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기 싫은 날엔 카프카를 읽는다 - 예술가들의 흑역사에서 발견한 자기긍정 인생론
김남금 지음 / 앤의서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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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소개하는 사람들이 낯설지가 않아서 고른 인문학 도서이다. 장래희망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장래 직업을 동의어로 생각하고 기록하고 말하였던 시절을 지금 보면 이상하다고 말하는 저자의 프롤로그에서 문득 멈추게 된다. 희망하는 것과 직업은 우리는 동일시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삶을 12년 동안 학교라는 공간에서 익숙해졌음을 의문을 가지게 한다. 왜 그렇게 성장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성장했던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다. 이것은 결코 당연한 사고의 범주가 되지 않는다.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더욱 나은 삶을 위해 나아가는 길임을 가르쳐 주고 배웠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직업을 꿈꾸면서 달려왔던 12년의 학창 시절이 공식적인 세월이지만 현실은 더욱 가혹한 것이 더 심각해진다. 태어나자마자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사교육 시장은 과열 분위기이다. 사교육 시장은 7년까지도 어마어마하게 과열된다. 19년이라는 시간을 미래 직업을 위해 달리는 아이들은 얼마나 지치는지 <일타 스캔들> 드라마에서도 보여주기까지 한다. 하지만 대학이 종착점이 아님을 사회인들은 누구나 알기에 그들의 노고는 또 다른 시작점임을 알게 된다. 직장에 자리 잡지만 그들이 꿈꾸었던 일과는 거리가 먼 업무부터 시작한다는 것에 또 한 번 혼돈과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지친 직장인들이 긴 세월 준비하고 희생한 대가가 이것이었냐는 자문의 시간은 퇴사와 이직으로 이어지는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누구나 고민하기 시작하는 현실 문제는 어디에서도 현답을 주지는 않는다. 그때 찾아다니는 것들이 술, 오락문화, 여행, 맛집 투어 등 수많은 것들이 열거되지만 되돌아오는 길목에서는 다시 헛헛해지는 기분을 감출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때 누군가는 책을 펼치면서 대안을 찾고, 치유를 받기도 한다. 위로를 받고 응원을 받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원하는 직업을 갖더라도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저자의 글을 만나게 된다. 직업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일찍 깨닫는 순간 우리는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수히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담아내는 내용들을 통해 진짜 삶을 살기 위한 다정한 속삭임들이 만나게 되는데 내용들은 어렵지 않으며 퇴근 후 한 챕터씩 읽고 잠을 청해도 될 정도로 토닥토닥 위로해 주는 글들과 수많은 유명한 사람들의 삶들이 소개된다. 좌절하고 절망하고 불안하고 갈등하는 직장인들에게 또 하나의 등불처럼 함께 곁에서 걸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만날 수 있는 내용들이 전해진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의 일부가 되는 법

일상의 감옥에 갇히는 사람 & 일상을 이기는 사람

지겨운 밥벌이가 신성한 밥벌이가 되기까지

크게 3가지 주제로 나누면서 소개된 인물들은 예술가들이다. 다양한 인생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자신과 다르지 않는 상황임을 포착하기도 하면서 자기 긍정으로 나아가는 인생론으로 단단하게 자리 잡는데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조기 퇴직과 파이어족이 될 때까지의 노력과 이후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도 궁금했는데 꽤 긴 세월이 지난 뒤돌아보니 후회되지 않는 선택이며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살아가지 않을 수 있었던 선택이었다는 것을 그때의 우리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게 된다. 좋아하는 것을 즐기기 위해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한 헤밍웨이의 말과 직접 경험하면서 얻은 것들이야말로 진짜 삶을 즐기는 것임을 알게 된다. 퇴사를 준비하는 삶, 파이어족이 되는 삶은 긴 세월 준비된 것임을 떠올리게 된다. 일상을 소홀히 보낸 『마담 보바리』 주인공도 책에서 언급되며, 외로움은 자기 내부에 있다는 사실을 언급한 인물도 책에서 만나게 된다. 당신은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명리학적 접근도 흥미로웠고 지금 어떤 계절이며 어떤 계절들을 지나왔었는지도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수도사처럼 최소한의 물질에 의지하고 막대한 부를 철저하게 외면한 인물이 누구인지도 만나게 된다. 직접 경험해 보고 나서야 고민의 의미를 깨닫는다는 내용과 자기만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언급된다. 갈팡질팡 고민 중이라면 직접 해보라고 권유하게 된다. 뭐든지 직접 경험해 보고 실망도 하고 실패를 할지라도 그것은 영원한 실패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때 얻은 경험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며 그 경험은 고유한 자산이 되기에 고민하는 젊은 청춘들이 있을 때마다 언제나 응원을 아끼지 않게 된다. 저자도 많은 경험들을 경험한 것을 책에서 언급한다.

많은 재산을 상속받는 사람들을 전혀 부러워하지 않는데 그들이 어떤 삶을 살다가 생애를 떠나는지 목도하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자식에게도 많은 재산을 증여하고 상속할 계획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이 얼마나 무료하게 사는지, 허송세월을 보내는지 알기에 땀의 기쁨, 절제의 기쁨, 노동의 기쁨, 계획의 기쁨을 즐기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자가 깃발을 흔드는 존재처럼 보이기 쉽지만 진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무수히 많은 문학들을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가 있다. 『환락의 집』 소설 내용도 생각나는 만큼 명료한 사실을 깨우치는 것에는 적절한 시간과 노력도 필요해진다. 책에서 만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작가들이 살았던 진짜 삶들을 매치하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도 일부분이지만 알게 된다. 차곡히 쌓여가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들이 꽤 흥미롭기까지 하였던 책이다. 그들의 인생사를 통해서 발견하게 될 것들이 무엇이 될지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질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즐기기 위해서는 나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대가를 치르고 얻었을 때, 그것을 아는 것이야말로 삶을 즐기는 것이다.

_헤밍웨이




직접 부딪혀 본 후에야 고민은 의미를 얻는다. - P181

자기만의 길을 걸었다는 점 - P178

수도원의 수도사들처럼 최소한인 물질에 의지. 가족의 막대한 부를 철저하게 밀어냈다. - P186

외로움은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자기 내부에 있다고 - P183

어떤 삶도 완벽하진 않다.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가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 P159

상속받은 재산이 많아 평생 돈 걱정 한번 해본 적이 없는데 J.J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무료하게 오래 사는 것뿐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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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번째 천산갑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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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리스 아역모델이었던 그와 그녀는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였지만 현재 그들의 삶과 계층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그녀는 흰 피부의 우아한 계층으로, 그는 거친 노동자 계층의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사람은 사회 계급을 상징하면서 귀천의 차이는 벽 하나 사이에 불과하다는 작가의 진중한 목소리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의 차이를 구획하고 계급으로 나누면서 사회를 지탱한 계급을 두 남녀의 이야기를 통해서 '진실'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소설이다. 두 계급을 상징한 그와 그녀의 이야기에서 작가는 계급사회의 진실을 다각도로 매만진다. 흰 피부를 가진 그녀는 부유함의 상징이며 불면증에 시달려서 일상이 부자연스럽기만 하다. 오로지 아역모델이었던 그와 함께 있을 때만 잠을 잘 수 있는 그녀는 그를 만나고자 시사회 행사를 핑계로 떠나게 된다. 그를 만났지만 그가 생활하는 집과 방은 그녀의 삶과는 대조를 이룬다. 그녀의 여행가방이 그의 방을 가득 채웠다고 표현할 정도로 그의 방은 매우 작은 공간이다. 그녀는 부유한 계급이라 명품 가방을 수집하듯이 구매하고 다 사용할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 정치인의 아내이며 연예인이다. 노동자 계급인 그의 삶은 작은방에서 아침식사를 위해 무작정 걷는 고행과도 같은 습관들을 고수하는 고집스러운 모습을 가진 가난한 사람이다. 출발은 같은데 왜 그와 그녀는 다른 현재의 삶을 살고 있는지 사회적 문제까지도 예리하게 조명하는 작가이다.

누군가는 부유함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누군가는 자신 안에 원인을 모르는 분노를 자신에게 화로 분출하면서 잠자는 동안 수많은 매듭들이 자신에게 생겨나는 그를 보게 된다. 그녀는 그와 아침식사를 먹고자 무작정 걷다 보니 배고픔에 시달려 자신의 샤넬백과도 바꿀 수 있다면 마다하지 않을 지경에 놓일 정도로 미칠 듯이 걸었던 경험이 없었음을 떠올리게 된다. 그녀가 놓쳐버린 것들과 가진 것들이 무엇인지 확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반면 그가 놓친 것들과 그가 지속적으로 가진 것들이 무엇인지도 소설은 서서히 보여준다. 특히 그녀가 놓쳐버린 것들에는 그녀가 만나지도 못한 자신의 아이들이 존재한다. 태어나지도 못하고 살해한 그녀의 아이들을 인지하면서 그녀는 자신을 연쇄 살인마라고 명명한다. 왜 태어나지 못하였는지 그녀의 대학교 시절 사건들과 시어머니의 남아선호사상과 남녀차별 문화까지도 작가는 매섭게 고발한다.

태아를 생명으로 인식하였던 그녀는 자신의 과오들과 어쩔 수 없는 사건들의 결과로 생긴 아기들을 쉽게 지워버리지 않은 여성이며 어머니이다. 한 생명을 낙태하고 낙태하기까지 죽을 고비를 넘기는 과정까지도 소설은 펼쳐놓는다. 반면에 생명을 잉태하게 주도한 남자의 무책임과 무모함을 의대생인 남자의 말과 태도에서도 고발하기 시작한다. 더불어 시어머니와 남편이 보이는 딸을 손녀를 대하는 태도까지도 놓치지 않는 작가의 섬세함이 기억에 남는다. 작가와 가까운 나라인 한국에서도 여전히 이러한 고통과 아픔과 그리움, 죄책감에 세월이 흘러도 낙태된 아이를 그리워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들을 어렵지 않게 듣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했던 낙태 수술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여성은 없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된다. "내가 연쇄 살인마라는 사실" (36쪽) 불면증의 원인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할수록 놀라웠던 작품이다. 또 다른 원인이 나타날수록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 흐름에 책장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녀가 그에게 외치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후반부까지 몰입하면서 읽었던 소설이다.

그녀에게는 그리운 딸이 있다. 딸이 죽기까지 보냈던 추억들과 죽음을 대처하는 남편의 태도에도 놀라움을 감추기는 어려웠다. 남아선호사상과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아버지의 태도에서는 부성을 찾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무엇일까? 시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을 대하는 태도와 며느리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보면서 남편을 어떤 양육태도로 키웠는지도 알게 된다. 단단한 벽으로 둘러싸인 유리벽에 갇힌 그녀는 불면증이라는 현상으로 그녀의 고통들이 드러난다. 그녀의 몸에 구멍 난 고통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가 분노의 대상을 찾지 못해 자신에게 화를 낸 다양한 고행들이 그의 구멍이 되었음을 소설을 통해서 이해하게 된다. "그의 산책은 노동이나 고행에 가까웠다... 몸 안의 알 수 없는 분노를 해소하는 것... 누구에게 화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자기 자신에게 화를 냈다. 밤에 잠을 자는 동안, 몸 안에 수많은 매듭이 맺혔다." (49쪽)

아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알게 되는 과정이 그녀의 불면증을 치유하게 되는 계기가 되면서 숙면을 할 수 있는 그녀로 거듭나게 된다. 그녀가 그를 향했던 마음이 외면당했던 이유도 그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보여주기 시작한다. 사라진 그의 어머니, 죽기 직전에 아들에게 말하는 아버지의 언행들이 거친 사건들로 그를 날카롭게 할퀴는 상처가 된다. 그녀에게도 팽팽한 피부가 인생을 이긴 것처럼 속일지는 몰라도 그녀 눈 안에 있는 아픔은 지우지 못하였다고 작품은 전한다. 보이는 것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내면에 쌓인 아픔과 슬픔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매만지면서 그와 그녀를 통해서 들려주는 소설이다.

운명이 세운 시간의 각도를 포기하고 스스로 우주가 되고 싶다는 그에게 백발의 요가 강사가 말해주는 말을 기억하게 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어린아이를 꼭 껴안아주라는 말의 의미를 쉽게 잊어서는 안되는 작품이다. 상실의 상처를 치유하기까지 무수히 많은 고행의 시간들을 보냈을 사람들에게 진중한 말을 건네주는 말이 된다. 무수히 많은 기다림을 경험한 그녀가 살아간 방식은 수동이 아닌 능동의 태도였다는 것을 서서히 보여준다.

그의 아버지는 식칼 같기도, 굶주린 들개 같기도, 고양이 발톱 같기도 했다는 문장도 기억에 남는다. 어린 시절의 아이와 어른이 된 삶에 무수히 많은 구멍들의 원인을 찾아내는 시간은 필요해 보인다. "인생에 행복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은 법" (62쪽)이라고 말하는 이유까지도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들의 선택들을 유추하게 된다. 더불어 거짓말과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이 어떠한지도 소설은 언급한다. 거짓말은 신선하고 아름다워 입에 잘 맞고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은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가 입은 옷은 전부 진한 회색이라고 설명한다. 노동자 계급의 상징이며 그의 노동은 땀의 냄새로 얼룩진 노동자의 삶이 된다. 그의 땀 냄새는 나무집 냄새라고 작가는 자연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선택한 삶에는 작은 집, 작은방, 진한 회색옷들이다. 무엇에서도 탐욕이 드러나지 않는다. 대조되는 그녀의 남편의 삶과 언행들은 교묘하고 계략적이다. 거짓말로 얼룩진 남편의 언행들과는 그의 삶은 대조를 이룬다. 그녀와 그의 이야기에서 상실과 상처, 아픔과 슬픔, 그리움들이 혼재하지만 진짜 삶을 선택하고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를 인물들을 통해서 보여준 작품이다. 그녀의 아들이 남긴 빵조각들을 통해 그녀가 아들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그녀에게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된 그녀에게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지는 소설을 통해서 만나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의 사회 계급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같은 침대에서 출발했으나 지금 그녀는 흰 피부를 지닌 우아한 계층이고, 그는 거칠고 난폭한 노동자 계층인 것이다. 49

수많은 명품을 샀다. 남편은 그걸 보고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걸 다 쓸 생각이야?" 쓴다고? 쓴다는 게 뭔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이나 콩쿠르 수상작 문학 전집을 넣고 다니면 이것을 쓰는 것인가? 그녀는 이 명품들을 전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가져가서 약간 과장된 부러움을 끌어낼 작정이었다. 43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은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는다.거짓말은 신선하고 아름다워 입에 잘 맞는다. - P14

그가 입은 옷은 전부 진한 회색. 땀 냄새는 나무집 냄새였다. - P41

마음을 활짝 열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어린아이를 꼭 껴안으면 돼요. - P52

운명이 세운 시간의 각도를 포기하고 스스로 우주가 되고 싶었다. - P51

그녀도 파리에 ‘진실‘의 얼굴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부유한 사람이 있고, 귀천의 차이는 벽 하나 사이에 불과했다. - P43

두 사람의 사회 계급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같은 침대에서 출발했으나 지금 그녀는 흰 피부를 지닌 우아한 계층이고, 그는 거칠고 난폭한 노동자 계층인 것이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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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보이 - 전면개정판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1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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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그림의 소년이 강열하다. 이야기가 궁금했던 청소년 소설은 기대 이상의 것들을 선물해 준 작품이다. 15살 손녀인 제스에게는 부모님과 할아버지가 있다. 그림을 그렸던 할아버지는 고집도 대단한 분이다. 소녀가 수영을 좋아하는 것을 응원한 할아버지는 유일하게 손녀에게만 친절하였다. 할아버지가 그림을 그리는 준비를 하도록 손녀에게만 허락하였던 분이다. 그런 분이 점점 체력이 눈에 띄게 허약해진 상황이다. 부모님은 휴가를 할아버지가 원하는 여행을 준비하게 된다. 어렸을 때 고향집이 불에 타서 부모님도 사망한 사건으로 할아버지는 고향을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한 번도 과거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도 좋아하지 않았다. 현재 지금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분이라 유언장 작성하는 것도 힘들었다고 한다. 악해진 할아버지가 갑자기 자신의 고향을 찾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향에서 하고자 했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들려준다.

할아버지가 고향에서 만나고자 했던 친구가 있다. 알프레드라고 하는 친구분이다. 살아있을지 확실하지도 않는 상황에 부모님은 그분을 수소문하게 된다. 그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면서 할아버지와 친구분이 얼마나 성향이 다른지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분을 통해 제스는 할아버지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된다. 강의 시작점, 발원지에서 바다까지 수영을 하고자 했던 젊은 날의 할아버지의 꿈과 리버 보이라는 소년이 점차적으로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제스가 휴가지에서 느끼게 되는 기묘한 느낌들이 전해진다.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며 인기척도 없는 곳이지만 자신을 보고 있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이지 않지만 느낌만으로 느끼는 기운을 제스는 혼자만 비밀로 가지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 강에서 수영하는 리버 보이를 보게 된다. 그리고 리버 보이가 수영하는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다시 만나고자 노력하며 만나게 된 후 대화를 나누게 된 제스는 리버 보이를 서서히 알아가게 된다. 리버 보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며, 젊은 날 할아버지의 꿈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제스는 리버 보이를 만나고자 바다까지 수영을 하게 된다. 두려움과 불안을 이겨내고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과 할아버지의 꿈을 향해 제스는 바다를 향해 수영을 멈추지 않는다.

강의 시작점에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나누는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사람의 일생을 보는 것 같지? 강의 일생일 수도 있고. 강은 여기에서 태어나 자기에게 주어진 거리만큼 흘러가지.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곧게 때로는 구불구불 돌아서,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바다에 닿을 때까지 계속해서 흐르는 거야. 난 이 모든 곳에서 안식을 찾아. 206

강물은 알고 있어. 흘러가는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기든, 무엇을 만나든 결국엔 아름다운 바다에 닿을 것임을. 결말은 늘 아름답다는 것만 기억하면 돼. 하지만 죽음은 아름답지 않아. 제스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말했다. 207

삶과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이해하는 것이 좋은지 등을 밝혀주는 대화이다. 인간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이며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도 이들의 대화에서 전해진다. 죽음은 평안을 찾는 것임을 새로운 출발이라는 것을 이해시킨다. 죽음은 고통도 끝나고 새로운 출발이 되는 여정임을 바람과 물이라는 존재로 우리 주변을 이루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세계를 받아들이게 한다. 죽음은 끝이라고 이해한다면 슬픔만이 깊게 자리 잡겠지만 죽음을 다른 시선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명해 주는 이 소설은 깊은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남는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들을 우리는 경험하기도 한다. 환상이라고 규정하지만 신비롭고 기묘한 일들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죽음도 슬픔으로만 치장하지 않고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힘도 필요하다는 것을 소설에서도 보여준다.

할아버지가 완성하고자 했던 그림의 의미도 친구분이 자화상이라고 말하는 순간 이해하게 된다. 인물을 가장 많이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그의 자화상 그림도 제대로 인지하게 된다. 아들과 며느리, 손녀도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친구분은 그의 꿈을 알기에 그림을 자화상이라고 이해하면서 멋진 그림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완성한 그림과 병원으로 가겠다고 말하는 의지와 마지막 모습이 고통스럽지 않게 떠났다는 이야기와 얼굴만으로도 잘 떠났음을 알려주는 장면이 된다.

어떤 여정으로 삶을 살아갈지 자문하게 하는 소설이다. 청소년 소설이지만 어른들에게도 의미가 깊은 소설로 남는다. 『해리포터』를 제치고 만장일치로 카네기 메달 수상한 작품이다. 전 세계 21개국의 십 대들에게 최고의 고전으로 자리를 잡았던 이유가 궁금해서 펼쳤는데 큰 수확을 얻는 명작으로 기억에 남을 소설이다.

혼잡한 도시 생활자와 호젓한 숲과 강물이 흐르는 곳에서 성장한 청소년의 성장기는 분명히 다른 영혼으로 채색될 것이다. 자연을 긴 시간 관찰하고 바라보며 꽃과 생물들의 움직임을 무한히 바라보면서도 성찰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서도 보게 된다. 리버 보이의 움직임과 특이한 특징들이 상징하는 것들과 대화 내용도 쉽게 잊히지 않을 작품이다. 더불어 제스의 어머니가 기발하게 딸이 발견될 곳을 유추한 상황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된다. 할아버지의 영혼이 떠났음을 인지한 제스가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과 '관'이라고 말하는 것에 연습 삼아 들어갔던 할아버지의 언행들까지도 죽음을 준비한 모습들로 이해하게 된다. 죽음이 막연히 슬픈 것만은 아니다. 아쉬움이 남지만 최선을 끝까지 다했던 할아버지의 모습과 리버 보이의 모습까지도 기억하게 된다.




재능이 가져다준 명성이나 돈에는 눈금만큼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평생을 그런 것들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다. 그림에 대한 열정 - P65

둔치의 푸른빛은 짙어지다 못해 갈색 기운이 감돌았고, 창백했던 불빛은 금색과 은색, 파란색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 바다를 향해 점점 넓어지는 강어귀 주변으로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림은 여전히 막연했지만 예전보다 더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고...... 소년은 없었다. - P73

아름답지 않은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이겠지 - P207

바다에 도달하면,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준비를 하지. 그들에겐 끝이 시작이야. 난 그 모습을 볼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껴. - P207

강물은 알고 있어. 흘러가는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기든, 무엇을 만나든 결국엔 아름다운 바다에 닿을 것임을. 결말은 늘 아름답다는 것만 기억하면 돼. 하지만 죽음은 아름답지 않아. 제스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말했다. - P207

사람의 일생을 보는 것 같지? 강의 일생일 수도 있고. 강은 여기에서 태어나 자기에게 주어진 거리만큼 흘러가지.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곧게 때로는 구불구불 돌아서,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바다에 닿을 때까지 계속해서 흐르는 거야. 난 이 모든 곳에서 안식을 찾아.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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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4 소설 보다
서장원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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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소연 소설 『그 개와 혁명』

소설과 인터뷰 글로 구성된 서장원, 예소연, 함윤이 소설을 만날 수 있는 단편소설집이다. 2024년 뜨거웠던 여름날 골라서 읽었고 다시 펼친 문장들은 예사롭지 않게 마음을 휘젓는다. 어떻게 작품을 구상하였는지도 들려주는 인터뷰 글도 구성된다. 함윤이 소설 『천사들』에 이어 예소연 소설 『그 개와 혁명』을 펼치면서 작가가 오랜 시간 바라본 한국 사회를 함께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첫 문장 / 태수 씨는 죽기 전까지 통 잠을 못 잤다.

우리의 시간이 충만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진실된 마음을 여러 날을 사유하게 한다. 한껏 차서 가득한 마음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살아왔는지부터 살펴보게 한다. 가득하고 벅찬 기분으로 시간들을 만끽하였는지 무심하지 않게 둘러보게 하는 문장이 좋았다. "여러분의 시간은 제 시간보다도 조금 더 충만하기를 바라봅니다." (97쪽)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는 그다지 충분하지 않는 소식들로 가득한 분위기이다. 모두가 충만하기보다는 일부만이 충만한 시간들로 채우고 배불리는 것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 문제이다. 문학은 그러한 사회를 스쳐지나치지 않는다. 그것을 우리들 앞에 가져다 놓고 충만하지 못한 이유들을 작가는 조각조각 들여다보게 한다. 그중의 하나가 죽음이다. 자본주의의 문제를 직시한 작가의 시선은 예리하게 전해진다. "자본의 배를 불리는 식으로는 사회는 올바르게 굴러가지 않는다." (54쪽) 죽고 싶은 마음과 살고 싶은 마음을 교묘하게 알아챈 자본주의는 환자를 살리는 방식으로 죽인다고 말하는 인물이 자신의 죽음보다도 남겨진 자식들이 살아갈 사회와 세상을 더 걱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냥 죽고 싶은 마음과 절대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매일매일 속을 아프게 해. 그런데 더 무서운 게 뭔지 알아. 그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알고 온갖 것들이 나를 다 살리는 방식으로 죽인다는 거야. 나는 너희들이 걱정돼.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돈이 더 많이 들어서. 73

공 여사, 자중하시오. 우리의 적은 제도잖아. 82

암 진단비, 암 수술비, 항암치료와 요양병원 비용은 죽는 비용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는 비용은 죽는 비용에 견줄 수 없다는 예리한 문장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꼬집는다. 사는 비용도 만만찮았던 2024년 한국 사회에서 죽는 비용이 가중된다면 얼마나 힘든 세상을 살아갈지 자녀를 걱정한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무거운지도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자본주의에 휘둘리지 않는 식견이 요구되는 시대이지만 학교교육과 사회는 과소비를 더욱 부추기면서 잘 살아갈 수 있는 길과는 멀어지게 하는 것이 요란스럽기만 하다. 수많은 길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을 볼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책이다. 이 책에서도 아버지가 딸과 나누는 대화에서 자본주의 사회에 남겨질 자녀들을 걱정하고 우려하는 마음들이 감지된다. 죽는 비용과 사는 비용을 작가만의 방식으로 펼쳐놓는 것에 매료되면서 작품은 더욱 깊은 질문들로 초대되기 시작한다.

자본주의의 민낯을 여러 도서들을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뻔해 보이는 방식을 답습하면서 소수 권력자들은 그들의 배만을 불리고자 안간힘을 쓰는 사회임을 잘 바라보는 힘이 필요해지는 시대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임을 잊지 않아야 하는데 적이 누구인지도 소설은 명확하게 짚어낸다. 바로 자본주의에 유용되는 제도들을 파악하는 힘이 절실해진다. 하지만 그러한 관심은 사치라고 생각하면서 『죽도록 즐기기』책에 등장하는 많은 군중들은 분별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된다.

주식으로 천만 원을 잃었다는 인물도 등장한다. 그는 왜 주식으로 노동한 소중한 비용을 잃게 되었는지 자문해야 하는 인물이다. 사회적 분위기, 흐름에 죽도록 즐기기 자세로 무분별하게 투기하였음을 짐작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렇게 끊임없이 손짓을 하는 사회이다. 그것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힘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지도 스스로 구해야 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이다.

사회는 생각하지 말라고 부추긴다. 책을 읽지 않아야 생각하는 힘이 없어질 것이며 글쓰는 힘이 없어야 저항력이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유희만을 쫓고 즐거움과 오락만을 쫓는 것이 점점 비대해지는 시대이다. 하지만 그러한 소란한 흐름과 유행에도 잠잠히 자신만의 세상을 지켜내고 고용하게 바라보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빛나기 시작한다. 바로 작가들이며 그 책들을 읽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둡지만 희망을 잃지 않게 된다. 한국문학이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에도 기대감을 감추기가 어려워진다. 읽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세상에 소설에 관심을 가지는 독자층이 많아졌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보는 가을이다.

딸이 2명이었던 태수가 있다. 그의 죽음과 장례식장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상주가 없다고 생각한 태수의 사고방식과 장례식장에 온 몇몇 노인이 아들이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장면과 대응한 딸의 마음까지도 살펴보게 한다. 이해되지 않는 사회가 바로 한국사회이다. 딸을 자식 취급하지 않는 이유와 그들이 고수한 인습과 관습들을 하나씩 상황들을 통해서 펼쳐놓는다. 많이 변화되고 있는 과도기를 보내는 한국 사회이지만 아직도 단단하고도 바뀔 생각을 하지 않는 남아선호사상에 아직도 놀라울 따름이다. 농경사회도 아닌데 아직도 아들이 상주 노력을 한다는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장례문화도 다시 살펴보게 된다.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해진다. 죽음 이후는 그리움으로 남는 것이 좋은 것인데 사회는 여전히 상주는 남자여야 한다고 옛 방식을 고수한 세대 간의 사회문제도 꼬집어내는 소설이다. 답습하지 않는 자세가 절실해진다. 누군가 그들의 방식을 고수한다고 따라가는 것은 무의미하다. 의미 있는 것은 그러한 것들이 아니다. 무의미와 의미를 진지하게 사유하는 힘이 잘 사는 방식이 된다는 것을 태수라는 인물을 통해서도 보여준 소설이다. 태수가 놓친 것들이 무엇이며 인지하지 못한 것들이 무엇인지 소설은 번쩍 들어 올린다.

노동 문제에는 비판하지만 가사 노동은 외면하는 그의 태도에는 문제가 보이지만 그는 마지막 삶의 순간까지도 깨닫지 못했음을 작품은 매만진다. 차별을 직시하는 힘, 약자를 바라볼 수 있는 힘이 필요한 시대이다. 혐오와 분쟁이 아닌 연대와 이해, 포옹이 절실하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자세로 서 있는지 질문을 아끼지 않는 작품이다. 태수 씨처럼 사는지, 장례식장의 몇몇 노인들처럼 살고 있는지, 환경운동과 페미 운동, 가사노동, 노동문제까지도 관심을 가지는지 돌아보게 한다. 고학력자이면서 30대 여성을 줄임말로 고삼녀라고 말하는 사회에서 그녀들의 마지막 종착지가 어디인지도 여실히 보여주는 소설이다. 고학력의 여자가 어디까지 쓰임을 다하고 어떻게 사회에서 쓰임을 다하는지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개발팀 고삼녀들의 마지막 종착지. 우스갯소리.고심녀란 고학력자 30대 여성의 줄임말 - P70

태수 씨는 내가 상주를 할 수 없는 제도가 몹시 못마땅하다고 했다. 내가 상주지? 응 - P79

몇몇 노인은 완장을 찬 내게 아들이 없어 안타깝다는 소리를 했다. 나는 그렇게 안타까울 일은 아니에요라고 맞받아쳤다. 애도하러까지 와서 굳이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더 이해되지 않았다. 사촌 동생이 남자라는 이유로 상주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도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 P68

제사상 차리는 것... 반바지 못 입게...불필요한 인습이라고.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 아버지 제사면 직접 과일이라도 놓으라고... 태수 씨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우리에게는 각자의 역할이 있고 당신은 그걸 응당 받아들일 뿐이라는 듯이... 나는 분명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는 태수 씨의 모습을 좋아했던 것인데. - P52

유연한 노동 문제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불가산 노동인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사회는 조리 있게 굴러가야 하지만, 가족이라는 제도 안의 조리는 다른 문제였던 것이다. - P59

나도 태수 씨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어떤 사람인데..."모든 일에 훼방을 놓고야 마는 사람." - P71

자본의 배를 불리는 식으로는 사회는 올바르게 굴러가지 않는다. - P54

온갖 것들이 나를 다 살리는 방식으로 죽인다는 거야. 나는 너희들이 걱정돼.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돈이 더 많이 들어서. - P73

공 여사, 자중하시오. 우리의 적은 제도잖아.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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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수집 노는날 그림책 18
빅투아르 드 샹기 지음, 파니 드레예 그림, 박재연 옮김 / 노는날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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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스위스 아동도서상, 2024 벨기에 Lu et Partage 상, 2023 프랑스 Prix Millepages 상 수상작 그림책이다. 120쪽을 채우고 있는 그림들과 글은 큼직한 사이즈의 책만큼이나 볼거리, 생각거리를 충분히 전달하는 그림책이다. 수상작의 가치가 궁금해서 고른 책인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7명의 아이들이 수집한 7가지의 보물들은 무엇일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수집한 보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리고 그들이 수집한 보물들을 어떤 곳에 간직하고 어떤 방식으로 보물들을 경험하고 있는지도 들려주는 7가지의 이야기이다.

정원을 가지고 싶었던 아이가 있다. 하지만 그 소원은 매년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아이는 스스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원을 가지기 시작한다. 들꽃들을 수집하는데 같은 종류의 들꽃들을 수집하지는 않으면서 먼지가 소복한 두꺼운 사전에 끼워서 말린 들꽃들을 우연히 발견한 아이의 아버지가 핀셋으로 아이에게 또 다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알려주게 된다.

차곡히 쌓인 말린 들꽃들을 정리하다 보니 아름다운 정원이 아이의 품에 존재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내용이다. 자연의 아름다운 꽃의 색들이 말려지는 과정을 통해 변하는 것도 아이는 보물을 수집하는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 터득하고 이해하게 된다.

다른 아이는 돌들을 수집하면서 돌을 수집하게 된 사연도 들려준다. 별에서 떨어진 돌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만큼 돌을 다양하게 사유하게 한다. 어떤 아이는 손을 수집하는데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들을 수집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누군가가 사라질 때까지 손의 의미가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닌 보물인지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말을 좋아한 아이를 위해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조각말은 아이에게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할아버지가 된다는 것도 들려준다. 가족들이 있지만 쉽게 잊히는 존재도 있고 영원히 긴 시간 우리와 함께 존재하며 가끔씩 떠올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존재들도 있다. 그들이 잊히지 않는 이유와 의미를 이 그림책을 통해서도 함께 상기하면서 우리의 존재는 어떤 의미로 가족들에게 기억되는지 질문을 아끼지 않게 된다. 육체는 사라지지만 존재와 의미는 기억 속에서 소중한 의미로 남겨지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아이의 조각말을 통해서, 할머니의 어린 시절 손을 통해서, 심장소리를 통해서 부여된다.

기억한다는 것과 기억된다는 것을 사유하게 한다. 강제로 기억하라고 말하는 것과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의미가 다르다. 제사 음식과 명절로 많은 여성들이 고통받는 한국 사회의 문화와 가부장제는 흐릿해지는 전통으로 사라지고 있음을 보는 사회이다. 자신의 죽음을 다른 여성의 고통으로 남겨놓지 않고자 미리 기억하기 좋은 의미로 전달하면서 여행 다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아지는 분위기이다. 지금도 기억하는 외할머니와 할머니가 있고 아직도 이야기를 나누는 의미가 부여되는 사람들이 있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들이 아직도 우리와 함께 하고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 된다는 것을 이 그림책을 통해서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그리움이 눈물이 되기도 하고, 고마움이 기억이 되는 보물들을 함께 펼쳐볼 수 있었던 그림책이다.

복잡함보다는 단순함이 아름답다는 것을 그림책을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글로 전달하고 그림으로 아낌없이 담아낸 그림책 덕분에 작가들의 정서를 무한히 전달받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온전히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과 삶, 죽음까지도 관조하게 하는 내용들이다. 좋아하는 계절, 좋아하지 않는 계절의 이유, 수집하는 즐거움과 기쁨, 그리고 의미들이 가득해진다. 슬프고 아름다운 말의 눈동자에 대한 문장에서도 감동을 받는 책이다.

조약돌들을 모두 가질 수 없음을 알고 선택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포기하는 것도 배우는 아이도 있다. 특히 다른 조약돌과 부딪혀 흠집이 난 조약돌을 바라보는 시선도 머무르게 한다. 인생에서 불행도 찾아오고 실패도 찾아오지만 우리는 그것이 인생 전체의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한 부딪힘과 흠집이라는 사건이 거듭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도약이 되는 출발선이 된다는 것을 조약돌을 모은 아이의 흠집이 난 조약돌에서도 배우게 된다. 아름답다, 성공의 기준은 완벽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패와 불행을 이겨내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며 아름다움이라고 믿는다. 이겨내고 버티면서 삶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성공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된 그림책이다.



언제가 될지 모를 그 시간이 올 때까지,

심장소리를 수집합니다.

당신의 기억, 나의 기억.

당신의 심장은 이곳에서 계속 뛸 거예요. 당신이 떠난 뒤에도 말이지요...

몇몇 조약돌을 골라냈고 나머지는 버려두었습니다. '선택'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 셈이지요.

다른 조약돌과 부딪쳐 흠집이 난 조약들도 있고요. 이런 돌들은 꽤나 이상적이에요.

젖었을 때는 보석처럼 밝게 빛나던 조약돌이었지만, 물기가 마르고 나면 평범한 자갈처럼 보이는 조약돌... '이 악동들!'

사전을 열어 봅니다. 매번 놀라움을 숨길 수 없죠!... 납작하게 잘 마른 꽃들이 꽃밭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손은 클레오의 할머니, 마들렌의 손이에요. 할머니가 클레오보다 어렸을 때 남긴 거예요.

내 딸을 위한 거야. 항상 손이 필요할 거야... 언젠가 내 손은 사라질 거야.

슬플 때면 잠자는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리죠... 조개들도 루이즈도 더는 혼자가 아니에요. 루이즈는 미소를 짓습니다... 바다 내음 가득한 바다 수선화로 주머니를 가득 채웁니다.

가을은 오마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에요...

밖에서 나는 장작불 냄새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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