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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꽃 소년 - 내 어린 날의 이야기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4년 2월
평점 :
시인의 성장 이야기이다. 1960년대의 이야기는 전라도를 배경으로 한다. 가족과 마을, 학교생활에서 경험한 긴 세월이 지금의 시인이 있도록 성장시켰음을 일깨워주는 내용이다. 처음부터 좋은 글귀들이 수북이 쌓여가는 이야기에 반해서 느린 걸음으로 느린 보폭을 유지하면서 꼭꼭 씹어 먹게 하는 글귀들을 가슴에 담으면서 읽게 한다. 지역성을 띠는 지역 음식들을 만드는 요리 과정도 자세하게 서술된다. 요리하다가 크게 다친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기록된다. 할머니가 처음으로 시킨 낯선 길을 다녀오라는 심부름의 여정도 시인에게는 큰 좌표가 되는 여정이 되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음을 일깨워준다. 어린 시인이 보인다. 지금의 시인이 성장하도록 곁에서 등불이 되어준 어른들과 동네 사람들이 있었음을 시인은 하나둘씩 기억하게 된다. 물을 주고 빛이 되고 영양분이 되어준 추억들이 소개된다.
시련을 지금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방황하는 분들에게도 분명히 뿌리 깊은 나무가 되는 말들을 들려준다. 인생이 순탄한 사람들도 있지만 왜 나에게만 오는 고난인지 질문을 하게 하는 순간들도 분명히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거친 바람도 불고 배고픔도 느끼며 기나긴 외로움도 느껴야 하는 학창 시절과 가정환경도 지나가야 하는 긴 터널임을 알게 된다. 그 시간들로 단단하게 뿌리가 내려지면서 큰 나무가 되도록 이끈 주변 어른들과 친구들, 첫사랑, 가족들이 있었음을 들려준다.
인류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이야기이다. 246
가난과 결여는 서로를 부르고
서로를 필요로 하게 했다.
쓸모없는 존재는 한 명도 없었다.
노인들도 아이들도 제 몫의 일들이 있었고...
공동체 속에서 우리 각자는 한 인간으로 강인했다.
선대의 낡은 관념과 관습 241
도련님으로 성장하는 사람보다는 거친 흙바닥을 맨발로 걸어간 사람이 더 좋다. 내면이 단단하기 때문이다. 굳은살이 베여있는 거친 손을 가진 노동자의 손과 깊고 짙은 주름살이 그들의 긴 노동의 삶을 말해주는 역사가 되는 얼굴을 더 좋아한다. 화려함보다는 솔직한 노동의 역사를 지닌 얼굴과 손, 남루하지만 거짓되지 않은 이들의 삶을 더 바라보게 된다. 좋은 세상을 꿈꾸었던 시인의 아버지의 짧은 생애도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아버지의 의지가 움직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가족의 희생과 배려가 있었다는 것도 이 책에서 전해진다. 할머니와 젊은 어머니의 노고가 전해진다. 자주 볼 수 없었던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도 느껴진다. 젊은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무너진 젊은 아내는 37살이었다. 4명의 자녀를 혼자서 남은 생애 책임진 여인이다. 무너진 여인이 두 번만 울었다고 시인은 어머니를 회상한다. 울음을 삼킨 여인은 강해져야만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학비를 벌기 위해, 생계비를 벌기 위해 혼자 타지에서 생활한 어머니를 기다린 어린 시인의 기억도 전해진다. 고무신을 보고 기뻐했던 순간과 어린 동생이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씻어놓은 고무신은 그리움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곁에서 지켜주지 못했던 어머니의 삶과 마음, 점점 야위어간 어머니의 인생만큼 시인의 외로움도 깊은 골짜기가 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외가에 손을 벌리지 않고 4남매를 키운 어머니의 고단한 여정의 힘은 남편을 향한 그리움과 신앙이 힘이 되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어머니의 이어지는 기도들이 여인의 삶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어머니 / 그들이 내 안에 살아있다. 그들이 내 안에서 말을 한다. 우리는 그 모든 걸 품은 위대한 역사적 존재다. 아무리 오늘이 힘들어도, 다시 고난이 닥쳐와도,... 너에겐 누구도 갖지 못한 미지의 날들이 있고 여정의 놀라움이 기다리고 있어. 그 눈물이 꽃이 되고 그 눈빛이 길이 될 거야. 247 ~ 248
할머니와 청년 이야기 / 미군들도 월남 청년들 많이 죽었다. 힘을 잘못 썼다. 나도 한이 큰데 ... 할머니 말씀처럼 ... 힘을 잘 써야 한다... 그러고 싶어 그러했겠는가... 한 많은 세상 한 많은 사람들... 악한 건 못 들게 선한 마음 북돋아 가거라 178
기도가 유유히 흐른 집안에서 바른 사람이 되도록 일러주신 할머니가 멋지게 기억 속에 남는다. 어른의 진정한 모습이 할머니에게서 보인다. 신부님의 경청하는 모습에서도 배우게 된다. 가난한 이들의 곁에서 들어주는 신부님과 필요한 기도가 무엇인지도 일러주는 동행자가 있었음을 보게 된다. 말없이 어린 시인의 곁에서 촛불을 밝혀주면서 기다려준 선생님도 있다. 책들을 일주일마다 채워 넣어준 선생님의 마음과 손길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벙어리 누나와의 추억도 그를 키워낸다. 초등학교 졸업식날 친구와 나눈 대화와 함께 국밥을 먹었던 사연도 기억에 남는다. 학교란 무엇인지 다시금 살펴보게 된다. 공부 1등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등교 전 논밭일을 몇 시간씩 하고 등교한 친구의 졸음은 노동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친구가 선물해 준 것과 그가 마지막 졸업장이라고 말하는 이유와 목수가 된다는 말과 함께 마을 형과 누나들이 일을 하기 위해 도시로 나가는 상황들도 씁쓸하게 이해하게 된다. 가난하다는 것은 어린 노동자들을 일찍 노동시장으로 데려다 놓는다. 배움의 기회는 사라진다. 식모가 되고 일용직과 공장 노동자가 된다. 이들의 생애까지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먹먹해지는 마음으로 주변에서 사라진 마을 형과 누나들의 사연들도 아프게 그려진다.
몸에 힘을 빼라. 온몸에 힘을 빼고 텅 비우면 절대로 안 가라앉는다. 144
내 눈은 멀었으나 다 보고 느껴지는 것이 있어. 사람의 마음씨는 못 속이는 법. 고생은 피할 수 없는 것. 자네도 우리 숙이도. 힘든 거 아픈 거 쓰린 것 다 영약이니 고생을 달게 삼켜야 해. 원한은 말이야. 참말로 중요한 것. 원은 보듬고 풀어서 해원해야 하나, 한은 깊이 고이 품어 가야 하는 것... 한에서 정도 나고 눈물도 나고 힘도 나오는 게 아니겠는가. 109
굽히지 말고 걸어가소. 선령들이 지켜 줄 것이야. 110
분명한 건 고통과 시련, 절망의 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사실이다. 중심을 잡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지는 내용이다. 머리를 쓰는 노동과 몸을 사용하는 노동의 가치가 균등하게 대우받는 사회가 살기 좋은 세상이다. 악함으로 이득을 취하는 구성원이 아닌 정직한 노동으로 잘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한 사회, 불공정함이 넘치지 않는 사회가 되도록 힘이 되는 등불이 되는 글귀들을 부여잡게 한다. 할머니의 가르침, 말 잘하는 사람보다는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전해진다. 학식으로 높아지는 사람보다는 경험으로 일러주는 가르침으로 두려움을 이겨내도록 일러준 이야기들과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훈장님이 일러주는 말들도 밑줄을 긋게 된다. 귀한 말들로 바른 어른이 되어야 하는 이유들이 즐비해진다. 자본주의에 휩쓸리지 않는 지조와 현명함을 일깨워주는 여러 가르침들이다.
친일파를 분별하면서 살아야 하는 이유도 들려준다. 시인이 선택한 것들과 선택하지 않았던 이유들도 드러난다. 지금의 시인의 삶의 지표가 된 가르침들이 이 책에서 전해진다. 시인의 책은 처음이 아니다. 무조건적으로 펼친 책이다. 읽지 않았다면 아쉬웠을 듯하다. 시인의 책들을 릴레이 독서하게 만든다. 시인을 처음으로 알게 된 건 시와 사진들이었다. 흑백의 사진들과 시어들은 강열했다. 그 발걸음과 의지가 무척 궁금했었다. 그렇게 시인의 책들과도 계속 만나게 된다. 어른인지 아이인지 자신을 거듭 살펴보게 된다. 잘 살아가고 있는지 계속 돌아보게 한다. 좋은 어른을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는 연습이 필요하다. 미디어의 자극성에 휩쓸리지 않도록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자 책과 영화들을 찾게 된다. 신앙도 다르지가 않다. 기도의 힘은 위대하다. 매일 기도한 시인의 가족들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든든한 힘이 되어주면서 뿌리가 되는 내용들이다.
나에게 성서는 울음의 책... 울음이야말로 복음... 눈물이야말로 은총... 가난하고 불운하고 슬픈 눈을 가진 예수. 고난받으면서도 사랑이 제일이라고, 사랑이 처음이자 전부라고,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애통하고 분노하고 울면서도,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다 이루었다' 기꺼이 죽어간 예수 55
영성체는 영혼의 양식인 것, 나누어 먹는 조각들로 일치를 이루는 것 56
거룩한 마음가짐과 삼가함의 자세와 사랑은 나눔이라는 신비 56
몸에 힘을 빼라. 온몸에 힘을 빼고 텅 비우면 절대로 안 가라앉는다. - P144
쓸모없는 존재는 한 명도 없었다.
노인들도 아이들도 제 몫의 일들이 있었고...
공동체 속에서 우리 각자는 한 인간으로 강인했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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