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라 그뿐이다 - 다시 나아갈 힘을 주는 철학자들의 인생 문장
대니얼 클라인 지음, 김현철 옮김 / 더퀘스트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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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나 변호사, 사업가가 아닌 일을 하고 싶었다는 것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학교에 거의 없었다는 것부터 회고한다. 그가 철학을 공부하고자 소신을 밝혔을 때 아버지가 그 상황에 말했던 말이 함축한 의미도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철학과 인문학이라는 학문이 한국에서는 어떤 형태로 발화되고 있는지도 떠올려보면서 나이 여든에 명언집을 완성한 저자의 이유와 어렵지 않게 서술된 글과 저자의 사유들을 함께 걷게 되는 명언집이다.

읽기 어렵지 않은 명언집이다. 수많은 철학자, 신학자, 인문학자, 사회비평가 등을 만나게 된다. 때로는 현대 철학자가 다른 철학자의 철학을 이해하게 쉽게 설명해 주는 문장도 소개된다. 수많은 저서들을 모두 읽을 수도 없고 철학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도 무리인 만큼 교양도서로 철학자들이 사유한 흔적들과 그들의 대화, 삶과 인생까지도 종합해 보게 된다. 관대한 러셀이라는 철학자가 유독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는 위선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 이유도 설명된다.

금욕주의와 내려놓음의 미덕을 진심으로 믿었다는 사람이

정작 실생활에서 실천하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건 믿기 힘든 일 50

행복을 사유한 철학자의 명언들도 소개된다. 행복이 무엇인가라는 책들을 꾸준히 읽다 보니 나름대로 정리되는 것들이 생성된다. 불안과 행복의 상관관계로 행복을 정의한 에피쿠로스 철학자도 설명된다. 우리는 언제나 살아갈 준비를 할 뿐 정작 삶을 살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랠프 웰도 에머슨의 명언도 오랜 시간 사유하게 한다.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과 살아갈 준비만 한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로 전해진다.

삶은 진자운동을 한다는 쇼펜하우어의 명언 중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푸코의 진자도 떠올려보게 된다. 삶의 진자가 어떤 움직임으로 운동하고 있는지 사유하게 한다. "탐욕으로 흥하고 탐욕으로 망한 조직" (25쪽) 푸코의 진자 하권에서도 확인하게 된다. "마음의 평화는, 오랜 이해와... 한 점 의혹 없는 깨달음의 노력 끝에 성취되는 차분한 명상에서 온다고." (375쪽) ​『푸코의 진자』 하권의 소설을 다시 읽게 한다. 이외에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소마'에 대해 작가가 냉소적으로 설명한 소마의 특징도 강하게 자리 잡는다. 기독교와 알코올의 모든 이점을 모자람 없이 갖고 있는 소마를 다시 떠올려보게 한다. 고통과 행복을 내밀하게 고찰하는 시간으로 인도된다.

살다보면 최악의 순간도 찾아오고 희망을 보는 순간도 찾아오기도 한다. 실패와 좌절의 순간이지만 또 다른 희망도 발견하기도 하였음을 하나둘씩 떠올려보게 된다. 고단한 삶과 고통이 혼재하였지만 언제나 불행만이 지속되지는 않았음을 회고하게 한다. 모두가 시궁창에 빠져 있지만 누군가는 저 멀리 별들을 바라보는 있다는 것도 책에서 만나게 된다. 시궁창과 다름없는 상황에서도 빠져나왔던 희망에는 멀리 별들을 바라보았음을 함께 떠올려보게 된다.

철학은 모두가 살아간 인생과 삶에서 찾아낸 깨달음의 학문이다. 철학의 명언집에서 저마다 주워 담을 별들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그 별들을 바라보기도 할 것이며, 누군가는 별을 담았다는 것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카뮈가 던지는 질문이 가장 강열하게 남는다. 알베르 카뮈이방인』소설을 통해서 인생의 의미는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정으로 중요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 바로 자살이다.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가장 근본적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53쪽)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과 죽지 않기로 선택한 것의 의미를 다시 곧추세우게 한다. 살아갈 가치를 찾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질문인지 확인하며 삶을 더욱 내밀하게 관찰하게 하는 명언집이다.

최악의 순간이라 해도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다른 무언가가 따라오게 마련이다. 50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빠져 있지만,

그래도 그중에는 저 멀리 별들을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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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 쏜살 문고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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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골의 작품은 처음이다. 책표지 디자인에 가장 먼저 이끌렸다. 러시아문학이라는 이유도 한몫을 하면서 도스토예프스키가 "러시아의 작가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라는 문장에 매혹되어서 펼친 소설집이다. 두껍지 않지만 단단하게 3편의 단편소설들이 구성된다. 『코』, 『외투』, 『광인일기』를 모두 만나볼 수 있는 소설집이다. 추천글에도 굉장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고골이라는 작가는 누구인지 궁금해서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속물들의 세계, 관등의 세계, 수직적 관료 체계를 드러내는 의복과 헤어스타일이 작품에 등장한다. 언급한 세계들에 단단하게 갇혀서 살아간 인물이 보고 느낀 것들이 여러 작품에서 전해진다. 작가의 생애와 작품들까지 연결해서 읽으면 더욱 작품성이 증대한다. 시종무관만 사람 취급하는 세상이 있다. 러시아가 배경이지만 현대사회와도 접목하면서 읽는 재미도 솔솔해진다. 이들을 얼간이들의 세계라고 표현한 유머가 쉽게 잊히지 않았던 작품이다.

자신의 위신과 품위를 한 단계 더 높이려고 8등관이라고 하지 않고 소령이라고 자칭한 인물이 아침에 일어났더니 코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신의 코가 사라진 상황에서도 관등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야기이다. 기괴한 사건에 대한 소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세상 사람들의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소문을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전해진다. 귀하는 바로 제 코가 아닙니까?라고 말하는 주인공의 태도를 살펴보게 된다. 코가 깃털 달린 모자에 금실로 장식된 정복을 입고 있는 상황이다. 기묘한 환상적인 소설에서 코가 대답하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이오." (28쪽) 나 자신이라는 단단한 대답을 하는 코의 반응을 계속 주시하게 된다.

다리 위에서 껍질 벗긴 오렌지를 파는 여자 장사꾼이라면 코 없이 앉아 있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19살의 농촌 처녀가 파출부 자리를 구한다는 광고 문구도 주시하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누가 이런 일들을 하고 있는지도 추정하게 된다. 성당 안에는 예배 보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설명에서도 사회집단이 추구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500루블이건 1000루블이건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좋은 개를 구하려고 야단법석인 사회도 드러난다. 서장 집에는 현관이나 주방에 상인이 우정의 표시로 가져온 설탕이 가득히 쌓여 있다고 묘사한다. 읽을수록 뽀족한 펜으로 현대사회를 꼬집는 내용들이 상당히 전달된다. 그 시대와 현대사회는 얼마나 유사한지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짧은 소설이지만 맛깔나게 속물들의 세계를 제대로 고발하고 있다.

사라진 코를 다시 찾게 되면서 다시 붙이고자 하지만 의사가 어떻게 대응을 하는지도 기억에 남는 소설이다. 나는 돈 때문에 의사 노릇을 하고 있는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코를 의사가 대신 팔아 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결혼할 상대방이 20만 루블의 지참금을 가져오는 경우에 한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하는 주인공이다. 다시 돌아온 코를 보면서 5등관이라고 짐작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살펴보게 된다.

경찰서장은 온갖 종류의 예술품과 공예품에 유독 관심을 보이는 광적인 애호가이면서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지폐라고 한다. 경찰의 손에 지폐를 손에 쥐여 준 이유도 설명된다. 모두 비현실적이지만 이와 비슷한 사건들은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다고 암시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진중해진다. 충분히 있어왔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사건이기도 하기에 코가 사라진 사건과 코가 돌아온 이후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옛날에는 이발사와 외과 의사가 동일한 직업이었다는 사실도 설명된다. 오늘날 이발소의 네온사인에서 빨간 것은 동맥, 파란 것은 정맥, 흰 것은 붕대를 의미한다는 것도 알려준 소설이다. 『코』소설 매우 인상적으로 기억될 작품이다.


자기 집이 을씨년스럽고 초라해 보였다.

그는 모자로 하인의 이마를 내려치며 호통을 했다.

"이 돼지 같은 놈아, 그 무슨 쓸데없는 짓이냐!"...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됐는지 이유도 모르겠으니 41




코가 돌아왔다.
코는 커다란 깃을 세우고
금실로 수놓은 정복에 양가죽 바지를 입고,
허리에는 대검을 차고 있었다.
모자의 깃털 장식으로 보아
5등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P25

서장 집에는 현관이나 주방에 상인이 우정의 표시로 가져온 설탕이 가득히 쌓여 있었다. - P39

다리 위에서 껍질 벗긴 오렌지를 파는 여자 장사꾼이라면 코 없이 앉아 있어도 무방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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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친놈 2024-07-18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책 추천했던 글에 댓글 남겨 주셨던거 기억나네요 ㅎㅎㅎ 좋게 읽으신것 같아 저도 기분 좋네요!. <코>가 인상 깊으셨나봐요. 저도 현대사회와 일맥상통하는 부분 때문에 흥미롭게 읽었던것 같아요. <외투>도 좋았구요.

구름모모 2024-07-18 22:12   좋아요 2 | URL
<코>소설만 남겼네요. 외투도 곧 정리해 볼려고 해요. 좋은 책 추천해 주셔서 냉큼 읽었네요. 감사합니다^^

책친놈 2024-07-18 22:32   좋아요 1 | URL
아 외투는 아직 안쓰신거구나 ㅎㅎㅎ 네넹 ㅎㅎㅎ 저도 추천드린책 리뷰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최진영의 소설들을 계속 찾아서 읽게 된다. 최근에는 『원도』를 읽었고 『단 한 사람』, 『해가 지는 곳으로』도 다시 밑줄 친 글들을 읽었다. 작가의 작품들을 만날 때마다 작가가 힘주고 있는 것과 주시하는 것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작품들은 다르지만 작가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거듭해서 살펴보게 된다. 구의 증명도 그러한 과정 중에 다시 재독한 소설이다. 살아간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을 작가는 어떠한 시선으로 관조하고 있는지 이 소설을 통해서 그리고 『원도』라는 소설과 『단 한 사람』, 『해가 지는 곳으로』 모두를 집약해서 살펴보게 된다. 어떤 소설은 읽기 힘든 것도 있었지만 이 작품은 아니다. 다시 읽으니 또 상기되는 죽음과 산다는 것의 의미를 관조하게 한다.

세 인물의 죽음부터 살펴보게 된다. 병들어서 죽은 이모와 돈 때문에 죽은 인물, 교통사고로 죽은 아이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시작하지 않을수가 없다. 돈 때문에 파장이 일어나는 세 인물의 죽음들을 보게 된다. 노마는 왜 교통사고를 당하고 죽었어야 했을까? 노마의 가정환경과 부모의 노동환경을 직시하게 한다. 노마의 교통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었던 상황임을 감지하게 된다. 노마의 죽음을 슬퍼하고 자책하면서 긴 시간 힘들어한 구와 담만이 작품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이외의 인물들은 빠른 시간 노마라는 존재를 잊고 일상이라는 곳으로 복귀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돈의 위력은 대단하다. <댓글 부대>영화를 시청 중인데 이 소설의 문장들이 더욱 예사롭지 않게 드러나게 한다. 큰 입을 벌리고 삼키며 인생을 작살낼 수 있는 것이 돈이다. <댓글 부대>와 함께 이 소설을 읽어서 돈을 묘사한 작가의 문장들이 더욱 섬뜩하게 두드러진다. 돈이 강자라는 것을 이 소설의 죽음과 긴밀하게 대조를 해보게 된다. 작가의 작품들에는 돈이 밀접하게 등장하는 <원도>소설도 떠올려보게 된다. 뾰족해진 이빨로 삼켜버리는 큰 입을 가진 원도라는 인물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이유를 찾는 여정은 뜨거워진다. 이러한 과정조차도 없이 사라진 죽음의 주인공들은 어떻게 상기해야 하는지도 대조를 이루게 된다.

유전적인 병으로 빠르게 죽어가는 이모의 죽음에도 돈은 깊숙하게 자리잡는다. 구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빚이 생기는 상황에는 부모의 빚이 엄청난 불행의 원인이 된다. 연대책임자로 지정된 자식은 어린 나이에 시장과 공장, 편의점에서 노동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줄어드는 빚이 아니라 일을 할수록 늘어나는 빚이 구를 집어삼키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돈도 유전되고 병도 유전되면서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은 더욱 가난으로 내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를 소설 인물들을 통해서 보여준다. 출발부터가 다른 인물들이 맞이한 죽음에는 돈과도 밀접하다는 사실을 작가는 매만진다.

담이 사랑한 구, 구를 사랑한 담의 사랑이야기에는 몇 번의 헤어짐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서로를 향하게 된다. 담의 사랑이 절절하다. 담은 구의 모든 상황들을 알고 있고 침묵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이다. 생명을 물건 취급하는 사회에서 구는 버티면서 살아낼 수 있을까? 거래되는 물건이 생명이라는 사실은 사회를 고발하는 날것으로 자리잡게 된다. 유일하게 구에게 용돈을 쥐여준 어른은 담의 이모뿐이었다. 구의 부모도 사채시장의 어른들도 아니었다.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에게 각인된 어른은 담의 이모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한다. 학교 선생님도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어른이었다. 무관심하다는 것은 엄청난 파장으로 사회를 침몰시킨다. 구의 죽음은 한 생명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소설의 가치는 증대된다.

군대 선임이 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깨끗한 곳에서 자라고 돈을 챙겨준 사람도 기억하게 된다. 듣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러하다. 듣고 담아두었던 것들이 마음이 되어서 구를 챙겨주는 군대 선임에게서 인간적인 냄새를 맡게 된다.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면서 사냥감을 찾아다니는 사회에서 온기가 남아있는 인물을 만날 수 있다는 건 기적인지, 행운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훈훈한 정이 사라지고 차가운 겨울의 냉기만을 느끼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는 인생이 되어버린다. 구에게는 그 겨울이 너무나도 빨리 찾아왔고 겨울이 더 냉혹했다는 것을 함께 체감할 수 있었던 소설이다.

구의 죽음에는 구의 책임을 찾을수가 없었다. 도망가지 않고 해결해 보려는 의지를 가졌지만 부풀어 오르는 빚의 규모에 구는 결국 침몰하게 된다. 어른답지 않은 어른이 부모였고, 어른다움을 지켜내지 못한 학교 선생님의 무관심도 깜빡거리는 신호를 보지 못했던 것에도 이유를 찾게 된다. 이해되지 않는 사채 구조의 엄청나고 위협적인 것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주시하게 된다. 헝클어진 모든 것들이 구를 집어삼켰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구의 밀도가 높았던 소설이다.



사람은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다.

사람은 뭐든 죽일 수 있고 먹을 수 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친다.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고 작살낼 수 있다.

그리고 구원할 수도 있다.

사람은 신을 믿는다. 그리고 신을 이용한다...

허기 때문이 아니라도 (사람을) 먹었을 것이다.

그의 손이 탐나서, 그의 발이 탐나서,

그의 머리, 그의 얼굴,...

그들은 미개한가, 야만적인가.

지금의 인간은 미개하지 않은가.

돈으로 목숨을 사고팔며 계급을 짓는 지금은,

돈은 힘인가.

약육강식의 강에 해당하는가. 174

아이는 물건에도 인격을 부여하지만

어른은 인간도 물건 취급한다. 173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실패는 예정되어 있는 거 같고,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는 거 같고,

그래서 이미 진 것 같았다. 97


구 대신 들어온 다른 것들이

터무니없이 옅고 가벼워서

구의 밀도를 대신하지 못했다.

구는 엄청나구나. 54




















빚이든 돈이든 ...
우리가 살아 있을 때 다 해 주고, ...
아무것도 물러주지 말자. - P172

인간의 돈도 유전된다.
유전된 돈으로 돈 없는 자를 잡아먹는다.
돈이 없으면 살 수 있는 사람도 살지 못하고,
돈이 있으면 죽어 마땅한 사람도 기세 좋게 살아간다.
노마는 왜 죽었을까. 이모는. 구는 왜 죽었나.
교통사고와 병과 돈.
그런 것이 죽음의 이유가 될 수 있나.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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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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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유명한 밀란 쿤데라의 마지막 소설이다. 한국어판 출간 10주년 기념 리커버 에디션으로 만나본 소설은 두껍지 않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이어서 읽는 작가의 소설이다. 표지 디자인부터가 눈길을 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리커버 디자인을 연상시킨다. 한 권씩 읽는 작가의 소설들은 단단한 마음부터 준비시킨다. 이 소설은 어떤 이야기일지 설레임으로 펼치게 된다.

소설을 두 번 연이어 읽게 만든다. 재독하는 시간은 꼭꼭 씹어먹는 작품으로 이어지게 한다. 밑줄 친 문장들을 다시 필사할수록 멋진 소설이라는 감동으로 이어진다. 상징적인 인물과 대화들이 주목받는데 작가의 삶을 알고 있기에 먹먹해지는 마음으로 작품을 음미하게 된다. 밀란 쿤데라를 찾아서』 책 덕분에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들과 인물들의 농담의 가치는 가중된다. 농담으로 언급되는 상황들과 인형극의 의미에 집중하게 만든다. 배꼽에 집중한 인물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와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던 날들과 짧은 시간 만남을 가졌던 어머니와의 기억속에 자리잡은 배꼽을 바라본 시선의 의미들은 천사, 배꼽이 없는 최초의 여자 하와에 대한 사유까지도 이어진다. 원하지 않았던 아이를 출산하기까지 어머니가 경험하였을 것들을 상상하는 아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어머니의 고통과 아버지와 자신이라는 두 사람의 고통의 근원까지 짚어낸다. 사과쟁이라는 사과의 의미, 서로가 사과하는 상황을 언급하면서 화해하고 사랑하는 방식이 왜 중요한지 강조하게 된다.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사과하는 것에 대해서 숙고하게 한다. 어머니와 같았던 존재는 작가에게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사과받고 싶은 것이 지닌 의미까지도 짚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감시와 감청을 당하면서 살았던 그의 인생의 조각들과도 연결시키면서 읽게 하는 소설이다.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어머니 생각만 하고 있어. 61

마지막 소설이라 더욱 밀착해서 읽게 된다. 응축된 의미들로 인물들이 지닌 상징성을 다양하게 떠올려볼 수 있었던 멋진 작품이다. 스탈린이 던진 농담이라는 이야기는 주변인에게는 결코 농담이 되지 못하였다. 농담을 주고받을 수 없는 상황이 지닌 경직된 사회적 인물이다. 고단한 긴 하루를 보낸 스탈린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불안한 심리에는 적과 비밀경찰이라는 보이지 않는, 형체가 없는, 설명할 길이 없는, 잡을 수 없는, 처벌할 수 없는, 심술궂게 불가사의한 어떤 위협으로 암시한다. 더더욱 혼란스럽고 신경이 곤두서 있으면서 "뭐가 두려운 거야?"라면서 질문을 던진다. 작가의 삶도 다르지가 않았음을 떠올리게 한다. 어머니 사진만이 남은 아들의 모순적 상황은 작가의 삶과도 다르지가 않다. 그립지만 만날 수 없고 존재를 거부당한 아들이 되어 살아간 작가의 인생까지 짐작하면서 읽게 된다. 작가가 그리워한 나라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지는 못했다. 서로 사과하는 세상의 상징성은 그렇게 작가의 삶과도 연결된다. 어머니는 아들을 연민과 경멸의 시선으로 배꼽을 바라본다. 그는 어머니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고 이야기된다.

아들의 배꼽을 뚫어지게 바라본 ... 연민과 경멸

그는 그녀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51

도둑들의 시대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조심하라고, 멍청아!" (58쪽) 누구를 향해 외치는 외침인지 일꺠워준다. 농담처럼 주고받는 대화와 웃음, 말이 아닌 말을 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대화중에 프랑스어를 하지 말라는 이유와 한 사람만이 깃털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며 두려워하는 이유까지도 작가의 삶에서 유추하게 된다.


체코슬로바키아 출생

1975년 프랑스 정착

2023년 프랑스 파리 세상을 떠났다.



보잘것없는 것의 가치와 어리석음이 강조된다. 뛰어나 봐야 아무 쓸데없다는 사실과 함께 해롭기까지 하나는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보게 된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도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눈 색깔도, 태어난 시대도, 나라도, 어머니도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언급된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권리들이란 아무 쓸데없는 것들에만 관련되어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것을 얻고자 발버둥칠 이유가 없다는 사실과 함께 무의미한 축제가 절정을 이룬다. 속물이며 거만한 사람, 나르키소스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강력한 권력에 대담하게 자기 생각을 말한 인물 흐루쇼프도 등장한다.

독창성이나 생각, 재능이 아니라 다만 지능으로 월급을 많이 받아서 수납장에 장식된 술병이 서서히 여왕으로 변하고 꺼내서 마시고자 하지만 다쳐서 다리가 불편해진 인물까지도 상징적이다. 겸허한 숭배로 이야기되는 것들도 떠올려보게 한다. 짧은 소설이지만 무엇도 가볍지가 않았다. 고찰하게 하는 힘이 강한 작품이다. 설명할 수 없는 거짓말과 설명할 수 없는 웃음은 인간과 인간의 삶을 조명한다.

거리들 이름과 야망, 허영, 거짓말, 잔혹성까지도 언급된다. 모든 인간이 경험한 고통을 기념하는 것들과 공원의 동상들의 의미까지도 함께 고찰하게 한다. 악마, 음모, 배신, 전쟁, 투옥, 암살, 학살로 가득하였던 스탈린을 등장시킨만큼 그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사람들의 영원한 어리석음을 내려다보고 웃을 수 있는 무한히 좋은 기분에 대해서도 설명된다. 이것은 조롱, 풍자, 빈정거림이 아니라고 말한다.

농담이 부풀어서 농담이 위험해진 세상은 의심과 신고, 신문을 받고 수갑과 불안이 침식하는 사회는 농담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로 이어진다는 것도 언급된다. 이 소설에서 인물들이 주고받는 농담들과 인형극도 의미심장한 짙은 색채를 띠게 된다.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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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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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에 길들여진 삶의 여정과 갑자기 찾아온 알 수 없는 열정을 멀리 보내지 않은 용기를 선택한다는 것을 곰곰이 살펴보게 하는 소설이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자신이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익숙한 직업, 삶을 갑자기 뒤편으로 넘겨버리는 단호함과 용기를 보여주는 인물이 있다. 우연히 다리 위에서 마주친 여자가 남긴 이마 위의 전화번호 숫자를 지우지 않고 자신의 수업시간에 들어간 선생님에게 찾아온 사건들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서점에서 구입한 책의 저자의 글을 번역하면서 읽고 리스본행을 과감하게 감행하는 그의 선택에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는 자력을 느끼게 되면서 그동안 그가 꾸준히 구축했던 라이프 스타일에서 예측할 수 없는 리스본행 여행임을 알게 된다. 주인공인 선생님이 의심조차 하지도 않았던 그만의 삶의 구축을 흔들어 놓은 것과 발길이 향하는 리스본에서 그가 찾아간 책 속의 저자의 삶은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 하나씩 마주보게 되는 여정이 된다.

책을 집필한 저자는 의사이다. 출간을 한 사람은 그의 여동생인 간호사였고 파란병원이라는 건물을 찾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책의 저자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삶의 궤적을 일탈하는 용기, 알 수 없는 호기심에 이끌려 단단한 안전한 궤도를 이탈하는 그의 여정에서 무모함과 기대감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리스본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만난 수많은 인연들이 보여준 태도와 말, 삶까지도 무의미한 것들은 하나도 없었다. 전혀 다른 삶, 모양새로 살아가는 그들의 인생들의 아주 작은 단편적인 흔적이지만 그들과 나누는 대화, 그들의 기나긴 삶의 흔적들에서도 허투루 버릴 흔적들은 없었던 소설이다.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며 기억하느냐에 따라 깨닫는 것들도 무수히 많아진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서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단단한 갑옷 같은 하나의 사람이 갑자기 여행을 다녀와서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의사의 모습을 회상하는 여동생의 이야기부터 살펴보게 된다. 그에게 일어난 일들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판사였던 아버지가 의사가 되라고 해서 의사가 된 인물이다. 귀족이며 조상들이 물러준 부를 유유하게 즐기며 살아간 귀족의 아들이다. 영특하여 평이한 아이들과는 달랐던 아이였고 장남이라 부모의 기대감을 충족시킨 아들이기도 하다. 아들의 영특함이 보내는 신호에는 판사인 아버지를 향한 분노까지도 감지한 아버지의 예리함까지도 놓치지 않게 된다. 서로가 말을 하지 않는 침묵을 선택하면서 글로 남긴 글에서 서로가 가졌던 감정들은 소설에서 멋지게 전해진다. 단단하게 기록된 글이지만 보관되고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글들이 있다. 글에는 영혼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일상에서 만났던 인물의 내면까지 제대로 이해하게 하는 힘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영혼의 내면이 얼마나 응축되고 깊었는지 이해하면서 젊은 날 잘못 이해하고 말했던 그를 회상하기도 한다. 단면을 알고 전부를 이해한 것처럼 오해하기도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소설의 인물들을 통해서도 보게 된다. 귀퉁이의 조각 같은 부분을 알면서 사람의 전부를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삶이 얼마나 많은지도 소설을 통해서도 알게 된다. 한 인물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퍼즐 조각들을 맞추어야 했는지 보여준다. 중고서점에서 발견한 책의 저자가 궁금해서 낯선 언어를 가진 도시를 향한 중년의 선생님의 과감한 선택과 용기, 여행길은 꽤 값진 여정으로 남는다. 철학자가 집필한 소설을 좋아하게 된다. 이야기로 만나는 저자의 세계와 가치들을 주워 담으면서 또 다른 저자의 책들을 읽고 싶다는 호기심을 자극받게 된다. 무더운 장마에도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 소설이 함께해 주었기 때문이다. 멋지다는 말을 무수히 떠올릴 정도로 감탄하게 한 소설이다.

의사였던 중고책의 저자가 졸업식에서 연설한 글아브라함과 욥을 통해 신을 향했던 마음의 흔적들도 기억에 남는 글이 된다. 성서와 시, 단어와 언어, 침묵과 글, 책과 인생, 구속과 자유, 귀족과 소작농, 부자와 노동자, 비밀경찰과 저항운동, 고문과 남겨진 흔적, 법과 판사, 종교와 불경한 사제, 사랑과 욕망, 죄와 고백 등 무수히 많은 것들을 매만진 소설이다. 지금도 단단하게 구축된 수많은 것들이지만 의사가 제시한 의문들과 타인들을 무수히 살폈던 움직임과 마음들을 기억하게 한다. 가난한 암환자에게 보였던 선의와 악독한 인물을 살려낸 의사에게 가해진 혹독한 판결과도 같았던 의사 얼굴의 침세례는 사형선고와 같았음을 떠올리게 된다. 여동생을 살리고자 처치한 순간적인 판단과 행동을 괴물처럼 바라본 가족들의 모습도 기억하게 된다. 군중속의 외로움이 무수히 감지되는 인물이었다. 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언어의 유희를 즐겼던 그의 시는 종교적인 부담감까지도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었음을 보여준다. 시의 자유, 언어의 자유가 얼마나 자유롭지 못하였는지도 보게 된다.

멈추었던 시간과 짧은 시간 속에서 긴 시간을 느끼게 한 여행길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정지된 시간으로 멈추기도 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짧은 시간 속에서 길게 만나게 상대적인 시간이 되기도 한다. 죽음은 갑자기 누구에게나 찾아오기도 한다. 아내의 죽음, 의사였던 중고책의 저자에게도 갑작스러운 죽음이 찾아온다.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온전히 자신에게 달려있음을 보게 된다. 복종하느냐, 관습을 의심하며 자유를 선택할지도 개인의 몫이 된다. 오래된 언어에 매료되어 살았던 중년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변화의 움직임을 하나씩 감지할수록 새롭게 전개되는 그의 시간들은 또 다른 가치로 남겨진다.

<요한복음>의 첫 구절에서 언어가 사람들의 빛이라는 사실을 소설 전부에서 찾게 된다. 독재적인 친근함친근함은 소리 없이 떨어지는 독이라는 글귀도 기억에 남는다. 더불어 이별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의 편에 서는 것이라는 문장도 매료된다. 어제의 이별과 오늘의 이별에서 스스로의 편에 선 이별들을 상기해 본다. 소설의 여러 인물들이 스스로 선택한 이별들도 하나씩 다시 주워 담는 시간도 가져보게 된다. 그들이 선택한 이별의 가치들은 빛나기 시작한다. 그들이 이별한 것들의 폭이 다양했음을 확인하게 되는 소설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여동생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 평화를 찾는다는 것, 자신과 화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평화로운 것인지 보여준 작품으로 남는다. 태어나면서 구속된 것들과 기대감에 억눌린 것들이 많았음을 스스로 자각하면서 해방되는 순간을 스스로 찾아간 그의 여정은 독자들에게도 큰 획을 그어준 소설로 남는다.


용암과 같은... 영혼은, 자기를 억누르는 모든 압제와 요구를 태우고 쓸어버렸다... 그는 자신을 향한 모든 기대를 실망시키고 금기를 깸으로써 구제됐고, 등이 굽은 채 판결을 내리는 아버지와 야심만만한 어머니 부드러운 독재, 평생 숨이 막히도록 고마움을 표시하는 동생으로부터 해방되어 드디어 평화를 얻었다. 스스로와도 화해했다. 향수병은 사라졌다. 이제 편안함을 주는 파란색과 리스본도 필요 없었다. - P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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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4-07-13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않는 1인입니다. 제게는 어른 데미안을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자유는 깃털처럼 가볍고 불확실성은 납덩이처럼 무겁다‘ ㅡ아마데우 혹은 페터 비에리 또는 파스칼 메르시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