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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평점 :
책표지 디자인과 책 제목에 이끌려서 고른 에세이이다. 에세이 장점은 천천히 읽어도 되기에 이제서야 작가의 책을 처음으로 만난 시간이었다. 오랜 시간 곁에 두고 읽었던 책이다. 번역가와 김소연 시인의 추천글부터 읽었다. 그리고 작가소개글도 빠짐없이 읽으면서 작가의 글을 만난 날들이 떠오른다.
집착적으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영역 254
성적인 측면에서의 권력남용. 21살. 혼돈 251
자기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의미있는 순간이다. 자신을 깊게 들여다본 글들이 이어진다. 자신의 출생, 쌍둥이만이 나누는 매력적인 순간들을 글로도 만나게 된다. 다른 성향을 가지면서 다른 삶을 살아간 흔적들도 글에서 만나게 된다. 미국에서의 중산층을 꿈꿔보는 순간, 보통의 삶을 갈구하는 작가의 심정도 헤아려보게 한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자 노력한 날들이 가져다준 압박감이 절대적이었던 어린 날들을 되돌아보는 글이다. 누군가를 만족시키고 원하는 것을 보여주고자 노력한 날들을 그녀는 어떻게 회상하는지 글에서도 마주하게 된다. 발버둥 치면서 살아오고,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가지는 중압감까지도 충분히 공감하는 내용이 된다. 평범함이 주는 안락과 기쁨을 세상은 알려주지 않는다. 경쟁과 순위, 비교하면서 치열하게 사는 것이 삶이라고 말하는 세상의 교육과 가르침에 작가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다른 문학에서도 제기하는 질문들을 이 에세이에서도 마주한 순간이었다. 작가의 삶이 진정 안락하고 기쁨으로 넘쳐흘렀는지도 책 한 권의 글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느낄 수 있지 않는가. 이외에도 작가가 던지는 질문들은 무수히 많다. 해방의 정의라고 명명하고 그녀가 믿는다고 확고하게 온점을 찍은 글도 만나보아야 한다.
자발적인 친절과 열의. 감동적. 그것은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키고, 단순한 즐거움의 중요성을 새삼 알려주고, 편안한 곳에 소속되어 있다고 느끼게... 좋은 이웃이란 이런 게 아닐까. 115
보통 사람이 되는 수업. 평범한 노동자.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시민, 이름 없고 얼굴 없는 한 구성원이고 싶다. 285
평범한 삶, 보통 사람... 평범함은 나쁜 것이고 보통이란 추구할 가치가 없는 목표라고 생각하며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286
괴물들, 어둠의 그림들. 아버지를 만족시킬 것. 아버지가 원한다고 여긴 것. 287
발버둥 칠 필요도, 시험을 통과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평범한 안락과 기쁨이었다. 289
가난의 굴레에 묶여있고, 불평등에 묶여있다고 작가가 분명한 어조로 전하는 것들도 글에서 만나게 된다. 그녀가 성장한 환경과 교육 환경에서 그녀가 관심을 가지는 영역의 글들을 유심히 바라보게 한다. 그녀의 중독들을 떠올려보면서, 고립과 고독의 차이에 대한 사유까지도 떠올려보면서 말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죽음, 할머니의 죽음도 그녀의 글에는 깊게 자리 잡는다. 그녀의 나이에 비하면 부모의 죽음은 이른 경험이 된다. 미국 시민이 아닌 다른 나라의 시민이 되었다면 현재와 다른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냈을 거라는 글은 결코 가볍지 않게 다가선 글이기도 하다. 그녀를 가득히 누르고 압박한 것들이 무엇인지 짐작하기 때문이다.
네가 누구니? 내가 누구지? 55
재능의 파이, 기질의 파이, 생활방식의 파이 55
내 존재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는 글도 기억에 남는다. 2022년 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초파리 돌보기.임솔아>작품에서 50대 주부의 경력을 한 문장으로 기록한 한국 사회의 단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존재를 명명하는 한 문장과 소속된 나라와 소속된 사회가 우리 존재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는 것은 극명한 차이가 있을 듯하다. 내 존재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는 시간을 내내 가져보게 한 책이기도 하다.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은... 즐기기 때문이 아니다. 내게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 같기 때문이다. 17
고독은 평화와 고요를 키우는 일이다. 하지만 고립은 두려움에 굴복하는 일이고, ... 더 많이 굴복할수록... 그것의 손아귀 힘은 더 세진다. 22
나는 명랑한 은둔자야... 내면이 삽시간에 재편... 오래된 생각이 새로운 생각으로 바뀐다. 기존의 정의가 새로운 전개를, 새로운 분위기를, 새로운 의미를 취한다... 그 새로운 장면은 행복과 아주 비슷해 보였다. 40~41
<명랑한 은둔자> 이 표현이 참 좋았다. <낭만적 은둔의 역사>책의 내용들도 함께 떠오르는 순간이기도 했다. 은둔의 정의를 밝음이 아닌 어둠으로 바라볼 것인지, 밝은 의미로 바라보면서 빛의 의미로 포용할 것인지는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명랑한 은둔자라고 표현된 것에 희망적으로 이끌려서 고른 책이었다. 덕분에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삶도 단편적으로 만나고 알게 된 글들이었다. 폐암 진단과 결혼, 사망까지 시간적 흐름까지도 떠올리면서 그녀의 글들과 접목하면서 만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