적으로 삶을 선택하고 경험하며 깨달은 것들의 경이로움과 여행길에서의 깨달음, 익숙한 일상에서 놓쳐버린 것은 없는지 둘러보게 하는 작품이다. 『돈키호테』소설에 등장하는 산양치기의 인상적인 대화도 함께 떠올리게 한다. 『삼체』소설의 과학자들이 하늘과 우주를 관찰하면서 '하나가 살면 모두가 산다'는 강한 메시지도 함께 상기한 장면으로 이어진다. 한강 작가의 『빛과 실』책에서 작가의 질문과 연결된 끈이라는 내용까지도 이어진 소설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질문을 하여야 한다. 피상적인 것이 아닌 진중한 의미를 찾아야 한다. 『빛과 실』책에 등장한 광주 야학 교사의 일기속의 기도내용꺄지 부여잡게 하는 작품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문학 연금술의 비밀을 알고 있다.

오에 겐자부로(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만일 어느 순간 내가 괴물로 변해서 자기들을 차례로 죽여버린다 해도, 양들은 자기 친구들이 거의 다 죽고 난 후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아차릴 거야. 그건 다 내게만 의지본능에 따라 사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지. 내가 자기들을 먹여 주니까.

짧은 생애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못하는 것도, ... 인간의 언어를 못 알아듣는 것도 양들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양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물과 먹이뿐이었다.


그 연금술사는 이백 살이 넘어.

사랑을 할 때 우리는 천지만물 중의 그 어느 것이라도 될 수 있어.

사랑을 할 때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이해할 수가 있어.

그것은 이제껏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기도였다.

아무말도, 아무런 간구도 없는 기도였다....

고요 속에서, 그는 ....

그 무엇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음을 깨달았다.


보물이 있는 곳에 도달하려면

표지를 따라가야 한다네...

각자가 따라가야 하는 길을 적어주셨다네...

적어주신 길을 읽기만 하면 되는 거야...

나비는 행운의 표지란다.


문제는 양들이 새로운 길에

관심이 없다는 거야...

목초지가 바뀌는 것이나

계절이 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지...

그저 물과 먹이를 찾는 일밖에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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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의 서울> 드라마에 등장하는 쌍둥이와 모순 소설에 등장하는 삶과 죽음의 의미가 시의적절하게 매만져진다. 삶과 죽음을 분리하고 같은 것임을 인정하지 않으며 이분법적 사고로 이해하는 모순을 이겨내야 하는 이유가 그러하다. 삶과 죽음은 한통속이라는 명징한 사유의 끝자락이 멋들어진 소설이다. 불행하다고 단정 짓지만 그 속에 행복을 발견하는 이는 버티며 살아가는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반면 타인의 관점에서 행복할 거라 단정짓는 삶에 불행만이 가득한 삶도 존재한다. <미지의 서울> 드라마에서도 모순 소설의 두 자매가 보이기 시작한다. 삶의 커다란 혼돈 속에서 사회적 기준과 잣대에 짓눌려 정체성을 찾지 못한다면 자기 탓으로 몰아넣는 사회적 모순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침몰하는 배가 되어버린다. 미래의 회사 선배와 미래의 회사 생활이 그러했다. 혐오와 차별, 오해와 선입견으로 단죄하며 직장에서의 따돌림, 일거리 주지 않고 무시하는 직장문화에 홀로 희생된 인물들이 삶과 죽음의 한통속에 속아넘어가는 장면들이 생각난다. 미지라는 쌍둥이는 같은 상황들을 다르게 대처하면서 사회가 단단하게 쌓아 올린 문화에 도전한다.

소설의 두 자매의 삶과 죽음의 경계선도 다르지가 않다. 불행과 행복이라는 포장된 사회적 기준은 무의미하였으며 삶과 죽음을 어떤 마음으로 버티고 발견하고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다. 단단한 경계를 넘어선 용기, 사회적 기준을 부수고 나를 새롭게 출발하도록 이끈 드라마이며 소설이다. 쉽게 단정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죽음의 신호탄에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용기, 자신을 향한 믿음, 꾸준함의 결실을 맞보아야 삶이다. 불행과 행복은 한통속이라는 것, 속지 말아야 하는 것, 나를 사랑하는 힘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다시 확인한 소설이다. 불행 속에도 행복을 발견하여야 삶이 지속된다. 한순간, 한나절, 하루의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놀라운 삶을 향유해야 한다. 찰나의 발견, 새로운 나를 시작하며 행복을 기억하는 것이 삶임을 확인한 소설이다. 지금 우리가 사유하고 바라보는 것이 삶이다. 그 삶에서 충분히 만끽하는 즐거움을 찾아야 하는 이유를 발견한 작품이다.

고상한 유희보다는 다분히 악의적인 유희를 사람들이 진짜로 즐긴다는 사실도 언급된다. 소설에서 멈추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자신은 어떤 유희를 즐기는 부류에 속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악의적인 유희에 희열을 느끼며 섬뜩한 무리에 속하고 있지 않은지 차분히 살펴보는 것이 이 소설의 또 하나의 진귀한 가치이다. 모순이라는 단어의 깊고 넓은 의미를 삶을 통해서 집요하게 관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탐구하라고 자신의 삶을 잘 관찰하라고 작가는 예리한 문장으로 방점을 찍는다.

순탄하고 평이하게 살아가는 삶이 아니었기에 헤치고 나아간 어리고 젊은 날들의 단단함에 응원을 아끼지 않게 된다. 고단하고 일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일들을 경험할 때마다 포기하고 도망치지 않았던 날들이 떠오른다. 대지 아래로 깊숙이 파묻혀 들어가는 기분도 경험했지만 모두 지나쳤고 앞으로도 지나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굴곡진 인생의 양감이 지금을 만들어냈음을 작가의 소설을 통해서 다시 확인한다. 삶을 발전시키고 있는 오늘을 더욱 조밀하게 응시하게 한 소설이다.



모순을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한통속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291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인생은 ...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 P296

사람들이 진짜로 즐기는 유희는 고상한 것보다는 다분히 악의적인 것들이 훨씬 더 많다. - P13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내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 - P15

모순을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한통속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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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운명에 대해 성찰하는 소설들 중에서 『환락의 집』이라는 민음사 세게문학전집이 있다. 2권으로 구성된 소설로 이디스 워튼의 출세작이며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 수상작가의 작품이다. 19세기말 뉴육의 아름답고 젊은 여성 릴리 바트는 상류 사회의 언저리에서 생활하는 인물로 높은 교양과 고상한 취향을 지녔지만 일찍 부모를 잃고 부유한 남자와 결혼을 통해서 상류층으로 진입하려고 하는 여성이다. 작가는 뉴욕 벼락부자들의 과시적 소비와 경박함을 소설을 통해 폭로하면서 여성이 스스로 정체성을 찾아간 과정을 전하는 소설이다.

현대사회의 언론이 부추기는 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으로 제시되는 것들을 떠올린다. 더불어 남성의 아름다움까지도 범벅이 되어버린 현대사회의 양상까지도 둘러보게 된다. 반면 어느 곳에서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의 가치를 발견한 이들도 발견하게 된다. 미의 기준, 아름다움의 상징성을 추앙하는 기준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 변화되고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아름다움도 상대성을 띠면서 시대가 제시한 유행, 아름다움에 휘청거리는 무리에 있지 않는지 숙고하게 하는 소설로 이어진다.


칙칙한 여성을 누가 원하겠어요?

사람들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예쁘기를, 잘 차려입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그레이 헤어에 관심을 가지면서 흔들림 없이 지금의 나이듦을 사랑하고 있다. 『문숙의 자연식』이라는 책을 재독하면서 이 소설의 주제와 접목하게 된다.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을 큰 의미이며 삶의 중심점을 찾는 과정이다. 작가가 소설을 통해 문제를 발견하고 스스로 찾아간 정체성의 실체가 이 소설의 이야기가 된다. 『테트리스 부부』소설에 등장하는 아내의 과시적 소비 성향도 함께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숙고의 시간조차 없이 큰 파도에 휩쓸린 현대인들의 과시적 소비와 경박함이 어떤 파국이 되는지 차분히 생각하게 되는 시간으로 이어진다.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소망 없는 불행』소설에 등장한 작가의 어머니처럼 여러 작가들의 책을 읽으면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성도 존재한다.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이라는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도 떠올리게 된다. 자신이 누구인지 한번은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은 필요해진다. 그 시간은 결코 무용하지 않으며 성장의 기회로 이어지는 출발선이 되기 때문이다.

결혼과 사랑에서 방황한 한 여성의 이야기가 소설로 전해진다. 『순수의 시대』, 『버너 자매』를 읽고 릴레이 독서로 읽은 작가의 작품이다. 관습과 규율, 시대적 아름다움의 기준을 의심하게 된다. 진정한 자아를 찾는 여정으로 이어지는 멋진 작품이다.

경박한 사회는 오로지

그 경박함이 파괴하는 것을 통해서만

극적인 의미를 얻을 수 있다. _이디스 워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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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연극배우들이 관객을 향해 욕설을 서로 겹치게 소리 지르고 있지만 배우들의 시선은 관객에 고정되지 않는 상황이다. 배우들의 욕설 내용과 대상은 누구인지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혐오스러운 상판대기들아, 어릿광대들아, 가련한 몰골들아, 뻔뻔스러운 작자들아, 허수아비들아, 멍청하게 서서 구경하는 꼴통들아" (15쪽) 굵직한 의미들이 열거되면서 그들이 누구인지 둘러보게 되는 연극이다.

"헐뜯기 대가들아, 쓸모없는 건달들아, 줏대 없는 꼭두각시들아, 사회의 찌꺼기들아." (60쪽) 배우들의 욕설은 연극에 다시 등장한다. "능력 면에서 모든 걸 능가... 교활하고 왜소한 게르만 종자들아." (59쪽) 문학의 힘은 하나의 대상만을 향하지 않는다. 빈칸 넣기 하듯이 지칭된 대상에 어느 집단, 사회계층, 다양한 대상들을 빈칸에 넣기까지 하면서 배우들이 욕설하는 대상을 찾는 시간으로 연장되는 작품이다.

"항상 거기에 앉아있었다. 성실한 노력, 콧물을 훌쩍이는 너희들. 성공에 큰 몫을 했다. 위대함은 생략을 통해 이루어졌다. 모든 사실을 침묵으로 대변했구나, 허풍쟁이들아." (59쪽) 배우들은 대상을 주시하지 않고 관객을 향했지만 누구도 주시하지 않으면서 욕설이 계속된다. 배우들에게 주어진 규칙은 자세히 관찰할 것, 귀 기울여 들을 것이다. 이 규칙을 먼저 명시하면서 시작된 연극이다. 덕분에 사회가 강요하고 조장하는 흐름에 반하는 고통을 받고 대우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한 기사들을 읽은 내용은 일상 속에서도 잔상이 남아서 위협적인 속도로 달리는 도로에 뜨거운 햇살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한낮에 일당을 받고자 노동하는 신호수와 작업하는 도로 작업자들을 애처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들이 하루 일당을 받고자 도로에서 일하다가 현장에서 죽음을 맞이한 많은 그들의 죽음이 다시 되살아나는 뜨거운 여름의 도로이다.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곳에서 일하는 그들의 노동이 있다. 그들의 지저분한 작업복에는 정당한 수고와 땀이 고스란히 존재한다. 수많은 장소에서 누군가들의 노동과 노동자들이 일을 하지만 사회는 그들을 지우고 감추고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것이 현실이다. <다음 소회>영화에서 콜센터 직원의 죽음, <미지의 서울> 드라마에서도 연극배우들이 소리치는 욕설의 대상들이 존재한다. 대선 공약에서도 평등이라는 키워드를 찾아보는 자세히 관찰하기와 귀 기울이기 규칙을 돋보기로 찾는 작업은 필요하다. 총체적으로 구분하고 구별하는 사회적 시스템에서 연극배우가 누구를 향하야 욕설을 쏟아내는지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는 희곡이 된다.

무더운 여름날에도 화면 속에 등장하는 집단은 긴팔의 옷으로 무장하면서 냉방병을 걱정하는 이들과 먼지와 소음, 빨리빨리 일하라고 다그치는 한국 사회에 길들여진 수많은 노동자들의 한숨은 대조된다. 노동을 하지 않는 노동자들은 없는 사회이다. 그들의 노동은 정당한 대우를 받고 행복하다는 만족감으로 살아가는 한국 사회인지 자세히 관찰해야 하고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이 규칙이라고 연극은 연극배우들에게 규정한다. 정당함을 잃고 차별적인 사회에서 별들이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이 희곡에서 발견하게 된다.

번아웃으로 우울한 노동자들이 많은 한국 사회이다. 웃음기를 잃어버린 그들의 노동에 무엇이 작동하면서 그들을 우울하게 만들었는지 노동 사회를 자세히 관찰할 것! 귀 기울일 것! 연극배우들에게 규정한 규칙을 잊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뜨거운 도시의 도로를 달리면서 신호수를 보면서 아슬아슬한 생과 죽음의 경계를 떠올렸다. 그리고 직장 노동자들의 한숨과 눈물, 부유하는 수많은 감정들로 노동 현장에서 일하고 있을 전문직, 사무직, 노동자들의 다양한 일상들을 떠올린 희곡이다. 반대편에 욕설의 대상자가 된 그들이 자신은 아닌지 살펴보는 힘까지도 불어넣어 주는 희곡이 되기를 희망한 작품이다.

<미지의 서울> 드라마에서도 기업 전략실 엘리트들이 한 명을 왕따시키면서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모습이 전개되는데 이 상황에 익숙한 사람들과 용기를 낸 사람이 어떤 대우를 차별적으로 받는지 보여줄 때 이 희곡의 명대사들이 떠올라서 다시 재독한 희곡이다. 당연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빨리빨리를 외치는 분위기이다. 기계를 멈추어야 하는데 기계를 멈추지 않고 사람이 기계 결함을 해결하도록 방치하는 순간 다시 한 생명이 사라진 산업현장의 노동자 죽음을 또다시 접한 한국 사회이다. 그들이 방만하고 기만한 것이 무엇이며 노동자 죽음을 수익과 대조하면서 방치한 현장의 반복되는 사고 소식은 우리 모두를 향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외국 생활을 하면서 현지인들이 여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은 꽤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그들의 행복과 한국 사회의 행복도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한국인들의 삶은 결코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미지의 서울> 드라마와 <다음 소희> 영화를 통해서 보게 된다. 스스로 찾아내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응원하면서 쓰러지지 않는 한국 사회의 노동자들이 많아지기를, 이들의 허무한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관심을 갖는 정치가 존재하기를, 가해자가 우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사회이기를 희망하면서 읽은 책으로 『소망 없는 불행』에 이어서 읽은 작가의 작품이다.

여러분은 현실을 다시 거칠다고 말할 것입니다.

냉정해질 것입니다.

자신의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연극에 몰두했던 통일체가 아닙니다. 57




우리는 특정한 조건에 따라 우리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우리 말과 여러분의 시선은 각을 이루지 않습니다. - P20

멍청이들아, 막돼먹은 인간들아, 부도덕한 인간들아, 떠돌이 사기꾼들아, - P60

여러분은 현실을 다시 거칠다고 말할 것입니다. 냉정해질 것입니다. 자신의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연극에 몰두했던 통일체가 아닙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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