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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페스트 (초호화 스키버 금장 에디션) - 1947년 오리지널 표지디자인 ㅣ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알베르 카뮈 지음, 변광배 옮김 / 더스토리 / 2023년 6월
평점 :
뜨거운 해양도시의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들이 설명된다. 모든 일이 한꺼번에, 열광적이면서도 건성으로 이루어지며 비둘기, 나무, 정원이 없어서 계절의 변화를 하늘에서만 읽을 수 있는 삭막하고 다채롭지도 않으며 삶이 흥미진진하지도 않는 평온한 도시이다. 이 도시 사람들이 사랑하는 법도 기억해야 한다. 빠르게 소모하거나 결혼으로 정착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 시간이 부족하고 성찰할 여유가 없는 이 도시 사람들의 사랑하는 방식에 질문을 한다. 도시가 살아가는 방식이 도시의 얼굴이 된다. 『행복의 기원』책을 읽으면서 이 소설 속의 도시를 자주 떠올리게 된다. 생략되고 시간들이 도시에는 유용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에게는 공허함이 뒤따른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모습도 보게 된다. 사랑을 빠르게 소모하는 것, 사랑을 생략하고 결혼으로 정착하는 방식이 어떤 후폭풍을 일으키는지도 스스로 깨닫게 하는 소설이다. 생략되는 사랑, 쾌속선을 타는 결혼 방식을 통해서 사랑하는 법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워진다.
밤낮으로 일에 몰입...
신문도 읽지 않고 라디오도 듣지 않았다.
건성으로 대응.
무관심 238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사를 위협하는 폭력적인 상황에서도 건성으로 대응하며 신문도 읽지 않고 라디오도 듣지 않는다. 무관심으로 일에만 몰입하는 그들의 모습을 예의주시하게 된다. 카뮈의 시선에 그들은 지금도 낯설지가 않은 군중의 모습이다. 보지 않는 사람들, 듣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고 무관심으로 대응하는 모습은 다시 페스트와 같은 엄청난 사건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위협을 감지하게 된다. 찬양하는 집단이 있고 폭력적인 방식을 선호하며 언제든지 위협적으로 그들의 폭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하는 행위가 지금도 뜨겁게 언론을 달구고 있다.
페스트는 균이라는 질병으로 함축되지 않는다. 카뮈는 철학자이며 소설가이다.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깃발을 올린 것들을 고찰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연대기라고 서술자가 언급한 이 소설이 기록된 이유와 그 도시에서 살아간 사람들, 희생된 사람들, 죽음이 어떻게 처리되고 사라졌는지도 이야기된다. 총성과 함성이 끝나는 소리의 의미는 끝이 아님을 일깨운다. 언제든지 그 총성과 함성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 도시에 찾아온 변화를 감지한 행정당국의 대처 방식과 언론을 통제하는 방식이 눈길을 끈다. 감추고 숨기는 이유와 페스트가 끝나고 그들이 훈장을 요구하며 추모비와 연설을 하는 모습까지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된다. 노인이 하는 말들이 옮았다고 동의하는 모습들이 설명된다. 소설을 집필하고자 준비한 기나긴 시간만큼이나 소설에 밀집된 밀도는 놀라울 정도로 감탄하게 된다.
봉쇄된 도시, 매일 치솟는 사망자수, 치료가 아닌 환자를 강제로 격리시키는 시스템, 수용소에 격리되는 가족들, 이론적으로 정통한 종교인이 설교한 모습과 소년이 페스트로 죽어간 모습을 직접 목격한 후 변화된 신부의 모습과 그가 페스트로 죽어가면서 보여준 모습, 페스트가 종식되었다고 축제 분위기에서도 타루가 페스트로 죽은 이야기까지도 신부의 설교 내용과 함께 상징성을 보여준다.
종교가 휘두르는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모순에 신부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판사였던 아버지가 어린 아들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변화되는 모습도 이야기된다. 자신들의 안온한 삶이 어떤 타격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오만함에서 자신들에게도 휘갈기는 페스트의 죽음의 광폭에 그들은 변화되기 시작한다. 신을 믿느냐, 신을 믿지 않는 냐 보다도 인간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들이 있었음을 페스트 소설은 이야기된다. 피로함에 압도되어도 그들은 자신이 봉사하는 곳에서 다수를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전해진다. 죽음의 공포조차도 이들의 봉사를 짓누르지 못한다.
내가 미워하는 게 죽음과 악...
우리는 동맹입니다.
함께 그것들을 겪고 함께 싸우고 있죠.
이제 하느님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파늘루의 시선은 피했다. 276
의심스러운 공기, 밤에만 이동되는 구급차, 구덩이의 용도까지도 설명된다. 발포되는 총성 소리, 봉쇄된 도시민들과 자유를 찾고자 떠나려는 사람들의 함성도 함축적이다.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 그들을 잊은 사람들도 이야기된다.
타루가 18살부터 부모에게서 떠나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고생하면서 살아온 신념도 들려준다. 검사였던 아버지가 사형선고를 원하는 모습과 총살된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사형이 지닌 참혹함까지도 전달한다. 성자가 되고 싶었던 그가 타인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평화라는 희망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는 것도 언급된다. 전염병에 쓰러진 많은 사망자들은 죄로 쓰러진 것이 아님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우리 모두를 휩쓸 질병이며 종교는 그들을 진심으로 애도하며 기억해야 하는 것임을 일깨운다.
사랑이 사라진 도시에 사랑을 보여준 많은 이들을 기억하게 하는 소설이다.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언론, 사랑이 명시되지 않는 행정당국의 대응 방식, 사랑이 사라진 도시에서 사망자가 처리된 방식, 무감각으로 일에만 몰두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 법의 모순과 종교의 모순, 자유와 감금을 동일시하면서 비꼬는 소설의 예리함까지도 기억하게 된다.
의연한 모습으로 당황하지도 않는 일관된 모습을 보여준 리외의 어머니와 타루의 우정도 기억난다. 카뮈의 『이방인』의 소설만큼 이 소설도 작가의 의중을 짚어낼 수 있었던 작품이다. 법과 사형제도, 모순과 부조리, 훈장과 추모비와 연설을 하는 그들이 허겁지겁 먹어 치우는 것들도 보여준다. 전쟁과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페스트 소설을 다시 음미하게 한다. 페스트 진균은 언제든지 다시 시작될 수 있음을 경각심을 가지게 한다. 『반민특위전』 친일인명사전과 친일파에 대해서도 생각나게 하는 내용이 된다.
금장 스페셜 양장본 소설로 읽었다. 띠지도 있어서 불편함이 없었다. 마지막 설명 코너도 있어서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장황하게 펼쳐졌던 소설을 집약해 주는 설명이며 무거웠던 내용들을 여러 날 끌어안으면서 카뮈의 소설에 또 한 번 감동을 받았다. 가볍지 않은 문장들, 철학자가 소설로 대중들과 함께 고찰하게 하는 내용들이 많았던 소설이다. 카뮈의 시선의 끝은 날카로웠다. 고심하고 노력한 긴 시간만큼이나 페스트 소설은 이 시대의 모두에게도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남기는 문장들이 무수히 많았던 작품이다.
한 종류의 감옥살이를
다른 종류의 감옥살이로 재현하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으로 재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합리적이다.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 대니얼 디포
저들은 정말 항상 똑같아요. 죽은 자를 위한 추모비... 연설... 노인은 킥킥 웃어 댔다... ‘고인들은......‘ 그러고는 허겁지겁 먹어 치우겠죠. -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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