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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민 토킹
미리엄 테이브스 지음, 박산호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5월
평점 :
영화로도 만날 수 있는 소설이다. 실화 사건을 바탕으로 작가가 집필한 이 소설은 플롯이 없다는 이유로 판권 구매를 거부한 곳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플롯은 없지만 피해 여성들이 자신들의 신앙 공동체 생활에서 밤마다 당한 성폭력의 흔적들은 참혹하였고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여성들이 함께 모여서 논쟁하며 처음으로 자신들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들을 통해서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한 미래를 어떻게 대처하는지 궁금해지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많은 시간이 주어진 상황이 아니다. 피해 여성들에게는 공동체 남자들이 가해자 남자들을 풀어주기 떠난 짧은 시간에 선택을 결정해야 하는 운명에 놓이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남아서 싸우기, 떠나기를 표현하는 그림들이 그녀들의 투표용지이다. 글을 배우지 못하도록 공동체가 여성을 배제한 종교 집단에서 그녀들은 남성들이 전하는 성경 말씀만을 듣고 믿는 신앙인들이다.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설교와 말씀을 믿으면서 생활한 여성들이 이 집단 남성들에게 성폭력을 당하였던 것이다. 동물 마취제로 남편이 있는 여성들, 처녀들, 3살 어린 소녀까지도 수차례 성폭행한 사건은 경악하게 한다. 투표용지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여자들은 글을 읽을 수 없도록 남성들만 교육을 받았음을 짐작하게 된다.
1. 아무것도 하지 않기
2. 남아서 싸우기
3. 떠나기
화자는 피해 여성들이 공동체 남성들이 없는 밤 시간에 모여서 회의하는 내용들을 기록하는 남자이며 아이들의 선생님이다. 그는 부모와 함께 이 공동체에서 생활했지만 추방당한 가족이었다. 그 이유도 후반부에서 실체를 드러낸다. 성경은 믿음과 사랑을 무수히 언급한다. 그러한 말씀으로 구성된 공동체에서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여성들에게 의문의 멍 자국과 통증을 죄, 유령, 악마의 소행, 신의 벌, 거짓말이라고 비난하고 상상이라고 말한 타인들도 뚜렷하게 바라보게 된다. 가해자를 숨기고 피해자를 마녀로 만드는 패턴이 감지된다.
갇힌 세계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에게 배움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다. 두려움과 불안을 계속 호소하면서 그들의 논쟁은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힐난하고 언쟁을 하는 모습도 두드러진다. 하지만 제대로 생각할 수 있도록 잡아주는 여자가 보인다. 사랑의 의미를 숙고하였음을 보여주는 인물이며 선언문이나 성명서를 만들자고 제안하는 젊은 여자가 있다. 화자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이 여자는 어머니가 비밀 학교라면서 소녀들에게 들려준 수업 내용들을 잊지 않고 말하는 여자이다. 오나라는 그녀가 말하는 것들을 주워 담을수록 수북해진다. 여자들에게도 생각할 권리를 허용하기, 소녀들도 읽고 쓸 수 있도록 가르치기, 기존 종교를 토대로 사랑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종교를 여자들이 만들자고 제안한다. 비밀학교에서 어머니가 가르친 내용들도 살펴보면 뭔가 중요한 것, 기억하고 있는 것, 잃어버린 것, 우리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기가 해당된다.
가부장제에 길들여진 문화에서 여자들에게 중요한 것, 기억하고 있는 것, 읽어버린 것들이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한다.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에서도 아버지가 딸의 뺨을 가차 없이 때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소설에도 딸이 아버지에게 맞은 뺨의 멍 자국이 등장하는 만큼 세계 여자들이 가부장제의 다양한 피해 사례가 드러나는 것이 문학이다. 죄책감도 없고 정당한 그들의 폭력에 길들여진 많은 여성들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음을 떠올리게 한다.
자기 의지와 자기결정이 왜 중요한지도 이 작품에서도 확인하게 된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충직한 개가 된 남자들의 일원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자신이 누구인지, 그들이 보호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 누군인지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 여성들은 도망가는 것과 떠난다는 것조차도 구분하지 못해서 여러 차례 의미가 다르다고 다시 설명하는 대화도 등장한다.
광분하고 폭력적인 영혼이 드러나지만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다음 세대를 지켜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 여성들은 서서히 선택을 결정하게 된다. 이들의 선택은 무엇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을지, 남아서 싸울지, 떠날지 궁금해진다.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지켜야 하는 아이들이 반복적으로 계속 피해자로 살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을지 모두에게 주어지는 질문이 되는 소설이다.
잔인한 폭력으로 이어진 이유들을 질문하게 한다. 욕망과 사랑이 퇴색되고 연민과 따스함이 없었던 이유도 공동체에서 살펴보게 된다. 악은 어디에 존재하는지도 질문을 던진다. 숨을 쉴 수 없고, 움직임도 없고 삶도 없는 흑해 밑의 강을 떠올렸던 이유와 접목하게 된다. 이들의 공동체가 바로 그러한 곳이었음을 보게 된다. 이곳에서 길들여진 여자들이 어떤 삶을 살고 욕망의 피해자가 되도록 방관되고 학습된 남자들이 어떤 범죄를 죄책감 없이 종교인으로 범했는지도 드러난 사건이다.
가부장제는 지금도 유유히 흐른다. 학습된 자녀들이 어른이 되어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우려스러운 문화가 정당화되어서는 안된다. 그러한 문화에 생각 없이 갇혀서 길들여진 여자가 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을 한강 작가와 이 소설의 작가도 작품을 통해서 보여준다. 가해자가 남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것이 가부장제이다. 학습된 여자들이 다시 여자들을 학대하고 고통을 상속시키는 한국 문화도 다르지가 않다.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는 힘이 필요해진다. 혐오로 왜곡되지 않는 사회가 선진국이 될 것이다. 그러한 사회로 나아가도록 문학은 진중한 목소리들을 외면하지 않고 확성기처럼 외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세계가 주목한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만큼 이 소설의 여성들이 선택한 가치와 이유들은 명확해진다. 그녀들은 길을 잃은 것이 아니며 실패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성경은 누가 집필하였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남성의 관점에서 집필되고 여성은 배제되었다는 것에서 의문을 던지는 움직임들이 책들을 통해서 감지된다. 마녀도 종교적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된 것임을 확인하게 되는데 이 소설에서도 여자들은 그러한 마녀사냥감이 되어서 죄와 악마로 남자들이 포장해버렸음을 목도하게 된다.
여자들은 고통과 슬픔, 불안과 괴로움을 직시하지만 죄책감은 아니라고 힘주어서 말한다. 남자가 바느질을 배운다고 놀라워하는 남자의 대화도 주목하게 된다. 이분법적인 사고가 얼마나 피폐하고 무능하게 만들었는지 보여준다. 읽는 능력, 생각하는 능력, 숙고하는 힘은 성장으로 이어진다. 어떤 폭력도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감옥에서 매일 맞았다는 화자의 경험과 여자들의 성폭행과 임신, 아기를 출산하겠다는 의지를 단호하게 전하는 오나의 모습에서도 사랑과 폭력은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사랑이라는 의미는 결코 쉽지 않다. 오나의 아기를 통해서 사랑이 무엇인지 깊게 호흡하게 한다.
옳은 것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의 중요한 차이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평화주의와 비폭력을 위해 소년들과 남자들을 재교육하고자 했던 이유도 전해진다. 타인을 연민하는 힘, 존중하는 능력이 왜 필요한지 이 사건의 가해자들을 통해서 두드러진다. 그들에게 없었던 것이 무엇인지가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없는 것들이 무엇인지, 사라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보여준 소설이다.
정확히 우리가 뭘 위해 싸우는지 밝히는 게 이롭지 않을까? 88
여자들에게도 생각할 권리를 허용하기, 소녀들도 읽고 쓸 수 있도록 가르치기, 기존 종교를 토대로 사랑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종교를 여자들이 만들기 90
엄마 모니카가 비밀학교에서 소녀들에게 들려준 수업 내용 / 뭔가 중요한 것, 기억하고 있는 것, 잃어버린 것, 우리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전달하려 시도 91
투표용지 그림.
여자들은 글을 읽을 수 없으니까. 22
아버지가 남긴 멍 자국. 뺨 241
우리는 아들들이 타인을 연민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되도록 키우는 - P239
우리는 길을 잃은 것처럼 느낄지 모르지만, 우리가 실패한 건 아니란 걸 알게 될 거야. - P238
문제는 성경에 대한 남자들의 해석과 그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전수됐냐는‘ 거야. - P236
신이라면 우리가 떠나는 것을 다른 말로 정의하실 거야. 사랑과 평화를 위한 시간 - P237
여자들이 하느님의 말을 스스로 해석한 것은 아마도 지금 이 순간이 처음일 것이다. - P237
우리는 고통과 슬픔과 불안을 느끼고 괴로움을 느끼겠지만 죄책감은 아니야.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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