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핍 윌리엄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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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얘기를 할 때면 릴리는 살아나요." (47쪽) 이러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이제는 만날 수 없고 존재하지는 않지만 기억나는 이들을 이야기할 때마다 살아나는 존재에는 단어가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잃어버린 단어들이 되지 않도록 기록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소설에는 잃어버린 단어들을 보관하는 트렁크가 있고 자신의 트렁크를 사전 같다고 말하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관습에 억압당하는 이들이 있다. 관습의 틀안에 갇힌 여성들이 있는 반면 의문을 가지고 자유를 찾고자 스스로 움직이며 역동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영화와 시인, 소설가들에게서 이러한 움직임은 언제나 감지된다. 관습의 당위성을 의문스럽게 사고하는 습관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관습이라는 갇힌 알에서 깨어나게 해준 계기는 책이었다. 이 책도 같은 맥락을 이어가는 책이 되어준다.

길고 부자연스러운 옷차림으로 허리를 옥죄고 부풀어 오른 긴 치마를 입었지만 역동적이고 자립적인 사고를 지닌 여성들은 관습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에서 글쓰기를 통해 계속 자신의 삶에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러한 여성의 움직임은 현대 여성 의사에게서도 발견하게 된다. 부당하고 부조리한 것들을 직시하면서 변화가 일어나도록 목소리를 외치는 책들이 존재한다. 다양한 시대, 다양한 사람들이 어떤 노력과 의지를 가지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했는지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도 우리는 그러한 움직임을 만나게 된다.

거짓된 만족을 주는 거짓된 말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무신경했던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말하는 고모도 기억나는 인물이다. 있어야 하는 말들이 없다는 것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인물들을 통해서 전해진다. 결혼을 안 할 계획이면서 편집자가 되는 목표를 가지지 않는 이유가 여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여자이니까 포기하는 것들이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도 공평한 기회가 부여되는 사회는 아니기에 이 소설은 지난 시대의 이야기로만 밀어 넣을 수도 없지 않은가. 아직도 여성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단단한 사회적 벽을 호소하는 목소리들이 기사들을 통해서 확인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여자 노예'라는 단어는 없어야 하는 단어라고 말한다. 노예라는 단어는 오랜 세월 존재한 단어이다. 이 노예는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유유하게 깊은 뿌리를 내리는 사회적 계급이기도 하다. 자신의 사회적 위치, 기회 박탈이 누구에 의해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은 슬픈 것이다. 호기심과 견해를 가져야 하는 이유가 고모라는 인물이 조카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자극을 불어넣는 소설이다.

생각하는 힘을 불어넣어야 한다. 소설을 통해서 작가는 고모와 조카를 세워놓고 보여준다. 자신이 누구의 노예인지, 자신은 누구의 주인인지 명확하게 볼 수 있는 힘은 필요해진다. 누락된 단어들이 있다. 그 단어들에는 예리한 정신이 숨겨진다. 누락되어 증거가 된 단어들을 현대사회에서도 찾아보게 된다.

몰입하는 것은 대단한 경험이다. 시간이 가는 것을 거의 알지 못했을 정도로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놀라운 경험으로 이어진다. 이 소설에서도 그러한 경험을 하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사랑하라는 말을 성경에서 많이 듣는다. 하지만 인간은 사랑보다는 질투와 미움, 시기, 분노에 더 쉽게 반응하면서 다툼과 전쟁, 살인을 너무나도 쉽게 저지른다.

자비라는 단어와 사랑이라는 단어가 두드러지는 소설이다. 우리가 잃지 않아야 하는 단어는 자비와 사랑이라는 단어가 되어버린다. 온전하게 자비와 사랑이 우리들의 삶에 가득해지길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여야 하는 단어가 된다. 이 소설에서 몇 번이나 덧칠을 하게 하는 단어들과 인물들이 있다.

관습에 의해 누락된 단어들은 무엇인가. 제한되는 단어들이 왜 권력을 쥔 그들에게 불편한 단어가 되었을지도 질문을 하게 된 소설이다. 집요한 싸움을 하는 모습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면서 그들이 위협적이라고 여기는 단어들의 실체도 선명해진다.

거절당한 단어들이 현대사회에서도 존재한다. 통과되지 못하는 단어들이 있다. 관습에 갇힌 이들이 보지 못하는 단어들을 의미한다. 그것들을 추론하는 재미로 이어진 소설이다. 만약 내가 단어라면 어떤 종류의 쪽지에 적히게 될지 질문까지도 던지는 소설이다. 우리는 어떤 쪽지에 있는 존재일지 자문할수록 더 매력을 느끼게 된 소설이다.

남성의 관점에서 버려진 단어들이 있다. 여성의 단어들과 부인, 창녀에 대칭하는 남성 대칭어는 무엇인지도 질문을 아끼지 않는 작품이다. 그들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 의문을 던져야 한다. 관습은 그렇게 노예를 길들이기 때문이다. 평등성을 잃어버리는 관습들을 하나씩 꼬집어보는 활동까지도 이어지게 한다. 문학은 다시 읽어도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기분이다. 작가만이 펼치는 문학성에 다시 매료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란 삶이었을지, 아니면 그저 받아들인 삶이었을지 궁금했다. 348

처녀, 아내, 어머니. 우리가 성관계를 한 적이 있는지 없는지 온 세상에 대고 떠벌렸다. 처녀의 남성 대칭어는 뭘까? 그런 건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부인, 창녀, 전문 불평꾼의 남성 대칭어는? 369

계속 싸우는 일.(전쟁) 대체로 우리는 죽어가는 일을 하고 있었던 거죠. 530

보어 전쟁에서 형제를 잃은 롤링스 씨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는 아무런 영광도 없다고... 430

쓰고 버려지는 계층들 436

결혼을 안 할 거면, 왜 편집자가 되는 걸 목표로 하지 않니? 스웨트먼 씨가 물었다. 전 여자잖아요. 120



함께라면 우린 그 말을 계속 살아있게 할 수도 있을 거예요. 91


사람들이 보아야 하는 것을 가렸고, 들어야 하는 것을 침묵시켰다. 메이블이 세상을 떠나고, 나도 떠나면, 그 트렁크는 그야말로 관이나 다름없어질 것이었다.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 P343

잊지마. 단어들은 부활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란다. - P47

거짓된 만족을 주는 거짓된 말들 - P107

사랑은 마음을 자비 쪽으로 옮겨놓는다. - P147

누락된 단어들을 둘러싼 소동. 예리한 정신을 더 잘 드러내주는 증거들. 관습은 가장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가장 억압적인 독재자란다 - P159

관습은 어떤 여성에게도 어떤 도움도 되어준 적이 없어요. - P90

단어들은 우리를 정의하고, 설명해 주고, 때로는 통제하거나 고립시키는 일에 복무하기도 합니다. - P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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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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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이야기 낯선 여인의 편지』 , 『감정의 혼란』 작가의 책이라 읽은 책이다. 길지 않은 글들이 여러 편 구성되는데 모든 글 내용이 너무나도 좋아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오래 시간을 공들여가면서 작가의 목소리들을 흡수한 시간들로 채웠던 의미 깊었던 만남이다.

작가의 책은 처음이라 다른 도서까지 관심이 가는 계기가 된다. <걱정 없이 사는 기술>, <필요한 건 오직 용기뿐!> 등 총 9편의 글들을 만날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은 걱정 없이 사는 기술에 등장한 젊은 청년의 삶이다.

허름한 옷차림의 서른쯤 되는 남자를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가 자신에게 보여준 선행에 그는 어떤 보답을 바라지도 않고 떠나버린다. 돈이나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그의 태도에 호기심을 느끼면서 그가 누구인지 알아가게 된다. 그가 구축한 라이프스타일은 적잖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음에는 분명하다. 저축이 필요하지 않고 사람을 믿는 신의가 그의 미래가 되면서 작은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서 도움을 받으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을 깨부수는 인물이다. 그가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도 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이유에 공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안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쾌척의 시간으로 가득해진 책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단단하게 구축된 시대에 안톤이라는 젊은 남자는 충분히 획기적인 만남으로 기억된다. 낡은 코트가 그에게는 어떤 의미였는지 보여주면서 걱정없이 살고 있는 안톤을 무심하게 스쳐지나지 못하는 이유를 여러 번 상기하게 된다. 돈을 위해 일하는 시대에 사람을 위해 일한다는 개념은 너무나도 낯설었다. 그래서 안톤은 번쩍 정신이 드는 인물로 기억되었다.

가장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은 남자이다. 필요한 것이 생기면 그때 남은 돈을 받겠다는 사람이다. 우리가 비축하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준비였음을 일깨운다. 가져도 더 많이 가져야 하고 계속 목마름이 찾아오는 이유를 안톤을 통해서 새롭게 되짚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박함과 검소함, 남루하지만 가장 부유한 사람이 안톤임을 보여준다. 신이 그를 저버리지 않을 것임을, 사람들이 그를 외면하지 않을 것임이 자명하게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문제와 함께 안톤을 만날 수 있어서 더욱 반짝거렸던 만남이다.

히틀러에 대한 글도 만날 수 있었던 <하르트로트와 히틀러>글도 섬뜩하게 읽은 내용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어떻게 미화되었고 극우주의와 폭력주의가 어떻게 표출되었는지도 접목하면서 읽게 된다. 이분법적인 사고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다른 저자들의 도서를 통해서도 깨달았듯이 하르트로트의 사고의 범주는 광기라고 명명하기에 이른다. 그에게 질문한 내용에 답변하는 그의 대답을 책에서 읽으면서 경악하게 된다.

세계를 위험하게 위협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들을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주인과 노예로 나뉘는 이분적인 사고가 확장되면서 그들이 가지게 될 권위와 질서, 권력을 합리화한다.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쟁을 서슴지 않는다. 군인과 과학자, 학자들까지 전쟁의 대상이 되면서 잔인함자비와 동등하다는 괴변으로 잔인함을 합리화하는 모순을 확인하게 된다.

오로지 폭력만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에 우려감을 드러내는 질문자의 용기도 보인다. 자유를 조직적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하면서 모든 개인지도자에게 복종해야 하고 최대한 많은 양을 생산해야 한다는 주장은 낯설지가 않은 시대이다. 세계적으로 극우주의, 나치주의가 다시 움직이면서 세계적으로 우려감을 보이는 위험한 나라가 되어버린 것이 안타까운 상황이다. 자유를 빼앗긴다는 것이 얼마나 우울하고 폐배하는 삶인지 저자의 삶과 글을 통해서도 충분히 전해진다.

자유가 왜 중요한지, 언론의 자유가 사라지면 안 되는 이유, 감시받는 사회를 우려하는 이유가 두드러진다. 침묵에 대한 글도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침묵을 이렇게 집요하게 표현하는 글은 처음이다. 공포의 침묵, 강요된 위협의 침묵, 강제와 명령, 끔찍한 침묵, 냉정한 침묵, 완전한 침묵, 희미한 신음. 자신의 친구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시인은 강제수용소에 있다고 전한다.

거슬리는 목소리를 제거하고 사라지게 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언론의 받아쓰기도 문제이지만 극단으로 치닫는 분열의 움직임은 안전하지 않는 사회임을 확인시키게 된다. 차분하게 전하는 글이지만 묵직한 중량감이 상당하다. 이 시대 우리들에게 전하는 큰 목소리로 다가선 인물이다. 보아야 하는 것들, 눈을 감지 않아야 하는 이유들이 더욱 선명해진다.


공포. 철모를 쓴 군인들. 긴장 상태. 염탐. 그러니 침묵, 침묵, 침묵. 103



반자본주의적인 새로운 시스템을 발명...힘들게 일하고도 그날 하루 필요한 것보다 많은 보수는 완강히 거부했고, 고 필요한 게 없는 날에는 돈을 아예 받지 않았다. "나중에 필요한 게 있으면 찾아올게." 면도도 잘 안 하고 후줄근에 보이는 말라깽이 청년

- P16

가장 가난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하는, 낡은 코트의 이 단순하고 걱정 없는 남자는... 지주처럼 여유롭고 다정하게 동네 곳곳을 돌아다녔다... 돈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일했기에 모두가 그를 존경했다.
- P17

목적 달성하는 수단이 바로 전쟁이라고 주장
- P127

"침묵의 고문은 언제 끝날까요? 언제 다시 말할 수 있게 될까요?"... 이 세상에서 고안된 가장 잔인한 영혼 훼손이다.
- P104

공포. 철모를 쓴 군인들. 긴장 상태. 염탐. 그러니 침묵, 침묵, 침묵. 103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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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고다 아야 지음, 차주연 옮김 / 책사람집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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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그림이 눈길을 오랜시간 이끌었다. 출간되어 30년이 지나도록 사랑받고 있는 책이라는 문구에 또 한 번 흔들렸다. 작가가 타계한 후 출간된 유작이었기에 더 마음이 움직였다. <씨네21> 이다혜 기자와 식물 세밀화가 이소영의 추천도서이기도 하다. <퍼펙트 데이즈>영화의 주인공 히라야마의 머리맡엔 놓인 책이라는 영화까지 시청하게 만든 책이다.

많은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지만 가문비나무의 세대교체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작가의 마음을 이끌었던 자문비나무의 갱신에 대해 전해진다. 몇 백 년을 살았던 나무가 쓰러져서 생을 다했지만 죽은 나무 위해서 열악한 자연환경 속에서 씨앗이 발아하고 살아남아서 다음 세대 세대교체를 하고 있는 정경을 작가는 숲에서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이야기이다.

숲의 정적과 고요를 떠올리게 한다. 생존의 허락을 받은 행복한 씨앗이 어떤 환경에서 자생하고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는지 이 글에서 전해진다. 정말 강하고 운 좋은 소수만이 생존이 허락받았음을 보게 된다. 자생하고 있는 모양새가 일자 모양이라 작가는 글쓰기로 기록한다. 조화로운 나무의 품격, 이끼가 나무의 수의라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이끼를 헤집고 죽은 나무의 온도, 단단함과 부스러지는 것을 전한다. 의외의 온기를 느끼면서 작가는 죽은 나무의 감정을 느끼며 나무의 숨긴 감정을 찾는 여정이 얼마나 의미 깊은 작업인지도 전한다.

나무의 나이를 숲에서 전문가에게서 설명을 들으면서 인간의 수명이 얼마나 비루한지도 비교한다. 웅장한 시간을 보냈을 나무의 샘플과 그루터기를 보면서 인간이 버틴 삶의 여정은 어떤 뒷모습을 남길지도 숙고하게 한다. 다채로운 사유로 이어지게 하는 나무와 연관된 글이다. 작가가 자문비나무의 세대교체를 목도하고 새롭게 배운 하나의 깨달음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님을 일깨운다.

난잡하지 않고 위압감이 없는 나무의 세대교체는 이 시대에도 적잖은 의미를 상징한다. 나무학자들의 책들을 꾸준히 읽으며 나무의 경의로운 공존과 공동체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무는 자신의 생애만큼 중량감으로 자태를 돋보인다. 인간의 생애는 살아온 삶만큼 어떤 무게감을 가지면서 살아가는지 질문을 아낌없이 던지게 된다. 죽은 나무가 다음 세대를 위해 온기를 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추악한 생애가 아닌 그리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 냉혹한 존재가 아닌 온기가 흐르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이유들이 즐비해지는 글이다.

숲과 같은 세상에서 우리의 뿌리는 어떤 상태인지, 청아하고 평안한 품격인지, 난잡하고 위압감을 상징하는 품격인지도 질문을 아끼지 않는 가문비나무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매일 산책하면서 나무의 뿌리와 가지, 잎들을 무수히 바라볼수록 이 책의 내용도 자주 상기하게 될 것이다.



홋카이도의 자연환경은 열악하다. 싹이 터도 나무로 자라지 못한다. 하지만 쓰러져 죽은 나무 위에 안착해 싹을 틔운 씨앗은 행복한 씨앗이다. 수월하게 자랄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11

약한 존재는 버티지 못하고 사라진다. 열악한 조건에 적응할 수 있는 정말 강하고 운 좋은 소수의 몇 그루만 겨우 생존을 허락받는데... 300~400년쯤 된 나무도 있다. 12

생사의 경계, 윤회의 무참함... 그렇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 죽음의 순간은 찰나다. 죽은 후에도 이처럼 온기를 품을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다. - P25

온기. 분명히 따뜻했다. 새로 자란 나무의 뿌리 아래서 보송보송했고 온기를 품고 있었다. - P23

뿌리는 의외로 단단하게 구성되어 있다... 오로지 살겠다는 일념으로 용맹함을 숨기지 않았다. - P19

나무란 이처럼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다...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나무가 숨긴 감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 P24

자연의 동반자는 조화롭게 공존한다. 굵기와 높이가 비슷한 나무가... 그 사이사이에 그보다 작고 가는 나무가 일정한 간격으로 섞여 있었다. - P16

위압감은 없었지만 난잡함을 거부하는 품격이 있다. 청아하고 평안한 그런 품격이었다. 쉽사리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품격이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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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2-24 1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17년 10월을 돌아봅니다. ‘달팽이’라는 이름으로 수수하게 숲책(생태환경책)을 펴내는 곳에서 《나무》라는 이름을 투박하게 붙인 책을 선보였습니다. 군말도 군더더기도 없이 오롯이 ‘나무’라고만 이름을 붙인 책을 내놓을 수 있구나 싶어 놀랐고, 둘레에 이 책을 사읽으라고 여쭐 적에 도무지 사읽는 이웃을 만나지 못 해서 쓸쓿던 일이 떠오릅니다.

요즈막에 여러 이웃님이 《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책을 사읽는 이야기를 곧잘 들으면서 “설마 그 《나무》가 겉갈이만 하고서 다시 나왔나?” 싶었는데, 다른 펴냄터에서 나왔군요. 옮긴이도 똑같으니 줄거리도 똑같을 테지요.

비록 2017년에는 눈여겨보거나 품는 사람이 드문 나머지 그리 못 읽히고 사라져야 했지만, 새롭게 나와서 읽힐 수 있으니 반가우면서도 조금은 허전합니다. 나무는 하루아침에 번쩍 자라지 않는 터라, 이 책 《나무》도 마치 나무살이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띄엄띄엄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네철을 누리면서 느긋이 읽고 살필 적에 비로소 “왜 ‘나무’라고 투박하게 이름을 붙여서 내놓았는”지 시나브로 느낄 만하리라 봅니다.
 
버진 수어사이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8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이화연 옮김 / 민음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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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첫 문장과 첫 문단, 첫 장을 읽고 압도되었다. 작가가 궁금해졌던 이유는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계속 작가의 소설에서 눈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자매들이 살고 있는 집에서 모든 자매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왜 자매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일까? 이 자매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인지 화자인 다수의 불특정 소년들을 통해서 전해진다.

자살은 13살 서실리아에서 시작되고 마지막은 메리의 차례라고 말한다. 하루살이 죽음과 생애를 언급하면서 하루살이의 태어남과 번식과 죽음을 명료하게 설명한다. 하루살이는 뭘 먹을 필요도 없이 죽는다는 것을 자매들의 생애와도 연관성을 짓게 된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연애도 하고 데이트도 할 수 있는 삶이라는 여정들을 자매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빼앗긴다. 어머니의 종교적 가치관은 신을 향한 진실이었는지 뒤룩뒤룩 살찌 팔과 철심 같은 머리카락, 도서관 사서 같은 안경, 여왕처럼 냉랭하게 구는 자매의 어머니의 모습에서 단서를 찾게 된다. 일요일 성당에서의 어머니의 모습에서는 고급 핸드백은 신을 향한 믿음이었는지 질문하게 된다.

무채색인 부모와 눈부신 다섯 딸이라고 소년들은 묘사한다. 자매들이 자살한 그 시절에 소년들이었던 다수의 인물들은 이제는 중년이 되었다. 그들이 지금도 자매들이 자살한 이유를 찾고자 단서 같은 퍼즐들을 무수히 수집하고 결론을 내리는 순간 이들이 응집한 사실에서 사회적 모순들이 무수히 발견된다. 주변에서 목격한 사람들의 진술, 학교에서 학생들이 자매들을 대했던 시선들, 자매들을 기억하는 행위의 모순, 언론의 선별적인 태도와 무차별적인 언론의 이기심들이 자매들을 이차적인 폭력 가해자로 자매들의 삶에 큰 획을 긋는다.

잘려나가는 느릅나무를 동네 사람들은 방관하지만 자매들은 나무를 지키려고 달려든다. 서실리아가 자살하는 사건을 사회는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가 중요해진다. 상담과 치료라는 과정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억지를 부리는지 소설은 고발한다. 사회가 내놓은 수많은 자살의 이유들은 자매들의 진실과는 어긋나는 분위기이다. 자매들이 선택한 자살은 그 집에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음을 소년들은 이해하게 된다. 모두가 누릴 수 있었던 자유,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타인에 의해 박탈당하는 것의 결과는 참혹할 뿐이다. 버튼을 누가 언제 누를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각한 것은 부모의 태도이다. 왜 자신들의 딸이 죽음을 선택했는지 이해조차도 하지 못한다. 자녀들이 왜 자살을 했는지 공감하지 못하였던 무채색의 부모를 소설에서 만나면서 그들이 유유히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부모의 모습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사라졌는데 그들은 자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서로가 부여잡고 있는 종교적 삶과 부부의 사랑은 종교가 말하는 선함이었는지 소설은 질문을 아끼지 않는다.

딸들을 옥죄고 간섭하면서 통제하는 가정에서는 종교는 존재할지 모르지만 자유가 없는 억압만이 남을 뿐이다. 자유와 사랑은 공존하면서 살아야 종교적 가치가 빛을 발하게 된다. 청교도적인 종교적 성향에 희생된 자매들이 탈출할 수 있는 길은 유일한 자살뿐이었음을 고발하지만 사회는 자매들의 진실한 마음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신호탄을 쏘아 올렸지만 사회의 관심은 무관심으로 일관되었고 자매들은 외면당하면서 스스로 견디고 버티는 시간이 점점 사라지게 된다. 남은 자매들이 자살한 날과 도움을 요청한 신호들에 반응한 소년들이 중년이 되어 퍼즐을 맞추면서 그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바라보게 하는 작품이다.

남은 자매들의 장례식에는 부모만이 참석한다. 장례문화와 관의 모습들로 재력을 과시하는 미국 사회도 여실히 묘사된다. 파업과 대기질이 오염된 도시의 공기, 위축된 자동차 산업현장의 노동자들의 삶까지도 소설은 조명한다. 삶을 어떻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이 소설에서도 찾게 된다. 종교와 신앙을 향하는 자세까지도 놓치지 않게 된다. 종교와 성당, 신부가 존재하였지만 누구도 자매들을 구해내지 못했음을 목도하게 된다. <미쓰백> 영화와 <아저씨>영화가 생각나는 소설이다. 허수아비 같은 사회적 시스템의 오류와 오작동들을 이 소설에서도 작가는 꼬집는다. 단 한 사람이 되어 사랑할 수 있는 구원의 손길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작가의 소설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그들은 피라미드보다 더 높이 쌓인 폐타이어를 보고 목숨을 끊었으며, 우리가 절대로 될 수 없었던 그들의 연인을 찾지 못해 목숨을 끊었다. 결국 리즈번 자매들을 갈가리 찢어 놓은 수많은 고통은 그들이 오랜 고민 끝에, 오점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어른들이 물려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는 단순한 사실을 암시했다. 317

그들 네 사람은 정지된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두 노예가 신전의 재물을 바치고 (구급차에 들것을 싣고), 여사제가 횃불을 휘두르고 (...잠옷을 흔들고) 15


구급차. 구급 요원. 장의사에 불과 49

지역신문. 자살 미수 사건 실리지 않았다. 25

뒤룩뒤룩 살찐 팔, 철심 같은 머리카락, 도서관 사서 같은 안경. 성당. 일요일. 여왕처럼 냉랭하게 굴었다. 고급 핸드백 - P17

딸들을 사랑했고... 소중한 존재였지만, 그는 아들 생각이 간절했다. - P35

그들은 피라미드보다 더 높이 쌓인 폐타이어를 보고 목숨을 끊었으며, 우리가 절대로 될 수 없었던 그들의 연인을 찾지 못해 목숨을 끊었다. 결국 리즈번 자매들을 갈가리 찢어 놓은 수많은 고통은 그들이 오랜 고민 끝에, 오점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어른들이 물려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는 단순한 사실을 암시했다. - P317

그들 네 사람은 정지된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두 노예가 신전의 재물을 바치고 (구급차에 들것을 싣고), 여사제가 횃불을 휘두르고 (...잠옷을 흔들고)

- P15

지역신문. 자살 미수 사건 실리지 않았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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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걸려온 전화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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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르 몽스트르』, 『문맹』, 『어제』, 『아무튼』 책들의 저자이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잘못 걸려온 전화>단편소설들을 읽으며 작품들이 쏟아낸 강하고 서늘한 기운들에 정신이 번쩍거린다. 도시의 냉정함을 작가는 응시한다. 화려한 불빛, 높은 건물들을 추앙하기보다 내면에 움추리고 있는 냉정한 도시의 진실을 소설로 전달하는 『』이라는 소설이 있다.

아이』소설도 인상적이다. 인디언 총을 가지고 싶다는 아이에게 진짜 총을 가진 아버지가 총이 아닌 팽이를 사주면서 아이가 인도 가장자리에 앉아서 소리를 지른다. 아이가 어른들을 향해 지르는 말에는 폭력성이 다분하다. 어른들은 거짓말쟁이며 친절한 척 한다면서 아이는 분노를 감추지를 못한다. 아이는 자신이 크면 어른들을 다 죽여 버릴 거라고 외친다. 그 아이가 낯설지가 않아서 더욱 섬뜩하고도 기괴한 기분을 감추기가 어려웠던 작품이다. 사람을 죽이는 살상무기인 총을 아버지는 가지고 있는 집에서 총을 가진 아버지를 보고 자란 아이는 고스란히 폭력성을 감추지 않는다. 결국 폭력성은 아이에게도 내제되는 정당한 폭력이며 무기가 된다. 더불어 다 죽이겠다는 경고성 발언까지도 거침없이 외치는 아이의 모습이 강하게 전해진다.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더불어 어떻게 죽을 것인가도 다르지 않는 질문이다. 총이라는 무기, 권력을 손에 쥐고 살아가는 삶은 폭력을 암시하는 삶을 의미하면서 아이도 거침없이 부모가 가진 총을 가지지 못한 분노를 폭력으로 분출하게 된다.

노년의 얼굴을 관찰하는 시간은 꽤 의미있는 시간으로 이어진다. 자글자글한 손, 주름이 잡힌 얼굴, 희긋한 백발의 머리이지만 온유하고 느긋한 노녀의 자태는 그들의 삶의 향기를 감추지 않기 때문이다. 백발을 덧칠하는 염색, 주사로 주름살을 감추는 시술보다는 나이듦의 아름다움과 성숙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는 용기와 여유가 필요해지는 시대이다.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살리고 살려지는 이들도 존재하는 것이 세상이다. 이 흐름을 무시하면 안된다.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 살려지는 사람이 되도록 자연을 닮은 세상이 되도록 끊임없이 무엇을 응시하고 관찰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소설들이다.

도끼』소설에서도 아내의 손에 있는 도끼는 남편을 죽이는 살상의 무기가 된다. 왜 아내의 손에 도끼가 있어야 했는지도 살펴야 하는 이유가 드러나는 작품이다. 남편이 죽어서 아주 홀가부하다는 아내의 솔직한 심정이 전해지는 작품이다. 아주 오래된 짐을 내려놓는 아내는 그동안 어떤 부부였는지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서로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진중한 질문을 던지는 단편소설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저는 아주 홀가분했어요. 짐을 내려놓는 기분이었거든요. 아주 오래 전부터 짊어지고 있던...... 13 _도끼

폭력과 권력으로 무장하면서 거침없이 쏟아내는 피로함보다는 비폭력과 무위의 삶을 살아온 그들의 삶이 더 아름답고 경이로워보이는 이유는 무엇인지도 고찰한다. 작가가 단편소설에 인물들을 등장시킨 이유와 사건들을 접목하게 된다. 독자들의 손에 쥔 것이 땀과 노동인지, 정의롭지 않은 폭력적인 것들인지는 자문하면서 살아야 하는 시대이다.

나의 집으로』 소설에서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현실이 이승인지 저승인지 구분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존재한 적도 없는 나의 집, 기억속에서 너무 멀리 있는 집,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는 집이라고 한다. 노동자로 살았던 작가가 집필한 시간과 공간들을 떠올리면서 읽었던 책이다.

집이 지닌 의미와 대도시에 살아가는 빈민촌에 대해서도 이야기되는 작품이다. 부자가 되는 방법도 모르고 언제 부자가 되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빈민촌의 가난에 대해서도 응시한 작가의 시선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다. 가난에 익숙해지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무지와 가난을 이겨내는 것만이 부자가 되는 방법이지만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만큼 안타까운 것도 없다. 사회적 제도의 결함도 문제이지만 자구적 노력도 절실해지는 시대이다. 소설이 응축하고 있는 수많은 메시지들을 감지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았던 소설들이다.




대도시의 차가운 불빛은 아름답지만 냉정했다. 그것들을 사랑할 엄두조차 내기 힘들 정도로. - P57

당신들은 거짓말하고, 친절한 척하고! 내가 크면 당신들을 다 죽여 버릴 거야!" - P50

이것이 이승인가, 저승인가? 나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거나, 있어도 기억을 하기에는 너무 멀리 있는 나만의 집으로. 사실 나의 집이란 존재한 적이 없었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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