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타 가족
브랜던 홉슨 지음, 이윤정 옮김 / 혜움이음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임이 선정한 꼭 읽어야 하는 100권의 소설 중의 한 권이다. 타임이 선정한 이유가 궁금해서 선택한 소설이다. 신화적인 소설,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지금도 살아있는 이야기가 된다. 대륙의 원주민이었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침략당하며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된다. 땅과 자연을 끊임없이 관찰하면서 읽었던 민족들이다. 그들이 믿는 신이 알려주는 것들을 읽는 예언자는 앞으로 그들에게 닥칠 불길한 예지몽을 꿈꾸게 된다. 총을 든 군인들, 강제로 끌려가는 부족 사람들, 넘어지는 사람들, 질병으로 아픈 사람들의 아우성들이 예언자에게 나타난다. 두려움과 공포는 다가오면서 대항하는 몇 사람들의 한 명이 되어 아버지와 아들은 죽음을 맞이한다.

저들의 영혼은 어쩌면 저토록 연민도 없고 오염되었는지 의아했단다. 고통 속에 울부짖는 사람들(원주민) 곁에서 웃어대는 놈들 (군인들) 315



강제 이주된 부족 사람들이 이주하게 된 배경,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현대교육과정의 문제점도 전해진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이유도 짐작해 보게 된다. 침략자와 빼앗긴 자들의 숨기는 이야기와 숨겨진 이야기들은 편견과 오해로 후대인들에게도 고스란히 연결된다. 10대 남자아이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서 죽었다. 총을 소지하지도 않았던 아이이다. 다툼이 있었던 자리에 총소리가 났고 경찰은 머뭇거림 없이 인디언 원주민 아이에게 총을 쏜다. 백인 경찰은 재판도 받지 않는다. 아이는 죽었기에 남은 가족들에게는 기나긴 시간 동안 그 사건과 재판에 대한 억울함과 원통함이 남는다. 분노는 시간이 흘러도 멈추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 아이의 엄마가 선택한 것은 무엇일까? 가족들 몰래 그녀가 살기 위해서 선택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기이한 이야기 속에서 정령이라고 느껴지는 인물들이 들려주는 대화에 귀 기울이게 된다. 화와 분노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과 화해와 용서가 무엇인지 서서히 인물들을 통해서 보게 된다.

거울이 비친 내 얼굴... 주름살이 잡히고 나이를 먹은 게 보였다. 고집과 희망, 절망, 포기, 비탄으로 점철된 얼굴이었다. 모든 측면에서 힘을 잘 지켜온 여성이라고 스스로 되뇌었다. 334



세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있다. 첫째 아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그녀가 회복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다. 아이가 죽은 날을 기념하면서 모닥불 모임을 가지게 되는 가족들은 이 모임을 통해서 슬픔과 아픔으로 점철되지 않는 웃음과 기쁨을 불러들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가족들은 이날을 기다리게 된다. 서서히 치유되는 가족들의 수많은 시간들은 누군가에게는 상처와 고독의 시간들을 떠올리게 되는 날이기도 하다. 자녀의 예고되지 않은 죽음으로 남겨진 두 아이의 시간들은 온전했을까?



엄마는 자신의 생활로 돌아오지 못하는 동안, 아빠는 남겨진 두 아이에게 무한히 노력한다. 하지만 이 아이들의 기억 속에는 부모의 노력들이 온전히 자리 잡았을지 궁금해진다. 가족이었던 이들이 무너지고 균열이 일어난다. 미세한 균열의 시작점은 백인 경찰이 쏜 총이다. 그들이 의심하지 않고 쏜 총에는 잠재된 교육과 편견들이 자리 잡는다.



문학도 다르지가 않다. 어떤 문학은 백인 입장에서 집필된다. 인디언들을 향한 표현과 성향들은 폭력적으로 묘사된다. 침략자와 빼앗긴 자의 역사는 문학에서도 다른 시점으로 묘사된다. 우리 민족도 다르지가 않다. 무수히 침략당하면서 살아온 민족이다. 빼앗긴 민족이 당하는 편견과 오해들이 자손들에게도 어떻게 연결되는지, 교육은 어떤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감추는지 보게 된다.

조화와 평화.

화는 넘치는 물과 같아서

천천히 파괴를 몰고 온단다. 310

한 그루의 나무는 수백 년을 한자리에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머문다. 176



문학은 꽤 재미있다. 이 작품의 큰 음성들이 또렷해지기 시작한다. 정령이 나타나고, 기이한 일들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현실의 인물들이 혼돈의 과정과 실수하는 과정, 소중한 가족을 아프게 하는 과정들이 점철된다.

온전하지 않은 성인의 모습으로 성장한 두 아이가 있다. 누나와 막내 남동생의 삶은 부모에게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짐작해 보게 된다. 약물에 중독된 막내아들이 경험하는 기이한 일들은 묘하게 빠져들게 한다. 그가 만나는 인물들과 새까지도 유심히 기억하게 된다. 갇힌 곳이라고 설명하는 기이한 곳은 어디였을까. 노인을 만나면서 솔직하게 털어놓는 수많은 진심들이 전해지기 시작한다. 그 노인의 존재를 뚜렷하게 느끼게 된다.



약물에 중독되면서 통제가 불능되는 아들이 나타난다. 이러한 중독은 약물에 한정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소비 중독, 음식 중독, 도박 중독, 미용 중독 등 다양한 중독들이 현대인들을 침식시킨다. 통제력과 분별력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어린 막내아들은 엄마에게 집을 나갈 거라고 겁을 준다. 형이 죽은 사건 이후로 어린 막내아들이 느낀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나름 짐작해 보게 하는 대화 내용이 된다. 남겨진 아이들도 소중하다. 하지만 현실은 남겨진 아이들이 제대로 존중받고 대우받지 못한다. 그래서 누나와 막내 남동생의 삶이 아프게 그려진 이야기이다.

남편의 치매가 시작된다. 곁에서 보살피는 아내의 고충도 전달된다. 위탁 가정을 신청하면서 찾아온 한 남자아이의 모습을 통해서 남편의 치매는 급격하게 호전된다. 그 이유도 매우 흥미롭게 전해진다. 살아갈 이유가 분명해진다면 자연스러운 치유도 일어난다. 희망이 찾아오면서 일어나는 많은 변화들이 전개된다.

그 길은 눈물의 길이 아니니까...

슬픔이나 아픔 혹은 죽음 따위는 없다네.

그 길은 자녀의 집으로 향하는 길 329

상황은 언제든지 좋아질 수 있단다 282

치유가 뭘까? 죽고 싶지 않은 거요. 8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밤의 시간표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주 토끼>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신작 소설집이다. 연작 소설집이라 더 기대한 소설이다. 연작소설을 읽는 재미에 빠져든다. 여러 소설들이 어우러져서 퍼즐처럼 맞추어진다. 첫 이야기부터 궁금증을 자아낸다. 호기심을 발동시키면서 기이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와 정체가 무엇인지도 궁금해지게 한다. 그래서 멈추지 못하고 다음 이야기를 계속 읽게 된다. 그렇게 흡인력이 강한 소설이 된다. 몰입하면서 이 소설에 푹 빠져들게 한다.

연구소가 있다. 이 연구소에서 일하는 야간 경비일을 하는 다양한 직원들이 경험한 일들 중에는 하나의 공통된 사건이 있다. 아무도 없는 이 연구소 건물에 야간 경비를 서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그런데 어두운 장소에 평범한 체격, 평범한 정장 차림, 목소리와 말투로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직원이 있다. 그 직원의 얼굴과 명찰의 글씨는 알 수가 없었다. 그 직원은 누구일까? 왜 통제하는 것일까?

이 연구소의 어떤 물건도, 이 연구소 자체도 평범하지 않다. 228


302호 안에서는 가끔 새가 푸드덕 거리는 소리와

사람 목소리 같은 것이 들린다 188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없었다 103

연구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하게 한다. 그리고 기이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부소장님의 양과 화자의 고양이의 목에 있는 못, 흰 운동화 한 짝, 수가 놓여있는 손수건까지도 서서히 전해 듣는 이야기들로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한다. 무더위와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 펼쳐서 읽기에 좋았던 소설이다. 저주 토끼 작품을 읽지 않았는데 그 작품과 작가의 다른 작품까지도 눈길이 가기 시작한다.

스스로 홀리고 혼자서 씌는 거예요...

없는걸 만들어 내서 혼자서 막 보고 듣고...

진짜로 생겨나서 따라오는 거예요. 원래 없던 건데. 14

무서운 이야기라는 한계점만을 가지지 않는 소설이다. 예리한 작가의 시선도 이야기들의 인물들을 통해서 전해진다. 대학교에 있는 양 무리의 정체와 양털이 벗겨진 이유와 수술 자국들이 가진 의미까지도 냉정하게 직시하게 한다. 연구목적으로 사용되는 동물들은 어떤 삶을 살다가 죽는지 차분히 생각하게 된다. 연구에 사용되는 도구일 뿐, 생명체로 권리를 보장받지도 못하는 동물들이 많다. 부소장님에게 나타난 양은 놀라운 기적 같은 일들을 선물해 준다. 기이한 일들을 여러 차례 경험한 부소장님은 양 무리들과 함께 하는 사연이 전해진다. 부소장님의 결혼생활과 남편의 복권과 도박 빛이 가져다준 가정파탄까지도 매만진다. 부소장의 사라진 손가락 네 개는 이후 경제적 생활까지도 힘겹게 한다. 산업재해로 일자리를 잃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삶까지도 조명을 비춘다. 복권과 도박이 가정을 파탄시키는지도 놓치지 않는다.

집안의 모든 문제는 구정물처럼 아래로 아래로 흘러 떨어져서 그 집안 모든 사람에게 가장 만만한 존재 위에 고이고 쌓였다. 그 구조물을 감당하는 사람은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이었다. 딸, 며느리, 엄마, 손녀. 맏딸은 살림 밑천이라느니 아들 가진 엄마는 길에서 손수레 끌다 죽는다더니 하는 말의 의미는 모두 같았다. 가장 만만한 구성원의 피와 골수를 빨아먹어야만 가족이라는 형태가 유지된다. 역기능 가족은 비슷한 형태로 역기능적이다. 132

협소한 사고 범위로 자신이 살해한 사람의 영혼이 다시 나타났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살인자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섬뜩한 말 한마디를 반복적으로 남기는 아이의 모습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 그 말을 하는 영혼이 누구인지는 마지막까지 읽어야 정체가 드러나는 소설이다. 이외에도 악의에 가득 찬 인물들이 낳은 자식도 같은 영혼으로 타인들을 위험하게 하는 인물이 된다. 남의 것을 빼앗고, 그들의 생명까지도 무참하게 짓밟는 부모는 그의 자식까지도 다르지 않는 삶을 영위한다. 악의로 가득 찬 그의 행동과 선택들에 흰 손수건은 여러 인물들을 거치면서 어긋나고 집착하는 잘못된 삶을 평생 살아가는 어머니에게까지 영향력을 미친다. 유품으로 남겨진 흰 손수건의 사연과 어머니의 죽음을 향한 슬픔보다는 흰 손수건을 가지려는 어긋난 욕망과 집착으로 말년의 삶이 얼마나 황폐해지는지도 무서운 이야기들로 전해진다. 밤마다 사라지는 남편, 남편이 묻혀온 흔적들과 악취들. 영혼이 악의에 사로잡혀서 자신의 본모습을 잃어버리면서 남은 생애를 살아간다. 초록 눈을 가진 정체는 무엇일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상황에 놓인 세 번째 부인은 어떻게 될까?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며 여인을 착취하는 시어머니와 둘째 아들에 대한 사연도 매우 흥미롭게 전개된다. 편애하는 부모, 차별당하는 자식들이 등장한다. 부모의 사랑은 정상적인 사랑이 아닌 잘못된 집착이라고 작가는 명명한다. 그만큼 명확한 정의도 없을 듯하다. 사랑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어긋난 집착이 되어 평생 자식의 노예로 살아가게 되는 부모가 된다. 더불어 자식도 평생 노동을 해 보지 않았기에 자립을 하지 못하는 70세 노인이 된다. 부모가 죽자 홀로 살아갈 방법도 알지 못하는 바보가 된다.

폭력과 학대를 견디며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하며 그렇게 계속 살고 싶지 않을 ...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찬은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살아있는 한 너무 늦은 건 없다. 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삶은 흐른다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이주영 옮김 / FIKA(피카)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다를 바라보면서 삶을 통찰하는 철학과 교수의 저서이다. 철학과 교수의 책이라 묻지 않고 펼친 책이다. 이 시대의 철학적 시선을 함께 보게 된다. 우리가 느끼는 답답한 도시생활, 끝이 보이지 않는 막다른 길을 어떻게 이겨내고 나만의 길을 가는 것이 좋은지 바다를 통해서 함께 길을 찾는 여정이 되어준다. 깊고도 넓은 새로운 통찰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은 이해인 수녀님의 글에도 공감하면서 무수히 고개를 끄덕인 책이다.


이해인 수녀_ 깊고 넓고 새로운 통찰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건들을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경험하기도 한다. 악행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뻔뻔한 지성인들도 자주 목도한다. 지성인이라고 말하는 집단의 실체를 날것으로 보면서 느끼는 추함도 무수히 경험하기도 한다. 그들의 악행은 멈추지 않는다. 부당한 일들이 멈추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는 침묵하는 다수가 아닌지 질문하게 된다.



악행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면 안 된다.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89



저자는 이러한 순간에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답을 준다. 변화하였던 역사의 길에는 외침의 역동성이 존재하였음을, 여성의 참정권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희생하며 용기를 내었는지도 다시금 떠올려보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도 여성의 권리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침묵하고 부당한 일을 참는 것만이 길이 아님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움직이는 물결, 정당한 것을 요구하는 대중이 자기의 권리를 찾는다. 1%에 해당되는 극소수의 집단은 자기들의 것을 유지하고자 거짓 뉴스와 선동을 sns 통해서 무수히 이용한다. 이러한 움직임에 통찰력을 길러야 하는 것도 대중의 몫이다. 흔들리고 중심점을 잃은 대중은 다시 자기 것을 잃고 빼앗기게 될 것이다. 지금처럼 말이다.



다양성을 잃은 듯하다. 12년의 학교교육은 참과 거짓을 찾는 연습을 시킨다. 앞사람의 뒤통수만을 보고 서 있으라고만 명령한다. 그것만이 정답일까. 삶에는 무수히 많은 다양한 삶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모르는 선택들도 많고 다양한 삶들이 있지만 일률적으로 줄을 세우고 똑같은 교복을 입혀서 수동적인 복종만을 연습시키면서 틀 안에 가두어 버린다.

소비하는 연습, 자족하는 삶과 지혜를 터득하지 못하도록 휴대폰과 영상매체로 사고의 힘을 빼앗긴 군중들이 점점 많아진다. 시대가 규정한 규범들이 진정한 길인지 자문하면서 살아간다. 길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길로도 과감하게 도전한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서 나만의 길들을 익힌다. 그것은 오로지 나의 것이 된다.



이분법적 사고가 일으킨 오류가 얼마나 큰지도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두드러지게 보게 된다. 무수히 많은 길들이 있다. 그 길을 아무도 하지 않을 때 걸었다. 그리고 빠르게, 때로는 둘러간 길은 자양분이 된다. 지금도 우리는 그때의 선택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때의 선택들은 탁월했다고 떠올리게 된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다. 선택도 쉽지 않고, 결단력과 용기도 필요하다. 누군가 걸어간 길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길들을 응원하고 함께 걸었다. 그리고 바다를 더욱 포용하면서 저자의 시선과 통찰을 더욱 공감하면서 읽게 된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우리는 그때의 선택을 하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바다는 그러한 곳이다. 책에서 제안하는 선원이었음을 보게 한다. 망망대해의 바다에서 우리가 스스로 키를 돌리면서 자기만의 길을 가야 한다.

이분법적 이미지는 덫이 될 수 있다. 44

두 발이 서 있는 이곳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고 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암스테르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4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커상 수상작인 <암스테르담>이다.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었는데 강하게 자리잡는다. 다른 작품들까지도 궁금해진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이라 고른 소설이다. 두껍지 않고 이야기 흐름도 빠르게 전개되면서 짧은 시간 마지막 책장을 덮은 작품이다. 하지만 읽는 동안 내내 작가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작가의 시선 끝에 다다른 그만의 사유와 관조가 예리하다. 몇 번이나 멈추며 다시 읽게 하는 문장들이 무수히 많았던 소설이다. 클래식 음악을 작곡하는 것을 활자로 전달하는 문학도 함께 떠올려보게 한다. 악기의 독보적인 독주와 어우러지는 여러 악기들의 화음까지도 떠올리게 한다. 작곡가의 관점에서 거슬리는 음의 반복도 들리게 하는 문장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오페라들도 들어가면서 읽었던 소설이다.



46살 몰리는 사진작가이다. 그녀가 갑작스럽게 질병으로 죽는다. 그녀의 장례식장에서 만나는 4명의 남성들이 있다. 그녀의 남편 조지, 몰리 연인이었던 클라이브라는 작곡가, 버넌이라는 신문사 직원이 있다. 외무장관 줄리언 가머니가 있다. 몰리가 촬영한 사진들 중에는 외무장관인 가머니의 사진이 여러 장 발견된다. 그 사진들이 의미하는 것들과 그 사진의 영향력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게 된다. 대립되는 논쟁의 주제들과 선택의 기로에 놓인 사람들이 등장한다. 외국인 혐오와 과도한 형벌인 교수형 집행을 찬성하는 인물이 있다. 몰리의 남성들이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주목을 끈다. 몰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몰리를 떠올리면서 자신의 죽음까지도 생각하고 준비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결혼과 사랑, 연애까지도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다양하게 보여준다. 배우자가 있지만 연인이 있었던 몰리. 버넌과 클라이브, 가머니도 다르지가 않다. 조지라는 남편이 보이는 모습과 선택들도 회의적으로 그려진다. 대외적으로 비추어지는 모습과 그들의 내면과 사생활에 감추어진 것들은 다른 인생으로 펼쳐진다. 겉과 속, 안과 밖의 이중적이고 다중적인 삶들이 이들의 직업, 부, 명성 등이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거짓된 삶들이 그들과 함께 유유히 함께 한다. 그 삶은 가머니의 아내, 가머니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의사인 가머니의 아내의 모습과 삶도 다르지가 않았다. 짧은 소설이지만 많은 생각거리들을 던지는 소설이 된다. 웅장하고 화려한 주택, 저명한 정치인, 유능한 의사, 명성이 있는 작곡가, 부유한 출판업자, 신문사의 편집국장인 이들의 삶은 드러나는 명성과 성공적인 삶만큼 완벽하였는지 보게 된다.

그토록 멸시하던 정부 아래서 근 17년간 얼마나 큰 부와 영향력을 축적해왔는가... 그런 에너지, 그런 행운,... 나라가 주는 젖과 꿀을 먹고 자라고, 부모들이 이룬 소박한 부에 얹혀살다가 곧장 완전 고용의 시대에 돌입한 세대, 새로운 대학들, 화사한 보급판 책들,... 적당할 만큼의 이상 추구. 그들이 타고 올라온 사다리가 부서지고 정부가 갑자기 젖을 떼며 잔소리를 시작했을 때 이들은 이미 안전하게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이제는 구색을 갖추느라 취미와 가치관, 재산을 불리는데 여념이 없었다. 24

늙은 사람을 합법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네덜란드라는 꼬집음이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끄는 장소가 되었음을 보게 된다. 자살이 아닌 타살임을 알게 되고 활자가 가진 다의적인 의미까지도 꼬집어내는 작가이다. 빠른 우편으로 배달되었다면 다른 의미가 되었을 하나의 문장이 이들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살아가는 이기적인 현대인들이 놓치고 있는 것들,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조차도 가지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삶이 전해진다. 자기의 이야기만이 존재하고 자기의 일만이 소중한 현대인이다. 범죄현장을 목격하지만 외면하고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한 인물이 있다. 범죄현장의 피해자가 자신이 아끼는 지인이라면 달라졌을 이야기가 된다. 비틀고 꼬집으면서 피해자를 다른 인물로 등장시키면서 질문을 던지는 작가이다.

경찰서. 그곳은 가족 거실의 확대판이었다...

이곳에 발을 들여놓은 계층의 모든 구성원은

본인이 원하건 아니건 막장 인생들이었다 174

경찰서의 풍경까지도 매만진다. 그곳에 있는 많은 피해자들과 가해자들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가족 거실의 확대판이라고 표현한다. 막장 인생들이라고 말하는 이유들이 여러 인물들을 통해서 전해진다. 이외에도 죽음을 향한 불안과 두려움들이 인물들을 통해서 전해진다. 몰리의 죽음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이들은 죽음을 깊게 관조하게 된다. 환상적인 장면들도 등장하면서 죽음을 묘사하기도 한다. 비행기를 묘사하면서 서로를 배려하지 않는 인물들까지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이 가진 이기심과 손익분기점으로 저울질하는 우정의 무게는 중심점을 잃게 된다. 그리고 서로를 파멸에 이르게 한다. "이렇게 생긴 피조물들은 결코 서로를 배려할 수 없을 것이다." (171쪽) 의사였던 부인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신문이 보여준 양상은 탐욕과 위선을 논하는 시대의 얼굴이 된다. 이 부인의 모습에서도 탐욕과 위선이 흐른다. 더불어 신문사의 모습에서도 다르지 않은 탐욕과 위선이 존재한다.

말로는 개성의 신장을 내세웠을 뿐

현실은 탐욕과 위선이 점철된 시대였다. 146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3-08-02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좋았어요!
생각을 많이 한 책입니다.

구름모모 2023-08-09 21:54   좋아요 1 | URL
이 소설 마음에 들었어요. 독서 후 이 기분 함께 나누니까 좋네요.~
 
이적의 단어들
이적 지음 / 김영사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어를 하나씩 펼쳐놓는다. 단어가 가진 의미들과 경험들이 함께 어우러진 산문집을 만난다. 어느 단어에서는 공감을 나누며 또 다른 단어들에서는 웃음도 불러온다. 활자에 짓눌리지도 않고 평온하게 단어들을 수집하면서 가수 이적의 다양한 단어들을 펼쳐보게 한다. 성공이란, 싫은 사람과는 같이 일하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는 상태라고 전한다. 목표점을 이룬 순간이 성공임을 공감하게 된다. 밥벌이와 돈벌이의 차이까지도 함께 떠올려보게 된다. 무한한 세계라고 믿었던 회전문에 갇힌 새에 대한 글도 인상적이다. 길지 않은 글들이지만 전하는 것이 확실히 전달되면서 여운이 남는 글들이다.

경우에 대한 글은 여러 번 읽게 한다. 경우없는 사람들의 행위가 가진 의미들이 증폭되게 한다. 그들의 부풀어 오르는 권위의식이 얼마나 폭력적이며 많은 이들을 힘겹게 하는 것인지도 다양한 경우에서 찾게 한다. 분노라는 감정을 정비하게 한다. 가장 좋은 것은 분노와 차별이 없는 사회이지만 현실 사회에서는 그런 희망은 불가한 꿈이 된다. 그래서 경우없는 사람들이 보이는 수많은 행위들을 향한 분노라는 감정이 어떻게 작용해야 하는지, 어떤 상호작용으로 그것들이 용납되는지 펼쳐놓는 단어가 된다.

경우 / 경우없는 사람에 대한 분노는 행위 자체에 대한 분노뿐만 아니라, 그런 행위를 용인해왔을 성장환경, 그런 행위를 가능케 하는 사회구조, 끊임없이 권력관계를 재다가 스스로 갑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만 폭주하는 교활한 상황 판단에 대한 분노를 모두 포함하기에 복합적이고 근원적이며 폭발적이다. 183

성공 / 싫은 사람과는 같이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상태 211



미리 얘기해 봐야 직접 해보기 전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지혜라는 단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넘어지고 후회하고 실패하는 경험일지라도 그것이 좌절이 아닌 새로운 도약임을 알게 된다. 그것이 곧 나만의 지혜로 쌓여가는 순간이 된다. 많은 경험이 있었고, 다양한 길들을 스스로 만들어가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한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지혜는 누군가에 의해서 얻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마음을 열어 두자고 말하는 단어도 등장한다. 끊임없이 바뀔 때 젊어진다는 것을 전하는 고수라는 단어도 매우 공감하는 글이 된다. 나쁜 말을 하고 나면 나중에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상처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고 전하는 상처라는 단어도 만난다. 개떡같이 말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고 전하는 개떡에 대한 글도 기억에 자리잡는다.

절연의 순간은 뜻밖에 쉽게 찾아온다는 아버지의 이야기도 뇌리에 남는 글이 된다. 글에는 자신의 경험도 있지만, 주위 분에게 듣고 곰곰이 고찰한 단어들도 있다. 어떤 단어들은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면서 남기는 단어들도 있다. 어휘적인 면으로 매만지는 단어들도 등장한다. 덕분에 저자가 던진 그 어휘들을 여러 번 반복하게 된다. 단어를 매만지는 글들이다. 페이지를 채운 활자는 가벼워서 좋았다. 하지만 단어들을 수집하다 보니 빼곡해진 단어들의 수많은 글들과 사유들의 집합체들은 묵직함으로 남는다. 이 단어들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의미들은 우리들의 경험들과 어우러지면서 더욱 무게감을 가중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