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의 종말
러셀 자코비 지음, 강주헌 옮김 / 모색 / 2000년 6월
평점 :
품절


도데체 이 번역서에는 번역자의 후기도 없고, 약력도 없다.

웃기는 이야기 하나 하자... 나는 번역서를 고를 때 역자 후기 부터 본다. 역자가 자기의 졸역을 이해해 달라느니.. 번역 요청을 받았으나 차일피일 미루다고 기간이 엄청 길어져서 이제야 나오게 되었다느니... 자기 제자(대개 자기 조교나 똘마니들일 듯)에게 큰 도움을 얻었다고 하는 언급을 하면 이 번역서는 그 역자 말대로 대개 80%는 졸역이다. 이런 정직성 때문에 다행히 후진 역서는 어느 정도 피해갈 수 있다.

반대로 잘된 역서는, 역자 후기에서 자신 만만함을 느낄 수 있고, 자기가 번역하면서 고민한(쩔쩔맨 경험이 아니라) 내용들, 예를 들어 용어 선정의 문제, 국내 학계에서 혼동되는 개념들을 교통정리하는 등의 번역에 있어서 성실한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런 책 고르면 거의 99% 좋은 번역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역자 후기 마저 찾을 수 없다. 그러니 이 책은 읽어 보기도 전에 의심부터 해야했다. 그 의심은.... 거의 맞아들었다. 포스트 모더니즘 어쩌구 하면서 대책없는 상대주의와 자폐적인 개인주의로 빠져드는 지식인 사회에 대해 시퍼런 날을 들이대는 이 책의 내용은 그야말로 한 여름의 짜릿함을 주지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이상한 고유명사들... 예를 들어 비평가 레이몬드 윌리엄스를 윌리엄이라고 하고...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를 게르츠라고 부른다...

솔직히 이 정도는 역자가 조금만 성의를 보이고 문헌을 찾아보면 얼마든지 알 수 있는 내용일 텐데... 그래서 그런지 역자는 각주도 제대로 달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은 무슨 집회에서 나눠주는 좀 두터운 찌라시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중예술의 미학
박성봉 지음 / 동연출판사 / 1995년 9월
평점 :
품절


만일 우리가 전적으로 인간의 진지한 측면만을 감싸안음으로써 우리의 통속적인 측면을 못 본 척 한다면 우리가 소유할 수 없는 완벽함을 자만하는 것이고, 만일 인간의 통속적인 측면만을 강조하여 우리의 진지한 측면을 무시한다면 우리 자신의 한계를 지나치게 과장하는 셈이 될 것이다. (... 모티머 J. 애들러)

통속성이란 어쩌면 우리가 인간인 이상 모두가 지니고 있는 몇 안되는 공통점들 중 하나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것을 거부한다. 우선 나부터도 그랬다. '개그 콘서트' 같은 프로를 보고 눈쌀부터 찌푸리던 게 다반사였는데... 요즘 유행하는 대중문화연구에 대해서도 'So What?'하면 기표해석에만 파뭍혀 이론의 유희를 해대는 꼬라지에 구역질이 날 정도였는데... 하지만 사람들 중 많은 다수가 즐기는 것이라면 그 안에는 뭔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도 해보곤 했다... 하지만 어렴풋할 뿐...

이 책은 그런 나에게 어떤 문을 열어주는 책이었다. 아직 그 문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중예술속의 통속적인 것이 지닌 실존적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전통적인 미학의 체계의 연장선상에서 그런 통속적인 것이 어떤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가의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책이기도 했다. 100% 진지한 예술도, 100% 통속적인 예술도 없다. 그런 구분이야말로 통속적인 구분일 뿐, 진지함 속에 통속이, 통속 속에 진지함이 들어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족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
권명아 지음 / 책세상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몇 년간 케이비에스 9시뉴스 이전에 나오는 류의 드라마가 유행하고 있다. 이런 드라마들의 화두는 가족이며, 주된 내용으로 두 남녀가 만나서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고 결혼한 후에 두 집안(특히 시댁에서의 갈등)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류의 이야기에 매혹되며 그들은 이를 통해 무언가를 보상받으려고 하고 있다. 그것은 (한나 아렌트의 용어로) '무사회적 고립자들'의 절망과 불안을 가족의 신화를 통해 보상받고자 함이다.

우리 착각하지 말자... 최근 이런 식의 가족에 대한 관심의 본질은 가족 자체에 대한 진지하고 반성적인 관심의 결과가 아니다. 이 책의 내용대로 이것은 각박해진 세상, 각박해졌지만 아무런 사회적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있지 못한 세상에서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가족 뿐일 것이라는 상상적 탈출구일 뿐이다. 이와 같은 가족에 대한 회귀 열기는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의 위험 수위에 다다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일 뿐이다.

무사회적 고립자들은 막다른 골목에서 혁명을 찾을 것이다. 그것이 파시즘적 혁명일지 공산주의혁명일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만, 어떤 혁명이든지 간에 그런 사람들이 주동이 된 혁명은 결국 파시즘적 특성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뻔한 걸 왜 물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화(株) - 공공의사표현의 사유화 나남신서 238
허버트 쉴러 지음, 양기석 옮김 / 나남출판 / 1995년 2월
평점 :
품절


인간 개인의 의사표현은 옷차림에서, 산보를 나갈 때, 친구를 만날 때, 대화를 할 때, 혹은 수천 수만 가지의 일상적 생활 속에서 언제나 나타나게 된다. 의사표현은 삶의 필수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의사표현이 완전히 통제되고 관리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의사표현이 인간 개인에게 필수 불가결한 부분일지라도 인간은 사회적 제약을 받으며 의사표현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사회적 제약은 예나 지금이나 한 사회에서 권력을 쥐고 잇는 계층에 의해서 설정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사회적 제한이 형성된 배경과 지난 몇 십 년간 어떻게 강화되었는가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 사회는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를 논하려 한다.

현대의 의사표현의 자유에 한계점을 긋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주체는 사기업이다. 기업에 의해 운용되고 있는 새로운 첨단 정보 기술은 의사표현의 생산 배포를 위한 도구가 되고 있다. 또한 거대 메이져 영화사들의 기술과 자본은 대중들이 그들 이외의 다른 문화적 산물에 대해 관심을 둘 겨를을 허용하지 않도록 한다. 박물관이나 언론사의 기획전시나 특집기사들은 어느 새 그들을 후원하거나 광고료를 지불해 주는 사기업들의 간접적인 나팔수가 되어가고 있다. 급기하 가장 공공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게놈지도 정보에 대한 독점권을 주장하는 막나가는 사기업도 나타났다.

이제 사기업은 강력한 여론 형성 능력과 대중문화에 대한 지배를 통해 이 사회를 매니지먼트되는 사회로 만들어가고 있다. 문화가 그 성원들 사이의 자유롭고 평등하며 능동적이며 창조적인 실천으로 채워져야 함은 상투적인 진실이다.

하지만 이 공공의 장이 사기업의 이윤논리에 의해 포위되고 있다. 대중들은 기업이 던져주는 천편일률적인 이미지에 대해 기껏해야 오십보 백보 식의 능동성(포스트모던 문화이론가들이 그렇게 집착하는 바)을 확보할 뿐, 결국 기업에 의해 제공된 이미지의 포위에 항복하거나 아예 그 속에 빠져삶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쟁과 인간 -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
노다 마사아키 지음, 서혜영 옮김 / 길(도서출판)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을 분석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을 분석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대 한국의 정신의 연원은 자생적 근대화론을 펼치는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주장하는 실학이나 영정조시대의 상공업의 흥성과 같은 곳에 있기보다는, 일제시대에 있다고 보는 편이 더 설득력이 있을 듯 하다. 만주군관학교에서 메이지 유신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박정희가 장기집권을 하고, 그의 정신적 수하들이 80년대까지 장악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된 수많은 외상후 증후군들이 그 명징한 예들이 아닐까?

노다 마사아키는 이런 군국주의 정신의 특성을, 첫째 집단에 매몰된 인간, 그래서 집단으로부터 자기 스스로를 독립시켜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성, 둘째, 출세에만 눈이 먼 상태에서 무슨 일이든 무신경하게 해치는 '강한' 인간의 과잉 적응, 세째, 자기 신념을 지키지 못하고 복종으로 도피하는 '강한' 인간의 약한 심리구조, 네째 주어진 슬로건에 비판적인 반성없이 휩쓸리는 정신적 취약성, 다섯째,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심리 속에서 다시 곱씹지 못하는 매마른 심리, 여섯째,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인간을 하나의 개념적인 도구 혹은 물질적 대상으로 환원시키는 사고방식 등을 꼽는다.

여기에 권력의 의도에 의한 선전선동이 결합되면서 이 집단은 놀라운 응집력과 동시에 끔찍한 폭력성을 키운다. 이런 태도는 단지 난징이나 광주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우리의 근대화, 개발독재로 명명되는 박정희식 근대화의 뿌리이기도 하다.

흔히 말하는 성찰없는 근대화의 모습이고, 독일이나 일본과 같이 국가주의적 근대화를 거친 나라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나라에서 질서니 윤리니 하는 것들은 엘리트들에 의해 철저하게 교육되는 것이지, 사람들이 서로 부딧혀 가면서 스스로 형성해가는 문화가 아니다.

일본이나 독일 사회의 장점이라고 찬양되는 준법정신이라는 것 뒤에 숨어있는 폭력성에는 인간을 부속으로 최소화하는 문화적 무의식이 숨겨져 있으며, 이런 무의식이 바로 우리의 근대화 심성이었다. 우리는 그런 근대화심성을 철저히 내면화하고 자신을 아무런 성찰성없이 몸소 부속으로 내던졌다.

마사아키는 이런 군국주의적 심성을 깨부수는 첩경은 '감정회복'에 있다고 본다. 감수성의 회복은 인간을 기계로 환원하는 사고방식에 끊임없이 저항한다. 군국주의적 마초맨의 시각에서는 '약해' 보이는 인간은 거꾸로 '강한 인간'을 치유하는 약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