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의 소설들을 계속 찾아서 읽게 된다. 최근에는 『원도』를 읽었고 『단 한 사람』, 『해가 지는 곳으로』도 다시 밑줄 친 글들을 읽었다. 작가의 작품들을 만날 때마다 작가가 힘주고 있는 것과 주시하는 것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작품들은 다르지만 작가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거듭해서 살펴보게 된다. 구의 증명도 그러한 과정 중에 다시 재독한 소설이다. 살아간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을 작가는 어떠한 시선으로 관조하고 있는지 이 소설을 통해서 그리고 『원도』라는 소설과 『단 한 사람』, 『해가 지는 곳으로』 모두를 집약해서 살펴보게 된다. 어떤 소설은 읽기 힘든 것도 있었지만 이 작품은 아니다. 다시 읽으니 또 상기되는 죽음과 산다는 것의 의미를 관조하게 한다.

세 인물의 죽음부터 살펴보게 된다. 병들어서 죽은 이모와 돈 때문에 죽은 인물, 교통사고로 죽은 아이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시작하지 않을수가 없다. 돈 때문에 파장이 일어나는 세 인물의 죽음들을 보게 된다. 노마는 왜 교통사고를 당하고 죽었어야 했을까? 노마의 가정환경과 부모의 노동환경을 직시하게 한다. 노마의 교통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었던 상황임을 감지하게 된다. 노마의 죽음을 슬퍼하고 자책하면서 긴 시간 힘들어한 구와 담만이 작품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이외의 인물들은 빠른 시간 노마라는 존재를 잊고 일상이라는 곳으로 복귀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돈의 위력은 대단하다. <댓글 부대>영화를 시청 중인데 이 소설의 문장들이 더욱 예사롭지 않게 드러나게 한다. 큰 입을 벌리고 삼키며 인생을 작살낼 수 있는 것이 돈이다. <댓글 부대>와 함께 이 소설을 읽어서 돈을 묘사한 작가의 문장들이 더욱 섬뜩하게 두드러진다. 돈이 강자라는 것을 이 소설의 죽음과 긴밀하게 대조를 해보게 된다. 작가의 작품들에는 돈이 밀접하게 등장하는 <원도>소설도 떠올려보게 된다. 뾰족해진 이빨로 삼켜버리는 큰 입을 가진 원도라는 인물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이유를 찾는 여정은 뜨거워진다. 이러한 과정조차도 없이 사라진 죽음의 주인공들은 어떻게 상기해야 하는지도 대조를 이루게 된다.

유전적인 병으로 빠르게 죽어가는 이모의 죽음에도 돈은 깊숙하게 자리잡는다. 구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빚이 생기는 상황에는 부모의 빚이 엄청난 불행의 원인이 된다. 연대책임자로 지정된 자식은 어린 나이에 시장과 공장, 편의점에서 노동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줄어드는 빚이 아니라 일을 할수록 늘어나는 빚이 구를 집어삼키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돈도 유전되고 병도 유전되면서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은 더욱 가난으로 내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를 소설 인물들을 통해서 보여준다. 출발부터가 다른 인물들이 맞이한 죽음에는 돈과도 밀접하다는 사실을 작가는 매만진다.

담이 사랑한 구, 구를 사랑한 담의 사랑이야기에는 몇 번의 헤어짐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서로를 향하게 된다. 담의 사랑이 절절하다. 담은 구의 모든 상황들을 알고 있고 침묵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이다. 생명을 물건 취급하는 사회에서 구는 버티면서 살아낼 수 있을까? 거래되는 물건이 생명이라는 사실은 사회를 고발하는 날것으로 자리잡게 된다. 유일하게 구에게 용돈을 쥐여준 어른은 담의 이모뿐이었다. 구의 부모도 사채시장의 어른들도 아니었다.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에게 각인된 어른은 담의 이모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한다. 학교 선생님도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어른이었다. 무관심하다는 것은 엄청난 파장으로 사회를 침몰시킨다. 구의 죽음은 한 생명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소설의 가치는 증대된다.

군대 선임이 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깨끗한 곳에서 자라고 돈을 챙겨준 사람도 기억하게 된다. 듣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러하다. 듣고 담아두었던 것들이 마음이 되어서 구를 챙겨주는 군대 선임에게서 인간적인 냄새를 맡게 된다.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면서 사냥감을 찾아다니는 사회에서 온기가 남아있는 인물을 만날 수 있다는 건 기적인지, 행운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훈훈한 정이 사라지고 차가운 겨울의 냉기만을 느끼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는 인생이 되어버린다. 구에게는 그 겨울이 너무나도 빨리 찾아왔고 겨울이 더 냉혹했다는 것을 함께 체감할 수 있었던 소설이다.

구의 죽음에는 구의 책임을 찾을수가 없었다. 도망가지 않고 해결해 보려는 의지를 가졌지만 부풀어 오르는 빚의 규모에 구는 결국 침몰하게 된다. 어른답지 않은 어른이 부모였고, 어른다움을 지켜내지 못한 학교 선생님의 무관심도 깜빡거리는 신호를 보지 못했던 것에도 이유를 찾게 된다. 이해되지 않는 사채 구조의 엄청나고 위협적인 것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주시하게 된다. 헝클어진 모든 것들이 구를 집어삼켰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구의 밀도가 높았던 소설이다.



사람은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다.

사람은 뭐든 죽일 수 있고 먹을 수 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친다.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고 작살낼 수 있다.

그리고 구원할 수도 있다.

사람은 신을 믿는다. 그리고 신을 이용한다...

허기 때문이 아니라도 (사람을) 먹었을 것이다.

그의 손이 탐나서, 그의 발이 탐나서,

그의 머리, 그의 얼굴,...

그들은 미개한가, 야만적인가.

지금의 인간은 미개하지 않은가.

돈으로 목숨을 사고팔며 계급을 짓는 지금은,

돈은 힘인가.

약육강식의 강에 해당하는가. 174

아이는 물건에도 인격을 부여하지만

어른은 인간도 물건 취급한다. 173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실패는 예정되어 있는 거 같고,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는 거 같고,

그래서 이미 진 것 같았다. 97


구 대신 들어온 다른 것들이

터무니없이 옅고 가벼워서

구의 밀도를 대신하지 못했다.

구는 엄청나구나. 54




















빚이든 돈이든 ...
우리가 살아 있을 때 다 해 주고, ...
아무것도 물러주지 말자. - P172

인간의 돈도 유전된다.
유전된 돈으로 돈 없는 자를 잡아먹는다.
돈이 없으면 살 수 있는 사람도 살지 못하고,
돈이 있으면 죽어 마땅한 사람도 기세 좋게 살아간다.
노마는 왜 죽었을까. 이모는. 구는 왜 죽었나.
교통사고와 병과 돈.
그런 것이 죽음의 이유가 될 수 있나.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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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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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유명한 밀란 쿤데라의 마지막 소설이다. 한국어판 출간 10주년 기념 리커버 에디션으로 만나본 소설은 두껍지 않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이어서 읽는 작가의 소설이다. 표지 디자인부터가 눈길을 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리커버 디자인을 연상시킨다. 한 권씩 읽는 작가의 소설들은 단단한 마음부터 준비시킨다. 이 소설은 어떤 이야기일지 설레임으로 펼치게 된다.

소설을 두 번 연이어 읽게 만든다. 재독하는 시간은 꼭꼭 씹어먹는 작품으로 이어지게 한다. 밑줄 친 문장들을 다시 필사할수록 멋진 소설이라는 감동으로 이어진다. 상징적인 인물과 대화들이 주목받는데 작가의 삶을 알고 있기에 먹먹해지는 마음으로 작품을 음미하게 된다. 밀란 쿤데라를 찾아서』 책 덕분에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들과 인물들의 농담의 가치는 가중된다. 농담으로 언급되는 상황들과 인형극의 의미에 집중하게 만든다. 배꼽에 집중한 인물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와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던 날들과 짧은 시간 만남을 가졌던 어머니와의 기억속에 자리잡은 배꼽을 바라본 시선의 의미들은 천사, 배꼽이 없는 최초의 여자 하와에 대한 사유까지도 이어진다. 원하지 않았던 아이를 출산하기까지 어머니가 경험하였을 것들을 상상하는 아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어머니의 고통과 아버지와 자신이라는 두 사람의 고통의 근원까지 짚어낸다. 사과쟁이라는 사과의 의미, 서로가 사과하는 상황을 언급하면서 화해하고 사랑하는 방식이 왜 중요한지 강조하게 된다.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사과하는 것에 대해서 숙고하게 한다. 어머니와 같았던 존재는 작가에게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사과받고 싶은 것이 지닌 의미까지도 짚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감시와 감청을 당하면서 살았던 그의 인생의 조각들과도 연결시키면서 읽게 하는 소설이다.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어머니 생각만 하고 있어. 61

마지막 소설이라 더욱 밀착해서 읽게 된다. 응축된 의미들로 인물들이 지닌 상징성을 다양하게 떠올려볼 수 있었던 멋진 작품이다. 스탈린이 던진 농담이라는 이야기는 주변인에게는 결코 농담이 되지 못하였다. 농담을 주고받을 수 없는 상황이 지닌 경직된 사회적 인물이다. 고단한 긴 하루를 보낸 스탈린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불안한 심리에는 적과 비밀경찰이라는 보이지 않는, 형체가 없는, 설명할 길이 없는, 잡을 수 없는, 처벌할 수 없는, 심술궂게 불가사의한 어떤 위협으로 암시한다. 더더욱 혼란스럽고 신경이 곤두서 있으면서 "뭐가 두려운 거야?"라면서 질문을 던진다. 작가의 삶도 다르지가 않았음을 떠올리게 한다. 어머니 사진만이 남은 아들의 모순적 상황은 작가의 삶과도 다르지가 않다. 그립지만 만날 수 없고 존재를 거부당한 아들이 되어 살아간 작가의 인생까지 짐작하면서 읽게 된다. 작가가 그리워한 나라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지는 못했다. 서로 사과하는 세상의 상징성은 그렇게 작가의 삶과도 연결된다. 어머니는 아들을 연민과 경멸의 시선으로 배꼽을 바라본다. 그는 어머니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고 이야기된다.

아들의 배꼽을 뚫어지게 바라본 ... 연민과 경멸

그는 그녀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51

도둑들의 시대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조심하라고, 멍청아!" (58쪽) 누구를 향해 외치는 외침인지 일꺠워준다. 농담처럼 주고받는 대화와 웃음, 말이 아닌 말을 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대화중에 프랑스어를 하지 말라는 이유와 한 사람만이 깃털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며 두려워하는 이유까지도 작가의 삶에서 유추하게 된다.


체코슬로바키아 출생

1975년 프랑스 정착

2023년 프랑스 파리 세상을 떠났다.



보잘것없는 것의 가치와 어리석음이 강조된다. 뛰어나 봐야 아무 쓸데없다는 사실과 함께 해롭기까지 하나는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보게 된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도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눈 색깔도, 태어난 시대도, 나라도, 어머니도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언급된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권리들이란 아무 쓸데없는 것들에만 관련되어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것을 얻고자 발버둥칠 이유가 없다는 사실과 함께 무의미한 축제가 절정을 이룬다. 속물이며 거만한 사람, 나르키소스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강력한 권력에 대담하게 자기 생각을 말한 인물 흐루쇼프도 등장한다.

독창성이나 생각, 재능이 아니라 다만 지능으로 월급을 많이 받아서 수납장에 장식된 술병이 서서히 여왕으로 변하고 꺼내서 마시고자 하지만 다쳐서 다리가 불편해진 인물까지도 상징적이다. 겸허한 숭배로 이야기되는 것들도 떠올려보게 한다. 짧은 소설이지만 무엇도 가볍지가 않았다. 고찰하게 하는 힘이 강한 작품이다. 설명할 수 없는 거짓말과 설명할 수 없는 웃음은 인간과 인간의 삶을 조명한다.

거리들 이름과 야망, 허영, 거짓말, 잔혹성까지도 언급된다. 모든 인간이 경험한 고통을 기념하는 것들과 공원의 동상들의 의미까지도 함께 고찰하게 한다. 악마, 음모, 배신, 전쟁, 투옥, 암살, 학살로 가득하였던 스탈린을 등장시킨만큼 그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사람들의 영원한 어리석음을 내려다보고 웃을 수 있는 무한히 좋은 기분에 대해서도 설명된다. 이것은 조롱, 풍자, 빈정거림이 아니라고 말한다.

농담이 부풀어서 농담이 위험해진 세상은 의심과 신고, 신문을 받고 수갑과 불안이 침식하는 사회는 농담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로 이어진다는 것도 언급된다. 이 소설에서 인물들이 주고받는 농담들과 인형극도 의미심장한 짙은 색채를 띠게 된다.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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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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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에 길들여진 삶의 여정과 갑자기 찾아온 알 수 없는 열정을 멀리 보내지 않은 용기를 선택한다는 것을 곰곰이 살펴보게 하는 소설이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자신이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익숙한 직업, 삶을 갑자기 뒤편으로 넘겨버리는 단호함과 용기를 보여주는 인물이 있다. 우연히 다리 위에서 마주친 여자가 남긴 이마 위의 전화번호 숫자를 지우지 않고 자신의 수업시간에 들어간 선생님에게 찾아온 사건들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서점에서 구입한 책의 저자의 글을 번역하면서 읽고 리스본행을 과감하게 감행하는 그의 선택에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는 자력을 느끼게 되면서 그동안 그가 꾸준히 구축했던 라이프 스타일에서 예측할 수 없는 리스본행 여행임을 알게 된다. 주인공인 선생님이 의심조차 하지도 않았던 그만의 삶의 구축을 흔들어 놓은 것과 발길이 향하는 리스본에서 그가 찾아간 책 속의 저자의 삶은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 하나씩 마주보게 되는 여정이 된다.

책을 집필한 저자는 의사이다. 출간을 한 사람은 그의 여동생인 간호사였고 파란병원이라는 건물을 찾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책의 저자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삶의 궤적을 일탈하는 용기, 알 수 없는 호기심에 이끌려 단단한 안전한 궤도를 이탈하는 그의 여정에서 무모함과 기대감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리스본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만난 수많은 인연들이 보여준 태도와 말, 삶까지도 무의미한 것들은 하나도 없었다. 전혀 다른 삶, 모양새로 살아가는 그들의 인생들의 아주 작은 단편적인 흔적이지만 그들과 나누는 대화, 그들의 기나긴 삶의 흔적들에서도 허투루 버릴 흔적들은 없었던 소설이다.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며 기억하느냐에 따라 깨닫는 것들도 무수히 많아진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서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단단한 갑옷 같은 하나의 사람이 갑자기 여행을 다녀와서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의사의 모습을 회상하는 여동생의 이야기부터 살펴보게 된다. 그에게 일어난 일들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판사였던 아버지가 의사가 되라고 해서 의사가 된 인물이다. 귀족이며 조상들이 물러준 부를 유유하게 즐기며 살아간 귀족의 아들이다. 영특하여 평이한 아이들과는 달랐던 아이였고 장남이라 부모의 기대감을 충족시킨 아들이기도 하다. 아들의 영특함이 보내는 신호에는 판사인 아버지를 향한 분노까지도 감지한 아버지의 예리함까지도 놓치지 않게 된다. 서로가 말을 하지 않는 침묵을 선택하면서 글로 남긴 글에서 서로가 가졌던 감정들은 소설에서 멋지게 전해진다. 단단하게 기록된 글이지만 보관되고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글들이 있다. 글에는 영혼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일상에서 만났던 인물의 내면까지 제대로 이해하게 하는 힘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영혼의 내면이 얼마나 응축되고 깊었는지 이해하면서 젊은 날 잘못 이해하고 말했던 그를 회상하기도 한다. 단면을 알고 전부를 이해한 것처럼 오해하기도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소설의 인물들을 통해서도 보게 된다. 귀퉁이의 조각 같은 부분을 알면서 사람의 전부를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삶이 얼마나 많은지도 소설을 통해서도 알게 된다. 한 인물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퍼즐 조각들을 맞추어야 했는지 보여준다. 중고서점에서 발견한 책의 저자가 궁금해서 낯선 언어를 가진 도시를 향한 중년의 선생님의 과감한 선택과 용기, 여행길은 꽤 값진 여정으로 남는다. 철학자가 집필한 소설을 좋아하게 된다. 이야기로 만나는 저자의 세계와 가치들을 주워 담으면서 또 다른 저자의 책들을 읽고 싶다는 호기심을 자극받게 된다. 무더운 장마에도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 소설이 함께해 주었기 때문이다. 멋지다는 말을 무수히 떠올릴 정도로 감탄하게 한 소설이다.

의사였던 중고책의 저자가 졸업식에서 연설한 글아브라함과 욥을 통해 신을 향했던 마음의 흔적들도 기억에 남는 글이 된다. 성서와 시, 단어와 언어, 침묵과 글, 책과 인생, 구속과 자유, 귀족과 소작농, 부자와 노동자, 비밀경찰과 저항운동, 고문과 남겨진 흔적, 법과 판사, 종교와 불경한 사제, 사랑과 욕망, 죄와 고백 등 무수히 많은 것들을 매만진 소설이다. 지금도 단단하게 구축된 수많은 것들이지만 의사가 제시한 의문들과 타인들을 무수히 살폈던 움직임과 마음들을 기억하게 한다. 가난한 암환자에게 보였던 선의와 악독한 인물을 살려낸 의사에게 가해진 혹독한 판결과도 같았던 의사 얼굴의 침세례는 사형선고와 같았음을 떠올리게 된다. 여동생을 살리고자 처치한 순간적인 판단과 행동을 괴물처럼 바라본 가족들의 모습도 기억하게 된다. 군중속의 외로움이 무수히 감지되는 인물이었다. 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언어의 유희를 즐겼던 그의 시는 종교적인 부담감까지도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었음을 보여준다. 시의 자유, 언어의 자유가 얼마나 자유롭지 못하였는지도 보게 된다.

멈추었던 시간과 짧은 시간 속에서 긴 시간을 느끼게 한 여행길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정지된 시간으로 멈추기도 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짧은 시간 속에서 길게 만나게 상대적인 시간이 되기도 한다. 죽음은 갑자기 누구에게나 찾아오기도 한다. 아내의 죽음, 의사였던 중고책의 저자에게도 갑작스러운 죽음이 찾아온다.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온전히 자신에게 달려있음을 보게 된다. 복종하느냐, 관습을 의심하며 자유를 선택할지도 개인의 몫이 된다. 오래된 언어에 매료되어 살았던 중년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변화의 움직임을 하나씩 감지할수록 새롭게 전개되는 그의 시간들은 또 다른 가치로 남겨진다.

<요한복음>의 첫 구절에서 언어가 사람들의 빛이라는 사실을 소설 전부에서 찾게 된다. 독재적인 친근함친근함은 소리 없이 떨어지는 독이라는 글귀도 기억에 남는다. 더불어 이별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의 편에 서는 것이라는 문장도 매료된다. 어제의 이별과 오늘의 이별에서 스스로의 편에 선 이별들을 상기해 본다. 소설의 여러 인물들이 스스로 선택한 이별들도 하나씩 다시 주워 담는 시간도 가져보게 된다. 그들이 선택한 이별의 가치들은 빛나기 시작한다. 그들이 이별한 것들의 폭이 다양했음을 확인하게 되는 소설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여동생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 평화를 찾는다는 것, 자신과 화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평화로운 것인지 보여준 작품으로 남는다. 태어나면서 구속된 것들과 기대감에 억눌린 것들이 많았음을 스스로 자각하면서 해방되는 순간을 스스로 찾아간 그의 여정은 독자들에게도 큰 획을 그어준 소설로 남는다.


용암과 같은... 영혼은, 자기를 억누르는 모든 압제와 요구를 태우고 쓸어버렸다... 그는 자신을 향한 모든 기대를 실망시키고 금기를 깸으로써 구제됐고, 등이 굽은 채 판결을 내리는 아버지와 야심만만한 어머니 부드러운 독재, 평생 숨이 막히도록 고마움을 표시하는 동생으로부터 해방되어 드디어 평화를 얻었다. 스스로와도 화해했다. 향수병은 사라졌다. 이제 편안함을 주는 파란색과 리스본도 필요 없었다. - P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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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4-07-13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않는 1인입니다. 제게는 어른 데미안을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자유는 깃털처럼 가볍고 불확실성은 납덩이처럼 무겁다‘ ㅡ아마데우 혹은 페터 비에리 또는 파스칼 메르시어
 
홀썸의 집밥 예찬 - 매일의 건강 집밥이 불러온 놀라운 일상의 기적
홀썸모먼트 지음 / 다산라이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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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책을 집필한 이유들부터 이야기된다. 장이 건강하지 않고 예민한 아이를 위해 집밥을 매일 요리하였음을 알게 된다. 매일 똑같은 요리를 준비하지 않는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정성과 마음이 담긴 집밥 요리들이다. 두꺼운 두께감만큼이나 책을 향한 정성도 깊게 전달된다. 두께만큼이나 진실성과 정성이 전해진다. 요리 하나에도 건강함을 우선시한 아내의 마음과 엄마의 마음이 전해진다. 가족을 가진다는 것은 그러하다. 하나하나 구성원을 향한 마음들이 요리라는 방식으로 사람을 살리는 손길이 된다. 집밥이 그러하다.

오늘 먹은 음식들이 곧 나의 몸이 된다. 나를 이루는 모든 것이 되는 만큼 세상의 음식이 얼마나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건강한 음식 같지만 위장술로 손짓하는 식품들이 즐비한 세상이다. 100% 구성한 제품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라고 저자는 상세하게 예시로 알려준다. 식품첨가물이 지닌 위해성을 알려주고 마트에서 장을 보는 아이에게도 전화 통화로 알려주었던 날 아이는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식품첨가물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구매하지 않았던 날이 있다. 모르고 먹는 것과 알고 먹는 것은 확연한 차이를 이룬다. 오늘 피부가 엉망이 되고, 가렵고 염증을 일으키면서 내장과 관절을 아프게 한다면 오늘 먹는 식품첨가물을 의심부터 하게 된다.

채소 정기 배달 서비스

채소가 주인공이 되는 요리

고기 없는 월요일

제철 채소 알람

냉동 채소

채소 베이킹

아침 채소찜 습관

내 몸에 맞는 채소 찾기

집밥은 특별해진다. 배달음식과 외식에는 유해한 식품첨가물들이 즐비하다. 복강경 수술을 하고 모든 것을 새롭게 정비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접 마실 것을 가지고 다니고 간식거리도 챙겨 다니면서 건강한 집밥 요리를 선호하게 되면서 건강한 정보를 전해주는 것들을 향하게 된다. 저자가 그리워하는 소울푸드인 경상도 음식도 소개된다. 이 음식은 지금 나에게도 소울푸드이며 자녀에게도 소울푸드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 반가움에 읽은 내용 중의 하나이다.

내 식사는 유난합니다 284

매일 집밥 요리를 하고 있다. 중복되지 않는 건강한 요리들을 준비한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여러 요리들이 식단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저자의 의지와 확고함, 건강함과 성실함이 집밥 요리를 통해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집밥 요리는 단단한 마음이 준비되어야 하며, 꾸준히 밀고 나가는 의지력과 성실함도 겸비해야 하는 긴 터널과 같은 멋진 여정이다. 신선한 재료들을 준비하고 손질하며, 요리하는 과정을 통해서 가족의 건강함이라는 초석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요리책에서도 그러한 단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집밥을 예찬하는 이유가 분명해지는 요리책이며 레시피들이다. 알차게 전해진 내용들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많은 정보들을 전하고 있다. 공들여진 사진과 편집, 레시피들과 수많은 건강한 요리들 만나볼 수 있는 요리책이다.

단짠 없는 우엉당근볶음 133

우엉당근 주먹밥 / 우엉당근달걀 김밥 135

반숙란 퀴노아 범벅 153

아보카도 콜리플라워 레몬스무디 177

채소찜을 위한 네 가지 디핑소스 181

아보카도허브 딥 / 피넛버터 딥 / 피넛후무스 딥 / 두부참깨 딥 181

구운 토마토 채소 수프 183

레몬애호박관자 웜 샐러드 189

봉골레 냉이옹심이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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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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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13세기 시인이며 신비주의자의 글을 무수히 읽게 되는 소설이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작가가 깃발을 세워놓은 이 글이 이 소설 중에 인물에게 무수히 던지는 질문이 되기 때문이다. 저자의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작품이 인상적이었기에 이 작품도 기대하며 읽은 소설이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작품이다.

예지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것을 어둠의 예지력이라고 표현한다. 53살 물리학자는 총으로 자살을 한다. 15살 자신의 아들 바실리부터 먼저 총으로 쏘는 상황이다. 그는 극도의 멜랑콜리와 심한 우울증을 보였고 어린 시절에는 허약하여 병치레가 잦았던 인물이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는 온통 죽음과 절망만이 가득했던 그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과 불안과 논리적인 모순과 불확실성과 불확정성으로 가득 차 버렸던 상황들이 이야기된다. 인간의 관점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이 소설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된다. 혼돈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연을 하나의 총체로 인식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한 그가 스스로 자신의 죽음까지도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자살하였음을 보여준다.

양자역학이 받아들여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학자들이 힘겨운 혼돈의 시간을 보냈는지 들려준다. 고성이 오가며 여러 언어가 자신들의 고뇌를 드러내는 방식들을 전달한다. 서로의 학문이 부딪치는 현장도 목격하게 된다. 더불어 수학이 무기가 된 무시무시한 수학 무기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예술을 비극적인 타락이며 맹목적이고 억누를 수 없는 충동을 표현한 것이라고 대화하는 그녀도 만나게 된다. 어둠이 깔린 인물이지만 절제하면서 통제하는 그녀가 있는 반면 통제되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가 분출하는 영감과 무기력과 절망은 무수한 혼돈으로 표출되기 시작한다. 부조리함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형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도 인물의 고뇌를 통해서 전해진다. 그의 내면의 악마들을 감지한 아내는 이혼을 요구한다. 사악한 힘이 지닌 논리와 비이성은 예지력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복잡하고 모순된 기질을 목도하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아인슈타인의 기질도 대비를 이루면서 묘사된다. 과학자들의 재능과 어두운 내면과 다양한 기질에 대응하는 삶의 영역까지도 전해진다. 몰입하는 모습과 그들의 재능과 연구한 결과를 누가 가장 먼저 낚아채가는지도 역사를 통해서 보여준다. 그들의 연구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서 쓰임을 다할지 그들도 예견하지만 그들의 충동을 누구도 멈추지 못했던 이유들도 전해진다. 학문의 발전이 어떤 조합으로 어떤 결과물을 만들었고 어떤 괴물이 어떤 방식을 취했는지도 보여준다. 최적의 병기가 되는 방법까지도 결과를 도출하여 제시한 그의 악마성까지도 확인하게 된다.

추락하는 인간을 보여준다. 악마가 된 그들이 무엇을 자행했고 어떤 연구를 도전하였으며 희망보다는 어둠을 이해하면서 멈추지 않고 결과를 이룬 것들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괴물이 되었음을 자각하지만 악마성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모습까지도 놓치지 않고 이야기된다. 통제되지 않는 광기로 그들이 함께 이룬 학문은 현재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도처에 즐비한 것들이 얼마나 유익한지 무익한지 우리는 스스로 판단하게 된다. 아쉽게도 인간은 자연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 모양새이다. 해양이 오염되고, 산림을 파괴하고 하천과 바다를 오염시키며 땅을 비료로 파괴하지만 누구도 자신의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암울한 미래를 되돌릴 의지마저도 소수의 움직임에서도 감지될 뿐이다. 한 과학자가 보았던 어둠의 예지력을 우리들도 모두가 예견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성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학문이 어떤 모양새로 파괴하는 행위인지, 모두를 살리는 행위인지는 자문하는 능력이 더 필요해진다. 과학자들이 등장하지만 군사전문가, 경제인, 정치인, 교육자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작품이다. 모두를 살리는 일인지, 모두가 자멸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자주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지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 등장한 인물들은 그러한 질문을 하지 놓쳐버렸음을 보게 된다. 시멘트를 만드는 회사들, 환경부, 산림청, 원자력발전을 지지하는 집단, 미세먼지로 혼탁해진 공기를 마시면서도 자동차 매연을 뿜는 선택을 멈추지 않는 습관까지도 살펴보게 한다.

무서운 어둠에 장악된 영혼은 안전한지 살펴야 한다는 이유가 분명해지는 소설이다. 촘촘히 달린 눈들, 층층이 쌓인 왕관으로 영광을 무수히 쌓아 올렸을 영혼은 끔찍하게 자신과 인류를 파괴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자문하게 한다. 자신의 영혼을 돌보지 않고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참혹하고 광기 어린 인생인지도 보여주는 소설이다. 서늘해지는 기분을 매 순간 느끼면서 읽었던 작품이다.

전작만큼이나 매니악도 멋진 작품이다. 작가만의 문체, 그의 냉철한 정신과 시선의 끝에 또 한 번 매료된 소설이다. 맨해튼 프로젝트, 힐베르트 프로그램의 정수, 괴델과 노이만, 파시즘의 흐름까지도 감지하게 된다. 결코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유유히 흐르고 지금도 파괴적인 성격으로 호시탐탐 세계를 위협하는 제국주의의 움직임은 한반도에서도 감지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의 당당함, 수치스러움을 모르는 이유까지도 함께 접목하게 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살피지 못했던 영혼의 이성들을 보여주는 명작이다.




인간이 어디까지 추락하는지 목격하는
유일한 인간이 된 것처럼.
슬슬 두려워진 넬리.
자기 자신과도 서서히 단절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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