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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보내려는 마음 ㅣ 에세이&
박연준 지음 / 창비 / 2024년 8월
평점 :
시인의 『고용한 포옹』, 『듣는 사람』를 읽고 펼친 신간 에세이집이다. 들어가는 글에서 인간에게는 '다락'이라는 은신처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세상과 거리를 확보해 세상을 그리워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이유들을 시인의 글에서 거듭 확인하게 된다. 바닥에 앉아 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 낡고 사라져 가는 것, 존재하지만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을 글로 전하는 마음들이 전해진다. 다락이 높다면, 마음이 깊다면 무엇을 두고 싶은지 질문을 아끼지 않는 시인이다. 멈추지 않는 질문들을 가득히 마주서게 하는 글도 만나게 된다. 질문이 철학과 예술과 시의 근원이라는 것을 힘껏 바라보게 한다. 정현종의 『질문의 책』 책중에 특별한 질문이 시가 된다는 것과 아름다운 질문을 쏟아놓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사소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느긋한 성정을 가져야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떤 마음을 유지하고 노력해야 하는지 한 권의 에세이집을 통해서 보여준다. 불면과 숙면, 상상, 소설을 읽는다는 것, 화양연화, 선물, 말하기와 듣기, 적산가옥, 소풍, 뼈 헤는 밤, 명상, 새벽, 기다림, 유실물, 유년 등 무수히 쏟아지는 제목들을 남김없이 동행하면서 시인의 말을 귀담아듣는 시간은 아깝지가 않았다. 부지런히 책들을 살피고 문장들을 읽으며 꾸준히 책들을 산다. 읽지 않았다면 시인의 마음들을 놓쳤을 것이다. 시인이 새벽에 일어나 글을 남기고 고양이를 오랜 시간 관찰한 흔적들과 일 년 넘게 가지고 다닌 책에 대한 이야기와 밀란 쿤데라의 『커튼』까지도 읽어봐야겠다는 좋은 자극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예상하지 않은 순간에 시인이 읽은 책들과 글귀들을 소개받고 사유한 흔적을 떠올려볼 수 있는 에세이집이다.
메리 루플의 『나의 사유 재산』 과 『가장 별난 것』 책도 소개받는다. 짧은 산문을 쓰는 방식과 짧고 강렬하게 빛나는 것이 무엇인지도 함께 떠올리게 된다. 밀려난 자의 오랜 슬픔, 안개의 시간이라는 메리 루플의 산문 제목까지도 긴 시간을 맴돌게 한다. 사랑하여 읽을 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말하면서 시인이 사랑한 작가와 이유도 전해진다. 자신의 헝클어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가를 사랑한 이유, 누군가의 흠결에 매혹된 이유와 흠결이야말로 그 사람 고유의 것이라는 사실도 대면하게 한다.
인생을 여러 번 살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 소설을 읽는 것이라고 말한다. 소설 읽기를 그만둔다면 빠른 속도로 늙을지도 모른다고, 인생의 오솔길은 보지 못하고 대로변으로만 다니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나'를 커다랗게 키우고 싶다면 남의 삶에 개입해 그 사람이 되어봐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들이 전해진다. 삶을 웬만큼 사랑했다고 자부하는 기성세대와 현학적인 글을 읽으며 우월감을 느끼는 어른들은 더는 소설을 읽지 않는다고 말한다. 소설을 좋아해서 겁없이 첫 장을 펼치지만 웅장하고 깊은 수많은 삶들을 만날 때면 매번 놀라움을 감추기가 어려워진다. 소설 읽기는 '나'를 희생해야 하는 독서이며, 소설을 읽는 일이 얼마나 복잡하고 집중력을 요하는 일인지도 언급된다.
인생을 여러 번 살 수 있는 가장 쉬운 길.
소설 읽기 174
화양연화를 읽을 때는 화양연화 영화와 화양연화 드라마를 다시 떠올렸다. 아름다운 시절이 떠내려가는 속도라고 말하는 시인의 글도 긴 시간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프란츠 카프카 『변신』 소설, 조지 오웰의 『1984』, 『동물농장』, 메리 셀리의 『프랑켄슈타인』 소설들을 언급하면서 감시하는 빅 브라더와 타락한 독재자, 슬픈 괴물인 AI가 현대사회에 실존하고 있음을 각인시킨다. 21 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넘치게 가진 것은 욕망이며 간절함이 촌스럽게 치부되는 현실과 간절함이 욕망을 이길 때 비로소 특별해진다는 것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불면을 호소하는 현대사회가 지닌 불안과 경쟁을 숙면으로 이어지게 하는 방법까지도 스스로 찾도록 질문을 던지는 글을 만나게 된다.
'고졸하다'라는 말도 새롭게 알게 되는데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귀가 사랑하는 말이 듣기라고 말하는데 『67번째 천산갑』 소설의 남자 인물이 말을 하지 않고 듣는 일만을 하였다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말만 하고 듣지 않았던 여자 주인공이 뒤늦게 깨닫는 것이 바로 듣지 않았다는 것이기에 듣기와 말하기는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시인 아버지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지방간, 간경화, 당뇨, 고혈압, 피부 변이, 간성혼수. 10년의 노력이 무너진 것이 전해진다. 죽음이 오기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인지도 전해진다. 서울, 군산, 목포, 강릉에서 본 적산가옥들에 대해서도 전해진다. 적산가옥은 적의 소유였던 집들을 의미한다. 한 권을 읽고 나니 소복하게 쌓인 것들아 선명해진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수북해진 문장들을 주워 담는 에세이집이다.
김수영 시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202
여기저기에서 우리를 감시하는 빅 브라더,타락한 독재자,인간이 만든 슬픈 괴물 AI 우리 주위에 실존한다 - P165
우리는 때로 누군가의 흠결에 매혹된다.흠결이야말로 그 사람 고유의 것이기 때문이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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