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코스트
테스 게리첸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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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사람들이 있다. 젊은 날 함께 활약하였지만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않고 은둔하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다. 은퇴한 지금 삶의 터전을 자리 잡은 이곳은 살고 싶은 곳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아야 하는 곳이었다. 살고 싶은 곳이 아닌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치밀하게 준비한 곳이다.

매기라는 60대 여성이 터전을 잡은 곳은 블랙베리 농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다. 그녀가 2년 전에 이곳에 이사를 왔으며 은퇴한지 16년이 된다. 그녀가 정부의 일을 하였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이야기되면서 그녀가 하였던 일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일이라는 것도 감지된다. 위장된 직업, 완벽한 위장된 삶이 그녀의 일이었다. 사라진 사람들도 있지만 그녀는 살아남은 사람들 중의 한 명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60세가 된 지금, 나는 나의 몫 이상의 것을 축적해 왔다 15

수년 동안 나 자신을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관심을 끌지 않게 교육했고 노력했다. 24

그녀가 평범한 노년을 살고 있지만 사실은 극도의 긴장감과 불안이 현존하는 모습이다. 마을에 장을 보러 갈 때, 그녀가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일행들과도 젊은 날 업무의 연장과 같은 습관들이 여전히 엿보인다. 평범한 모습이지만 그들은 대체 어떤 일을 하였던 것이었는지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이다.

이웃에 사는 사람에 대해서도 미리 조사하고 안전한 사람이라는 것이 확인한 후에 이사한 매리이다. .루터 윤트라는 MIT 기계공학 교수였던 이웃과 14살 손녀가 매리의 이웃에 살고 있다. 커피를 좋아하며 손녀의 어머니가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여 손녀를 키우고 있다. 손녀는 외할머니에게서 홈스쿨링으로 교육을 받고 닭장에서 수확한 계란들은 순수하게 손녀의 자산이라고 한다. 매리가 포획한 여우 한 마리의 사체에도 손녀는 전혀 놀라지 않는다. 가축을 키우면서 목격한 수많은 죽음으로 손녀는 나이답지 않게 의연하게 여우의 죽음을 보게 된다.

그래도 안타깝긴 해요. 이 여우는 그저 먹고살려고 한 것뿐일 텐데요.

우리 모두 그렇지 않나요? 17

여우의 죽음을 보면서도 이들이 서로 나누는 대화가 의미심장하다. 그저 먹고살려고 한 것, 우리도 모두 그렇다는 사실을 복선처럼 소설에서 만나게 된다. 수많은 죽음들이 엑스트라처럼 이름 없는 존재들로 나타났다고 사라진다. 여우처럼 그들도 먹고살고자 명령에 복종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어스러진 손이 암시하는 것만큼 끔찍한 고통을 겪고 나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손이 어스러진 상태로 죽은 사체가 매리의 집 진입로에 버려져 있었다. 사체를 발견한 사람은 택배기사이다. 경찰은 현장에 도착하였고 매리는 이웃이었던 루터의 연락을 받고 모임에 있다가 집으로 향하게 된다. 도착하여 사체를 살핀 매리는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그러한 모습을 경찰서장인 조가 예리하게 감지하게 된다. 조는 매기의 예기치 않은 모습을 간과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죽은 자를 추궁하며 조사하는 동안 조는 매리라는 살아있는 그녀를 의문스럽게 조사하기 시작한다.

왜 진입로에 시체가 버려졌는지 102

누군가가 애써 재건한 내 인생을 모두 불태워버리겠다고 위협하고 있는 것 67

누가 왜 자신의 집 진입로에 시체를 버렸는지 점점 미궁 속으로 들어간다. 어떤 암시일까. 시체는 오늘 처음으로 자신의 집에서 만난 사람이다. 그녀가 사라진 옛 동료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지만 경찰에게는 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녀의 삶, 그녀의 직업, 그녀의 일들이 전부 비밀이기 때문이다. 사라진 옛 동료의 소식은 생존한 사람들에게도 적잖은 놀라움이며 위협으로 전해진다. 일상적이지 않은 일을 하였던 이들이다. 비밀스러운 일을 하였던 매기는 이 위기를 어떻게 이겨낼지 궁금해지면서 책장은 멈추지 않는다.

정원에서 수확한 말린 타임과 오레가노 다발들이 머리 위의 기둥에 매달려 있다. 18

추리소설이지만 전원생활하는 사람들이 누구의 도움 없이 통나무집을 스스로 짓고 살아가는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과 말린 타임과 오레가노 다발들이 머리 위에 매달린 풍경을 한없이 떠올리는 행복도 즐기게 된다. 긴장되는 사건과 긴박함에도 전원의 느림과 소박함들을 마주할 수 있었던 소설이다.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라 기대하였으며 기대감을 충족시킨다.

관광지에서 만난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것과 이들이 약속을 하는 것은 전혀 무의미한 것임을 암시하는 매기와 대니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전개되는 이야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이 지닌 의미들과 상징성들도 유추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역 주민들이 승객들을 '오늘의 어획물'이라고 말하면서 관광객의 돈은 환영하고 그들로 인해 생기는 교통체증과 번잡함은 기뻐하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적으로 전해진다. 우리는 누구의 오늘의 어획물이 되고 있는지도 살펴보게 하는 문장이다.

이 마을 사람들이 겨울에 어떻게 생활하면서 보내는지도 예리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술을 많이 마시고 살을 찌우고 서로의 신경을 거스르는 일만을 겨울에 하면서 생활한다. 짤막한 한 문장이지만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명확한 표현이다. 우리의 계절들은 어떤 모습들로 차곡히 채워지고 그려졌는지 돌아보게 하는 작가이다.

잘못된 선택을 지속하면서 유지하는 것은 정답이 되지 못한다. 그러한 잘못된 선택은 언제든지 바꾸고 제자리를 찾도록 용기를 내고 의지를 가져야 한다. 철학자의 철학만 존재하고 실천이 뒤따르지 않았던 철학자에 대해 언급하는 책을 읽었는데 그가 떠오른다. 지각만 존재하고 각성이 존재하지 않는 삶은 무의미한 것과 다름없기에 은희경의 『중국식 룰렛』의 문장도 다시 생각나게 하는 소설이다.

여우 사냥을 한 매기에게 다른 포식자가 곧 들이닥칠 것이라고 경고하는 대화를 나누는 이웃이 있다. 그것이 곧 세상의 이치라고 말하면서 이들은 이 대화를 수긍한다. 세상의 이치라는 것을 단면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닌 총체적으로 사회적 현상까지도 유추하면서 이해하게 되는 장면이다. 매기가 한 방에 여우를 사냥한 일은 매기를 드러내는 큰 사건이 된다. 이러한 매기를 감지하는 사람들이 매기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뒤따라가면서 만나게 되는 추리소설이다.

의사인 청년이 배냥여행을 하면서 만난 매기와 나누는 대화도 인상적이다. 기업이라는 세계와 관계를 맺지 않는 청년 의사는 은행 계좌에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기업을 배제한 삶을 선택한다는 것을 잠시 생각해 보자. 너무나도 촘촘하게 삶을 움켜쥔 기업들이 드러난다. 그런데 은행 계좌와도 무관한 삶을 선택한 청년의사이다. 기업이 아닌 정직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청년의사가 낯설었다. 관성의 법칙처럼 선택하고 살아간 날들에 큰 물음표를 던지는 청년의사이다.

화려한 불빛, 높은 빌딩보다는 적막하지만 평온한 시골마을을 여행 다녀오면서 긴 잔상이 남았는데 정말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거듭 자문하게 된다. 기업을 배제한 삶을 온전하게 청년의사처럼 살아갈 수는 없을 듯하지만 그래도 청년의사를 오랫동안 기억하면서 살고 싶다고 느끼게 된다. 작은 실천이라도 꾸준히 할 수 있는 것들을 3가지 정해보는 시간도 가지게 한 인물이다. 의문을 가지지 않고 답습하면서 살아왔던 기업에 대한 의문점들을 작가가 마주서게 한다.

전쟁과 난민캠프는 언제나 존재할 거라고 매기와 대니는 대화한다. 이들이 한치의 의문을 가지지 않고 단정하는 이유에 우리는 놀라워해야 한다. 전쟁과 난민캠프는 타자의 이야기로 존재하지 않는다. 곧 우리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멸해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는 기분이다. 제국주의 성향이 강해지는 인물들의 정치는 위험한 경고이다. 세계적으로 두드러지는 이러한 정치인들의 등장은 매번 우려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국제정세를 알리는 뉴스는 더욱 긴장감이 감돈다. 어떤 흐름으로 전쟁과 군인, 죽음과 난민들이 존재하고 있는지 무관심이 아닌 관심으로 바라보게 된다. 두 인물이 나눈 대화에는 전쟁과 난민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명제가 거짓이 아닌 참이 되고 있다는 것에 깊은 한숨을 쉬게 된다.

한꺼풀만 벗기면 시원해질 것 같은데 도통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사건은 계속 일어나면서 점점 하나씩 퍼즐처럼 맞추어지는 하나의 퍼즐 조각들을 주워 담다 보면 완성된 그림이 되는 소설이다. 작가가 멋지게 조각된 퍼즐들에 숨겨진 진실과 이야기들은 추리소설이라는 한 획만으로만 보지 않게 하는 전체적인 그림이 멋지게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소설을 읽는 묘미에 빠져들게 하는 작품이다. 추리소설을 오랜만에 읽어서 더욱 조바심이 강하게 생겼던 소설이다. 왜 사건이 일어났고 그녀는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추면서 뒤따르는 이야기들에 푹 빠져들게 한 작품이다. 다시 추리소설들을 기웃거리게 만든 신간 소설이며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다.


이곳 사람들은 겨울에는 무엇을 하는지... 살이 찌고 술을 부어라 마시고 각자가 서로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거 38


전쟁과 난민캠프는 언제나 존재할 겁니다. 맞아요. 너무도 잔인한 진실이죠. - P80

기업이라는 세계와 관계를 맺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은행 계좌에 아무것도 없는 이유 - P80

정원에서 수확한 말린 타임과 오레가노 다발들이 머리 위의 기둥에 매달려 있다. - P18

그래도 안타깝긴 해요. 이 여우는 그저 먹고살려고 한 것뿐일 텐데요. 우리 모두 그렇지 않나요? - P17

아마 다른 포식자가 곧 들어닥칠 겁니다. 그것이 세상 이치죠. - P21

언제든 잘못된 선택은 바꿀 수 있어. - P41

지역 주민들은 승객들을 ‘오늘의 어획물‘이라고 불렀다. 마을 주민들은 그들이 가져오는 돈은 기꺼이 환영했지만 그들이 가져오는 교통체증과 번잡함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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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삶, 결혼이 안긴 지독한 삶을 응시하게 하는 소설이다. 그와의 결혼은 그녀의 호기심들을 충족시키지 못하며 그녀가 더욱 잠잠히 결혼생활을 유지한 이유로 남는다. 견디며 지탱한 결혼은 그녀에게 무슨 의미였을지 작가의 어머니 결혼생활을 서서히 펼쳐 보이는 작품이다.

작가 어머니가 성장한 배경과 가부장제, 가난, 무지의 답습은 그녀의 열망과 호기심을 결코 충족시키지 못한다. 아이를 낳고 신랑과 다른 아들을 지탱하도록 온 힘을 다하면서 살았던 그녀의 지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작가와 함께 읽은 책들과 작가들과의 만남은 그녀에게 큰 획을 긋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각과 현실의 괴리는 너무나도 컸기에 그녀는 서서히 앞으로의 삶을 냉정한 시선으로 판단하기에 이른다. 평범한 일상을 보낸 그녀는 마지막 결단을 실행하게 된다.

무언가에 대한 욕망. 배우고 싶어 했다. 19

이런 환경에서 여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애당초부터 치명적인 일이었다...

여자아이들 말 잇기 놀이

<피곤하고/ 기진하고/ 병들고/ 죽어가고/ 죽고 >...

여자의 삶을 나타냈다. 17

어머니의 결단에는 무거운 현실과 변함없는 그녀의 결혼생활이 존재한다. 그녀에 의한 것이 아닌 그녀가 소속된 가족들의 반복될 불행을 응시한 것이다. 불변의 법칙으로 그녀의 남은 생을 무의미함으로 채워졌을 것들이다. 불행의 반복, 소망 없는 불행이 그녀를 결단하게 하였음을 보여준다.

스스로 선택한 낙태, 꼬챙이, 하혈, 자녀 출생, 술주정뱅이 남편, 궁핍한 가난, 국경 탈출이 이야기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영화에서도 등장하는 여성의 낙태, <67번째 천산갑>장편소설에도 등장하는 여성의 불법 낙태 장면, 아니 에르노 작가의 <세월>과 <사건>의 자전적 작품에도 낙태의 위험성이 언급된다. 단어로 단순하게 인식되는 낙태가 아닌 여성의 몸과 생명의 위험성에 노출되는 낙태를 여성작가들과 남성작가가 소설을 통해 함께 낙태를 제대로 인식하도록 이끈다.

종교가 말하는 고통도, 어떤 물신도 그녀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행복만을 믿었던 그녀는 현실의 악순환에 불만이 많아진다. 여자아이들의 말 잇기 놀이의 가사는 여성의 삶을 현실적으로 대변한다. "피곤하고/ 기진하고/ 병들고/ 죽어가고/ 죽고" 이러한 악순환을 강요하는 사회적 시스템과 관습이 한국의 현대사회에서도 답습되는 모순을 보게 된다. 비혼주의가 많이지고 자녀 없는 부부가 많아지는 이유에는 여성에게 부당하게 요구하는 관습의 사슬도 한몫하게 된다는 것을 사유하게 된다.

이거야말로 끝없는 악순환이지. 75

매일 조금씩 불안...

그와 어떻게 같이 살 수 있을지 상상이 안 된다.

각자 다른 구석을 볼 테니

외로움은 그만큼 더 커질 거다. 75

행복을 믿었던 그녀에게 남편의 복귀를 알리는 편지는 불행의 악순환이었다. 더 이상 삶의 의미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그녀의 선택을 깊게 응시하였던 작품이다. 너무 깊은 상흔이 된 그녀의 불행은 행복과 더욱 멀어졌다는 것이다. 자살한 어머니의 결단을 죽음과 함께 봉합하지 않고 어머니가 여성으로 어떻게 성장하고 열망하며 결혼생활을 유지하면서 살아왔는지 활짝 펼쳐보면서 얼마나 사회가 그녀를 가혹하게 관습에 가두고, 배움의 기회를 박탈하며, 무능한 가족들을 보살피며 살며 책을 통해 만난 수많은 작가들과의 만남에 어머니가 어떻게 삶을 직시했는지 들려주는 작가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어머니는 천성적으로 호기심이 많았고...

어떤 물신도 없었다.

몹시 불만에 싸여갔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현세의 고통을

알은체하지 않았다...

오직 행복만을 믿었다...

우연히도 운이 나빴던 것이다. 46

총 2편의 소설로 구성된다. 첫 이야기에 해당되며 <관객모독>작품을 읽고 나서 재독한 소설이다. <8월은 악마의 달>소설을 읽고 이 소설을 읽으며 여성과 결혼제도를 오랜시간 응시하게 한다. 앨런이라는 28세 기혼녀가 결혼반지를 바다에 던지며 마지막으로 남편을 버렸다고 말하는 <8월은 악마의 달>소설의 여성이 선택한 것과 결혼제도가 얼마나 수많은 여성을 옥죄는 제도인지 질문을 하게 된다. 결혼제도에 용해되지 않는 독단적인 '자기방의 방'이 필요해진다.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인물들을 통해, 때로는 나만의 방식이 통하기도 하는 시대이다.

여성과 결혼, 비혼주의, 출산하지 않는 부부. 모든 것이 행복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지루한 관습에 물들지 않는 깨어있는 지각으로 여성이 행복하기 위한 선택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둘러보게 된다. 지금 행복한가요. 여성들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는 소설이다.

가난하고 궁핍한 이유까지도 작가는 언급한다. 쓸 만한 땅의 소유는 교회와 귀족의 소유였다는 것으로 땅을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못한 자가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가난한 집의 여성이 아무것도 되지 못한 이유들이 보여진다. 부자세는 감면하고 서민들의 세금은 무관심한 정치인들의 선택들을 자랑스럽게 거리에 알리는 그들의 모습에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고물가 시대에 사우나를 가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분들을 보게 된다. 여전히 여성과 딸들은 제외되는 이 시대의 가부장제에 희생되는 딸들의 이야기, 여성의 이야기를 쉽게 듣는 만큼 <채식주의자> 한강 소설은 지금도 이 시대의 여성의 이야기가 된다.

구석구석 둘러보게 되는 힘, 살펴보는 힘을 문학에서 키우게 된다. 1% 부자들이 선거에 진심인 이유, 자본주의에 희생되는 수많은 99%를 보게 된다. 꿈꾸는 것을 이루지 못하고 주저앉게 된 여성들이 왜 기회마저 얻지 못하게 된 것인지도 현대사회에서도 살펴보는 힘이 생기게 된 것도 문학이다. 꿈을 향하고 있지만 자본주의에 계속 무릎이 접질려지는 젊은 세대의 이야기가 소설에만 있지는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생존게임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떤 힘이 필요한지 스스로 찾아야 하는 시대이다. 그래서 다시 읽는 시간은 더욱 견고해지는 땅을 다지는 시간으로 이어진다.






















어쨌든 그녀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고,될 수도 없었다. - P32

팔라다, 크누트 함순, 도스토예프스키,막심 고리키,토마스 울프,윌리엄 포크너. 읽었다. - P57

쓸 만한 땅은 교회나 귀족 지주의 소유였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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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은 악마의 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1
에드나 오브라이언 지음, 임슬애 옮김 / 민음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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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시골, 가난, 전형적인 가정, 간호사가 되려고 런던 상경,...

등기소에서 신부님 없이 결혼하고, 신앙을 버리고,... 사랑은 다른 무언가로 변해버렸고 우리는 헤어졌어. 좋은 여자 퇴장." 결혼이라는 게 그렇잖아. 결혼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문제야. 149

뜨거웠던 여름, 8월의 여름은 그녀에게 어떤 기억들을 남겨놓고 떠났는지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은 마을에서 성장한 그녀가 사랑한 남자를 따라 선택한 삶은 그녀의 삶의 지표를 모두 뒤집어 놓게 되는 출발선이었다. 그녀의 종교, 그녀가 좋아한 것들을 뒤로 남겨놓고 선택하는 삶이다. 그와 함께 시작한 결혼생활에서 그녀에게는 아들이 생기고 양육하지만 곧 식어버린 남편의 결혼생활로 그녀는 결혼반지를 낀 상태로 별거생활을 하게 된다. 어린 아들을 양육하는 그녀는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게 되는 28살의 기혼녀이다.

아들은 아버지와 시골로 캠핑을 떠난 날이다. 남편의 삶에는 보통의 방식이 아닌 그만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 그녀도 한때는 남편의 삶에 익숙했었지만 금방 그녀만의 삶을 다시 원하게 되면서 부부의 사이는 회복되지 못한다. 부부이지만 완전한 부부가 아닌 생활을 유지하면서 결혼반지는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 의문스러워진다. 그녀는 아들과 남편이 떠난 여름의 시간들을 자신만이 즐길 수 있는 프랑스 여행을 훌쩍 떠나게 된다. 계획에도 없었던 여행을 떠나면서 그녀는 옷들을 구매하고 그곳에서 보낼 기대되는 만남을 희망하기 시작한다.

프랑스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만난 기혼자 남자, 택시 기사, 호텔 직원, 호텔에서 연주하는 연주자, 무수히 만나게 되는 여행지에서의 사람들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 소설은 하나씩 전해진다. 환상을 가지며 기대하는 남녀들이 금방 식어버리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은 얼마나 짧은지 보여주기 시작한다. 타인에게 보여진 것들이 그들의 전부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부유하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그들이 만나고 대화하며 바람을 피우는지도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 보여준다. 벨벳 소재의 옷을 만진 그녀가 옷의 주인과 만남을 약속하며 만남을 가지지만 그의 실상은 벨벳 옷과는 상반되기만 한다. 호텔에서 연주를 하는 연주자이지만 그의 진짜 삶은 비루하다는 것을 그의 대화를 들으면서 알게 된다. 약혼자가 있고 곧 결혼을 앞둔 그가 자행하는 삶의 방식에는 카메라와 수건, 메모가 존재한다. 그녀의 질문에 그의 답변도 모순적이다. 자신은 바람을 피우지만 양심도 없고 자책하지도 않는다. 그저 약혼자가 그렇게 한다면 슬플 거라고 말하지만 그에게는 어떤 변화도 감지되지 않는다. 그녀가 만난 사람들은 그녀에게 목적을 가진 만남으로 이어진다.

8월의 프랑스 여름은 뜨겁고 무더웠다. 그녀에게도 그만큼 뜨겁고 무더운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예쁜 미모를 가진 그녀에게는 수많은 남자들이 접근을 하게 된다. 그들 무리와 함께 떠나면서 일어난 도로에서의 오토바이 운전자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면서 그녀는 적잖은 충격을 받는다. 모르는 오토바이 운전자의 죽음은 복선이 되면서 그녀의 불행을 암시하게 되는데, 그의 죽음과 아들의 죽음은 유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만약 그녀가 남편과 별거하지 않았다면 아들의 죽음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예측을 하면서 그녀는 힘들어하기 시작한다.

그녀가 프랑스에서 뜨거운 여름날을 보내는 동안 문득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지만 그녀는 아들을 선명하게 떠올리지 못하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은 그녀에게 결혼했느냐, 남편이 잘해주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녀의 대답은 냉소적이다. 차가웠던 그녀의 결혼생활과 결혼제도를 떠올리게 된다. 그녀가 고수한 삶을 제대로 응시하면서 진짜 원하는 삶을 직시하게 시작한다. 나를 사랑하는 것을 그만두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무언가를 사랑하고 싶다고 고백한다. 결국 나를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 했던 날들을 떠올리면서 진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한다.

남자들도 여자들도 언제쯤 혼자 지내는 삶에 익숙해질까? 228

내가 뭘 원하는지 아나요? 나로 사는 삶을 그만두는 것. 누군가를, 무언가를 사랑하고 싶어. 깊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필요하다면 사랑을 위해 죽을 수 있을 정도로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요. 232

그녀가 프랑스에서의 8월 여름 여행에서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심상찮은 성병과 두려움, 지불되지 않은 호텔 숙박비, 여행 떠나면서 구매한 옷이지만 입지 않고 다시 가져가는 옷, 하룻밤 보낸 배우가 종적을 감춘 일, 아들의 죽음을 전화로 듣는 일이다. 무분별하게 소비된 흔적들과 두려움을 남긴 성병과 연락두절된 배우가 그녀에게 남긴 8월이다. 아들의 죽음에 그녀는 호텔에 그대로 머무르면서 용기를 내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가면 아버지와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야 할 아들은 이제는 집에 없다는 사실을 용기내지 못한다. 어떻게 아들이 도로에서 죽었고 어떤 모습으로 사라졌는지 전남편에게서 듣게 되면서 그녀는 하나씩 조각난 아들의 형상을 끼워 맞추는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돈이 모든 걸 결정하는군.' 죽음에도 병에도 꿈쩍하지 않았는데 돈 때문에 집에 가게 되었다. 218

돌아가도 이제는 없는 아들이다. 그녀가 결혼과 함께 버렸던 종교생활은 결국 아들의 죽음으로 습관적으로 성당을 찾게 된다. 그녀의 기도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어야 하는지도 작가는 매만진다. 신앙을 불러놓는 기도에서 시작되어야 아들을 위한 기도도 완성된다는 것을 소설은 전한다. 그녀가 욕망을 찾아 떠난 프랑스 여행이지만 그녀는 참혹한 슬픔과 불행한 소식으로 무너지고 관심을 가졌던 배우와의 하룻밤으로 성병에 걸리면서 두려움에 떨면서 프랑스에서 보내다가 급하게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전남편의 집의 이웃사람에게 듣게 되는 소식에 그녀는 전남편이 젊은 여성과 떠났다는 소식에 기뻐한다. "그가 누구를 사랑하던 누구와 만났든 관심이 생기지 않았고, 그가 필요하지 않았고,... 새로운 감각이었다. 이 무관심이라는 것" (227쪽) "이제 앨런은 불멸의 사랑이라든가 영원성 따위에 대해 망상을 품지 않았다." (226쪽) "그를 해방시켰다. 이상하게도 고마웠다. 행복하기를 바랐다. 더 이상 고통은 없다. 아이의 죽음과 ... 집이 두 사람의 결혼을 완전히 종결시켰다." (224쪽)

엘런은 냉정했다. 바비는 벌써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타인, 보균자에 불과했다. 226

비난은 향수와 마찬가지로 앨런이 패기한 감각이었다. 이런 낱말들은 삶과 죽음이란 거대한 문제에 비하면 미미할 뿐이었다. 해변에서 보낸 날들은 빛바랜 꿈, 오직 질병만이, ... 돌, 지나가는 자동차만이 실제했다. 227

'무엇이든, 누구든 껴안지 않으면 죽고 말 거.'... 급기야 두 팔로 자기 몸을 끌어안았다. 207

쓸데없이 시간을 흘러 보내고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결혼반지... 벗겨지기 시작했다. 바닷물을 향해 힘껏 던졌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마지막으로 남편을 버렸다.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고, 후회하지 않았고, 바다의 어둠에 사로잡혔고,... 다음 날 상쾌한 낯빛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일찍 잠들기로 했다. 64

휴 휘슬레를 떠올렸는데 그가 떠난 것에 아무런 유감도 느끼지 않았다. 그의 무관심 덕분에 이 모임에 발 들이게 되었고 94

그녀가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한다. 빛바랜 프랑스 여행에서의 날들과 만남이 지닌 후유증까지도 멀리 보내버리기 시작한다. 비난하지도 않는 앨런의 새로운 출발을 암시하게 된다. 전남편이 자신에게 무관심하였던 것을 이제서야 알아차린 그녀가 남편을 버리게 된다. 결혼반지의 의미와 그녀가 남편을 마지막을 버리는 용기도 필요했음을 보여준다. 전남편의 집과 아들의 죽음이 그녀의 결혼생활을 끝내게 한다. 더 이상 이어지는 결혼생활은 없다는 것, 그녀를 불행하게 할 이유도 없음을 보게 된다.

시드니가 말하는 여자들은 누구인가. 그 여자들은 시드니에게 장식품이라고 말한다. 결혼을 습관적으로 한다는 대답도 예의주시하게 하는 소설이다. 결혼제도를 답습하면서 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반문하게 된다. 식사와 돈, 걱정으로 더럽혀진 나날들에서 잘 선별해 낸 특별한 것과 특별한 순간을 이야기 듣고 싶어한 앨렌이 기억에 남는다. 문학도 그러하다. 특별한 것과 특별한 순간을 포착하며 작가가 독자와 함께 대화 나누고 싶어한 것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회는 그녀의 문학을 불태우고 금서로 만들었지만 그녀는 여자 삼부작을 집필한 작가이다. 도전하고 대담한 작가의 소설에서 작가가 영향을 받은 작가들이 보였다. 그리고 작가만의 방식으로 꼬집는 문제들까지도 포착할 수 있었다. 부자들과 돈, 소비 형태를 살피며 앨런의 악마같은 8월의 이야기는 멋지게 마무리된다.

그 여자들은 장식품이야... 결혼했었어? 다들 결혼하잖아요. 다소 씁쓸한 듯 말했다. 습관적으로.

"난 세 번 했어." 시드니가 말했다. 기억나는 결혼 있어요?... 엘렌은 식사와 돈과 일상의 걱정으로 더럽혀진 나날들에서 잘 선별해 낸 특별한 것, 특별한 순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117



그 여자들은 장식품이야. - P117

결혼했었어? 다들 결혼하잖아요. 다소 씁쓸한 듯 말했다. 습관적으로."난 세 번 했어." 시드니가 말했다. 기억나는 결혼 있어요?... 엘렌은 식사와 돈과 일상의 걱정으로 더럽혀진 나날들에서 잘 선별해 낸 특별한 것, 특별한 순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 P117

쓸데없이 시간을 흘러 보내고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결혼반지... 벗겨지기 시작했다. 바닷물을 향해 힘껏 던졌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마지막으로 남편을 버렸다.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고, 후회하지 않았고, 바다의 어둠에 사로잡혔고,... 다음 날 상쾌한 낯빛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일찍 잠들기로 했다. - P64

비난은 향수와 마찬가지로 앨런이 패기한 감각이었다. 이런 낱말들은 삶과 죽음이란 거대한 문제에 비하면 미미할 뿐이었다. 해변에서 보낸 날들은 빛바랜 꿈, 오직 질병만이, ... 돌, 지나가는 자동차만이 실제했다. - P227

엘런은 냉정했다. 바비는 벌써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타인, 보균자에 불과했다. - P226

그를 해방시켰다. 이상하게도 고마웠다. 행복하기를 바랐다. 더 이상 고통은 없다. 아이의 죽음과 ... 집이 두 사람의 결혼을 완전히 종결시켰다. - P224

이제 앨런은 불멸의 사랑이라든가 영원성 따위에 대해 망상을 품지 않았다. - P226

그가 누구를 사랑하던 누구와 만났든 관심이 생기지 않았고, 그가 필요하지 않았고,... 새로운 감각이었다. 이 무관심이라는 것 - P227

‘돈이 모든 걸 결정하는군.‘ 죽음에도 병에도 꿈쩍하지 않았는데 돈 때문에 집에 가게 되었다. - P218

남자들도 여자들도 언제쯤 혼자 지내는 삶에 익숙해질까? - P228

내가 뭘 원하는지 아나요? 나로 사는 삶을 그만두는 것. 누군가를, 무언가를 사랑하고 싶어. 깊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필요하다면 사랑을 위해 죽을 수 있을 정도로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요.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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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사냥 - 젠더 정치 탐구 민음사 탐구 시리즈 12
이민주 지음 / 민음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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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탐구 시리즈 중의 신간도서이다. 김아미의 『온라인의 우리 아이들』, 조무원의 『우리를 바꾸는 우리』에 이어서 읽은 한 권이다. 빨간 책표지에 강열하게 대비를 이루는 책 디자인만큼이나 이 책도 단단한 내용들을 응집하고 있을 거라는 것을 짐작하면서 펼치게 된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와 『증언들』,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 김현아 류머티즘 내과 교수의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 아니 에르노의 『세월』도 생각나게 하는 페미니즘이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조명되고 해석된다. 2016년부터 2024년까지 발생한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살피면서 조롱과 혐오, 특정한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상호작용한 현상임을 설명한다. 촘촘한 논리와 증거들이 제시되어야 했던 이유부터가 조명된다. 마녀사냥은 중세 시대의 희생물이었던 여성들이다. 모냐 솔레의 『마녀』책을 통해서 알게 된 역사적 사실들부터 상기할수록 페미사냥이라는 책 내용은 예사롭지 않는 조짐이 된다.

중세 시대에 마녀로 희생된 여성들이 누구인가. 희생된 여성들에게서 무엇을 빼앗는지, 결과적으로 어떤 지배 구조를 구축했는지가 중요해진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페미사냥의 희생된 여성들이 누구인지, 무엇을 빼앗고 누가 빼앗았는지, 어떤 지배 구조가 구축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문학을 통해서 많은 작가들이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에 대해 조명하고 문제점이 무엇인지 소설을 통해서 함께 생각하도록 이끌어주고 있는 만큼 탐구 시리즈를 통해서 한국 사회에 어떤 사건들이 일어났고 어떤 사회적 문제들이 조명되고 있는지 알려주는 책이라 의미심장해진다.

근대 자본주의와 정치경제 기획이 어떤 페미사냥을 하였는지 하나씩 시간순으로 알려준다. 자본주의 체제가 부정적인 여성상을 만들어 왜 여성을 마녀로 만들었는지 살펴보게 된다. 소비와 놀이의 영역인 온라인 커뮤니티와 어떻게 힘을 얻었는지도 조명한다. 페미니스트를 낙인찍는 것과 감시와 검열, 폭력을 정당화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까지도 재조명한다. 앞서 언급한 책들에서 다루는 것들은 보다 나은 여성의 삶과 성평등을 향한 발걸음인 만큼 이 책에서 언급되고 조명되는 이유들을 함께 살펴볼수록 다분히 복잡한 이해관계들을 엿보게 된다.

페미사냥으로 위축된 이들이 누구이며 혐오라는 정치적 움직임에 동요되지 않는 지각도 필요해진다. 대립하는 구조로 싸우는 것이 해결이 되지 못한다. '대등하지 않은 것을 대등하게 비교하는 부당한 체계'라고 강조하는 저자의 말에는 함축된 응어리가 전달된다. 아직도 갈 길이 멀고 험준한 한국사회이지만 깨어있는 지각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움직임들은 감지된다. 수많은 질문들을 들으면서 살아오면서 굳건하게 구축한 진실과 믿음에는 성평등이라는 올곧은 희망을 가득하게 품으면서 살아왔던 것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대립하고 싸우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행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한 걸음 나아가고 다음 세대가 더 나아가기를 희망하게 된다. 여성을 억압하고 억누르면서 과거의 시대로 되돌리려고 노력하는 사건들을 확인할 수 있었던 내용들이 전해진다. 조롱하지 않는 문화, 누군가를 짓밟지 않는 문화가 선진국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저급한 방식으로 싸우는 문화가 아닌 평등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더 나은 삶을 모색하여야 하는 이유도 분명해지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이득을 위해 싸우고 대립하며 혐오하지 않는 것이 승리이다.

페미사냥에 얽힌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책은 언급한다. 신자유주의 질서와 시장화, 온라인 환경, 반지성주의와 극우주의, 친밀성과 욕망의 정치경제가 9년 동안 뒤엉킨 사건들로 조명된다. 분명한 것은 권력 구도이다. 복잡하고 다양한 긴밀한 구조에 무차별적으로 희생된 페미사냥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분명한 사회문제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재미로 공격하는 온라인 사냥터를 고발하는 저자의 책이다. 그저 살아남는 게 아니라 더 존엄하게, 즐겁게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것과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확고한 의지가 전해지는 책이다. 원한이 가득한 저자의 마음과 목소리들이 한 권을 통해서 응결되면서 희망까지도 전해진다. 정확한 인식과 진실한 용기에 대해서도 힘주어 강조된다.

무차별적인 사냥에 수많은 여성이 사라졌고 185

여성을 내쫓고 칭찬받는 개들 167


페미니즘 백래시는 페미니즘이 성취해 낸 것을 억누르고 되돌리려 한다. 24

페미는 어떻게 여자 일베가 되었는가 87



억압받는 이들... 정확한 인식과 진실한 용기 - P24

그저 살아남는 게 아니라 더 존엄하게, 즐겁게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는... 끝끝내 이길 것이다. - P182

남을 짓밟고 조롱하고 탈락시키는 서사 - P180

무차별적인 사냥에 수많은 여성이 사라졌고 - P185

여성을 내쫓고 칭찬받는 개들 - P167

페미니즘 백래시는 페미니즘이 성취해 낸 것을 억누르고 되돌리려 한다. - P24

페미는 어떻게 여자 일베가 되었는가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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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에센셜 한강 (무선 보급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디 에센셜 The essential 1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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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의 단편소설이 구성된 한강 『디 에센셜』이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 『희랍어 시간』을 읽고 잔뜩 몸을 움츠렸던 것이 안타까워진다. 단편소설과 시 다섯 편을 읽으면서 읽었던 여러 소설들을 함께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가가 꾸준히 긴 시간 응시한 것들이 무엇인지 총체적으로 상기하는 귀한 시간으로 인도된다. 단편소설 『회복하는 인간』에 이어 읽은 『파란 돌』은 "오랜만에 당신을 불러봅니다." (247쪽) 문장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화자인 그녀는 연약한 아이의 어머니이며 한 남자의 아내이다. 그런데 그녀가 부르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가 부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와 같은 나이가 된 그녀가 그를 오랜만에 부르는 이유가 하나씩 들추어지면서 그녀가 밤의 나무들을 의연하다고 말하는 이유, 그 나무들을 두려워한 이유들이 밝혀진다.

완강한 어조의 말들을 껍질 속에 숨기고 있는 밤의 나무들은 여전히 검고 묵묵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일 년 전에 그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녀는 밤의 나무들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인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각진 노끈이라는 이질적인 노끈이 목을 파고드는 고통까지도 그녀는 충분히 짐작하기도 한다. 기다란 끈이 지닌 잔혹한 폭력성에 화들짝 놀라버리는 이유까지도 소설은 서서히 보여준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의 사전 징후라고 감지되는 것들을 그녀는 자신에게서도 감지되었음을 나열한다. 왜 그녀는 자살을 계획하고 삶을 마감하려고 하였을지 짧은 소설에서도 충분히 감지하게 된다. 가족이라는 이름, 부부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된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력에 누군가는 가해자,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많은 움직임과 삶에서 고통과 슬픔이 점철되면 누구라도 갑자기 자살을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는 죽음을 계획하고 실행하려고 집을 떠났지만 다시 계획에 없는 귀가를 하게 된다. 갑자기 그녀를 살린 것, 문득 떠올린 것이 그녀를 다시 살게 만든 것이다.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자가 월경을 한다는 것, 피를 흘리며 아이를 낳는다는 걸 생각하면 경이로워. 생명은 언제나 핏속에서 시작되는 모양 258

여자의 월경과 출산, 출산 후 수많은 날들을 피를 흘려보내야 하는 산모의 자연스러운 현상, 출혈하면 멈추지 않는 지난날 추억 속에 있는 남자의 병을 떠올리기 시작하면서 그의 이름을 오랜만에 부르게 된다. 피는 생명이기도 하고, 피는 죽음이기도 하다. 어린 날 그의 죽음 소식을 감당하기가 힘들었을 그녀, 그녀의 첫사랑과 다름없는 그를 지금 오랜만에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다.

그가 그녀에게 자화상이 무엇인지 이야기하였듯이 그가 두 번째 입원하면서 무수히 바라본 하늘에서 그가 깨달은 영혼과 무한에 대한 이야기도 그녀에게 깊게 각인된 대화로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덕분에 그녀는 이제 그의 죽음을 슬픔으로 떠올리지 않는다. 그가 꿈에서 경험한 죽음은 두려움이 아닌 홀가분함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를 부르면서도 자유로워진 그를 떠올리게 된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고 느낀 그녀의 생각까지도 전해진다. 아주 짧은 시간 우리가 머무르는 생애를 깨달으면서 그녀가 기억을 등지고 나아가야 하는 이유, 버텨내고 이겨내야 하는 남은 생애를 각진 노끈, 남편의 악력, 목덜미를 압박한 남편의 잔인함을 떠올리며 이겨내야 하는 생애를 화가였던 그를 부르면서 하나씩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잔인한 사람임을 알게 되면서 그녀가 자살을 시도하였지만 그녀가 다시 살아가고 있는 지금 그녀에게 어떤 기억들을 불어넣어 준 사람이었는지 하나씩 그녀가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녀에게도 더 나은 삶으로 전진하라고 응원을 아낌없이 던지게 된다. 타인의 잔혹함에 누군가가 생을 실패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커진다. 악인이 타인을 부수려고 할지라도 자살을 하려고 할 때 그녀를 살려낸 아이가 보낸 영혼의 목소리, 추억 속의 남자와 함께한 기억들이 그녀를 한 걸음씩 나아가게 할 것이라고 믿게 된다. 소설이지만 시어를 마주서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녀를 침식시킨 어두운 밤이 무엇이었는지 작가의 문장들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되는 소설이다.

목줄기에 느껴지는 손의 감축, 따뜻한 첫 열기와 악력의 기억 267

7여 년의 시간을 함께 살았던 남자. 세 시간 전에 내 목을 조르다 말고 안방에 들어가 잠들었던 사람 260



밤의 나무들은 여전히 검고 묵묵합니다 - P265

꿈. 이미 죽어있어... 얼마나 홀가분했는지 몰라. - P268

기억을 등지고 나아가야 할 길은 얼마나 멀까요. 얼마만큼, 무엇을 넘어갈 수 있을까요 넘어갈 수 있기는 한 걸까요. - P267

내 방에 숨어 있는 사람 같았습니다. 내 모든 걸 알고 있는, 사실은 잔인한 사람 - P266

영혼과 무한 같은 것을 생각이나 느낌이 아닌 몸으로 알게 되었다고.
그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 P270

밤의 나무들은 의연합니다... 단단한 밑동은 뭔가 완강한 어조의 말들을 껍질 속에 숨기고 있는 듯합니다... 저 나무들을 바라봤습니다... 저 나무들이 다시 두려워 시선을 뗄 수 없었습니다. 바라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나무가 너를 닮았구나,라고 당신이 말하던 것을 나는 기억합니다. 네가 그리는 모든 게 실은 네 자화상이야. - P248

여자가 월경을 한다는 것, 피를 흘리며 아이를 낳는다는 걸 생각하면 경이로워. 생명은 언제나 핏속에서 시작되는 모양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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