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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ㅣ 페이지터너스
마샤두 지 아시스 지음, 이광윤 옮김 / 빛소굴 / 2023년 11월
평점 :
브라질 작가의 단편 4편과 중편 1편을 모은 선집이다. 내면을 소설을 통해서 보게 된다. 친한 친구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남자의 내면을 다룬 『점쟁이』는 카드점을 봐주는 이탈리아 점쟁이 여자의 말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두려움과 불안, 초조한 감정으로 불륜에 빠진 아내의 남편인 절친의 편지를 받고 향하면서 그가 느끼는 감정들과 정쟁이가 들려준 말을 믿고 향하는 발걸음은 대조적이다. 시기와 원한의 감정이 끓어오르고 있으니 매우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점쟁이의 말을 기억하게 된다. 들어도 듣지 않고 들리지 않는 말이 있다. 듣지 않았던 이유와 듣고 싶은 말만 들었던 그에게 일어난 사건과 그녀에게 일어난 사건을 짧은 소설로 들려준다.
간교하고 예리한 눈을 지닌 점쟁이가 볼품없는 낡은 가구들과 어두운 벽에서 생활하는 궁핍한 분위기를 주시하게 된다. 카드점이 맞았다면 점쟁이가 그러한 환경에서 살았을지 의문을 가지면서 읽게 된다. 점쟁이를 찾는 무리가 존재하는 이유도 소설의 두 남녀를 통해서 이해하게 된다. 낡은 미신 같은 것이 솟구치는 이유는 불안과 초조가 내면을 장악하면서 시작되는 것을 두 남녀를 통해서 보여준다.
햄릿은 호레이쇼에게 말했다.
하늘과 땅에는 우리의 철학이 꿈꾸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고 7
그녀는 자신이 햄릿을
지나치게 평범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그에게 이 세상엔 신비하고도 진실한 것이 많다고 말했다) 8
햄릿이 말한 대화를 주워 담는다. 평범하게 이해하는 것들을 더 깊게 이해하도록 이끄는 이야기이다. 단편 소설이지만 작가가 표현하는 점쟁이 집의 분위기와 점쟁이의 카드점이 두 남녀의 운명과도 연결된다. 신비하고도 진실한 것이 두드러진다. 두 남녀는 얼마나 이해한 것일까. 진실한 것의 제대로 응시하지 않았고 외면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단편소설을 통해서도 보여준다. 익명이 첫 번째 편지는 경고였지만 무시한다. 그리고 마지막 익명의 편지는 되돌릴 수 없는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는 다시 무시해버린다. 멈추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을 무시하면 되돌릴 수 없는 마지막이 찾아오기 마련이지만 인간은 멈추지 않는다. 멈추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다시 하나씩 열거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브라질의 대문호라는 사실을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감탄하게 된다. 기생적 사고를 모두 부인하는 그가 미신을 거부하였는데 불안과 초조한 감정에 질식하면서 다급하게 찾은 곳은 점쟁이의 카드점에 운명을 맡기는 상황을 보게 된다. 죽음이 코앞에 우뚝 서있는 것도 모를 정도로 살아가고 있는 인물을 이야기한다. 친한 친구를 기만한 두 남녀의 카드점을 뽑아보면서 다시 소설을 이해하게 된다. 첫 번째 익명의 편지와 마지막 익명의 편지는 경고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보게 된다. 기만 당하는 사람이 진실을 어떻게 해결하였는지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준비되지 않았는데 상황이 종료되어버린다. 당겨진 것이 무엇인지는 소설에서 만나게 된다.
『회초리』 소설도 강하게 강타한다. 의욕도 없고 아주 유약한 대부라는 인물과 대부의 연인인 과부라는 여인도 주목하게 된다. 신학교를 도망쳐서 나온 아이는 갈 곳이 없다. 대부의 연인의 집을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하면서 그가 목격하는 어린 흑인 소녀가 당하는 어려운 상황들을 보면서 다짐한 것과 그가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 얼마나 부조리한지 보여준다. 여인에게 회초리로 맞았던 흔적들이 남겨진 어린 흑인 소녀를 보았지만 결국 그는 어린 흑인 소녀를 때리는 회초리를 가져다주는 상황이 된다.
종교란 무엇인지 소설에서도 질문을 계속하게 된다. 강요당하는 신학교 학생과 강요하는 아버지, 도와달라고 하지만 도와주지도 못하는 대부의 모습과 어린 하녀들에게 포악하게 벌하는 여인의 모습에서 종교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진다. 하지만 그들은 신을 찾는다. 신을 부른다. 신의 은총을 무수히 받고자 하는 종교인이다.
한 손에는 종교가 있지만 다른 손에는 회초리를 들면서 주인과 종의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 한가롭게 카드놀이나 할 궁리나 하면서 노예는 어린 나이에 불안과 초조함으로 하루를 견디면서 웃음조차도 자유롭게 웃지 못하게 한다. 웃을 권리, 자유로울 권리를 박탈당한 어린 흑인 소녀는 노예로 삶을 살게 된다.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폭력의 흔적들이 소설에 등장한다. 흑인 소녀의 이름조차도 작가는 언급하지 않는다. 인물들은 모두가 이름이 존재하지만 흑인 노예들은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가 노예를 어떻게 대하였는지 소설에서도 고스란히 투영된다. 이름조차도 사치스러운 어린 노예들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하인들은 모두가 흑인이다.
소설은 이 사회와도 접목한다. 아르바이트와 계약직,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사회는 정교하게 노동 사회를 더욱 옥죄면서 노예로 사용한다. 종교가 어떤 모습으로 사회에 정착하고 있는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찾아보지만 희미하여 보이지도 않는다. 신학교에서 도망친 아이의 외침은 어른들에게서 무참히 훼손된다. 종교인이 된다는 것은 인간적인 관점이 아니다. 소설에서는 모두가 본성을 버리지 않고 신을 찾는다. 한 손에 회초리를 들고 있는 종교인은 아닌지 우리들에게 질문하는 소설이다. 아이러니, 모순, 부조리를 작품들을 통해서 매만지게 된다.
친구의 얼굴에 꽃병을 내던져 깨뜨릴 수도 있는 인물 31
신학교에서 도망 친 아버지는 어떤 인물인지도 알아야 한다. 친구의 얼굴에 꽃병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람이다. 포악한 본성을 그대로 지니면서 자신의 아들을 신부로 만들고자 하는 종교인이다. 종교는 희생을 요구하지만 어느 누구도 누군가의 고충을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다. 유약한 대부조차도 한 손에 회초리를 들고 다니는 가짜 종교인이다. 회초리로 누구를 때리고 있지 않는지 종교인들에게 말하는 작품이다.
『도둑 신부』 소설에서 대학을 "앞으로 골반이 절대 움직이지 않도록 척추를 녹여서 딱 붙여 버리는 곳" (47쪽)이라고 표현한다. 이 소설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보인다. 종교가 전쟁, 노예로 경제적 부를 획득하였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사랑을 찾고 싶지만 사랑의 온기를 찾기가 힘들었던 이유가 선명해지는 소설이다. 작가가 소리 높인 목소리가 무엇인지 짧은 소설의 제목에서 상징성을 부여받게 된다. 무수히 많이 손을 바라보게 한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게 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