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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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는 암선고를 받았다. 병상에서 치료를 받으며 카프카의 마지막 일기를 떠올린다. "모든 것들은 오고 가고 또 온다." 그의 말을 사유하면서 자신도 병을 슬퍼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임종 3일 전 섬망이 오기 직전까지 병상에 앉아 메모장에 일기를 쓴 기록물이다.

삶과 질병, 죽음을 무수히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암은 소설에서도 과학자들의 에세이에도 자주 등장하는 질병이다. 일상을 흔들며 치료 과정의 고통도 전해지기에 낯설지 않은 인생의 한 부분이 된다. 대처하는 마음 방식도 다양하다. 어린이와 청소년, 청춘들에게도 갑자기 타격하는 것이 암이다. 암은 곧 삶이 마감될 수 있다는 회고록이 된다. 탄생과 인생을 돌아보면서 죽음까지도 진지해지게 하는 것이 암이다. 언제든지 죽음은 도처에 도사린다. 갑자기 사라지는 생명도 있기에 죽음을 준비할 수 시간이 허용되는 깜빡거리는 등불이 된다.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이 암이다.

철학자가 암을 받아들이며 사유한 궤적은 솔직하다.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나면 책등을 매만지게 되는 책들 중의 한 권이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망각의 불빛이 고마웠던 만큼 죽음도 준비가 필요해진다. 어떻게 살아갈지, 어떠한 마지막을 준비할지도 다양하게 사유하게 된다.

죽음은 교만하지 않게 한다. 공평하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간이 된다. 암도 그러하다. 철학자의 일기는 또 하나의 선택이 되어 사유의 궤적을 한 걸음씩 지긋하게 눌러서 걷게 하는 글들이다. 이언 매큐언의 <검은 개>소설에서 장모가 프랑스 남부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지 않고 혼자 시골에서 생활하다가 병으로 요양원을 선택한다. 그 선택이 묘연하다고 사위는 회고한다. 요양원에서 부적응하였던 장모가 갑자기 의료진에게도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 이유를 사위에게 설명하는데 <도덕경>의 구절로 이해시키는 장면이 있다. 장모가 늙고 병들었을 때 선택한 것들과 대처한 삶의 방식이 기억에 남는 소설이다.



꺼져가는 등불이 선택한 것들은 누군가에게도 갈림길이 된다. 철학자가 메모한 것들과 의지가 뚜렷하게 길이 되어준다. 항암 과정조차도 누군가에게는 마음 준비가 되는 기록이 된다. 낯설고 막연한 암들과 싸우는 이들도 있고 받아들이고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이 책의 글들은 무겁기도 하고 가벼워지기도 하는 묘연한 글들이다. 갈피를 잡지 못할 때는 가볍고 진지해질수록 글들이 무거워서 오랜 시간 책장을 여러 날 걷게 하는 일기가 된다. 병원에서의 검사과정도 다르지가 않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게 된다. 보이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눈을 계속 보게 된다.

주어진 삶에서 살아있는 이유를 무수히 발견하게 된다. 수술방에 있을 때 홀로 눈물 흘린 외로웠던 한 사람이 있다. 그때 그 사람은 이후로 매일 웃고 긍정적으로 응원해 준다. 단 한 사람이 사람을 살리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면서 검사과정도 이겨낸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철학자의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전해진다. 고통이 없는 날은 없어서 함께 기뻐한다. 숨막히는 고통에는 글이 짧게 끝난다. 짧지만 강하게 버틴 철학자의 의지가 여백을 가득히 채운다. 인생은 다양한 방식으로 고통을 채우면서 버티는 과정이 된다. 삶의 여정과 마지막 순간을 짐작하게 된다. 책을 통해서 만나는 철학자이다. 혼동과 충격, 고통과 평온, 찾아오는 순간까지 남긴 메모장의 글은 삶의 의지로 남는다. 사랑했던 순간들과 기록한 글의 이유들이 명확하게 전해진다.

한 철을 살면서도 풀들은

이토록 성실하고 완벽하게 삶을 산다. 81

몸을 지키는 일이 정신을 지키는 일이고

정신을 지키는 일이 몸을 지키는 일이다. 160

류샤오보가

부인 류샤에게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말

"잘 살아가세요."

"늘 기쁨을 잃지 말고 살아가세요." 42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242

책을 통해서도 삶의 여정을 깊게 사유한다. 수술을 하고 깨어나면서 밀려오는 심한 통증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하였다. 살아가는 태도가 달라지면서 이 책을 꾸준히 펼쳐보게 된다. 마약성 진통제 부작용으로 진통제 투여를 멈추고 수술 후 통증을 참다가 잠을 청할 수 없어서 그제야 마약성 진통제를 천천히 넣어달라고 요청한 후 단잠을 잘 수 있었다. 얼마나 아프면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는지 짐작하게 된다. 병상의 통증을 알기에 철학자의 고통은 절절하게 사실적으로 전달되면서 묵직해진다.



때로는 눈을 감으면 놀라운 것들을 보기도 한다. 즐기기에 바쁜 삶에서는 보지 못하는 단상이 존재한다. 놓치고 있는 것들, 소중한 것들을 보아야 한다. 평범한 날에도 소중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글을 통해 오늘이 너무나도 소중해진다. 오선지에 분명하게 음을 그려 넣는 작업이 필요해진다.

유전적인 병으로 하루하루를 보낸 일기이다.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글에 녹아 흐르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생은 쌍곡선 운동이라는 글을 보면서 힘을 내고 있는 시간들이 전해진다. 희망을 간직하고 사랑하며 감사하는 순간들을 담아서 쓰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 보여준다. 마지막까지도 유지한 선율이 되면서 마지막 장을 마감한다.

사이사이 지나가는

천진하고 충만한 순간들이 있다. 138

울음도 연주가 아닐까... ​

추락하는 눈물들이 어떤 노래가 되지 않을까. ​

그 어떤 비상의 노래... 208

『델러웨이 부인』을 읽는다...

첫 문장의 빛은 역시 해맑은 아침 햇살이다.

"델러웨이 부인은 꽃은 자기가 스스로 사겠다고 말했다." 47

물들은 사랑의 역학을 가르친다.

물들의 사랑은 급하고 거침없고 뚫고 나간다. 49

지나가는 것들을 지나가도록 놓아주고

지금 여기 있는 것들을 있는 모양대로 받아들이고

다가오는 것들도 무심하게 담담하게 맞이한다. 50

글을 메모하고 남긴다는 것이 남은 이들에게 얼마나 큰 그리움이 되는지 알려준다.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된다. 화해하고 놀라운 질문들과 변화를 보여주었던 가족들이 생각난다. 죽음은 또 다른 삶의 여정으로 기억 속에 자리 잡는다. 가족들이 떠나는 순간까지 보여준 모습들은 글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한 빛이 되면서 지금까지도 흔들리지 않는 등불이 되어주었다. 에르난 디아스의 <트러스트> 장편소설에서 부인이 암으로 죽어가는 과정에 기록된 일기가 있다. 명징하게 울리는 글귀들을 다시 주워 담게 한다.



이 책은 남겨질 이들을 위한 일기이다. 타자를 지키려는 의지와 진심이 일기를 통해서 전해진다. 자기만을 생각하면 매일 약해진다고 하면서 고통 속에서도 남은 이들을 위한 마음이 자신을 버티게 해줬음을 보여준다. 죽음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지만 인생이라는 계절 중에는 누구나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경험하게 된다. 겨울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에 오늘이 소중해진다. 오늘을 찬미하게 한다. 삶을 사랑하고, 아름다움을 충만하게 느끼며 감사함이 가득해진다. 기력이 노쇠해지는 글에서도 사랑과 기쁨을 노래한다. 그럼에도 행복을 가득히 담는다. 겸손하고자 노력하는 문장들이 보인다. 음악의 선율로 전달되는 일기로 남는다 몸과 정신을 어떻게 정진하였는지 기록하면서 자신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전해진다. 죽음은 아주 가까운 곳에 존재하면서 삶도 함께하는 것이 인생이다.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애도 일기'를 통해서 다시 살펴본다.

사랑하기,

기쁜 감정 충분히 표현하기,

겸손하기,

행복 느끼기,

감사하기.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있다.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그 길을 누구나 홀로 가야 한다. 그래서 더 겸손해지고 더욱 밀착해서 저자의 글을 읽으며 읽을 때마다 다른 깊이를 체감하게 된다. 더불어 현재를 살아가는 이유가 선명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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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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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작이며 베스트셀러​ 장편소설이다. SF소설이라 꽤 흥미롭게 전개된다. 과학의 발달을 예측하면서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로봇이 산업시장으로 나날이 다가서고 있다. 보완될 단점도 있지만 노동자 감축효과를 기대하면서 수용되는 노동시장의 변화물결은 조심스럽게 성큼성큼 인건비 저비용을 목표로 현대사회를 흔들기 시작하기에 이 소설은 더욱 흥미롭기만 하다. 소설의 배경은 지금과는 다른 과학이 발달된 시대이다.

보경이라는 두 딸의 엄마는 홀로 식당을 운영하게 된다. 소방관 남편의 사연과 연기자가 꿈인 아내가 있다. 아내는 식당을 하루라도 운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인다.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는 그녀는 책임질 두 아이가 있다. 1인 운영 식당이라 그녀의 아침은 분주하다. 눈뜨면서 시작하는 집안일과 출근 준비로 시작된다. 다리가 퉁퉁 부을 때까지 일하는 그녀의 하루는 시간적으로도 여유롭지가 않다. 큰 딸의 다리가 되어줄 돈으로 식당과 집을 마련한 엄마이다.



둘째 딸에게 '미안해'라며 늦기전에 말하는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부모의 사랑이 공정하지 않았지만 자식은 침묵하면서 버틴다. 부모의 방식을 멈추고 미안하다고 표현한 그녀의 선택이 기억속에 강하게 자리잡는다. 영화 <세자매>에서 자녀들에게 잘못한 부모를 향해 자녀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라고 외치는 장면이 떠오른다. 권위적으로 휘두른 것들이 폭력이었음을, 범죄였음을 무시한 사회적 풍토를 꼬집는다. 이 소설에서는 부모의 사과가 더 늦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화해하고 제자리를 찾는 노력은 가족관계에서도 필요하지만 사회는 견고하다. 완고함으로 자녀들에게 폭력적이다. 멈추어야 하는 기회는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과 늦어버렸다는 후회로 마감하지 않는 가족들이 되도록 안내하는 장면이 된다. 상실과 결핍, 박탈감으로 성장한 자녀의 후폭풍은 상당하다. 부모와 자식관계는 노력이 필요한 관계임을 소설을 통해서 확인시게 된다.



빨리 성숙해진 아이의 모습이 보이는 작품이다. <나의 아저씨> 드라마의 장면과 대사도 떠오른다. 그러한 아이는 아프게 그려진다. <일타 스캔들>드라마에서도 다르지 않다. 남해이가 그러하다. 엄마에게 버려지고 이모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산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를 너무 일찍 알아차린 어린 소녀가 보인다. 그리고 그 상처들을 표현하지 않고 끌어안고 가는 그 어린아이가 내면에 있음을 보여주는 드라마의 인물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소설에서도 빨리 성숙하여 슬픔과 결핍들을 고스란히 안고 가는 아이가 등장한다. 그 아이도 기억에 남는 인물이다.



세 모녀의 이야기가 가장 두드러지게 기억된다. 그리고 실수가 기회가 되는 순간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 기회로 다른 사고를 하는 인물도 기억에 남는다. 연구원의 실수로 다른 로봇이 되어 경험하고 배우는 로봇은 인간에게 치유가 되는 말을 건네기도 한다. 질주하면서 빠른 것이 성공이라고 믿는 우리들에게 다른 사고의 접근도 제시해 주는 인물이 된다. 이 소설은 장애인이 살아가기에 힘든 사회라는 사실도 짚어준다. 장애인에 대한 변화된 총체적인 협력과 이해가 필요해진다. 길거리에서 장애인이 보행하는 시설물은 있지만 한번도 장애인들을 길거리에서 본 적은 없다. 그들은 어디에서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을까. 그들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재하지만 유령처럼 길거리에서 보편적으로 목도되지 않는 부유하는 또다른 생명체처럼 감지되는 한국사회임을 일깨운다.



저출산을 막는 정책이 나오지만 무용지물처럼 건조하게 느껴진다. 현실성을 도외시하는 정책은 의미를 잃는다. 장애인을 포용하는 사회가 되지 못하면서 장애인 시설물은 도보에 설치한다. 겉도는 시설물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어느 곳을 갈지라도 장애물이 없는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이다. 한국은 빠른 성장을 이루었지만 기우뚱한 경사도가 심한 사회의 모습이다. 정신적으로 호소하는 스트레스 장애가 다양한 병명으로 다양한 연령층들이 힘겨워한다.

누구를 위한 경쟁사회인지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지각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 소설을 통해서도 놓쳤던 문장들을 다시 주워서 꼭꼭 되새김질을 한다. 무엇을 가장 시급하게 제자리에 갖다놓아야 하는지 다시금 맨윗자리에 올려놓게 된다. 경쟁만이 정답이 아님을 확인시킨다. 왜 오랜시간 많은 독자들에게 계속해서 읽히는 베스트셀러 도서인지 다시금 확인시키는 글귀들을 주워담는 작품이다.



'콜리'가 표현하는 다양한 사고와 다양한 표현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질문들도 놓치지 않게 한다. 콜리처럼 오늘을 살게 해준다. 콜리와 대화중에 "그리움이란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205쪽) 콜리만큼 오늘을 충만하게 살게 해주는 소설이다. 콜리의 낙마 순간이 작품의 시작이다. 그리고 두 번째 낙마가 가지는 의미도 떠올리게 한다. 더불어 시간의 흐름이 상대적이라는 사실도 직시하게 한다. 천 개의 파랑이라는 의미가 더욱 두드러진다. 그 의미를 차분히 생각해 주게 하는 소설이다.

열심히 달려서 취업한 곳이지만 과로사와 스트레스로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택배업무로 쓰러져서 과로사한 한국사회의 단면도 기억나게 한다. 빨리하라는 직장의 과중된 업무방식은 아직도 한국사회에 존재한다. 정당한 권리와 인권을 찾아가면서 일하는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노동권리는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했기에 이들은 묵시적으로 복종하고 순종하다가 쓰러진다. 죽을만큼 아프다고 과부하된 몸의 신호조차도 무시하면서 경쟁사회에 생존하고자 달린 노동자들이다. 고수익을 내는 직장 업무는 그만큼의 과업으로 힘든 일을 해결하는 곳이다. 좋은 직장이지만 행복하지 않다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투데이의 고통은 현대사회의 직장인들을 향한 고통으로 대변된다. "투데이는 달려야 살아 있음을 느꼈지만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하지 않게 되었다.채찍 사용 후...아파.아파.아파 " (30쪽)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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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개
이언 매큐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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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을 읽고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소설이라는 이 작품은 시대적 격동을 살았던 이들의 삶을 투영해준다. 사랑하는 두 부부에게 찾아온 이분법적 사고의 폭풍은 이들의 사랑의 중심점을 찾지 못하게 한다. 같은 이념을 가진 공동체였던 두 부부는 신혼부부였고 임신한 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아내가 경험한 일들은 적잖은 후폭풍으로 남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검은 개'라는 상징적인 어휘로 가족들에게 강하게 자리잡는다. 아내는 남편 곁에 더 이상 머무르지 않는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자녀들도 온전한 가족형태를 유지하지 않는 부모의 양육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자녀들이 더 이상 부모들에게 기대하지 않고 포기한 상태의 노부부의 결혼생활의 원인과 결혼생활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회고록 형태의 소설이다.



동지라고 호명되었다가 사위라고 부르는 장인어른의 굳건한 가치관의 맥락은 공산주의에서 시작된다. 사위가 살아가는 삶의 패턴에서 호명의 변화는 큰 의미를 가진다. 저명한 인사인 장인어른의 인생과 장모의 인생은 방향부터가 확연하게 차이를 이룬다. 노부부의 결혼생활은 팽팽하다. 한치의 느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하지만 절대로 함께 살수 없는 부부이다. 신을 거부하고 신을 믿는 경험들이 접점을 찾지 못하는 부부이다. 갑자기 어느 날 찾아온 기묘한 빛깔의 경험이라는 것을 장모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이다. 위급한 상황에 기도한 그녀가 경험한 것들과 그녀가 본 두 마리의 검은 개의 정체를 전해 들으면서 그녀에게 일어나는 변화는 큰 물결이 된다.

사랑하지만 서툴렀던 부부가 노부부가 되어서도 자신들이 만든 경계선을 허물지 못하면서 삶을 정리한다. 이 부부가 인생을 낭비한 죄가 전해진다. 지성을 채운 이 부부에게는 각성이 부족하였음을 엿보게 된다. "지성이 세상을 밝히고 각성이 삶을 결정한다고." (은희경 소설. 중국식 룰렛) 서로의 지성은 양극으로 대립하면서 접점을 찾아보지도 못하면서 삶을 마감한다. 악이 내부와 개인, 가정에 존재하면서 아이들을 가장 고통받게 한다는 글귀가 선명해진다. 노부부의 결혼생활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자녀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화자의 누나의 결혼생활로 피해를 본 화자와 누나의 딸 샐리도 같은 피해자가 된다. 폭력적인 어른들의 결혼생활은 답습이 되면서 샐리의 결혼생활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식당에서 식사하는 프랑스 가족이 자녀에게 폭력을 가하면서 울지도 못하게 하는 상황에서 화자가 관여하는 장면도 어린 자녀가 피해자로 드러난다. 자녀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매만진 작가의 시선의 끝을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악이 어떤 방식으로 모두에게 존재하는지 살피게 하면서 악의 나라를 향하고 잔혹함이 어떻게 많은 생명을 치워버렸는지도 소설에 등장한다. 수용소를 탐방하는 일은 고통스러운 것임을 전한다. 쌓여있는 신발들과 악의 잔해물인 검은 개의 존재까지도 매만진다. 마을에서 쫓겨난 여인을 향한 이야기도 기억해야 한다. 술주정뱅이가 하는 말을 믿고 수군거리고 수치심을 준 마을 사람들도 잊어서는 안된다. 검은 개는 우울한 감정을 불러 세운다. 악행의 상징성을 부여받는다. 전쟁, 침략, 아들과 형제의 전쟁으로 인한 죽음, 영국을 향한 원망, 적십자에서 봉사, 동독과 서독의 통일 기대, 국제적 정세가 전해진다. 헝가리, 러시아, 이탈리아, 프랑스 여러 국가들의 상황들을 살펴보게 한다. 장모가 프랑스 남부 시골에 정착하면서 홀로 생활한 이유와 자녀와도 가깝게 지내지 않았던 노부부의 상황들을 들려준다. 적대적으로 서로를 판단하지만 사랑했던 노부부이다. 이러한 부부들과 가족 이야기는 낯설지가 않다.

악은 우리 모두의 내부에 살고 있지. 개인의 내면에, 사적인 생활 속에, 가정에 뿌리를 내리고, 그 결과 가장 고통받는 건 아이들이야. 그다음엔 다른 나라에서, 다른 시기에 끔찍한 잔혹성이, 생명을 억압하는 사악함이 터져 나오고 ... 자기 안에 있는 증오의 깊이에 놀라는 거야... 우리 마음속에 있는 무언가 244

결핍과 상실을 경험한 이들이 있다. 부모가 교통사고로 죽으면서 화자는 부모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면서 성장한다. 누나의 삶은 너무 빠르게 기울었고 동생이었던 화자는 연애조차도 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게 영향력을 주는 누나가 된다. 노부부의 자녀들도 다르지가 않다. 부모는 존재하지만 자녀와 왕래하지도 않는 상황이다. 가족을 선물받았지만 온전하게 유지하며 보호하고 살피지 않는 부모와 어른들이 자주 등장한다. 악행은 너무나도 쉽게 물들인다. 아집과 폭력은 서서히 그들의 주줏돌을 무너뜨린다. 허물어져가는 가족들과 금이 가는 가족관계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늦지 않는 시점에 멈추어야 하는 악행을 모두가 멈추지 않는다. 가족관계에서도 전쟁과 사상 대립도 다르지가 않다. 어리석음과 광기는 역사와 사회 전반에 유유히 흘러넘친다. 잃어버리고 빼앗긴 것들이 무엇인지 소설을 통해서 펼쳐놓는다. <이제, 곧 죽습니다>드라마가 전하는 강력한 주제가 생각난다. 책 『군중의 망상』에서 니체는 "광기는 개인에게는 드물지만 군중과 정파와 국가와 세대에서는 차라리 규칙이 된다." (45쪽)라고 전한다. 이 소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젊은 남자 무리에게 폭행을 당하는 장인을 구하는 젊은 여자와의 만남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된다. 수용소가 휩쓸어버린 마을 사람들의 생명은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뽑힌 손톱의 일련번호, 쌓아 올려진 신발 무더기로 기억하면 되는 걸까.



혐오하는 감정이 불러일으킨 후폭풍은 거대해진다. 유토피아를 꿈꾸었지만 비리와 정당화되는 폭력들이 비일비재하면서 당원들은 떠나게 된다. 미련하게 끝까지 기대하는 것과 노동자와 대화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상가의 유토피아는 모순의 대명사가 된다. 실천하는 사상가가 아닌 머리로 이해하는 사상가의 대표가 장인어른으로 기억된다. 반면 당원을 탈퇴하기 전의 장모는 장인과는 대조적인 실천적인 사상가로 기억된다. 폭행당하는 장인을 구해준 젊은 여자의 모습에서 젊은 날의 아내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분법적 사고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확인하게 된다. 이해하고 포용하며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절실해진다. 사랑의 의미는 경계선을 지니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나의 것, 너의 것, 무수히 많은 구획들을 나눈다. 그렇게 어리석은 군중, 정파, 국가와 세대로 나뉜다. "추상적인 원칙들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장모 준이 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단기적, 실용적, 실현 가능한 목표들뿐" (243쪽)이라고 말하는 그녀가 있다. 어영부영 보낸 세월에는 노부부의 아집과 분노가 혼재한다. 한 걸음 더 다가서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어려운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팽팽한 싸움은 결국 막을 내리게 된다. 유럽 역사에서 선을 기대한다는 것과 망각을 거론하는 작가의 기나긴 고찰이 전해진다. 이들의 역사만큼 우리의 역사도 다르지 않기에 이 부부의 삶은 이 땅의 삶과도 연계하게 된다.

함께 살고 싶어하지도 헤어지지도 않는 부모. 악과 신의 존재를 믿었으며. 공산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고 확신한 준은 버나드를 설득할 수도 떠나보낼 수도 없다는 걸 확인. 버나드는 준을 사랑했지만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하는 그녀의 폐쇄적인 삶에 분노 242

망각은 비인간적이고 위험하며 기억은 끝없는 고문이 될 터...

이런 먼지와 홀씨로 뒤덮인 유럽에서

어떤 선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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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심장을 향한 질문, ​
화려하지만 핏기 없는 존재, ​
냉정하고 이기적인 무리들, ​

인간성의 상실, ​
혐오스럽고 괴물 같다는 것, ​
인습을 향하는 날카로운 비판도 등장한다. ​​




시인다운 환상을 가로막는 것은...
절대적인 이기주의 정신이었다....
혐오스럽고... 괴물 같았다...
인간성은 이미 사라졌다...
돌멩이에 광택제를 바른 우상들이었다.
자신을 숭배하고...

- P221

이 도시에는 심장이 없는 것일까?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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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자, 장자크 상페 그림, 박종대 역자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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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 작품은 처음이 아니다. 『깊이에의 강요』작품이 좋아서 연이어 고른 책이다. 향수』,『좀머씨 이야기』, 『비둘기』, 『콘트라바스』 등의 작품들을 집필한 작가이다. 그림도 있어서 내용과 함께 여러 번 여러 그림들을 반복해서 보면서 읽은 작품이다. 8월 초저녁 뤽상부흐 공원 구석의 한 정자에 두 남자가 체스판 승부를 벌리고 있다. 구경꾼들도 제법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다. 체스의 챔피언이 있고 이에 도전하는 젊은 도전자에게 구경꾼들의 관심이 쏠려있다. 젊은 도전자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표정도 변화가 없는 모습에는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이 없는 냉담함을 보인다. 구경꾼들은 이 도전자를 알지 못한다. 그가 체스를 두는 모습에 구경꾼들은 동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챔피언인 상대도 그의 속내를 읽어내느라 바쁜 모습이다. 구경꾼들은 젊은이를 향해 '고수'라고 하면서 젊은 도전자를 향한 기대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홀로 서 있는 체스의 퀸을 보면서 감탄하는 구경꾼들의 마음이 전해진다. "그렇게 서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처연하도록 아름답다. 저렇게 아름답고 저렇게 고독하고도 당당하게 서 있던 퀸은 없었다." (27쪽) 체스는 승자가 있고 패자가 존재한다. 이 두 사람의 승부는 어떻게 판가름이 날까? 구경꾼들의 희망이 이루어질까? 새로운 챔피언이 탄생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젊은이는 새롭게 등장한 체스의 고수일까?

호전적인 욕구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체스 구경꾼들이 있다. 젊은 이방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체스를 두는 모습을 보인다. 과정의 기쁨과 고통이 전해지는 체스이다. 구경꾼에게 젊은이는 영웅이 된다. 젊은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실행해 옮기는 태도를 보이면서 구경꾼들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이 젊은이처럼 두고 싶어하는 구경꾼들은 젊은이의 당당함과 자신감을 부러워한다. 나폴레옹처럼 영웅적으로 싸우고 싶어하는 구경꾼들의 말과 행동들은 젊은이를 대하는 태도와 체스의 챔피언을 대하는 태도가 대비를 이룬다. 상이한 태도에 동요된 챔피언의 불안과 고통스러운 태도를 눈여겨보게 된다. 체스의 챔피언은 결코 즐겁게 즐기는 체스가 아님을 보여준다. 은퇴 후 남은 인생까지도 공원에서 승부를 거는 고통스러운 순간들로 인생을 보낼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는 젊은이의 태도와 젊은이의 거침없는 당당함에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복기하는 시간은 그에게 뜻깊은 가르침이 된다. 그에게 남겨진 날들은 오늘 보낸 공원에서의 날들과는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체스 승부는 어느새 결정난다. 승자는 자신이 방금 치른 판을 하나하나 복기하면서 상대의 자신감과 천재성을 떠올리는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더불어 상대의 젊은 패기도 되짚는다. 구경꾼들의 '질투'라는 감정과 평온을 만끽하고 싶어한다는 자신의 감정을 읽어내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승부는 자신의 것이었지만 실제로 패배한 사람이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렇게 인정한 이유들을 파악하는 인물의 시간이 의미 깊어진다. 진짜 승자가 누구였고 진짜 패배자가 누구인지를 깊게 조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승부의 정신적 요소를 요구하지 않는 것을 하고자 마음을 먹게 된다.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놀이를 할 생각이라고 다짐하는 그의 달라진 모습을 보게 된다. 젊은 날에는 승부를 거는 전쟁 같은 날들을 보낼 수 있지만 퇴직한 현재 체스를 통한 승부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반문해 보게 된다. 그의 내면에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평온해지는 날들을 희망하는 의지가 분명해지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고문하는 체스의 승부를 직시하면서 앞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면서 즐겁기만 한 놀이만 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스스로를 고문한다. 24

승부에서는 이겼지만 멘탈 싸움에서는 진 것 73

공원과 복잡한 거리의 풍경 그림들을 살펴보게 된다. 분주한 사람들의 무리들이 즐기는 생활들과 그가 혼자서 고독하게 혼자서 보내는 모습들을 차분히 보여준다. 그에게 체스는 어떤 의미였을까.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는 승부의 순간이 그에게는 고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여가 시간을 보내는 은퇴 생활자가 어떻게 남은 날들을 즐겁게 보내는 것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인지 그림들을 보면서, 공원에서 보내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고찰하게 된다.

프란츠 카프카의 『돌연한 출발』에 실린 어두운 밤에 집필한 작가가 생각난다. 기나긴 밤에 잠들지 않고 하루를 돌아보면서 거듭나는 숙고의 시간은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 발전의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그림들은 많은 함축적인 상징성을 전달한다. 혼자 외롭게 보내는 시간보다는 둘이 함께 보내거나 함께 보내는 사람들의 무리가 의미심장하다. 외롭지 않은 그의 다른 날들이 기다릴 것이라고 기대해보게 된다. 승부가 주는 고통을 던지고 함께 하는 삶이 주는 즐거움과 질투가 아닌 감정으로 타인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을 보낼 것이라고 믿게 된다.



스스로를 고문한다. - P24

승부에서는 이겼지만 멘탈 싸움에서는 진 것 - P73

그렇게 서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처연하도록 아름답다. 저렇게 아름답고 저렇게 고독하고도 당당하게 서 있던 퀸은 없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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