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진하는 밤 문학과지성 시인선 589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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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워크

뒤로 걷고 싶다 ...

누군가가 두 팔을 벌린 채

내 등을 안아주려고 서 있는 대까지

무사히 도착하고 싶다 ...

'그쪽으로 가지 말고 이리 와봐' 하면서

영원히 나를 기다린 것 같다... 52

나는 대체로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고...

지금부터 뒤로 걷는 거다 부드러운 스텝으로 저쪽 모퉁이까지 그리고 모퉁이를 돌아

구두를 벗고 재킷을 벗고 콧수염을 떼는 거다 53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했는데 지금부터는 뒤로 걷고 싶다고 고백한다. 누군가가 두 팔을 벌린 채 자신을 안아주려고 서 있는 대까지 뒤로 걷고 싶다고 한다. 무사히 도착하고 싶다는 고백이 간절하다.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 쉽지만 뒤로 걸으면서 누군가에게 안기는 그 도착점은 안전할까.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 누군가가 있을까. 누군가가 곧 우리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뒷걸음질을 치는 것도 안전하다는 것을, 안아줄 수 있는 타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앞으로만 걷는 발걸음도 있지만 뒷걸음질도 안전하다는 것을, 안아주는 온기를 가득히 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부드러운 발걸음으로 뒷걸음을 할 수 있도록 모퉁이가 되어주는 우리. 변장하였던 것들을 하나둘씩 벗어던져도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우리가 많아졌으면 한다. 구두를 벗고, 재킷을 벗고, 콧수염도 떼어도 두 팔 벌려서 안아주는 우리가 되고 싶다.




★ 얼굴이라도 보고 와야겠어

모가지가 두 개는 되어야 겨우 버틸 수 있는 얼굴,... 솜으로 채워진 얼굴, 얼굴을 베고 잠든 베개,

자그마한 구명보트가 이마에 정박해 있는 얼굴, 두 손을 가슴에 올리고 심장의 박동을 느낄 때 오늘도 실패했구나 생각하며 경련이 이는 얼굴, 빗물받이처럼 두 귀가 쇠구슬을 같은 눈물을 모으는 얼굴, 보고 있는 것들이 모조리 통과되고 있는 얼굴,... 뒤통수 뒤로 숨는 얼굴 64~65

수많은 얼굴들이 있다. 솜으로 채워진 얼굴은 어떠한 얼굴일까. 얼굴을 베고 잠든 베개는 더욱 압도적이다. 뒤통수 뒤로 숨은 얼굴과 오늘도 실패했구나 생각하며 경련이 이는 얼굴도 다르지가 않다. 두 귀가 눈물을 모으는 얼굴은 어떤 얼굴인지도 상상하게 된다. 생명을 살리는 구명보트도 작기만 하다. 그 작은 구명보트가 이마에 정박해 있는 얼굴은 어떤 하루를 보냈던 것일까. 이 모든 얼굴들이 예사롭지가 않다. 작은 아이들부터 청소년들, 청년들, 비정규직, 계약직, 무거운 발걸음과 한숨을 가득히 담고 바쁜 걸음으로 살아가는 도시인들이 떠오르게 된다. 모두가 이와 같은 얼굴로 살아가지는 않는다. 99%을 이루는 대다수의 현대인들의 얼굴이 이 시어들이 된다.

촉진하는 밤의 시집의 시들을 오랜 시간 무거운 발걸음으로 읽게 한다. 묵직한 무게감들을 버겁게 느끼게 한다. 시인의 시집을 처음으로 읽으면서 몇 번을 감탄하게 한다. 여러 번 다시 읽게 되는 시들이다. 올해의 시집 인기 순위에 자리잡은 시집이라 주문하였고 또 다른 시집들까지도 눈길이 가게 된다.




★ 우리의 활동


매사에 입술을 열 때마다 애를 써야 한다

선의와 호의를 두 배 세 배 열 배로 담기 위해서

그래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전해지니까

슬픔을 나누기 위해서 달려왔으나

우리가 나누는 것은 축복일지도 몰랐다

설사 간간이 울먹인다 해도

...

윤곽만 겨우 남은 지난 일화가 손끝에 잡혔다가 바스라져간다 34

...

나는 너를 좋아하고 있다

튼튼하고 둥근 올가미를 두 손에 들고서

검고 깊은 볼모로서 35


입술로 말을 한다. 말에는 선의와 호의를 담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들이 필요하다. 그러한 노력이 담기지 않는 말은 검은 올가미가 된다. 깊은 올가미가 된다. 올가미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검고 튼튼한 죽음이 된다. 슬픔을 나누는 타인인지도 살펴야 한다. 외롭게 홀로 남겨지도록 무관심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하는 시어가 전해진다. 말을 할 때마다 애를 써라고 시인은 강하게 전한다. 말 한마디가 슬픔을 나누기를, 검은 물이 흐르는 말이 되어서 타인을 죽음으로 몰아세우는 올가미가 되지 않는 말이 되도록 우리의 활동, 우리의 말을 클로즈업시킨다.

<스위트홈>시즌 1에서 괴물이 되는 사람들을 영상미로 보았다. 시집에서는 시어가 전달하는 상징성으로 따가운 매가 되어 우리들의 말들을 단단하게 살피게 한다. 하루하루가 노력해야 하는 삶의 여정이다. 매순간 노력하지 않으면 오물로 뒤덮인 삶의 흔적을 남기기 쉽기에 시인의 시들을 통해서도 매진하게 된다. 든든한 동행자가 되어준 시인이며 시집이다. 밤이 상징하는 어둠을 여러 편의 시들을 통해서 깊게 조우하게 한다. 어떤 말을 하였는지, 어떤 선택들을 하였는지, 어떤 방향성을 지향하고 있는지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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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39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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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이꽃님 작가의 소설들을 계속해서 읽을수록 매번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이제야 알았어. 그 먼 시간을 건너 네 편지가 나한테 도착한 이유를." 누군가에게는 시간의 흐름이 느리고 누군가에게는 시간의 흐름이 빠르다. 이 소설에서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지만 누군가에게는 빠른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시공간을 살고 있는 멋진 기적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느린 우편물로 보낸 편지가 다른 누군가에게 벌써 도착하면서 서로 다른 시대의 두 사람이 주고받는 편지가 인상적이다. 과거의 시간에 있는 누군가에게 도착한 나의 편지 내용과 현재의 고민을 해결해 주고자 노력하는 과거의 누군가가 진지하게 나누는 편지를 통해서 가출을 꿈꾸는 16살 아이의 사적인 고민들이 하나씩 이야기된다.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는 은유는 엄마의 존재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다. 얼굴도 모르고 어떤 정보도 전해 듣지 않은 상태에서 15년을 아빠와 살게 된다. 홀로 생일을 보내고 홀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은유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많은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대화도 없이 지내는 아빠와의 관계에 갑자기 변화가 일어난다. 아빠가 만나는 새로운 여자와 결혼을 준비하면서 아빠가 갑자기 달라지면서 새엄마가 될 사람과도 마찰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여자는 전혀 걱정을 하지 않는다. 뜻모를 말을 남기면서 은유를 더욱 궁금하게 한다.

어쩌면 우린 너무 많은 기적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사는지도 모르겠어.

기적같은 순간들이 매순간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느끼지 못하고 산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특별하게 일어나는 기적같은 일들을 두리번거리면서 깨우치게 된다. 은유의 엄마가 누구였는지 알고 싶어하는 은유의 바램을 편지를 주고받는 과거의 친구였고 언니였던 같은 이름을 가진 은유가 도와주기 시작한다. 아빠가 엄마를 만나는 순간을 추리하면서 아빠를 찾아내는 일, 은유가 태어났을 때를 추리하면서 아빠가 누구를 만나는지도 살피기 시작한다. 은유의 엄마는 누구였을까? 무수히 추리하게 한다. 은유 아빠가 엄마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이유들도 서서히 알게 된다.

아빠는 아빠가 처음이겠지만 나도 딸은 처음이에요...

처음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 대해 여전히 알지 못해. 97

절대로 내 기분 이해 못 해.

넌 '우울함'이 뭔지도 모르고

진짜 '외로움'이 뭔지 모를 테니까. 68

불행하다고 해서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거나,

위험에 빠뜨리는 건

절대 올바른 행동은 아닌 것 같다. 57



두려움이 얼마나 과오를 일으키는지도 은유 아빠를 통해서 보여준다. 아빠가 처음이라서 서툴렀던 은유 아빠가 진심을 보여주지 못하였던 이유도 이해하게 된다. 은유 엄마가 선택한 것과 그 이유도 전해진다. 소중한 은유가 임신되면서 느꼈을 기쁨도 은유 엄마의 편지를 통해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은유 아빠가 얼마나 기뻐했는지도 은유는 알게 된다. 은유를 향한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던 은유 아빠의 서툰 방식이 은유를 더욱 외롭게 하였음을 알게 된다. 기적같은 일,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일어나면서 멋진 한 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고문당해서 미친 거라고.

그 사람들이 원래부터 미친 사람은 아니었대요. 13



IMF 시대, 로또, 삐삐, 고문에 대한 이야기들도 등장한다. 역사 속에 자리 잡는 수많은 시대적 키워드와 그 시대의 맞춤법까지도 세심하게 매만진 소설이다. 경찰서에서 고문당하여 미친 사람들에 대한 아픈 역사까지도 놓치지 않는 소설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한 사연과 암 치료와 새 생명을 두고 한 가지만을 선택할 때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와 신이 자신에게 준 배려라는 것을 느낀 은유 엄마의 사연까지도 구구절절 전해지는 소설이다.

원망이 밀려오지만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신의 배려라는 사실을 깨우친 그녀의 선택을 깊게 사유하게 하는 소설이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간 두 은유의 이야기와 서로가 주고받은 편지들은 서로가 다른 시간속도로 살아가고 있음을 멋지게 이해하게 된다. 양자역학과 관련해서 소설을 이해하는 시간도 가져보게 한다. 마지막에 주고받는 편지가 서서히 흐려지는 이유도 이해하게 된다. 바람이 되어주고 눈물이 되어줄 거라는 그 시대의 은유 편지가 깊게 기억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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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황금종이 1~2 세트 - 전2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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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종교라는 권력 두 가지가 먼저 명시된다. 더불어 정치와 종교를 지배하는 돈의 위력과 자본주의를 사실적으로 이야기한다. 펼쳐지는 사연들마다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허구와 사실의 혼재 속에서 사건들은 날것으로 벌거숭이가 되는 돈에 대한 한국 사회의 민낯이 펼쳐진다.



자본주의와 돈의 밀착도는 매우 긴밀하다. 자본주의의 시작과 성장기에 한국사회가 누렸던 경제 성장에 특혜를 누렸던 기업들의 일그러진 단상과 이면도 소설에 등장한다. 로펌의 검은 속내와 협상 금액이 마찰 없이 입금되는 자본주의 재벌의 범죄 면죄부에도 돈은 크게 기여를 한다. 2권으로 구성된 소설은 책장이 멈추지 않는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면서 읽은 소설이다.



'돈은 무엇인가'에 대한 학생의 질문에 철학교수의 답변은 낯설지가 않았다. '돈은 실존이며 부조리'라고 정의 내리는 철학교수의 답변은 의미심장하다. 사건 의뢰하는 많은 사람들의 사연을 파헤칠수록 서글퍼진다. 부모와 자식 간의 소송사건, 상가 월세가 4배로 청구되는 사연, 인지청구권과 상속권이 가능한 사연, 장례식장에서 대화 나누는 사람들의 돈에 대한 속마음, 애인의 변심에 분노와 증오로 표현되는 사건들의 바탕에 돈은 깊숙하게 중심을 잡는다. 돈이 사건의 중심이며 돈 때문에 사건은 시작된다. 의뢰 사건들마다 돈이 사람들을 지배한다. 더불어 상담해 주는 변호사 비용도 돈이 지배한다.



돈의 마력과 괴력이 어떻게 개인과 개인을 파괴하는지 하나씩 펼쳐놓는다. 무엇도 돈에서 자유롭지가 않다. 인간이 돈을 지배하느냐, 돈이 인간을 지배하느냐는 질문으로 연계된다. 돈은 필요하지만 돈에 지배당하면 어떤 파멸이 이어지는지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보게 된다. 쉽게 얻은 돈은 금방 사라지고 노숙자 신세가 되는 사연까지도 전해진다. 가족관계가 돈 때문에 어떻게 해체되는지도 사건들을 통해서 전해진다.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현명하게 살아야 하는지 자구책을 찾게 하는 소설이다. 돈에 지배당하면 산산조각 나는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사실적인 작품이다.



정치와 재벌, 검사, 로펌의 변호사, 운동권 정치인의 검은 속내, 변절하는 운동권 정치인의 환희, 야당답지 못한 정치인들까지도 꼬집는 글귀가 시원하게 전해진다. 야당을 약간 다른 보수라고 말하는 이유가 하나둘씩 떠오르게 된다. 카멜레온처럼 보수가 된 야당을 국민이 주시하고 있음을 시원하게 대변한다. 눈을 흘기며 바라보는 정치와 재벌, 검사, 로펌의 변호사들을 이 소설에서도 다른 맛으로 맛보게 된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시원하게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한국사회의 이야기이다. 혼탁해진 한국 자본주의가 전해지는 소설이다. 카지노, 증권, 비트코인, 전경유착, 경언유착, 경법유착, 권경유착, 재벌개혁에 대해서도 뾰족하게 언급된다. 문화식민지에 대한 엄중한 지적도 소설에 등장한다. 한국사회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놓쳐버렸는지 차분히 둘러보게 하는 소설이다.


암으로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한 생모를 찾아와서 남매가 싸우는 장면과 아들의 모습은 돈의 마력을 보게 한다. 돈의 주인이 되는 연습과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더욱 선명해진다. 이디스 워튼의 <환락의 집>, <버너자매>,<순수의 시대> 소설 내용도 떠오르게 한다. <호세마리아 신부의 생각>책의 글귀도 생각나게 한다. 생각을 멈추면 어떻게 파멸하는지 자멸하고 마는지 거침없이 전해지는 사실적 소설이다. 예리한 칼날 같은 작품에 한국사회에 많은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 된다.



돈은 인간에게 실존인 동시에 부조리이다 284

부모가 남긴 돈 앞에서

모든 자식들은 다 쌈박질하게 돼 있어.

그게 돈 욕심이 시키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니까. 72


대기업의 족벌주의와 합리적 분배를 거부하는 탐욕 74

야당이 야당답지를 못해... 크게 실망했다.

모두 몸을 사려...

자기를 잇속 챙기는 데만 눈을 밝히고, 재빨라.

국민은 전혀 안중에 없어.

그들은 오로지 자기네들만을 위해서 정치해. 77

야당은 또 하나의 기득권 세력,

약간 다른 보수일 뿐이야.

진보라고 생각했던 건 우리의 착각이고, 오해야.

진보의식은 거의 없어.

기득권에 안주해서

자기네 권력 지키기에 급급할 뿐이지.

왜 세상이 그렇게 바뀌지 않고,

역사 발전이 그렇게 안 되는지

이제 확실히 알 것 같아.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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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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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수상작 <올리브 키터리지> 작가의 소설이다. 병원에 입원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들은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기억은 뚜렷하지 않다. 서로가 기억하는 파편들은 언제나 정확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기에 여러 이야기들과 기억들을 따라가는 것의 의미들을 떠올리게 한다.

가난이 가지는 의미도 다양하다. 작가가 말하는 가난과 어린 시절의 트럭에 대한 기억, 뱀에 대한 기억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쉬이 사라지지 않는 잔상이 된다. 추위가 싫어서 따뜻한 학교에 머문 나날들은 그녀에게 숙제와 독서라는 큰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그녀의 경험들은 다른 형제들과 다른 삶으로 연결되는 기회가 된다.


그녀의 사랑이 전해진다. 독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부모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한 남편이 있다. 그녀 아버지의 과거 전쟁 경험과 이후 남편이 부모에게 받는 엄청난 돈의 출처가 전쟁이 가져다준 돈임을 짐작하게 된다. 그녀가 꿈에서 꾸는 어린 두 딸과 자신이 가스실에 끌려가는 공포도 모두 연관 지어서 생각해 보게 한다. 사건의 파편들은 한공간과 한시대에 머무르지 않는다. 파장이 되어 다른 공간과 다른 시대의 역사 속에도 잔류하는 여파를 깊숙하게 남긴다. 한순간의 선택과 결정은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과 미래의 시간까지도 영향력을 준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담백하게 기억들을 떠올리는 글들은 너무나도 편안하게 전해진다. 그녀가 학창 시절 만났던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잊히지 않는 내용이 된다. 그녀가 옷 가게에서 마주친 작가가 건넨 '냉혹하다'라는 말의 의미는 후반부에 작가가 적어내려간 글에서 다시금 정리하는 글을 통해서 의미를 되짚어보게 한다.

엄마와 딸의 관계, 가장 닮기 싫은 인물이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사실도 주목하게 한다. 하지만 그녀는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건넨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그녀가 외치는 말들이 있다. 그렇게 형제들과의 관계도 시간 속에서 서서히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녀 자신의 가족관계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되어간다. 그녀가 두 딸에게 준 '분노'라는 감정이 작품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자신의 길을 찾아간 그녀의 선택은 또 다른 의미에서는 가족들을 떠나는 의미이며 가족을 버렸다는 의미가 된다.


교육받은 사람이 타인을 내리누르는 수단으로 쓰는 사람에 대해서도 질타를 한다. 냉혹함의 정의가 새롭게 펼쳐진다. 새로운 바람이 부는 의미가 되면서 작가의 작품에 더욱 다가서게 된다. 생이 주는 기쁨을 어떻게 가지는 것인지 전해진다. 존경하고 좋아하는 인물을 이 소설에서도 만나게 된다. 남보다 더 잘났다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오류인지 알려준다. 위대한 업적이 무엇인지 새롭게 정의를 내리게 하는 소설이다.



자기가 받은 교육을 ...

다른 누군가를 내리누르는

수단으로 쓰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그냥 형편없는 쓰레기예요.

내가 견딜 수 없는 곳에는 가지 않을 거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결혼생활은 하지 않을 거고,

나 자신을 움겨잡고 헤치며

앞으로, 눈먼 박쥐처럼 그렇게 계속 나아갈 거야!

이것이 그 냉혹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네 인생을 봐.

너는 묵묵히 네 길을 가서....

원하는 걸 이뤘잖아.

모든 생은 내게 감동을 준다.

너희가 다른 누구보다

더 잘났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마라.

내 교실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곳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잘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모두 그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그를 존경했다.

이것은 열두 살짜리들의 학급에서

한 남자가 이루어내기에

절대 작은 업적이 아니다.

그는 이루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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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학교 대학교수가 된 교수는 2010년 이후 한국에 정의에 대한 열풍을 일으키면서 2020년 이 도서로 다시금 기울어진 사회를 깊게 조명한다. 능력주의 사회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부터 살펴보게 한다. 학력주의 문제까지도 확장되면서 한국 사회의 학벌주의까지도 고찰하게 한다.


능력주의가 가진 심각한 문제점 중의 하나인 모욕감과 모멸감을 살펴보게 된다. 성공한 자들로부터 받는 모욕은 정당한 것인지 질문한다. 학위가 없고 성공하지 못한 자는 업신여김을 받아 마땅한지도 깊게 사유하게 한다. 저자와 서문을 대신한 철학과 교수의 글에서 던지는 질문들에 화들짝 놀라게 한다. 능력주의에 물들고 학력주의에 익숙해진 무의식 속에 던지는 질문들에 무수히 멈추면서 느린 걸음으로 걷게 한다. 질문들을 하나씩 부여잡으면서 한국 사회를 더욱 내밀하게 살피게 된다. 입시의 윤리부터 깊게 관찰하면서 아빠 찬스와 엄마 찬스, 공정성의 여러 문제들을 냉정하게 펼쳐보게 된다. 정문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이들도 있지만 옆문과 뒷문으로 입장하는 사례까지도 잊지 않게 한다.

진실이 평등화와 역행한다는 것 134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하지 않는 사회이다. 가려진 출발선이 공정하다고 착각하게 하는 능력주의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도록 화두를 던진다. 정치와 입시 문제, 세금 문제 등까지 공정한 사회인지 거듭 확인하게 한다. 기울어진 사회의 기울기와 경사도는 평등한 저울질로 향하고 있는지도 살펴보게 된다. 살림살이가 좋아졌는지, 살기가 좋아진 한국 사회인지, 입시교육은 공정한지, 노동 사회까지도 살만한 한국 사회인지 질문을 쏟아내게 하는 도서이다.


미국 사회를 예시로 내용들이 설명되지만 미국 사회의 모습은 한국 사회와 결코 단절되지 않는 연결점이 된다. 한국 사회도 다르지 않는 양상으로 능력주의에 물들어 학벌과 학력주의, 입시전쟁을 치르면서 기만한 모습, 오만한 모습으로 모멸감을 느끼는 집단들이 있음을 선명하게 보게 된다. 저자는 사회문제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짚어준다. 그리고 대안이 되는 방법을 지긋하게 들려준다.

능력주의 교만과 허구를 예리한 칼날로 밑줄을 그어준다. 엘리트들의 교만한 삶, 허구적인 삶을 펼쳐놓는다. 겸손이 우리들에게 필요한 덕목임을 강조한다. 직업의 귀천을 나누고 계층을 구분 짓는 사회에게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제자리 찾는 행보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명의 움직임, 한 명의 결단, 한 명의 깨달음이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임을 책을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공동선'이 가지는 의미는 또렷하게 강조된다. 선함이 사회에 유유히 흘러가도록 이끈다.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름없이, 존재감없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누군가들의 노고 덕분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직업의 귀천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평등한 사회로 모두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전해지는 도서이다.



교회가 선택한 능력주의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을 확연하게 살펴볼 수 있었던 내용도 유익하게 전달된다. "세 가지 견해가 병립하기란 매우 어렵다. 신은 정의롭다. 신은 전능하다. 악은 존재한다." (71쪽) 세 가지 견해를 펼쳐놓으면서 무수히 병립하지 못하는 이유들을 떠올리게 한다. 창조의 위대함과 신비로움을 받아들이라는 것과 "개인의 능력이나 성과에 따라 합당한 상황이나 벌을 내리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70쪽)라는 것도 능력주의를 불러들여놓은 교회의 선택과 연결시켜서 이해하게 된다.

구원은 오직 은총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

교회의 행동은 능력주의를 다시 불러들였다 72

잘못 알고 있는 능력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살펴보면서 능력주의의 허구를 사실적으로 알게 된다. 공정한 사회가 아니라는 사실, 착각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예리한 칼날 같은 저자의 시선 끝을 따라잡는 시간이 된다.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사회를 뒤따르는 삶이 되지 않도록 지성인이 번쩍 들어 올린 깃발의 의미를 잘 파악하여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지는 도서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방랑자들> 소설과 <다정한 서술자>에세이가 떠오르게 한다. 선함이 따뜻하게, 다정함이 훈훈하게 흐르도록 제자리를 찾도록 이끌어주는 여러 도서들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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