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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쪼가리 자작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1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평점 :
악한 반쪽과 선한 반쪽으로 두 동강 나 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환상문학으로 읽기 쉬운 이야기이지만 결코 가볍지가 않았던 작품이다. 여러 인물들이 보이는 모습들에서 예리한 작가의 관찰력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다양한 인물들을 보이는 한계들이 자연스럽게 전개된다. 문학이라는 틀에 안주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이 투영된다. 이야기는 17세기 터키와의 전쟁에 참가한 메다르도 자작 이야기이다. <나무 위의 남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로 유명한 작품의 작가의 소설이다. 환상 문학으로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작품성에 매료되어 작가의 다른 작품까지도 관심이 가게 된다.
부모가 모두 없는 고아인 화자의 시선에서 외삼촌인 메다르도 자작이 참전한 후 돌아와서 일어난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외할아버지도 있지만 아무도 그에게 관심이 없다. 그를 키운 건 유모인 세바스티아나이다. 그녀는 이 집안의 많은 사람들을 돌보았다. 태어난 아이들과 아픈 사람들, 죽음을 맞는 사람들까지 그녀의 돌봄을 받았다. 화자와 연결된 어머니와 같은 유모에게 일어난 엄청난 사건의 가해자는 자신의 외삼촌이다. 전쟁에 참전하고 돌아온 그의 모습은 반쪽만 남은 사람이다. 전쟁의 참혹함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무모하게 자원입대한 자작이다. 청년기의 그에게 전쟁터는 생과 죽음의 갈림길이지만 그는 그러한 판단조차도 하지 못한다. 전쟁에 참가해 싸우는 이웃 군주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자원입대한 인물이다. 그에게 남은 반쪽자리 육체는 악한 인간만 남겨지게 된다. 돌아온 그에게서는 어떠한 선한 향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사악한 악행들은 멈추지 않으며 재판을 결정하는 권력자가 되어서 무모한 사람들을 사형시키는 악인이 된다. <카시지> 와 <눈먼 암살자> 작품 속의 참전한 군인들의 파괴된 영혼들이 내내 떠나지 않게 한다.
그 나이에 우리는 새로운 모든 경험,
무시무시하거나 비인간적인 경험까지도 ...
불안하면서도 따뜻한 애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8
기독교들의 병영이라는 곳, 성스러운 황제의 십자군 만세라고 외치지만 이들의 파열된 영혼이 먼저 떠오르게 한다. 작품에 전개되는 전쟁 장면은 참혹하고 잔인하다. 전쟁이 가진 실상이 그러하다. 반쪽자리 자작의 모습도 다르지가 않다. 그렇게 전부를 쏟아낼 수 있고 파괴되는 것이 전쟁임을 이 작품을 통해서 다시금 보게 된다. 전쟁은 욕망이며 권태로운 수장들의 모습까지도 작품은 놓치지 않고 전달한다. "백전노장들과 말들은 나태하고 권태롭게 포탄을 바라보지." (16쪽) 명령과 복종이 절대적으로 자리 잡은 사회를 의심하지도 않는 청년은 누구를 위한 희생이었을지 질문하게 된다. 피비린내가 나는 전쟁에 대한 분노와 동정도 느끼지 않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하는 목소리가 전해진다. 그의 파멸은 인간성을 잃게 하면서 끔찍한 모습으로 악행을 거듭하게 된다. 사형 집행을 명령하는 권력자를 넘어서 방화까지도 저지른다. 심지어 자신을 키워준 양어머니이면서 유모에게까지도 방화를 저지른다. 얼굴 흉터 자국을 문둥이 마을로 보내고자 계략을 꾸미기까지 한다. 유모는 나쁜 자작에게 어떠한 비난도 하지 않는다. 그녀가 문둥이 마을에서 전염되었을 거라고 짐작되면서 화자는 자신을 키워준 유모를 그리워하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가게 된다. 유모는 모습을 보고 놀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모가 유지하고 있는 비밀스러운 것들도 작품에서 만나게 된다.
위그노들이라는 종교인들이 보이는 위선적인 모습도 거침없이 다룬다. 그들이 믿는 종교, 믿음, 신앙의 중심점은 어디에 있는지 작품에서 보게 된다. 여물통을 몰래 빼앗고 거짓말을 하면서 그들의 이득을 위해서 행동한 신앙인의 모습은 이 시대의 종교인들에게도 향하게 된다. 종교인 집단들을 향해서 소리치면서 외치는 " 페스트와 기근!"은 두려움과 불안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이들이 프랑스에서 종교탄압으로 도망치면서 잃어버린 성경과 찬송가의 가사들은 상징적인 의미가 된다. 가사도 남아있지 않고 성경 말씀도 흐릿하지만 규칙이 계율로 남아버리면서 강요되는 것들과 미덕이 되는 것들이 얼마나 모순적인 인간적인 기준들인지도 생각하게 한다. "규칙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계율이 되어 버렸다. 극도의 절약 정신이 강요... 여자들에게는 가사에 몰두하는 일이 미덕이 되었다." (49쪽)
목수가 만드는 사형대와 고문대의 용도를 의심하지만 그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자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생각을 멈추고 자신이 자신있는 일을 하면서 만족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질문하게 된다.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것을 질타하는 과학자의 책을 읽었던 글귀가 생각한다. 수학자, 물리학자, 생물학자, 화학자 등 많은 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었는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학문의 발전이 인류를 파괴하는 것인지, 인류를 살리는 것인지 우리는 쉼없이 생각해야 한다. 멈추고 질문하는 것이 없다면 그것은 악행으로 남는 역사적 기록물이 될 뿐이다. 이러한 과학은 지금도 무수히 쏟아진다. 그래서 화학물질, 공장의 굴뚝, 무기, 패스트푸드 등을 의심하면서 바라보게 된다.
자비와 공포 속에서 우리 삶은 흘러갔다. 93
선과 악이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무수히 많은 순간 속에서도 싸워야 하는 이유가 이 작품에서도 등장한다. 자비로움이 승리할지, 사악함이 승리할지는 싸우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악함이 얼마나 끔찍하게 활개를 치는지 이 작품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보게 된다. 전쟁터에서, 두 수레에 실려나가는 참혹한 현장의 군인들의 흩어진 몸에서, 반쪽자리 자작처럼 기괴한 모습으로 돌아온 많은 참전 군인들에게서, 고문대와 사형대를 분해하지 않고 감정적 동요조차도 일어나지 않는 많은 군중들에게서도 보게 된다. 익숙해진다는 것, 생각하지 않는 것, 의심하지 않는 사회는 희망이 사라진 사회가 되고 만다. 두려움으로 많은 이들을 침묵하게 하는 사회는 살기 좋은 사회가 아님을 보게 된다. 나쁜 자작이 활개치는 사회가 아닌지, 방탕함으로 물든 예술인, 문학인들은 아닌지, 과학자들의 무분별한 연구에도 매서운 매질을 하는 작품이다. 길지 않은 소설이다. 쉽게 읽히는 환상문학이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집약해 내는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진다. 무수히 많은 문장에 밑줄을 긋고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읽게 한 소설이다.
환자. 가난한 사람들, 나이 든 사람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방문한다는 것. 착한 외삼촌 91
반쪼가리가 되었거나 뿌리가 뽑힌 존재는 나만이 아니야...
모든 사람들이 악으로 고통받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들을 치료하면서 너 자신도 치료할 수 있을 거야. 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