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 이데아총서 9
발터 벤야민 지음 / 민음사 / 199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발터 벤야민하면 떠오르는 것은? 대개 '아우라'와 '기술복제시대'란 말일 것이다. 영화나 현대예술을 논하면서 그의 이 두 개념은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가게 된다. 그 개념이 빠지면 왠지 중간에 이빨이 빠진 것처럼 느껴질 정도니까... 허나 그렇게 자주 인용되다 보니 본래 벤야민의 모습은 개념의 상투성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듯 하다. 그러다 보니 '벤야민? 이제 지겹다 집어쳐라~'란 식의 반응도 나올 정도인 듯 하다. 언제나 그렇듯 너무 쉽게, 그리고 일면적으로 이해하면 그만큼 빨리 폐기처분되게 마련이 아니던가?

벤야민을 좀 더 피부에 와닿도록 느껴보고 싶은 독자라면 어줍잖은 개론서나 어쩔 수 없이 단편적일 수 밖에 없는 논문들을 들춰보는 것보다 이 책을 집어드는 편이 나을 것이다. '사랑은 이 세상에서 이뤄질 수 없는 운명'이란 식의 비관주의적 태도는 어디서 연원한 것일까? 잘 나가는 유대계 중산층 출신이면서도 그런 부모를 경멸하면서도 또 그들에 빌붙어 살아가던 벤야민의 모습... 골동품에 편집적인 애착을 가지고 그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발굴하는 삶의 고고학자로서의 모습... 웬지 모르게 씁슬하고 전적으로 숭배하기 힘들지만 자꾸 눈이 가는 비평가... 이 세상에 발을 딛고서 이 세상의 감각을 맘껏 즐기면서도 저 바깥 세상에 대한 눈을 거둬들일 줄 모르는 종말론자... 그 다층적인 모습들을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사상사의 과학적 이해를 위해
한국역사연구회 / 청년사 / 1997년 11월
평점 :
절판


저자들은 스스로 이 저서를 한국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새로움이란 '과학적 접근'때문이다. 기존의 지배적이고 전통적인 연구는 대개 특정 사상의 맥락 속에서만 이해되는 측면이 많았다. 불교에서는 불교의 내적 원리에만 치중하고, 성리학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반해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함은 사상의 정치경제적이고 역사적인 토대를 파악하고자 함이겠다.

전체적으로 신화시대에서부터 시작해서 해방후 근대사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영역을 아주 짧막한 서론적 논문들로 다루고 있어서 입문자들에게 적당한 책으로 보인다. 다만 좀 건조한 문체가 따분하기는 하다. 최근에 생활사 중심의 역사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이 분야에서 소장 학자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단체가 바로 한국 역사 연구회이다. '어떻게 살았을까' 씨리즈도 이 단체의 소사이었다. 이 책과 함께 같이 읽어 둔다면 나름대로 재미있는 역사여행이 될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이컨: 회화의 괴물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84
크리스토프 도미노 지음 / 시공사 / 1998년 12월
평점 :
품절


'이성과 대상'은 서구의 근대가 설정한 인식의 패러다임이다. 대상은 고정되고 정형화 되어 있고 이성은 논리적인 거울을 통해 그 대상을 온전히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패러다임을 회화적으로 구현함은 르네상스 회화로부터 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화가이면서 꼼꼼한 자연과학자였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라.

그러나 현대로 들어서면서 이성과 대상은 각각 물렁물렁해지기 시작했다. 이성은 논리의 골격을, 대상은 그 딱딱함을 잃고, 이성 대신 의지, 대상 대신 에너지로 전회되었다. 의지는 논리와 맞서며 기존의 논리를 부수고자 한다는 점에서, 에너지는 그 비가시적인 부정형의 벡터며 운동이라는 점에서 모두 동적이다. 대상에 대한 관찰은 일방적이고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부정형적이다. 니체는 세계야말로 힘에의 의지일 뿐이라고 선언한다. 이 와중에 베이컨의 그림이 놓이게 된다.

그의 그림은 의지와 에너지의 그림이다. 그가 그린 인물들은 가시적성이 강요하는 일정한 모양으로 고정되는 것을 거부하며 하나의 모양에서 다른 모양으로 가는 '힘' 그 자체를 포착하고자 한다. 힘 그 체는 표상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그의 그림은 표상될 수 없는 것을 가시적인 매체로 표현하려는 불가능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야말로 현대예술의 충동이 아니던가?

그의 인물그림들은 자주 프레임이나 프레임 내의 또 다른 프레임을 설정한다. 그는 무정형의 힘을 쫓는 와중임이면서도 동시에 정형화된 프레임을 유독 강조한다. 유명한 교황의 초상을 패러디한 그림 속의 일그러진 교황은 프레임 속의 프레임 속에 들어있다. 정형성과 무정형성의 극한 대립을 의도한 것일까? 개념적인 정형과 개념 밖으로 뚫고 나오려면 무정형의 대립말이다. 지상의 정형화된 개념으로 교황만큼 적절한 상징도 없다.

그 외에도 베이컨은 양복입은 중년 남자를 짓이겨 놓기도 한다. 우산 아래, 난자된 소고기를 배경으로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선 중년 남자... '날 꺼내줘! 날 이 검은 소복에서 꺼내줘! 내 살들이 다 제 갈길로 갈갈이 떠나가게 풀어줘!' 라고 절규하듯이... 그는 날 것이 되고 싶어 한다. 각지고 날선 양복을 찟어버리고 익명의 살조각으로 풀어져 버리고 싶어 한다. 회화의 괴물을 그렇게 자신을 드러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국 회화사 삼천년
양신 외 5명 지음, 정형민 옮김 / 학고재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평소에 미술에 대한 관심이 꾸준한 편이어서 적어도 어지간한 그림은 누구 그림이고 그 좋은 맛이 무엇인지 아는 편이지만 유독 동양화 쪽으로는 그 그림이 저 그림 같은 경우가 많았다. 그 만큼 나에겐 동양화란 개성적인 특성이 부족한 관습적인 그림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베토벤을 감상할 때는 큰 연주회장에 가야 하지만 모짜르트의 현악사중주를 듣기 위해서는 작은 방으로 가야'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여기저기 입소문을 빌어서 접하게 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가격이 좀 만만찮기는 해도 그 가격 이상을 하는 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동양화에 대해 나와 같은 선입견을 가진 사람은 책에 실린 제임스 케힐의 '중국화 감상2'라는 짧은 논문을 보면 좋겠다. 그는 중국회화를 그 맥락에서 떼어내어 '현대적'이라고 이르거나, 한 주제에 대한 다양한 변주라는 식으로 보는 것도 일면적이고 편의적인 태도라고 비판한다. 대신 중국화가 생산되는 사회적 토대에 대해 이해하고, 미학적으로 기법 상의 격식과 탈격의 운동과 중국화 특유의 작품 구성 요소들(병풍, 두루마리, 족자, 낙관 등)을 보아야 하며, 서구 미술사가들이 기가 질릴 정도로 풍부학 전해지는 畵論, 비평,미술사 관련 문헌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과거에 중국화를 방외자의 호기심 수준이나 고고학이나 인류학 수준에서 보는 태도는 좀 꼴이 우습다. 그건 마치 미개인이 서구미술사 속의 방대한 토론과 실험, 고뇌와 착안들을 알지도 못한 채 한 번 보고 평가내리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중국문화는 중국 자체의 통일성 속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겠다. 중국화와 동양화에 대해 나는 아직 그런 미개인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시 한 번 '전통이 없으면 혁신도 없다'는 격언을 떠올리며 이 책을 통해 동양화에 대한 내 좁은 눈이 조금씩 더 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교속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 아시아 불교설화
송위지 지음 / 우리출판사(서울출판) / 200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쥐 부모가 제 딸을 제일 나은 신랑감을 구하기 위해 하늘에서 부터 시작해서 구름, 비, 산, 황소, 밧줄 등을 찾아가다가 결국 밧줄을 끊을 수 있는 쥐를 신랑으로 삼는다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우화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이 책에 있군요. 미얀마에서 전혀내려오는 이야기랍니다. 이 이야기에서도 얼핏 느끼는 것이지만 남아시아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설화들은 대개 불교적인 아이러니나 처음과 끝의 연결, 인간적 질서를 상징하는 권선징악 보다는 인간적인 계산 자체를 멍하게 만드는 엉뚱한 결말 등을 특징으로 합니다. 이 모두 현세적 욕망에 눈이 먼 인간의 맹목을 우화적으로 풍자하는 쪽이죠.

편저자가 말하듯 대개 이 이야기들은 권선징악 보다는 인과에 의한 것입니다. 인연의 끈에 대한 성찰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일, 궁극이 아닌 목표 지향적인 삶에 대해 많은 충고를 해줍니다.

요즘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잘 읽히는 동화는 대개 두 가지 인듯 합니다. 하나는 착하고 영리하며 말 잘 듯는 사람이 잘 먹고 잘사는 이야기, 다른 하나는 영리함 대한 반발인지 소외되거나 호기심 많으며 자연에 가까운 아이에 대한 이야기... 그런데 인과와 삶의 아이러니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아이에겐 너무 어렵다고 여기기 때문일까요? 제 생각은 다른데... 아이러니야말로 로 형식적인 대답으로 미봉하는 대신 질문 그 자체를 끌어내어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이 책은 그런 마음을 키워주는 좋은 이야기들로 가득한 듯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